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그런데 라희가 모든 걸 떠안을 필요는 없어. 부모님이 이미 동생한테 대학 졸업할 때까지 쓸 돈은 따로 모아 두셨대. 지금도 부모님은 아직 퇴직 전이라 매달 수입이 꾸준히 들어오고 거기서 또 모아 두시면 아들 결혼하고 애 낳을 때까지도 충분하다고 하더라. 게다가 라희가 관성에서 집을 사면 부모님이 돈도 좀 보태주실 수 있대. 그 뒤로 라희가 대출을 갚으면 되는 거고. 예전에 학교 다닐 때 동창들이 이 문제에 관해 물어본 적 있었는데 라희는 부모님이 충분한 경제력이 없으셨다면 애초에 둘째를 낳는 걸 시도하지도 않으셨을 거라고 대답했대. 부모님의 선택이고 결정이니까 존중해 드리고 싶었나 봐. 동생이 생기면 집안 재산이 좀 나눠지겠지만 부모님이 세상을 뜨면 이 세상에 혈육이 하나 더 생긴 셈이라고 생각한다고 하더라. 집에서 동생 키우는 데도 공을 꽤 들이는 게 느껴졌어. 막내라고 특별히 버릇없이 키우는 것 같지도 않고. 아무래도 집안 분위기가 나쁘지 않을 거야.”어쨌든 이라희는 동생과 정말 사이가 좋았다.여천우는 이라희 부모님이 둘째를 낳기로 하실 때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미리 계산하고 대비책까지 마련해 두셨다고 생각했다.“다행이네.”동생이 이렇게까지 말해 주니 이라희에 대한 이미지가 꽤 좋은 쪽을 기울였다.물론 여운초는 직접 알아보고 확인할 생각이었다. 이라희가 남동생에게 너무 많이 쏟아붓는 그런 스타일만 아니라면 더는 뭐라 할 생각은 없었다.“누나, 라희를 직접 만나 보면 알겠지만 내가 말한 것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야. 나도 어릴 때부터 예쁜 여자들은 많이 봐 왔지만 딱히 끌린 적은 없었어. 그런데 라희한테만 마음이 가더라. 그만큼 좋은 사람이라 내 마음을 움직인 거야. 누나, 걱정하지 마. 내 안목도 나름 좋아.”여운초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래. 널 믿을게. 네가 알아서 해. 먼저 고백해 보고 서로 마음이 맞는다면 고백하는 순간 결과가 나올 거야. 고백했는데 거절하면 그때는 천천히 다가가. 진심으로 감동시켜서 네 마음을 믿고 받아들이게 만드는
여천우는 잠시 더 침묵하더니 말을 꺼냈다.“누나, 만약 라희가 나를 받아주지 않으면 친구도 못 되는 거 아냐?”“고백 안 하면 꼭 후회할 거야. 고백했다가 라희가 너를 싫어해서 친구도 못 된다 해도 잠시 아쉽겠지만 후회는 안 하잖아. 적어도 노력해 봤으니까. 아무것도 안 하면서 어떻게 라희 씨가 너를 받아줄지 안 받아줄지 알겠어? 혹시 라희 씨가 짝사랑하는 사람 있어?”여천우가 대답했다.“걔는 너무 바빠서 연애할 시간이 없어. 계속 솔로였고 라희에 관심 있는 남자들은 많았지만 다 거절했대.”“남자 동창들하고는 자주 만나?”여운초가 다시 물었다.“동창들이랑 연락은 하고 있어. 하지만 자주 만나는 남자 동창은 나 하나뿐일 거야.”“라희 씨가 졸업하자마자 관성으로 취업하러 온 거야? 아니면 네가 부른 거야?”“아니, 라희가 스스로 취업하러 온 거야. 일자리 구하고 나서 나한테 연락이 왔거든. 자기도 관성에 있다고. 그렇게 우리는 계속 연락하면서 지내 온 거지.”여운초의 말에 대답하던 여천우가 문득 되물었다.“누나 말은 혹시 라희도 나 좋아할 수도 있다는 거야? 관성으로 취업하러 온 게 나 때문인 걸까?”동창들은 졸업하자마자 각자 제 갈 길로 흩어졌다. 학교 있던 도시에 남아 취업하는 동창들도 있었고 고향으로 돌아간 동창들도 있었고 다른 대도시로 간 동창들도 있었다.여천우는 바로 관성으로 돌아왔다. 여운초가 졸업하면 돌아와서 자기 재산을 물려받아 직접 회사를 경영하라고 했기 때문이다.그것은 여천우의 책임이자 그의 몫이었기에 여운초는 더 이상 대신 짊어지지 않았다.바로 그때 그가 집안 회사를 상속받으러 간다고 말한 김에 다들 그가 부잣집 도련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여운초가 웃으며 말했다.“내가 어떻게 알아. 고백해 봐. 직접 물어봐. 답은 라희 씨한테 있잖아. 네가 물어보기만 하면 답을 얻을 수 있어. 네가 진심으로 좋아하면 과감하게 고백하고 당당하게 그녀를 쫓아가야 해. 고백하지 않으면 어떻게 너를 좋아하는 걸 알겠어? 네가 구애하
