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버린 아내는 지하 세계의 여제였다

남편이 버린 아내는 지하 세계의 여제였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9
By:  해월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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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가 쏟아지던 밤, 남편 강태윤은 첫사랑을 감싸며 아내 윤재희를 집 밖으로 내쫓았다. 도둑 누명을 쓰고 냉동창고에 갇힌 것도 모자라, 사람들 앞에서 무릎까지 꿇어야 했다. 끝내 버림받은 그녀는 사고 후 남편과의 결혼을 잊었다. 대신 봉인됐던 과거가 깨어났다. 전국의 조직 보스들이 머리를 조아리던 지하 세계의 여제. 수조 원의 자금과 검은 권력을 움직이던 진짜 주인이 돌아온 것이다. 자신을 짓밟은 남편과 그의 첫사랑에게 재희는 차갑게 복수를 시작한다. 그 곁에는 그녀의 권력을 탐내지 않고 오직 그녀만을 원하는 남자 차현준이 있었다. 뒤늦게 진실을 안 태윤은 무릎 꿇고 매달리지만, 재희는 더는 그의 아내가 아니었다. 그녀를 짓밟던 자들은 이제 그녀 앞에 무릎 꿇는다. 여제의 귀환 뒤에는 큰 배신이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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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1화

“윤재희, 네가 유진이를 다치게 했어?”

강태윤의 목소리가 서재에 울려 퍼졌다.

재희는 자신을 바라보는 남편의 눈빛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다른 여자를 무릎에 앉혀놓고 애정을 나누던 남자가 이제는 그 여자의 손목을 조심스럽게 받쳐 든 채 아내를 추궁하고 있었다.

서유진의 하얀 손목에는 가느다란 상처가 나 있었고, 그 위로 배어 나온 피가 손가락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태윤은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 상처를 감싸주었으며, 유진은 아픈 기색을 감추려는 듯 입술을 깨물면서도 그의 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제가 그런 거 아니에요. 유진 씨한테 손도 안 댔어요.”

재희가 결백을 주장했지만 태윤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유진의 손목에 감긴 손수건을 고쳐 매주더니 이미 모든 사실을 확인했다는 듯 아내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네가 아니라면 유진이가 왜 다쳤겠어? 설마 혼자 자기 손목을 그었다는 거야?”

재희는 책상 위에 놓인 은색 편지칼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유진이 그 칼을 집어 들어 자신의 손목을 긁는 모습을 분명히 보았기에, 그녀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대신 천장 모서리에 설치된 보안 카메라를 가리켰다.

“태윤 씨, 저기 카메라 있잖아요. 영상만 확인하면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어요.”

태윤은 재희가 가리킨 곳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러나 보안실에 연락할 생각은 없는지 곧바로 시선을 거두었고, 오히려 유진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아내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지금 중요한 건 유진이가 다쳤다는 사실이야. 네가 먼저 사과하면 여기서 끝낼 수 있어.”

재희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남편을 바라보았다. 진실을 확인할 방법이 눈앞에 있는데도 태윤은 그것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 거짓말을 했는지가 아니라 누구의 편에 서고 싶은지인 것 같았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재희는 오늘 밤이 이렇게 끝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

태강그룹 후계자 취임식을 하루 앞둔 저녁이었다.

저택의 주방에는 갓 조리한 음식 냄새가 은은하게 퍼져 있었고, 재희는 남편이 좋아하는 갈비찜을 작은 그릇에 덜어 간을 확인하고 있었다.

집에는 요리사가 따로 있었지만, 중요한 날을 앞둔 남편에게 직접 저녁을 차려주고 싶었다. 요즘 태윤이 회사 일로 예민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적어도 집에 돌아와서는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재희는 식탁 위에 조개탕과 반찬을 정갈하게 올려놓은 뒤 벽시계를 바라보았다. 태윤이 평소 퇴근하던 시간보다 한 시간이 넘게 지나 있었지만 현관 쪽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휴대전화가 울린 것은 그때였다.

