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아내를 버린 남편이 미쳤다

바보 아내를 버린 남편이 미쳤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30
By:  설월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goodnovel16goodnovel
Not enough ratings
13Chapters
28views
Read
Add to library

Share:  

Report
Overview
Catalog
SCAN CODE TO READ ON APP

한때 세상을 놀라게 할 천재였던 그녀는 사고로 기억과 판단력을 잃었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수치라 여겼고, 내연녀는 그녀의 침실과 이름까지 빼앗았다. 사람들 앞에서 조롱당해도 아내는 웃었다. 남편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으니까. 그러나 남편이 건넨 서류에 서명한 날, 그녀는 집과 재산을 잃고 정신병원에 갇혔다. 살려 달라는 마지막 부탁마저 외면당한 밤, 끊어졌던 기억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자신이 누구였는지, 누구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는지. 그리고 자신을 버린 남자가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했는지도. 이제 남편은 아내를 되찾기 위해 미쳐 가지만, 그녀는 더 이상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그가 무릎 꿇고 울부짖는 순간에도 그녀의 눈빛은 차가웠다. 한때 전부였던 사랑은 끔찍한 악몽이 되었으므로.

View More

Chapter 1

1화

서하린이 결혼기념일을 위해 준비한 선물 상자에는 남편이 좋아하던 흰색 리본 대신 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

오후에 깨진 유리그릇에 손바닥을 베인 데 이어, 밤에는 떨어지는 선물을 붙잡으려다 유리 조각을 밟고 식탁 모서리에 이마까지 부딪혔다.

그럼에도 하린은 자신의 상처보다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손목시계가 망가지지 않았는지 먼저 확인했고, 피 묻은 손으로 시계를 닦다가 가정부에게 몇 번이나 움직이지 말라는 부탁을 들어야 했다.

오늘만큼은 남편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사고 이후 처음으로 아무것도 망치지 않은 결혼기념일을 만들어 주고 싶었으며, 남편이 자신을 바라보며 예전처럼 웃는 모습을 한 번만 더 보고 싶었다.

그날 아침, 세명바이오 대표 강이준의 아내 서하린은 현관 앞에서 남편의 넥타이를 고쳐 매 주고 있었다.

손가락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아 매듭을 두 번이나 풀었다가 다시 묶어야 했지만, 하린은 끝내 반듯한 모양을 만들어 냈다. 남편의 셔츠 깃을 정리한 뒤 한 걸음 물러서서 확인하는 동안 그녀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이준 씨, 오늘 저녁에는 꼭 일찍 와요. 제가 좋아하는 거 많이 준비할게요."

이준은 휴대전화 화면을 확인하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좋아하는 걸 준비해야지. 네가 좋아하는 걸 왜 준비해?"

하린은 그제야 말을 잘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이준 씨가 좋아하는 거요. 제가 말을 잘못했어요."

남편은 대답 대신 시계를 확인했고, 하린은 그가 현관문을 열기 전에 조심스럽게 소매를 붙잡았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기억하죠?"

"알아."

"정말요?"

이준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서하린, 같은 말 두 번 하게 하지 마. 나 아침부터 피곤해."

하린은 손을 놓으며 작게 사과했다. 결혼기념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뻤지만, 그 기쁨을 더 표현했다가는 남편의 기분을 상하게 할 것 같아 입술을 다물었다.

"낮에는 전화하지 마. 중요한 회의가 있으니까."

"네. 안 할게요."

"여덟 시쯤 들어올 테니까 괜히 사람 귀찮게 하지 말고."

그 말이 끝나자 하린은 다시 웃었다.

"기다릴게요."

이준이 나간 뒤에도 하린은 한동안 현관에 서 있었다. 남편이 여덟 시에 돌아온다는 말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휴대전화에 알람을 맞췄고, 식탁 옆에 붙여 둔 메모지에도 같은 내용을 적었다.

*금요일. 결혼기념일.*

*이준 씨가 좋아하는 음식.*

*꽃은 흰색.*

*저녁 여덟 시.*

*실수하지 말기.*

마지막 문장은 다른 글씨보다 진했다. 하린이 며칠 전부터 같은 자리에 반복해서 덧쓴 탓에 종이에는 볼펜 자국이 깊게 패여 있었다.