“누나.”여천우는 목소리에 웃음을 실어 말했다. 여운초가 자신의 실망한 기색을 알아챌지 걱정돼서였다.서원 리조트가 비록 그녀의 시댁이지만 전씨 가문은 가족이 많고 또 가문의 안주인도 아니었기에 함부로 사람을 들여보낼 수 없다는 걸 이해해야 했다.“천우야, 누나가 생각해 봤는데 제대로 얘기해 주는 게 좋겠어. 누나가 이라희 씨가 리조트 구경 오는 걸 허락하지 않은 건 아직 그 사람에 대해 잘 몰라서 함부로 승낙할 수 없었기 때문이야. 집에 있는 어린아이들 안전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잖아. 지금 방학이라 어린애들이 다 모여 리조트에 살고 있어. 애들 안전이 정말 중요해서 아무한테나 맘대로 보여줄 수가 없어. 네가 이라희 씨를 좋아한다니까 누나가 한번 알아볼게. 착하고 인품도 믿을 만하고 전씨 가문 일을 밖에 말하지 않을 거라 확신하면 그때 데리고 와서 구경시켜.”여천우는 잠시 멈칫했다. 조카들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하고 있었다.그렇다. 전씨 가문은 어린아이들 보호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아이들의 얼굴이 함부로 밖에 알려지지 않게 하는데 그것은 유괴범들의 표적이 될까 봐서였다.전씨 가문의 관성에서 지위를 생각하면 함부로 건드리는 자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씨 가문을 노리는 자가 아예 없으리란 법은 없었다.그 몇몇 아이들은 큰애는 겨우 여섯 살, 작은애는 이제 겨우 한 살로 천진난만하고 순수하여 인간의 위험함을 모르는 나이였다.만약 그들의 행선지가 노출되거나 사진이 유출되어 유괴범의 표적이 된다면 그 결과는 여천우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누나, 알겠어. 미안해. 라희한테 사정이 여의치 않다고 말할게. 제대로 설명하면 이해할 거야.”여천우가 누나에게 사과했다. 아이들의 안전 문제를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확률이 아무리 낮더라도 방심해서는 안 되었고 늘 대비는 해야 했다.“내가 직접 제대로 얘기해 주는 게 낫겠다 싶어서 전화한 거야. 내가 네 친구를 무시한다고 오해할까 봐 그래. 전씨 가문의 본가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오
아이들의 안전 문제가 걸린 일이라 전이진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역시 당신이 생각이 깊네. 그러면 이라희 씨에 대해 먼저 좀 알아보자. 인성이 좋고 믿을 만하다면 천우가 좋아하니까 우리도 그 선택을 존중해 주는 게 좋겠어.”여운초가 말을 이었다.“천우가 장가드는 건데 평생 함께할 사람이잖아. 누가 좋든, 누구와 결혼하든 나는 동생 선택을 존중해 줄 거야. 제수씨가 마음에 들면 가까이 지내고 인성이 별로면 멀어지면 돼. 그저 없는 셈 치는 거지. 그런데 우리 아이들 안전 문제는 절대 가지고 장난칠 수 없어. 방심하면 안 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안 친척이나 지인을 통해 사생활을 캐내려는지 당신도 알잖아.”때문에 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배우자를 고를 때 인성과 여자의 가정환경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알았어. 다 네 뜻대로 하자. 그런데 천우한테 상황을 제대로 설명해 주는 게 좋겠어. 설명이 없으면 천우가 오해할 수도 있잖아. 누나가 자기 마음을 몰라주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까지 무시하는 게 아닐까 하고.”여운초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천우도 이해하지 않을까?”“설명해 주지 않으면 몰라. 천우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나 시댁 구경 한번 가고 싶다고 했는데 누나가 거절한 사실만 알 뿐이니까.”“그럼 지금 전화해서 설명해 줘야겠다. 오해하면 안 돼.”