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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2화

Author: 주 한잔
이민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갑작스러운 모정에에 그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 세상에서… 너는 오직 너 자신만 믿어야 한다. 알겠느냐.”

평서왕비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다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그녀가 지금 죽음을 택하는 이유가 헛되이 되지 않으려면,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네 부친이라 할지라도.”

그녀는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이 말은… 절대 네 부친께 전하면 안 된다.”

“어머니,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이민수는 불쾌함을 드러냈다.

평생 어머니만을 사랑했던 아버지, 비록 몇몇 첩을 들이긴 했어도 모두 형식적일 뿐 정작 사랑은 어머니에게만 쏟아부었다.

어머니가 스스로를 가두듯이 재원에 들어앉아 조용히 지냈기에, 아버지 또한 외로움을 견딘 것 아니던가.

그런 아버지를 어머니가 이토록 비난하는 말이라니. 이민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

평서왕비는 아들의 눈빛을 보며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이민수는 알지 못했다.

세상이 보기엔 평서왕이 그녀를 극진히 아끼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모든 것이 강요와 구속이었다.

그녀는 한낱 벗어날 수 없는 족쇄였을 뿐이다.

“아버지께서는 어머니를 그렇게 아끼시는데… 왜 이런 말을 하시는 겁니까?”

이민수는 억울한 듯 소리쳤다.

평서왕비는 입술을 달싹였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설령 전부 털어놓아도… 그는 믿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몸속에서 이상 징후가 일었다.

숨쉬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복부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퍼져왔다.

이제야 실감했다.

그 독약이 서서히 몸을 좀먹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눈물을 훔치며, 평서왕비는 아들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좋다, 더는… 아버지 이야기는 하지 않으마.”

“그저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심지어 아버지를 의심해야 할 때가 오더라도. 알겠니?”

“어머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따지고 들던 이민수는 어머니의 창백한 얼굴과 식은땀을 보곤 놀라 물었다.

“나는… 괜찮다.”

평서왕비는 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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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462화

    그에게 불을 꺼줄 수 있는 사람은 그녀밖에 없다는 말인가? 소우연은 새의 날갯짓처럼 떨리는 속눈썹을 살짝 떨며, 문득 상연과 상란이 무릎 꿇고 간청하던 장면을 떠올렸다.이육진은 이렇게 다정하고, 그녀를 존중하고 아껴주는데…어떻게 다른 여자와 그를 나눌 수 있겠는가.아마 언젠가 황제의 체면을 더 이상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면, 그때쯤엔 두 사람을 놓아줄 수도 있겠지.그녀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생각했다. 설령 그녀가 허락하더라도, 이육진은 어차피 그들을 원하지 않을 테니까.그녀는 잘못한 게 없었다.그녀는 그의 옷매무새를 단정히 정리해 주었다.그는 여전히 기운이 넘쳤고, 그 남성적인 기세는 마치 찬란한 태양처럼 눈부셨다.곧 이육진이 간석을 부르며 큰 소리로 외쳤다.간석은 밀봉된 나무 상자를 들고 들어왔고, 그 안에는 오늘 처리해야 할 상주가 들어 있었다.소우연은 그의 곁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그는 그녀가 그런 문서를 함께 본다고 해서 꺼려 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그에게 있어 일하는 와중에 옆에 붉은 소매의 향기까지 있다면, 그건 아마 많은 남자들의 이상일 것이다.더구나 그 붉은 소매가 바로 그가 가장 아끼는 부인이라면?이육진은 점점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더 이상 그녀를 바라보지도 않았다.소우연은 조용히 먹을 갈아준 뒤,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본채 밖으로 나서자, 정연이 급히 다가왔다.손에는 국화차를 담은 찻잔이 들려 있었다.소우연은 조금 전까지 숨을 몰아쉬었기에 목이 말랐고, 찻잔을 받아 몇 모금 마셨다.“마마, 간석이 정자에 있습니다.” 정연은 정자 쪽을 가리켰다.소우연이 고개를 돌리자, 간석이 먼지떨이를 안고 정자 쪽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그녀의 시선을 느낀 간석은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렸다.“좋습니다. 이 차는 전하께 드리고, 문가에서 대기하십시오. 혹 전하께서 부르시면 곧바로 응하셔야 하니라.”“예, 마마. 걱정 마십시오.”소우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정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461화

