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 중학교성소현은 차를 세우더니 차 키를 들고 하예정의 서점으로 들어갔다. 하예정은 혼자서 가게를 보고 있었고 심심할 때 가끔 공예품을 만들기도 했다.성소현이 들어왔을 때, 그녀는 자전거를 만들고 있었다.“왜 또 이걸 만들어? 다른 사람에게 맡기라고 했잖아. 왜 다 혼자 하려고 해? 그러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태윤 씨가 너를 아무것도 못 하게 하고 집에서 사모님 노릇을 이나 하라고 할걸. 그때 가서 불평하지 마.”성소현은 차 키를 카운터에 올려놓고 의자를 가지고 와 앉으며 말했다.그리고 하예정이 만든 자전거를 가져오더니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예정아, 근데 너는 진짜 손재주가 좋아. 너무 잘 만들었네.”“전문적으로 배웠어요. 언니는 어떤 걸 좋아해요? 내가 시간 있을 때 만들어 줄게요.”“아니야. 괜찮아. 태윤 씨가 알면 또 싸늘하게 나를 째려볼 것 같아.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가게에서 살게. 매출도 올릴 겸.”성소현은 말하면서 손에 쥐고 있던 자전거를 살포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하예정은 도구를 거두면서 성소현에게 따뜻한 물 한 컵을 따라주고 과일을 씻어서 내놓았다.“예정아, 상의할 게 있는데.”성소현은 과일을 먹으며 말했다.“뭔데요?”“우리가 투자한 채소 농장 말이야. 이젠 수입도 많이 올랐어. 그래서 회사를 설립하고 사무실로 마련해야 할 것 같아. 그리고 재배업 쪽에 경험이 많은 직원들을 모집하고 농장 관리를 맡겨야겠어. 매니저도 몇 명 구해서 마케팅 업무를 보게 하고 큰 사업 얘기는 우리끼리 하자.”하예정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좋은 생각인데요. 본가 쪽에 사무실을 하나 마련해야 돼요. 농장이 모두 그쪽에 있어 사무실과 거리가 멀면 관리하기 힘들어져요.”“그래. 직원 모집은 너에게 맡길게. 나는 이쪽 일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어. 매니저 채용은 이미 헤드헌터 회사에 맡겼어.”하예정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지금 농장을 관리하는 직원들이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면서 성실히 일하고 있어요. 일단 지켜봅시다. 그중
그러자 하예정이 대답했다.“하지만 땅을 사서 집을 짓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먼저 사무실을 임대할까요? 그러고 나서 땅을 사고 집을 지으면 되죠.”“그래. 이 일을 효진 씨에게도 알려야 해. 네가 문자를 보낼래? 아니면 내가 보낼까?”성소현은 하예정에게 물었다. 그리고 하예정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다.“네가 보내. 너랑 효진 씨의 친분이 10년이 넘는데 네가 효진 씨 신혼여행에 ‘민폐’를 끼쳐도 너를 뭐라고 할 것 같지 않아.”그러자 하예정도 웃으면서 대답했다.“네. 저녁에 전화해서 얘기할게요.”“효진 씨가 매일 올리는 인스타를 보면 정말 부럽고 질투나.”“저도 너무 부러워요. 결혼식을 올리고 저랑 태윤 씨도 신혼여행 갈 거예요.”“이젠 부럽다는 소리도 지겹네. 너랑 효진 씨 때문에 내가 못 살아.”성소현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언니도 깨가 쏟아지던데 뭘. 준하 도련님이 매일 꽃도 사다 주고 연애편지도 주던데, 우리 집 그분은 나한테 쪽지도 안 줬어요. 연애편지는 상상도 못 하죠.”예준하를 언급 하자 성소현은 방긋 웃더니 갑자기 뭔가 떠올랐는지 다시 안색이 어두워졌다.“우리 집에서 준하는 안 된대. 예정아, 내가 네 앞에서는 솔직하게 말할게. 나는 준하가 너무 좋아. 우리 둘도 잘 지내고 있고. 준하와 함께 있을 때 나는 제일 행복해. 그런데 우리 엄마는 준하를 보자마자 얼굴을 붉히며 싫어하는 티를 팍팍 내더라고. 준하가 착해서 다행이지 아니면 당장이라도 그 자리를 떠났을 거야.”그녀는 한숨을 쉬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가족들의 그런 태도를 보면 나도 많이 혼란스러워. 이 관계를 계속 이어가야 할지 고민이야.”하예정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이모가 허락하지 않은 이유는 딱 한 개인 것 같아요. 준하 도련님의 집이 너무 멀어요. 사실 이모는 준하 도련님 그리고 예씨 가문에 대한 인상이 좋거든요.”“나도 알아. 사실 많이 멀지. 하지만 준하는 앞으로 관성에서 오랫동안 일할 거고 나도 준하와 함께 관성에 있
