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진이 처음 노동명을 밀고 내려가서 산책할 때 노동명은 병원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그가 걸을 수 있는지 없는지 지켜보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것을 발견했고 동정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병원은 죽음에 익숙한 곳이다.죽음과 비교하면 휠체어를 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예진 씨, 여기요.”윤미라는 하예진이 병원에서 나오는 걸 보고 멈춰서서 하예진을 향해 손을 저었다.노동명은 몇백억을 빚지고도 갚지 않은 것처럼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조금 전 하예진이 임수찬과 얘기할 때 노동명은 서로 인사하는 호칭을 듣고 하예진 전남편의 식구들이라는 것을 알아챘다.노동명은 마음이 매우 불편했다.주씨 가문의 사람은 정말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하예진은 밖에서도 자주 주씨 집안 식구들을 만나게 되거나 그들이 하루 토스트 가게까지 가서 치근거렸다.결혼한 지 반년이나 넘었는데 주씨 가문은 정말이지 사람을 참 귀찮게 했했다..하예진은 주형인 말고는 아무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는지 주씨 집안은 자기 주제를 모르는 것 같았다.하예진이 아직 살이 빠지지 않았을 때도 노동명은 하예진을 싫어한 적이 없었다.다만 하예진을 보며 건강을 위해 살은 좀 빼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하예진이 노씨 그룹에 출근했을 때 노동명은 오지랖 넓게 하예진에게 매일 몇 바퀴씩 회사에서 뛰도록 요구했다.절대 하예진을 싫어서 괴롭힌 것이 아니었다.살을 뺀 하예진은 더 이뻐졌고 그런 그녀를 노동명이 더욱 싫어 할 리가 없었다.노동명은 자신이 언제 하예진을 좋아했는지도 몰랐다노동명은 하예진이 뚱뚱하든 말랐든 간에 줄곧 그녀를 좋아했다.하예진이 걸어왔다.“전 남편의 형부가 예진 씨한테 뭐라고 하던가요?”노동명은 굳은 얼굴로 입술을 오므릴 뿐 먼저 물어볼 리가 없었다.대신 윤미라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주씨 집안 일이 생겼대요.”하예진이 답했다.“서현주가 주형인 남매를 찔렀는데 주형인은 부상 상태가 너무 엄중해 응급실에서 구급하는
하예진은 이내 대답했다.“사모님, 저도 가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모님 말처럼 누가 뭐라 해도 우리 우빈의 친아빠인데 만약 형인 씨가 깨어나지 못하면 마지막 길이라도 같이 있게 해주고 싶어요. 사모님, 동명 씨 부탁드릴게요.”“얼른 가봐요. 동명은 내가 돌볼게요.”하예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곧 떠났다.하예진이 떠나자 윤미라는 아들을 천천히 아들을 밀며 말했다.“주형인을 봐봐. 이게 바로 바람 피운 대가야. 동명아, 이후에 네가 결혼해서 얘기도 낳게 된다면 꼭 너의 혼인과 가정에 충실해야 해.”“혼인과 가정에 충실할 자신이 없다면 엄마는 네가 평생 혼자 살아도 지지해줄 거야. 네가 다른 집안의 딸을 불행하게 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엄마는 딸이 없지만 나도 여자이기 때문에 그 마음 잘 알고 있어. 누구도 자신의 남편이 다른 여자와 같이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거야.”“사랑하지 않게 되면 이혼하게 되고 또 싱글로 돌아오게 된다면 두 사람 사이 모든 일의 연결 고리가 끊어지게 되지. 자유를 얻었지만 과거 제일 사랑했던 부부는 제일 먼 사이로 되는 거지.”노동명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엄마, 난 평생 혼자 살 거야. 엄마 아들이 주형인처럼 그런 꼴 당할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넌 회복 될 거야. 다리가 나아지면 하예진과 결혼도 하고 우빈의 새아빠도 되어야지. 엄마는 이제 반대 안 할 거야.”“전에 네가 말했던 것처럼 네가 행복하다면 엄마는 간섭 안 할 거야. 하예진이랑 결혼하고 평범한 생활을 보내는 것이 네가 원하는 거잖아.”“우빈는 너무 귀여운 아이야. 엄마도 이젠 우빈의 할머니가 되는 것이 너무 좋아.”노동명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엄마, 이건 너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멀쩡할 때 엄마는 저와 연 끊고 살겠다고 하시면서 우리 둘의 혼인을 반대하셨어요.”“하지만 제가 지금 혼자 서 있기도 힘든 폐인이 되었는데 이제 와서 하예진을 좋아해도 된다고 결혼해라 고요?”“예진