사고 전에는 이런 메모가 필요하지 않았다.

복잡한 실험 결과를 수백 개씩 비교하고 작은 오차를 찾아내던 연구자였던 하린은 한 번 읽은 논문의 수식도 머릿속에서 다시 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고 이후에는 방금 들은 약속을 잊어버리거나, 물건을 가지러 방에 들어갔다가 무엇을 찾으려 했는지 생각나지 않아 한참을 서 있는 일이 생겼다.

남편은 처음에는 그런 하린을 안아 주었다. 괜찮다고, 자신이 곁에 있으니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 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위로는 점점 짧아졌고, 하린이 같은 질문을 반복할 때마다 이준의 표정에는 지친 기색이 드러났다.

"네가 예전 같았으면 내가 이런 것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었겠지."

그 말을 들은 날부터 하린은 남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더 자주 하게 되었다. 자신이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이준도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으며, 언젠가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남편도 다시 행복해질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결혼기념일만큼은 특별해야 했다.

하린은 전날 밤부터 요리법을 찾아 종이에 옮겨 적었다. 버섯 크림수프와 로즈메리 스테이크는 결혼 전 이준이 가장 좋아했던 음식이었고, 그녀는 재료를 손질하는 순서마다 번호를 붙인 뒤 불을 켜야 하는 시간에는 동그라미를 그렸다.

혹시 순서를 잊어버릴까 봐 휴대전화 알람도 여섯 개나 맞췄다.

가정부가 모든 준비를 대신하겠다고 했지만 하린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하고 싶어요. 오늘은 제가 이준 씨한테 저녁을 만들어 주는 날이니까요."

