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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화

Author: 루에나
강솔의 주량은 정말 형편없었다.

도수 3~8도의 과일주도 두 잔이면 취했고, 서너 잔이면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리곤 했다.

지금은 이미 양주를 네 잔이나 비운 상태였다.

더 마셨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확인했어.”

중현은 가득 찬 생수를 그녀 앞으로 밀어주었다.

물컵을 든 중현의 길고 하얀 손가락이 크리스털 잔에 투영되며 유독 눈길을 끌었다.

“마셔.”

강솔은 잔을 받자마자 아무 의심 없이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보며 중현의 깊은 눈빛은 더욱 어두워졌다.

시선에서 멀어진 음료를 이렇게 아무 경계심도 없이 마셔버리는 이 사람,

자신을 그만큼 믿고 있어서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그녀의 무방비함에 걱정해야 할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였다.

“됐어.”

강솔은 잔을 탁 내려놓았다.

완전히 취해버린 지금, 술맛이든 물맛이든 구분할 겨를도 없었다.

중현은 그녀의 말에 맞춰 부드럽게 받아주었다.

“응.”

“나 이제 가도 돼?”

강솔은 처음부터 끝까지 룸 안에 자기와 중현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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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결코 무너지지 않아   제908화

    통화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전화를 끊기 직전까지도 단아는 태휘를 만나면 꼭 자기 말을 전해 달라고 강솔에게 거듭 부탁했다. 그래서 강솔은 태휘 대표실로 돌아와 사업계획서를 다시 펼치고도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다.말하자니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 같았다.그렇다고 말하지 않자니 단아가 직접 부탁한 일이라 곤란했다.“할 말 있어?” 태휘가 자꾸 자신을 바라보는 강솔의 시선을 알아차렸다.강솔은 사업계획서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쓸었다. “조금요.”태휘는 사업계획서에 관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말해.”강솔이 입을 열었다. “점심에 단아 씨랑 연락했어요.”태휘의 움직임이 굳었다.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입술이 가늘게 다물렸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다. “너희 둘이 연락한 건 네 일이야. 나한테 일부러 말할 필요 없어.”“단아 씨가 오빠한테 전해 달라는 말이 있어요.” 강솔은 태휘를 바라봤다.태휘가 시선을 들었다. 서류를 넘기던 손에 힘이 들어갔고, 강솔을 보는 눈에는 여러 감정이 얽혔다. 한참 뒤에야 물었다. “무슨 말?”강솔은 단아가 했던 말을 그대로 전했다. 의미를 보태지도, 빼지도 않았다.말투도 최대한 평온하고 담백하게 유지했다.말을 마친 뒤 강솔은 조용히 앉아 태휘의 반응을 살폈다.“알았어.” 태휘가 짧게 답했다.강솔은 전과 달라진 점이 있는지 보려 했지만, 단아의 말은 태휘에게 아무 영향도 주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태휘는 평소처럼 서류를 넘기고 업무를 처리했다. 마치 방금 들은 이야기가 대수롭지 않은 몇 마디에 불과한 듯했다.시간이 조용히 흘렀다.강솔이 시선을 거두고 다시 사업계획서에 집중하려던 때, 태휘가 손에 든 서류를 내려놓았다. 손가락으로 미간을 눌러 문지르더니 깊게 숨을 두어 번 내쉬었다.“미안.”태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내가 직접 사업들 설명해 주기로 했는데 급하게 처리할 일이 생겼어. 이해 안 되는 부분은 표시해 둬. 나중에 돌아와서 자세히 설명해 줄게.”강솔은 조금 놀랐지만 곧 고개

