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버린 아내가 재벌이었다

내가 버린 아내가 재벌이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5
By:  순순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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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3주년이자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그날, 윤서하의 남편은 정작 첫사랑의 곁에 있었다. 게다가 그 여자는 그의 아이까지 임신한 상태였다. 윤서하가 이혼을 요구했을 때도 강태준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는 심지어 서하가 무릎 꿇고 빌어도 다시는 받아 주지 않겠다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서하가 자신을 떠난 뒤에야 비로소 그녀의 인생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녀가 떠나고 나서야 강태준은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깨달았다. 한때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무조건 맞춰 주던 아내는 이제 감히 자신이 넘볼 수도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는 자존심마저 내려놓고 그녀 앞에 나타났다. 사과하고, 다시 한 번만 기회를 달라며 애타게 매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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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윤서하 시점내 남편이자 상사인 강태준은 첫사랑인 한서연이 던지는 농담 하나하나에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나는 그저 그의 집무실과 내 사무실을 가로막고 있는 유리문 너머로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나는 그가 결재해야 할 서류를 꼼꼼히 정리하는 한편, 당일 회의 일정도 챙기고 있었다. 지난 7년 동안 그의 비서로서 줄곧 해 온 일이었다.하지만 한서연이 나타난 뒤로는 도무지 업무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강태준이 웃을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저릿했다. 그가 내 앞에서는 단 한 번도 저렇게 웃어 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내 시선은 한서연의 가녀린 모습에 머물렀다.그녀의 길고 풍성한 검은 머리카락은 웃느라 고개를 뒤로 젖혔다가도 금세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몸짓 하나하나에도 우아함이 묻어났다.한서연은 그야말로 우아함의 표본이었다. 그녀의 모든 것이 두 사람이 오래전에 헤어졌음에도 강태준이 왜 아직까지 그녀를 잊지 못하는지 보여 주는 듯했다.그는 지금 나와 결혼한 사람인데도 말이다.그때 집무실의 짙은 색 블라인드가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을 향해 있던 내 시야가 가려졌다.순식간에 눈앞이 캄캄해졌다.마치 강태준이 나에게 자신과 한서연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분명 그의 아내였다. 우리 사이에 비밀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특히 그가 한때 깊이 사랑했던 여자와 관련된 일이라면 더더욱.아까 한서연이 내게 다가왔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그녀가 하이힐을 신고 사무실 바닥을 걸어오는 동안 구두 굽이 바닥을 또각또각 두드렸다. 걸음걸이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우아했다.나는 먼저 새빨간 하이힐을 보았고,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서하 씨, 아직도 여기서 일하고 있었네요! 정말 믿을 수가 없어요. 태준 씨가 결혼하고 나서도 계속 일하게 두다니. 그 남자도 참 대단하죠?”그녀는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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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윤서하 시점집무실 안의 소파에는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서로 무척 편안해 보였고, 두 사람 사이의 거리도 신경 쓰일 만큼 가까웠다.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그러고는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커피 가져왔습니다.”내가 입을 열었다.하지만 두 사람은 내가 들어온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 여전히 자기들만의 세상에 빠져 조금 전부터 나누던 이야기를 이어 가고 있었다.나는 잠시 한서연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소파에 앉아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다리 위에 꼬고 있었다. 치마 아래로 허벅지가 훤히 드러났다. 한 손가락으로 체리빛이 도는 금발을 빙빙 감으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그 웃음이 진심인지, 아니면 그저 가식적인 미소인지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돌아서서 나가고 싶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이대로 나갈 수는 없었다.대체 언제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참기만 해야 하는 걸까?“부회장님.”나는 강태준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를 불렀다.