    “나중에 태의원에 가서 너한테 좋은 책 몇 권 구해올게.”“그럼 정말 좋겠어요.”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며 손을 꼭 잡고 온돌로 올라갔다. 소우연은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지만 이육진이 얼른 부축해 주었다.원래는 부부 사이의 평범한 대화였지만, 몸을 맞대고 나누는 이 다정한 분위기 속에 이육진의 마음속에 어느새 불이 붙었다.소우연은 그를 곁눈질하며 말했다.“안 됩니다.”이육진이 눈을 가늘게 뜨며, 고요히 물었다.“왜 안 되는 것이냐?”“낮…”“설마 대낮에 그런 짓은 안 된다고 말하려는 것이냐?” 정연이 국화차를 우리러 나간 틈을 타, 이육진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그의 크고 거친 손이 그녀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자, 소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괜찮느냐?”그녀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말이 없다는 건 곧 동의라는 뜻.이육진은 성큼성큼 가서 문을 닫았다.멀리서 정연이 쟁반을 들고 돌아오다 그 모습을 보고 잠시 멍하니 서있다가, 곧 상황을 눈치채고 물러섰다. 아마 주인들이 뭔가 은밀한 일을 논의 중이겠거니 생각한 것이다.정연은 마침 옆에 있던 수현을 보곤 전에 태자빈 마마가 부탁했던 일을 떠올려 간석에게 전했다.“전하와 말씀이 끝나시면, 태자빈 마마께서 간석님을 찾으신대요.”“네, 무슨 일이시래요?”정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직접 여쭤보세요.”간석은 닫힌 본채 문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아이고야, 주상께서 대낮에 문까지 닫으셨으니… 또 뭔 짓을 하시는지 안 봐도 뻔하다.본채 안, 소우연은 반쯤 밀고 반쯤 끌려가듯 하면서도 호기심이 생겼다.“어젯밤 그렇게 지쳐 있었는데, 괜찮습니까?”“괜찮다.”남자의 체력은 정말 대단했다.그렇게 오랫동안 밤새 고도 아침엔 상조에 나가고, 이 시간에도 다시…그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옷을 벗기려 하자, 소우연은 급히 그의 손을 붙잡았다.“안 돼.”그녀는 그 물기 어린 눈망울로 그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460화

    ”이 의원, 지금 더우세요?”소우연이 이 의원 이마에 맺힌 땀을 보며 물었다.“네? 아뇨, 덥진 않습니다.”물론 오늘 용강한을 진찰하게 될 거란 생각에 옷을 두껍게 온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건 더위가 아닌, 두려움에 나온 식은땀이었다. “정말 안 더운 신가요?”소우연은 의아한 느낌이 들었다. 방은 분명 냉기가 풀풀 풍겨 나오고 있었지만, 이 의원에 이마에 맺혀 있는 것은 분명 땀이었다. 게다가 자꾸만 그녀의 시선을 피하는 수상쩍은 행동까지, 분명 자신에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소우연은 바로 따지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용강한과 몇 마디를 더 나눈 뒤, 이 의원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이 의원은 속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방을 나오기 전 용강한이 지었던 경어린 미소를 보았기 때문이다. ‘태자부에 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여긴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구나….’그는 속으로 한탄했다. “이 의원, 방금 침 놓을 때 오라버니한테 무언가 다른 점이 없었나요?”소우연이 추궁하듯 물었다. 하지만 이 의원은 이미 밖으로 나오기 전부터 수많은 변명거리를 준비해둔 상태였다. 그는 침착하게 질문에 대답했다.“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아무 일도 없었다고요? 그렇다면 좀 전엔 왜 식은땀을 흘린 거예요?”이 질문은 소우연이 아닌 정연이 한 것이었다. 그녀는 이미 숙련된 몸종, 자신의 주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진작에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자 이 의원이 다급히 답했다.“소인이 홀로 용 대인께 침을 놓은 것은 처음이기에… 너무 긴장하여….”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노련한 이 의원이 긴장으로 식은땀까지 흘렸다는 것은 다소 이해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딱 봐도 겁먹은 모습, 더 이상 캐물어도 나올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좋아요. 그럼 앞으로 용 오라버니는 이 의원에게 맡기겠습니다. 무슨 문제 생기면 곧바로 저에게 보고하는 거, 잊지 마시고요.”“예, 태자빈 마마. 소인 명심하겠습니다.”그렇게 대화는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459화

