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석이 가져온 꽃다발은 아직 하예진의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그녀는 다급히 꽃다발을 들고 서준석에게 돌려주려고 쫓아 나갔다.그러나 서준석의 발걸음이 너무 빨라서 하예진이 나왔을 때 이미 떠나고 없었다.하예진은 꽃다발을 안고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공교롭게도 노동명이 왔다.하예진이 꽃다발을 안고 레스토랑의 입구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노동명은 자신을 위해 준비한 것이라고 착각했다. 경호원이 그를 밀고 들어왔을 때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 찼다.“예진아.”노동명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동명 씨, 오셨어요?”하예진은 꽃다발을 안고 계단으로 내려갔다.노동명은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자 손을 내밀어 꽃다발을 받으려고 하였다.“오늘은 왜 꽃까지 준비했어? 내 생일은 이미 지났는데.”이에 하예진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이건 동명 씨를 위해 준비한 것이 아니에요. 서준석 씨가 사과의 의미로 주신 거예요. 저는 받기 싫은데 그냥 두고 가셔서 돌려주려고 했는데 이미 사라졌네요.”노동명도 난감해서 내민 손을 멈칫하다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꽃다발을 가져갔다.“방금 표정 보니 어떻게 처리할 줄 모르는 것 같은데 내가 대신 처리해 주지.”그는 경호원에게 멀리 떨어진 길가에 있는 쓰레기통으로 밀고 가라고 지시하고 나서 서준석이 준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던졌다.‘사과하는데 빨간 장미꽃다발을 준다고?’하예진은 아무 생각도 없지만 노동명은 많은 생각을 했다. 그는 서준석은 다른 의도가 있다고 의심했다.지금의 하예진은 자석과 같아서 남자의 시선을 쉽게 끌었다.그래서 그는 잘 지켜야 한다.‘이 노동명의 여자를 뺏으려면 아직 멀었어!’그는 오랫동안 지켰고 오랫동안 기다렸다. 이제 곧 희망이 보이는데 절대로 도중에 튀어나오는 딴 놈에게 기회를 줄 수 없다.이윽고 노동명은 하예진의 앞에 다가왔다.“그 사람의 사과를 받았으면 됐어. 장미꽃은 자리도 차지하니까 남길 필요는 없지. 이제 내가 줄 꽃다발을 둘 곳이 없게 되잖아.”하예진은 웃으면서 말했다.
노동명은 자기가 다른 남자들과 달리 믿음직하다는 말을 듣고 제법 흐뭇해했다.“동명 씨가 올 줄 알고, 제가 대신하여 좋아하는 식단을 짜서 셰프한테 부탁해 놓았으니, 잠시 후면 드실 수 있어요. 저는 집에 가봐야 해요.”온 오전 밖에서 일 보느라 집에는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물론 하예정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동생이 임신한 후 심한 입덧으로 고생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일에는 손도 못 대게 하였다.노동명은 그녀가 동생의 결혼식을 준비하느라 많이 바쁜 줄 잘 알고 있다.“내가 바래다줄게. 대신 당신 집에 가서 밥 먹어도 되나? 숙희 아주머니의 반찬이 생각나는데.”“그러면 여기에서 좀 기다려 줄래요? 