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씨 일가의 재산을 탐내서가 아니라 책임감 있는 가풍을 믿어서이다.힘들게 살아온 여운초가 전씨 일가에 시집갈 수 있다면, 전씨 일가가 그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면, 한동호도 시름 놓고 여씨 그룹을 그녀의 손에 돌려줄 수 있다.오랜 시간 동안 여운초를 위해 여씨 그룹을 지켜왔으니, 이제는 돌려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만약 여운초가 둘째 도련님과 함께 있을 수 있다면, 한동호도 마음을 놓을 수 있다.둘째 도련님은 여씨 그룹의 재산을 탐낼 리가 없으니까.앞을 볼 수 없는 여운초에게 있어, 만약 주변 사람들이 딴마음을 품게 되면, 그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나와 이진이는 어울리지 않아요. 시각장애인인 내가 어떻게 전씨 일가의 둘째 도련님을 넘보겠어요. 이진에게는 더 좋은 여자아이가 어울려요.”여운초는 조용히 말했다.한동호는 찻잔을 내려놓고 친근하고도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여운초의 이마를 툭 찔렀다.“멍청하기는. 또 자신감 없는 모습 보일래? 시력이 좋지 않은 것 외에 다른 사람보다 못한 게 뭐가 있다고 이래? 오빠 마음속에서 너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여자야. 그러니 자신감 가져. 만약 정말 둘째 도련님을 좋아한다면 용감하게 맞서고. 전씨 일가는 가풍이 좋은 데다 그 집 남자들도 일편단심이기로 소문났잖아. 결혼하면 한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야. 지금 이 세상에 이런 남자가 얼마나 드문지 알라? 사람들이 죽어라 전씨 일가의 문턱을 넘으려고 할 만도 하지 뭐. 그러니 너도 기회 잘 잡아.”“그런 게 아니라니까요.”여운초는 여전히 전이진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부인했다.말하자마자 그녀는 뭔가를 느낀 듯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가게 문 쪽을 바라보았다.이어 익숙한 발소리가 들려왔다.전이진은 한동호가 여운초의 이마를 살짝 찌를 때 도착했는데, 그는 차에서 그 장면을 똑똑히 보았다.그는 차를 세운 후, 차에서 내려 성큼성큼 가게로 걸어 들어갔다.가게 안의 두 사람은 이야기를 멈추고 모두 전이진을 바라보았다.여운초는 전이
여운초는 담담하게 말했다.“이진아, 우리가 무슨 사이인 것도 아니잖아. 내가 누구와 만나든, 누구와 친하게 지내든 모두 내 자유야. 네가 날 많이 도와준 건 사실이지만 내 교제에 관여할 자격은 없지 않아? 난 널 그저 아는 친구로 생각할 뿐이야.”“아는 친구? 그냥 아는 친구일 뿐이라고?”전이진은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여운초, 너 지금 일부로 나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어? 내가 널 약혼녀로 생각하고 있다고 솔직히 말한 후부터 넌 나를 피하며 전화도 받지 않았어. 게다가 지금은 다른 남자와 알콩달콩 지내고 있는데,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야?”여운초는 여전히 평온했다. 그녀는 전이진의 손을 몸에서 떼어낸 후 카운터로 물러섰다. 카운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으면 훨씬 안정감이 느껴졌다.겉으로는 담담해 보이지만 사실 지금 속으로 약간 당황하고 있다.그녀도 본인이 왜 당황하고 있는지 몰랐다.뭔가 전이진에게 미안한 일을 한 것만 같았다.하지만 둘은 연인 관계도 아닌데 이런 일로 미안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다만 전이진의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이진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히 이 한마디야. 내가 누구랑 만나든, 왕래하든 모두 내 자유야. 그래, 네 할머니가 나를 아주 맘에 들어 하셔서 날 너의 아내감으로 선택했다는 거 알아. 다만 날 약혼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단지 네 생각뿐이잖아? 나도 널 똑같이 약혼 상대로 생각할 거라고 착각하지는 마. 난 기껏해야 널 평범한 친구로밖에 생각하지 않아. 이때까지 도와준 건 고맙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 보답으로 밥을 사줬잖아. 그리고 널 피한 게 아니야. 그냥 휴대폰과 번호를 바꿨을 뿐이야. 널 피하고 싶었으면 지금 여기 있지도 않았어, 진작 가게 문을 닫고 떠났을 거야.”전이진은 그녀를 노려봤다.여운초는 눈이 보이지 않으니 그녀를 필사적으로 노려봤자 소용없었다. 어떻게 째려보든 그녀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심지어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줄도 모른다.“어젯밤 나랑