  • 난 결코 무너지지 않아   제907화

    강솔은 잠시 말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중현과 자기 일이 떠올랐다.그렇게 애를 써도 이혼을 끝내지 못했고, 결국 예전에 했던 약속을 근거로 내세운 뒤에야 겨우 자유를 얻었다.도현은 중현보다 더 집요한 사람이었다. 단아가 정말 도현과 혼인신고를 한다면 앞으로 단아를 기다리는 미래는 결혼이라는 허울을 쓴 감금과, 다시는 자유를 되찾지 못할 삶일 가능성이 컸다.[강솔 씨.] 단아가 망설이며 불렀다.강솔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어렴풋이 짐작했다. “말씀하세요.”단아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한참 뒤에야 조심스럽게 말했다.[나중에 정말 갈 데도 없고 더 물러날 곳도 없어지면... 제가 J시를 떠날 수 있게 도와주실 수 있어요?]“네.” 강솔은 고민하지 않고 바로 답했다.[고마워요.]단아가 진심으로 말했다.“지금 당장 떠나고 싶으시면 제가 데리러 갈 수도 있어요.” 강솔은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아직은 하도현이 저지른 일의 증거를 찾을 수 있는지 해 보고 싶어요.]단아도 자기 힘으로 끝까지 시도해 보고 싶었다. [나중에 하도현이 제 일을 빌미로 협박하면, 저도 하도현을 붙잡을 카드 하나쯤은 있어야 하니까요.]강솔이 입술을 달싹였다.그런 증거를 찾기 쉽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도현은 중현과 마찬가지로 일을 처리할 때 빈틈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그런 사람의 약점을 찾아내는 것 자체가 어려웠고, 어렵게 찾아낸다 해도 상대는 그 증거를 무력화할 방법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것이다.강솔이 물었다. “하 대표가 아직 잡고 있는 단아 씨 약점이 또 있어요?”[제가 순순히 따르는 척하면서 비위 맞추던 모습이 찍힌 영상, 침실에서 찍힌 영상이랑 사진도 있어요.]단아는 이제 그런 말을 비교적 담담하게 꺼낼 수 있었다. [그중 하나만 골라서 사람들 시켜 퍼뜨려도 제 이미지는 끝장날 거예요.]연예 가십 계정이나 익명 폭로 채널은 그런 소재를 가장 빠르게 물어뜯었다.단아에게는 온갖 자극적인 꼬리표가 붙을 것이다.한번 공개되면 이틀도 지

  • 난 결코 무너지지 않아   제906화

    태휘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지만 강솔은 태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 “저도 단아 씨에 대해 많이 아는 건 아니에요. 처음 만난 것도 엄마가 의식을 되찾은 뒤 병실에서였고요.”다른 이야기라면 어느 정도 대신 말할 수 있었다.하지만 단아의 사생활과 상처에 관한 일은 단아가 직접 말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알았어.” 태휘는 이미 강솔의 반응에서 답을 얻은 듯했다. “고마워.”그 뒤로 오전 내내 두 사람은 사적인 대화를 더 하지 않았다.태휘는 회사 업무를 처리했고, 강솔은 태휘가 건넨 사업계획서를 읽었다. 장 이사의 말대로 모두 JX그룹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사업들이었다.자료에는 JX그룹의 중장기 계획뿐 아니라 아직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신규 사업에 관련된 내용도 들어 있었다.강솔은 그렇게 한참 동안 자료에 파묻혀 있었다.점심 무렵이 되자 태휘는 진환식의 당부대로 강솔과 함께 식사하러 갔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뒤 태휘는 다시 업무를 봤고, 강솔은 사람이 없는 곳으로 이동해 단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연락에 쓴 건 여전히 업무용 번호였다.메시지를 보내자 얼마 지나지 않아 단아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짧게 안부를 주고받은 뒤 단아가 요즘 상황을 설명했다. [이제 예전처럼 전화도 하고 메시지도 할 수 있어요. 하도현이 감시는 풀었어요.]강솔은 조금 의외였다. 도현답지 않은 행동이었다.[그런데...]단아가 말을 망설였다.강솔이 물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단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도현은 제가 강솔 씨랑 연락하는 걸 싫어해요. 혹시 제가 어느 날 갑자기 말투를 바꾸고 일부러 차갑거나 심한 말을 하면, 그때는 도현이 제 앞에 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알았어요.”단아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오늘 연락하신 이유가 있으세요?]“오전에 태휘 오빠랑 얘기했는데, 하도현 대표가 몇 년째 집에 누군가를 숨겨 두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강솔이 말했다. “태휘 오빠가 일부러 떠본 건가요, 아니면 하