성소현은 웃으면서 대답했다.“준하가 오늘 엄청 바쁘대. 꽃과 편지는 평소대로 받았는데 문자는 겨우 몇 통밖에 못 했어. 준하 큰형수가 곧 출산이라 준하가 가능한 한 빨리 업무를 보고 A시에 다녀오겠다고 했어.”“모연정 씨가 쌍둥이를 임신했잖아요. 보통 쌍둥이들이 예정 출산일보다 빨리 태어난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6월에 낳는다고 했는데 지금 5월 중순인 걸 보면 곧 낳을 것 같아요.”아이 이야기를 꺼내자 성소현은 하예정에게 2세 계획이 있냐고 묻고 싶었지만 입가에 맴돌던 말을 그대로 삼켰다.하예정는 일이 너무 바쁜 탓에 모든 정력을 일에 투자하고 있다. 그래서 2세 계획을 잠시 고민하지 않았다.만약 성소현이 아이 이야기를 꺼내면 하예정은 갑자기 슬퍼질 것이다.“저는 이따가 태윤 씨를 데리러 가야 해서 오늘은 같이 못 먹을 것 같네요.”성소현도 이해하듯 고개를 끄덕이었다.“그래. 아니면 나도 준하를 데리러 갈까? 예정아, 준하가 퇴근하고 내가 와있는 걸 보면 어떤 표정일까?”“너무 좋아하겠죠.”두 사람은 아직 정식으로 연인 관계를 확정하지 않았다. 만약 그녀가 주동적으로 예준하를 찾아간다면 이 또한 애정을 표시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예준하가 무조건 기뻐할 것이다.얼마 후, 성소현은 하예정의 서점을 떠났다.점심시간이 너무 짧은 탓에 하예정은 전태윤을 데리러 가지 않았다. 그녀는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가게 문을 닫고 꽃필무렵으로 갔다.전이진와 여운초는 아직도 밀당 중이다. 비록 전이진이 호감을 드러내면서 부지런히 대시를 했지만 여운초는 여전히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답답한 전이진은 사석에서 전태윤과 요즘 너무 힘들다고 투덜댔다.그는 전태윤과 하예정이 혼인신고 덕에 쉽게 관계를 확정 지었다고 생각했다.전태윤은 그 말을 듣자 피식 웃었다. 사실 두 사람도 많은 일을 겪고 서로 맞춰가면서 결혼까지 골인했다.전태윤이 예전에 하예정 때문에 울고불고 난리를 칠 때 전이진도 그 모습을 보았다.비록 전이진이 아직 여운초의 마음을 얻지 못했지만
여운초의 두 고모는 그녀가 잘되는 모습을 배 아파 지켜볼 수가 없었다.전태윤은 하예정에게 여운초가 이미 여씨 그룹을 장악했다고 알려줬다.여운초도 전씨 일가 앞에서 이 일을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하예정에게 솔직하게 말했다.“누구도 우리 남매의 것을 빼앗을 수 없어요.”그녀가 여씨 그룹의 모든 것을 소유하려는 건 아니었다. 동생의 몫은 동생이 성인이 된 후에 넘겨주려고 했다.하지만 여운별의 몫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도움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말씀하세요.”“고마워요. 지금까지는 괜찮아요. 동호 오빠도 도와주고 있고.”그리고 전이진도 있었다. 여운초는 전이진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았지만 만약 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골칫거리가 더 많아졌을 거다. 그녀는 결국에 그의 신세를 지고야 만 셈이다. 전이진은 점점 더 자신감이 부풀어 올랐고 여운초를 가지고 노는듯싶었다. 주도권을 잃은 그녀는 이 관계에서 점점 더 무기력해졌다.“이진 도련님도 운초 씨를 도와줄 수 있잖아요.”여운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이때, 전이진이 꽃다발을 안고 갑자기 등장했다. 하지만 그건 진짜 꽃이 아니라 5만 원짜리 지폐를 한 장씩 접어서 만든 꽃다발이었다.하예정은 전이진을 보고 여운초에게 말했다.“운초 씨, 저는 꽃을 가져다주러 가야 해요. 그럼, 이만.”“그래요.”여운초도 전이진의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이를 모른척하고 담담하게 하예정을 배웅하려고 애써 노력했다.“형수님.”전이진이 하예정을 불렀다.“그래. 왔어? 태윤 씨는 아직도 회사에 있어?”“네. 아직도 회사에 있어요. 제가 먼저 퇴근한 거예요.”하예정은 웃으면서 여운초에게 더 이상 배웅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차를 몰고 떠났다.하예정이 떠난 후에야 전이진은 여운초에게 들고 있던 꽃을 주었다.“운초야, 네 생각이 나서 이 꽃을 샀어.”“우리 가게에 있는 게 꽃인데. 필요 없어.”그녀는 꽃을 돌려주려고 했다.
