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2화

Author: 고능비
연회가 열리는 곳은 관성 호텔, 이 도시에서 가장 고급 호텔 중 하나이며, 7성급 호텔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예정은 이 호텔이 도대체 7성급 호텔이 옳은지 아닌지는 모르겠고, 온 적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예정네보다 먼저 호텔에 도착한 효진 고모는 구면인 부인들과 인사를 나눈 뒤 아들딸을 먼저 호텔로 보내놓고 호텔 입구에 남아 친정 조카가 오기를 기다렸다.

조카딸을 태우러 가기로 한 자신의 차가 다른 차량 뒤를 따라 천천히 오는 것을 보고 효진 고모는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고모."

"효진 고모."

예정은 친구를 따라 효진 고모에게 인사를 드렸다.

효진 고모는 조카딸이 예정을 데리고 온 것을 알고, 원래는 좀 심기가 불편했었다.

전에 예정을 본 적이 있는데, 부모 없는 이 아이가 자기 조카딸보다 더 이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히 보통 집안 딸인데, 온몸에서 모두 명문가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예정이 조카딸의 인기를 빼앗을까 봐 걱정되었던 효진 고모는 예정이 시집갔다는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드레스가 아닌 평범한 옷을 입고 눈에 띄지 않는 옅은 화장을 하고 악세서리도 착용하지 않은 예정이 예쁘고 화사하게 단장한 조카딸에게 타고난 미모가 가려진 것을 보고 효진 고모는 속으로 예정이 눈치가 빠르고 철이 든 아이구나 하며 만족스럽게 생각했다.

"자, 내가 너희들을 데리고 들어갈게. 효진아, 초대장을 꺼내, 들어가려면 초대장을 검사 맞히고 등록해야 해."

"이제 들어가면 너희 둘은 많이 보고 적게 얘기해 알았지? 적당한 때 내가 다시 사람들을 소개해 줄게. 예정아, 넌 항상 효진보다 더 침착하니까 잘 지켜보고 있어, 얘가 사고를 치지 못하게 해. 관성 호텔은 전씨 가문의 많은 호텔 중 하나인데 그 집 도련님들도 오늘 밤 연회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어.”

효진 고모는 조카딸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효진아, 네가 재벌 집 도련님 눈에 든다면 정말 우리 심씨 집안의 큰 복이 될 거야. 다른 재벌 집보다 조용할 뿐만 아니라, 가풍도 아주 좋고, 권력 다툼 그런 것도 거의 없다고 보면 돼. 주로 그 집 남자들 모두 밖에서 애인을 만드는 일에 거의 관심이 없어 믿을 만한 사람들이고 말이야.”

"네 사촌 여동생은 아직 어려서 아쉽지 뭐. 그렇지 않으면 이런 좋은 일이 너한테 차려지겠어?”

조카가 아무리 이뻐도 딸보다 못한 건 사실이고....

그녀의 딸은 이제 막 열일곱 살이고, 아직 성년이 되지 않아서 혼담은 너무 일렀다.

"….고모, 관성 재벌 집 문턱이 저희보다 너무 높아서 그런 헛된 꿈을 꾸진 않을래요.”

심효진은 원래 그냥 먹고 마시러 온 거였다.

예정은 옆에서 듣기만 하고 말참견하지 않았다.

자기는 원래 구경하러 온 것뿐이고, 목적은 먹고 마시는 것이고....

관성 호텔의 음식은 특히 맛있다고 소문났다.

“금방 재벌가 성이 뭐라 하셨어요?

"전 씨."

"전 씨라....아주 특별한 성이네요."

효진이 친구를 살짝 건드렸다.

‘예정이와 결혼을 한 그 남자도 전 씨 성이였는데....’

친구의 뜻을 알아챈 예정은 그냥 웃기만 하고 말을 하지 않았다.

자기 남편도 비록 성은 같은 전 씨이지만, 재벌 집안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늘 아래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동성동명인 사람들도 적지 않다.

"전 씨가 재벌이긴 하지만 그 집의 문턱은 그리 높지 않아. 인품만 좋으면 그 집 사내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어른들도 까다롭게 굴지 않을 거야.”

조카딸은 생김새도 괜찮고 인품도 좋고, 친정 집안 형편도 괜찮아서 재벌 집들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다른 수많은 집보다는 조건이 좋아서 기회가 없지는 않다고 효진 고모는 생각했다.

왼쪽 귀로 듣고 오른쪽 귀로 흘러버리는 심효진 때문에 화난 효진 고모는 조카의 귀를 잡아당기면서 말한다.

