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미는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서 소파 앞에 앉아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천천히 마셨다.지금의 조용함이 그녀에게 잠시나마 여유를 줄 수 있었다.위층에서 발걸음 소리가 나자 이윤미의 신경은 다시 조여들었다.그러나 앉은 자세가 변함이 없었지만 위층을 올려다보지 않았다.추측할 필요도 없이 이은화일 것이다.곧 이은화가 위층에서 내려왔다.그리고 이윤미 옆으로 다가가 앉으며 물었다.“왜 이렇게 늦게 돌아왔어?”딸의 얼굴에 피곤함이 묻어있는 것을 본 이은화는 손을 내밀어 이윤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감탄했다.“옳은지 그른지, 복인지 화인지 모르겠네.”“엄마, 저 괜찮아요.”이은화가 내뱉은 말을 이윤미는 알아들었다.이윤미를 되찾아 진짜 딸과 가짜 딸의 신분을 되찾은 것이 이윤미에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모른다는 의미였다.가끔 이윤미도 그 생각을 한다.이씨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그녀는 자신의 사업도 일으킬 수 있기에 양부모 가족의 착취와 괴롭힘에서 벗어날 충분한 능력이 있었다.어쩌면 이윤미는 편안하고 자유롭게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지금처럼 이씨 그룹을 열심히 지탱할 필요가 없었다. 이씨 그룹은 이은화 손에서 수십 년 동안 운영되었지만 승승장구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날따라 쇠퇴해지고 있었다.이윤미는 그 문제를 발견하고 개혁을 생각할 수 있었지만 지금 이씨 그룹은 아직 그녀의 손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은화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회사에서도 추진할 수 없었다.가끔 이윤미는 자신이 힘이 부족하다고 느꼈다.신경 쓰지 않자니 또 그녀의 사명이라 관리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이씨 그룹을 강성의 업계에서 사라지게 할 수도 없었으니까.그 외에도 이윤미는 암암리에 있는 적들도 상대해야 했다.가정 안의 큰일은 이윤미가 참여할 수는 있지만 결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작은 일들은 전부 그녀에게 맡겨졌다.이토록 큰 가문이 크고 작은 일이 많은데 이은화가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가주가 정말로 그렇게 많은 일에 관여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사소한
이은화는 이윤미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네 큰 오빠가 이틀 동안 외박했는데 네 큰형수님이 큰오빠가 또 밖에서 여자들과 뒹군다고 의심하고 있어.”이은화는 여기까지 말하더니 한숨을 내쉬었다.“유전자의 문제야. 내 유전자가 좋은데 어쩌면 네 아빠 유전자가 너무 강해서 너의 세 오빠에게 바람피우는 유전자를 물려준 건 가봐. 윤미야, 너도 엄마가 이 일에서 너무 한다고 생각해?”“저는 배신을 받아들일 수 없어요. 사랑하지 않으면 이혼할 수 있지만, 결혼 중에 바람을 피우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어요.”이윤미의 대답에 이은화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자애로운 눈빛으로 이윤미를 바라보았다.“다들 이씨 가문의 좋은 유전자는 전부 딸들에게 물려준 거라고 말하고 있어. 난 예전에 믿지 않았지만 네가 돌아온 후로 천천히 믿게 되더라고. 너의 성격과 일 처리 방식은 나와 너무 닮았거든.”예전에 이은화는 이윤정의 성격과 일 처리 방식이 자신과 닮지 않았다고 느꼈지만, 나중에야 큰 기대를 걸고 있었던 이윤정이 전임 집사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은화의 친딸은 집사의 딸로 살고 있었다.이윤정과 이윤미의 신분이 바뀐 후, 이은화는 이윤미가 정말 그녀와 비슷하다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유일하게 다른 점을 말하자면 이윤미는 아직도 양심의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가치관도 매우 올바르다는 점이다. 이은화처럼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 이은숙의 한 가족을 죽이고 여동생을 죽이는 무자비한 사람이 아니었다.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격을 지니지 않았다.요즘 노년에 접어들면서 이은화의 생활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아마도 하느님이 이은화의 젊은 시절에 저지른 죄 때문에 그녀에게 벌을 주고 있는듯했다.이윤미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엄마, 저는 엄마 친딸이에요. 엄마를 닮은 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이은화도 웃으며 입을 열었다.“그러니까. 우리 모녀가 가장 닮았어.”“엄마, 큰오빠가 정말 또 밖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 아니겠죠?”“아마도 병원에 가서 아버
