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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앉아

Penulis: 케사르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9-04 04:02:16

해원이 다이닝룸 문을 열자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향했다.

“잘 잤어?”

수경이 먼저 물었다.

“응.”

해원은 식탁으로 다가갔다.

차명우가 상석에 앉아 있었고, 수경은 그 오른편이었다. 태헌은 맞은편에 앉아 태블릿으로 기사를 읽고 있었다.

남은 자리는 태헌의 옆뿐이었다.

해원은 의자로 가지 않고 창가의 커피포트 앞에 섰다.

“커피부터 마실게.”

“빈속에 커피 마시지 마.”

수경이 의자를 가리켰다.

“일단 앉아. 아침 먹고 마셔.”

“물만 조금 마시고.”

해원은 유리병을 들어 잔에 물을 따랐다. 천천히 마시는 동안에도 태헌은 태블릿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해원아.”

수경의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났다.

“어디 불편해?”

“아니. 괜찮아.”

그제야 태헌이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그가 옆에 있는 의자를 잡아 뒤로 빼냈다.

“앉아, 해원아.”

다정한 오빠의 말투였다.

하지만 해원의 몸은 그 말을 다른 방식으로 알아들었다.

생각하기도 전에 의자 앞으로 걸어갔다.

천천히 앉으려 했지만 엄마가 보고 있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속도로 몸을 내렸다.

엉덩이가 의자에 닿는 순간 둔한 통증이 올라왔다.

해원은 물잔을 입에 가져갔다.

차가운 물을 한 모금 삼켰다.

태헌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웃지도, 모른 척 시선을 돌리지도 않았다.

“잘 잤어?”

해원은 잔을 내려놓았다.

“응.”

그의 눈을 보며 호칭을 붙였다.

“오빠.”

수경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며칠은 어색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금방 친해졌네.”

태헌은 아무 대답 없이 커피포트를 들었다.

“마실래?”

“네.”

해원은 대답한 뒤 잠시 멈췄다.

수경과 차명우가 듣고 있었다.

“응. 고마워, 오빠.”

태헌이 해원의 잔에 커피를 따랐다.

검은 액체가 차오르는 동안 두 사람의 시선이 잠깐 마주쳤다.

식사가 절반쯤 끝났을 때 수경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해원아, 엄마 부탁이 하나 있는데.”

“말해.”

“결혼식 말이야.”

수경이 차명우를 한번 보고 다시 해원에게 시선을 돌렸다.

“라비엘에 맡겨도 될까?”

“우리 회사에?”

“응. 가능하면 네가 맡아줬으면 좋겠어.”

해원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엄마한테는 중요한 날이니까, 모르는 사람보다 네가 해주면 마음이 놓일 것 같아서.”

“정식으로 문의해야 해.”

“그럼 문의해도 돼?”

“의뢰부터 넣어.”

해원은 식탁 위에 놓인 일정표를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담당자는 회사에서 정해. 육 주면 준비 기간도 짧아서 내가 맡을 수 있을지는 확인해야 하고.”

차명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원아, 필요한 자료는 비서실에 준비해뒀어. 오늘 정식으로 접수하마.”

“네. 접수되면 바로 확인해볼게요.”

태헌이 냅킨을 내려놓았다.

“태원 쪽 자료도 준비돼 있어.”

그가 해원을 바라보았다.

“정식으로 맡게 되면 잘 부탁해, 해원아.”

부드러운 말투였다.

그러나 태헌은 무언가를 부탁해놓고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응, 오빠.”

해원은 통증이 남은 채로 그의 옆에 앉아 있었다.

태헌의 말은 부탁이 아니라 예고처럼 들렸다.

라비엘 프라이빗 사무실에 도착한 건 오전 아홉 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해원은 곧바로 회의실로 들어갔다.

벽면 모니터에는 이번 주 행사 일정과 인력 배치표가 떠 있었다. 정다연은 긴 테이블 끝에 앉아 태블릿으로 현장 보고서를 확인하고 있었다.

“왔어?”

“응.”

해원은 가방을 내려놓고 의자를 빼냈다.

