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통화가 연결된 후 한창 고향 마을 인근에서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점검하던 하예정은 언니의 전화인 줄 알고 활짝 웃으며 받았다.전태윤은 병원 가는 길에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는데 우빈이가 한발 앞섰다.“이모...”아이는 이모의 목소리를 듣더니 왈칵 울었다.하예정은 얼른 조카를 달랬다.“우빈이 왜 울어? 무슨 일이야? 수업 많이 힘들었어? 울지 마. 우리 우빈이 사내대장부인데 쉽게 울면 되겠어? 눈물 뚝. 이모가 돌아가면 우빈이 데리고 마트 가서 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이모, 엄마가 피 흘려요. 엄청 많이 흘려요... 이모, 얼른 돌아와요. 엄마 거의 죽어요... 흐엉!”우빈은 울면서 말을 더듬거렸다.전화기 너머의 하예정은 사색이 되어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트렸다.옆에 있던 성소현이 허리 숙여 휴대폰을 주웠다.하예정은 휴대폰을 뺏어와 조카에게 소리쳤다.“우빈아, 뭐라고? 똑똑히 말해봐. 엄마가 왜? 우빈아, 주우빈! 똑똑히 말해보란 말이야.”아이는 엉엉 울기만 했다.이때 주형인이 휴대폰을 가져와 하예정에게 말했다.“예정아, 너희 언니 사고 났어. 누가 또 우빈이를 뺏어가려는 걸 예진이가 지키다가 칼에 찔렸어. 지금 병원 응급실이야. 너 지금 어디야? 얼른 돌아와. 예진이가 만약... 너희 언니 마지막 모습이라도 봐야지.”하예정은 또다시 휴대폰을 떨어트리며 손발이 굳어지고 하늘이 빙빙 도는 것 같아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예정아.”“예정아, 왜 그래?”심효진과 성소현이 얼른 그녀를 부축했다.“언니가...”하예정은 말을 잇지 못했다.“언니가 왜?”성소현이 초조하게 물었다.“가... 가요 얼른! 돌아가요 우리.”하예진은 애써 이 한마디를 내뱉었다.오늘 왜 고향에 내려온다고 했을까? 집에서 언니랑 조카를 지키지 않고 왜 굳이 여기로 내려온 걸까?“그래, 가. 당장 돌아가자. 예정아, 진정해. 괜찮아. 괜찮을 거야!”성소현이 그녀를 달래며 심효진과 함께 겨우 부축해서 주차장까지 걸어갔다.하예진에게 무
전화기 너머로 심효진의 비명을 들은 전태윤도 끊임없이 외쳤다.“예정아, 하예정!”성소현은 하예정의 휴대폰을 주워서 전태윤에게 버럭 소리쳤다.“전태윤, 너 예정이한테 뭐라고 한 거야? 예진 언니가 어떻게 됐냐고?”“소현 씨, 일단 예정이 데리고 돌아와요. 처형이 다쳐서 지금 응급실에 있어요. 다른 건 돌아와서 얘기해요.”“예진 언니 상태는 어떤데요?”성소현도 안색이 돌변했다.하예진에게 사고가 나서 하예정이 이토록 식겁한 것은 알겠지만 아직 하예진이 대체 무슨 일을 당했는지는 전혀 몰랐다.전태윤의 말을 들으니 성소현도 덜컥 겁이 나고 긴장했다.이경혜는 하예진 자매를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친자식처럼 대하는데 만에 하나 하예진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녀도 상심이 무척 클 것이다.“나도 잘 몰라요. 칼에 몇 번 찔려서 지금 응급실에서 구급 중이에요. 우리 다 병원 도착했어요. 소현 씨도 효진 씨랑 함께 얼른 예정이 데리고 돌아와요. 운전 조심하고요.”전태윤은 마음 같아선 아내 곁으로 날아가 직접 데려오고 싶었다.하지만 지금 그는 떠날 수 없다.하예진 옆에 가족이 한 명은 있어야 하니까. 