이윤미가 예상한 대로 이은화는 곧바로 딸의 말속에 담긴 우려를 눈치챘다.이윤정이 현재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건 그녀의 뛰어난 외모였다.이은화의 세 아들은 모두 밖에 애인을 둔 적이 있었고 각자 애인이 한 명도 아니었다. 심지어 그동안 며느리들이 눈치채지 못했을 뿐 바람을 피운 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세 아들의 외모를 탐하는 본능은 남편인 정군호에게서 유전 받은 게 틀림없었다.만약 이윤정이 정말 마음먹고 정일범을 비롯한 세 아들을 유혹하려 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다.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원래부터 이윤정을 편애했고 친여동생인 이윤미에게는 늘 무관심했었다.그러기에 이윤정이 세 아들을 이용해 무언가 이득을 챙기게 된다면 그건 당연한 수순이었다.이런 생각이 들자 이은화의 얼굴빛은 한층 더 어두워졌다.만약 이윤정이 정말로 정일범을 유혹한다면 그것은 부자가 똑같이 그녀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꼴이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정군호는 이윤정의 함정에 빠졌다고 해도 정일범은 스스로 덫에 걸려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윤미야, 이 일은 엄마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넌 신경 쓰지 마. 윤정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도록 조치할 거야. 만약 윤정이가 네 오빠들을 이용하려 한다면 엄마가 네 새언니들한테 말할 거야. 그럼 그들이 자기 가정을 지키려고 나서겠지.”이은화는 어째서인지 직접 나서기가 꺼려졌다.어쩌면 친딸처럼 키워 온 이윤정을 생각하면 한순간에 냉정해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길러온 모녀의 정을 그렇게 간단히 끊어버릴 수는 없는 법이었다.또 어쩌면 나이가 들면서 예전처럼 냉정해지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 분명 이윤정이 정일법과 같이 있는 모습을 본 순간 이윤화는 분노로 미칠 것 같았지만 이윤정을 죽일 정도로 가혹한 처벌을 주지 않았다.결국 이은화 그녀의 마음이 많이 약해진 것이었다.“엄마, 저도 이윤정 일에 신경 쓸 만큼 여유 없어요. 이윤정이 절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저도 상관하고 싶지 않아요.”이윤미도 더 이상 이윤
“하필 같은 업계에 발을 들여놔? 하예진은 이제 우리의 경쟁 상대야”이은화는 지금 무엇보다 이씨 그룹에 위협이 되는 존재를 치우는 게 중요했다.“적을 상대할 때는 절대 자비를 베풀 필요 없어. 하예진 회사가 설립 초기이니, 아직 약할 때 손을 써서 싹부터 잘라버려야 해.”이윤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엄마, 하예진이 따낸 거의 모든 계약 상대가 고씨 그룹이에요. 그리고 나머지는 전씨 가문과 노씨 가문이 성씨 가문의 체면을 봐서 체결한 대기업들이고요. 그들은 우리 그룹을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을 거예요.”이은화는 딸이 내키지 않아 하는 것을 알지만 단호하게 말했다.“어떻게 할지는 네가 직접 생각해 봐. 나는 오직 하나, 하예진이 이곳 강성에서 자리 잡는 꼴을 절대 눈 뜨고 두고 볼 수 없어.”사실, 이은화는 이윤미가 하예진과 경쟁 상대로 지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만약 하예진이 이은화의 큰언니 후손이 아니었고, 이씨 가문을 겨냥해 강성으로 온 게 아니었다면, 그녀 또한 굳이 하예진과 싸우려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그리고, 하예진 뒤에는 삼대 가문이 있었다. 비록 거리가 먼 관성에 있지만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들이 마음먹고 이씨 그룹을 짓밟으려고 한다면, 이씨 그룹이 버틸 방법은 없었다. 게다가 소씨 가문이라는 보이지 않는 세력까지 있었으니...그렇기에 이은화는 이윤미에게 하예진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단호하게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우리 가문 안에서도 벌써 배신을 꿈꾸는 자들이 있어. 하예진을 등에 업고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 것 같더구나. 이런 자들은 네가 철저하게 응징해서 다시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경고해야 해.”“내가 아직 눈 뜨고 살아 있는데, 벌써 가문을 배신하려 하다니...”이은화는 끓어오르는 분노에 이를 악물었다.“큰언니가 죽은 지 수십 년이 지났어. 하예진이 아무리 외손녀라 한들 어쩌겠어? 감히 가주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아?”“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건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굳이 하예진과 싸울 필요도 없었다. 