우리는 분명 부부였지만, 그는 회사에서는 자신을 반드시 직장 상사로 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늘 일깨우곤 했다.강태준은 나를 쳐다볼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가슴속에서 서서히 분노가 차올랐다. 그 감정은 조금씩 쌓여 갔다.“부회장님.”나는 다시 한번 그를 불렀다.그제야 그가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흘끗 바라보았다.그 눈빛에 하마터면 말을 꺼내려던 마음이 꺾일 뻔했지만, 나는 억지로 그의 시선을 마주하며 버텼다.“꼭 드려야 할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나는 태연한 얼굴로 거짓말을 했다.한서연의 시선이 내게 향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지만, 애써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그녀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어렵게 끌어모은 용기가 모조리 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강태준은 그저 손을 휘저으며 나가라는 시늉을 했다.“나중에 얘기해. 보다시피 지금 손님이 와 있잖아.”“지금 말씀드려야 합니다.”나는 아까보다 더 단호하게 말했다.하지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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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윤서하 시점그 후 몇 초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의 말이 마치 통제력을 잃은 트럭처럼 나를 거세게 들이받았다.나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다.자신이 내게 상처 주는 말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차갑게 굳어 있던 그의 눈빛이 조금이라도 누그러지기를. 그 안에 희미하게나마 후회하는 기색이 드러나기를 기다렸다.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그는 여전히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분노에 찬 콧방울이 미세하게 벌렁거렸다.“태준 씨, 어떻게……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나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의 커다란 몸 뒤에 숨어 있는 한서연을 바라보았다.“그것도 서연 씨 앞에서요?”“그게 사실이니까!”그가 다시 버럭 소리쳤다. 나는 저도 모르게 짧은 비명을 내뱉을 만큼 깜짝 놀랐다.강태준이 내게 이렇게 고함을 지른 건 처음이었다.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지만, 예전의 그는 내 앞에서 이런 말을 입에 올린 적이 없었다. 그가 나를 이렇게 대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줄곧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들이 실제로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수천 개의 바늘이 한꺼번에 심장을 찌르는 것 같았다. 내 심장은 사정없이 찔려 피투성이가 된 듯했다.그는 짜증스럽게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아무래도 그는 이 일에 관해 나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이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어진 말은 내게 더 깊은 상처를 남겼다.“넌 어떻게든 내 삶에 끼어들려고 했던 일개 비서일 뿐이야. 그날 밤 네가 먼저 나한테 달려들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우리 사이에 결혼 같은 건 애초에 없었겠지. 너도 잘 알고 있잖아.”그는 과거를 들먹였다.우리의 과거.내게는 무엇보다 특별한 의미가 있었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던 게 분명한 그날 밤을.나는 목과 입안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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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윤서하 시점수화기 너머로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왜요? 무슨 일이에요? 할머니는 괜찮으세요?”나는 두려움과 불안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가운데 다급하게 물었다.“지금 바로 병원으로 오셔야 합니다. 할머님께서……”나는 그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전화를 끊었다.곧장 사무실을 뛰쳐나가 택시를 잡아탔다. 그리고 기사에게 병원으로 최대한 빨리 가 달라고 했다.나는 곧바로 할머니의 병실로 향했다. 하지만 침대 시트와 이불은 이미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침대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불안했다.끝없는 공포가 밀려왔다.“우리 할머니는요?”나는 다급하게 물었다.“어디 계세요?”병실을 청소하던 간호사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그녀의 눈에 담긴 동정 어린 시선이 불편하게 느껴졌다.“죄송합니다, 윤서하 씨. 할머님께서 10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지금은 병원 안치실로 옮겨진 상태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그녀가 말했다.그 순간, 세상 전체가 멈춰 버린 것 같았다.나는 어떻게 다리를 움직여 간호사를 따라 안치실까지 갔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간호사는 입구에서 걸음을 멈추고 안쪽에 놓인 침대 하나를 가리켰다.