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초가 전씨네 어르신이 택한 손주며느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소수의 아는 사람들도 대부분 어르신이 왜 여운초를 택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전이진도 예정에도 할머니가 왜 여운초를 택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다만 여운초가 일찍이 여씨 그룹의 비즈니스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조금 깨닫게 되었다.비록 여씨 가문의 재산을 탐내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여운초와 부부가 되어 아이를 낳는다면, 자녀들은 전씨와 여씨의 재산을 모두 상속받게 된다.이 점이 가장 추측하기 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물론 전이진도 할머니가 여씨 가문의 재산을 탐내서가 아니라 여운초의 인품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들 전씨 가문에 비하면 여씨 가문의 재산은 보잘 것도 없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그중 일부분이 압수되면 여씨 가문의 재산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그러니 어르신이 노리는 것은 결코 여씨 가문의 재산이 아니다.안목이 좋은 어르신은 일찌감치 여운초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꿰뚫어 보고, 이렇게 훌륭한 여자아이를 전씨 가문에 끌어들이려고 했을 뿐이다.“운초야, 내가 말했었지? 꼭 신의를 찾아 너의 눈을 치료한다고. 넌 반드시 앞을 보게 될 거야. 그리고 평생 못 본다고 해도 상관없어. 내가 네 눈이 되어 널 데리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즐기도록 할게.”전이진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난 우리 집이 너에게 가장 적합한 시댁이라고 생각해. 우리 집 어른들은 하나같이 성격이 좋아 너의 부족한 점을 대범하게 받아들일 거야. 내가 널 싫어하지 않는데, 너도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잠자코 듣고 있던 여운초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신의를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있을까? 우리 고모는 A 시를 수없이 돌아다녔지만 신의의 연락처조차 얻지 못했어.”“전씨 그룹과 예진 그룹은 오래된 파트너사이야. 그리고 형수님도 예씨 가문의 큰 사모님과 친분을 쌓는 중이고. 신의 쪽과 예씨 가문은 곧 사돈이 될 사이라는데... 네 눈을 치료하기 위해서
“언제 도착해요? 제가 사람을 보내서 마중 갈게요.”여운초는 한동호의 여자친구에 대해 깊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 비록 둘이 함께 지낸 시간이 얼마 되지 않고, 상대방이 자신을 경계하기도 하지만 여운초는 여전히 새언니로 생각하며 깍듯이 대했다.“아니, 됐어. 어젯밤에 도착해서 호텔에 묵고 있거든. 이제 막 아침을 먹고 너희 가게에 가려던 참이야.”“어젯밤에요? 왜 나랑 아무 얘기도 안 했어요?”“너 어제 소정남 이사의 결혼 피로연에 참석했다며, 방해할까 봐 그랬지. 나 운전해야 하니까 이따가 보자. 아름이가 너 주겠다고 특산품을 많이 챙겨왔어.”여운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내가 먹을 복이 생겼네요, 이따가 봐요.”통화가 끝나자 전이진이 물었다.“저번에 네 가게에 왔었던 남자 맞지?”“귀가 참 밝네. 다 들었으면서 뭘 더 물어봐?”여운초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동호 오빠가 여자친구를 데리고 명절 쇠러 온대.”“그 동호라는 사람한테 여자친구가 있었어?”“응, 이젠 사귄 지도 몇 년이 되었으니 곧 결혼할 거야. 나랑 동호 오빠는 피가 안 섞였을 뿐 남매랑 다름없어. 난 동호 오빠를 친오빠로 생각해, 오빠도 마찬가지일 거야.”전이진은 속으로 투덜거렸다.‘운초야, 그건 너만의 생각이고. 한동호는 널 단순히 동생으로만 생각하고 싶지 않을걸?’꽃필무렵에 도착했을 때, 한동호와 그의 여자친구 박아름은 이미 가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한동호는 전이진의 마이바흐가 가게 앞에 멈춰 서는 것을 보고 조금도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이때 여운초가 전이진의 부축으로 차에서 내렸다.한동호는 여자 친구를 데리고 가게 밖으로 마중 나왔다. 전이진의 여운초에 대한 다정한 배려에서 둘의 사이를 짐작한 박아름은 얼굴의 웃음이 한결 더 진해졌다.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한동호 커플과 마주했다.“동호 오빠.”여운초는 전이진의 손을 뿌리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그는 꽉 잡고 절대 놓아주지 않았다.두 번이나 뿌리치려 시도했지만 여전히 성공하지 못하자 여