안쪽에 들어가서 챙길 물건이 좀 있어서요.”하예진은 거절하지 않고 물건 가지러 들어갔다.그녀가 자리를 뜨자, 노동명은 등 뒤에 서 있는 경호원한테 분부했다.“사람을 붙여서 서 씨 남자를 좀 알아봐.”자신을 알고 적을 알아야만 백전백승할 수 있다.“알겠습니다.”경호원은 당장 부하에게 전화하여 넷째 도련님의 연적 뒷조사를 해오라고 지시했다.넷째 도련님과 하예진 씨가 아직 연인관계까지는 도달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하예진 씨는 지금 도련님을 배척하지는 않는다. 두 분이 얼마나 어렵게 여기까지 왔는데, 인제 와서 엉뚱한 놈에게 빼앗길 수는 없다. 비록 도련님의 승산이 더 크지만, 아직 휠체어를 타야 하는 점은 좀 진 듯했다.경호원이 전화를 끊자, ‘하루 레스토랑’ 문 앞에 차 한 대가 멈췄다. 두 사람이 궁금해서 그쪽을 향해 보니, 하예진이 제일 마주하기 싫어하는 전남편이 차에서 내려왔다.주형인의 몸은 많이 좋아졌다. 비록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주치의가 검토한 후 퇴원 요청을 동의했다. 퇴원 후 집에서 천천히 몸을 회복해도 된다고 했다.그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부모님의 저축을 거의 탕진해버리고 없다. 병원에서 더 버티면 부모님의 지갑이 거덜 날까 봐 기어코 퇴원하겠다고 했다.퇴원 후, 그는 누나가 하루에 몇 번씩 입에
걸을수 있는 주형인은 얼핏 봐도 몹시 허약해 보였지만, 반대로 일어서지 못하는 노동명은 훨씬 활기차 보였다.“오셨어요? 노 대표님.”주형인이 먼저 인사했다.노동명은 머리를 끄덕이며 물었다.“주형인 씨는 언제 퇴원했나?”“어제요.”‘오’라고 대답하는 노동명은 주형인이 퇴원했으니 하예진이 우빈이를 데리고 병문안 갈 일이 다시는 없으리라 생각했다.“노 대표님께서 예진 씨 찾으러 왔을 텐데 왜 안 들어가죠?”주서인이 머리를 갸우뚱하면서 물었다.“예진씨가 물건 가지러 잠깐 들어갔는데, 나오면 같이 집에 갈 거야.”노동명은 일부러 염치없는 오누이를 자극했다.이혼한 지 1년이 넘었는데 예진이가 점점 잘 나가는 걸 본 주 씨네 집안사람들은 또다시 예진을 넘겨보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노동명과 하예진이 같이 집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들은 주형인의 낯빛은 점차 흐려졌다.하지만 그는 이제는 질투할 자격이 없다.주서인은 말문이 막힌 동생이 노동명한테 당하고만 있는 것 같아서 안달이 나서 야단치고 싶었지만 집에 돌아가면 부모님께 야단맞을 것이 두려워서 어쩌지 못했다.요즘 동생과 부모님은 하예진이 노동명한테 시집가면 그들이 번 돈은 몽땅 우빈이가 물려받을 것이며, 따라서 그 돈은 모두 주씨 가문의 재산으로 된다면서 우빈이랑 친하게 지내라고 말했다.워낙 노동명은 이 오누이를 쳐다보기도 싫어하는 참이라 세 사람은 모두 입을 꾹 다물고 있었기에 분위기가 어색했다.드디어 하예진이 안에서 나왔다.“어머, 예진아.”주서인은 마침 구세자를 본 것처럼 웃으면서 반겼다.“언니가 어떻게 여길 왔어요?”박예진이 상을 찡그리면서 쌀쌀하게 묻고 나서 고개 돌려 전 남편에게 말을 걸었다.“우빈 아빠 퇴원했어?”전 아내한테서 ‘우빈 아빠’라는 호칭을 들은 주형인은 내심으로 그녀의 깊은 도량에 탄복했다.비록 이혼할 때 두 사람은 많은 모순이 있었지만 하예진은 종래로 애 앞에서 아빠에 대한 나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하예진은 좋은 여자일 뿐만 아니라 복이 많