Expand
Next Chapter
Download

Latest chapter

More Chapters

To Readers

굿노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굿노벨에 등록하시면 우수한 웹소설을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완벽한 세상을 모색하는 작가도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로맨스, 도시와 현실, 판타지, 현판 등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읽거나 창작할 수 있습니다. 독자로서 질이 좋은 작품을 볼 수 있고 작가로서 색다른 장르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어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성한 작품들은 굿노벨에서 더욱 많은 관심과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No Comments
13 Chapters
1화
서하린이 결혼기념일을 위해 준비한 선물 상자에는 남편이 좋아하던 흰색 리본 대신 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오후에 깨진 유리그릇에 손바닥을 베인 데 이어, 밤에는 떨어지는 선물을 붙잡으려다 유리 조각을 밟고 식탁 모서리에 이마까지 부딪혔다.그럼에도 하린은 자신의 상처보다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손목시계가 망가지지 않았는지 먼저 확인했고, 피 묻은 손으로 시계를 닦다가 가정부에게 몇 번이나 움직이지 말라는 부탁을 들어야 했다.오늘만큼은 남편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사고 이후 처음으로 아무것도 망치지 않은 결혼기념일을 만들어 주고 싶었으며, 남편이 자신을 바라보며 예전처럼 웃는 모습을 한 번만 더 보고 싶었다.그날 아침, 세명바이오 대표 강이준의 아내 서하린은 현관 앞에서 남편의 넥타이를 고쳐 매 주고 있었다.손가락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아 매듭을 두 번이나 풀었다가 다시 묶어야 했지만, 하린은 끝내 반듯한 모양을 만들어 냈다. 남편의 셔츠 깃을 정리한 뒤 한 걸음 물러서서 확인하는 동안 그녀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이준 씨, 오늘 저녁에는 꼭 일찍 와요. 제가 좋아하는 거 많이 준비할게요."이준은 휴대전화 화면을 확인하다가 미간을 찌푸렸다."내가 좋아하는 걸 준비해야지. 네가 좋아하는 걸 왜 준비해?"하린은 그제야 말을 잘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이준 씨가 좋아하는 거요. 제가 말을 잘못했어요."남편은 대답 대신 시계를 확인했고, 하린은 그가 현관문을 열기 전에 조심스럽게 소매를 붙잡았다."오늘이 무슨 날인지 기억하죠?""알아.""정말요?"이준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서하린, 같은 말 두 번 하게 하지 마. 나 아침부터 피곤해."하린은 손을 놓으며 작게 사과했다. 결혼기념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뻤지만, 그 기쁨을 더 표현했다가는 남편의 기분을 상하게 할 것 같아 입술을 다물었다."낮에는 전화하지 마. 중요한 회의가 있으니까.""네. 안 할게요.""여덟 시쯤 들어올 테니까 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Read more
2화
그녀는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했지만, 오후 두 시 무렵 첫 번째 사고가 일어났다.허브를 씻다가 물을 잠그는 일을 잊어버린 사이 싱크대 밖으로 물이 넘쳤고, 바닥에 떨어진 물기를 보지 못한 하린이 미끄러지면서 조리대 위의 유리그릇이 함께 떨어졌다.날카로운 파열음이 주방을 울렸다.하린은 넘어지는 순간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깨진 유리 조각에 손바닥이 베이면서 바닥에 붉은 피가 떨어졌다."사모님!"가정부가 달려왔을 때 하린은 깨진 조각 사이에 주저앉아 있었다. 손바닥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녀는 바닥에 흩어진 허브를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다시 사 와야 하는데……."가정부가 깨끗한 수건으로 상처를 압박하며 움직이지 말라고 하자 하린은 그제야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이준 씨가 이거 없으면 맛이 다르다고 했어요.""사모님, 음식보다 손이 먼저입니다. 상처가 깊어 보여요."하린은 한동안 바닥에 떨어진 재료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유나가 다쳤을 때는 숨기지 말고 진료를 받으라고 당부했던 말이 떠올랐고, 자신도 상처가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가정부와 함께 병원에 다녀왔을 때는 이미 오후 네 시가 넘어 있었다. 손바닥에는 두툼한 붕대가 감겨 있었고, 의료진에게 당분간 상처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하라는 안내도 받았다.