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이. 올때 날 버리고 왔잖아. 우린 부부인데 당연히 붙어 다니면서 다녀야지. 왜 나를 집에 두고 혼자 나온 거야? 내 생각을 해본 적 있어? 태윤이와 예정이가 보고 싶다면 나하고 말할 것이지. 그러면 내가 당신과 함께 여기로 왔을 텐데.”장소민의 허벅지에 앉아 있는 우빈을 힐끗 쳐다보던 전현림이 한마디 덧붙였다.“당신이 우빈을 보고 싶어 하는데 난들 안 보고 싶겠어?”우빈은 작은 얼굴을 쳐들고 장소민과 전현림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다시 전창빈과 하예정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왜 자신이 이 화제에 끌려들어 가게 되었는지조차 몰랐다.그는 단지 장소민과 함께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었을 뿐이다.그러다가 전현림이 들어왔고 전현림은 우빈의 앞에서 장소민의 손을 잡고 많은 얘기를 나누다가 장소민이 얼굴을 붉히며 우빈을 혼자 남겨두고 두 사람이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리고 지금 계단을 내려온 지 2분 만에 하예정과 전창빈이 들어온 것이다.“저도 할머니가 보고 싶었어요.”우빈은 큰 눈을 반짝이며 한마디 했다.사람들 전부 웃기 시작했다.우빈은 영문도 모른 채 따라서 웃기만 했다.하예정이 우빈에게 말을 건넸다.“우빈아, 위층으로 올라가서 샤워해야지. 내일 유치원에 가야 해.”“이모, 10분만 좀 더 볼 수 있을까요?”우빈은 하예정이 위층으로 올라가 씻고 자라고 재촉하는 소식을 듣자마자 흥정하기 시작했다.하예정은 녀석에게 주의를 시키었다.“내일 금요일이야. 내일 오후에 네가 유치원에서 나오면 동명 아저씨가 널 데리고 비행기를 타고 강성으로 가는 거 잊었어? 엄마가 우빈이와 동명 아저씨를 고대 기다리고 계셔.”하예정도 함께 강성에 가고 싶어 했다.하지만 아무도 허락하지 않았다.하예진은 그녀에게 전태윤의 말을 듣지 않으면 돌아와서 혼내주겠다고 경고했다.전태윤이 그녀를 통제할 수 없을까 봐, 그녀가 기어코 강성으로 가려고 할까 봐 하예진은 미리 경고했다.강성은 지금 하씨 자매에게는 조금 위험한 곳이었다.하예진은 아무리 큰 위험에 처해도 물러서지 않을
하예정과 우빈이 위층으로 올라간 뒤로 전창빈은 장소민에게 다시 사과했다.장소민이 입을 열었다.“나 이제 화 풀렸어. 창빈아, 네 아빠와 형수님 말이 맞아. 다 큰 성인이라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나이잖아. 엄마는 이제 어렸을 때처럼 이것저것 너에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넌 태윤과 달리 전씨 가문의 무거운 짐을 질 필요 없기에 하고 싶은 대로 해. 훔치거나 빼앗거나 법을 어기는 일만 하지 않으면 돼.”돌아올 때 며느리만 데리고 오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그러나 장소민은 이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전창빈이 아내에게 구애하기 위해서라고 말하지 않았기에 그녀도 모른 척했다.일이 성공적으로 풀리게 되면 전창빈도 장소민에게 알려줄 것이다.며느리가 누구든 아들 전창빈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 받아들일 수 있었으니까.장소민은 하예정마저 받아들였다.미래의 둘째 며느리 집에서 개인 요리사를 고용할 수 있을 정도라면 가정 형편이 나쁘지 않을 것인데 그녀가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전창빈은 장소민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그리고 부모님께 물었다.“오늘 여기서 며칠 묵으실 예정이세요?”“네 할머니도 집에 안 계시는데 내가 여기서 예정이를 돌보아야지. 네 아빠는 가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겠지.”그러자 전현림이 바로 말을 이었다.“당신이 있는 곳에 내가 머물러야지.”“저는 당신 옷을 가지고 오지 않았어요.”전현림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우리가 하루 이틀 아들 집에서 자는 것도 아니고. 우리 방에 내 옷이 있을 거야.”장소민은 문득 목이 메었다. 이 방에 그의 옷이 있다는 사실을 깜빡했다.“창빈아, 먼저 집으로 돌아가. 외지로 가서 일하려면 관성에서의 업무는 확실하게 설명해 주어야 해. 태윤에게 말해서 사람을 시켜 네 업무를 맡도록 하게 해. 업무에 차질이 생기면 안 되니까.”전창빈이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여기에서 형을 기다려서 말하면 돼요.”전창빈은 원