    용강한이 은침들을 모두 뽑아 앞으로 내밀자, 이 의원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아시겠지만, 저는 흠천감의 감정입니다. 세상 그 어떤 비밀도 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못 알아낼 것이 없지요. 설령 그것이 이 나라를 뒤흔들 수 있는 그런 비밀이라고 할지라도, 대가만 치른다면 알아낼 수 있습니다.”다시 말해, 그는 원한다면 언제든지 이 천하를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을 수 있는 존재였다. 이 의원 또한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상운국에서 가장 신비롭고 황제조차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인물, 모두가 두려워하는 동시에 존경하는 존재, 그것이 바로 용강한이었다. 하지만 그는 왜 갑자기 용강한이 자신에게 이런 말을 꺼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왠지 모를 긴장감을 애써 누르며 조용히 다음말을 기다릴 뿐이었다. 용강한이 옷매무새를 정돈하며 한결 여유로운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에 놓여 있는 의자로 옮기며 무심히 말했다. “감정으로서 천기를 엿보고, 국운을 바로잡는 동시에 존귀함까지 누리는 삶,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입니다. 제 병은 누구보다 제가 잘 압니다. 이 모든 것은 천기를 엿본 것에 대한 대가이니, 그 누구도 고칠 수 없습니다.”이 의원은 입을 떡하니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동시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생각들이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용강한이 말을 이었다. “앞으로 저에게 오시게 되면 그냥 잠시 앉아만 있다가 가십시오. 그걸로 치료를 대신하도록 합시다.”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덧붙였다. “태자 전하와 태자빈 마마, 두 분 모두 저에게 각별한 정을 품고 있다는 건 알고 계실 겁니다. 두 분은 저를 고려해서 치료를 절대로 포기할 마음이 없으십니다. 그 마음을 알고 있기에, 저도 차마 치료를 거절하지 못하고 있습니다.”이 의원은 무거운 분위기에 식은땀이 났다.“예, 예…! 용 대인께서 나라와 백성을 위한 한 희생, 백성으로서 저도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저를 치켜세울 필욘 없습니다. 오늘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458화

    ”이 의원님, 태자빈 마마께서 잠시 뵙고 싶다고 하십니다.”정연이 이 의원의 방 문을 살짝 두드리며 말했다. 이 의원은 그 목소리에 잠시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난 뒤,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곧 나가겠습니다.”잠시 후, 이 의원은 방에서 나와 정연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뜰에서 기다리고 있을 두 사람을 향해 걸어갔다. “태자빈 마마를 뵙습니다.”그는 먼저 소우연에게 인사를 한 뒤, 다시 용강한에게도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용 대인께도 인사드립니다.”“이 의원님, 예는 생략하셔도 됩니다.”간단한 인사 후, 소우연은 곧장 이 의원과 용강한의 병세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자세히 어느 부위에 침을 놓아야 하는지도 알려주었다. 이 의원은 남자이기에 소우연은 그가 대퇴부, 발바닥 같은 민감한 부위에도 침을 놓을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그… 저는 그냥 예전 그대로 놓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하지만 용강한은 소름이 끼쳤다. 무엇보다 그는 이러한 침 치료가 어떠한 효능도 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민감한 부위에 침을 놓으라고 하다니, 아무리 같은 남자라도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효과를 보려면 이러한 치료보다는 소우연이 옆에 있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었다. 그의 병세는 오로지 그녀와의 접촉에만 호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우연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침이 그나마 좀 효과를 보고 있지 않습니까?”잠시 생각하던 그녀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아니면, 그 외에 떠오르는 방법이 있나요? 저는 지금 이것이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용강한은 말문이 막혔고,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제안을 수락했다. 소우연은 이 의원에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발바닥, 허벅지, 허리 뒤쪽 등, 다양한 부위에 침으로 자극하라고 말이다. 용강한은 옆에서 듣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느껴졌다. 사정을 알고 있던 경문은 주인을 더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안 그래도 쇠약해진 몸, 소우연이 옆에 있어 겨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457화