“운초야.”전이진은 그녀의 붉은 입술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비록 여운초는 그의 눈빛을 볼 수 없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전이진이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는 점점 허스키해졌다. 그녀를 또 한번 가지고 싶었다.이를 눈치챈 여운초는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그녀는 전이진이 준 꽃다발을 안고 뒷걸음질 치다가 실수로 화분을 걷어찼다. 그녀가 막 넘어지려고 할 때 전이진은 크게 힘센 손으로 재빨리 그녀의 허리를 감고 그녀를 다시 끌어와 품에 안았다.공허했던 몸과 마음이 그녀로 인해 꽉 차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전이진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정신을 차린 여운초는 몸부림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전이진, 이거 놔.”가게에는 다른 직원들도 있었다. 직원 두 명과 경호원 두 명은 마침 다른 일을 하고 있어서 전이진의 행동을 보지 못했다.“나는 너를 구한 거지 해친 거 아니잖아.”그는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며 말했다. 그리고 볼에 뽀뽀했다. 그러자 그녀의 가벼운 떨림을 느낀 전이진은 피식 웃었다.‘엄청 예민하네.’그는 여운초가 이런 행동에 크게 반응한다는 것을 알았다. 앞으로 어떻게 그녀를 꾈지 알 것만 같았다.“전이진!”그녀는 매우 예민했다. 이렇게 뽀뽀를 받자 그녀는 참지 못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고맙다고 인사해.”여운초는 싸우기 귀찮아서 타협하기로 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이진아, 잡아 줘서 고마워.”전이진은 지금까지 자신의 이름이 이렇게 듣기 좋았던 적이 없었다. 이진이라는 두 글자가 그녀의 앵두 같은 입술에서 불리는 것이 너무 좋아서 미칠 것만 같았다. 지금 이 장소가 아쉽게도 그녀의 가게라 더 대담한 행동을 할 수 없었다.“고작 한마디야?”여운초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아, 짜증 나.’“밥 사줘.”그는 또 밥을 사달라고 했다.여운초는 어이가 없어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그래. 사줄게. 우리 가게에서 먹어. 내가 밥 해줄게.”“요리할 줄 알아?”“아니.”그녀는
전이진은 여운초를 카운터 앞으로 끌어당겨 앉혔다.“요리해 줄게.”그러자 그녀는 어리둥절해졌다.“정말?”그녀는 방금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것이다. 전이진더러 그녀와 함께 있으면 생활에 많은 불편함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말하면 자기에 대한 호감이 떨어질 줄 알았다.“내 요리 솜씨를 한번 맛봐.”전이진은 허리를 숙인 채 그녀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사람들이 그러더라고. 마음을 사로잡고 싶으면 그 사람의 입맛부터 사로잡아야 한다고. 내가 그 생각을 왜 이제야 했을까?”“...이진아, 왜 나한테 이렇게 잘해줘? 내가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이야?”“그럼.”그녀는 말을 하지 않았다.“이 꽃다발을 들고 자랑해도 되고 뜯어도 되지만 돌려주지는 마. 아니면 화낼 거야. 내가 화나면 어떻게 되는지 너도 알잖아.”여운초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니 그녀는 대응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가게 안쪽에는 간이 주방이 하나 있었다. 주방이라고 하기에는 설비들이 아주 초라했다. 가스레인지랑 전기밥솥이 있었기에 간단한 요리 정도는 할 수 있었다.전이진은 한번 둘러보더니 식재료가 없는 것을 보고 말했다.“운초야, 장을 안 봤어?”“아니.”그녀는 배달시키려고 했다. 전이진은 쌀을 씻으면서 말했다.“그러면 내가 밥을 안치고 가서 장 좀 보고 올게. 뭐 먹고 싶어? 직원들과 같이 먹을 거야?”그 말을 들은 두 직원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아닙니다. 이진 도련님. 저희는 분식 먹으러 갈 거예요. 신경 쓰지 마세요.”그러자 그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었다. 직원들은 너무 눈치가 빨랐다. 그는 장사가 잘되면 여운초더러 직원들에게 월급을 올려주라고 말하고 싶었다.잠시 후, 전이진은 가게를 떠나 장을 보러 갔다. 장을 보고 돌아와 경호원 두 명에게 말했다.“먼저 가서 밥 먹어.”경호원들은 알았다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직원 두 명과 함께 근처 분식집으로 떠났다.그들이 밥을 먹으러 가고 전이진이 야채를 씻을 때 여운초가 해고한 사촌