우빈은 좀 더 놀고 싶었다.“예정아, 내가 우빈한테 이야기를 읽어줄게.”장소민은 하예정이 힘들어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조용히 말을 건넸다.하예정이 동의하기도 전에 장소민은 침대 머리맡에서 이야기책을 집어 들고 우빈에게 이야기를 읽어주려고 했다.하예정은 시어머니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는 장소민게 자리를 내주며 말했다.“우빈의 짐들을 확인하러 가볼게요.”녀석이 뭐 빠뜨린 거 없나 한 번 확인하려고 했다.장소민은 우빈에게 자기 전에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하예정은 우빈의 여행 가방에 있는 물건을 검사하러 갔다.우빈은 가장 두꺼운 잠옷 한 벌을 챙겼다. 그는 어른들의 대화 내용을 통해 강성이 매우 춥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심지어 눈도 와서 엄청 춥다고 들어서 녀석은 자신에게 가장 두꺼운 잠옷을 챙겨놓았다.그리고 이틀 동안 가장 두꺼운 외투를 모두 챙겨놓았다. 모자와 목도리, 장갑, 그리고 일상 생활용품도 챙겼다.이 외에도 그는 여행 가방에 평소 좋아하는 장난감 두 개와 몇 가지 평소 즐겨 먹던 간식을 넣었다.조카의 여행 가방을 들여다본 하예정은 옷장을 열어 두꺼운 윗옷 두 벌을 더 가져와 여행 가방에 챙겨 넣어 가방 안을 가득 채워 넣었다.“이모, 제가 잘 챙겨놓았죠?”우빈은 침대에서 일어나 앉으며 하예정에게 물었다.하예정은 기뻐하며 칭찬했다.“우리 우빈이 잘 정리했네. 모두 잘 챙겨놓았어.”역시 그녀가 가르친 조카다웠다.장소민은 우빈을 살짝 눌러 침대에 누우라고 했다.“우빈아, 자. 눈 감고 이제 자야지.”우빈은 혀를 내밀며 장소민에게 애교를 부렸다.“할머니, 저에게 좋은 꿈을 꾸라고 뽀뽀해 주세요.”“그래.”장소민은 사랑스럽게 그의 이마를 톡 쳤다. 그녀는 우빈이 그녀에게 애교를 부리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둘째 아들 전창빈이 어렸을 때처럼 말이다.전태윤은 어릴 때부터 진지하고 딱딱해서 그녀에게 애교를 부린 적 없었다.전창빈이 어렸을 때 그녀의 품에서 애교를 부리곤 했지만 애교부린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전창빈은
전태윤은 저녁 12시에야 집에 도착했다.그는 술도 좀 마셨지만 취하지는 않았다.전태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전창빈은 밖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리자 곧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전태윤의 차가 별장 입구에 도착하여 멈추었다.경호원이 차에서 내려 전창빈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는 안부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곧 전태윤의 차 문을 열어주어 그를 부축하려 했지만 거절당했다.“안 취했어.”전태윤이 나지막이 말했다.“형.”전창빈이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가 전태윤을 부축하려고 손을 내밀었지만, 전태윤은 거절했다.“창빈아, 어쩐 일이야?”친동생을 본 전태윤은 매우 놀랐다.“술 한 잔만 마셨어. 취하지 않았으니까 부축해주지 않아도 돼.”“형한테 할 말이 있어서 기다리고 있었어.”전창빈은 여전히 전태윤을 부축해주었다. 전태윤의 술 냄새를 맡은 전창빈이 말을 건넸다.“독한 술을 마셔서 술 냄새가 많이 나네.”“이야기가 잘 풀려서 좀 마셨어.”전태윤은 집 안으로 들어가면서 자신의 옷 냄새를 맡아보며 전창빈에게 물었다.“술 냄새가 많이 나? 네 형수님이 술 냄새를 맡을 수 있겠지?”전태윤은 오늘 밤 서재에서 자야 할지도 모른다.하예정은 그가 술과 담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때때로 그는 담배 한 대 피워도 껌을 씹어 담배 냄새를 제거한 후에야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의 아내가 냄새를 맡을까 봐 걱정했다.특히 하예정은 지금 그들의 사랑의 결실을 배속에 품고 있었다.그런 하예정에게 담배 냄새를 맡게 하면 더욱 안 된다.집에는 담배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그의 친구들도 그가 집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전창빈은 말을 잇기 모호했다.그가 하예정도 아닌데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을지 잘 몰랐다.전태윤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냄새가 나는데? 늦었는데 오늘 예정이를 방해하지 말고 서재에서 하룻밤 자야겠어.”전태윤은 문득 멈춰 서서 고개를 돌려 전창빈에게 물었다.“아까 우리 부모님 차를 본 것 같은데?”전태윤은 자신이 잘