병원을 옮기거나 큰 결정을 내릴 때 그가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주형인과 서현주에겐 감히 하예진을 맡길 수가 없다.“네, 알겠어요. 지금 바로 갈게요. 예진 언니한테 제일 좋은 의사를 찾아주세요. 돈은 얼마든지 상관없어요. 반드시 예진 언니 살려내야 해요!”성소현이 말하지 않아도 전태윤이 이미 최선을 다해 그녀를 구하고 있다.통화를 마친 후 하예정이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허겁지겁 운전석으로 가서 직접 운전하려 했다.성소현과 심효진은 그런 그녀를 필사적으로 말렸다.하예정이 운전하면 무슨 큰일이 날지 모르니까.“언니!”하예정은 핸들 대에 손이 닿지도 못하니 좌석을 마구 내리치며 대성통곡했다.‘난 언니까지 잃을 수 없어! 내게 남은 건 언니뿐이야! 하늘은 이제 언니까지 뺏어가는 건가? 엄마, 아빠도 데려갔으면서 언니까지 욕심내는 거냐고? 이럴
그 남자가 우빈이를 뺏어갔을 때 하예진과 주형인이 쫓아가지 않아도 경호원들이 알아서 우빈이를 구했을 것이다. 다들 진작 물샐틈없는 수사망을 펼쳐서 그 패거리를 일망타진할 계획이었다.다만 한가지 놓친 점이 있다면 엄마가 자식을 지키려는 그 마음, 제 자식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선뜻 내놓을 수 있는 그 마음을 소홀히 했다.엄마로서 제 자식을 눈앞에서 뺏겼는데 쫓아가지 않을 수가 있을까?물론 그녀가 쫓아갈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놀라운 체력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에 입이 쩍 벌어졌다.검은 옷 사내가 발로 차고 칼을 찔러도 하예진은 끝까지 아이를 놓아주지 않았다.전태윤의 경호원을 보고 나서야 안전하다는 걸 깨닫고 손을 놓아주었다. 그녀는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우빈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노동명은 몸을 돌려 벽을 힘껏 내리쳤다.그러게, 그도 하예진 모자를 지켜주려고 경호원을 보냈지만 결국 그녀가 다쳤다.‘나도 책임이 있어.’이때 성기현과 이경혜 부부가 도착했다.“전 대표, 예진이 어떻게 됐어요? 예정이한테는 알렸어요?”성기현이 물었다.이경혜는 두렵고 긴장하여 남편의 손을 꼭 잡았다. 이제 막 돌아온 외조카가 동생을 따라갈까 봐 너무 두려웠다.수십 년 동안 동생을 찾아 헤맸고 드디어 소식을 얻었는데 십여 년 전에 사망했다고 한다. 다행히 두 조카가 있어 그녀의 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는데 예진이까지 잘못된다면...“아직 구급 중이에요. 상태가 어떤지 아직 아무도 몰라요. 예정이한테도 알렸어요. 지금 돌아오는 길이에요.”성기현이 알겠다며 대답하곤 엄마를 위로했다.이때 서현주가 몰래 다가와 주형인 부자 옆에 서서 얼굴이 백지장이 되었다.경적이 미친 듯이 울려댈 때 그녀는 경찰들이 엄청 많이 온 걸 알아챘다.또한 전태윤이 줄곧 암암리에서 하예진 모자를 보호하게 경호원을 파견한 일도 알게 됐다.그녀가 이름 모를 여자를 도와 우빈이를 뺏어가게 한 일은 진작 들켰을 것이다. 전태윤 일행은 지금 증거를 잡아 그 무리를 일망타진할 계획이다.하예진