이윤미가 직접 이씨 그룹을 큰이모의 후손에게 돌려주고, 어지러워진 가문을 바로잡으면 될 일이었다.그렇게 되면, 이윤미는 이씨 가문에서 벗어나 자신의 사업을 운영하며 살아갈 수도 있었다. 그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이라 생각했다.이은화는 이윤미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딸의 말에서 느껴지는 어색한 태도를,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그녀는 눈빛은 날카롭게 돌변하며 이윤미를 노려보았다.하지만, 이윤미는 담담하게 이은화의 시선을 마주했다.“......”잠시 정적이 흐르고 이은화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녀는 손을 뻗어 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넌 참 주관이 뚜렷한 아이야. 엄마와 함께한 시간이 고작 2~3년이니, 엄마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나도 어쩔 수 없구나...”이은화는 잠시 하려던 말을 멈추고 이윤미에게 물었다.“아까, 방윤림이 널 데려다줬던데?”“맞아요.”“너희 둘, 매일 같이 지내다시피 하는데 혹시 너, 방윤림한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 거 아니지?”이윤미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며 대답했다.“엄마, 제가 방윤림 한테 감정을 품고 있다니요? 엄마도 아시잖아요. 방윤림은 그저 저에게 평생 충성하는 특별 비서일 뿐이에요.”“비서니까 하루 종일 제 옆에 붙어있는 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이은화는 가볍게 웃었다.“방윤림은 사랑을 할 수도, 결혼을 할 수도 없지. 오직 너에게만 충성해야 하니까. 그런데, 만약 그가 너의 남자가 된다면 어떻게 되겠어?”이윤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방윤림도 보통 남자들처럼 가정을 꾸릴 수도 있겠지. 자고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불효 중 가장 큰 불효가 자손을 남기지 않는 것’이라고 여겨왔어. 방윤림이 아무리 고아라 해도, 자기 핏줄을 남기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야.”이은화는 딸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그리고, 방윤림이 너를 바라보는 눈빛... 그거 단순한 충성이 아니야
이은화의 곁에 있었던 비서는 그녀에게 존경과 충성을 바쳤지만 사랑은 없었다.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자신의 비서와는 어디까지나 주인과 비서의 관계일 뿐 비서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낀 적이 없었다.만약, 그때 그녀가 비서한테 마음이 생겼더라면, 어쩌면 더 훌륭한 자녀를 두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딸이 뒤바뀌는 끔찍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었다.이윤미는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어쩐지 씁쓸해 보였다.“엄마, 저 지금 사랑 같은 건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연애할 시간도 없고요. 전에 말했듯이, 후계자가 필요하면 아이 아빠 없이 그냥 딸만 낳겠어요.”이윤미는 잠시 머뭇거렸다.“저는 엄마처럼... 아빠한테 배신당하고 싶지 않거든요.”“......”이은화는 결국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엄마로서 자신의 딸이 평생 혼자 살도록 놔둘 수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방윤림이 이윤미를 사랑하고 있고, 그리고 자신도 결코 둘의 관계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싶었다.어떻게든 딸과 방윤림을 이어주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방윤림은 고아였고, 가족들을 돌봐야 한다는 부담도 없었다. 그리고, 설령 방윤림이 이씨 가문에 입적하지 않더라도 그는 평생 이윤미에게 충성할 것이었다.그러나, 정작 그녀의 딸이 남자를 믿지 못하고 오직 딸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니...이은화가 과거에 어떤 잔인하고 냉혹한 일을 했는지를 떠나서, 결국 그녀도 딸을 둔 한 명의 평범한 엄마였다. 그녀는 딸의 혼인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하지만, 이 순간, 더 이상 사랑 이야기를 해봤자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딸을 설득할 수도 없었고, 그녀 역시 딸의 생각을 받아들이기도 어려웠다. 결국, 둘 중 누구도 상대를 굴복시킬 수 없었다.더 이상 이런 대화는 무의미했다. 이은화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네 아빠가 퇴원하면, 엄마는 잠시 어디 좀 다녀올 거야. 그동안 회사와 집안일 모두 너에게 맡길게.”이윤미는 놀란 듯했다.