전이진은 지금 당장 동생에게 전화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전이진의 걱정은 괜히 한 게 아니었다. 여천우는 누나에게 거절당한 후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다.이라희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도 막막했다.이라희는 서원 리조트가 너무 아름다워서 마치 큰 공원 같다는 얘기를 듣고 한번 가보고 싶다고 했다.예전부터 가보고 싶었지만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다가 이렇게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온 터라 이제야 겨우 부탁한다는 것이었다.이라희가 그저 한번 구경하고 싶어 했을 뿐인데 의외로 여운초가 거절해 버린 것이다.‘누나가 라희를 믿지 못하는 걸까? 라희가 나를 이용해 전씨 가문의 사람들에
여운초는 이라희가 시댁 식구들의 사생활, 특히 어린아이들에 대한 정보가 새 나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관성의 언론은 아이들의 얼굴 사진을 한 번도 제대로 포착한 적이 없었다.여운초는 이라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터라 그런 위험을 감수할 생각이 없었다.“이라희 씨 부모님은 공무원이신데 늦은 나이에 또 아들을 낳으셨대. 지금 이라희 씨 동생은 겨우 몇 살이라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대. 천우 말로는 동생이 무척 얌전하고 누나와 사이도 좋다고 하더라. 그런데 오누이 나이 차이가 거의 스무 살이야. 부모님 연세가 드시면 동생은 아직 어른이 되지도 않았을 텐데 부모님이 연금이 나오신다 해도 아이는 클수록 들어가는 돈이 많아지니까 감당이 안 될 수도 있어. 누나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거지. 등록금이나 학비 정도는 내가 모르는 척 넘어갈 수 있어도 앞으로 그 동생이 집 사고 차 사고 결혼할 때 돈을 빼주고 하다 보면... 그게 제일 걱정이야. 사람이란 계속 도와주다 보면 그게 당연한 걸로 여기게 되잖아.”지금 당장 이라희가 남의 재산을 빨아들이려는 사람은 아닐지도 모른다. 부모님이 아직 건강하고 동생 일은 부모님이 책임지고 있으니 그녀가 신경 쓸 일이 없으니까.하지만 훗날은 어떨지 누가 알겠는가? 오누이 사이가 좋은데 동생 일을 아예 손을 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전이진이 말했다.“너무 서둘러 결정 내리지 마. 천우가 이라희 씨를 좀 더 제대로 알아가게 두자. 상대가 인성 좋고 부모님도 딸에게 동생 챙기라고 강요하지 않는 분들이라면 어른들 스스로 아들을 키울 능력이 충분하다는 뜻이야. 천우가 좋아한다면 우리도 응원해 주자. 대학 동창이라면 아마 꽤 오래 짝사랑해 왔을 텐데 아직 고백을 안 한 걸 보면 아마 천우도 상대방을 계속 지켜보고 있는 걸 수도 있어. 이번에 그 여자분을 데려오고 싶다고 한 걸 보면 천우 나름대로 인성을 충분히 살펴본 다음에 괜찮다고 판단한 게 분명해. 천우 성격은 우리도 잘 알잖아. 상대방 인성이 안 좋으면 애초에 그런 부탁
“그런데 그 집안 사정은 잘 몰라. 부모님 두 분 다 공무원이시고 남동생이 하나 있어. 둘째도 늦은 나이에 낳으셨더라고. 지금 동생은 아직 초등학교 다니고 있어. 나도 만나 봤는데 인형처럼 참 착하고 귀여운 꼬마야. 오누이 사이가 정말 좋더라.”여운초는 동생이 이라희에게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남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살짝 못마땅했다. 혹시 이라희가 결혼하면 여천우가 이라희의 남동생까지 떠안아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천우야, 그 친구한테 말해. 여기는 우리 시댁이 사는 곳이지 관광지도 아니고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데가 아니라고.”“아, 알았어, 누나.”누나가 거절하자 여천우는 더는 고집하지 않았다.그는 큰누나가 이라희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남동생 때문인가? 