묻지 않아도 전창빈이 조금 전에 여기에서 TV를 보며 차를 마시고 간식을 먹으며 전태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전창빈은 곧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왔다.그리고 전태윤의 앞에 따뜻한 물잔을 내려놓고 옆에 서서 전태윤의 분부를 기다리면서 언제든지 시중을 들어줄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전태윤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앉아.”“고마워.”전창빈은 얼른 자리에 앉았다.“이렇게 예의를 갖추면서도 사고 치지 않았다고? 말해봐,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부모님께서도 의견이 안 맞으시다니.”“형, 나 정말 사고를 치지 않았거든. 그냥 원림성의 A시에 가보고 싶어서 그래.”“가서 뭐 하려고? 설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 멀리 가려고 해? 집에서 설을 쇠지 않으려고? 할머니께서 아시면 네가 가장 먼저 얻어맞을걸.”설쯤에 전씨 할머니는 자손들이 모두 돌아와 온 가족이 오손도손 모여있는 것을 좋아하셨다.손자며느리가 몇 명 더 있으면 더 좋을 것이지만.이제 고현도 전호영을 따라 돌아올 것이다. 약혼할지는 아직 미지수였다.곧 약혼식도 치를 것으로 보인다.고현은 전호영을 위해 그녀의 여자 신분을 폭로해 그가 게이가 아니라는 오해를 풀어주었다.“나 가정 요리사에 지원하고 싶어. A시의 선우씨 가문에서 요리사를 채용하고 있는데 그 가문 아가씨의 입맛이 엄청 까다로워서 요구가 엄청 높대. 나도 도전해 보려고. 좋은 기회야.”전태윤은 눈살을 찌푸리다가 곧 물어보았다.“할머니께서 선우씨 가문의 딸을 정해주셨어?”원림성의 A시는 너무 멀다.아마 H시와 이웃 도시일 것이다.용정도 그곳 사람이었다.설마 전씨 할머니께서 그 진흙탕에 뛰어드실 계획인 건가...전태윤은 그의 전씨 가문과 예씨 가문의 사이가 가깝고 여운초의 눈도 예씨 가문의 정겨울이 치료해주고 있는 데다 또 성소현은 앞으로 예씨 가문의 다섯째 사모님으로 될 여자였다. 게다가 성소현은 하예정과 사촌 사이로 전씨 가문과 예씨 가문은 서로 얽히고설킨 관계가 되었다.앞으로 예
잠시 후, 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할머니께서 나에게 임무를 맡기셨는데 나도 이제 움직이려고. 호영 형처럼 반년 동안 움직이지 않으면 아내를 얻을 수 없을지도 몰라.”전창빈은 그들이 동생으로 태어난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형들의 교훈을 잘 섭취하고 피할 수 있을 테니까.“할머니께서 골라주신 여인은 보통 성품이 좋은 사람이야. 너의 성격에 잘 맞게 골라주셨을 거야. 언제 출발하려고?”전태윤이 문득 물었다.“다음 주 월요일에 출발하려고. 이틀 동안 손에 있는 일을 먼저 정리하려고. 중요한 일들은 형에게 맡길게. 알아서 처리해 줘.”“그렇게 급해?”전태윤은 눈살을 찌푸렸다.전창빈은 약간 쑥스러워하며 말했다.“선우씨 가문은 A시에서 손꼽히는 명문가야. 그 가문에 들어가서 일하면 급여와 대우가 나쁘지 않을걸. 그리고 선우민아 씨가 입맛이 까다롭다고 하는데 수많은 사람이 가서 도전해 보고 싶어 하거든. 그곳에는 이런 말이 전해지고 있대. 가정 요리사가 선우씨 가문에서 석 달 동안 일하고 나오면 일자를 걱정할 필요 없고 반년 이상 버티고 나오면 큰 호텔들이 앞다투어 요구한다고 해. 몇 년 동안 일을 해도 해고되지 않는다면 아마 신으로 불릴지도 모르지.”전태윤은 실소했다!“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야? 그분 입맛이 그렇게 까다롭대?”“선우민아 씨뿐만 아니라 다른 몇몇 아가씨들 입맛도 까다롭대. 전부 먹는 것에 매우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라 요리 실력을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거든. 누군가는 일반적인 야채 볶음 하나에도 통과되지 못한다고 해.”전태윤이 피식 웃었다.“도전해 볼 만하군.”전태윤은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관심이 있는 건 아니라고 추측했다.어쨌든 사진만 보았을 뿐 실물을 본 적도 없고 함께 지내본 적도 없다. 전창빈은 그렇게 쉽게 마음이 흔들릴 남자가 아니었다.하지만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가 되는 것은 매우 도전적인 일이다. 마침 전창빈은 요리를 가장 좋아했다. 그는 아마 십여 년 동안 키워온 요리 실력으로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가 될