복 있는 사람은 복 없는 집에 안 들어간다더니, 주씨 집안은 결국 하예진처럼 좋은 며느리를 잃고 말았다.“의사 선생이 나더러 퇴원해서 집에서 회복해도 된다고 해서… 그리고 입원해 있으면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퇴원했어.”“이번에 입원하면서 집에 있는 돈을 거의 다 썼거든.”주형인이 대답했다.주형인은 퇴원 후 부모님 모시고 지방에 내려가서 신체를 회복시킬 예산이었다.시내에 있는 아파트는 부동산에 걸어서 팔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온 집 식구가 먹고살기도 힘들 것이다.근데, 주택 소유권 증서에 서현주 이름으로 되었기에 아파트를 팔려면 그녀의 동의를 거쳐야만 했다.서현주는 두 죄행을 합쳐 무려 10여 년이란 긴 징역을 받아 후회막급이었다.그의 말을 들은 하예진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그러면 이참에 집에서 푹 쉬고 한동안은 나가서 돈 벌 생각하지마. 위자료는 몸이 잘 회복된 후 천천히 내면 되니깐.”하예진의 말을 들은 주서인은 동생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 위자료를 받으려 하는 하혜진이 너무나 지독한 여자라고 욕설을 퍼부으려 하는 참 주형인은 누나의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우빈이는 내 아들이야. 이혼 협의서에 애는 공동으로 키우겠다고 적혀있으니 절대로 발뺌 질 안 할 거야.”주서인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지금 친정집에는 뜯어낼 것이 하나도 없다. 도리어 자기한테 매달릴까 걱정되는 주서인은 앞으로 친정에 발걸음을 적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누나의 속셈을 동생이 안다면 얼마나 서운해할까?잠깐 망설이던 주형인은 호주머니에서 봉투 하나와 금팔찌가 들어있는 작은 선물함을 꺼내었다. 부모님과 의논 후 하예정한테 주는 결혼선물이었다.주형인은 손을 내밀어 물건을 하예진에게 넘겨주면서 말했다.“예진아, 예정 씨의 결혼식이 다가오는데 우리는 안 갈 테니 이 결혼선물만이라도 예정 씨한테 좀 전해주면 안 되겠어?”실은 주 씨네 집사람들도 참석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다. 하예정이 그들을 초청할 리 없다.박예진은 받지 않은
드디어 주 씨네 오누이는 돌아갔다.뒤 절에 나오지만, 주형인은 서현주의 허락을 받은 후, 아파트를 팔아버렸다. 아파트 판 돈을 서현주에게 나눠주려고 했는데, 서현주가 단호하게 사절했다.아파트는 주형인이 결혼 전에 산 재산이다. 하예진은 돈도 한 푼 못가로 채 이혼했는데 그 돈을 서현주는 받을 수 없었다.서현주는 자기한테 주려는 돈을 하예진에게 좀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자기가 하예진 모자에게 진 죄가 제일 크기 때문이었다.하예진이 용서 해주든 말든 서현주는 자기의 방식대로 죗값을 치르려고 했다.그 후부터 주형인은 지방에 있는 본가로 내려가 휴양하면서 정기적으로 아들 보러 오는 외에 주 씨네 집안사람들은 더는 하예진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하예진의 세계에서 물러난 셈이었다....여씨 가문여천우는 검은색 여행 가방을 메고 여 씨 가족 별장 문 앞에 서서 오랫동안 초인종을 누르지 않았다.여기는 그의 집이다. 아니, 여기는 큰 누나 집이다.