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전태윤도 아내가 심효진의 갑작스러운 조산 소식에 놀랄까 봐 걱정됐다.그는 목소리를 낮추어 하예정에게 먼저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가자고 권했다.여기 남아 있어도 당장 도울 수 있는 일은 없었다.여러 번 설득한 끝에 하예정은 결국 먼저 검사를 받기로 했다.전태윤은 그녀를 부축해 검사실 쪽으로 향했다.부부가 막 자리를 옮긴 순간 분만실 문이 살짝 열리며 간호사가 나와 물었다.“심효진 씨 남편분 계세요?”“접니다.”소정남이 급히 앞으로 나섰다.그는 간호사 앞에 서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말했다.“산모부터 살려주세요. 산모요! 산모!”뒤에 있던 가족들도 잇따라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무슨 일이 생기든 산모 먼저 구해주세요. ”간호사는 잠시 그들을 바라보다가 차분하게 설명했다.“산모 상태는 괜찮습니다. 다만 통증이 심해서 남편분이 안에 들어와 함께해 달라고 하세요.”그 말에 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소정남은 곧바로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간호사가 그를 막아 세우며 옷부터 갈아입어야 한다고 막아 세웠다.잠시 뒤, 준비를 마친 소정남은 간호사의 안내로 분만실로 들어갔다.분만실 안에서는 심효진이 고통에 못 이겨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소정남이 다가오자 그녀는 그의 손을 붙잡아 손등을 세게 물었다.“너무 아파! 소정남! 전부 네 탓이야. 나 안 낳을래! 너무 아파!”출산의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다.“그래, 그래... 다 내 탓이야. 이제 안 낳아. 이 아이만 낳고 나면 더는 낳지 말자.”소정남은 거의 중얼거리듯 연달아 말했다.“여보, 날 물어.”남편이 몸을 숙여 팔을 내밀자 심효진은 그의 팔을 꽉 물었다.의사가 힘을 주라고 하면 힘을 주었고 숨을 고르라고 하면 그대로 따랐다.시간이 흐를수록 마스크로 가려진 소정남의 얼굴은 눈에 띄게 창백해졌다.아이는 좀처럼 나올 기미가 없었다.‘아가야, 이렇게 서둘러 나오기로 했으면서 왜 아직도 엄마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거야? 9개월을 버텨 온 사람인데 넌 왜 지금까지 엄마를 고생시켜?’
요즘은 의학이 발달해서 조산으로 태어난 아이도 병원에서 잘 돌보면 크게 걱정할 일은 없었다.하예정은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멀쩡하던 애가 갑자기 조산이라니 좀 이상하지 않아요? 혹시 집에서 넘어졌을 수도 있고. 아니면 먹으면 안 되는 걸 모르고 먹은 건 아닐까요?”전태윤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정남 사촌 누나가 효진 씨 영양사야. 매일 챙겨주고 있는데 일부러 몰래 먹지 않는 한 말이 안 되지.”두 사람은 갑자기 조용해졌다.임신하면 입맛이 평소와 달라진다는 것을 하예정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이유도 없이 평소 즐겨 먹지 않던 음식이 떠오르면서 참지 못하고 꼭 먹어야 할 때가 있었다.계절에도 맞지 않는 음식이 유난히 당길 때도 있고.하예정에게도 그런 적이 있었다.한밤중에 잠에서 깼다가 갑자기 소불고기가 먹고 싶어져 견딜 수가 없었던 날이었다. 전태윤은 아무 말 없이 차를 몰고 나가 자기 호텔로 향하여 잠자던 주방장을 깨워 음식을 만들어 오기까지 했다.그런데 막상 음식이 눈앞에 놓이자 하예정은 또다시 입맛을 잃어버렸다.“효진 씨가 설마 그런 실수를 했을까... 먹으면 안 되는 음식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곧 아이를 낳을 사람이었고 옆에서 챙겨주는 사람도 있었기에 심효진의 성격으로 그런 일을 저질렀을 것 같지는 않았다.전태윤이 낮게 말했다.“괜히 앞서 걱정하지 마. 병원에 가면 다 알게 될 거야.”어차피 목적지는 병원이었다.전태윤 부부가 도착했을 때 심효진은 이미 분만실로 들어간 뒤였다.분만실 앞에는 소씨 가문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전태윤 부부보다 몇 분 먼저 도착한 심씨 가문의 사람들도 보였다.소정남은 분만실 문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몇 걸음 옮겼다 멈춰 서서 문 쪽을 바라보더니 다시 발걸음을 떼며 좀처럼 진정하지 못했다.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심효진이 고생은 덜 하고 무사히 아이를 낳게 해 달라며 계속 중얼거렸다.그 모습을 보니 전태윤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그는 소정남의 어머니 최민주
