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내 방에서 나가!”
스칼렛이 침대 위에 올라선 채 소리쳤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문을 정확히 가리켰다.
“나가, 토비아스!”
순간 토비아스의 표정이 바뀌었다.
순순히 달래던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노골적인 짜증이 얼굴에 드러났다.
“스칼렛, 제발 좀 과민반응하지 마. 네가 화난 건 알아. 하지만 네가 부리는 성질까지 내가 계속 받아줘야 하는 건 아니잖아. 나도 참을 만큼 참았어.”
스칼렛의 머릿속에 결혼 전 두 사람이 함께 그렸던 미래가 스쳐 지나갔다.
모든 것이 계획되어 있었다.
아이를 둘 낳고, 일요일은 가족과 함께 보내며, 매년 두 번씩 해외여행을 가기로 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모든 약속은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텅 빈 말뿐이었다.
“네 인내심 따위 관심 없어! 귀먹었어? 나가!”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크고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나갈 거야, 안 나갈 거야?!”
토비아스는 쓰디쓴 한숨을 내쉬며 무거운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스칼렛, 우리 결혼했잖아. 네가 뭘 봤든, 뭘 들었든, 이미 지난 일이야. 다시는 안 그럴게. 나도 변하고 있어. 이제 우리에게 집중할 거야. 우리 가족에게.”
바람피우는 인간은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와도 같아.
스칼렛은 차갑게 생각했다.
한 번 거짓말을 한 사람은 언제까지나 거짓말을 한다. 아무리 많은 약속을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매트리스 위에 놓인 베개를 낚아챘다.
이 남자와 한 침대에서 자는 생각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모든 것을 망가뜨렸다.
그리고 스칼렛은 절대로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안 나가겠다면 내가 나갈게. 손님방에서 잘 거야.”
토비아스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분노로 턱이 딱딱하게 굳었다.
예전 같았으면 간단한 사과 한마디만으로도 스칼렛의 용서를 받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스칼렛은 마침내 교훈을 얻었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 어디서든 자.”
스칼렛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에게 등을 돌렸다.
책상으로 다가가 휴대폰과 노트북을 챙긴 그녀는 그대로 빠르게 방을 빠져나갔다.
등 뒤에서 토비아스가 침대 위로 몸을 내던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막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그의 목소리가 조용한 방 안을 가르고 들려왔다.
“내일 가족 연회 잊지 마. 모두 네가 참석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넌 이제 앨다마 가문의 사람이야. 내가 직접 끌고 가야 하는 상황은 만들지 마, 스칼렛. 날 자극하지 말라고.”
스칼렛은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경멸만으로도 충분했다.
토비아스가 시켜서 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의 가장 좋아하는 수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는 것이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자신의 땀과 피를 쏟아부어 일궈 놓은 회사.
토비아스는 바로 그 회사를 팔아버리겠다고 협박할 것이었다.
늘 같은 수법이었다.
그는 스칼렛에게 어머니의 유산을 인질로 잡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이 그녀에게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약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다음 날, 스칼렛은 토비아스가 원하는 대로 차려입고 그와 함께 가족 연회에 참석했다.
앨다마 가문은 전설적인 가문이었다.
이 나라의 재계 최정상에 군림하는 명문가였다.
“웃어.”
웅장한 대문이 시야에 들어오자 토비아스가 날카롭게 말했다.
“내 가족들 앞에서 네가 뭐라도 된 것처럼 굴지 마.”
“당신이야말로 그 사람들 앞에서는 자기 얼굴에 웃음 하나 제대로 못 띄우잖아.”
스칼렛이 눈을 굴리며 받아쳤다.
토비아스가 그녀에게 독기 어린 시선을 쏘아 보냈다.
하지만 그가 다시 쏘아붙이기도 전에 차가 철문 앞에서 멈춰 섰다.
경비원 한 명이 앞으로 다가와 그들의 길을 막았다.
“이 문은 가족 전용입니다.”
경비원은 토비아스를 알아보고도 조금의 존중조차 담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외부인은 모두 옆문을 이용하셔야 합니다.”
스칼렛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토비아스가 누군가에게 이방인 취급을 받은 것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앨다마라는 성을 달고 있음에도 이 가문에서 토비아스는 언제나 그림자 같은 존재로 취급받았다.
토비아스의 어머니 막달렌은 돈 안톤 앨다마의 사생아에 불과했다.
수년 전, 막달렌은 돈 안톤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남자와 결혼했다.
그것에 대한 벌로 돈 안톤은 그녀와의 인연을 끊어버렸다.
