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노동명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를 지지하고 있었지만 하예진은 정말 재혼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고 노동명에 대해서도 좋아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게다가 윤미라가 격렬하게 반대하는 것을 보고 전태윤은 포기하라고 설득할 생각이었다.설사 하예진이 노동명의 구애에 동의한다고 해도 시어머니가 반대하는 한 행복하기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한쪽은 가장 친한 친구이고, 다른 한쪽은 처형이라 전태윤도 중간에서 꽤 난처했다. 친구에게 포기하라고 설득하면 친구로서 지지해 주지도 않는다고 할 것 같았고 처형에게 친구의 마음을 받아들이라고 설득한다면 마치 처형을 자기 손으로 불구덩이에 빠뜨리는 것 같았다.전태윤은 두 사람 사이의 문제는 예전의 자신과 하예정 사이의 감정 문제보다도 더 까다롭다고 느꼈다.노동명이 하예진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알게 된 것은 그녀가 사고를 당했을 때였고, 지금은 그녀도 이미 회복되었지만 전후의 시간을 합해도 2, 3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노동명이 하예진에게 구애한 시간은 얼마 되지도 않았다.그녀를 감동하게 하기도 전에 어머니와의 갈등으로 교통사고까지 당하게 되었다.그와 하예진의 미래에 대해 전태윤과 소정남은 여전이 낙관적이지 않을 거라고 짐작했고 심지어 이전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을 거로 느꼈다.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으니 그의 성격상 하예진을 멀리할지도 모른다.어쩌면 두 사람은 아쉬움만 남게 될 인연일 수도 있다.“우리는 예진 씨가 동명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 단지 친구로 생각하고 있다는걸. 그래서 한사코 동명이를 가로막았던 거야. 문제는 동명에게 있어.”하예진을 찾아서는 소용이 없었다.그녀는 노동명을 사랑하지 않았고 여태까지 노동명이 일방적으로 하예진에게 구애하고 있었다.노진규는 또 한숨을 쉬었다.작은아들은 훌륭하지만 얼굴의 칼자국 때문에 많은 여자들이 그를 조폭 같다고 생각하며 감히 왕래하려 하지 못하고 있다.이따금 왕래를 시도하는 여자가 있어도 노동명의 신분과 재산에 눈독을 들인 것이었다
하예진은 아들을 품에서 내려놓았다.꼬마는 침대로 다가가 노동명에게 말했다.“동명 아저씨, 괜찮아질 거예요. 우리 엄마처럼 다 나을 거예요.”노동명은 그저 창백한 얼굴로 미소만 지을 뿐 말을 하지 않았다.의사와 간호사가 와서 진찰한 후 의사는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많은 사람이 병실을 지키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환자는 이미 의식을 회복했으니 휴식이 필요하기에 모두 먼저 돌아가서 쉬라고 했다.많은 사람이 병실에 몰려 있으면 오히려 환자에게 영향을 미친다.결국 노동명의 부모만 남아서 그를 지켰고, 다른 사람들은 한두 마디 당부의 말을 하고는 하나둘씩 병원을 떠났다.밤은 깊어졌고, 다들 노동명이 교통사고를 당한 일로 인해 마음이 유난히 무거웠다.하예진은 동생의 끈질긴 요구 하에 아들을 데리고 동생을 따라 피크 별장으로 갔다.가는 길 내내 하예정은 묵묵히 언니의 손을 잡았고 자매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마음을 잘 알았다.다음날, 노씨 그룹 대표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뉴스가 관성에 퍼졌다.연예 기사가 무슨 수를 써서 알아낸 건지, 아니면 노동명이 하예진을 구애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 게다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윤미라 부부가 그 자리에 있었기에 보도된 뉴스는 뭔가 안 좋게 추측하는 듯한 의미가 보였다.노동명이 부모님과 갈등이 생겨 폭주를 해서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게다가 노동명이 부모님과 갈등이 생기게 된 이유는 단 하나, 노씨 일가에서 노동명이 전씨 일가 큰 도련님의 처형을 추구하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이 뉴스는 당시 전태윤이 결혼했을 때처럼 인기가 높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관성의 인기 검색어에 올라 자연히 하예정의 눈에 들어왔다.하예진은 이 뉴스를 보지 못했다. 일찍 일어나서 뭔가를 도우려고 했지만 동생의 집에는 도우미가 있었기에 딱히 할 일을 찾지 못했다.그녀는 날이 밝을 때까지 마당에서 몇 바퀴 돌다가 강일구가 아들을 수업에 보내주는 것을 보고는 동생이 일어나기도 전에 집사에