이 별장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생전에 삼촌한테 넘겨준 재산인데, 여천우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손잡아 삼촌을 해쳤을 뿐만 아니라, 큰 누나까지 학대했다.지금은 그냥 큰 누나의 이름 밑으로 돌렸을 뿐이었다.한참 후, 여천우는 초인종을 눌렀다.잠시 후, 가정부가 달려 나와 여천우를 보자 무척 반가워하면서 문을 열었다.“도련님 오셨네요, 큰 아씨가 알면 얼마나 기뻐하시겠어요.”여천우는 집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가면서 물었다.“큰누나 지금 집에 있어요?”“네, 큰 아씨는 요즘 매일 눈에 약을 쓰셔야 하니깐, 집에 계셔요. 도련님이 일 못 하게 해요, 장사는 전부 민 대표에게 맡겼어요.”따라서 여천우가 물었다.“큰 누나가 정 박사의 약을 쓴 후 악효과가 어때요? 앞을 볼 수 있어요?”이 말을 들은 가정부는 곧 정겨울의 의술과 약이 최고라고 하면서 크게 칭찬을 했다.“큰 아씨는 정 박사님이 내린 약을 쓰시고 나서 효과가 뛰어나다고 하셨어요. 지금 앞에 있는 물건은 애써 볼 수 있어요. 도련님도 자주 아씨 앞에 서서
“그렇군요.”여천우가 사색에 잠긴 듯 말했다.여천우는 부모가 저지른 일을 발견한 후, 처음에 큰 누나의 눈을 치료해주던 의사가 정상사망으로 돌아간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자기 부모가 해쳤는지 의심했다.“근데, 도련님이 어떻게 갑자기 돌아오셨어요?”가정부가 의아해하면서 생각했다.도련님은 이 시간에 대학교에서 근심 걱정 없이 공부해야 할 텐데, 명절도 방학도 아닌 지금 왜 돌아왔을까고.“큰 누나가 걱정돼서 휴가 내고 돌아왔어요.”여천우는 자기가 휴가 내고 왔다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큰 누나가 방에 있지요? 들어가 볼래요.”여천우는 당장 달려가서 큰 누나의 눈이 보이는가 확인하고 싶었다.“큰 아씨와 도련님은 모두 방안에 계셔요.”여천우는 가정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갔다.방문에 도착한 여천우는 준 형부인 전이진이 한 손은 큰 누나의 허리를 감싸안고, 한 손은 큰 누나의 머리를 받쳐 든 채 두 사람이 한창 열렬히 키스 중이었다.이를 본 여천우의 머리는 순식간 공백이 된 듯했다.그의 얼굴은 관우의 얼굴처럼 뻘게져 잽싸가 몸을 돌려 뜨거운 키스 중인 두 사람을 외면했다. 그러는 여천우는 속으로 전이진을 엄청나게 욕했다. 어디 감히 내 집에서 함부로 누나한테 이런 경박한 행동을 해, 딴 사람이 보면 누나를 어떻게 보겠어.한데 여천우 혼자만 이상하게 생각했지, 이 별장에 있는 가정부들은 이미 이런 장면에 익숙하여진 지 오래였다.둘 사이는 이미 약혼한 남, 여 사이인데 키스, 포옹은 너무나도 평범한 일로 생각했다.설사 둘이서 한방을 같이 쓴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었다.전이진과 여운초는 비록 매일 알콩달콩했지만, 마지막 방어선은 넘지 않았다.둘은 한결같이 제일 소중한 것을 첫날밤에 남기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키스 후, 전이진은 사랑하는 여운초의 허리를 놓아줬다. 여운초는 전이진의 가슴에 기대여 가쁜 호흡을 조절했다. 이윽고 전이진은 그들 둘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여천우를 발견하고 품에 안겨있는 여운초에게 말했다.