“엄마, 오래전 인연이라는 그 사람, 누구예요?”이윤미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그러나, 이은화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그저 엄마의 오래전 인연일 뿐이야. 네가 굳이 알 필요는 없어.”“엄마가 없는 동안, 회사와 집안의 일 모두 잘 처리해야 한다. 혹시 네 지시를 따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잘 기억해 둬. 엄마가 돌아와서 직접 처리할 테니.”이은화는 단호하게 말했다.“물론, 네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 엄마도 이제 나이가 들었단다. 점점 내려놓아 할 때가 다가오고 있어. 그러니 너도 언제까지나 엄마에게만 의지할 생각은 하지 마.”이윤미는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지난번 엄마가 2주 넘게 관성에 다녀오셨을 때도 저 혼자서 잘 해낸 거, 아시잖아요?”사실, 이은화가 집에 없으면 이윤미는 오히려 더 자유로웠다. 누군가 그녀의 엄마를 이용해 그녀를 억누르는 일도 없고, 그녀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었다.이은화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래, 엄마도 널 믿는다. 이제 늦었으니 이만 올라가서 쉬거라. 난 TV 좀 보다가 자야겠어.”이은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잘 자요, 엄마.”그렇게 그녀는 인사를 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딸이 방으로 들어간 걸 확인한 후, 이은화는 조용히 목에 걸려있는 오래된 목걸이를 꺼냈다. 그 목걸이에는 작은 펜던트 하나가 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펜던트 안에는 아주 작은 사진 한 장이 숨겨져 있었다. 그 사진 속 인물은 바로 전임 가주였던 큰언니에 충성하던 ‘그 사람’의 젊은 시절 사진이었다.아주 오래전, 이은화는 몰래 그를 찍어 사진으로 남겼다. 그리고 작게 잘라 펜던트 안에 간직하고 있던 것이었다.그것은, 그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이은화 자신만의 비밀이었다.사람들은 흔히 첫사랑은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한다.하지만, 그와 이은화는 애초에 첫사랑이라 부를 수 없는 사이였다. 그는 한 번도 이은화를 사랑
큰 저택에는 가정부와 경호원을 제외하면 이윤미 혼자뿐이었다.어머니와 오빠 내외는 외출 중이었고 어디로 갔는지 굳이 묻지 않았다.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두꺼운 외투를 걸친 이윤미는 방을 나섰다.휴대전화를 손에 쥔 채 계단을 내려가며 하예진에게 전화를 걸었고 전화는 금방 연결되었다.“하예진 씨, 시간 되세요? 점심 같이 드시죠.”이윤미는 시원하게 웃으며 상대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덧붙였다.“노 대표님이 우빈이 데리고 예진 씨 만나러 왔다면서요? 저도 우빈이 너무 보고 싶어요. 제가 세 사람한테 밥 살 테니까 나오세요. 거절은 안 됩니다. 방 비서님한테 이미 하루 호텔로 예약해달라고 했어요. 점심 때 뵙죠.”“이게 무슨 의논이에요? 통보잖아요.”“설마 거절하실 건가요? 제가 그래도 연장자인데, 어른이 점심 먹자고 하면 동생이 따라야죠. 안 그래요?”“거절한다고 한 적 없어요. 원래 호텔에서 점심 먹으려 했는데, 이윤미 씨가 사주신다니 사양 안 할게요.”“오전엔 뭐 하셨어요?”“어젯밤 늦게 들어와서 이제야 일어났어요. 우빈이랑 놀 틈도 없었고요. 점심 먹고 나서 한참 놀아줘야 해요. 그나저나 이 두 부자는 언제 관성으로 돌아가요?”하예진이 자연스럽게 이윤미의 말을 정정했다.“저랑 노동명 씨 아직 결혼 안 했어요.”“그건 시간문제 아닌가요? 설마 마음 바뀌어서 노동명 씨랑 결혼 안 하실 건 아니죠?”“노동명 씨가 우빈이를 친자식처럼 챙긴다는 건 저도 알아요. 두 사람 벌써 부자지간 같더라고요.”“남자 친구도 없으면서 남의 연애사에 관심은 많으시네요. 그러지 말고 얼른 좋은 분 찾아서 형부 만들어 주세요.”이윤미는 크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마 평생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저는 결혼 안 할 거거든요. 그냥 적당한 남자랑 상의해서 아이만 가질 생각이에요. 후계자만 있으면 되니까요.”하예진은 말문이 막힌 듯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말했다.“어머니께서 아시면 기절하시겠어요.”“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어머니랑 아버지도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