그러나 토비아스가 성장하면서 막달렌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아들에게 마련해 줄 형편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그녀는 돈 안톤에게 다시 자신들을 받아 달라고 애원했다.
가문의 수장은 결국 마음을 누그러뜨렸지만, 그렇다고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앨다마 저택에 발을 들일 때마다 그들을 맞이하는 것은 비꼬는 듯한 조롱과 냉소뿐이었다.
그럼에도 토비아스는 순진하게도 언젠가는 자신의 가치를 그들에게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언젠가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심지어 지금 토비아스가 운영하고 있는 회사조차 스칼렛의 돈으로 세워진 것이었다.
그는 스칼렛의 신탁 기금에서 500만 페소를 가져갔다.
그 돈은 그녀의 어머니가 남긴 유산을 기반으로 마련된 자금이었다.
그것으로 자신의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스칼렛의 속 깊은 곳에 후회가 차올랐다.
사랑에 눈이 멀어 그녀는 그에게 모든 것을 내주었다.
하지만 이제야 깨달았다.
아무리 많은 것을 내어주어도, 그녀는 그에게 결코 충분한 사람이 될 수 없었다.
스칼렛은 옆문 쪽을 바라보았다.
길게 늘어선 차량들이 도로를 따라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오늘 밤 참석하는 사람이 앨다마 가족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설마 내가 내 할아버지 집에 들어가려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처럼 줄을 서야 한다는 거야?”
토비아스가 참지 못하고 경비원에게 소리쳤다.
경비원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저는 마담 엘레나의 지시를 따르고 있을 뿐입니다. 마담께서는 정식 가족 구성원만 이 문을 이용할 수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도련님의 어머님도 옆문을 이용하셨습니다.”
토비아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주먹을 휘두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느라 손이 떨렸다.
그가 굴욕감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지켜보던 스칼렛의 입가에 작지만 얄궂은 만족감이 떠올랐다.
“그럼 저쪽 문에서 줄 서는 게 좋겠네.”
그녀가 조용한 조롱을 담아 말했다.
“빨리 끝내자.”
바로 그때, 매끈한 검은 세단 여러 대가 차례로 진입로를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경비원의 자세가 순식간에 꼿꼿해졌다.
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번졌고, 다급하게 토비아스에게 차를 옮기라는 손짓을 했다.
“도련님, 제발 당장 차를 옮겨 주십시오! 다리우스 도련님의 차량 행렬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다리우스 앨다마.
그는 돈 안톤의 유일한 아들이자 막내아들이었다.
토비아스의 삼촌이면서, 거대한 앨다마 제국의 유일한 후계자였다.
스칼렛은 그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는 극도로 사람을 멀리하는 인물로 악명이 높았고, 무자비한 성격에 관한 소문은 끊이지 않았다.
경비원이 거의 떨다시피 하는 모습을 보자, 스칼렛은 자신이 들었던 소문들이 모두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 좀 빼, 토비아스. 정말 가족들에게 네가 공격받을 이유를 하나 더 만들어 주고 싶어?”
토비아스가 바로 기어를 바꾸지 않자 스칼렛이 그를 노려보며 재촉했다.
“당신이 직접 말했잖아. 다리우스 삼촌은 건드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고.”
그 말에 토비아스가 멍한 상태에서 정신을 차렸다.
그는 다리우스의 차량 행렬을 피해 차를 옆으로 붙였다.
마침 다리우스의 행렬을 이끄는 선두 세단이 대문 앞에 멈춰 섰다.
짙게 선팅된 창문이 천천히 내려갔다.
호기심이 생긴 스칼렛은 수수께끼 같은 후계자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기 위해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
하지만 그녀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얼굴이 아니었다.
창틀에 아무렇지도 않게 걸쳐진 그의 손뿐이었다.
잠시 후, 차 문이 열렸다.
다리우스가 천천히 차에서 내렸다.
잘 맞춘 정장과 티 하나 없이 깨끗한 가죽 구두가 오후의 햇빛을 받아 빛났다.
그의 온몸에서는 권위가 파도처럼 뿜어져 나왔다.
누구도 감히 거스를 수 없는 절대적인 위압감이었다.
본능적으로 주변의 모든 사람이 숨을 죽이게 될 정도로.
스칼렛의 시선이 그의 팔로 내려갔다.
그의 셔츠 소매가 살짝 걷혀 있었고, 그 아래로 탄탄하고 길쭉한 팔뚝이 드러나 있었다.