오늘 늦어. 기다리지 마.

태윤이 보낸 짧은 문자였다.

재희는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답장을 보냈다.

내일 취임식이잖아요. 선물도 준비했는데, 잠깐이라도 얼굴 볼 수 없어요?

답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식탁을 치우려다가 손을 멈췄다. 남편이 늦게라도 돌아오면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국만 다시 데우기로 하고, 작은 검은색 상자를 손에 들었다.

그 안에는 몇 주 전부터 준비한 은빛 넥타이핀이 들어 있었다. 태윤이 즐겨 입는 짙은 남색 정장에 어울리도록 디자인을 고르고, 이름의 첫 글자를 작게 새겨 넣은 선물이었다.

결혼 첫해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때 재희는 남편에게 넥타이를 선물했는데, 태윤은 거울 앞에서 그것을 매어보더니 색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별다른 애정 표현이 없던 남편이 자신이 고른 물건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재희는 며칠 동안 행복했다.

그날 저녁에는 태윤이 평소보다 일찍 귀가해 그녀가 직접 끓인 된장찌개를 먹었다. 재희가 뜨거운 냄비를 옮기다 손끝을 데자,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손을 살피며 다음부터는 요리사에게 맡기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그 말조차 자신을 걱정하는 다정함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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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윤재희, 네가 유진이를 다치게 했어?”강태윤의 목소리가 서재에 울려 퍼졌다.재희는 자신을 바라보는 남편의 눈빛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다른 여자를 무릎에 앉혀놓고 애정을 나누던 남자가 이제는 그 여자의 손목을 조심스럽게 받쳐 든 채 아내를 추궁하고 있었다.서유진의 하얀 손목에는 가느다란 상처가 나 있었고, 그 위로 배어 나온 피가 손가락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태윤은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 상처를 감싸주었으며, 유진은 아픈 기색을 감추려는 듯 입술을 깨물면서도 그의 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제가 그런 거 아니에요. 유진 씨한테 손도 안 댔어요.”재희가 결백을 주장했지만 태윤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유진의 손목에 감긴 손수건을 고쳐 매주더니 이미 모든 사실을 확인했다는 듯 아내를 차갑게 노려보았다.“네가 아니라면 유진이가 왜 다쳤겠어? 설마 혼자 자기 손목을 그었다는 거야?”재희는 책상 위에 놓인 은색 편지칼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유진이 그 칼을 집어 들어 자신의 손목을 긁는 모습을 분명히 보았기에, 그녀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대신 천장 모서리에 설치된 보안 카메라를 가리켰다.“태윤 씨, 저기 카메라 있잖아요. 영상만 확인하면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어요.”태윤은 재희가 가리킨 곳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러나 보안실에 연락할 생각은 없는지 곧바로 시선을 거두었고, 오히려 유진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아내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했다.“지금 중요한 건 유진이가 다쳤다는 사실이야. 네가 먼저 사과하면 여기서 끝낼 수 있어.”재희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남편을 바라보았다. 진실을 확인할 방법이 눈앞에 있는데도 태윤은 그것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 거짓말을 했는지가 아니라 누구의 편에 서고 싶은지인 것 같았다.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재희는 오늘 밤이 이렇게 끝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태강그룹 후계자 취임식을 하루 앞둔 저녁이었다.저택의 주방에는 갓 조리한 음식 냄새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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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재희는 그 작은 기억들을 붙잡고 삼 년을 살았다. 