하예정의 말에 이경혜도 덩달아 눈물을 흘렸다.그녀는 저 자신이 생각났다.그해 동생과 함께 보육원에 보내졌을 때 옆엔 그래도 동생이란 존재가 있었다.하지만 나중에 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 세상엔 결국 그녀만 남게 됐다. 동생의 마지막 모습조차 지켜주지 못했다.전태윤은 하예정을 꼭 끌어안고 그녀를 다독였다.“예정아, 처형 괜찮을 거야. 이제 곧 깨날 거야.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 우빈이를 신경 써야지. 아이가 많이 놀랐어.”하예정은 그의 위로에도 눈물만 주룩주룩 흘렸는데 우빈이를 언급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랬다. 그녀는 언니 대신 우빈이를 챙겨야 한다.한참 울고 난 후 하예정은 감정을 추스르고 전태윤이 건넨 티슈로 눈물을 닦더니 그의 품에서 나와 주형인에게 안겨있는 우빈에게 걸어갔다.“이모.”아이가 그녀에게 두 팔을 벌렸다.하예정은 우빈이를 꼭 안아주었다.“예정아, 미안해.”주형인이 괴로운 얼굴로 그녀에게 사과했다. 우빈이를 안지도 않을 거면서 굳이 하예진한테서 아이를 끌어가더니 이 사달이 났다.하예진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는 평생 자책할 것이다. 우빈이가 놈들에게 잡혀갔어도 똑같이 평생 자책할 것이다.하예정은 조카를 안고 주형인을 거들떠보지 않은 채 전태윤의 옆으로 돌아갔다.주형인은 깊은 자괴감에 빠졌다.김은희가 뭐라 말하려 했지만 남편이 말렸다.지금 무슨 말을 해도 그들의 잘못이다.하예정은 지금 주형인이 이가 갈릴 정도로 미울 테니까.서현주는 더욱 겁에 질려 애써 저 자신을 투명인간으로 만들려 했다.“이모, 우리 엄마 죽어요?”아이가 두려움에 휩싸인 표정으로 하예정에게 물었다.피투성이가 된 엄마를 생각하면 아직도 온몸이 벌벌 떨렸다.하예정은 파르르 떨고 있는 조카를 품에 꼭 끌어안고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아니, 우빈의 엄마는 꼭 오래오래 사실 거야. 절대 안 죽어. 엄마가 우빈이를 얼마나 사랑하시는데. 나중에 우리 우빈이 학교 다니고 커가는 걸 지켜보셔야지. 절대 우빈이 버리지 않아.”“
하예진이 중환자실로 들어간 후 가족들이 옆에 남아 돌볼 필요가 없었다. 매일 잠깐 면회만 가능했다.병실에서 언니를 돌볼 수 없어도 하예정은 병원을 떠날 기미가 없었다. 그녀는 밖에서 언니가 깨날 때까지 기다릴 참이었다.언니는 반드시 깨어날 것이다.이때 경찰이 병원에 도착했다.다들 몇몇 경찰을 바라봤고 앞장선 경찰이 먼저 질문을 건넸다.“누가 서현주 씨죠?”다들 서현주에게 눈길이 쏠렸고 그녀는 당혹감에 휩싸인 표정으로 대답했다.“전데요.”그 경찰이 무언가 말한 후 곧장 두 여경이 앞으로 다가와 서현주를 연행했다.“저기요.”주형인과 김은희 부부가 재빨리 그들의 앞길을 막았다.“제 아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체포하는 겁니까?”주형인이 물었다.“서현주 씨가 이번 아동 납치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었으니 서로 가서 조사해야 합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서현주는 순간 사색이 되고 두 다리에 힘이 풀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 두 여경이 부축하지 않으면 바닥에 주저앉을 지경이었다.그녀는 믿기지 않았다. 사고가 발생한 지 몇 시간도 안 돼 경찰이 체포하러 오다니.이름 모를 여자가 보낸 사람들도 다 체포된 걸까? 그래서 그녀를 일러바친 걸까?사고 발생 당시, 많은 사람이 하예진이 아들을 쫓아가지 못하게 길을 막는 걸 보았다. 물론 그중 일부는 하예진을 도와주는 사람들이었고 양측 세력이 뒤엉켜 현장이 더 혼란스러워졌다.하예진을 쫓아가는 몇몇 사람들이 ‘예진 씨’라고 부르는 것도 똑똑히 들었는데 그들은 나쁜 놈이 아니라 하예진을 도와주는 사람들, 즉 전태윤이 보낸 경호원들이다.서현주는 그때 깨달았다. 전태윤은 줄곧 암암리에 사람을 보내 하예진 모자를 지켜주고 있었다.하예진은 우빈의 친엄마이다. 한 여자의 잠재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자식에게 사고가 났을 때 알아볼 수 있다.전태윤의 경호원들은 전문 트레이닝을 받아서 달리기 속도가 절대 느릴 수 없는데 그때 아무도 하예진을 따라잡지 못했다. 앞길을 막는 악당이 너무 많아서 속도가 제한됐을지도 모른