그러나 전창빈은 사업을 확장하거나 삶을 즐길 생각은 하지 않고 먼 길을 떠나 여기까지 와서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로 지원했다.선우민아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전창빈은 솔직하게 대답했다.“도전하려고 왔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요리를 좋아했고 스승을 모셔 요리 실력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여러 구역의 다양한 요리를 연구하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창업으로 작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산 밖에 산이 있고 사람 위에 사람이 있는 법이라고 여기기에 계속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손님들의 입맛이 바로 저를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이니까요.”전창빈은 자신의 요리가 손님들이 맛있다고 생각해야만 요리 실력이 검증된 것으로 생각했다.손님들이 그 요리에 대해 조언을 해주면 그것을 개선해 더 높은 수준의 요리 실력을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우민아처럼 까다로운 손님을 만났을 때 그녀의 평가는 전창빈을 더욱 발전하게 할 것이다.선우민아는 그가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 자리에 도전하고 싶어서 온 것임을 직감하고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자신이 갑이 되는 것과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에요. 전이혁 씨는 제대로 고려해보셨나요? 만약 우리 가문에서 요리사로 일한다면 우리 가문만의 가정 요리사가 되어 전국의 다양한 손님을 상대할 기회가 없어요. 아마 전이혁 씨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죠.”전창빈은 빙그레 웃으며 선우정아와 시선을 마주치며 대답했다.“아마 큰아가씨님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몇 명 없을 겁니다. 제가 여기서 일하면 전국의 손님을 상대할 수는 없겠지만 큰아가씨께서 싫증 내지 않을 정도로 1년 정도 일할 수 있다면 제 요리 실력도 크게 향상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력을 키워 앞으로 관성으로 돌아가면 제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도 손님이 떼구름처럼 몰려들겠죠.”전창빈은 자신의 요리사들을 이끌어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전국의 손님들이 고향의 전통 요리와 관성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노
강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 경험상으로 보면 전창빈 씨는 합격일 겁니다. 어서 큰아가씨를 뵈러 가세요. 긴장할 필요 없어요. 큰아가씨는 표정이 좀 진지하지만 사실은 매우 좋은 분이십니다.”“감사합니다. 지금 바로 가보겠습니다.”전창빈은 엄격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선우민아가 아무리 엄격해도 그의 큰형 전태윤보다는 못할 것이다.엄격한 전태윤의 얼굴에 익숙해진 전이혁은 이미 엄격한 사람들에게 면역력이 생겼다.전창빈은 강진을 따라 주방을 나섰다.강진은 전창빈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주방을 나선 후에도 전창빈은 여기저기 둘러보지 않았고 또 선우씨 가문 저택의 호화로움에 놀라지도 않았다.다른 지원자들은 늘 선우씨 저택의 사치스러움에 압도되어 주변을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과는 달랐다.강진은 전창빈이 분명 세상 물정을 다 겪어본 사람이거나 굉장한 침착성을 가진 사람일 거로 생각했다.어쨌든 강진은 눈앞의 이 젊은 요리사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 아마 내일이면 동료가 될 것 같았다.강진은 전창빈을 데리고 선우민아가 앉은 자리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멈추어 섰다. 그는 전창빈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낸 후 먼저 나아가 공손히 말했다.“큰아가씨, 전창빈 씨께서 오셨습니다.”선우씨 가족 중 전창빈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오직 선우정아뿐이었다.다른 사람들은 그때 집에 없어 전창빈을 직접 보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다들 그를 보더니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한경주가 남편 선우진혁에게 소곤거렸다.“정말 젊어 보이네요. 우리 민아랑 비슷한 나이 같아요.”선우진혁도 고개를 끄덕였다.“젊네. 보아하니 매우 침착해 보이고. 조금도 긴장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구먼.”“이 요리사분이 매우 잘생겼다는 생각 안 들어요?”선우씨 가문의 둘째 부인, 즉 선우정아의 어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시누이에게 말했다.한경주가 웃으며 대답했다.“정말 잘생겼네요.”선우정아도 말을 이었다.“제 말 이제 믿으시죠? 제가 오늘의 최종 면접자가 매우 젊고 잘