    그렇게 또 한참이 지나갔다. 임곽수가 감고 있던 눈을 뜨며 잠시 용강한을 바라보다가 소우연을 향해 공손히 말했다.“태자빈 마마,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용 감정님의 맥이 일반인에 비해 매우 약해진 상태입니다.”사실 그는 용간한이 얼마 살지 못할 거라 판단하고 있었지만, 차마 이 말까진 하지 못했다. 소우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정연을 향해 말했다.“환자 한 명 데려와. 임 의원과 함께 진맥해봐야겠어.”그녀는 의술을 독학으로 익히긴 했지만, 처음으로 자신의 진단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잠시 뒤, 배를 움켜쥔 잿빛 얼굴의 남자가 들어왔다.“임곽수 의원님, 태자빈 마마, 제발 저 좀 살려주십시오. 배가 거의 삼일에 한번 죽을 듯이 아픕니다.”소우연이 말했다.“이쪽으로 앉거라.”그러자 남자가 순순히 자리에 앉으며 손목을 내밀었다. 소우연은 우선 표면적으로 나타난 증상들을 진단한 뒤, 맥을 짚으며 자신의 가설을 세웠다. 그런 다음 임곽수에게도 마찬가지로 환자를 보게 했다. 임곽수는 어렵지 않게 진맥한 뒤, 환자가 상한 음식을 먹고 위장에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했다. 소우연은 그런 그에게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달라고 한 뒤, 자신의 이론과 비교해 보았다. 그리고 내리게 된 결론, 두 사람 모두 같은 진단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소우연은 더 의문이 생겼다. ‘왜 오라버니를 진단할 때만 다른 결론이 날까?’“임 의원, 그대도 이만 다시 진료에 복귀하도록 하거라.”소우연이 말했다. 임곽수는 공손히 두 사람에게 인사한 뒤, 환자에게 말했다. “앞으로 상한 음식은 절대 섭취하지 마세요. 이러다가 정말 크게 일을 치르게 될 겁니다.”그러자 환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집에 먹을 것이 없어, 상한 음식도 차마 버리지 못해 섭취한 대가였다. 게다가 집에 어른 자식도 있는 마당, 쌀 한 톨이 아까운 마당에 자신이라도 조금 아껴보려던 거였는데, 더 큰일을 치를 뻔했다. “예, 예! 이젠 다시는 먹지 않겠습니다.”그는 자신의 가난을 한탄하며,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456화

    “용 오라버니?”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던 용강한은 자신을 부르는 소우연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웃으며 답했다.“정말, 괜찮습니다. 앞으로 제가 누군가를 마음에 둘 일은 없을 겁니다.”마치 확답하는 듯한 말투, 소우연은 의아했다.“그럼 여인은 그렇다고 해도, 다른 거 좋아하는 건 없나요?”용강한은 한참 생각하다가, 떠오르는 것이 없어 대충 대답했다. “그렇다면… 돈? 그 정도 될 것 같군요.”그의 대답에 소우연이 입술을 달싹였다. “아, 음… 굉장히 특이하시군요. 그래도 돈을 목숨같이 여겨도 겉으론 절대 아닌 척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솔직한 건 좋은 것 같아요.”그러다 잠시 생각한 후,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용강한에게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 괜히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들려서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저도 예전엔 돈이 최고였어요. 하지만 한번 죽고 나니까,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좋더라고요.”그리고 혼인에 관해서는 다시 이육진과 얘기를 나눠봐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용강한이 썩 이 문제를 달가워하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간, 좁아진 공간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숨결에 용강한의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였다. 그녀의 머리칼을 어루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애써 주먹을 꽉 그러쥐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네, 저도 살아 있는 건 참 좋다고 생각해요.”살아 있어서 그는 다시 이렇게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살아 있었기에 다시 그녀가 행복한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이건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장난으로 다가갔는데 분위기가 진지해지자, 소우연은 어색한 기분이 들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뒤로 물러서려 했다. 하지만 이때, 갑자기 용강한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잠깐만, 움직이지 마세요.”“네?”갑작스러운 상황에 잠시 주춤한 사이, 용강한과의 거리가 한 뺨 정도 밖에 안 남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왜… 왜 그러세요?”용강한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합환화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455화