그 순간, 스칼렛은 얼어붙었다.
그의 피부에 선명하고 정교한 장미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숨이 턱 막혔다.
그녀는 그 문신을 알고 있었다.
그날 밤, 어두컴컴한 호텔 방에서 보았던 문신이었다.
엉뚱한 문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전혀 모르는 남자와 충동적인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던 바로 그날 밤.
설마…
설마 저 남자가 그 남자라고?
갑작스러운 떨림이 온몸을 휩쓸었다.
겁에 질린 그녀의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듯 거세게 뛰었다.
스칼렛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과 마주쳤다.
깊숙한 눈매.
어둡고 깊은 눈동자.
그리고 도무지 속을 읽을 수 없는 표정.
“너 왜 그래?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얼굴이 왜 그렇게 새파래?”
옆에 있던 토비아스가 중얼거리며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맙소사…
그녀가 하룻밤을 함께했던 남자는…
바로 자신의 남편의 삼촌이었다.
테라스에서 다리우스는 난간에 기대어 조용히 서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스칼렛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자신을 따라오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두 사람만 남아 방해받지 않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곳으로 일부러 그녀를 데려온 듯했다.“오늘따라 왜 갑자기 내 주변을 맴도는 거지, 스칼렛? 무슨 일이야?”그가 물었다.스칼렛은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그냥 당신이 여기 서 있는 걸 봐서요. 그래서 들러서 인사나 하려고 했어요.”하지만 스칼렛은 다리우스가 이런 시시한 핑계를 믿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이번이 네 마지막 기회야. 놓치지 마. 나한테 뭘 원하는 거지?”다리우스의 목소리는 날카로웠고, 턱이 살짝 굳어 있었다.스칼렛의 미소가 조금 흐려졌다. 그녀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재빨리 가방에서 서류철을 꺼내 다리우스에게 내밀었다.“이건 스카-바이어스 홀딩스의 프로젝트 제안서예요. 우리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셨으면 해요.”다리우스는 피식 비웃었다.결국 이것이 그녀가 진짜로 원했던 것이었다.스칼렛은 서류철을 조금 더 앞으로 내밀었지만, 다리우스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오뚝한 콧날과 뚜렷한 이목구비는 그를 차갑고 거리를 두는 사람처럼, 거의 냉혹하게까지 보이게 했다. 그의 눈에는 무심함과 권위가 서늘하게 뒤섞여 있었다.“스카-바이어스 홀딩스라… 작은 회사잖아.”그가 실소를 흘렸다.“내가 왜 토비아스와 손을 잡아야 하지? 난 자선사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야, 스칼렛.”“그럼 호의라고 생각해주세요. 당신이 조금만 도와주시면 방금 당신이 말한 그 작은 회사를 살릴 수 있어요. 게다가 스카-바이어스 홀딩스는 당신에게도 든든한 동맹이 될 수 있고요.”스칼렛이 간절하게 호소했다.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가 더 커지기 전에 토비아스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절박했다.다리우스가 다시 웃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목소리에 조롱이 묻어났다. 그가 그녀를 향해 돌아서자, 시선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천천히 훑어 내
“그녀를 찾았어?” 던이 초조할 정도로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깜짝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거의 어린아이 같은 말투였다. “누구야?”그렉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의 시선이 소파 가장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는 스칼렛에게 향했다.스칼렛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이 방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싶기라도 한 듯, 숨조차 거의 쉬지 않았다.그렉은 그녀에게 다가가 당분간 자리를 피하는 게 좋겠다고 조용히 귀띔하려 했다. 하지만 다리우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고, 이의를 제기할 여지조차 주지 않았다.“그녀들을 데려와, 그렉.”스칼렛은 입술을 깨물며 필사적으로 자리를 떠날 구실을 생각했다. 자신이 이런 상황을 목격하고 있어서는 안 됐다. 비밀을 숨기고 있는 듯한 여자를 찾는 일에 신경 쓸 게 아니라, 사업 제안에 집중했어야 했다.하지만 그녀가 어떻게 말을 꺼낼지 생각하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그렉이 여러 명의 여자를 데리고 개인실 안으로 들어왔다.방 안의 공기가 더욱 무거워진 듯했다. 향수 냄새가 여자들의 긴장감과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노골적인 노력과 뒤섞여 퍼졌다. 여자들은 한 명씩 안으로 들어왔다. 억지로 미소를 짓는 여자도 있었고, 혹시 자신이 다리우스가 찾고 있는 여자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은 채 주위를 살피는 여자도 있었다.스칼렛은 조용히 숨을 내쉬며 그제야 조금 긴장을 풀었다. 분명 이 일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알아차리기 전까지는.데바인 사로자.그녀의 이복자매였다.스칼렛의 심장이 갑자기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너무 세게 뛰어서 귓가에서도 그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마치 바닥이 갑자기 갈라져 자신을 통째로 집어삼킨 듯한 느낌이었다.데바인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왜 이 여자들과 함께 있는 거야?“이게 전부야?”던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짜증과 실망이 역력했다. 기대가 얼마나 크게 떨어졌는지 숨길 수 없었다. 그는 심지어 낮게 중얼거렸다.“아무도 토비아스 아내의 미모에는 근처에도
