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영은 자신의 차에 올라탔고 경호원 팀장이 손을 흔들자 회사 문이 열렸다.전호영은 그의 마이바흐를 몰고 당당하게 고씨 그룹으로 들어섰다.몇 분 후.키가 훤칠하고 멋있는 전씨 가문 셋째 도련님이 한 손에 몇 봉지의 주머니를 들고 한 손에 큰 꽃다발을 들고는 또 당당하게 고씨 그룹의 건물로 들어갔다.“전 대표.”“전 대표.”고씨 그룹 빌딩으로 들어선 순간부터 전호영은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모두 공손하게 인사했다.전호영의 성격이 매우 좋았기에 자신에게 인사하는 사람마다 전호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소 지었다. 고씨 그룹의 직원들에게 붙임성이 좋고 전씨 가문의 도련님티를 내지 않는 좋은 인상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사실 전씨 가문의 아홉 명의 도련님 중 전태윤의 겉치레가 가장 컸을 뿐 나머지 도련님들은 모두 친근한 이미지였다. 그렇다고 전태윤이 허세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연모자들의 접근을 방지하기 위해서 경호원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뿐이었다.전호영은 고씨 그룹에 처음 들어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꼭대기 층까지 올라갔다.“전 대표.”고현의 남 비서는 이미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전호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호영이 나오는 것을 보자 남 비서는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전호영도 미소로 답하면서 남 비서에게 물었다.“고 대표께서 사무실에 계세요?”남 비서는 전호영이 안고 있는 그 큰 꽃다발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대답했다.“고 대표께서 아직 회의 중이십니다. 전 대표, VIP룸에서 잠시 기다리세요. 회의가 끝나면 고 대표께서 전 대표를 만나러 오실 겁니다.”“제가 올 때마다 고 대표가 회의하는 것을 보니 엄청 바쁘신가 보네요. 고빈 씨는요?”고씨 가문이 앞으로 고현에게 그룹을 맡긴다면 그녀가 이렇게 바빠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 고씨 집안의 재산을 모두 고빈에게 넘긴다면 자기 약혼녀가 이렇게 바삐 돌아치는 것이 매우 못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고빈의 좋은 노릇만 하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작은 고 대표께서 밖에서 업무를 보시느라
고씨 그룹의 오래된 관리층 인사들은 고진호와 동년배기였기 때문에 그들은 고현이 자라는 것을 쭉 지켜보았다. 따라서 고현의 품행과 능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고현의 신분을 떠나 그 관리층 인사들 모두는 고현을 매우 좋아했으며 자신의 딸이 고현과 결혼하길 바라고 있었다.하지만 전호영이 그새 거침없이 들이대고 있었던 것이다. 전호영은 남자의 신분으로, 그것도 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 신분으로 고현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전호영에게 수를 쓰고 싶어도 그의 배후의 전씨 가문과 소씨 가문도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감히 나서지도 못했다.이제는 전씨 가문과 맞섰던 성씨 가문도 전씨 가문을 도와주고 있었다.따라서 아무도 전호영을 쉽게 건드리지 못했다.단지 뒤에서 전호영의 뻔뻔함을 욕할 뿐이었다.그들은 전호영이 게이인 것은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고현에게 접근해 고현마저도 게이로 될까 봐 무척 근심했다. 전호영이 그들 공공의 적으로 된 셈이다.전호영이 보내온 아침밥을 버린 후 고현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회의를 계속했다.VIP룸에서 기다리고 있는 전호영도 자신만의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고현의 회의는 적어도 한 시간은 걸렸기에 전호영도 한 시간 정도 기다려야 했다. 점심까지 기다려야 할 수도 있었다.더군다나 일찍 집을 나선 전호영도 배가 고팠다.아침 식사를 마친 전호영은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를 꺼내 여유롭게 동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한 판 했다.한 시간 뒤.남 비서가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전 대표, 고 대표께서 사무실로 돌아가셨어요. 지금 만나러 가셔도 됩니다.”전호영은 손에 있던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으면서 대답했다.“게임을 너무 열심히 놀다 보니 고현 씨 회의가 끝난 줄도 몰랐어요.”“지금 만나러 갈게요.”전호영은 꽃다발을 안아 들고 주머니 몇 봉지를 들더니 밖으로 나가면서 남 비서에게 물었다.“고현 씨께서 제가 보낸 아침은 드셨어요?”남 비서가 바로 대답했다.“전 대표, 이따가 고 대표에게 물어보세요.”남