    “좀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아요.”소우연이 얼버무리며 말했다.“경문의 말로는 요 며칠 계속 더울 거라던데, 그래도 밤은 쌀쌀할 수 있으니 이불 잘 챙겨 덮으셔야 합니다.”“네, 오라버니. 그럴게요.”소우연을 봐서 그런가, 용강한은 전날의 우울감이 조금 가신듯한 기분이 들었다. 침을 맞아도, 좋은 약을 먹어도 전혀 호전이 되지 않았던 한기가 그녀와 함께 있을 때만 줄어들었다. 그랬기에 그에겐 소우연과 함께 하는 시간은 늘 특별했다.식사 후, 소우연과 용강한은 전날 잡은 일정대로 만안당으로 향했다. 이 의원은 멀어져 가는 자신의 고용주와 환자를 보며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며, 멍한 얼굴로 마당 한가득 널려져 있는 하인들만 바라보았다.가는 길, 마차 안엔 소우연과 용강한 그리고 정연이 함께 타고 있었다. 정연이 점점 더 몸을 부르르 떨며 추위에 시달리는 모습을 본 소우연이 말을 건넸다. “다른 가마를 타고 오너라.” “소인은….”“가, 얼른. 괜히 감기 들지 말고.”“태자빈 마마께서는 정말 안 추우세요?”정연이 물었다. 그러자 소우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응, 괜찮아.”그녀는 정말 춥지 않았다. 오히려 쨍쨍한 햇빛에 조금 더운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용강한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가 시원하게 느껴졌다. 정연은 잠시 망설였으나, 차가운 바람에 사르르 몸이 떨리자 더는 견디기 어려웠다. 결국 소우연의 분부에 따라 마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용강한은 태자와 태자빈에게 깊게 신임을 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녀가 지를 좀 비운다고 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 한편 밖, 마차를 호위하며 따라오고 있던 경문과 우칠이 정연이 마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포착했다.경문은 별 생각없이 그저 흘러나오는 한기에 몸을 살짝 떨었지만, 우칠은 뭔가 거슬리는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다시 마차 안, 정연이 자리를 뜨자 소우연과 용강한은 자연스레 서로를 마주보게 되었다. 용강한은 불편한 침묵을 깨고자 외투 자락을 무의식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454화

    “부군, 이제 그만 주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 시진 후면 조회에 나가셔야 하는데.”소우연이 이육진 품에서 살짝 몸을 떼며 한숨을 내쉬었다.“쉿….”하지만 그는 충분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또다시 그의 움직임에 속수무책 함락당했다.그렇게 두 사람은 정신없이 서로에게 빠져들었다. 이육진은 마치 정사에 목숨 건 사람처럼 멈출 줄 몰랐고, 소우연은 격한 움직임에 허리가 부러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피곤을 느끼기도 전에 매번 그가 다시 능수능란하게 불을 붙였고, 결국 그녀 또한 시간과 공간을 잊고 그에게 빠져들었다. 결국 두 사람은 거의 날이 밝을 때쯤 행위를 멈추었다. “이따가 조회에 늦지 않도록 깨워라.”이육진은 간신히 내려오는 눈꺼풀을 견디며 잠들기 전 간석에게 말했다.“걱정 마십시오, 전하. 소인이 잘 기억하고 있겠습니다.”간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한숨을 내쉬었다.조회 시간까지 불과 반 시진 남았건만, 태자가 이토록 정열에 사로잡힐 줄은 그 역시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휴, 남자란 원래 색욕에 미치면 정신을 못 차리나?’간석은 왠지 모를 착잡함을 느꼈다. 그는 평생 이러한 쾌락은 느낄 기회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더 환상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영웅들이 미녀 앞에서 무너지는 것을 보며, 정사라는 것이 얼마나 황홀한지 모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침 해가 방 안을 비추자 소우연은 잠에서 깨어났다. 목소리를 내려다 목이 심하게 쉰 것을 깨닫고, 대신 방울을 흔들었다. 은은한 딸랑소리가 방 안을 채우기도 전에, 정연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태자빈 마마, 기침하셨습니까? 소인이 얼른 따뜻한 물을 대령하라 하겠나이다.”“응.”소우연이 나지막이 대답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세안 준비를 할 동안, 소우연은 침상에서 일어나 익숙하게 정연의 시중을 받았다. 정연이 옷을 주며 시중들던 중, 소우연의 살갗에 어제의 정열을 증명하듯 피어난 붉은 자국들을 발견했다. 곧 어젯밤 일이 떠오르자, 그녀는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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