여운초가 자신을 피가 날 정도로 물고 나서야 그는 비로소 그녀를 놓아주었다.다음 순간 그의 얼굴은 얼얼하게 아파 났다.여운초가 힘껏 휘두른 손에 전이진은 뺨을 한 대 단단히 얻어맞았다.그녀는 느낌으로 손을 휘둘렀던 것이다.전이진의 뺨을 때린 후 여운초는 책상 위에 놓여있는 물건을 아무거나 집어 들어 그를 향해 내리쳤다.전이진은 그녀가 자신을 때리도록 놔두었다. 어쨌든 아프지 않으니.다만 그녀가 지팡이를 움켜쥐고 그를 향해 때리자 전이진은 재빨리 뒤로 물러나 피했다.“운초야...”“나가!”이젠 여운초가 화를 내게 됐다.그녀는 화가 나서 얼굴이 붉어지고 눈에 눈물이 고였다.여운초는 전이진이 정직한 사람이라 자신을 괴롭히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하지만 이렇게 강제로 키스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눈이 안 보인다고 마음대로 괴롭히다니.열받아 죽을 지경이였다.“운초야, 나...”전이진은 자기가 충동적으로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자신의 무례한 행동에 대해 해명하고 싶어도 해명할 길이 없었다.“나가! 전이진, 너 당장 나가!”그가 말하는 소리를 듣고 지금 서 있는 방향을 확인한 여운초는 지팡이를 내던졌다.전이진은 민첩한 몸놀림으로 그녀가 던진 지팡이를 받았다.“알았어, 나갈 테니까 물건 던지지 마. 그러다 다쳐. 갈게, 당장 나갈게.”여운초가 화가 나서 당장이라도 미칠듯한 모습을 보이자 전이진은 얼른 지팡이를 들고 떠났다.그녀는 그의 발소리가 밖으로 향하는 것을 듣고 그가 차를 몰고 떠나는 기척까지 듣고서야 털썩 주저앉아서 손을 들어 힘껏 입술을 닦았다.“개자식!”여운초는 욕을 한마디 뱉었다.그러고는 눈물을 닦았다.‘울지 마!’그녀도 한입 물어 그의 입에서 피가 나게 했으니 그에게 복수한 셈이었다.여운초는 앞으로 다시는 전이진을 상대하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전이진이 그녀를 와이프로 생각했든 말았든 그건 그만의 생각이지, 그녀는 결코 그를 남편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무슨 생각으로 나에게 따지고 드는
혼자 서점을 지키던 하예정은 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전이진이 찾아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하예정은 일어서서 카운터에서 나오며 물었다.“이진 씨, 무슨 일 있었어요? 입술도 얼굴도 왜 이렇게 부었어요? 누구랑 싸운 거예요? 진 거예요? 못 이기겠으면 나한테 도와달라고 하지 그랬어요.”하예정의 잇따른 물음에 전이진은 얼굴이 빨개졌다.싸움에서 진 거면 형수님에게 도와달라고 하라고?그의 싸움 실력은 하예정보다 훨씬 좋았다.“형수님, 이번엔 꼭 도와줘야 해요.”“당연하죠. 이 하예정의 시동생을 이렇게 때리다니. 이진 씨 형은 참을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못 참아요. 누가 이렇게 때렸는지 말해봐요. 내가 가서 혼찌검을 낼 테니까요.”하예정은 말하면서 의자를 전이진의 뒤로 끌어왔다.“일단 앉아서 천천히 말해요. 물 마실래요? 잘됐어요, 오랜만에 몸을 풀고 싶던 참이었어요.”하예정은 전이진에게 물을 따라주었다.전이진은 형수가 왠지 신이 난 듯한 모습으로 관심해 주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누구랑 싸운 게 아니에요.”만약 다른 사람과 싸워서 진 거면 불러도 형제들을 불렀지 형수를 부를 리가 없었다. 비록 형수가 싸움 좀 할 줄 안다고 해도 말이다.하예정은 따뜻한 물 한 컵을 따라 전이진에게 가져다주고는 자신도 의자를 하나 끌고 와 맞은편에 앉아 관심 있는 얼굴로 바라보며 물었다.“말해봐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걱정 마요, 도와줄 수 있는 건 꼭 도와줄 테니. 이번뿐만 아니라 나중에라도 손해 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와요. 내 뒤엔 태윤 씨도 있는걸요. 겁먹을 필요 없어요.”하예정은 형수로서의 믿음직함이 있었다.시동생이 손해를 보기만 하면 바로 대신해 갚아줄 듯한 모습이었다.전씨 일가은 아홉째 도련님은 제일 똑똑했다. 그는 하예정을 처음 보자마자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리고 큰형이 형수님의 말을 잘 듣는 것을 보고는 괴롭힘을 당하기만 하면 형수를 찾아가 고자질하곤 했다.전이진의 얼굴은 더 붉어졌다.형수의 흥취 가득한 모습