어제처럼 침대 앞에서 지키던 윤미라는 하예진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얼른 일어나 조용히 말했다.“예진 씨, 오셨군요.”“동명 씨 보러 왔어요.”하예진도 노동명이 깰까 봐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녀는 꽃다발을 윤미라에게 건네주었다. 윤미라는 꽃다발을 받아 이제 동명이가 깨어나거든 바로 볼 수 있도록 침대 옆에 놓았다. 꽃다발을 본 아들의 기분이 좋아져 적극적으로 재활치료에 임했으면하는 바람이었다.윤미라가 꽃다발을 놓자마자 노동명이 깨어났다.그는 눈을 뜨자마자 침대 앞에 서 있는 하예진을 보았다. 그는 처음에는 침묵하다가 다음 순간 극도로 차갑게 변했다. 내뱉는 말도 차갑기 그지없었다.“당장 쫓아내요. 저 사람 보고 싶지 않아요.”침대 앞에 서 있던 세 사람은 모두 멍해졌다.윤미라는 아들과 하예진을 번갈아 보며 아들이 여기 서 있는 사람이 누군지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라고 의심했다.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아들에게 말해주었다.“동명아, 예진 씨야. 예진 씨가 널 보러 왔어.”노동명은 하예진을 보지도 않고 차갑게 말했다.“누군지 잘 알아요.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요. 예진이 아니었다면 교통사고를 당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다시는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아요.”“동명아!”윤미라는 낮은 목소리로 소리치며 자책하며 말했다.“이건 다 엄마 잘못이야, 내 잘못이라고. 예진 씨랑 상관없는 일이야. 어떻게 예진 씨에게 잘못을 다 뒤집어쓰게 하는 거야?”“예진이 때문에 엄마가 나를 저지하려다 내가 교통사고를 당한 거예요. 다 예진이 때문이라고요!”노동명은 매우 흥분한 모습으로 큰 소리로 외쳤다.“엄마, 다시는 예진이를 내 병실에 들어오게 하지 마요. 보고 싶지 않아요! 내보내요, 빨리 내보내요. 예진이가 안 가면 내가 나갈 거예요.”그는 일어나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움직였다가 상처가 다시 찢어질 수도 있었다.“동명아, 이러지 마. 엄마가 부탁할게, 제발 이러지 마.”윤미라는 울면서 아들을 누르며 발버둥 치지 못하게 했
비록 어머니는 아직 실천에 옮기지는 않았지만 퇴원한 후 다리 재활치료를 견지하지 못하게 될 때면 무조건 하예진을 찾아갈 것이었다.그의 차가운 태도는 미리 그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였다.병실 문이 닫히자 윤미라는 하예진을 잡아당겼던 손을 놓고 돌아서더니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벽에 기대어 울기 시작했다.하예진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 사모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위로했다.“사모님, 동명 씨는 꼭 괜찮아질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요.”그녀는 휴지를 꺼내 윤미라에게 건넸다.윤미라는 휴지를 받고 돌아서서 눈물을 닦으며 그녀에게 사과했다.“이 일은 예진 씨와 상관없어요, 다 내 잘못이에요. 내가 동명이가 당신을 찾아가지 못하게 막았기 때문에 교통사고를 당한 거예요. 다 내 잘못이에요. 어젯밤 동명이가 다리의 상처가 심한 것을 알게 된 후부터 영 정신을 못 차리더라고요. 내 생각에는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예진 씨에게 그렇게 대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요.”“전 괜찮아요. 이해가 가요.”노동명은 신분이 있는 사람이라 자신이 크게 다친 걸 보고 충격에 성격이 크게 변하게 된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예진 씨, 미안해요.”윤미라는 다시 한번 사과했다.“모두 내 잘못이에요. 내가 말리지만 않았더라면 동명이가 교통사고를 당할 일도 없었을 거예요. 그러니 예진 씨, 절대 동명이를 탓하지 마요.”하예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동명이 방금 한 말은 확실히 듣기 거북했다. 방금 들었을 때 그녀는 매우 상처받았지만 노동명을 탓하지는 않았다.“동명 씨가 지금 저를 보고 싶지 않아 하니까 앞으로는 와서 밖에 있도록 할게요. 들어가서 동명 씨를 자극하는 일은 하지 않을게요. 그럼 오늘은 이만 가 보겠습니다.”노동명은 지금 하예진을 보고 싶지 않아 하니 여기에 계속 머물러도 소용없었다. 게다가 그녀가 아직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또 격해질 수도 있었다.윤미라는 훌쩍이며 말했다.“며칠 지나서 동명의 마음이 좀 가라앉으면 다시 보러
