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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Author: 해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9 16:41:29

윤재희가 눈을 떴을 때, 창밖에는 이미 아침 햇살이 번지고 있었다.

밤새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몸에 밴 한기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이불을 조금 걷어내자 퉁퉁 부어오른 발목이 드러났고, 무릎에는 상처를 덮은 거즈가 붙어 있었다. 몸을 일으키려던 재희는 발목에서 올라오는 통증에 얼굴을 찡그리며 침대 가장자리를 붙잡았다.

어젯밤 저택 정문 앞에서 쓰러진 뒤의 일은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빗속에서 남편의 차가 자신을 지나쳐 가던 순간과 굳게 닫힌 철문을 열어달라고 애원하던 목소리, 그리고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아 휴대전화를 붙잡고 있던 기억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재희는 침대 옆에 놓인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마지막으로 태윤에게 보낸 문자가 화면에 남아 있었다.

*태윤 씨, 저 정말 아파요. 제발 한 번만 도와줘요.*

메시지에는 읽음 표시가 떠 있었지만 답장은 없었다.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던 재희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남편이 어째서 자신을 그렇게까지 내쫓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서유진의 손목을 다치게 하지 않았다고 몇 번이나 설명했지만, 태윤은 끝내 자신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도 직접 만나 이야기하면 달라질지 모른다는 기대가 남아 있었다. 어젯밤에는 서로 감정이 격해졌으니, 시간이 지나면 태윤도 자신이 지나쳤다는 사실을 깨달을지 몰랐다.

재희는 그런 생각을 붙잡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발을 바닥에 디디자마자 날카로운 통증이 치솟았고, 결국 침대 기둥을 붙잡은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그때 방문이 열렸다.

오명숙이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창백한 얼굴이나 부어오른 발목에는 관심도 없는 듯 방 안을 둘러보았다.

“아직도 누워 있었니? 오늘이 무슨 날인지 잊은 건 아니겠지?”

재희는 침대 가장자리에 다시 앉으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어머니 생신인 거 알고 있어요. 연회 준비도 집사님께 모두 확인해 뒀어요. 그런데 어젯밤에 발목을 다쳐서 조금만 쉬려고 했어요.”

명숙은 그제야 며느리의 발목을 내려다보았다. 퉁퉁 부어오른 피부와 무릎의 상처를 확인하고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그러게 누가 태윤이 성질을 건드리래? 남편이 화가 났으면 먼저 잘못했다고 해야지, 끝까지 버티다가 그 꼴을 당한 것 아니니.”

재희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시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 저는 어제 잘못한 게 없어요. 유진 씨가 자기 손목을 직접 다치게 한 거예요. 서재에 카메라도 있으니까 영상만 확인하면…….”

“그만하라고 했다.”

명숙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하게 말을 끊었지만, 그 눈빛에는 며느리의 설명을 들어줄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였다.

“유진이가 어떤 집 딸인데 그런 거짓말을 하겠니? 네가 태윤이 관심을 받으려고 별짓을 다 하는 모양인데, 이제 그만해라. 오늘 같은 날까지 집안 망신을 시킬 생각이면 차라리 방에서 나오지 말든가.”

명숙은 옷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재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손님들 앞에서는 태윤이 아내답게 행동해야 할 거야. 오후 네 시까지 단정하게 준비하고 내려와. 유진이한테 사과하는 것도 잊지 말고.”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방을 나서는 시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재희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어젯밤 자신을 빗속으로 내쫓았던 사람들이 오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며느리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얼마나 아팠느냐가 아니라 손님들 앞에서 얼마나 얌전하게 행동하느냐는 것이었다.

재희는 부어오른 발목을 조심스럽게 만졌다.

통증이 심했지만 다시 누울 수는 없었다. 오늘만큼은 더 이상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연회가 끝나면 태윤과 제대로 이야기해 볼 생각이었다. 자신이 얼마나 아팠는지, 그가 차를 세우지 않고 지나갔을 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그리고 왜 자신보다 유진의 말을 더 믿는지 직접 묻고 싶었다.

아직 재희에게는 삼 년의 결혼생활을 포기할 용기가 없었다.

***

오후 네 시가 되자 저택은 화려한 연회장으로 변해 있었다.

천장에서는 커다란 샹들리에가 빛을 쏟아냈고, 대리석 바닥을 따라 흰 장미와 금빛 장식이 길게 이어졌다. 초대받은 손님들은 샴페인 잔을 든 채 명숙의 생일을 축하하고 있었으며, 홀 한쪽에서는 현악 사중주의 부드러운 연주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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