  • 난 결코 무너지지 않아   제905화

    태휘는 강솔의 설명을 듣고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강솔과 눈이 마주치자, 예전에 단아에게 했던 것과 비슷한 말을 다시 꺼냈다. “지금의 단아도, 내가 기억하는 단아도 둘 다 단아야. 나한테는 다를 게 없어.”그제야 강솔은 단아가 왜 태휘의 고백을 거절했는지 알 것 같았다.태휘에게는 그 말이 진심이었다. 오랫동안 변하지 않은 마음을 보여 주는 말이기도 했다.하지만 단아에게는 너무 성급하게 들렸을 것이다.혹시 태휘의 감정이 잠깐의 호기심은 아닐지, 막상 가까워지고 난 뒤 ‘너 왜 이렇게 변했어?’, ‘미안한데 우리는 안 맞는 것 같아.’와 같은 말을 듣게 되지는 않을지 두려웠을 테다.단아의 삶은 이미 위태로웠다. 작은 충격 하나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였다.“태휘 오빠한테는 다를 게 없겠죠.” 강솔은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 했다. “그런데 지금 단아 씨가 뭘 좋아해서 먹는지, 어디 가는 걸 좋아하는지, 요즘 어떤 취미가 있는지는 아세요?”태휘는 대답하지 않았다. 몰랐으니까.다만 그런 건 사귀면서 천천히 알아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그럼 어떻게 해야 내가 지금의 단아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하지?” 이해가 완전히 된 건 아니었지만, 고백을 거절당한 이상 강솔의 이야기를 들어 보는 수밖에 없었다.강솔이 답했다. “서두르지 마세요. 부담 주지 않는 선에서 조금씩 단아 씨 생활에 가까이 가시면 돼요.”태휘가 물었다. “단아가 찍는 작품에 투자하는 건?”강솔은 괜찮다고 말하려 했다.그러다 단아와 도현의 관계가 떠올랐다.도현이 단아와 태휘 사이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분명 보이지 않는 수를 쓸 테고, 그렇게 되면 단아가 더 불리해질 수 있었다.“안 돼?” 태휘가 물었다.“안 되는 건 아닌데요.” 강솔은 잠시 생각한 끝에 조언했다. “단아 씨를 제외한 누구도, 단아 씨 때문에 투자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게 하셔야 해요.”태휘가 담담하게 물었다. “하도현 같은 사람도?”강솔은 대답하지 않고 태휘를 바라봤다.머리가 지나치게 빠른 사람