하예진은 병원을 나와 자신의 토스트 가게로 돌아갔다.“사장님, 다녀오셨어요.”두 가게 점원은 그녀가 돌아오자 서둘러 인사를 하고는 힐끔힐끔 하며 뭔가 할 말을 주저하는 눈치였다.그러나 하예진은 정신을 딴 데 팔고 있어 알아차리지 못했다.한창 가게 장사가 바쁜 터라 두 점원도 일단 일을 먼저 마치고 나중에 그녀와 얘기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하예진이 별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하는 모습을 보고 실검에 대한 일을 알고 있겠다고 짐작했다.하예진의 여동생이 어마어마한 재벌 집 며느리인데 소식이야 그들보다 빠를 게 뻔하지 않겠는가.그 시각 하예진은 카운터 앞에 앉아있었다. 머릿속에는 노동명이 했던 말이 반복되어 울려 퍼졌다.그가 사고 난 데에 대해 그녀도 걱정하고 있지만 그는 그녀를 나무라며 잘못을 그녀한테 돌렸다. 분명 그녀가 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언니.”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들어 보니 동생이 이미 그녀 앞에 와서 앉아있었다. 하도 정신을 다른 곳에 두고 있어 하예정이 온 줄도 몰랐다.“예정아, 너 서점에 안 들어가 봐도 돼?”“효진이가 거기 있어. 난 이따 소현이랑 회사에 한 번 가볼 거야. 효진이가 임신한 몸이라 왔다 갔다 하기 불편하니까 그냥 서점이나 지키고 있으라고 했어.”소정남은 심효진이 출근하는 걸 반대했다. 하지만 심효진은 서점에도 못 가게 하면 하예정과 같이 채소 농장 비즈니스를 돕겠다고 했다. 소정남은 어쩔 수 없이 그녀가 매일 서점에 가는 데에 동의했다.최소한 서점을 지키는 일은 힘들지도 않고 가끔 물건을 상하차하며 옮겨야 하지만 경호원을 시키면 되니깐 말이다.“소현이는 아직이야?”하예진은 하예정의 뒤를 기웃거리며 보고는 물었다.“내가 방금 전화했는데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대. 그래서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어.”언니의 눈 밑에 짙게 깔린 다크서클을 보며 하예정은 걱정되어 눈살을 찌푸렸다.“언니 언제 잠을 잘 못 잤어? 왜 아침에는 그리 일찍 나간 거야?”그녀와 전태윤이 일어났을 때 하예진은
“언니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나도 안심이네. 노 대표가 언니한테 뭐라고 하던, 어떻게 성질을 부리던, 그건 다 진심이 아니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마.”하예정이 병원에 갔을 때 노진규가 그들 부부한테 모든 것을 얘기해줬다.그녀는 노동명이 한 말은 진심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불구가 되어 평생 휠체어를 타게 될까 봐, 다른 사람들이 그를 연민하는 눈길로 바라볼까 봐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랬다고 생각했다.잠자코 있던 하예진이 입을 열었다.“동명 씨가 자포자기 안 했으면 좋겠어. 퇴원하고 나서도 꾸준히 재활해서 빨리 회복하길 바라.”“그럴 거야.”하예정은 하예진을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나랑 뭐 더 할 말 있어?”“노 대표 사고 난 거, 관성 실시간 검색어에 떴는데 사람들이 함부로 추측하면서 언니 이름까지 거론됐어.”하예정은 잠깐 멈칫하더니 얼른 휴대전화를 꺼내 현지 뉴스를 열어 확인했다. 노씨 그룹 대표이사가 교통사고가 났다는 뉴스가 실검에 뜨긴 했지만 순위는 높지 않았다.그녀는 기사를 열어보았다.“태윤 씨가 실검 순위를 하위로 내렸어. 금방 실검에서 볼 수 없을 거야.”하예정은 확인하고 나서 말했다.“난 괜찮은데 이 일이 노씨 그룹에 영향을 끼칠까 봐 걱정이야.”노씨 그룹은 노동명 개인에 속하는 기업이라 회사의 모든 결정권은 그 혼자한테만 있다. 노진 그룹처럼 노씨 집안의 가족 사업체가 아니기 때문에 대표가 일이 생겨도 대표직을 이어받을 사람이 없다.그한테 지금 변고가 생겼으므로 잠시는 회사 임원들이 잘 알아서 운영하겠지만 시간이 오래 갈수록 회사 분위기가 뒤숭숭해질 것이고 그 틈을 타 딴마음을 먹는 이들이 생겨날 수도 있다.“그건 걱정 안 해도 돼. 태윤 씨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그리고 노씨 집안에서도 노 대표 둘째 형을 회사로 보낼 거야.”노동명의 큰 형은 노진 그룹의 대표로서 노씨 그룹까지 챙길 여력이 없다. 그리하여 둘째 형을 보내 회사의 안정을 유지하도록 했다. 노씨 집안 사람이 자리를 지키고 있고 또 전씨 그룹에서도 같이 챙기고
어르신은 눈을 크게 부릅뜨며 나무라는 투로 얘기했다.“왜? 지금 여기 누워있는다고 벌써 자신감이 사라져서 예진이를 남한테 떠미는 거야?”그리고 노동명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또 말을 이었다.“너 예진이를 뭐로 생각해, 대체? 걔 인생을 네가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남한테 떠밀기 전에 먼저 네 사람이 되는 게 우선 아니야? 네 사람도 아닌데 무슨 자격으로 남한테 떠밀어? 네 이놈, 예진이 손도 못 잡아봤지? 너흰 시작도 안 했는데 주제넘게 예진이한테 남자를 소개해 줘라 말아라 하는 거야?”“여기 아프냐?”노동명의 다친 다리를 약간 힘을 줘 누르며 어르신이 물었다.“아... 어르신, 아파요, 아파요!”다리로부터 전해져 오는 통증은 노동명으로 하여금 이마에 식은 탐이 송골송골 맺히게하였지만 그는 줄곧 꾹 참으며 한 번도 앓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어르신 앞에서는 체면을 차릴 필요가 없어 어리광 부리듯이 솔직하게 아픔을 호소했다.