박아름의 말에 두 남자 사이에 흐르던 묘한 분위기가 잠시 수그러들었다.두 남자는 화를 억누르고 가게에 들어가려 했는데, 나란히 들어가다 하마터면 서로 부딪힐 뻔했다.한동호는 전이진을 노려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전이진 씨, 우리집 운초가 아직 당신의 구애를 허락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아직 여자친구도 아닌데 걸핏하면 손을 잡거나 하지 말아요. 운초를 좀 존중해달라는 얘깁니다.”이에 질세라 전이진이 말했다.“계속 우리집 운초라고 하는데... 당신은 성이 한 씨고 운초는 성이 여 씨인데 어떻게 한집이 되는 거죠? 운초의 작은고모가 이 말을 했다면 몰라도요. 그리고 나도 걸핏 잡은 게 아니에요. 운초가 차에서 내릴 때 넘어지지 말라고 배려해서 잡은 거예요.”“운초는 날 오빠라고 부르거든요? 그리고 내 목숨도 우리집 운초가 구해준 거예요. 우리 두 남매는 여러 해 동안 의지하며 지내왔고, 운초는 내 마음속에 바로 나 한동호의 친동생이랑 다름없어요!”“잘 알고 있죠. 그래서 나도 운초를 따라 동호 형님이라고 부른 거예요.”한동호는 말문이 막혔다.전이진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자신을 형님이라고 부른 건 체면을 세워준 거나 다름없다.“형님이라니, 내가 어찌 감히 형님 소리를 듣겠어요? 날 그저 한동호 씨라고 불러요.”“당연히 운초를 따라 형님이라고 불러야죠, 난 운초의 말을 듣거든요. 형님도 우리 전씨 일가의 남자들이 아내의 말을 잘 듣는다는 소문을 들었을 거예요.”“아내라뇨? 운초는 아직 당신에게 시집가지 않았어요.”“조만간에 일이에요.”“...”“전씨 일가의 둘째 도련님이 이렇게 뻔뻔한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낯가죽이 두껍지 않고서야 어떻게 아내를 얻을 수 있겠어요? 한번 거절당했다고 바로 포기하면 영원히 아내를 얻을 수 없을 겁니다.”한동호는 또 한 번 말문이 막혔다.옆에 있던 여운초와 박아름은 두 남자의 대화를 모조리 들었다.박아름은 미소를 띠고 여운초에게 말했다.“전이진 씨 말이야, 운초 널 좋아하는 거 맞지? 참 괜찮고
여운초와 박아름이 가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딱히 할말이 없는 두 남자는 누구의 눈이 더 큰지 내기하려는 듯 서로를 노려보았다.두 남자가 한창 내기하고 있을 때, 저편에서 전태윤은 하예정을 데리고 리조트로 갔다. 막 들어가려던 참에 입구에서 두 대의 차가 앞길을 막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두 대의 차는 마침 입구를 막을 수 있게 나란히 주차되어 있었다.리조트 입구의 경비실에 있던 경비원은 롤스로이스를 보자마자 큰 도련님이 돌아오셨다는 것을 알았다.당직 경비원 두 명은 급히 걸어 나와 앞길을 막고 있는 차들의 도어를 두드렸다. 운전기사가 도어를 내리자 경비원들은 급히 말했다.“저의 큰 도련님께서 돌아오셨으니, 먼저 차를 옆으로 옮겨 세워요. 이제 집사님이 답장하시면 그때 다시 운전해서 들어가도록 해요.”입구를 막고 있는 두 대의 차는 바로 여운초의 두 고모의 차였다.두 고모는 전씨 일가의 둘째 며느리인 명해은을 찾아가기로 했었다.다만 너무 일찍 도착하였는지 명해은은 아직 일어나기 전이었다.명해은의 동의 없이는 집사도 감히 그녀들을 들여보낼 수 없었기에 두 고모는 차에서 기다렸다.하지만 차가 마침 리조트의 입구를 막아버릴 줄이야... 경비원의 말을 들은 여운초의 두 고모는 급히 운전기사에게 차를 한쪽으로 세우라고 분부했다.몇 분 후, 전태윤의 전용 차량 행렬이 서원 리조트로 들어갔다.경호차량은 노천 주차장에서 멈췄고 전태윤이 타고 있던 롤스로이스는 주택 입구까지 곧장 가서 멈췄다.하예진 모자를 태운 경호차도 그들을 따라 주택 입구까지 갔다.리조트의 단골인 노동명은 차를 노천 주차장에 아무렇게나 세운 후 되레 경비실 쪽으로 돌아가 물었다.“밖에 있는 저 차는 누구 차죠?”“여씨 가문의 사람인 것 같습니다. 명해은 사모님을 만나러 오셨는데 해은 사모님은 아직 일어나지 않으셔서 양 집사님께서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양 집사는 명해은 쪽의 집사이다.노동명은 여운초의 두 고모에 대해 별 인상이 없었다. 노씨 일가와는 차원이