장소민이 먼저 집으로 오고 그 뒤로 전현림이 또 왔다.그리고 자기가 사고 쳤다고 생각한 전창빈이 또 따라왔다.전태윤은 묻지 않아도 결과를 짐작할 수 있었다.전창빈은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열었다.“처음에는 동의하지 않으셨어. 엄마는 내가 이미 사업을 하고 있고 잘 경영하고 있는 데다 올해부터 가족 사업을 돕고 있는데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면서. 요리를 좋아하면 집에서 하거나 호텔에서 해도 되는데 굳이 가정 요리사로 일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시거든. 근데 아버지는 날 지지해 주셨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면 된다고 하셨지. 그러다가 두 분이 서로 말싸움하다가 엄마가 이기지 못해서 홧김에 방에 돌아가셔서 문을 닫으셨거든. 아빠가 몇 번이고 오랫동안 문을 두드렸는데도 들어가지 못해서 엄마가 화가 좀 풀리면 다시 들어가려고 했어. 근데 엄마는 아빠가 떠난 틈을 타서 조용히 집에서 나와 형 집으로 오셨지 뭐야. 나랑 아빠는 엄마가 여전히 방에 계시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것도 엄마가 화가 풀리고 나서 아빠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야 엄마가 여기로 오신 것을 알게 됐어. 그래서 따라온 거고.”전창빈은 미안한 듯 계속해서 말했다.“부모님께서 항상 감정이 좋으셨는데 내 결정 때문에 불쾌하게 지내시니 내가 너무 불효자인 것 같아.”전창빈은 자신이 불효하다고 느꼈지만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로 지원하기로 한 결정을 포기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다.“부부싸움도 안 하는 부부가 어디 있겠어? 나와 네 형수님도 많이 다투었거든. 부부간에도 소통이 필요한 법이지. 한쪽이 막무가내로 나오지 않는 한 잘 얘기를 나누다 보면 금세 풀릴 거야. 우리도 그런 억지를 부리고 소통할 수 없는 여자와 결혼하지 않을 거야. 그런 상황도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을 거고.”전창빈은 전태윤이 그에게 말한 부부간의 관계에 관한 얘기들을 잘 듣고 있었다.전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모두 금실이 좋으셨다. 전창빈은 어릴 때부터 이러한 말들을 들으며 자랐기 때문에 사실 이미 부부 관계에 대한 일들에 대
“형, 너무 늦었어. 형도 힘들 텐데 그만 쉬어 나도 이만 돌아갈게.”전태윤과 얘기를 다 마친 전창빈은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전태윤이 말을 건넸다.“너무 늦었는데 여기서 하룻밤을 보내고 가. 묵을 곳이 없는 것도 아닌데.”전창빈이 말을 이었다.“안 멀어. 여기 방은 있지만 갈아입을 옷이 없어서 그래. 그리고 잠자리를 바꾸면 잠도 잘 안 오고.”전창빈은 장소를 옮기면 새로운 거주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침대를 가리는 사람이 잠자리를 바꾸면 늘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곤 한다.전창빈의 개인 별장이 그리 멀지 않고 잠자리를 가리는 전창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전태윤도 더는 전창빈을 만류하지 않았다. 다만 그에게 천천히 운전하고 집으로 돌아가 문자를 보내라고 당부했다.“그럼 얼른 쉬어.”전태윤은 배웅하러 일어나지 않았다.전창빈이 멀리 떠난 뒤 전태윤은 물을 반 잔 더 마시고는 다시 몸의 냄새를 맡았지만, 여전히 술 냄새가 났다.그는 하예정에게 영향을 줄까 봐, 그녀가 깨어날까 봐 서재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그는 2층으로 올라가 자신의 방 입구로 돌아갔다. 그러나 문을 밀어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서 잠시 안을 바라만 보다가 몸을 돌려 서재로 들어갔다.하예정은 한밤중까지 자고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야 했다.자기 전에 우유 한 잔을 마시면 한밤중에 일어나곤 한다.화장실에 다녀온 하예정은 잠에서 깼다.그녀는 그제야 전태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침대 앞으로 돌아와 앉아 침대 머리맡에서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보니 이미 새벽 세 시가 넘었다.전태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단 말인가!‘돌아오지 않은 건가? 언제 돌아오는지 문자도 없고.’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한참 후에야 전태윤이 전화를 받았다.“여보, 아직 안 왔어요? 많이 바빠요?”하예정은 관심 있게 물었다.그는 예전에 아무리 바빠도 새벽에는 반드시 집에 돌아왔다.그러나 지금 새벽 3시가 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이유는 사업에 관한 일이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