선우민기는 입을 삐죽 내밀며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민기야, 오늘 저녁 요리 맛있었어?”선우민아가 동생에게 물었다.“맛있어요. 엄청 맛있었어요.”사촌 동생도 따라 말했다.“정말 정말 맛있었어요. 누나, 저 앞으로 매일 누나 집에 와서 밥 먹어도 돼요?”선우민아가 웃으며 대답했다.“오고 싶으면 오렴. 하지만 너랑 민기는 밥 잘 먹어야 해. 놀기만 하면 안 된다?”두 꼬마가 함께 모이면 말 그대로 손오공이 천궁을 뒤집어 놓는 수준이었다.가문의 후손에 남자아이가 둘뿐이라 모두가 그들을 귀여워했다. 선우씨 가문의 누나들이 집에 없을 때면 두 꼬마는 진짜로 지붕조차 뒤집을 기세였다.어르신들이 말릴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만약 두 꼬마가 지붕을 뜯으려 하면 오히려 사다리를 대줄 정도니까.“알았어요. 저희 꼭 말을 잘 들을게요.”“그래, 너희 둘 밖에 나갈 땐 외투 꼭 입고 나가야 해. 밖이 너무 추워.”두 꼬마는 기쁜 마음으로 손을 잡고 집에서 뛰쳐나갔다.동생들이 모두 놀러 나가자 선우민아가 집사에게 지시했다.“아저씨, 전창빈 씨를 만나게 해줘요.”강진이 공손하게 대답했다.“네. 바로 전창빈 씨를 불러오겠습니다.”선우민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자리를 떠났다. 그녀가 이동하자 가족들도 모두 따라 일어나 거실 소파에 앉았다.선우민아가 오늘의 최종 면접자를 만나고 싶다고 하자 선우씨 가족들은 바로 그 지원자가 채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직감했다.확실히 오늘의 저녁 식사는 온 가족을 만족시켰다.선우민아의 입맛이 까다로워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다. 그들은 선우민아 덕분에 항상 최고의 요리사가 준비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비록 그녀만큼 입맛이 까다롭지는 않았지만 요리의 품질을 가리는 안목은 그래도 꽤 좋은 편이다.강진이 미소를 머금으며 주방으로 들어갔고 전창빈이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자 그쪽으로 다가갔다.발소리를 들은 전창빈은 휴대전화에서 시선을 떼었고 고개를 들어
원림성 A시.전창빈은 모든 요리를 다 하고는 주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휴대전화를 꺼내 뉴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는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온종일을 바쁘게 보냈다.정확히 말하면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것이 전부 오늘 저녁 식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그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주인공이 돌아왔다.잠시 기다린 후, 전이진이 오후 내내 준비한 요리들이 하나둘씩 하인들에 의해 운반되어 나갔다. 물론 그는 나갈 필요가 없었다.선우민아가 그의 요리를 맛본 후 만족스럽다면 전창빈을 불러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통보도 없이 주방에 머물다가 선우씨 가족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떠나면 집으로 돌아야 한다.비록 전창빈은 자신의 요리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는데도 선우민아의 면담 요청이 없었다. 그는 겉으로는 여전히 뉴스를 보며 담담해 보였으나 속으로는 조금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그는 송일우처럼 세 번이나 도전하는 상황은 원치 않았다. 송일우는 몇 년이나 도전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 실패한 뒤로는 다시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나이도 점점 들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한편 선우씨 가족들이 이미 식사를 마치고 있었다.선우민아도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선우민아의 어머니 한경주가 관심 있게 물었다.“민아야, 이번 지원자가 만든 음식은 어때?”선우민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경주는 계속해서 말했다.“엄마 생각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채용하는 게 어때?”선우민아의 남동생 선우민기는 의자에 털썩 앉아 배를 만지며 말했다.“누나, 나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 이번 요리는 정말 맛있었어. 오랜만에 이렇게 배불리 먹었어.”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선우민기의 배를 가볍게 톡 치며 눈가에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너는 굶은 적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많이 먹었어? 이번만 먹고 다음 끼니는 못 먹을 거로 생각한 건 아니지? 좀 앉아 이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