할머니는 그곳에 누워 계셨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흰 천으로 덮인 채였다.두 다리가 쉴 새 없이 떨렸다. 나는 천천히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흰 천을 걷어 내고 창백하게 질린 할머니의 얼굴을 보는 순간, 끝내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한 달 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사고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막을 수만 있다면.바로 그 사고 때문에 할머니는 이렇게 되셨다.그리고 그 사고가 이 세상에 남은 유일한 가족마저 내게서 앗아 갔다.“할머니……”나는 갈라진 목소리로 할머니를 불렀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할머니의 손을 붙잡았다.할머니의 손은 온기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차가웠다. 예전의 생기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이 손이 한때 얼마나 따뜻하게 내 뺨을 어루만져 주었는지 떠올리자,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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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윤서하 시점할머니의 장례식은 우중충한 날에 치러졌다. 나는 그게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다.할머니의 장례식 날짜를 정하기 위해 일부러 일기예보까지 확인했었다. 예보에 따르면 장례식 당일은 할머니처럼 햇살이 밝게 내리쬐는 화창한 날이어야 했다.그런데 지금 할머니의 묘 앞에 서서 먹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마치 속은 기분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줄곧 가슴속에 쌓여 있던 어둡고 우울한 감정이 눈앞의 흐린 날씨 때문에 더욱 짙어지는 것 같았다.나는 이미 너무 많이 울어 할머니의 묘 앞에서 흘릴 눈물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는 검은 원피스에 어울리도록이 아니라, 빨갛게 부어오른 눈을 가리기 위해 짙은 색 선글라스를 써야 했다.묘지의 다른 묘비들 앞에는 세상을 떠난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러 온 사람들이 몇몇 모여 있었다. 묘비마다 적어도 두 사람씩은 함께 있었다.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부부도 있었고, 서로를 위로하는 가족들도 있었으며, 교회에서 온 장례 행렬도 보였다.하지만 나는 혼자였다.할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나를 위로해 줄 사람도 없었다.할머니가 떠나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외로운 사람인지 깨달았다. 그 생각은 이미 상처투성이인 내 마음에 또 한 번 깊은 상처를 남겼다.나는 지난 며칠 동안 있었던 가슴 아픈 일들을 애써 머릿속에서 지워 내려고 했다. 마침내 마음을 추스르고 나서야 다시 할머니에게 시선을 돌렸다.묘비 옆에 놓인 액자 속 할머니는 환하게 웃고 계셨다. 나도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할머니와 함께했던 행복한 기억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서하야, 우리 아가. 그렇게 매번 찡그리고 있으면 안 돼. 그러다가는 내 나이도 되기 전에 나처럼 주름이 생기겠다!”할머니는 늘 그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내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 올려 웃게 만들었다.할머니는 늘 밝고 유쾌한 분이셨다.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걸 좋아하셨는데, 대부분 내 출생에 관한 이야기였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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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윤서하 시점그가 조금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나는 당황스러움에 뺨이 붉어졌다.강재훈은 이제 막 귀국했으니 아직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를 것이다. 나 역시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할머니의 장례식을 위해 가져왔던 남은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강재훈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도와주었다. 더는 묻지 않는 그의 배려가 고마웠다.내가 거절할 틈도 없이 그는 내 손에 들린 물건을 전부 받아 들었다.“차 가지고 왔어?”그가 물었다.나는 고개를 저었다.택시를 타고 왔다.“가자. 내 차 타고 가.”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앞장서 걸어갔다.나는 어쩔 수 없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우리가 막 묘지를 빠져나왔을 때였다. 한 대의 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와 강재훈의 차 바로 옆에 멈춰 섰다.낯익은 차였다. 누구의 차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던 순간, 강태준이 차에서 내렸다. 그는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 이쪽으로 걸어왔다.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그의 로열 블루 정장이었다.가슴속에서 분노가 서서히 끓어오르기 시작했다.