하린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식탁 옆 메모지를 확인했다.*저녁 여덟 시.*남편이 돌아오기까지 네 시간도 남지 않았다."사모님, 음식은 제가 마무리하겠습니다."가정부가 말하자 하린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다친 상태에서 무리하게 요리를 계속하면 오히려 일을 망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대신 그녀는 서랍 안에 보관해 둔 작은 선물 상자를 꺼냈다.상자 안에는 오래된 손목시계가 들어 있었다. 결혼하기 전 이준이 하린에게 선물했던 시계였다.그는 당시 하린의 손목에 시계를 채워 주며 장난스럽게 웃었다."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당신한테 돌아올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Read more
3화
하지만 확대된 화면 속 손목시계는 오늘 아침 이준이 차고 나간 것이었다.하린은 사진을 더 크게 벌렸다.검은 가죽줄과 은색 잠금쇠, 오른쪽 검지 아래의 작은 흉터까지 자신이 너무나 잘 아는 손이었다. 그 손이 지금 다른 여자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하린은 의자에 앉으려다가 무릎에 힘이 풀려 의자 끝에 걸터앉았다. 식탁 위의 케이크가 흔들렸지만 촛불은 아직 켜지지 않은 상태였다.그녀는 화면을 껐다가 다시 켰고, 한 번 더 같은 행동을 반복했지만 사진은 사라지지 않았다.사진 속 여자는 오세린이었다.남편의 회사에서 일하는 여자였고, 이준은 그녀를 유능한 사람이라고 했다. 하린이 회사 행사에서 세린에게 인사를 건넸을 때도 이준은 그녀를 소개하며 웃었다."우리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이야."그날 하린은 자신도 남편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집에 돌아와 오래된 연구 노트를 꺼냈다. 한때 자신이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 조금이라도 떠올릴 수 있다면 남편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지만, 노트에 적힌 수식들은 낯설었고 몇 줄을 읽다가 머리가 아파 결국 덮어야 했다.이준은 그런 하린을 보며 말했다."괜히 건드리지 마. 네가 지금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야."그 말이 떠오르자 하린은 사진을 내려다보았다.세린은 남편과 함께 회사에 다닐 수 있었고, 남편이 무슨 일을 하는지 이해하며 어려운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남편의 품에 안겨 있었다.하린은 자신도 모르게 붕대 감은 손을 가슴에 가져갔다. 숨을 들이마셨지만 공기가 충분히 들어오지 않아, 그녀는 정유나가 알려 준 방법대로 눈앞의 사물을 세며 호흡을 가다듬으려고 했다.하얀 접시와 은색 포크, 흰 장미를 차례로 바라보던 시선이 남편의 빈 의자에 닿는 순간 눈물이 흘렀다."사모님?"가정부가 다가오자 하린은 서둘러 화면을 뒤집었다."괜찮아요. 그냥 조금 어지러워요."가정부는 창백해진 하린의 얼굴을 걱정스럽게 살폈지만, 그녀가 더 묻지 말라는 듯 고개를 숙이자 물을 가져오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Read more
4화
하린은 피 묻은 손으로 시계를 집었다."이거…… 이준 씨 선물인데."가정부가 깨끗한 수건을 가져와 이마의 출혈 부위를 압박하며 병원에 가야 한다고 말했지만, 하린은 시계가 망가지지 않았는지 확인하느라 쉽게 손을 놓지 못했다."망가지면 안 돼요. 이준 씨가 좋아했던 거예요."손바닥의 피가 시계에 묻자 하린은 급하게 소매로 닦았지만, 닦을수록 붉은 얼룩은 더 넓게 번졌다. 결국 그녀는 시계를 가정부에게 맡기며 깨끗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가정부는 시계를 안전한 곳에 올려놓은 뒤 하린의 이마를 살폈고, 그제야 하린도 발바닥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하린은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화면에는 남편과 세린의 사진이 떠 있었고, 가정부가 잠시 내려놓고 쉬라고 권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없어지면 안 돼요. 제가 본 거잖아요."가정부는 더 묻지 않았다.하린은 사진 두 장을 저장한 뒤 발신 번호와 수신 시간을 확인했고, 휴대전화 메모장에 금요일 밤, 이준과 오세린, 사진 두 장이라는 내용을 적었다.숫자를 잘못 입력해 다시 고쳐야 했지만, 눈앞이 흐려 글자가 겹쳐 보이는 상황에서도 기록을 중단하지 않았다.병원에서는 이마와 발바닥의 상처를 살폈고, 의료진은 머리를 부딪친 경위를 확인한 뒤 필요한 진찰을 진행했다. 하린은 몇 차례 같은 설명을 반복하면서도 사진을 받은 뒤 넘어졌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게 전달했다.진료를 마치고 처치실에서 나왔을 때는 밤 열 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하린은 가정부의 부축을 받아 의자에 앉았다. 이마에는 거즈가 붙어 있었고 발바닥은 두툼한 붕대로 감겨 있었지만, 휴대전화 화면에는 남편에게서 온 연락이 하나도 없었다.한참을 망설이다 직접 전화를 걸었으나 연결음만 길게 이어졌고, 두 번째 전화도 받지 않았다.세 번째 전화를 걸려던 순간 아침에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낮에는 전화하지 마. 중요한 회의 있어.*지금은 낮이 아니라 결혼기념일 밤이었지만, 남편이 중요한 일을 하고 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Read more