남편이 무뚝뚝한 것은 원래 성격 때문이라고, 언젠가는 자신에게도 마음을 열어줄 거라고 믿으면서.그러나 결혼생활이 길어질수록 태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은 줄어들었고, 재희에게 건네는 말도 점점 짧아졌다. 그녀가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 그는 피곤하다는 이유로 대화를 끝냈으며, 함께 식사하자고 부탁하는 날이면 회사에 일이 많다며 늦게 들어왔다.재희는 서운함을 느낄 때마다 스스로를 달랬다. 내일은 태윤에게 중요한 날이니 오늘만큼은 괜한 불평을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그렇게 식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이층 서재 쪽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남편이 돌아온 모양이었다.재희는 반가운 마음에 상자를 챙겨 계단을 올라갔다.서재 문이 조금 열려 있었고, 안쪽에서는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시어머니가 손님을 데려온 줄 알았지만, 문 가까이 다가간 순간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오빠, 나 없을 때 정말 행복했어?”서유진이었다.두 달 전 귀국한 태윤의 첫사랑이었다. 재희는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지만, 태윤이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라고 말했기에 애써 이해하려 했다.그러나 문틈으로 보이는 광경은 그녀가 생각했던 친구 사이와는 거리가 멀었다.유진은 태윤의 단단한 허벅지 위에 몸을 밀착한 채 걸터앉아 있었다. 얇은 실크 블라우스의 어깨가 느슨하게 흘러내려 하얀 어깨와 쇄골이 드러났고, 그녀는 남편의 넥타이를 손가락에 감았다 풀기를 반복하며 도발적인 미소를 짓고 있었다.태윤은 그녀의 허리를 한 팔로 깊숙이 감싸 안은 채 소파에 기대어 있었다. 유진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자 그는 피하기는커녕 그녀의 입술을 내려다보았고,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금방이라도 입술이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나 떠나고 그렇게 빨리 결혼했잖아. 혹시 나 잊으려고 결혼한 거야?”유진이 그의 귓가에 속삭이자 태윤은 대답 대신 낮게 웃었다.그 웃음에는 재희가 익히 알던 무심함이 없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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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하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저 사람은 당신 첫사랑이잖아요. 제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요? 두 사람이 예전에 얼마나 사랑했는지, 어머니가 얼마나 유진 씨를 며느리로 들이고 싶어 하셨는지 저도 알아요.”재희는 숨을 고른 뒤 남편을 똑바로 바라보았다.“그래도 지금 당신 아내는 저예요.”태윤은 짜증스럽게 한숨을 내쉬었다.“그걸 누가 몰라? 유진이는 오랜 친구고, 힘든 일이 있어서 위로해 준 것뿐이야.”그의 말에 재희는 기가 막혀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오랜 친구는 남의 남편 무릎에 앉아도 되는 거예요?”그때 유진이 두 사람 사이로 조심스럽게 다가왔다.“형수님, 정말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유진은 눈가를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울음을 참는 것처럼 입술을 떨고 있었지만, 정작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지 않았다.“오빠가 내일 취임식을 앞두고 긴장한 것 같아서 장난 좀 친 건데, 형수님이 이렇게 속상해하실 줄은 몰랐어요.”재희는 그녀를 바라보았다.“결혼한 남자 무릎에 앉아서 옛날 사랑 이야기를 하면 그 아내가 어떤 기분일지 정말 몰랐어요?”유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태윤을 돌아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그 짧은 시선 하나에 태윤의 얼굴이 굳어졌다.“재희야, 그만해. 유진이가 사과했잖아.”재희는 남편을 바라보았다.“그럼 당신은요? 당신은 저한테 미안하지 않아요?”태윤은 한동안 아내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미안함보다 귀찮다는 기색이 더 짙었다.“이런 식으로 사람 몰아세우면 속이 시원해?”재희는 입술을 다물었다.그녀가 바란 것은 거창한 사과가 아니었다. 남편이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말해주기만 해도 좋았다.