“회장님!”버니스 비보리는 두꺼운 서류 뭉치를 손에 꼭 움켜쥔 채 급하게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시선이 스칼렛에게 닿자, 눈동자에 득의양양한 빛이 스쳤다.토비아스는 폭발할 것 같은 분노를 억지로 눌러야 했다.“무슨 일이야?” 그가 조용히 물었다.“메리디안 인베스트먼트 파트너스에서 거절했습니다. 초청장과 함께 모든 프로젝트 자료를 돌려보냈습니다.”“쓸모없는 것!”토비아스가 화를 내며 쏘아붙였다.스카-바이어스 홀딩스는 이미 파산 직전이었다. 한편 C 얼라이언스는 담보로 잡힌 상태였다. 그들에게 남은 자원은 거의 없었고, 선택할 수 있는 방법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메리디안 인베스트먼트 파트너스만 나서 준다면 모든 상황이 한순간에 달라질 수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곳의 수장이 바로 토비아스의 친삼촌이라는 사실이었다. 토비아스는 삼촌의 인맥만으로도 자신들이 필요한 지원을 충분히 끌어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버니스는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회장님,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빨리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면 스카-바이어스 홀딩스는 끝입니다.”토비아스는 스칼렛에게 시선을 돌렸다. 회사의 가장 큰 거래들을 늘 맡아 처리해 온 사람은 바로 그녀였다. 침착하고, 날카롭고, 결코 물러서지 않는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 법을 알고 있었다.토비아스는 즉시 버니스의 손에서 서류를 낚아채 스칼렛 쪽으로 내던졌다.“이혼하고 싶잖아? 네가 메리디안 인베스트먼트 파트너스를 설득해서 승낙을 받아낸다면, 네가 원하는 걸 생각해 볼게.”스칼렛은 서류를 받아 들고 토비아스를 똑바로 바라봤다.“당신이 한 말을 정말 지킬 수 있는지 확실히 해. 설마 나중에 말을 바꾸지는 않겠지.”그녀는 남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서류들을 챙겨 토비아스의 사무실을 그대로 빠져나갔다.문이 닫히자마자 버니스가 재빨리 토비아스에게 다가가 그의 팔에 매달렸다.“어떻게 저 여자를 믿어요? 당신조차 다리우스 삼촌을 설득하지 못했는데, 정말 저 여자가 해낼 수 있
병원을 나온 스칼렛은 곧장 스카-바이어스 홀딩스로 차를 몰고 갔다.그녀는 자신과 토비아스가 함께 이 이름을 정했던 때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그저 꿈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녀의 뛰어난 사업 감각과 날카로운 전략 덕분에 회사는 빠르게 성장했고, 토비아스는 단숨에 상류층의 반열에 올라섰다.총지배인실에 가까워지자 복도 너머로 희미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가볍고 장난스러운 웃음소리에 이어, 여자의 부드럽고 능글맞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스칼렛은 노크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대로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그곳에는 버니스가 있었다. 그녀는 토비아스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더 이상 상상할 필요조차 없을 만큼 노골적인 행동을 하고 있었다.스칼렛을 본 순간 버니스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물러났다. 블라우스는 중간까지 풀려 있었고, 깊게 파인 네크라인 사이로 가슴이 드러나 있었다. 두 뺨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머리카락은 흐트러져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달콤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었다.“알다마 부인, 오셨네요.”버니스는 지나치게 상냥한 척하는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토비아스는 아내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가셨다.“여, 여보?”스칼렛은 문간에 그대로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눈앞의 광경을 하나하나 담아냈다. 강한 역겨움이 치밀어 오르며 속이 뒤틀렸다.“내가 뭔가 방해했어?”그녀가 메마른 목소리로 물었다.“두 사람 끝날 때까지 나중에 다시 올까?”“뭐? 아니야. 내 펜이 떨어졌을 뿐이야. 버니스가 그냥 주워주던 거야.”토비아스는 다급하게 앞으로 나서며 버니스를 향해 몸을 돌렸다.“나가. 아까 내가 시킨 일이나 마저 해.”버니스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스칼렛의 곁을 스쳐 지나갔고, 익숙한 향수 냄새를 남겼다. 지난 몇 주 동안 스칼렛이 토비아스에게서 맡아 왔던 바로 그 꽃향기였다.그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너무나 분명했다.토비아스는 아무렇지도