"둘이 먼저 들어가 봐, 고모는 아는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러 가야겠어."

"고모, 그럼, 먼저 들어갈게요."

심효진은 서둘러 예정을 끌고 들어갔다.

‘이젠 더 이상 고모의 잔소리를 안 들어도 되겠지? 정말 엄마랑 똑같아, 어쩐지 고모가 엄마랑 사이가 좋다고 했어. 같은 사람들인 거야.’

관성 호텔에 이미 여러 번 와보앗던 심효진은 친구를 데리고 익숙한 솜씨로 두 접시에 음식을 가득 담고 구석으로 숨어들었다.

"우리가 여기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인사하러 가도 우리를 상대도 안 해줄 거야. 우선 먹기나 해, 상류사회의 연회가 어떤 건지, 우린 그냥 구경만 하고 가자."

"너 고모가 네가 여길 먹으러 온 걸 알면 화나 돌아가시겠어."

비록 예정도 먹으러 온 것이지만 말이다.

"예정아, 나 같은 조건에 오늘 밤 이곳에 나타난 젊은 남자들을 감히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해? 고모는 왜 내가 재벌 집 도련님들의 눈에 들 거라고 꿈이나 꾸냔 말이야? 내가 뭐 절세미인도 아니고, 나 같은 조건에 최고의 부잣집 도련님의 눈에 들 수나 있겠어? 허허, 우리 고모도 참....상관하지 말고 빨리 먹기나 해, 전에 여기 와서 먹은 적이 있었는데, 어떤 음식들은 너무 비싸 감히 시킬 엄두도 못했어, 이 기회에 다 맛봐야겠어.”

"덕분에 나도 맛볼 수 있게 되었어!"

둘은 구석진 곳에 숨어서 통쾌하게 먹고 마시기 시작했다.

갑자기!

온 호텔 사람들이 모두 호텔 입구를 바라보더니 순식간에 떠들썩하던 현장도 조용해졌다.

한창 맛있게 먹던 두 사람은 뭔가 무슨 일이 있음을 알았다.

"효진아, 왜 모두 조용해졌지? 누가 온거야?"

"나도 몰라."

효진이 일어서자 예정도 따라와 까치발을 하고 호텔 입구를 바라보았지만, 현장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누가 호텔에 들어왔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태윤은 양복 차림으로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자기 집 호텔로 들어섰다.

오늘 밤 연회를 연 사람은 상업계의 우두머리인데, 태윤은 그 상업계의 우두머리와 친분이 꽤 있었다.

전씨 가문의 후계자로서, 게다가 자신의 호텔에서 열리는 연회이니만큼 당연히 그 사람에게 체면을 세워줘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중요한 일을 마저 처리한 후 연회장에 나타난 것이다.

키가 훤칠하고 생김새가 뛰어난 태윤은 늘 얼굴에 웃음기 없이 차갑고 도도해 보이지만 여전히 큰 자석처럼, 그가 어디를 가든 순식간에 사람들의 초점이 되곤 한다.

"전 사장님."

"전 사장님."

태윤이가 들어서자 모두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태윤도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했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Comments (6)
goodnovel comment avatar
장정옥
휴폰바꿔서2283회볼차례인데안돼네요~~
goodnovel comment avatar
서현연
배경이 비슷하니 스토리도 비슷비슷 해요 그러나 재미는 있네요
goodnovel comment avatar
ᄒᄉ
업데이트 좀 많이 해주세요
VIEW ALL COMMENTS