“네, 예진이랑 우빈이도 함께 오긴 했는데, 저는 정말 어르신을 뵈러 온 거에요.”노동명은 정자로 들어가 옆에 앉아 어르신이 태극권하는 것을 지켜보았다.“옛날에 우리 할머니께서 살아 계실 때 어르신을 따라 태극권을 하라고 제가 그렇게나 타일렀는데 할머니께서는 끝까지 듣지 않으셨어요.”노동명의 할머니와 어르신은 같은 시대 사람이지만, 노동명의 할머니의 건강은 어르신에 비하면 한참 뒤떨어져 있었었다.어르신은 아직도 정정한지라 혼자서도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를 일주할 수 있을 정도이다.특히 손자들을 놀리는 데는 정력이 넘쳐난다.그에 비해 노동명의 할머니는 저세상으로 떠난 지도 한참 됐다.“허허, 네 할머니는 진정한 명문가 규슈거든. 나 같은 시골뜨기랑은 다르지.”“어르신도 참, 어르신도 분명히 명문가 규수시면서 이런 말을 해요?”“우리 증조할아버지께서 아직 살아계실 때는 우리 친정도 명문가라고 할 수 있었지. 하지만 내가 태어날 적엔 우리 집도 쇠퇴하여 살고 있던 저택까지 국가에 맡길 수밖에 없게 되었단다. 너희 할머니는 평생 우아하게 살았는데, 나 같은 막돼먹은 사람과는 비교가 안된다.”태극권 연습을 마친 어르신이 동작을 멈추자 노동명은 얼른 일어나 어르신을 부축하려 했다.노부인은 시끄럽다는 듯 그의 부축을 거절하고는 흥미진진하게 말했다.“동명아, 이 할미랑 한번 겨뤄보지 않겠느냐? 나도 몸을 푼 지 오래돼서 말이야.”노동명은 바로 투항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어르신, 제발요. 제가 어찌 감히 어르신이랑 겨루겠어요?”“네가 이겨도 상관없어, 네 탓을 하진 않을 테니까.”“그러다 제가 어르신을 다치게라도 하면 어떡해요? 그럼 앞으로 저는 전씨 일가의 원수가 될 거예요. 이곳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될걸요? 이런 손해보는 일은 사양할게요. 정 겨뤄보고 싶으시다면 태윤이를 찾는 건 어때요?”이때 전태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동명아, 날 함정에 빠뜨릴 생각 마.”전태윤은 우빈이를 안고 정자로 다가오며 인사를 했다.“할머니.”그에 할
어르신은 우빈이의 손을 잡고 정자를 나서며 전태윤에게 물었다.“여운초 씨의 두 고모가 찾아온 것은 아마도 뭔가 사정할 일이 있어서겠죠. 전 그 두 고모가 평소에 운초 씨를 배은망덕하다며 욕하며 이 기회를 틈타 여씨 일가의 모든 것을 차지하려고 한다는 것 외에는 몰라요. 자세한 건 신경 쓰지 않아서요, 그건 이진이가 신경 써야 할 일이에요.”여운초는 그저 미래의 제수씨일 뿐이다. 직접 와서 도와달라고 부탁하지 않는 한 전태윤도 그녀의 일에 관여할 생각이 없었다.“이진이도 별로 도와주지 못했을 거야. 운초 혼자서도 잘 처리할 수 있을 테니. 이진이는 운초 뒤에 서서 뒷바라지만 하면 돼.”할머니는 자신이 선택한 손자며느리를 매우 신뢰하고 있으며, 여운초가 여씨 그룹에 관한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전태윤은 할머니의 말을 받지 않았다.할머니도 곧 화제를 바꾸었다.둘째와 셋째는 할머니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좋은 아내감을 골라 줬으니, 스스로 알아서 구애하도록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다만 넷째와 다섯째의 아내감은 아직 정하지 못했다.그리고 여섯째 뒤의 손자들은 아직 어려 몇 년간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남자아이는 일반적으로 여자아이보다 성숙이 느린 편이다.너무 일찍 결혼하면 한 가정의 무거운 짐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스스로 사업을 잘할 수 있을 때에 다시 아내를 얻어도 늦지 않다. 그때엔 가족의 도움이 없어도 한 가정의 무거운 짐을 감당할 수 있읕 테니까.“지금 날씨가 딱 좋구나. 태윤아, 얘네들을 데리고 우리집 섬에 가서 며칠 묵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할머니가 젊은이들에게 아이디어를 하나 제안했다.“일단 할머니부터 보고요. 할머니는 어때요? 섬에 가고 싶어요?”“이 늙어 빠진 할미는 빠지겠다. 너희 젊은이들끼리 가서 며칠 놀다 오거라. 동생들도 잊지 말고 부르고.”할머니는 넷째와 다섯째 손자의 아내로 택한 여자들의 인품을 조사하러 가야 했다. 인품이 훌륭하거든 확정할 생각이었다.전태윤은 응하며 고개를 끄