“아픈 줄 아는 건 좋은 일이야. 감각이 있다는 거잖아. 감각이 있으면 불구 될 일 없어. 물론 근육이나 뼈가 다치면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 퇴원하고 나서 재활센터를 찾아 열심히 재활 하도록 해. 네가 옛날처럼 씽씽 날아다니는 모습을 꼭 다시 볼 수 있을 거라 난 믿는다.”노동명은 괴롭고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어르신, 난 두려워요. 평생 휠체어에 앉아 다녀야 할까 봐서요.”“지금 의사도 네가 꼭 휠체어 신세가 될 거라고 단정 못 짓는데 왜 섣불리 그런 걱정을 해. 너 불구가 돼서 예진이 고생시킬까 봐 걔를 안 보려고 하는 거구나. 그래서 태윤이까지 병실에 들이지 않고 또 예진이한테 그딴 맘에도 없는 말을 하고. 예진이랑 원래부터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그런 형편없는 소리로 걔 마음에 상처 주기까지 하다니. 너 진짜 이대로 예진이 포기할 셈이냐?”“내가 전에 우리 집안의 그 불효막심한 손주 놈들 때문에 며느릿감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물색하면서 젊고 괜찮은 놈 몇몇 눈여겨 본 게 있다. 내가 손녀
어르신은 일어나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고는 병실을 나갔다....주씨 집안.서현주는 소파에 가로누워 즐거운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그때 집 문이 열리고 김은희와 주서인이 밖에서 들어왔다.주서인을 본 서현주는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저 염치없는 여자가 또 왔네.’주서인도 서현주와 똑같은 얼굴이었다.서현주와 주형인은 신혼집으로 다시 이사왔다. 물론 인테리어도 새로 했다. 원래 인테리어는 하예진이 사람을 데리고 와 다 망가뜨렸기 때문이다.비록 이젠 셋집살이가 아니지만 여전히 매일 소란스러웠다.주서인은 전혀 눈치라는 걸 보지 않고 그들의 신혼집을 제집 드나들듯 드나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빈손으로 와서는 갈 때 냉장고를 열어 안에 있는 것들을 싹 다 털어가곤 했다.낯짝에 철판을 깐 게 아닌지 심히 의심되었다.그 때문에 서현주는 주형인과 몇 번 싸웠는지 모른다.그녀는 임신한 후로 시집에서 보배처럼 떠받들려 살 줄 알았다. 하지만 착각이었다.시어머니는 그나마 조금 수그러들었지만 주서인은 전혀 변화가 없이 제멋대로였다. 서현주는 주서인 때문에 자꾸 열받으면 유산할지도 모른다고 주형인한테 불만을 토로했다.아이가 유산되면 그녀는 다시 감옥에 들어가 채 받지 못한 형을 마저 받아야 한다.“현주야, 휴대폰 좀 그만 봐. 아이한테 안 좋아.”집안에 들어오자마자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보고 있는 서현주를 보게 된 김은희는 참지 못해 한마디 핀잔을 줬다.하마터면 하예진 모자를 죽일 뻔한 눈꼴 사나운 여자지만 하필 감옥에 들어간 후 주씨 집안 핏줄을 잉태한 것으로 드러났다.주형인이 형 집행 정지를 신청하여 서현주를 데리고 나왔을 때 김은희는 분에 겨워 화병이 날 것 같았지만 결국 그녀의 배 속에 주씨 집안 손주가 있으므로 참았다.“뉴스 보고 있었어요.”서현주는 일어나 앉으며 주서인을 힐끔 보고는 말했다.“형님 또 오셨어요? 어머니, 형님 시집가지 않았나요? 왜 쩍하면 친정집에 들락날락해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혼하여 시집에서 쫓겨난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
그러나 전창빈은 사업을 확장하거나 삶을 즐길 생각은 하지 않고 먼 길을 떠나 여기까지 와서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로 지원했다.선우민아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전창빈은 솔직하게 대답했다.“도전하려고 왔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요리를 좋아했고 스승을 모셔 요리 실력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여러 구역의 다양한 요리를 연구하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창업으로 작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산 밖에 산이 있고 사람 위에 사람이 있는 법이라고 여기기에 계속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손님들의 입맛이 바로 저를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이니까요.”전창빈은 자신의 요리가 손님들이 맛있다고 생각해야만 요리 실력이 검증된 것으로 생각했다.손님들이 그 요리에 대해 조언을 해주면 그것을 개선해 더 높은 수준의 요리 실력을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우민아처럼 까다로운 손님을 만났을 때 그녀의 평가는 전창빈을 더욱 발전하게 할 것이다.