어떻게 이런 옷을 입고 여기에 나타날 수 있지?할머니를 대놓고 모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할머니가 이미 돌아가셨다고 해도, 나는 누군가 할머니를 이렇게 무시하는 꼴을 참을 수 없었다.회사에서 곧장 온 게 분명했다.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차라리 오지 않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이제야 깨달았다. 그저 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는 사실을.병원에서 있었던 일 이후 지난 사흘 동안 그는 계속 나를 피해 다녔다.한서연이 임신했다고 밝히며 내 세상을 뒤흔든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그가 내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 굳이 다른 사람에게 들을 필요도 없었다. 내 마음속에 남은 감정은 그를 향한 원망뿐이었다.“끝났어? 젠장, 시간을 놓쳤나 보네.”그가 말했다.그러고는 삼촌을 향해 몸을 돌려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고마움을 표현하려는 듯한 미소였다.그 미소가 어찌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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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강태준 시점“이혼해요.”그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내가 지금껏 들어 본 황당한 말들 중에서, 믿기 어렵겠지만 회사의 CEO인 나는 매일 온갖 헛소리를 듣고 산다. 하지만 아무런 예고도 없이 윤서하가 이혼을 요구한 일은 단연코 가장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나는 언제나 내 능력과 일 처리 방식에 자부심을 느껴 왔다. 아무리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닥쳐도 능숙하게 해결할 자신이 있었다. 애초에 내 직업이 요구하는 것도 바로 그런 능력이었다.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녀가 삼촌을 따라 차에 올라탈 때까지 나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발걸음조차 옮길 수 없었다.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그녀가 떠난 뒤였다. 나는 그 자리에 홀로 남아 그녀가 남긴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나를 놀라게 한 건 그녀가 감히 이혼을 요구했다는 사실만이 아니었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 말을 내뱉던 그녀의 모습 역시 충격적이었다.차갑고 옅은 갈색 눈동자. 윤서하의 눈빛은 내가 지금껏 가지고 있던 그녀의 순하고 소심한 이미지와는 완전히 달랐다.나 자신에게도 놀랐다.애초에 이런 일에 동요할 이유가 없었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아도 이상할 게 없었다. 나는 처음부터 그녀와 결혼하고 싶지 않았으니까.윤서하와 함께 살아온 지난 3년은 내게 족쇄나 다름없었다. 그녀의 거짓말과 할아버지의 독단적인 태도가 만들어 낸 족쇄였다.나는 한 번도 윤서하를 신경 쓴 적이 없었다.그런데 고작 ‘이혼’이라는 두 글자에 나는 온몸이 굳어 버렸고, 제대로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차 문이 열리고 나서야 나는 아직도 묘지 입구에 우두커니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내 개인 비서인 박도윤이 차에서 내려 입을 열었다.“부회장님, 테일러 엔터프라이즈와의 미팅이 30분 뒤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출발해도 차로 한 시간 넘게 걸리는데, 지금 출발하시면…….”“취소해.”나는 그렇게 말하며 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지금은 수백만 달러짜리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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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강태준 시점비서가 룸미러를 통해 나와 눈을 마주쳤다.그의 눈에는 놀라움이 역력했다. 내가 아내를 조사하라고 지시할 줄은, 그것도 다른 남자와 만나는 건 아닌지 의심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가능성을 전부 배제할 수는 없었다.만약 윤서하가 정말 나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있다면, 맹세컨대…….옆자리 가죽 시트 위에 놓아둔 휴대전화가 갑자기 진동했다.화면에 한서연의 이름이 떴다. 그녀에게서 온 메시지였다.다음에는 언제 시간이 나서 병원에 함께 가 줄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다.한서연의 메시지를 보자 치밀어 오르던 분노가 조금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 대신 더욱 불편한 감정이 밀려왔다.평소 말수도 적고 조용하던 아내가 어째서 갑자기 이혼을 요구했는지, 그 이유를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온갖 가능성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하지만 내가 한때 깊이 사랑했던 여자에게 아이를 갖게 한 일 역시 그녀가 이혼을 요구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두 달 전 그날이 떠올랐다.그날 나는 또다시 술 때문에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내가 해야 할 일은 그저 공항에 가서 한서연을 데려온 뒤 호텔에 내려 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하지만 결국 나는 그녀의 초대를 받아들였고, 호텔 방에서 함께 술을 마셨다.그녀는 그저 옛날 추억을 되새기기 위한 자리라고 했다.