그러나 태윤은 끝내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그때 유진의 시선이 재희의 손에 들린 상자로 향했다.“어머, 형수님. 그건 뭐예요? 오빠 선물이에요?”재희가 대답하지 않자 유진은 상자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형수님 정말 다정하시다. 그런데 오빠는 그런 장식 별로 안 좋아하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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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그녀는 손목을 움켜쥔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태윤이 벌떡 일어나 유진에게 달려갔다.“유진아!”유진의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재희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왜 그래요?”유진은 울먹이며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오빠. 형수님이 일부러 그러신 건 아닐 거야.”재희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그제야 유진이 무엇을 꾸몄는지 깨달았다.“지금 무슨 소리예요? 저는 당신한테 손도 안 댔잖아요.”유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태윤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흐느꼈다.“내가 자꾸 다가가서 형수님이 놀라신 거야. 내가 잘못했어.”태윤은 유진의 손목을 살폈다.그리고 천천히 재희를 돌아보았다.그의 눈빛이 차갑게 굳어 있었다.***재희는 남편의 추궁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다.“태윤 씨, 정말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면 영상부터 확인해 주세요. 그다음에도 제 잘못이 맞다면 사과하겠어요.”그러나 태윤은 그녀의 말을 듣고도 카메라를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진의 어깨를 감싸며 재희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했다.“당신은 제가 억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봤어요?”재희의 물음에 태윤은 차갑게 대꾸했다.“지금 네 행동을 보면 믿을 이유가 없군.”그 말을 듣는 순간 재희는 가슴 한가운데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 자신을 삼 년 동안 지켜본 남편이 고작 몇 분 만에 내린 결론이었다.***오명숙은 서재에서 벌어진 일을 듣자마자 거실로 내려왔다.그녀는 유진의 손목을 살피더니 곧장 재희에게 시선을 돌렸다.“이게 대체 무슨 짓이니?”재희는 이미 여러 번 같은 설명을 반복한 뒤였다. 그러나 시어머니 앞에서도 다시 말해야 했다.“어머니, 저는 유진 씨를 다치게 하지 않았습니다. 서재에 카메라가 있으니 영상만 확인하면…….”“그만!”명숙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거실에 울렸다.그녀는 재희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내가 처음부터 너를 반대한 이유가 뭔지 아니? 사람은 자란 환경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야. 고아라고 해서 다 나쁘다는 건 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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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끝까지 말대꾸를 하는구나.”그녀는 태윤을 돌아보았다.“네가 결정해. 이런 며느리를 계속 집에 둘 거니?”재희는 남편을 바라보았다.태윤은 천천히 일어났다.그의 얼굴에는 피로와 짜증이 섞여 있었다.“재희야, 오늘은 나가 있어.”재희는 귀를 의심했다.“뭐라고요?”“서로 감정이 격해졌으니까 밖에서 좀 진정하고 와.”재희는 창밖을 바라보았다.검은 하늘 아래로 빗줄기가 거세게 쏟아지고 있었다.“지금요? 밖에 비가 얼마나 오는지 알아요?”태윤은 대답하지 않았다.“그럼 당신이 먼저 사과했어야지.”재희는 한동안 남편을 바라보았다.“사과하면 들어와도 돼요?”태윤의 눈매가 좁아졌다.“그게 그렇게 어려워?”재희는 고개를 숙였다.눈물이 떨어졌다.그녀는 한참 뒤 다시 고개를 들었다.“제가 정말 잘못한 거라면 백 번이라도 사과할게요.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에요.”태윤의 얼굴이 굳었다.재희는 마지막으로 물었다.“당신은 정말 저를 믿어줄 수 없어요?”그는 짧게 대답했다.“지금 네 행동을 보면 믿을 이유가 없군.”재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빗바람이 얼굴을 때렸다.재희는 얇은 카디건을 여몄다. 태윤이 오늘 집에 있을 줄 알고 외투도 제대로 챙기지 않은 상태였다.