여운초의 사촌오빠가 명령을 내리자 그의 일행들이 즉시 움직였다.그들은 선반 위에 놓인 화분을 넘어뜨리면서 가게로 쳐들어갔다.“뭐 하는 거예요?”여운초는 일어나서 엄한 말투로 물었다.그러자 최씨 도련님인 최성욱이 기세등등하게 다가와 말했다.“뭘 하냐고? 야, 이 맹인아. 네가 먼저 의리를 지키지 않았잖아. 자, 다들 뭐해? 얼른 가게를 쳐부숴! 우리 돈줄을 끊어 놓고 너는 앉아서 돈이나 세고 있어?”그는 전이준이 준 돈 꽃다발을 보더니 생각지도 않고 손을 뻗어 빼앗아 가져왔다.눈 깜짝할 사이에 누군가가 다시 꽃다발이 빼앗았다. 하지만 그 사람은 여운초가 아니라 전이진이였다.최씨와 김씨 일가는 전씨 둘째 도련님이 여운초를 좋아해 부지런히 대시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만약 전이진의 신분을 신경 쓰지 않았더라면 두 가문에서 손을 잡아 여운초를 제대로 혼냈을 것이다. 심지어 여씨 저택에서 살 수도 없게 만들었을 것이다.최성욱은 전이진이 이곳에 있을 줄 몰랐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잠시 여기에 주차한 줄 알았다.“전, 전이진 도련님?”그는 말을 약간 더듬었다. 전이진은 그의 양복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마침 채소를 썰고 있었기에 그는 식칼을 들고 나왔다. 그는 한 손으로 식칼을 쥐고 한 손으로 그 꽃다발을 빼앗았다. 그리고 어둡고 사악한 눈빛으로 최성욱을 노려보았다.“뭐 하는 거야?”전이진은 차가운 어투로 물었다. 넘어진 선반을 보자 그는 더 싸늘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가게를 부수러왔어?”“...전, 전이진 도련님. 우리는... 우리는 가게를 부수러 온 것이 아니라 방금 실수로 넘어뜨린 것뿐이에요.” 얼음장처럼 차가운 분위기를 감지한 최성욱은 겁에 질렸고 방금 기고만장한 기세는 온데간데없었다.‘왜 하필 여기에 있는 거야?’비록 사람 인수로는 더 많았지만 그들은 전이진 앞에서 꼼짝하지 못했다. 그의 머리카락 한 올조차 건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그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짓이었기 때문이다!“내가 귀머거리
전이진은 빼앗은 꽃을 다시 여운초의 품에 안기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운초야, 계속 돈을 세고 있어. 요리는 금방 될 거야. 이 사람들을 신경 쓰지 마. 내가 있잖아. 하늘이 무너져도 내가 지켜줄게.”그리고 그는 최성욱을 몇 번 째려보면서 말했다.“운초가 내 약혼녀라는 걸 몰라? 감히 내 약혼녀까지 건드려? 최씨 집안, 정말 대단하네.”전이진의 말 속에는 많은 뜻이 있었다. 그러자 최성욱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오해, 오해입니다. 이진 도련님. 저희가... 저희가 잘못했어요. 저희랑 운초는 사촌 남매예요. 우리 엄마는 운초의 친고모고요. 한집안 식구입니다.”전이진은 어이가 없다는 듯 대답했다.“우리 운초는 너희 같은 친척을 두고 싶지 않아 할걸.”여운초와 작은고모는 사이가 좋았다. 그녀의 목숨도 작은고모가 구해준 셈이다. 하지만 작은고모가 멀리 시집가면서 전이진은 여운초의 목숨을 구해준 작은 고모를 볼 기회가 없었다. 기회가 되면 그는 정중히 인사를 올리고 그녀의 작은 고모를 친고모처럼 대할 것이다.“이진아.”좀처럼 말할 기회가 없었던 여운초가 입을 열었다.“저 사람들한테 따질 게 있어. 먼저 가서 밥 해줘. 배고파.”“알았어. 조금만 기다려.”그녀의 배고프다는 말 한마디에 전이진은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주방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여운초를 해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전이진은 식칼을 쥐고 부엌으로 돌아가 계속 요리를 했다. 그 모습을 본 최씨와 김씨 집안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위풍당당한 전씨 가문 둘째 도련님이 양복과 넥타이를 벗지도 않고 앞치마를 두른 채 그녀에게 요리를 해주다니. 부잣집 도련님 같은 모습은 전혀 없고 오히려 매우 친근했다.여운초를 얼마나 좋아하면 이렇게까지 잘해줄까?최성욱은 자기 어머니께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전이진이 여운초를 더 많이 좋아하니 말이다! 그녀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점이 신기해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다.전씨 가문 도련님들은 어장관리를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