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희는 그 작은 기억들을 붙잡고 삼 년을 살았다. 남편이 무뚝뚝한 것은 원래 성격 때문이라고, 언젠가는 자신에게도 마음을 열어줄 거라고 믿으면서.그러나 결혼생활이 길어질수록 태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은 줄어들었고, 재희에게 건네는 말도 점점 짧아졌다. 그녀가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 그는 피곤하다는 이유로 대화를 끝냈으며, 함께 식사하자고 부탁하는 날이면 회사에 일이 많다며 늦게 들어왔다.재희는 서운함을 느낄 때마다 스스로를 달랬다. 내일은 태윤에게 중요한 날이니 오늘만큼은 괜한 불평을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그렇게 식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이층 서재 쪽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남편이 돌아온 모양이었다.재희는 반가운 마음에 상자를 챙겨 계단을 올라갔다.서재 문이 조금 열려 있었고, 안쪽에서는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시어머니가 손님을 데려온 줄 알았지만, 문 가까이 다가간 순간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오빠, 나 없을 때 정말 행복했어?”서유진이었다.두 달 전 귀국한 태윤의 첫사랑이었다. 재희는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지만, 태윤이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라고 말했기에 애써 이해하려 했다.그러나 문틈으로 보이는 광경은 그녀가 생각했던 친구 사이와는 거리가 멀었다.유진은 태윤의 단단한 허벅지 위에 몸을 밀착한 채 걸터앉아 있었다. 얇은 실크 블라우스의 어깨가 느슨하게 흘러내려 하얀 어깨와 쇄골이 드러났고, 그녀는 남편의 넥타이를 손가락에 감았다 풀기를 반복하며 도발적인 미소를 짓고 있었다.태윤은 그녀의 허리를 한 팔로 깊숙이 감싸 안은 채 소파에 기대어 있었다. 유진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자 그는 피하기는커녕 그녀의 입술을 내려다보았고,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금방이라도 입술이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나 떠나고 그렇게 빨리 결혼했잖아. 혹시 나 잊으려고 결혼한 거야?”유진이 그의 귓가에 속삭이자 태윤은 대답 대신 낮게 웃었다.그 웃음에는 재희가 익히 알던 무심함이 없었다.
Last Updated : 2026-10-18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