선우민아는 그가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 자리에 도전하고 싶어서 온 것임을 직감하고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자신이 갑이 되는 것과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에요. 전이혁 씨는 제대로 고려해보셨나요? 만약 우리 가문에서 요리사로 일한다면 우리 가문만의 가정 요리사가 되어 전국의 다양한 손님을 상대할 기회가 없어요. 아마 전이혁 씨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죠.”전창빈은 빙그레 웃으며 선우정아와 시선을 마주치며 대답했다.“아마 큰아가씨님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몇 명 없을 겁니다. 제가 여기서 일하면 전국의 손님을 상대할 수는 없겠지만 큰아가씨께서 싫증 내지 않을 정도로 1년 정도 일할 수 있다면 제 요리 실력도 크게 향상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력을 키워 앞으로 관성으로 돌아가면 제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도 손님이 떼구름처럼 몰려들겠죠.”전창빈은 자신의 요리사들을 이끌어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전국의 손님들이 고향의 전통 요리와 관성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노
강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 경험상으로 보면 전창빈 씨는 합격일 겁니다. 어서 큰아가씨를 뵈러 가세요. 긴장할 필요 없어요. 큰아가씨는 표정이 좀 진지하지만 사실은 매우 좋은 분이십니다.”“감사합니다. 지금 바로 가보겠습니다.”전창빈은 엄격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선우민아가 아무리 엄격해도 그의 큰형 전태윤보다는 못할 것이다.엄격한 전태윤의 얼굴에 익숙해진 전이혁은 이미 엄격한 사람들에게 면역력이 생겼다.전창빈은 강진을 따라 주방을 나섰다.강진은 전창빈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주방을 나선 후에도 전창빈은 여기저기 둘러보지 않았고 또 선우씨 가문 저택의 호화로움에 놀라지도 않았다.다른 지원자들은 늘 선우씨 저택의 사치스러움에 압도되어 주변을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과는 달랐다.강진은 전창빈이 분명 세상 물정을 다 겪어본 사람이거나 굉장한 침착성을 가진 사람일 거로 생각했다.어쨌든 강진은 눈앞의 이 젊은 요리사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 아마 내일이면 동료가 될 것 같았다.강진은 전창빈을 데리고 선우민아가 앉은 자리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멈추어 섰다. 그는 전창빈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낸 후 먼저 나아가 공손히 말했다.“큰아가씨, 전창빈 씨께서 오셨습니다.”선우씨 가족 중 전창빈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오직 선우정아뿐이었다.다른 사람들은 그때 집에 없어 전창빈을 직접 보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다들 그를 보더니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한경주가 남편 선우진혁에게 소곤거렸다.“정말 젊어 보이네요. 우리 민아랑 비슷한 나이 같아요.”선우진혁도 고개를 끄덕였다.“젊네. 보아하니 매우 침착해 보이고. 조금도 긴장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구먼.”“이 요리사분이 매우 잘생겼다는 생각 안 들어요?”선우씨 가문의 둘째 부인, 즉 선우정아의 어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시누이에게 말했다.한경주가 웃으며 대답했다.“정말 잘생겼네요.”선우정아도 말을 이었다.“제 말 이제 믿으시죠? 제가 오늘의 최종 면접자가 매우 젊고 잘
선우민기는 입을 삐죽 내밀며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민기야, 오늘 저녁 요리 맛있었어?”선우민아가 동생에게 물었다.“맛있어요. 엄청 맛있었어요.”사촌 동생도 따라 말했다.“정말 정말 맛있었어요. 누나, 저 앞으로 매일 누나 집에 와서 밥 먹어도 돼요?”선우민아가 웃으며 대답했다.“오고 싶으면 오렴. 하지만 너랑 민기는 밥 잘 먹어야 해. 놀기만 하면 안 된다?”두 꼬마가 함께 모이면 말 그대로 손오공이 천궁을 뒤집어 놓는 수준이었다.가문의 후손에 남자아이가 둘뿐이라 모두가 그들을 귀여워했다. 선우씨 가문의 누나들이 집에 없을 때면 두 꼬마는 진짜로 지붕조차 뒤집을 기세였다.어르신들이 말릴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만약 두 꼬마가 지붕을 뜯으려 하면 오히려 사다리를 대줄 정도니까.“알았어요. 저희 꼭 말을 잘 들을게요.”“그래, 너희 둘 밖에 나갈 땐 외투 꼭 입고 나가야 해. 