“고 대표, 전 대표께서 오셨어요.”남 비서가 공손하게 말했다.고현은 돌아서지 않고 남 비서에게 나가도 좋다는 손짓만 했다.남 비서는 전호영을 응접실에 있는 소파 앞으로 모시고 다시 가서 전호영에게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주었다. 그리고 묵묵히 사무실을 나갔고 문도 꼭 닫아주었다.남 비서가 나가자 전호영은 일어나서 고현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고현에게 손을 내밀었다.고현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고 대표, 저도 담배 한 대 주세요. 담배를 안 피운 지 오래되어서 그런지 고 대표가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니 저도 피우고 싶어지네요.”고현은 한참 말이 없다가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 전호영에게 건네주었다.“라이터 좀 빌려주세요.”전호영은 고현에게 라이터를 빌렸다.사실 전호영은 평소에 담배를 잘 피우지 않았다. 큰형수와 심효진이 담배 냄새를 좋아하지 않은 탓도 있었고 전태윤과 소정남마저도 이제는 거의 담배를 피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씨 가문의 몇몇 도련님들은 그들의 약혼녀도 담배 냄새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따라서 그들 몇몇 형제들은 담배 피우는 횟수도 줄이고 있었다.소정남은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심효진이 임신한 후 그는 술과 담배를 전혀 다치지 않았다.전태윤 부부는 항상 임신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술과 담배를 더욱 하지 않다.“라이터는 책상 위에 있어요. 직접 가지세요.”고현이 대답했다.전호영이 몸을 돌려 고현의 책상으로 걸어가자 그녀의 책상 위에 작은 차처럼 생긴 라이터를 보았다.전호영은 자신의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을 건넸다.“고현 씨, 라이터가 아주 특별하네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장난감 자동차인 줄 알겠어요.”고현은 전호영의 말을 잇지 않았다.전호영은 담배에 불을 붙인 후 다시 고현의 곁으로 돌아가 담배를 피우며 그녀를 바라보았다.전 대표, 왜 저의 얼굴을 그렇게 쳐다보세요?”“고현 씨, 당신은 보면 볼수록 예뻐요. 당신이 만약 긴 치마로 갈아입고, 가발을 쓰고, 하이힐을 신
담배를 피우는 여자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담배를 피우는 여자가 드물다는 의미이다.“전 대표 덕분에 담배를 피우게 되네요. 평소 기분이 좋을 때면 저는 담배를 다치지 않아요.”전호영은 웃음 지으면서 말했다.“그러면 내가 고 대표 기분 나쁘게 했단 말입니까? 그럼 말해보세요. 왜 기분이 안 좋은지. 제가 못생겨서요? 제가 못생긴 것도 아닌데. 저를 보실 때면 기분이 좋아지실 걸요.”고현은 전호영을 노려보았았다.전호영은 고현이 노려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고현이 노려볼 때 전호영은 심지어 그녀의 크고 예쁜 눈을 만지고 싶은 충동까지 느꼈다.물론 전호영의 생각일 뿐이지 감히 고현의 눈을 만질 수 없었다. 만일 정말로 만진다면 두 사람이 싸움이 일어날지도 몰랐고 또 자신의 이미지를 훼손할 수도 있었다.“고 대표께서 만약 자신이 정말 남자라는 것을 저에게 증명하신다면 제가 다시는 고 대표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을 약속드릴게요.”전호영은 고현이 불쾌한 표정을 드러낸 이유가 바로 자신이 그녀에게 구애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현은 약간 화가 났고 냉랭한 말투로 경고했다.“전호영 씨, 당신은 전씨 할머니께서 정해주신 아내를 잊으셨어요? 만약 당신 할머니가 나에게 매달리는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 당신 할머니는 화가 나서 미칠 수도 있을걸요.”“전호영 씨가 효자라도 들었는데 당신 할머니께서 화병 나는 것이 두렵지 않으세요?”전태윤에게 일러바쳤더니 전태윤은 사촌 동생의 선택을 존중한다면서 동생이 즐겁게 지내면 된다고 말했다.전씨 가문에서 전호영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전태윤 말고도 전씨 할머니가 계셨다.다만 지금 전씨 할머니는 관성에 없을 뿐이다.고현은 그전에 알아봤는데 전씨 할머니와 사모님 하예정은 모두 관성에 없다고 했다.고현은 전씨 할머니의 연락처도 없었기 때문에 전씨 어르신께 일러바칠 수도 없었다.전호영은 담배를 다 피우고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와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버렸다. 그리고 응접실의 소파로 향해 걸어가서 차 탁자