사람마다 감당해야 할 일은 따로 있는 법.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결국 그에 따른 결과로 돌아오고 그 책임 또한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남의 선택과 결과에 함부로 끼어들수록 오히려 자신에게 좋을 것은 없었다.하예진 자매는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마지막에 하예정이 말했다.“언니, 나 이제 검진 받으러 가야 해. 다음에 언니 시간 날 때 다시 오래 통화하자. 아, 그리고 이번 주말에는 우빈이를 언니한테 보내 줄게. 요즘 엄마 많이 찾더라.”“알았어.”하예진이 짧게 대답했다.통화를 마친 하예정은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고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리고 책상 안쪽에 앉아 있던 남자에게 말했다.“여보, 거의 시간 다 됐어요. 우리 가요.”“응, 알았어.”전태윤은 서류에 재빨리 서명하고 도장을 찍은 뒤 서류를 덮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부부는 함께 사무실을 나섰고 전태윤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비서에게 건넸다.비서는 그가 직접 서류를 들고나와 자신에게 건넬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원래대로 잠시 뒤에 안으로 들어가 확인하려던 참이었다.비서는 전태윤이 아내를 챙기며 함께 떠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그가 유난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자 비서는 속으로 사람 자체가 너무 달라진 게 아닌가 싶었다.아내가 생긴 뒤로 전태윤은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자주 보였고 그때마다 비서의 인식도 조금씩 바뀌어 갔다.전태윤과 하예정이 막 1층에 내려섰을 때 뒤쪽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소정남이었다.늘 침착하던 소정남은 미친 듯이 달려왔다.그는 전태윤 부부의 앞을 스쳐 지나가면서도 멈추지 않았고 인사하지도 않았다.“정남아, 무슨 일이야?”전태윤이 큰 소리로 불렀다.그는 소정남을 오래 알아 왔지만 저렇게까지 다급하고 허둥대는 모습은 처음이었다.하예정의 마음속에 불길한 기운이 스쳤다.‘혹시 효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심효진은 요즘 서점에 나가지 않았다.하예정과 그녀가 논의한 끝에 직원 한 명
정겨울은 스승이 가꾸어 놓은 약초들을 자주 건드려 놓았는데 그럴 때마다 스승에게 쫓기며 매를 맞곤 했다.그의 아들 예훈은 아마도 그녀가 어릴 적 집에 가만히 있지 못하던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 같았다.“우빈은 요즘 어때?”이윤미가 자신을 미끼로 삼아 오빠 셋을 함정으로 끌어들인 사건으로 인해 요즘 하예진 역시 신경이 팽팽하게 곤두서 있었다.그러다 보니 아들에게 전화 한 통 걸 여유조차 없었다.“똑같지 뭐. 다만 주씨 집안이랑은 또 관계가 틀어진 것 같아. 우빈이 아빠가 전화하면 받기는 하는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보러 오시면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더라고. 주씨 집안에 가는 것도 싫어하고 그쪽에서 오는 전화도 받으려 하지 않고. 우빈이 할머니는 정말 달라질 기미가 없어. 분명 우빈이 앞에서 계속 언니랑 형부 흉을 봤을 거야. 그래서 아이가 더 마음을 닫은 거지.”설 무렵에는 우빈이가 주씨 집안에서 며칠 지내며 조금씩 정을 붙이기 시작했었다.하지만 그 문제 많은 모녀가 다시 우빈이 앞에서 헛소리를 늘어놓는 바람에 우빈은 또다시 주씨 집안 사람들에게 실망했다.이제 주형인에게조차 예전만큼 살갑게 대하지 않았다.우빈이는 몰래 하예정에게 말했었다. 자기 아빠는 노동명만큼 대단하지 않다고.아이의 눈에는 주형인이 집안 문제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친정 쪽에 끌려다니기만 하는 결단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보였던 모양이다.노동명 역시 가족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그는 가족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자기 판단이 분명했고 태도 또한 단호했다.그래서 자기 일에 관해서는 가족이 알기만 하면 될 뿐 그 이상 간섭받으려 하지 않았다.이 점에서 주형인은 노동명과 나란히 놓고 비교될 수 없었다.“사람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 거야. 나도 전화로 우빈이 아빠랑 길게 이야기해 봤어. 그래도 친어머니고 친누나인데 그 사람이 달리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예전에 그녀가 주형인과 아직 이혼하지 않았을 때도 시부모와 시누이 문제로 적잖은 갈등을 겪었다.하지만 주