밖이 너무 추워.”두 꼬마는 기쁜 마음으로 손을 잡고 집에서 뛰쳐나갔다.동생들이 모두 놀러 나가자 선우민아가 집사에게 지시했다.“아저씨, 전창빈 씨를 만나게 해줘요.”강진이 공손하게 대답했다.“네. 바로 전창빈 씨를 불러오겠습니다.”선우민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자리를 떠났다. 그녀가 이동하자 가족들도 모두 따라 일어나 거실 소파에 앉았다.선우민아가 오늘의 최종 면접자를 만나고 싶다고 하자 선우씨 가족들은 바로 그 지원자가 채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직감했다.확실히 오늘의 저녁 식사는 온 가족을 만족시켰다.선우민아의 입맛이 까다로워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다. 그들은 선우민아 덕분에 항상 최고의 요리사가 준비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비록 그녀만큼 입맛이 까다롭지는 않았지만 요리의 품질을 가리는 안목은 그래도 꽤 좋은 편이다.강진이 미소를 머금으며 주방으로 들어갔고 전창빈이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자 그쪽으로 다가갔다.발소리를 들은 전창빈은 휴대전화에서 시선을 떼었고 고개를 들어
원림성 A시.전창빈은 모든 요리를 다 하고는 주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휴대전화를 꺼내 뉴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는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온종일을 바쁘게 보냈다.정확히 말하면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것이 전부 오늘 저녁 식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그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주인공이 돌아왔다.잠시 기다린 후, 전이진이 오후 내내 준비한 요리들이 하나둘씩 하인들에 의해 운반되어 나갔다. 물론 그는 나갈 필요가 없었다.선우민아가 그의 요리를 맛본 후 만족스럽다면 전창빈을 불러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통보도 없이 주방에 머물다가 선우씨 가족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떠나면 집으로 돌아야 한다.비록 전창빈은 자신의 요리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는데도 선우민아의 면담 요청이 없었다. 그는 겉으로는 여전히 뉴스를 보며 담담해 보였으나 속으로는 조금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그는 송일우처럼 세 번이나 도전하는 상황은 원치 않았다. 송일우는 몇 년이나 도전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 실패한 뒤로는 다시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나이도 점점 들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한편 선우씨 가족들이 이미 식사를 마치고 있었다.선우민아도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선우민아의 어머니 한경주가 관심 있게 물었다.“민아야, 이번 지원자가 만든 음식은 어때?”선우민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경주는 계속해서 말했다.“엄마 생각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채용하는 게 어때?”선우민아의 남동생 선우민기는 의자에 털썩 앉아 배를 만지며 말했다.“누나, 나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 이번 요리는 정말 맛있었어. 오랜만에 이렇게 배불리 먹었어.”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선우민기의 배를 가볍게 톡 치며 눈가에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너는 굶은 적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많이 먹었어? 이번만 먹고 다음 끼니는 못 먹을 거로 생각한 건 아니지? 좀 앉아 이따