5화
밤 열 시 삼십 분, 현관에서 인터폰이 울렸다.하린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발바닥의 통증 때문에 비틀거렸지만 가정부가 부축하려는 손을 붙잡고 웃었다."이준 씨인가 봐요."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남편이 아니라 세명바이오 비서실 직원이었다.그는 하린의 이마에 붙은 거즈와 발의 붕대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사모님,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하린은 상처를 가리려고 머리카락을 내리며 조금 넘어졌을 뿐이라고 대답한 뒤, 직원의 어깨 너머를 바라보았다."이준 씨는요?"직원의 얼굴이 굳었다."대표님께서는 아직 일정 중이십니다. 귀가 시간은 전달받지 못했습니다."그는 쇼핑백 하나를 건넸다. 고급 브랜드의 분홍색 스카프가 들어 있었지만, 하린이 좋아하지 않는 색이었다.상자 안에는 짧은 카드도 있었다.*기념일 축하해. 오늘은 늦어.*하린은 카드를 한참 읽었다. 남편이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고, 적어도 누군가에게 선물을 보내라고 지시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안도하려던 순간 직원이 말을 이었다."내일 예정된 재활 상담과 관련해서도 전달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비서실에서 병원 측에 일정 변경을 요청했습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하린이 고개를 들었다."유나 만나는 날이요?"직원은 대표님의 지시라고 설명했고, 하린은 손에 든 스카프 상자를 내려다보았다.남편은 자신에게 직접 전화할 시간은 없었지만 치료 일정에 관해서는 비서실에 지시를 내렸다는 뜻이었다."저는 내일 가고 싶은데요. 제가 정한 약속이에요."직원은 그 말을 전달하겠다고 답하면서도, 사모님께서 혼동하신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정확한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혼동한 거 아니에요."하린은 그의 말을 끊고 휴대전화 일정표를 열었다. 손가락이 떨려 화면을 두 번 잘못 눌렀지만 결국 약속을 찾아냈고, 직원에게 화면을 보여 주었다.*오후 두 시. 정유나 선생님. 재활 상담.*"제가 적었어요. 저는 내일 가고 싶어요."직원은 일정표를 확인한 뒤 병원에 다시 확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Read more
6화
하린은 숨을 멈췄다.사진 속 케이크와 촛불 세 개, 남편의 어깨에 기대어 있던 여자의 모습이 한꺼번에 떠올랐다."이준 씨, 사진이 왔어요. 이준 씨랑 세린 씨가 같이 있는 사진이요."남편은 누가 보냈는지 물었고, 하린이 모르는 사람이라고 대답하자 짧게 혀를 찼다."그런 걸 가지고 왜 나한테 전화해? 지금은 통화할 상황 아니야."하린은 휴대전화를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오늘 우리 결혼기념일인데…….""알아."그 대답을 듣고 하린은 고개를 숙였다. 남편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 있었고, 자신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다른 여자와 함께 있었다."나 저녁 만들었어요. 이준 씨 좋아하는 거요. 수프도 만들고, 스테이크도…… 선물도 있어요. 예전에 이준 씨가…….""그만."남편의 단호한 말에 하린의 입술이 굳었다."나 지금 네가 준비한 저녁 이야기 들을 시간 없어."하린은 식탁을 바라보았다. 남편을 위해 준비한 음식은 이미 치워졌고, 선물 상자에는 자신의 피가 묻어 있었다.그녀는 그가 언제 돌아올 수 있는지 물었지만, 이준은 기다리지 말고 자라는 말만 남겼다. 오늘은 아예 돌아오지 않을 생각인지 묻는 질문에는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하린은 그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이준 씨, 나랑 결혼한 거 후회해요? 나 예전처럼 못해서……."전화기 너머에서 이준이 한숨을 내쉬었다."또 시작이네.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으니까 그만해."하린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가장 두려워했던 말이었고, 남편은 이제 그녀의 마음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붕대를 감은 손으로 선물 상자를 끌어당긴 하린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용히 말했다."이준 씨, 나 아직도 이준 씨 많이 사랑해요."대답이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하린은 사랑한다는 말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자신이 여전히 아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그러나 이준은 차갑게 말했다."그건 알아."하린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알면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30