아이가 태어나면 전태윤은 그동안 몇 달에 걸쳐 익혀 온 것들을 아이에게 차근차근 가르쳐주며 제대로 된 아빠가 될 생각이었다.하예정은 그를 감싸안고 있던 팔을 풀며 몸을 옆으로 돌리려 하자 전태윤도 자연스럽게 손을 놓아 주었다.그녀는 그의 얼굴에 가볍게 입맞춤을 연이어 남겼다.“여보, 당신이 곁에 있으니까 나도 아이도 다 괜찮을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요.”입을 맞춘 뒤 하예정은 부드럽게 그를 위로해 주었다.“당신은 내 버팀목인데 당신까지 그렇게 긴장하면 나도 덩달아 긴장하게 된단 말이에요. 그러면 오히려 더 안 좋아요.”그 말에 전태윤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내가 두 사람 다 잘 지킬게. 그래. 걱정 안 할게.”그는 다시 하예정의 불룩해진 배를 살며시 쓰다듬었다.“이 아이는 꽤 차분한 성격일 거야. 너무 개구쟁이는 아닐 거야.”하예정은 배 속에서 느껴지는 움직임이 그리 심하지 않은 것 같았다. 유난히 심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조차 전태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괜히 이야기했다가 그가 또 지나치게 걱정할 것이 뻔했다.두 사람은 잠시 알콩달콩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그리고 하예정이 전태윤을 재촉해 다시 할 일을 보러 가게 했다.“조금 있으면 병원에 가야 하는데... 이번에는 내가 혼자 다녀올까요?”“아니, 나도 같이 갈 거야. 늘 내가 함께 갔는데 이번에도 빠질 수는 없지.”하예정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알았어요. 그럼 같이 가요. 대신 급한 일부터 먼저 처리해요. 난 책 좀 더 보고 있을 테니까.”그녀의 얼굴에 가볍게 입을 맞춘 뒤 전태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쪽으로 돌아가 앉았다. 한동안 책을 읽던 하예정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자 그녀가 곧바로 물었다.“언니, 윤미 씨는 좀 어때? 열은 다 내렸어?”이윤미의 오른팔에 난 상처 자체는 오히려 심하지 않았다.그러나 문제는 바닷가에서 오래 바닷바람을 맞아 몸에 냉기가 깊이 들어가 심한 감기
“헬스장에 조금만 열심히 다니면 되잖아요. 요즘 당신이 헬스장에 가는 횟수가 확실히 줄었어요.”요즘 전태윤은 퇴근만 하면 곧장 집으로 돌아가 하예정 곁을 떠나지 않았다.그러니 자연히 운동할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잘 먹고 움직임이 적으니 살이 조금 붙는 것도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아무리 천하의 전태윤일지라도 마음껏 먹고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은 아니었다.그가 오랫동안 모델 같은 몸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동을 이어 왔기 때문이었다.“아...”하예정이 갑자기 소리를 내자 전태윤은 거의 벌떡 일어났다.“아파? 설마 지금 애가 나오려는 거야? 당장 병원 가자.”말하며 그는 아내를 안아서 들려 했지만 하예정이 재빨리 그의 손을 붙잡았다.“긴장 안 해도 돼요. 출산 예정일도 한참 남았는걸요. 아기가 또 찼어요. 요즘은 차는 힘이 점점 세져요.”임신 후기로 접어들면서 뱃속의 아이는 눈에 띄게 힘이 붙었는데 가끔은 몇 번만 차도 통증이 느껴질 정도였다.그제야 전태윤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괜히 걱정했다.첫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인 만큼 아직은 모든 게 낯설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그가 몰래 들어가 있는 임산부 채팅방에는 임신 7, 8개월에 아이를 낳았다는 글이 종종 올라오곤 했다.조산이었다.그런 글들을 몇 번 보고 나니 전태윤은 하예정이 혹시라도 조산할까 봐 괜히 마음이 불안해졌다.임신 세계와는 거리가 먼 남자 하나가 채팅방 안에 섞여 있다 보니 이런 말들에 더 쉽게 휘둘렸다.“채팅방에 어떤 임산부가 며칠 전에 조산했대. 29주에 낳아서 애는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로 들어갔대. 여보, 나 가끔 꿈도 꿔. 당신이 갑자기 통증이 와서 내가 막 병원에 데려가려는데 차 열쇠를 안 들고나온 거야. 다시 찾으려고 해도 꿈에서는 어디에 뒀는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나는 거 있지. 너무 급해서 아빠와 엄마한테 전화해서 열쇠 좀 갖다 달라고 하려는데 번호도 하나도 떠오르지 않아. 땀은 줄줄 나고 급해서 미칠 것 같은데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