도아영이 홀로 관성까지 찾아온 것도 전이혁을 위해서였다.관성에서 그녀의 안전은 그의 책임이다.앞으로 도아영과 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녀는 할머니께서 정해주신 아내 후보였다. 혹여 도아영이 관성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도씨 가문에서 문제를 일으킬 것은 물론 전씨 할머니께서도 그를 혼쭐 내실 것이 분명했다.전이혁은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태윤이 전화를 받자 전이혁이 조심스럽게 부탁했다.“형, 오늘은 형의 스위트 룸에서 하룻밤 자도 돼?”“안방만 빼고 다른 방은 마음대로 써.”전태윤은 거절하지 않았지만 안방 사용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평소 이곳에 머무를 때면 항상 안방을 사용했기 때문이다.“알았어. 고마워. 형.”“도아영 씨는 괜찮아?”“심하게 취해서 토하다가 물 달라고 하길래... 떠날 수 없어서 호텔에서 하룻밤 지내려고. 새벽에 아영 씨를 룸으로 데려다준 후 떠날 계획이야. 같이 묵었다는 사실을 알면 나에게 달라붙을까 봐 겁이 나.”전태윤이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진심으로 도아영 씨와의 관계를 정리할 생각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도 좋아. 그분 명성을 망가뜨리면 안 되지.”전이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형, 사실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영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이고 할머니의 눈썰미는 틀린 적이 없으셨지. 도아영 씨와 함께 지내보니 나랑 잘 맞는 것 같긴 한데... 왠지 그 ‘여우’랑 함께 있을 때가 더 편안하단 말이야.”“‘여우’라고?”“내 꿈에 자꾸 등장하는 그 여자 말이야. 별명이 ‘여우 같은 여자’거든. 화장을 잘하는 건지... 본명도, 고향도, 행적도 전혀 알 수가 없어. 신비로운 느낌을 주어서 나도 자꾸 정복하고 싶어져.”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이름도 모르는 그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다니. 그분이 혹시 만성의 남씨 가문의 큰 사모님과 연관 있는 거 아니야?”만성 남씨 가문의 큰 사모님은 모연정의 사촌 형수이자 A시 허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인데 그녀도 이중생활로 유명한 인물이다.허씨 가문
“네.”우빈이는 전태윤의 말을 믿으며 다시 물었다.“이모부, 그 모기는 어디 갔어요?”전태윤은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 우빈에게 보여주었지만 우빈은 모기를 찾을 수 없었다.“날아갔어. 이모부가 조금 늦는 바람에 잡지 못했어.”“그래요?”우빈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대답했다.하예정은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우빈이가 아무리 영리해도 결국은 어린아이일 뿐, 어른을 이길 수는 없었다.“우빈아, 이모부는 일하러 가야 해. 우리도 집에 가자. 이모부한테 잘 가라고 인사해야지.”우빈은 바로 그의 작은 손을 흔들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모부, 잘 가요!”“집에 가서 빨리 쉬고 이모의 말도 잘 듣고. 이모를 귀찮게 하면 안 돼. 말 잘 들으면 겨울방학에 예진 리조트로 가서 용정이랑 놀게 해줄게.”우빈은 급히 약속했다.“절대로 이모 귀찮게 안 하고 말 잘 들을게요.”“여보, 빨리 일하러 가요. 우리도 갈게요.”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일하러 가라고 재촉한 뒤 운전 기사에게 출발하라고 말했다.전태윤은 그 자리에 서서 차가 사랑하는 아내를 태우고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차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자 비로소 자신의 차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전이혁과 도아영의 일에 대해서 전태윤은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도아영이 취하면 전이혁이 그녀를 방으로 데려다줄 것이니까.전이혁은 도아영을 그녀의 방까지 데려다주고 외투와 양말을 벗겨 준 뒤 편안한 자세로 눕혔다. 그리고 그가 떠나려던 참에 도아영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옆으로 토해버렸다.전이혁이 쓰레기통을 가져오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는 이미 바닥과 침대를 모두 더럽혔다. 그는 이 광경을 보자 정말로 토할 것 같았다.흠... 전이혁도 토했다. 그는 입을 막은 채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정신없이 토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코와 입을 가린 채로 나왔다.도아영은 시원하게 토한 뒤 다시 침대에 철썩 누워버렸다.전이혁은 침대 반대쪽으로 돌아가 구토물을 보지 않으려 애썼고 최대한 빨리 도아영을 일으켜 안고