그녀는 현관 계단에서 잠시 멈춰 섰다.혹시 남편이 자신을 부르지 않을까. 우산이라도 가져다주지 않을까.그런 기대가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그러나 등 뒤에서 들리는 것은 유진을 걱정하는 태윤의 목소리뿐이었다.“손목 아직 아파?”“조금 따가워.”“병원 가자.”재희는 천천히 돌아보았다.거실 안쪽에서 태윤이 유진의 어깨에 재킷을 걸쳐주고 있었다.그 모습을 보는 순간 재희의 가슴이 아프게 조여들었다.지난겨울, 그녀는 고열로 쓰러진 적이 있었다. 태윤에게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는 중요한 회의가 있다며 집을 나섰다.그때 재희는 남편이 바쁘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오늘은 알 것 같았다.바빠서가 아니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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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재희는 차가워진 손가락을 비비며 기다렸다. 비를 오래 맞은 탓인지 손끝의 감각이 둔해졌고, 젖은 옷이 피부에 달라붙어 몸이 떨렸다.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는 몇 번의 연결음 끝에 태윤이 받았다.“왜?”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재희는 떨리는 입술을 가까스로 움직였다.“저 지금 정문 밖에 있어요. 택시가 안 잡혀서 그런데, 기사님이라도 보내주시면 안 돼요?”태윤은 짜증스럽게 한숨을 내쉬었다.“윤재희, 언제까지 이럴 거야? 당신이 잘못해놓고 이제는 불쌍한 척하는 거야?”재희는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불쌍한 척하는 게 아니에요. 정말 너무 추워요.”“그럼 가까운 호텔이라도 가.”“차가 안 잡힌다니까요.”태윤은 잠시 침묵했다.그때 전화기 너머에서 유진의 목소리가 들렸다.“오빠, 형수님이야? 아직 밖에 계셔? 어떡해. 비 많이 오는데.”유진의 목소리는 걱정으로 가득했다.재희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이 답답해졌다. 조금 전까지 자신을 죄인으로 만든 여자가 이제는 자신을 걱정하는 척하고 있었다.“태윤 씨, 저 좀 데리러 와줘요. 한 번만요.”전화기 너머로 짧은 침묵이 흘렀다.재희는 남편이 돌아오겠다고 말하기를 기다렸다.그러나 태윤은 차갑게 대답했다.“유진이 병원 데려가는 중이야.”재희는 눈을 감았다.“유진 씨는 손목에 조금 긁힌 상처잖아요.”“조금?”태윤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당신이 다치게 해놓고 그런 식으로 말해?”재희는 입술을 깨물었다.“저도 다칠 것 같아요. 몸이 너무 떨려요.”“그런 말로 나 협박하지 마. 사과할 생각이 들면 연락해.”통화가 끊어졌다.재희는 휴대전화를 내려다보았다. 화면 위로 빗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그녀는 잠시 그대로 서 있다가 멀리서 다가오는 자동차 전조등을 발견했다.익숙한 검은색 세단이었다.태윤의 차였다.재희는 본능적으로 도로 쪽으로 한 걸음 나갔다.“태윤 씨!”차가 가까워지자 운전석에 앉은 태윤의 얼굴이 보였다. 조수석에는 유진이 앉아 있었고, 그녀의 어깨에는 태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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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차 안에서 유진은 태윤의 휴대전화 화면을 곁눈질했다.재희가 보낸 문자에는 돌아와 달라는 부탁이 적혀 있었다. 유진은 입술 안쪽을 깨물며 웃음을 참았지만, 곧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창밖을 돌아보았다.“오빠, 형수님 정말 많이 젖으셨던데…… 아까 넘어지신 것 같지 않았어? 혹시 크게 다치셨으면 어떡해?”태윤은 핸들을 고쳐 잡으며 앞만 바라보았다.“성인이야. 알아서 하겠지.”“그래도 저렇게 비를 맞고 계시면 감기라도 걸리실 텐데. 나 때문에 두 분이 싸우신 것 같아서 마음이 안 좋아.”유진은 손목에 감긴 손수건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태윤은 그런 그녀를 잠시 바라보더니 걱정할 필요 없다며 달랬다.“네 잘못 아니야. 재희가 원래 질투가 심해서 그래. 오늘도 네가 다쳤는데 끝까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잖아.”그 대답에 유진의 입가가 희미하게 올라갔다.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손수건 아래의 작은 상처를 손끝으로 눌렀다.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만했다.오늘 태윤이 아내의 말보다 자신의 눈물을 믿는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니, 앞으로 재희를 몰아붙이는 일은 훨씬 쉬워질 터였다.