하지만 그날 밤 우리가 한 일은 술을 마시는 것만이 아니었다.그리고 지금, 그 아이는 한서연의 뱃속에서 하루하루 자라고 있었다.그 일을 실수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애초에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3년 만에 한서연과 다시 잠자리를 갖는다면 어떤 기분일지 떠올렸다는 이유만으로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됐다.나는 그 아이를 원했다.내 아이였다. 나는 그 아이를 잃을 생각이 없었다.하지만 이 일에는 대가가 따랐다. 그 대가가 윤서하와의 이혼이 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윤서하가 나와 이혼하도록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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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윤서하 시점강재훈 씨가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는 동안 아무것도 묻지 않은 것이 고마웠다.그는 저택 안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사양했다. 차가 떠나는 것을 끝까지 지켜본 뒤에야 한숨을 내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집 안에는 하녀들이 가득했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자마자 모두 나에게 달려왔지만, 나는 손을 들어 더는 가까이 오지 말라는 뜻을 보였다.나는 이제 이 집의 안주인이 아니었다.나는 그들을 지나쳐 곧장 내 방으로 향했다.강태준이 성욕을 해소하고 싶을 때만 나와 한 침대에서 잤다. 그는 내 침대에 올라와 내가 받아들일 때까지 온몸에 입을 맞추곤 했다. 그럴 때만큼은 나도 그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기분이 들었다.방에 들어서면서도 나는 침대에 시선을 오래 두지 않으려고 애썼다. 침대 시트 속에서 뒤엉킨 채 그가 내 안 깊숙이 들어왔던 기억이 떠오르면, 어렵게 다잡은 결심이 흔들릴까 두려웠다.그리고 지금 내게 남은 결심은 단 하나였다. 강태준을 완전히 떠나는 것.그 결심이 아직 굳건할 때 짐을 싸기 시작했다. 당장 갈 곳이 없다는 사실조차 잠시 생각하지 않았다.강태준이 나를 얼마나 깊이 배신했는지, 그 상처가 얼마나 컸는지를 생각하면 그와 같은 지붕 아래에서 하루라도 더 지내는 건 견딜 수 없었다.나는 꼭 필요한 물건 몇 가지만 챙겼다. 나머지는 이혼 절차가 모두 끝난 뒤에 다시 와서 가져가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짐을 절반쯤 쌌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 목소리는 언제나 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차가운 두려움이 온몸을 타고 기어오르는 듯했고, 나는 곧바로 짐을 싸던 손을 멈췄다.강태준의 어머니 서미경과 여동생 강유진이 온 것이었다.나는 숨을 깊게 내쉬었다. 호흡을 가다듬는 동시에 그들에 관한 끔찍한 기억들이 다시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도록 애썼다.몇 차례 더 깊게 숨을 내쉬고 나서야 겨우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나는 다시 짐을 싸기 시작했다.짐을 다 챙긴 뒤, 무거운 여행 가방을 끌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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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윤서하 시점그녀는 재미있다는 듯 여행 가방을 내려다보았다.“정말 떠나려는 거구나!”그녀는 목소리에 기쁨을 감추지도 못했다.“네. 그러니까 이제 그만 놓고 가게 해 주세요.”그녀는 고개를 저었다.“그렇게 쉽게는 안 되지! 그냥 떠나게 둘 수는 없어.”그러고는 옆에 서서 지금까지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하녀 두 명에게 눈짓했다.“몸수색해!”그녀가 명령했다.하녀들은 앞으로 다가오면서도 망설였다. 그러자 서미경이 그들을 매섭게 노려보았다.“못 들었어? 이제 저 여자는 이 집 안주인이 아니야. 당장 짐을 뒤져!”하녀들이 마침내 내게서 여행 가방을 낚아챘을 때, 나는 너무 놀라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강유진은 내가 하녀들에게서 가방을 되찾지 못하도록 나를 붙잡았다.“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내가 널 그냥 보내 줄 수는 없지. 그 더러운 가방 안에 내 아들한테서 훔친 귀중품이 뭐가 들어 있을지 누가 알아?”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몇 번이나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나는 그저 그들이 내 물건을 거칠게 뒤져 바닥에 쏟아 버리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모욕감에 눈물이 눈가에서 뜨겁게 차올랐다.나는 더 이상 강유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지 않았다.그녀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그게 뭐지? 이리 내놔.”하녀 한 명이 내가 여행 가방에 넣어 둔 금팔찌를 발견하자, 강태준의 어머니가 말했다.할머니의 팔찌였다. 내게 남은 유일한 할머니의 유품이었다.“안 돼요!”나는 하녀가 팔찌를 그녀에게 건네지 못하도록 급히 앞으로 달려갔다.하지만 이미 늦었다.서미경은 벌써 팔찌를 손에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어머! 엄마, 드디어 쟤가 태준이한테서 훔친 물건을 찾아냈네요!”강유진이 신이 나서 외쳤다.그 말을 내뱉자마자 그녀는 나를 거칠게 잡아끌어 대리석 바닥에 내팽개쳤다.코가 바닥에 부딪쳤다.손으로 코를 만져 보니 피가 흘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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