앉자 엉덩이에 둔한 통증이 남아 있었다. 아침 식탁에서만큼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의자 깊숙이 기대지는 못했다.

다연이 태블릿에서 시선을 들었다.

“허리 안 좋아?”

“어제 이사했어.”

“짐 들다가 삐었어?”

“그런 것 같아.”

다연이 해원을 한번 보았다.

“현장 나가서 더 망가지지 말고 아프면 말해.”

“병원 갈 정도 아니야.”

해원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벽면 일정표 앞으로 갔다.

“오늘 주얼리 프라이빗 디너 리허설이지?”

“세 시. 그런데 브랜드 쪽에서 하객을 두 명 추가했어.”

다연이 변경된 좌석표를 띄웠다.

“메인 테이블은 이미 꽉 찼고.”

해원은 좌석표와 행사장 동선을 번갈아 확인했다.

“포토월 옆 테이블 없애고 두 자리를 메인 쪽으로 붙여.”

“그러면 서비스 동선이 겹쳐.”

“서빙은 오른쪽으로만 들어가게 바꿔. 촬영팀은 왼쪽 출입구 쓰고.”

해원은 손가락으로 모니터 위의 동선을 나눴다.

“추가된 두 명은 공개 촬영 동의 여부부터 확인해. 동의 안 하면 포토월 순서에서 빼고.”

다연이 수정 사항을 입력했다.

“알았어.”

업무에 집중하는 동안 통증은 점점 의식에서 멀어졌다.

회의를 마칠 무렵에는 다시 의자에 앉아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다연이 새 문서 하나를 해원 앞으로 밀었다.

“그리고 이거.”

표지에는 외부 유출 금지 표시가 붙어 있었다.

“태원그룹 회장 비서실에서 아침에 들어온 의뢰야.”

해원은 문서를 펼쳤다.

신랑 차명우.

신부 한수경.

해원은 다음 장으로 넘겼다.

결혼식까지 사십 일.

소수 초청 비공개 예식.

보도자료와 사진 공개 별도 협의.

태원가와 온재 갤러리 양측 하객 동선 분리.

신부 측 요청 담당자에는 윤해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다연이 물었다.

“신부 한수경 씨, 네 어머니 맞지?”

“맞아.”

“그래서 너를 지정했구나.”

해원은 일정을 먼저 계산했다.

“사십 일이면 오늘 안에 장소부터 잡아야 해.”

“태원호텔 연회장은 비워둘 수 있대.”

“호텔부터 확정하면 안 돼. 비공개 예식이면 출입구와 엘리베이터를 분리할 수 있는지 먼저 확인해야 해.”

해원은 문서 여백에 필요한 사항을 적었다.

“하객 명단은 열흘 안에 닫고, 보안팀과 촬영팀 계약도 따로 진행해. 기사 배포 여부가 정해지기 전까지 두 팀 자료도 분리하고.”

다연이 해원을 바라보았다.

“가족 행사인데 정말 네가 맡아도 괜찮겠어?”

“일로 들어왔으면 일이야.”

해원은 다음 장으로 넘겼다.

예산과 보안 관련 승인 절차가 적혀 있었다.

마지막 줄에서 손이 멈췄다.

태원가 최종 승인 담당자.

차태헌 전략기획본부장.

아침 식탁에서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정식으로 맡게 되면 잘 부탁해, 해원아.

“역시.”

해원이 작게 중얼거리자 다연이 눈썹을 올렸다.

“뭐가?”

“아무것도 아니야.”

다연이 일정표를 확인했다.

“첫 미팅은 오늘 오후 네 시. 태원그룹 본사에서.”

접수된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회의 시간까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태헌다운 방식이었다.

다연이 해원을 봤다.

“차태헌 본부장, 벌써 만난 적 있어?”

“응.”

해원은 의뢰서를 덮었다.

“아는 사이야?”

해원은 표지에 적힌 태원그룹의 이름을 내려다봤다.

어젯밤에는 주인님이었다.

오늘 아침에는 오빠였다.

그리고 오후 네 시부터는 본부장님이 된다.

“회사에서는 오늘 처음 보는 것처럼 해야 하는 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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