Latest chapter

  • 내 남편은 억만장자   제4179화

    하예진은 예전에 말한 적 있었다. 정일범 형제 셋이 앞으로 얌전히 지내거나 강성 중심에서 한발 물러서 더 이상 자신을 건드리지 않고 이씨 가문의 것을 탐내지만 않는다면 굳이 그들에게 손을 댈 생각은 없다고.하지만 이윤미는 자신의 오빠들이 그렇게 물러설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들을 감옥에 확실히 붙잡아 두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하예진이 이씨 가문을 이끄는 일을 막으려 들 것이고 그러다 보면 그들 집안은 산산조각 나고 결국 아무것도 지키지 못한 채 무너지게 될 것이 분명했다.그리고 이렇게 나서는 이윤미 역시 깊은 상처를 피할 수 없었다.“말려도 듣지를 않아요. 저더러 같이하자는 말 한 번도 하지 않더라고요.”하예진은 침대 곁에 앉아 아직 붉게 부어 있는 이윤미의 얼굴을 조심스레 어루만졌다.“방 비서님, 얼음찜질해 주면 붓기가 빨리 빠질 거예요.”방윤림이 고개를 끄덕였다.“계속 얼음찜질을 해드리고 있었습니다. 아가씨께서 마음을 정하신 일은 누구도 바꾸지 못할 거예요. 전임 가주님도 예외는 아니었죠.”이은화는 한때 이윤미를 강성에서 멀리 떠나보내려고 했다. 딸만 안전하게 지켜낼 수 있다면 혈통 하나는 이어질 테고 언젠가 다시 힘을 모아 이씨 가문의 권한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여겼던 것이다.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은화 혼자만의 희망에 지나지 않았다.이윤미는 가주의 자리가 정상적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이씨 가문을 잇겠다는 뜻을 완전히 내려놓았다.그녀가 바라는 건 그저 이 전쟁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고 이곳을 떠나 권력 다툼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태어나 단 한 번도 권세를 탐한 적 없는 사람이었다.그저 조용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삶을 원했을 뿐이다.하예진은 숨을 가늘게 내쉬었다.“겉으론 냉정해 보여도 사실 정이 많은 사람이에요.”이번 일을 계기로 이윤미와 세 오빠의 인연은 사실 완전히 끊어졌다.그녀는 더는 그들을 위해 마음을 쓰거나 대신 나서서 무언가를 챙겨 주려 하지

  • 내 남편은 억만장자   제4178화

    이윤미의 몸에는 이은화에게서 이어받은 냉정하고도 무서운 피가 흐르고 있었다.“나 병원에 좀 다녀올게요.”이윤미가 구해졌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응급실로 들어갔다는 말이 이어지는 순간 하예진은 더 이상 누워 있을 수 없었다.그녀는 이불을 걷어내고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노동명도 재빨리 뒤따랐다.“여보, 밖은 아직 어둡고 추워요. 다리도 아직 불편한데 조금 더 쉬어요.”하예진은 남편이 강성의 봄추위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가 집에서 쉬길 바랐다.하지만 노동명은 옷을 챙겨 입으며 말했다.“아니야, 같이 갈게. 지금 바로 경호원들한테 연락해서 함께 가게 할 테니까 내 걱정 안 해도 돼.”노동명은 이윤미에게 닥친 일은 그녀 스스로 선택한 방식에서 비롯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하예진을 혼자 내보낼 수는 없었다.혹시라도 하예진에게 무슨 위험이 닥칠까 너무 걱정스러웠다.정일범 형제도 한때는 하예진을 노릴 마음이 있었지만 그녀의 뒤에는 건드릴 수 없는 힘들이 버티고 있었다.결국 하예진에게 손을 대면 자신들뿐 아니라 자식들까지 무사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표적은 이윤미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이윤미는 분명 그들의 친동생이지만 그들은 누구보다도 이 여동생을 증오했다.게다가 이윤미가 죽으면 친오빠라는 이유로 그녀가 상속받은 막대한 재산을 고스란히 넘겨받을 수 있다고 여겼다.돈 앞에서는 누구나 흔히 예측할 수 없는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하예진은 더 말하지 않았다.곧 부부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강일구와 경호원들은 이미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두 사람이 나오자마자 몇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병원으로 가요.”하예진의 말에 강일구는 고개를 숙이며 바로 따랐다.그렇게 일행은 급히 병원으로 향했다.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윤미는 이미 응급실에서 나왔다.다행히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두들겨 맞을 때 몸을 웅크리며 머리를 감싸고 있었기에 정일군에게 걷어차이고 맞은 통증은 몸 곳곳에 남았지만 치명적이진 않았다.다만 멍이 들었을 뿐이