“여보!” 조금 떨어진 곳에서 토비아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다리우스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더니 스칼렛의 손목을 놓았다.“가도 돼.” 그가 말했다.스칼렛은 망설이지 않았다. 몸을 돌려 걸어갔지만, 정원의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너머로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걸음만 살짝 늦췄다.경호원 한 명이 다리우스에게 다가와 손수건을 건넸다.“회장님, 괜찮으십니까?”다리우스는 손수건을 받아 천천히 손가락을 닦았다.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읽히지 않았다.“아무것도 아니야. 잠깐 그녀가 익숙해 보인다고 생각했어. 그날 밤의 여자와 비슷했거든. 내가 착각한 모양이군.”“걱정하지 마십시오, 회장님. 시간만 조금 주십시오. 회장님 방에 몰래 들어온 사람이 누군지 제가 반드시 알아내겠습니다.”“알겠어.” 다리우스의 시선이 어둠 속으로 흘러갔다. 그의 얼굴 위로 아득한 표정이 내려앉았다. 그는 그날 밤의 기억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의 손길 아래에서 떨면서도 너무나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고, 눈물은 말없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맑고 또렷했으며,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를 끌어당겼다.앞쪽에서 스칼렛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토비아스를 발견했다. 그녀는 긴장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그의 시야에 들어섰다.“여기야.”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토비아스는 서둘러 그녀에게 다가와 양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어디 있었어?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잖아.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그녀는 본능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그와 거리를 두었다.“나 괜찮아.”토비아스는 무언가 더 말하려는 듯 그녀의 뒤쪽을 힐끗 바라봤지만, 스칼렛은 이미 출구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대화는 자연스럽게 끊겼다.**그날 밤, 스칼렛에게는 잠이 완전히 달아나 버렸다. 그녀는 침대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며 다리우스의 얼굴을 떠올렸다.호텔 방에서 만났던 그 낯선 남자가 토비아스의 삼촌일 거라고는
스칼렛은 마른침을 삼켰다.“응… 괜찮아. 그냥 오늘 날씨가 너무 더워서 그래. 나… 좀 불편해서.”안뜰에 있는 그 누구도 다리우스를 외면할 수 없었다.키가 크고 눈에 띄게 잘생긴 데다, 가만히 있어도 강렬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는 애써 시선을 끌려 하지 않아도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았다.매끈하게 떨어지는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그의 모습은 절제된 고급스러움 그 자체였다.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고, 날카로우며, 차가웠다.스칼렛이 그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한 순간, 그녀는 얼어붙었다.압도적이었다.지나치리만큼 침착하고 날카로운 얼굴이었다.잠시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고, 스칼렛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조수석 안쪽으로 몸을 움츠렸다.다행히 다리우스의 시선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그는 경비원에게 차 키를 던져주고는 그대로 대문을 지나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정말 다리우스가 그날 밤의 남자였을까?혹시 자신이 잘못 본 것은 아닐까?다른 남자들도 팔에 장미 문신을 하고 있을 수 있잖아.머릿속이 복잡하게 뒤엉켰다.확실히 알아내야 했다.토비아스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고 다른 손님들과 함께 줄을 섰다.주차장은 이미 차들로 가득 차 있었기에, 그는 뒤편 쓰레기통 근처에 차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안으로 들어갈까?”그가 손을 내밀며 물었다.스칼렛은 거리를 유지한 채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나 혼자 가도 돼.”토비아스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그냥 넘어갔다.여기서 괜히 소란을 피워 봐야 골치 아플 뿐이었다.“마음대로 해.”그가 중얼거렸다.**연회는 다리우스의 모습이 한 번도 보이지 않은 채 지루하게 이어졌다.스칼렛은 가슴을 짓누르던 무언가가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소문대로라면 그는 가족 행사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으니, 아마 자신의 개인 공간에 있을 터였다.만약 그가 식당에 함께 있었다면, 스칼렛은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도 못했을 것이다.그녀는 자신이 왜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