혹시 그 동생까지 자기가 떠안게 될까 봐 걱정하는 거겠지?’이라희의 부모님은 둘 다 공무원이라 나이 들어 은퇴해도 연금이 나오니까 아들 공부시키는 건 문제가 안 될 터였고 이라희도 남동생에게 돈을 쏟아붓는 사람은 아니라고 여천우는 생각했다.여천우가 아는 바로는 이라희와 남동생 사이가 정말 좋았고 동생에게 가끔 선물도 사 주긴 했지만 너무 과하거나 비싼 건 아니었고 무엇보다 남동생이 요구하는 것을 전부 들어주는 스타일도 아니었다.평소 이라희와 지내면서 느낀 건데 말투나 행동거지에서도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통화를 마친 여운초의 표정이 확연하게 어두워졌다.전이진이 바로 묻지 않고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조용히 말했다.“여기 사람이 많아서 우리 아들도 잘 봐주실 거야. 우리 밖에 잠깐 나갈래?”여운초는 그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전이진은 아내가 속마음을 털어놓길 바랐다. 무슨 일이든 혼자 담아두지 말고.잠시 후, 두 사람은 중심 건물에서 나왔다.전씨 할머니는 손자 내외가 뭘 하든 신경 쓰지 않으셨다. 증손주들이 모두 돌아왔기에 할머니 눈에는 손주들만 들어왔다.전이진은 아내의 손을 잡으며 걷기 시작했다.“천우가 뭐라고 했어? 이라희
예진 리조트에서 나온 후 전태윤은 A시에 더 머무르지 않고 당일로 비행기를 타고 관성에 돌아갔다. 돌아가기 전, 그는 하예정에게 미리 알리지 않았는데 그녀에게 서프라이즈를 해줄 생각이었다.돌아가는 길에서 그는 예준성의 말을 되새겼다.예준성은 그에게 아내 앞에서 모든 걸 솔직하게 털어놓으라고 제안했다.성소현의 기분은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성소현이 전태윤을 사랑하는 건 그녀의 일일 뿐 전태윤이 먼저 다가가 유혹한 것도 아니니까.만약 성소현의 기분을 고려하며 성기현이 말했던 것처럼 성소현이 그에 대한 감정을 모두 내려놓은 후에야 하
전태윤의 눈가에 슬픔이 스쳤지만 어제처럼 격하게 반응하진 않았다.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예정아, 정말 저 동물들을 키우고 싶어? 그럼 내가 장씨 아저씨더러 길을 안내해서 너랑 효진 씨를 데리고 우리 집 과수원들을 구경시켜줄게. 닭을 키우기 적합한 곳이 있으면 바로 거기서 키워. 네가 직접 돌보고 싶으면 직접 돌보고 그게 아니면 도우미들이 돌봐줘도 돼.”하예정이 미간을 찌푸렸다.“구정 때 당신 본가에서 보냈는데 과수원을 전혀 못 봤어요.”“서원 리조트 옆에 산이 몇 개 있는데 과수를 많이 심었어. 그게 바로 과수원이야. 거긴
“제부 출장 다녀왔으니 언제 시간 나면 제부랑 함께 이모네 댁으로 다녀와.”하예진이 화제를 돌렸다.전태윤이 재벌 전씨 일가와 연관이 있는지 그녀는 구분할 수 없다. 다만 이모 이경혜는 전씨 일가의 도련님들을 분명 만나봤을 테니 동생이 제부를 데리고 이모네 댁으로 다녀오면 된다.그렇게 되면 전태윤이 하예정에게 아직 숨긴 게 더 남아있는지 곧 알게 될 것이다.숙희 아주머니는 옆에서 들으며 저녁에 집에 돌아가 도련님에게 꼭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도련님더러 하루빨리 사모님께 솔직하게 고백하라고 다그쳐야 할 듯싶었다.“태윤 씨 설 연휴 지나
서현주도 자기가 한 말이 터무니없는 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너무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예전에 주형인은 늘 집에 돌아가 하예진의 살찐 모습을 보기만 해도 역겹다고 말하곤 했다.이혼 후 주형인은 되려 계속 하예진을 찾아가고 있고 하예진도 계속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이혼 당시와 비교하면 하예진은 불과 두 달 만에 십여 킬로의 살을 빼버렸다. 지금의 하예진은 모델에 비하면 당연히 뚱뚱한 편이지만 일반인과 비교하면 단지 살이 좀 더 풍만하게 찐 정도이다.서현주는 주형인이 하예진을 찾아가는 이유가 하예진이 살이 빠져 이혼할 때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