  • 난 결코 무너지지 않아   제904화

    장 이사의 몸이 굳었다.‘내가 왜 성을 말해 버렸지?’“회사를 생각하는 마음 자체는 좋은 일이죠.” 강솔은 장 이사의 뒷모습을 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전에 밖에서 하셨던 말씀처럼, 사람이 어느 자리까지 올라가든 처음 마음을 잊으면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장 이사가 돌아섰다. 강솔을 보는 눈에 믿기 힘들다는 기색이 선명했다.‘이 말이 무슨 뜻이지?’‘설마 내가 외부에 별도 업체를 차려 놓고 JX그룹 발주 사이에서 수수료를 챙긴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다는 건가?’‘아니면 어쩌다 얻어걸린 말인가?’강솔이 물었다. “그렇지 않나요, 장 이사님?”장 이사는 끝내 강솔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집무실을 나갔다.문이 닫히자 집무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원래 말수가 적은 두 사람이 한 공간에 있으니 가벼운 잡담 한마디조차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침묵을 깨려는 듯, 강솔이 다시 사업계획서를 집어 들자 태휘가 탐색하듯 바라봤다. “저 사람이 밖에 따로 회사를 차린 건 언제 알았어?”“한 달 전쯤 알았어요.” 강솔은 답하고 나서 문득 눈을 들었다. “알고 계셨어요?”“알고 있었어.”강솔은 더 물으려다가 멈췄다. 생각했던 것만큼 태휘와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지금까지 안 건드린 건 네가 지분을 받은 뒤에 처리하려고 한 거야.” 태휘는 여전히 서늘한 태도로 담담하게 말했다. “네가 대표 자리를 맡으면 반발하는 사람이 분명 생길 거야. 장 이사는 그때 본보기로 정리하기 딱 좋은 사람이었고.”강솔의 손이 잠시 멈췄다.솔직히 말하면, 태휘가 그런 부분까지 미리 생각해 뒀을 줄은 몰랐다.“계속 대표 자리에 있을 생각은 없으셨어요?” 강솔이 물었다.“널 처음 만났을 땐 있었어.” 태휘는 돌려 말하지 않았다. 차가운 목소리에서는 감정을 거의 읽을 수 없었다. “근데 지난 반년 동안 네 가능성을 봤어. 내가 없어도 넌 JX그룹을 충분히 잘 이끌 수 있어.”강솔이 되물었다. “그때 저한테 지분을 포기하라고 하신 건, 큰외삼촌이랑 작은외삼촌

  • 난 결코 무너지지 않아   제903화

    태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조금 지나면 알게 될 거야. 뭘 확인하러 왔지?”“저분은 아직 저희 회사 사람은 아니신 것 같습니다만.” 남자는 질문을 피해 가며 강솔을 똑바로 바라봤다. 태휘의 반응은 신경도 쓰지 않는 듯 말을 이어 갔다.태휘가 눈을 살짝 들었다.남자는 곧바로 덧붙였다. “다른 뜻은 없습니다. 다만 사규상 본사 임원급이 아닌 사람은 회사의 핵심 사업 자료를 열람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를 어기면 해고는 물론 형사상 책임까지 물을 수 있고요.”“장 이사.” 태휘가 낮게 불렀다. 목소리에는 서늘한 경고가 깔려 있었다.장 이사는 잠시 입술을 달싹이다가 말했다. “원칙을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저분이 들고 계신 건 회사 핵심 사업 자료 아닙니까? 외부인이 보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혹시라도 내용이 유출되면 그 책임을 누구에게...”“이거 말씀하시는 건가요?” 강솔이 들고 있던 사업계획서를 덮었다.장 이사가 답했다. “그렇습니다.”강솔은 생각하는 척하다가 물었다. “방금 본사 임원급이 아니면 이 자료를 열람할 수 없다고 하셨죠?”“맞습니다.” 장 이사는 태휘를 한번 바라본 뒤에도 물러서지 않았다.“사업 하나가 기획돼서 실제로 진행되기까지 수많은 사람 손을 거칩니다.” 강솔이 되물었다. “그 사람들 전부 본사 임원인가요?”“물론 아닙니다.” 장 이사는 또박또박 답했다. 강솔을 바라보는 눈에는 은근한 무시가 묻어 있었다. “다만 전체 사업계획서를 볼 수 있는 건 본사 임원뿐입니다. 계열사나 실무진은 상부 지시에 따라 필요한 범위만 담당합니다.”강솔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태휘가 별말 하지 않자 장 이사는 조금 더 자신감을 얻었다. “그렇습니다.”강솔은 더 대꾸하지 않았다.대신 손에 든 사업계획서를 다시 펼쳐 읽기 시작했다.장 이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 정도로 대놓고 말했는데도 강솔은 계속 자료를 보고 있었다. ‘회장님은 분명 강솔이 자존심이 강하고 쉽게 고개를 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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