도아영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꿈나라에 들어가서 돌아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술 마시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말을 안 듣더니 결국 취했네. 내일 아침이면 정말 고생할 텐데.”전이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도아영의 이마를 쿡쿡 찌르더니 체념했는지 그녀를 안아 들어 로얄 스위트룸 나섰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참! 난 도아영 씨가 어느 룸에 묵고 있는지 모르는데.'그는 걸음을 멈추고 도아영을 내려놓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부축하면서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예정은 금방 전화를 받았다.“형수님, 도아영 씨가 묵고 계신 룸 번호를 아세요?”하예정이 대답했다.“저도 잘 몰라요. 그냥 관성 호텔에 묵는다는 사실만 알고 있어요. 아영이가 취했어요? 잠깐만요. 제가 알아볼게요.”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남편에게 말했다.“여보, 아영의 룸 번호를 알아봐 줘요. 취했대요. 이혁 도련님이 아영이를 모셔다드리려고 하는데 룸 번호를 몰라서.”전태윤은 표정이 굳었다. 그는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하예정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우빈의 손을 잡고 걸어 나갔다가 이내 돌아왔다. 그는 이미 전이혁과의 통화를 끝낸 상태였다.“알아봤어요?”“내가 이혁한테 이미 알려줬어.”전태윤은 여전히 표정이 굳은 표정으로 하예정에게 말을 건넸다.“아까 내가 물어볼 때 프런트 직원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마치 내가 바람피우는 거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 내 동생이 도아영 씨를 데려다주기 위해 그러는 거라고, 내가 대신 물어보는 거라고 설명까지 했어.”하예정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남편의 팔을 다정하게 끌며 달콤하게 웃었다.“설명했으면 그만이죠.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든 우리 감정엔 아무런 영향이 없는걸요. 제가 의심하지 않으면 되잖아요.”“다음부턴 이런 일 나에게 시키지 마. 이혁의 일은 이혁이가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둬. 내가 왜 도와줘야 해? 나도 예전엔 아무 도움 없이 오직 내 진심과 깊은 정으로 너의 마음을 얻었는데.”“알았어요.
전이혁은 침묵했다.도아영은 눈썹을 치켜들며 물었다.“왜요? 전이혁 씨는 그분을 보호하려고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는 거예요? 안심하세요. 저는 공정하게 경쟁하고 싶을 뿐이에요. 수작 부릴 생각은 없어요. 저는 그런 건 못해요. 남자 하나 때문에 그럴 필요도 없고. 제가 이렇게 남자를 좋아한 건 처음이라서 한번 도전해 보는 거예요. 다른 남자였다면 그냥 양보했을 거예요.”도아영이 눈여겨본 건 전이혁이란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전이혁의 뒤에 있는 전씨 가문이 마음에 들었다. 전씨 가문의 훌륭한 가풍은 소문이 자자했으니까.전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사상이 모두 개방적이어서 후손들이 무슨 일을 하든 언제나 지지해 주었다.심지어 반대한다고 해도 다른 집안 어르신들처럼 억지로 가로막지는 않았다.게다가 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특히 아내를 아끼기로 유명했고 한번 정한 인연과 결혼은 끝까지 지키고 있었다.이런 남자들이 흔치 않았다. 여자라면 누구든 한결같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을 것이다.하여 도아영은 꼭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정말 안 된다면 그건 그녀와 전씨 가문의 인연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애초에 노력도 안 해보고 포기한다면 나중에 분명 후회할 것 같았다.도아영은 평생 후회할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여자였다.전이혁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는 ‘여우’의 이름을 몰랐으니까. 마음의 절반을 뺏긴 주제에 정작 상대방 이름조차 모르고 있다니...도아영은 그가 연적을 보호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약간의 질투를 느꼈지만 더는 따져 묻지 않았다.“전이혁 씨가 그녀를 보호할수록 저는 더 궁금해지네요. 도대체 누가 저 도아영을 이길 수 있는지. 근데 괜찮아요. 언젠가는 제 연적이 누군지 알게 될 거니까.”그녀는 전이혁에게 잔을 들며 말했다.“전이혁 씨, 자! 우리 한잔하죠.”전이혁은 잔을 들고일어나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잔과 부딪혔다. 그리고 도아영이 단숨에 그 술을 들이마시는 걸 지켜보았다.도아영은 더 이상 전이혁과 사랑에 관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