“고 대표 사무실에 꽃병이 없군요. 오후에 꽃병을 몇 개 보내드릴게요. 앞으로 제가 당신에게 드리는 꽃을 그 꽃병에 꽂아두세요. 사무실에 분위기도 화사해 져요. ”고현은 전호영의 꽃다발을 받고 싶지 않았지만 전호영은 고현이 좋아하든 말든 그녀의 책상 위에 꽃다발을 올려놓았다.그리고 고현의 곁으로 돌아와 고현을 당기려고 손을 뻗었지만 고현이 피해버렸다.“전호영 씨, 예의를 갖추세요. 손대지 마시고.”“남자라고 강조해 왔잖아요. 남자가 남자의 손을 잡는 건데 손해 볼 거 없잖아요?”말을 마친 전호영은 억지로 고현을 끌고 응접실의 소파 앞으로 다가갔다.“고 대표께 드리려고 옷 한 벌과 신발 한 켤레도 사 왔어요.”전호영은 치마가 들어있는 주머니를 들어 고현의 품에 안겨 주었다. 그리고 하이힐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들고 와서 안에 있는 하이힐을 꺼내 고현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말했다.“앉아서 이 신이 발에 맞는지 확인해 보세요. 제가 눈으로 고 대표의 발이 얼마나 큰지 대략 추측하고 산 거예요.”고현은 그 하이힐을 보더니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고현은 치마를 꺼내지 않았지만 가방 안의 옷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 안에 있는 옷의 색상만 보아도 여자의 옷임을 알 수 있었다.전호영이 고현에게 여자의 옷과 신발을 선물해준 것이다!전호영은 고현이 여자의 신분인 것을 확신했다.고현은 치마가 들어있는 주머니를 전호영에게 돌려주며 차갑게 말했다.“전 대표가 이 물건들을 할머니께서 정해주신 약혼녀에게 드리는 게 좋을 것 같네요.”말을 마친 고현은 돌아서서 책상 앞으로 다가가서 앉았다. 다시는 이 남자와 상대하고 싶지 않았기에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전호영은 주머니 안에서 그 치마를 꺼내 펼치더니 자신의 몸에 비추어 보였다.“이 치마가 예쁘지 않아요? 제 눈에는 너무 예뻐 보여요. 저도 처음으로 치마를 사본 거예요.”전호영은 한 손에는 치마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그 하이힐을 들고 고현에게로 가려고 했다.이때 남 비서가 문을 두드리며 들어왔다.남
“이제 곧 퇴근이니까 제가 밥 살게요. 우리 함께 밥 먹고 제가 회사까지 모셔다드리고 갈게요.”“됐습니다. 당신이 떠나는 것이 바로 저를 도와주는 거예요. 전호영 씨, 부디 저를 놓아주세요.”고현은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전호영이 이제 겨우 이틀 동안 그녀를 쫓아다녔는데도 고현은 견딜 수가 없었다. 전호영 이 녀석의 계략이 너무 많았다. 전호영은 항상 고현을 억제할 방법을 찾아냈고 고현은 화가 나지만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현은 전생에 전호영의 원수였기 때문에 이번 생에 전호영에게 쫓기면서 복수 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전호영은 정색하면서 말했다.“고현 씨, 저는 당신을 진심으로 좋아해요. 당신에 대한 마음도 진심인걸요. 제가 지금 진심으로 당신에게 구애하고 있어요.”“제가 비록 뻔뻔하고 얼굴도 두껍지만 미래 아내의 관심을 끌려면 이 정도의 뻔뻔함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제가 얼굴이 얇고 당신에게 몇 마디 욕을 먹고 거절당해서 포기한다면 저는 평생 혼자 살아야 할지도 몰라요.”“저처럼 훌륭한 남자가 혼자 사는 것이 아쉽지 않아요? 때문에 저는 염치없고 뻔뻔할 수밖에 없는걸요.”고현은 아무 말도 못 했다.고현은 전호영 앞에서 더는 남자라고 당당하게 잡아뗄 수 없었다.전호영이 고현에게 바지를 벗고 확인시켜달라고 할까 봐 걱정이었다.물론 고현은 바지를 벗을 리가 없었다.전호영이 고현이 남자가 아니라고 확신한 이유이기도 했다.전호영은 몸을 돌려 소파로 돌아와 치마와 하이힐을 주머니에 넣었다.고현에게 그 치마를 받으라고 강요하지 않았다.고현은 20년 넘게 남자 분장을 했기 때문에 남자의 차림새에 익숙해져 치마를 입는 것이 매우 난감한 일이었다.전호영이 고현에게 치마를 사준 것은 사실은 고현이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지 그녀의 속셈을 떠본 것이다.“참, 오늘 고 대표에게 한 가지 일에 관해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왔어요.”전호영은 이윤미가 하예진과 너무 닮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고현의 앞으로 다가가서 맞은편에