Read more
7화
그녀는 두 장 모두 따로 저장하고 발신 번호와 받은 시간을 메모했다. 사진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이 무엇을 보았는지는 잊고 싶지 않았다.하린은 메모지에 오늘 날짜를 적었다. 첫 번째 숫자를 잘못 써서 지웠고 두 번째에는 월과 일을 바꾸어 적었지만, 세 번째 시도에서야 날짜를 완성했다.그 아래에 짧은 문장을 남겼다.*결혼기념일.**이준 씨는 오지 않았다.**사진 속 여자는 오세린.**이준 씨는 내가 다친 것을 알고 있었다.*마지막 문장을 쓰다가 하린의 손이 멈췄다.남편은 자신이 다쳤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도 돌아오지 않았다.하린은 메모지에 한 줄을 더 적었다.*내일 사진에 대해 다시 물어보기.*그녀는 그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내일 아침이면 잊어버릴 수도 있었고, 남편이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 주면 오늘 밤의 고통마저 자신이 잘못 기억한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몰랐다.그래서 기록해야 했다.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를 의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겪은 일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였다.하린이 휴대전화를 선물 상자 옆에 놓았을 때 처음 사진을 보냈던 번호에서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사모님, 아직도 기다리세요?*하린은 메시지를 읽었지만 답장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고통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무서웠고, 그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대신 사진의 수신 시간을 다시 확인했다.자신이 남편을 기다리며 음식을 데우던 시간이었고, 손바닥에 피가 나도록 선물 리본을 묶던 시간이었다.이준은 그 시간에 다른 여자와 함께 있었다.하린은 선물 상자를 끌어안았다."이준 씨……."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그녀는 한참 동안 빈 의자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내가 아프기 전에는 나 사랑했잖아요. 그때처럼 잘하면 다시 사랑해 줄 거예요?"하린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남편이 없는 자리에서 혼자 묻고 혼자 상처받는 일이 얼마나 익숙해졌는지, 이제는 자신도 알고 있었다.그녀는 식탁에 이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30
Read more
8화
강이준이 결혼기념일 다음 날 아침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내의 피 묻은 붕대를 살피는 것이 아니라, 비서에게 사진을 보낸 사람을 추적하라고 지시하는 것이었다.서하린은 침실 문밖에서 들려오는 남편의 목소리에 잠을 깼다.전날 밤 병원에서 두 번째 진료를 받고 돌아온 뒤에도 손바닥이 욱신거려 거의 잠들지 못했지만, 이준이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 반가움이 밀려와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그러나 다친 발바닥을 바닥에 딛는 순간 날카로운 통증이 치솟았고, 침대 기둥을 붙잡고 겨우 균형을 잡는 사이 남편의 낮고 냉정한 목소리가 문틈으로 흘러들었다."사진 두 장이야. 누구한테서 보냈는지 알아내고, 다른 데 퍼졌는지도 확인해."잠시 상대방의 말을 듣던 이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아내한테 연락하지 마. 내가 처리할 테니까."하린은 문손잡이를 잡으려던 손을 멈췄다.남편이 자신의 일을 처리해 준다는 말은 원래 안심이 되는 말이었다. 사고 이후 복잡한 서류나 예약을 혼자 처리하기 어려울 때마다 이준이 대신해 주었고, 하린은 그럴 때마다 자신을 버리지 않은 남편에게 고마움을 느꼈다.그런데 지금은 그 말이 이상하게 가슴을 짓눌렀다.어젯밤 자신이 받은 사진에 관해 남편이 누구와 이야기하는지, 왜 사진을 보낸 사람부터 찾으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가 돌아왔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하린은 잠옷 소매로 눈가를 닦고 침실 문을 열었다."이준 씨."복도에 서 있던 이준이 고개를 돌렸다. 그는 아내의 얼굴을 잠시 살폈지만, 이마에 붙은 거즈와 밤새 부어오른 눈가를 확인하고도 통화를 끝내는 데만 신경 썼다."사진은 내가 확인할게. 연락 기다려."통화를 끊은 이준은 아내에게 다가오지 않은 채 손을 내밀었다."휴대전화 줘."하린은 남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어제 많이 기다렸어요."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준의 시선이 휴대전화 쪽으로 움직였다. 하린은 그가 듣지 못했을까 봐 다시 말하려다가, 남편이 자신의 붕대 감긴 손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손도 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30