하예진은 위로의 말도 내뱉지 못했다.하예진이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김은희를 부축해 의자에 앉히고 작은 티슈 한 봉지를 꺼내 김은희에게 건네는 일뿐이었다.주경진의 눈도 빨갛게 달아올라 시도 때도 없이 등을 돌려 눈물을 몰래 닦았다.주경진 부부에게는 아들 주형인 하나뿐일 텐데 만약 아들에게 뜻밖의 변고가 생긴다면 그들은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다.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야 김은희는 울음을 그쳤다.그러나 김은희는 감정에 북받쳐 여전히 말을 하지 못했다.하예진은 걱정하는 눈빛으로 주경진에게 말했다“형인 씨 어떻게 됐어요?”주경진은 목이 메어 겨우겨우 대답했다.“아직도 응급실에서 구조하고 있어. 다른 의사들만 계속 수술실로 드나들 뿐 주치의는 나오지 않으셨어. 피를 많이 흘려 혈낭도 한 봉지씩 들어가고 있는데 너무 걱정돼...”아들의 참혹한 과거를 되돌아보더니 주경진은 또 눈물을 흘렸다.주경진은 서현주가 자기 아들을 죽도록 찔러 놓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그들이 인기척을 듣고 급히 여분의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주형인은 그 자리에서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주서인도 동생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다가 서현주에게 칼에 찔렸던 것이다.“참 독한 년이다. 너무 지독해!”주형인이 서현주한테 무척 잘해 주었는데도 그녀가 왜 이런 짓을 벌였는지 이해가 안 갔다.그 당시 서현주가 화장실에서 한참 동안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나올 때 생긴 일이다.서현주는 다리가 저려서 조심하지 않아 넘어졌는데 아이가 뱃속에서 떠난 것이다.주형인은 모두가 서현주를 욕해도 그녀를 탓하지 않았고 심지어 나서서 편들어 주면서 절대 이혼하지 않았다.주경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주경진의 생각은 하예진과 같았다.서현주가 사람을 죽이려면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은 서주인 그들일 텐데 왜 그녀가 주형인을 칼로 찌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덩치 큰 남자가 어떻게 서현주에게 역살당할 수 있을지도 이해하지 못했다.비극이 발생했을 때 주형인 부부는 방에서
주경진에게 욕설의 퍼부은 뒤 김은희는 눈물을 글썽이며 하예진에게 말했다.“예진아, 우리 우빈을 데리고 와줘. 우빈이는 우리 형인의 유일한 핏줄이잖아. 자기 아들이 자신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알면 우리 형인이가 더 잘 이겨낼 수 있을지도 몰라.”하예진은 또 김은희를 위로했다.“우빈이가 예정이과 소현이 따라 고향 집으로 돌아가 채소 사고 있을 거예요. 제가 예정이에게 전화해서 언제 돌아오는지 물어볼게요.”하예진은 전 시부모님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하예진은 주형인이 버텨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주우빈은 분명 그의 아들이고 병문안 오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하예진과 주형인은 비록 이혼했지만 하예진은 아들 앞에서 주형인을 나쁘게 말한 적 없었고 주형인더러 아빠를 원망하라고 가르치는 일은 더욱 없었다.주형인도 우빈의 양육비를 책임졌기에 아빠 노릇을 어느 정도 한 셈이다.김은희는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김은희는 자꾸 아들이 견디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끊임없이 아들이 이겨내기를 기도했다.하예진은 이내 자리를 떠나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예정은 바로 언니의 전화를 받으며 물었다.“언니, 무슨 일이야?”이쯤 때면 언니가 병원에서 못된 노 대표를 돌보고 있을 시간인데 갑자기 전화가 와서 하예정도 걱정스레 물었다. “우리 우빈이 너와 같이 있어?”“나는 소현 언니와 같이 고향으로 왔어. 여정이 너무 길어 우빈이는 태윤 씨 따라 회사에 갔어.”“알았어. 내가 제부에게 전화해볼게.”“언니, 노 대표가 우빈이를 보고 싶어 해서 그러는 거야?”하혜정은 노동명이 어린 녀석을 보고 싶어 하는 줄 알았다.주우빈은 며칠에 한 번씩 하예진을 따라 병원에 있는 노동명을 찾아가곤 했다.노동명은 어른들에게는 무뚝뚝하지만 주빈에게는 아주 마음이 약했다.주우빈이 울음만 터지면 노동명은 마음이 약해져서 주우빈의 요구라면 뭐든지 다 들어줬다.하예진은 한참 말이 없다가 답했다.“예정아, 주형인 씨 남매가 사고를 당했어.