  • 내 남편은 억만장자   제4177화

    이씨 가문의 대저택.안방에서 겨우 두 시간 남짓 눈을 붙이던 하예진이 갑자기 눈을 뜨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그 순간 옆에 누워 있던 남편도 놀라 깨어났다.“왜 그래? 악몽이라도 꾼 거야?”노동명은 상반신을 일으키며 방 안의 불을 켜며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하예진을 살폈다.“윤미 씨한테 무슨 일이 생기는 꿈을 꿨어요. 저를 데리고 가지 않겠다고 하더니 일부러 조금 다칠 계획이라고 하는데 왠지 정말 위험해질 것 같아서 너무 불안해요.”오랜 시간 함께 지내며 하예진은 이윤미를 진심으로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윗세대의 원한만 아니었다면 두 사람은 이미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지금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깊은 호감과 공감이 있었다.이씨 가문 사람들 가운데 하예진이 제대로 인정하는 이는 이윤미뿐이었다.고현도 마찬가지로 이윤미만 좋게 보았다.고현은 한때 이윤미와 남동생을 이어 보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그러나 고빈은 이윤미에게 관심이 없었고 이윤미 역시 그에게 아무 느낌이 없었다.정작 이윤미가 마음을 두었던 사람은 고현이었지만 고현은 여자였다.그 감정을 접은 뒤로 이윤미의 마음은 서서히 방윤림에게 향하기 시작했다.비록 고아였지만 방윤림은 이윤미에게만큼은 한결같았고 목숨까지도 내주는 듯한 헌신을 보여 주었다.두 사람은 누구나 인정할 만큼 잘 어울렸다.“윤미 씨한테 전화해 볼게요.”하예진은 휴대전화를 들어 현재 새벽 세 시가 넘은 시간이라는 것도 잊은 채 바로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바로 연결되었다.하예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전화를 받을 수 있다는 건 적어도 이윤미가 완전히 연락이 끊긴 상태는 아니라는 뜻이었다.만약 전원이 꺼져 있다면 아직 상황이 끝나지 않았고 세 오빠에게 붙잡혀 아무와도 연락할 수 없다는 의미였을 것이다.한참 만에야 전화가 받아졌다.“하예진 씨.”들려온 목소리가 방윤림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조금 진정되었던 하예진의 가슴이 다시 조여들었다.“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거예요? 윤미 씨는요?”“일

  • 내 남편은 억만장자   제4176화

    그들이 이씨 가문의 전부를 물려받을 수는 없었지만 어머니가 가주였던 만큼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들을 이씨 가문의 도련님으로 대접해 왔다.어릴 때부터 부족함이라고는 모르고 자랐고 고생해 본 적도 없었다.돈은 물 쓰듯 흘려도 아무렇지 않았고 어디를 가든 비위를 맞춰 주는 사람이 넘쳤다.그런데 그런 삶은 순식간에 끝이 났다.더는 그들을 떠받드는 이는 없었고 잘못을 감싸 주는 사람 역시 사라졌다.막상 스스로 돈을 벌어 보니 손에 들어온 돈은 초라하기만 했고 예전처럼 돈을 생각 없이 쓰는 생활은 아득한 지난날이 되었다.하여 그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만족하지 못했고 내려놓을 줄도 몰랐다.정일범 형제는 예전처럼 떠받들어지고 말 한마디면 모두가 움직이던 시절을 되찾고 싶었다. 그리고 그 욕망은 점점 커져 이윤미를 향한 불만과 증오로 굳어졌고 그녀를 없애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자 마침내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납치는 성공이었다.세 사람이 덤비자 이윤미는 당해 낼 수가 없었다.칼을 내리치기만 하면 그녀를 그 자리에서 끝내 버릴 수도 있었지만 막상 칼을 손에 쥐고 보니 그들의 가슴속에 되려 두려움이 엄습했다.하여 이윤미에게 비밀번호를 말하라며 윽박지르고 열쇠를 내놓으라며 고성을 지르면서 모든 책임을 그녀에게 떠넘기며 시간을 질질 끌었다.엉뚱한 말만 늘어놓다가 정작 자신들이 원하는 순간을 스스로 날려 버린 셈이었다.악역은 역시 말이 많아서 일을 망친다는 말이 허투루 나온 말은 아닌 듯했다.정일범 형제는 모든 걸 잃었지만 이윤미 하나 제대로 해치지도 못했다.허무하고도 어처구니없는 결말이었다.세 형제가 모두 경찰에 끌려간 지금 그들의 아내들이 과연 가정을 지켜 줄지도 미지수였다. 자식들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고 늙은 아버지는 또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정일호는 깊은 후회만 끝없이 밀려왔다.‘아빠 말을 들었더라면 이런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텐데... 왜 듣지 않았는지...’정일군의