“저년이 우리 주씨 가문의 대를 끊으려 했어요! 우빈이도 해치고 예진이도 해치려 했어요. 독한 년, 사악한 년!”김은희가 목청이 터지게 욕했다.이번 사건이 서현주가 주도한 일이라면 지난번 동물원 사건도 의외의 사고가 아니라 서현주가 저지른 일이다.이 여자는 대체 왜 이토록 사악한 걸까?손자, 외손자 전부 유괴하려는 속셈일까?하예정은 서현주가 이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말에 우빈을 전태윤에게 넘기고 잽싸게 달려가 그녀를 한바탕 두들겨 패려고 했다.“예정아.”전태윤이 그녀를 불러세웠다.“경찰에 맡겨. 법이 알아서 심판할 거야. 넌 손댈 필요 없어.”경찰이 왔으니 그들이 굳이 서현주를 혼낼 필요가 없다.소지훈이 증거를 단단히 수집했으니 이번에 서현주는 절대 벗어날 구멍이 없다.적어도 감방에서 몇 년은 썩을 것이다.추미자의 양아버지가 전에 키우던 부하들이 체포되면 다들 전과범이라 더 심한 형을 선고받을 것이다.그들은 깡패 조직이니까.추미자도 절대 벗어날 길이 없다.사실 경찰들은 두 갈래로 나뉘어 출동했다. 일부는 병원에 와서 서현주를 연행하여 조사를 진행하고 다른 일부는 여태웅의 별장으로 갔다.추미자의 부하들은 전씨, 소씨, 노씨 세 측 경호원들 덕분에 한 명도 빠짐없이 경찰에 체포됐다.우빈이를 뺏어가려고 추미자는 이번에 안달이 나서 남편과 상의도 없이 제멋대로 백 명 좌우 거느리고 이 음모를 꾸몄다. 다만 진짜 이 사태에 참여한 사람은 백 명뿐이 아니다. 그녀는 또 돈을 더 써서 건달들까지 끌어왔다.여운초가 말하길 추미자는 조바심이 나면 눈에 뵈는 게 없다고 했다.여태웅이 이 사실을 알면 기가 차서 피를 토할 것이다.아내가 너무 충동적이라고 비난할 게 뻔하다.딸 운별이도 너무 충동해서 감방에 들어갔는데 아내까지 이러니, 게다가 가겠으면 혼자 갈 것이지 그 많은 부하가 연루됐으니 여태웅은 분노가 극에 달했다.하예정은 전태윤이 말리자 곧장 걸음을 멈추고 서현주를 공격하지 않았다.서현주는 경찰에 연행됐다.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
서현주는 이 모든 것이 하예정이 먼저 다른 사람에게 미움을 샀기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년에게 복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날 찾아오지도 않았을 테고, 우빈을 이용할 일도 없었어. 그리고 우빈이가 얌전히만 있으면 그 아이를 해치지 않고 그대로 돌려보낸다고 했어. 그년이 직접 만나러 가기만 하면 우빈이도 무사히 돌아올 거란 말이야. 하지만... 하예진이 우빈이 때문에 다칠 줄이야. 우빈인 절대 아무 일 없을 거란 말이야.’주형인은 그 자리에 서서 중얼거렸다.“어떻게 현주가... 아니야, 이건 뭔가 오해가 있어!”“주형인!”주경진은 큰 소리로 아들의 이름을 부르더니 갑자기 뺨을 한 대 세게 후려쳤다.주위 사람들은 보기만 할 뿐 아무도 막으려 하지 않았다.“이게 다 네가 그 독한 년을 우리 집에 데려와서야! 그 천한 년 때문에 넌 아내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집이 조용할 날 하나 없게 됐잖아! 우빈이는 예진이를 따라 떨어져서 살고 있는데... 어쩜 멀리 있는 아이에게까지 이런 음모를 꾸밀 수가 있어?! 참 독하다 독해. 