전이진과 여운초는 서로 안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정도로 발전하게 된 것에 하예정은 진척이 꽤 빠르다고 탄복했다. 동생은 남편보다 사랑에 대해 더 잘 아는 사람이라고 느껴졌다.“얼굴이랑 입술이 부은 것을 보니까 키스는 운초 씨 동의 없이 한 거네요? 그리고 운초씨가 뺨을 때린 거고요, 맞죠?”하예정의 눈은 흥미로움으로 가득 찼다.그녀는 경험해 온 사람으로서 전이진의 지금 모습을 보고 바로 짐작이 갔다.강제 키스를 한 것이라고.전이진은 여전히 얼굴을 붉히고는 말하지 않았다.묵인한 셈이었다.하예정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형수님. 저를 도와준다고 했잖아요.”전이진은 하예진이 그를 돕지 않으려 하는 줄 알고 긴장한 말투로 말했다.그에 하예정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마음 가라앉히러 물 마시러 가는 거예요. 이진 씨 말에 좀 놀라서요.”“....”그녀는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르고는 물을 마시며 걸어와 다시 전이진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물을 마시며 전이진을 천천히 훑어봤다.전씨 일가의 가풍은 좋아서 누구나 교양이 넘쳐났다.이건 그녀가 시댁 식구들에 대한 평가이다.전이진은 차갑고 거만한 전태윤과는 달리, 너무 부드러운 사람은 아니지만 훨씬 온화했다.이 정도로 강하게 나올 줄이야... “형수님...”“이진 씨, 이 정도로 밀어붙이는 사람일 줄은 몰랐네요.”전이진은 얼굴이 빨개졌다.“그건 충동적인 행동이었어요. 너무 화가 나서 그만... 운초는 지금 제 전화를 받지도 않고 저와 만나는 것도 거부하고 있는데, 아까 가게에 가보니 마침 다른 남자와 친하게 지내고 있었어요. 그 남자가 다정하게 운초의 이마를 손으로 쓰다듬는 걸 직접 봤어요.”전이진은 여운초에게 강제 키스를 한 것이 잘못임을 알고 있었다. 정말 순간의 충동으로 행동한 것이다.정확히 말하면 질투였다.그 낯선 남자에게 말이다.그보다 더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그에 못지않은 강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는 걸 보면 사업에서 꽤 성공한 남자인 듯싶었다.“운초 씨에게 강
하예정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전이진은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러면 진실을 말하지 말았어야 했을까요? 할머니가 정해준 아내감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말고 계속 속이는 편이 더 좋았을까요?”그는 하예정이 대답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형처럼 속이고 있다가 들통나면 더 화낼까 봐 솔직히 말한 거였는데...”전이진은 형과 같은 고생을 겪고 싶지 않아 여운초를 속이지 않도록 노력한 것이다.‘솔직하게 말해도 안 되는 걸까?’“...그 뜻이 아니고요, 그렇게 바로 말하면 운초 씨가 순수하지 않다고 느낄지도 몰라요. 단지 할머니가 이진 씨에게 맡긴 임무를 완수하려고 그러는 거로 생각할걸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봐요. 이진 씨가 운초라면 기분이 좋겠어요?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본인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잖아요. 아무리 여씨 일가의 큰 아가씨라지만 집안에서는 투명 인간이나 다름없는걸요. 그래서 다른 집안의 사모님들은 며느릿감을 찾을 때 운초 씨를 아예 고려하지 않아요. 게다가 시각장애인이니 더 자신감이 없을 거예요. 이진 씨와 아직 친하지도 않고 보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호감이 있더라도 한계가 있어요. 이때 사실대로 말하면 당연히 거리를 둘 수밖에 없죠.”전이진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말했다.“하지만 할머니가 주신 임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접근한 건 사실이잖아요. 할머니가 자기 생각대로 선택해 줬고 전 이해가 안 됐지만 어차피 도망칠 수도 없는 일이라 접근하기로 한 거예요. 어차피 좋아하는 여자가 없으니 할머니가 누굴 택하면 누구랑 결혼하는 거죠.”하예정은 전이진을 흘겨보며 말했다.“이런 생각이면서 운초 씨에게 강제로 키스를 한 거예요?”“우리가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하니까 화가 나서 그만... 그렇지 않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어요.”하예정의 매서운 눈길에 전이진의 당당함은 점점 누그러졌다.“이진 씨는 운초 씨를 좋아하고 있어요. 질투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 거고요. 우선 먼저