전태윤은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이건 하예정이 전씨 일가에 시집온 후 반드시 직면해야 할 책임이니까.남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하예정이 입을 열었다.“그럼 요 며칠 태윤 씨가 집에 있는 동안 잘 배워야겠어요. 모르는 부분은 하나하나 물어볼게요.”그녀는 자신이 전씨 일가의 사모님으로서 이런 일들에 대해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다만 이 정도로 많은 산업을 직접 관리해야 할 줄은 몰랐다.또한 앞으로 규모가 거대한 서원 리조트도 관리해야 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하예정은 모연정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예진 리조트를 관리하고 있는 것을 보았었다.이젠 하예정의 차례가 되었다. 모연정처럼 시댁의 일에 대해 어느 정도 맡아야 할 듯했다. 모연정은 이미 관리 일을 시작한듯 했지만 하예정은 아직 손을 대지도 않았다.모연정은 패기가 있다. 비록 재벌가라고는 할 수 없는 모씨 가문에서 자랐지만,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집안이었고 온 집안 식구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 자신감이 있었고 성격도 밝았다.나중에 모연정은 친부모를 찾게 되었는데 친아버지는 만성 남씨 가문의 주인이었다. 때문에 남씨 가문의 재산을 물려받는 것은 고사하고 친아버지의 개인 재산을 물려받는 것만으로도 몇십조의 재산을 가지게 된다.다시 말해 돈도 있고 지위도 있고 패기까지 있는 틀림없는 여자 갑부였다.그녀와 비하자니 하예정은 뭔가 기가 죽을 듯했다.하지만 전태윤과 시댁 식구들의 자신에 대한 신뢰를 생각하면 자신감이 솟아났다. 앞으로 관리일을 시작한 후 잘못하여 실수를 저지른다고 해도 시댁 식구들은 그녀를 탓하지 않고 오히려 잘못을 교훈 삼아 진보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할 것 같았다.“태윤이는 외부 사업을, 넌 내부 관리를 책임지면 된다. 즉 상가 건물 임대와 일부 체인점의 운영을 책임지는 거야. 얼마 안 되니까 이 할미는 네가 빨리 적응할 수 있을 거로 믿는다.”할머니는 하예정이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도록 웃으며 위로했다.진짜 사업상의 일은 전태윤이 맡고 있다.하지만 하예정도
결혼식을 올리기도 전에 전씨 일가는 하예정이 가족 사업에 손을 댈 수 있도록 안배했다. 이는 인정하고 신뢰하는 표현이다.이에 하예진은 완전히 마음을 놓았다.동생은 그녀보다 훨씬 운이 좋았다.처음에 하예진을 안심하게 하기 위해 초고속 결혼을 했던 전태윤과 하예정 부부는 낯선 사이로부터 알콩달콩한 사이로 되었다.무엇보다 중요한 건 전씨 일가는 재벌가로서 하예정의 출신에 대해 한 번도 불만을 토로한 적이 없었다.만약 다른 재벌 가문이었다면 이는 매우 보기 드문 현상이다.하예진은 마음속으로 동생 대신 기뻐했다.하예정은 시어머니의 한쪽 팔짱을 낀 채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어머니, 우리 방금 돌아왔는데 나 좀 쉬게 해주면 안 돼요?”장소민은 하예정의 이마를 툭 건드리며 말했다.“그렇게 놀고도 아직도 놀고 싶어? 요즘은 가게를 지키는 것 외에 투자한 채소밭을 드문드문 둘러보는 것뿐이니 바쁘지는 않을 테고.”그녀는 아들을 한눈 쳐다보고 말을 이었다.“태윤이랑 사랑질하느라 바쁜 거지?”하예정은 시어머니의 놀림에 얼굴이 빨개졌다.“가자, 위층으로.”장소민은 며느리가 어리광을 부리든 말든 상관없이 2층으로 데리고 갔다.2층에는 두 개의 서재가 있다.큰 서재는 전태윤 부자가 자주 사용했고 작은 서재는 장소민이 독점하여 쓰고 있다. 작은 서재의 키는 장소민과 할머니만이 가지고 있다.다만 할머니는 며느리인 장소민이 시집온 후로부터 온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은 모두 맏며느리인 그녀에게 맡겼고, 작은 서재에도 거의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다른 사람들이 작은 서재에 들어가려면 장소민이나 할머니의 동의를 받아야 했다.둘째 며느리와 셋째 며느리는 시댁의 비즈니스에 관해 잘 알고는 있지만 직접 관리할 필요가 없었기에 자기 집의 개인 사업만 챙겼다. 어쩌다가 도움이 필요할 때만 시댁의 비즈니스에 개입하곤 했다.혹시라도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장소민이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절대 함부로 개입하지 않았다.또한 자기 집안의 사업만으로도 할 일이 아주 많았고, 능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