여천우가 앞으로 다가오면서 전이진을 흘겨보았다.전이진이 웃으면서 물었다.“천우야, 네가 오늘 어떻게 왔어?”여천우는 전이진이 자기 누나와 친근하게 군데 대해 불만이 있어 얼굴이 불그레 해짐에도 불구하고 반박했다.“이건 제집이에요, 내가 언제 오고 싶으면 언제 와요, 형이 상관할 바는 아닌걸요?”전이진은 성격이 좋아서 여천우와 대들지 않았다.전이진은 여초운와 키스하는 장면을 여천우가 본 걸 알기 때문이다.아마도 처남이 자기 누나한테 경박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누나, 나 천우야.”여천우는 냉큼 큰 누나 곁에 달려가 서서 전이진을 슬쩍 한쪽 편으로 밀어버리고 큰 누나 눈앞에서 제일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누나가 자기의 생김새를 똑똑히 볼 수 있기 위해서였다.누나가 실명했을 때 여천우는 고작 일곱 살이었다. 초등학교 이학년 학생에 불과하다.지금은 벌써 대학생이다.처남한테 밀려난 전이진은 여전히 화를 내지 않고 웃으면서 말했다.“천우야, 너희 누나는 지금 눈앞의 물건은 볼 수 있단다. 하지만 똑똑히는 안 보여. 정박사가 그러는데 지금 누나의 시력은 칠팔백 도의 안경을 건 근시가 안경을 벗은 상태와 같단다. 볼 수는 있는데 똑똑히 안 보여.”“네가 좀 더 가까이 와야 누나가 너를 잘 볼 수 있을 거야.”“맞다, 너 뭘 좋아해? 지금 주방에 시켜서 네가 좋아하는 반찬들을 시키게.”마침 점심시간이다.여천우는 전이진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누나의 두 눈만 뚫어지게 보면서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누나, 나 좀 봐봐, 내 얼굴 똑똑히 볼 수 있어?”그리고 손으로 자기의 눈을 한번 만지고는 물었다.“누나, 나 방금 손으로 눈 만졌어, 아니면 코 만졌어?”여운초도 조용히 동생을 지켜보았다.여천우는 부모의 좋은 점만 물려받아서 얼굴이 엄청나게 잘 생겼다. 여운초도 어머니를 많이 닮았기에 두 사람은 꽤 닮은 편이다.한참 후, 여운초는 손을 내밀어 여천우의 얼굴을 만졌다. 볼로부터 눈, 코까지 천천히 만지면서 마지막에 이마까지 만지
여운초는 감정을 사로잡은 후 동생을 힘껏 포옹해 주었다.누나의 품에 안긴 여천우는 매형을 흘끔 쳐다보면서 좀 어색했다. 매형이 질투할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예전부터 이 매형이 아주 횡포하다는 소문을 듣긴 했지만, 매형인데 동생을 좀 양보하면 어떠냐고 생각했다.어렸을 때, 큰누나는 겉으로 남동생을 냉대하며 본 척도 않지만, 매번 그가 넘어지기만 하면 달려와서 가슴 아파하며 품에 안고 부드럽게 달래주곤 했다.여천우는 기억이 생길 때부터 큰 누나를 유별나게 따랐다.자기가 넘어지면 얼음장처럼 차갑던 누나가 따뜻해진다고 생각했다.그 후로 여천우는 넘어지는 걸 즐겼다. 넘어져야만 누나가 자기를 관심하고 달래도 주고 안아도 주니깐. 기억 속 누나의 품은 얄팍하면서도 따뜻했다.어린 여천우는 왜 엄마는 누나를 미워하고, 누나는 자기를 냉대하는지 잘 몰랐다. 점점 켜면서 그 까닭을 알았다. 누나는 아버지의 친딸이 아니기 때문이다.같은 엄마의 뱃속에서 나왔지만, 엄마는 누나를 미워했다.누나가 엄마한테 된욕을 먹거나, 물매를 맞을 때마다 여천우가 달려가서 몸으로 막아주곤 했다.그는 엄마가 누나를 학대하거나 누나가 수모를 당하는 걸 보고는 절대로 참지 못하고 나섰다.둘째 누나의 심보도 고약하다. 큰 누나를 두둔하지 못하게 빼돌리려고 여천우를 기숙학교에 보내라고 엄마한테 권했고, 부모가 비록 여천우를 제일 이뻐했지만 큰 누나를 감싸주지 못하게 하려고 끝내는 기숙학교에 보내고야 말았다. 비록 그 학교가 관성에서 제일 비싼 학교이긴 하지만.여천우가 매번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큰 누나한테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곤 했다.하지만 끝내는 실명당했을 뿐만 아니라, 목숨마저 잃을 뻔했다. 다행히도 작은고모가 친정에 왔다가 발견하고 큰 누나를 병원으로 데려가서 목숨을 건졌다.옛일들을 생각하면 할수록 여천우는 자책감에 못 이기며 큰 누나가 사무치게 그리웠다.“누나.”여천우는 매형이 질투하든 말든 더는 관계치 않고 큰 누나를 힘주어 포옹했다.포옹을 마친 후 여천우가 큰 누나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