  • 내 남편은 억만장자   제4175화

    그제야 정일범 형제는 거칠게 가까워지는 발소리를 들었다.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니 사람들이 이미 그들을 둘러싸듯 다가오고 있었다.“손 들어! 움직이지 마!”앞에서 뛰어오던 사람 한 명이 소리치면서 총을 꺼내 정일범 일행을 겨눴다.정민욱 형제를 통해 상황을 이미 파악한 터라 뒤이어 달려온 이들은 형사들이었고 그들 역시 모두 총을 들고 있었다.정일호는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어떻게 경찰이 이곳까지 찾아왔는지 이해조차 되지 않았다.낮에도 인적이 드문 외진 바닷가가 매우 안전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들이닥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정일범은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칼을 움켜쥐더니 단숨에 이윤미 쪽으로 달려들려고 했다. 죽더라도 그녀 하나만큼은 끌고 가겠다는 일념뿐이었다.그녀만 죽이면 자신도 함께 끝나더라도 그걸로 만족하는 듯한 눈빛이었다.하지만 막상 칼을 쥐고 고개를 들자 그는 이를 악물었다.팔의 통증 때문에 바닥을 굴러가던 이윤미가 어느새 꽤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가 아파서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며 통쾌해했건만 지금은 그 거리 하나가 그에게는 욕이 절로 나올 만큼 멀게 느껴졌다.그는 그대로 달려들며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탕!순간 짧은 총성이 울리자 정일범의 손목이 뒤틀리며 칼이 모랫바닥으로 떨어졌다.인질을 향해 칼을 내리치려는 동작을 확인한 형사는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고 총알은 정확히 칼을 쥐고 있던 그의 손을 관통했다.칼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정일범은 총에 맞은 오른손을 꽉 부여잡은 채 고통에 몸을 떨었다.정일군과 정일호는 겁이 덜컥 난 채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았고 형사들은 곧바로 달려들어 세 형제를 제압했다.“아가씨!”멀찍이 쓰러져 있던 이윤미를 보는 순간 방윤림의 얼굴이 바로 굳어졌다.그녀의 오른팔에서는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다.방윤림은 서둘러 그녀에게 달려가 묶인 손발을 풀어 주고 자신의 외투를 벗겨 덮어준 뒤 그대로 품에 안아 일어섰다.이번

  • 내 남편은 억만장자   제4174화

    정일군은 정일범이 칼을 들고 다가오는 모습을 보더니 잠시 머뭇거리며 말했다.“형... 정말 이렇게까지 할 거야?”정일범이 차갑게 쏘아붙였다.“뭐야, 너도 일호처럼 이제 와서 후회하는 척이야? 여기까지 와서 발 빼겠다는 거냐? 우리가 얼굴도 안 가린 채 끌고 왔다는 걸 잊었어? 얘를 살려 보내면 죽는 건 우리 셋이야. 잘 생각해 봐. 저 애가 돌아온 후부터 우리가 무슨 꼴로 살았는지, 뭘 잃었는지. 심지어 엄마까지 죽었어.”이은화가 살아 있을 때 그들은 누릴 것 다 누리며 살았다.하지만 그녀가 세상을 뜨자 그들은 말 그대로 쓸모없는 사람들이었다.정일범의 말에 정일군이 급히 말했다.“형, 그게 아니라 굳이 칼을 휘두를 필요 없단 말이야. 그냥 바다에 던지면 돼. 손발도 묶여 있잖아. 빠져나갈 데도 없어. 깊은 바다에는 물고기도 많으니까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야. 굳이 우리가 칼까지 사용할 필요는 없잖아...”무엇보다 그들은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었다.나쁜 짓을 해본 적은 있어도 사람을 해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정일범은 동생 말을 잘라 말했다.“난 쉽게 죽이는 건 싫어. 너무 편하게 죽는 거잖아. 난 윤미를 고통스럽게 보내고 싶어. 둘 다 진짜 하나도 쓸모없네.”정일범은 칼을 한 손에 높이 들고 몸을 숙였다. 그리고 나머지 손으로는 이윤미의 턱을 다시 거칠게 움켜잡고 낮게 으르렁거리듯 말했다.“이윤미! 마지막으로 묻는다. 비밀번호가 뭐야? 셋까지 센다. 그때까지 입 안 열면 그다음부터는 네가 감당할 일이야. 고통스럽게 보낼 거니까 각오해.”이윤미는 그를 차갑게 노려봤지만 끝내 말을 하지 않았다.정일범은 이를 악물었다. 죽기 직전까지도 버티고 있는 동생의 태도에 분노가 치밀었다.그는 눈을 감더니 있는 힘껏 칼을 내려쳤다.“악!”이윤미의 비명이 날카롭게 터져 나왔다.정일범의 칼은 팔을 잘라낼 만큼 깊이 들어가지는 않았다.그녀가 순간 몸을 비켜낸 데다 정일범 역시 마음을 굳히고 휘둘렀다고 해도 첫 칼을 내리친다는 두려움이 남아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