하예정은 말했다.“그러면 된 거예요. 지금 당장 꽃필 무렵으로 가요. 뻔뻔하게 굴어서라도 제대로 사과해요. 할머니가 골라준 아내감이라는 말은 절대 언급하지 말고요. 이진 씨의 진심 어린 마음을 느끼게 해 줘요. 함께 심효진의 약혼식에 참석한 것을 보면 이진 씨에게 어느 정도의 호감이 있다는 걸 설명해요. 그러니까 운초 씨에게 임무 때문이 아니라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것을 보여줘요. 운초 씨도 언젠가는 이진 씨를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거예요.”전이진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뜻인지 알겠어요.”“운초 씨는 눈이 보이지 않아서 매우 예민할 거예요. 조금이라도 자신을 싫어한다고 느껴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해야 해요.”“싫어한 적 없었어요. 단 한 번도.”하예정은 그에 가볍게 응했다.전이진은 여운초가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싫어한 적이 없었다. 단지 할머니의 지시에 따를 생각이었고 마음을 바로잡지 못했을 뿐이다.“그러면 지금 당장 운초를 찾아가 사과하겠어요. 나를 만나려 하지 않으면 용서할 때까지 가게에서 떠나지 않을 거예요.”전이진은 말을 끝내자마자 일어서서 가려 했다.하예정은 그에게 물었다.“먼저 얼음찜질로 부기를 가라앉힐래요?”전이진은 자신의 부은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얼마나 찜질해야 부기가 빠질지 몰라요. 어차피 운초는 내 모습을 볼 수 없으니까 괜찮아요. 마음 아파하지도 않을 텐데요 뭘.”그는 물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형수님, 고마워요. 당장 꽃필 무렵으로 갈게요. 형에게 대신 휴가 좀 내주시겠어요? 직접 휴가를 냈다가는 혼날까 봐요.”이 일에 대해 하예정은 기꺼이 도와줬다.감정 적응기에 전태윤도 많은 일을 소정남과 전이진에게 떠넘겼었다.이젠 빚을 갚아야 할 때가 되었다.“앞으로 여자를 대할 때 더 신중해야 해요!”하예정은 한마디를 보탰다.전이진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한 번 한 실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는 사람이다.“그러면 이만 가볼게요.”“그래요. 학생들도 곧 수업이 끝
전태윤은 이에 응하며 이어서 말했다.“점심 배달시키지 마. 도시락 가져다줄 테니까 같이 먹자.”하예정은 서점에 혼자 있었다. 전태윤은 아내가 배달 음식을 먹는 것이 마음이 아파 진작에 관성 호텔에 전화해서 음식을 주문해 경호원에게 가져오라고 했다. 점심에 음식을 가지고 서점에 가서 같이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다.“알았어요, 배달 안 시킬게요. 먼저 일하고 있어요, 학생들 수업이 끝나서 저도 바빠질 거예요.”하예정은 이렇게 한마디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전태윤은 통화가 끊긴 휴대폰을 보며 투덜거렸다.“안녕이라고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네.”하예정은 바빠지기 시작했고 전태윤도 하던 일을 끝내고 사무실을 떠났다.경호원은 방금 호텔에 가서 도시락을 가져오는 길이었다. 전태윤이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고 서둘러 마중 나갔다.몇 분 후, 전태윤의 차는 전씨 그룹에서 떠났다.10분 일찍 떠나 아직 길이 막히지 않아 곧 서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전태윤이 서점에 도착했을 때 하예정의 서점에는 여전히 물건을 사고 있는 학생이 있었다. 웬 학생이 하예정이 혼자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예정 언니, 며칠 동안 효진 언니가 안 보이는데 어디 갔나요?”학교 주변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사장 중 젊은 사장은 하예정과 심효진뿐이라 학생들은 대부분 그녀들을 친절하게 언니라고 불렀다. 두 사람은 얼굴도 이쁘고 매우 친절해 학생들은 수업이 끝날 때면 하예정네 서점에 가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효진 언니는 오늘 중요한 일을 보러 가야 해서 시간이 없어. 아마 두세 달 동안은 내가 혼자서 가게를 지키게 될 거야. 왜, 효진 언니가 보고 싶어?”그녀는 돈을 계산하면서 학생들을 놀렸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할인을 해주었다.“그렇게나 오래요? 그러면 다음 학기에나 효진 언니를 만날 수 있겠네요. 당연히 보고 싶죠. 요 며칠 문을 안 열어서 엄청 보고 싶었어요. 이렇게 그리워한 것을 봐서 좀 싸게 해줘요.”“정말 우리를 보고 싶어 한 줄 알았잖아, 할인해달라는 거였네. 걱정 마,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