”주형인 보호자분!”“선생님, 우리가 형인의 아빠와 엄마예요. 우리 아들의 상황은 어떤가요?”주경진은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일으키는 김은희를 부축하며 다급하게 물었다.의사는 이내 답했다.“수술은 잘 되었습니다. 하지만 환자의 상태가 너무 엄중한 탓에 아직도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일단 중환자실에 들어가 있으면서 상황을 지켜봐야 합니다. 깨어 날 수 있을지는 환자의 의지에 달렸어요.”김은희는 저도 모르게 온몸에서 힘이 풀렸다.주경진과 하예진이 함께 부축한 덕에 김은희는 넘어지지 않았다.“의사 선생님, 제 아들을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형인이는 아직도 젊은데...꼭 살려주세요.”김은희는 의사 가운을 움켜쥐며 울부짖었다.“아주머니.”하예진은 김은희의 손을 잡아당겨 의사에게 사과하고는 고맙다고 인사했다.의사는 보호자들의 심정을 이해하며 말했다.“우리도 최선을 다했어요. 환자분이 견뎌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주형인이 너무 많이 다쳐 의사가 노력했는데도 숨만 간신히 붙어있다는 말씀이다.주형인은 여전히 생명이 위험한 상황이고 중환자실에 옮겨질 것이고 살아날 수 있을지는 주형인 의지에 달린 것이다.한 마디로 의사는 최선을 다했다.“의사 선생님, 감사합니다.”하예진은 의사 선생님께 다시 한번 인사드렸다.주경진은 아내를 달래며 위로했다.“여보, 그만 울어. 우리 형인이 아직 살아있잖아. 그만 울어.”김은희는 주경진에 의해 부축되어 의자에 다시 앉았다.김은희는 하예진에게서 휴지를 건네받아 눈물을 닦은 후 뭐가 생각났는지 하예진에게 급히 말했다.“예진아, 예정 씨에게 전화해. 우빈이를 데려올 필요 없다고 말이야. 형인이는 살아있고 중환자실에 들어갔기에 보호자가 들어갈 수도 없을 거야. 우빈이가 여기 와서 아빠도 못 볼 텐데 오지 말라고 해.”“병원이 좋은 곳도 아니고 게다가 애가 아직 너무 어려.”아들이 살아날 수 있을지 김은희는 몹시 걱정되었다.주형인이 없으면 주경진
서현주는 경찰에 잡혀가 감옥에 갈 예정이었지만 임신했기 때문에 옥외집행을 받았다.지금은 애가 없어졌고 게다가 칼로 사람을 상하게 했으니 죄에 죄를 더한 것이다.만약 주형인이 마지막까지 살아남지 못하고 죽는다면 다시 재판받아 사형은 금하지 못할 것이다.하예진은 입원 부에 가서 노동명 모자를 찾으려 했는데 마침 윤미라의 전화를 받고 그들이 병실로 돌아온 것을 알았다.하예진은 바로 노동명의 병실로 향했다.“예진 씨,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우리 넷째 도련님이 또 화를 내시고 물건을 함부로 부수고 있어요. 만져지는 물건은 죄다 부쉈어요.”하예진이 돌아 온 것을 보자 노씨 가문의 경호원은 그녀에게 노동명이 화내고 있다고 일렀다.“동명 씨가 왜 또 화내는 건데요?”하예진은 문을 열면서 물었다.경호원은 답했다.“저희도 잘 몰라요. 사모님이 도련님을 밀고 돌아온 지 몇 분 만에 저렇게 집으로 가겠다고 떠들고 있어요. 사모님께서 위로해도 쓸모없었어요.”하예진은 이미 병실에 걸어 들어갔다.“퇴원할 거야. 집에 갈 거야! 이제는 여기 있고 싶지 않아. 일분도 여기 있기 싫어!”노동명은 침대에 누워있지 않고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손으로 휠체어의 바퀴를 움직일 수 있으니 잡히는 대로 죄다 부숴버렸다.그리고 지금 병실은 아수라장이 돼 있었다.의사와 간호사는 노동명에게 진정하라고 권하고 있었다.윤미라는 이 광경을 보면서 조급해하기도 하고 화나기도 하고 가슴 아프기도 했다.노진규는 습관 되었다는 듯이 차분히 땅에 쓰레기들을 청소하고 있었다.“동명 씨, 아직 퇴원할 수 없어요. 조금만 더 버티면 퇴원할 수 있어요. 보세요. 지금 많이 좋아졌는걸요. 더는...”“어디가 나아졌어? 말해봐! 혼자 걷지도 못하고 휠체어에만 앉아 다니는 것이 좋아진 거야? 여기서 누워있을 바에는 집에 가서 누워있는 것이 나아!”사실 노동명은 기분이 안 좋았다.주형인 지금 생사가 오가는 상황에 놓였다.하예진이 전남편이자 애 아빠인 주형인을 보러 간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인데도