이게 다 네놈 때문이야! 네가 눈이 멀어서 일어난 일이라고!”주경진은 아들을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다.주형인은 얼얼한 얼굴을 감싸쥔 채 고개를 들 엄두도 내지 못했다.이런 일이 일어날 줄 누가 알았을까?서현주가 우빈을 해치려 하다니...주우빈은 평소 엄마와 함께 살고 있어 그들 주씨 일가와 만날 기회가 드물었다.만약 그들이 먼저 우빈이를 보러 가지 않는다면, 우빈이는 절대 그들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생활에도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현주가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인 거지? 우빈이 때문에 내가 예진이랑 재혼이라도 할까 봐 두려워서? 예진인 절대 그럴 여자가 아닌데... 한번 이혼한 이상 다시 돌아올 일 없을 거야.'현재 하예진의 삶이 점점 나아지고 있는 반면 그의 삶은 엉망진창으로 되었다. 반대로 하예진이 점점 더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된다고 해도, 그녀의 성격으로 다시 그의 곁에 돌아올 일은 없다
한참 후 김은희는 하예정에게 다가갔다.얌전히 이모에게 안겨있는 손자를 보고 그녀는 손을 내밀어 만지려다가 다시 움츠러들더니 미안한 듯 말했다.“예정 씨, 미안해요. 이게 다 우리 집에서 독한 년을 집에 들여서예요.”하예정은 차갑게 김은희를 쳐다보기만 하였다.경찰이 서현주를 데려간 것을 보고 그녀는 어떻게 된 일인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언니는 이미 주형인과 이혼하고 새 삶을 시작했어요. 우빈이도 아주 잘 돌보고 있으니 당신 가족은 앞으로 우리 언니와 멀리 떨어져 있어요. 언니는 절대 주형인과 재혼할 생각이 없으니까요. 서현주도 얄밉지만 당신들도 마찬가지예요.”김은희는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였다.그들도 미운 짓을 적지 않게 하였으니까.하예진 자매에게 돈 많은 이모가 생기고, 하예정이 전씨 가문에 시집간 것을 알게 된 후로부터, 그녀는 아들과 새며느리를 갈라놓고 하예진과 재혼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 때문에 새며느리가 원한을 품고 우빈이를 해치려 했을지도 모른다.“다시는 당신들을 보고 싶지 않으니 당장 여기서 떠나요.”경찰이 서현주만 데려가자, 하예정은 이번 일이 주씨 일가와 무관하다는 것을 알았다. 우빈이는 어찌 되었든 주씨 일가의 친손자이다. 비록 김은희가 외손자를 편애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과 손잡고 친손자를 해칠 일은 없을 테니까.하지만 하예정은 지금 이 순간 주씨 일가를 보고 싶지 않았다. “예정 씨, 우리가 지금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정말 예진이가 걱정돼서 그래요. 이제 예진이가 깨어나거든 우리에게 메시지라도 보내서 무사하다는 것만 알려 줘요. 부탁할께요.”하예정은 굳은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은희는 다시 한번 사과한 후 돌아서서 떠나기 싫어하는 아들을 강제로 끌고 남편과 함께 떠나갔다.주씨 일가가 떠난 후 하예정은 전태윤에게 물었다. “이게 다 서현주가 꾸민 일인가요?”“서현주도 그저 꼭두각시일 뿐이야. 하지만 이번 일을 꾸민 그 사람도 도망칠 수 없을 테니 걱정마.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