***재희는 결국 저택 정문으로 돌아왔다.발목이 아파 멀리 걸을 수 없었고, 택시는 여전히 잡히지 않았으며, 휴대전화 배터리도 얼마 남지 않았다. 도로 가장자리에서 한참을 망설였지만 이 근처에는 비를 피할 만한 가게나 건물조차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철문 옆 인터폰을 눌렀다.잠시 뒤 경비실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사모님…… 아직 밖에 계셨습니까?”재희는 철문에 손을 얹고 가까스로 대답했다.“문 좀 열어주세요. 집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게 아니에요. 경비실에서 잠깐만 비를 피하게 해주세요.”직원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재희는 그가 망설이는 이유를 짐작하면서도 간절하게 말을 이었다.“발목을 다쳤어요.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은데 휴대전화도 곧 꺼질 것 같아서요. 전화 한 통만 하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무전기 소리가 들리더니 직원이 누군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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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재희는 이마를 차가운 철문에 기댔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빗물이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렸고, 젖은 손으로 문을 붙잡으려던 순간 손가락에서 무언가 미끄러졌다.작은 금속음이 들렸다.재희는 고개를 숙였다.결혼반지였다.차가운 빗물에 오래 노출된 손가락에서 반지가 미끄러져 빠진 모양이었다. 은빛 반지는 젖은 바닥을 몇 번 굴러가더니 배수구 가장자리에 걸렸다.재희는 놀라 몸을 숙였다.“안 돼…….”발목에 날카로운 통증이 올라왔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무릎을 바닥에 대고 손을 뻗었다. 조금만 더 손가락을 뻗으면 반지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나 그 순간 경사진 도로를 따라 흘러내린 빗물이 배수구로 한꺼번에 밀려들었고, 반지는 물살에 휩쓸려 철제 덮개 아래로 떨어졌다.재희는 숨을 멈췄다.그녀는 손가락을 배수구 틈으로 밀어 넣어 몇 번이나 더듬었다. 거친 금속에 손톱이 긁히고 다친 손바닥에서 다시 피가 배어 나왔지만, 반지를 찾을 수만 있다면 그런 통증쯤은 견딜 수 있었다.그 반지는 결혼식 날 태윤이 직접 끼워준 것이었다.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넌 내 아내야.그날 태윤은 그렇게 말했다.재희는 그 말을 믿었다. 남편이 자신을 뜨겁게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적어도 아내라는 자리는 지켜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태윤이 무심하게 굴 때마다 결혼식 날의 약속을 떠올렸고, 그가 언젠가는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줄 거라고 기대했다.하지만 지금 재희는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고 있었다.태윤은 다른 여자를 품에 안고도 아내에게 미안해하지 않았고, 거짓 누명을 벗을 수 있는 증거가 있는데도 확인하지 않았다. 폭우 속으로 내쫓은 것도 모자라 쓰러진 자신을 보고도 차를 세우지 않았다.재희는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배수구 아래에서는 빗물이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녀는 텅 빈 약지를 바라보다가 반지가 빠진 자리를 엄지손가락으로 문질렀다.오랫동안 끼고 있었던 탓에 손가락에는 희미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재희는 다시 철문을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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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윤재희가 눈을 떴을 때, 창밖에는 이미 아침 햇살이 번지고 있었다.밤새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몸에 밴 한기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이불을 조금 걷어내자 퉁퉁 부어오른 발목이 드러났고, 무릎에는 상처를 덮은 거즈가 붙어 있었다. 몸을 일으키려던 재희는 발목에서 올라오는 통증에 얼굴을 찡그리며 침대 가장자리를 붙잡았다.