노동명은 바로 하예진에게 퇴원 절차를 밟으라고 재촉했다.의사는 맘속으로 노동명을 원망했다.‘매일 이렇게 소란을 피워 우리 의사와 간호사들도 너무 피곤해. 조기 퇴원은 너에게 영향도 크지 않으니 퇴원을 원하면 제발 퇴원해!’노씨 가문은 돈도 많아 개인 주치의도 있다.노동명이 퇴원한 후에도 노씨 가문에서는 전문의를 청해 노동명을 돌보게 할 것이다.“의사 선생님, 제 아들이 정말 퇴원해도 될까요?”윤미라는 아들이 퇴원하면 의외의 일이 생길까 봐 두려웠다.”“환자분께서 퇴원을 고집하시면 퇴원하셔도 좋아요. 퇴원해서 집에서 요양하면 기분도 좋아져 더 빨리 나아질 수도 있어요.”의사의 동의를 받은 윤미라는 경호원을 불러 병실을 정리하라고 지시했고 윤미라 부부는 퇴원 수속 밟으러 나섰다.화가 난 노동명은 소란을 피우지 못하게 하예진에게 맡겼다.드디어 퇴원할 수 있게 되었다.노동명은 기분이 갑자기 좋아졌고 소란도 피우지 않았다.노동명은 병실 홀에 앉아 조용히 텔레비전을 보며 부모님이 퇴원 절차를 밟아 주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하예진은 노동명의 옆에 앉아 있었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멍해 있었다.노동명은 하예진의 표정을 주시하고 있었다.노동명은 느닷없이 물었다.“전 남편이 살아계셔?”“살아있어요.”노동명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팔자가 정말 세군.”하예진은 한참을 침묵하다가 말을 이었다.“의사 선생님께서는 형인 씨가 아직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하셨어요. 중환자실로 옮겨져 깨어날 수 있을지는 본인 의지에 달렸다고 하셨어요.”“웬일이래? 서로 무척이나 사랑한다더니. 칼을 들고 사람을 찌르다니...”노동명은 비웃으며 말했다.노동명은 주형인과 하예진의 이혼 과정을 모두 목격했다.주형인과 서주인은 관계가 매우 좋았고 심지어 하예진이 입원했을 때 그녀를 보러 올 때마저도 서현주 잘못이 아니라고 말할 정도였다.주형인 친아들의 생명이 위험할 때조차도 서현주를 보호하려 한 것을 보면 진심이었던 모양이다.“몰라요. 갑자기
전태윤은 하예진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그제야 노동명에게 말을 건넸다.“축하해, 동명아. 내가 마침 때맞춰 왔네. 마침 널 집에 데려다주면 되겠어.”노동명은 답했다.“집에 누워있는 게 더 편해. 이젠 링거도 맞지 않기 때문에 집에 돌아가서 누워 있을 거야. 집에 가면 기분도 많이 나아질 것 같아.”가능하다면 노동명은 평생 병원에 들어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아저씨, 다 나아진 거예요?”주우빈은 노동명 곁으로 다가가서 걱정스레 물었다.“아저씨는 오늘 퇴원할 거야.”노동명은 주우빈을 끌어당기며 안아 올려 자신의 허벅지에 앉히려 했다그러나 주우빈이 발버둥 치며 앉지 않으려 했다.주우빈은 꼬마 어른처럼 말했다.“ 저 아저씨 다리에 앉지 않을래요. 아프시잖아요.”하예진은 노동명의 다리를 다쳐 아프니 당분간 노동명의 다리에 안지 말라고 당부한 바 있다.주우빈은 엄마의 당부를 기억하고 있었다.노동명은 웃으며 말했다.“우리 우빈이가 가만히 앉아 기만 하면 괜찮을 거야. 감당할 수 있어.”사고 당시 통증에 비하면 이만한 고통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노동명은 다시 주우빈을 안아 그의 다리에 앉혔다.주우빈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내내 노 동명에게 물었다.“아저씨, 다리가 아파요? 아프면 우빈이 내려갈게요.”“알았어.”철이 든 주우빈을 보고 노동명은 기분이 너무 좋아서 같이 있는 내내 웃고 있었다.전태윤은 한쪽에 앉아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하예진은 옆에서 노동명의 물건을 정리해 주었다.가끔 노동명은 하예진이 짐 정리하는 모습을 힐끗 보다가 또 이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하예진에 대한 감정을 감추고 싶은 것이다.“태윤아, 지금 우리 회사 상황은 어때?”노씨 그룹은 지금 노동명의 둘째 형님이 잠시 맡고 있었다.노동명의 형님은 필경 노씨 그룹에 대해 익숙하지 않아 아주 바빠 보였다.가끔 노동명이 전화해서 회사의 상황에 관해 묻기도 했다.노동명의 형의 대답은 항상 노동명을 어이없게 만들었다.전태윤에게 물어보는 것이 오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