Read more
9화
"그건 네가 그렇게 이해한 거겠지."이준은 사진첩을 닫고 침대 쪽으로 걸어갔다. 탁자 위에는 전날 밤 먹지 못한 진통제와 병원에서 받아 온 안내문, 결혼기념일 저녁을 준비하며 적어 둔 메모지가 함께 놓여 있었다.그는 메모지를 집어 들었다.*저녁 여덟 시쯤 이준 씨 귀가. 수프 데우기. 스테이크 굽기.*"여기에도 '쯤'이라고 적혀 있네. 내가 정확히 여덟 시에 온다고 했다는 증거는 없잖아."하린은 자신이 적은 글씨를 바라보았다.사고 이후 그녀는 중요한 일을 잊지 않으려고 남편이 한 말을 되도록 그대로 적어 두었다.약속을 잘못 기억해 그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고, 결혼기념일만큼은 실수 없이 보내고 싶어 전날 아침부터 몇 번이나 메모를 확인했다.그런데 남편은 그 메모를 보며 자신이 약속을 어긴 것이 아니라 아내가 말을 잘못 이해했다고 설명하고 있었다."그래도 결혼기념일이었잖아요."하린은 침대 아래에 놓인 선물 상자를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며칠 동안 수리점에 맡겼다가 찾아온 남편의 오래된 손목시계와, 글씨를 여러 번 고쳐 쓰며 완성한 편지가 들어 있었다."제가 음식도 준비했고, 시계도 고쳤어요. 이준 씨가 좋아하던 거라서……."이준은 그녀가 상자를 꺼내기도 전에 탁자 위의 분홍색 스카프를 집어 들었다."선물 보냈잖아. 그것도 못 받았어?"비서실에서 보낸 스카프였다.하린은 남편이 직접 고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을 잊지 않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려고 애썼지만, 이준은 그 상자를 그녀 앞에 내려놓으며 자신이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말했다."비서실에서 챙겼으면 됐지. 꼭 내가 직접 편지를 쓰고 케이크 앞에 앉아 있어야 결혼기념일이 되는 거야?"하린은 대답하지 못했다.전날 밤 촛불 세 개가 모두 짧아질 때까지 남편을 기다렸다.크림버섯수프 표면에는 식은 막이 생겼고, 로즈메리 스테이크는 몇 번이나 데우는 동안 질겨졌지만, 그가 돌아오면 함께 먹고 싶어 끝내 버리지 못했다.그런데 사진 속 세린의 앞에도 촛불 세 개가 있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30
Read more
10화
그런 여자가 지금은 눈앞에 있는 사진을 설명하기 위해 남편의 허락을 기다리고 있었다.하린에게는 그 사진이 단순한 질투의 대상이 아니었다. 사고 전 연구실에서 일할 때 그녀는 관찰한 사실과 추측을 구분해야 한다고 배웠고, 지금도 그 습관만큼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사진 속 손목시계와 흉터, 촛불 세 개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었으며,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는 아직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었다.그런데 이준은 사실을 확인하려는 아내의 태도 자체를 문제 삼았다."네가 보고 있는 건 사진 한 장이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가 아니야."그는 목소리를 낮추며 아내에게 가까이 다가왔다."내가 아니라고 하면 아닌 줄 알아야지. 내가 네 남편이잖아."하린은 그 말을 듣고 남편의 손을 바라보았다. 손등에 있는 작은 흉터는 결혼 전 그녀가 약을 발라 주던 상처였고, 그때 이준은 자신이 아프면 가장 먼저 하린에게 오겠다고 웃으며 약속했다.그 손이 지금은 휴대전화 화면을 가리고 있었다."저도 이준 씨 아내잖아요."하린은 힘겹게 말을 이었다."그래서 물어보는 거예요."이준의 얼굴에서 마지막 남은 부드러움이 사라졌다."네가 정말 내 아내라고 생각하면 이런 사진부터 지워야지."그는 사진 두 장을 선택했다.하린은 화면 아래에 삭제 표시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다급히 남편의 소매를 붙잡았다."그건 아직 지우지 마세요."이준은 아내의 손을 내려다보았다.붕대 끝에는 어젯밤 스며든 피가 검붉게 말라 있었고, 손가락은 부기 때문에 제대로 펴지지 않았지만, 그는 그 손을 걱정하기보다 자신의 소매에서 떼어 내려 했다."이런 걸 가지고 있으면 네 상태만 더 나빠져.""제가 받은 사진이에요. 제가 결정할게요."하린은 말을 마치고도 두려워 남편의 표정을 살폈다.사고 이후 자신의 뜻을 분명하게 말할 때마다 이준은 고집을 부린다고 했고, 그녀는 그가 자신에게 실망할까 봐 대부분의 일을 양보해 왔다.하지만 사진만큼은 당장 지우고 싶지 않았다.그 안에는 남편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30
Read more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