어젯밤 저택 정문 앞에서 쓰러진 뒤의 일은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빗속에서 남편의 차가 자신을 지나쳐 가던 순간과 굳게 닫힌 철문을 열어달라고 애원하던 목소리, 그리고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아 휴대전화를 붙잡고 있던 기억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재희는 침대 옆에 놓인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마지막으로 태윤에게 보낸 문자가 화면에 남아 있었다.*태윤 씨, 저 정말 아파요. 제발 한 번만 도와줘요.*메시지에는 읽음 표시가 떠 있었지만 답장은 없었다.한동안 화면을 바라보던 재희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남편이 어째서 자신을 그렇게까지 내쫓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서유진의 손목을 다치게 하지 않았다고 몇 번이나 설명했지만, 태윤은 끝내 자신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그래도 직접 만나 이야기하면 달라질지 모른다는 기대가 남아 있었다. 어젯밤에는 서로 감정이 격해졌으니, 시간이 지나면 태윤도 자신이 지나쳤다는 사실을 깨달을지 몰랐다.재희는 그런 생각을 붙잡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발을 바닥에 디디자마자 날카로운 통증이 치솟았고, 결국 침대 기둥을 붙잡은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그때 방문이 열렸다.오명숙이었다.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창백한 얼굴이나 부어오른 발목에는 관심도 없는 듯 방 안을 둘러보았다.“아직도 누워 있었니? 오늘이 무슨 날인지 잊은 건 아니겠지?”재희는 침대 가장자리에 다시 앉으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어머니 생신인 거 알고 있어요. 연회 준비도 집사님께 모두 확인해 뒀어요. 그런데 어젯밤에 발목을 다쳐서 조금만 쉬려고 했어요.”명숙은 그제야 며느리의 발목을 내려다보았다. 퉁퉁 부어오른 피부와 무릎의 상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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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재희는 연한 베이지색 드레스를 입고 계단을 내려왔다. 발목 때문에 굽이 낮은 구두를 신었고, 창백한 얼굴을 감추려고 평소보다 화장을 진하게 했지만 손잡이를 짚고 한 계단씩 내려오는 모습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홀에 들어서자 태윤이 보였다.그는 짙은 남색 정장을 입고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재희가 밤새 기다렸던 남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고 있었다.그 옆에는 서유진이 있었다.어깨가 드러나는 연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유진은 태윤에게 바짝 붙어 있었다. 누군가 말을 걸면 자연스럽게 그의 팔에 손을 얹었고, 태윤은 그런 행동을 제지하기는커녕 그녀가 귓가에 무언가 속삭일 때마다 고개를 숙여 귀를 기울였다.재희가 다가가자 유진이 먼저 환하게 웃었다.“형수님, 몸은 좀 괜찮으세요? 어제 제가 다치는 바람에 형수님까지 많이 놀라셨죠?”그녀의 손목에는 여전히 흰 붕대가 감겨 있었다.주변 손님 몇 명이 두 사람을 돌아보자 재희는 유진의 손목을 잠시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손목은 많이 좋아졌나 보네요.”유진은 순간 대답을 멈췄지만 곧 가련한 미소를 지었다.“아직 좀 아프긴 한데, 오늘은 어머니 생신이니까 참아야죠.”그때 명숙이 다가와 유진의 손을 잡았다.“우리 유진이는 참 기특하기도 하지. 다쳤으면서도 내 생일이라고 이렇게 예쁘게 차려입고 왔잖아.”명숙은 손님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붉은 보석함을 열었다. 커다란 다이아몬드 반지가 샹들리에 불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다.“이건 내가 너 주려고 준비한 거야.”유진은 놀란 척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어머니, 이렇게 귀한 걸 저한테 주신다고요?”“너한테 주고 싶어서 산 건데 당연하지.”명숙이 직접 반지를 끼워주자 주변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손님들은 명숙이 유진을 친딸처럼 아낀다며 칭찬했고, 명숙은 흐뭇한 얼굴로 유진의 손등을 쓰다듬었다.재희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결혼하고 처음 맞았던 명숙의 생일이 떠올랐다. 그때 재희는 몇 달 동안 모은 돈으로 진주 브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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