고현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무슨 말씀이세요? 당신 형수님 자매분이 이윤미 씨랑 많이 닮았다니요? 혹시 그 형수님께서 과거에 헤어진 자매라도 있는 거 아니에요?”“우리 형수님은 하예진 누나 한 명만 있다는 것을 제가 확신해요. 친자매는 아니지만 사촌 여동생이 한 분 계신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분은 하예진 누나와 닮지 않았어요.”전호영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도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서로 모르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닮아서 지금 고 대표에게 물어보는 바입니다. 혹시 몇십 년 전에 이씨 가문에서 밖에 떠돌아다니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알고 계시는가 해서요.”“저희 큰형수 자매가 이씨 가문의 밖으로 떠돌고 있는 자식일 리가 없어요. 우리 큰형수님 집안일은 제가 잘 알고 있거든요.”“그런데 우리 형수님의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고아라는 사실을 들은 것 같긴 한데. 아마 겨우 몇 살 되던 해에 형수님 어머님이 고아원에 보내졌다가 입양됐다고 들었어요. 게다가 운이 안 좋아서 양부모가 자기 아이를 갖게 되자 다른 집으로 보내졌대요. 그 뒤로 계속 다른 집으로 몇 번이고 입양되었다고 하던데.”“이경혜 씨가 수십 년이란 세월 동안 힘들게 여동생을 찾아다녔어요. 그러다가 우빈을 만난 후에야 우리 형수님 자매를 찾게 되었거든요. 우빈이는 우리 형수님의 조카예요. 하예진 누나와 엄청 닮았거든요.”고현이 되물었다.“그럼 형수님의 어머니가 이씨 가문... 이씨 가문의 전임 가주라고 의심하시는 겁니까? 지금의 이씨 가문 가주의 맏언니의 두 딸이 수십 년 전에 실종됐다는 소식은 들었어요.”전호영은 그 말을 듣자마자 무언가 사연이 있음을 알아채고 고현에게 급히 물었다.고현도 숨기지 않고 그녀가 알고 있는 이씨 가문의 역사를 모두 전호영에게 알려주었다.전호영이 그 사연을 듣자마자 휴대전화를 꺼내 바로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고 어머니가 전화를 받자 이내 물었다.“엄마, 이경혜가 성씨가 강성의 이 씨 맞죠? ”“강성의 이 씨? 갑자기 그건 왜 물어?
“고현 씨는 참 좋겠어요. 고현 씨 부모님은 당신의 혼인에 너무 관여하시지 않으시잖아요. 재촉하시지도 않고요.”고현은 입을 오므리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현의 부모님은 결혼 재촉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결혼 재촉할 수가 없었다.고현이 남장하고 다녔기 때문에 만약 고현의 부모님께서 맞선 자리에 고현을 내보낸다면 상대방이 무척 놀라워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고현에게 빠져있는 분들은 모두 여자들이었다.고현과 결혼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따라서 고현의 부모도 어쩔 수 없었다.동생 고빈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빈도도 부모님의 재촉을 마음에 두지도 않았다. 매번 재촉할 때면 고빈은 항상 흘려듣고는 집을 나서면 이내 까먹곤 했다.고현의 부모는 두 남매에게 두손 두발을 다 들었다.“이경혜 씨의 성씨가 강성의 성씨이고 우리 큰형의 장모님도 이경혜의 동생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강성 이씨 성일 거예요.”“이윤미와 하예진이 이토록 닮은 것으로 보면 제 생각에는 이경혜 씨가 지금 이씨 가문 가주의 외 조카딸일 가능성이 커요.”“그런데 나이가 안 맞는 것 같아요.”고현이 되물었다.“이경혜 씨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죠?”“이 대표가 올해 70세죠. 그 당시 이 대표가 18세 때 그의 첫 조카가 태어났기 때문에 올해 아마 52세 일 겁니다.”전호영이 말을 이었다.“저도 그분 실제 나이가 몇 살인지 잘 몰라요. 그분은 우리 부모님 나이와 비슷해요. 이경혜 씨의 장남도 벌써 30대인 것으로 보아 이경혜 씨도 60세 가까이 되셨을 겁니다.”“그분도 성씨 그룹에서 출근하셨고 지금의 남편과 시아버지가 마음에 들어 하셔서 성씨 가문에 시집갈 수 있었던 거죠.”“하지만 강성 이씨 성은 보기 드물고 또 이경혜 자매가 마침 이 씨 성이잖아요. 부모님 모두 돌아가시고 가족 모두 없었기에 고아원에 보내진 거고요. 하지만 이경혜 씨는 그의 여동생보다 훨씬 대단해요.”“여동생이 죽은 지 10년이 넘었지만 저의 큰 형수가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말하는 것을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