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미가 관성에 차린 가게와 식당은 모두 장사가 잘되었다.이윤미는 자신의 능력을 믿었지만 매부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었고 사업의 성공에 동생 부부의 영향도 컸다.“관성에서는 하예정 부부가 윤미 씨를 보호해 주니까 무슨 일을 해도 잘 되다 보니 성취감이 없을 거예요. 저는 자기 집안 회사에서도 어려움은 끝이 없고, 성과를 내도 사람들은 제가 남의 공로를 가로챘다고 말해요.”“남들이 뭐라고 하든 윤미 씨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윤미 씨만 알면 돼요.”이윤미는 웃으며 말했다.“저는 신경 쓰지 않아요. 이런 것까지 신경 쓰면 이씨 가문의 후계자 자리에 어떻게 앉아요.”하예진은 이윤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힘내세.!”“우리 모두 힘내요.”두 사람은 경쟁자이지만 서로를 존경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었다.하예진과 이경혜는 모두 이윤미가 이씨 가문을 이끌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들은 전임 이씨 가문의 후손으로 전임 이씨 가문 가주가 사고로 죽었는지, 아니면 이윤미의 어머니가 진짜로 죽였는지 밝혀내야 했다.그들은 진실을 원했다.만약 전임 이씨 가문 가주가 이윤미의 어머니에게 살해당했다면 그들은 자신의 조상을 위해 진실을 밝혀야 했다.다음 이씨 가문의 가주 자리는 되찾을 수 있다면 되찾고, 되찾고 싶지 않다면 이윤미에게 넘겨도 괜찮았다.이경혜는 이씨 가문을 되찾아 하예진이 이씨 가문을 이끌도록 하고 싶었기에 하예진과 이윤미의 싸움은 하루아침에 결판 날 일이 아니었다.이윤미는 이씨 가문을 원하지 않았지만 이씨 가문의 딸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이윤미는 하예진이 이씨 가문을 이끌기를 바라면서도 두려웠다. 하예진이 이씨 가문을 이끌면 자신을 죽일까 봐 두려운 것이 아니라, 진실이 밝혀지고 자신의 친엄마가 하예진의 외할머니를 죽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친척 관계였던 두 사람이 원수가 될까 봐 두려운 것이었다.전임 이씨 가문 가주 가족은 두 딸을 제외하고 모두 죽었다.너무 비극적이라 만약 자신이 전임 이씨
아무리 옷을 껴입어도 우빈이는 여전히 추웠다.“오전에 엄마랑 노동명 아저씨랑 같이 쇼핑도 다녀왔어요.”이것이 우빈이가 거절한 주된 이유였다.이윤미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그래,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이모할머니가 놀이공원에 데려가 줄게.”“네, 좋아요.”우빈이는 기쁘게 고개를 끄덕였다.이윤미는 호텔에 두세 시간 머무르다가 작별 인사를 건네고 떠났다.차에 오르자, 방윤림을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방 비서님, 강성에서 가장 큰 실내 놀이터로 가 주세요.”방윤림이 살짝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놀이공원에 가고 싶으신가요?”이윤미는 잠시 머뭇거리다 입술을 깨물며 답했다.“놀이기구를 타지는 않을 거예요. 그냥 아이들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요. 순수한 미소를 보면 상처투성이인 제 마음도 조금은 나아질 것 같거든요.”“아가씨,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아직 젊으신데 마치 세상을 다 살아본 사람처럼 말씀하시네요.”“많은 걸 겪었으니까요. 나이는 젊어도 마음은 어리지 않아요.”방윤림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놀이공원에 가시면 아가씨도 한 번 신나게 놀아 보세요. 제가 같이 놀아 드릴게요.”“좋아요.”“아가씨, 안전벨트 매세요. 출발합니다.”이윤미는 조용히 안전벨트를 맸고 잠시 후, 방윤림을 올려다보며 갑자기 물었다.“방 비서님, 만약 제가 방 비서님의 아이를 낳고 싶다면... 어떨 것 같아요?”막 출발하려던 방윤림은 순간적으로 핸들을 움켜쥐고 그대로 시동을 껐다.그는 놀란 눈으로 이윤미를 바라보았지만 그 시선 속에는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어 정확한 뜻을 알기 어려웠다.“아가씨, 오늘 점심때 술 안 드셨죠?”방윤림은 조심스럽게 물었다.“네, 안 마셨어요. 정신 말짱해요. 이건 즉흥적으로 나온 말이 아니에요. 오랫동안 고민해 온 문제예요. 전 결혼은 할 수 없어요. 보통 여자들처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으려면 이씨 가문을 물려받지 않아야 하거든요.”.”“아가씨께서는 충분히 좋은 남성을 만나실 수 있을 텐데요.”“
“그럼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죠. 아가씨께서 저를 필요로 하신다면 언제든 도와드리겠습니다.”이윤미는 웃으며 말했다.“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방윤림의 귀 끝이 붉게 물들었다.“방 비서님, 연애해 본 적 없으시죠? 그냥 가볍게 물어본 것뿐인데 귀까지 빨개지셨네요.”“연애라면 이윤미 씨야말로 백지나 다름없죠.”방윤림은 조용히 차를 출발시키며 덧붙였다.“우리는 모든 것을 배우지만 감정에는 관여하지 않아요.”사랑이란 본능적인 감정이라 배울 필요가 없다고들 한다.방윤림은 다른 여성들에게는 항상 철벽을 쳤지만 이윤미 앞에서는 그러지 못했다.아마도 그가 느끼는 감정은 오직 주인에게만 향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이윤미에게만큼은 경계를 허물었던 것이다.매일 함께 지내다 보니 방윤림의 마음속에는 어느새 이윤미의 모습이 깊이 자리 잡았다.그는 아무 보답도 바라지 않았고 그저 묵묵히 그녀를 사랑하고 지켜줄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다.물론 만약 보답을 받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사랑은 참 아름답죠. 하지만 사람을 가장 깊이 상처 입히는 감정이기도 해요.”“하예정 씨와 전태윤 씨, 그리고 하예진 씨와 노동명 씨처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분명 행복할 거예요.”방윤림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아가씨도 언젠가 온 마음으로 아가씨를 사랑해 줄 사람을 만나게 될 거예요.”이윤미는 방윤림을 가만히 바라보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방윤림은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렸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담담하게 운전을 계속했다.“방 비서님, 만약 제가 이씨 가문을 물려받지 못한다면, 그래도 제 곁에 있어 줄 건가요?”“아가씨, 왜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하세요? 우리 같은 사람은 한 번 주인을 섬기면 평생 모시는 법이에요.”이윤미가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되든 되지 못하든 방윤림은 언제나 그녀의 곁을 평생토록 지킬 것이다.설령 이윤미가 모든 걸 잃고 거리에서 구걸하는 신세가 되더라도 그 또한 마다하지 않고 끝까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씨 가문의 가주가 수십 년 동안 그를 찾지 않았을 리 없다.“내가 전태윤 씨에게 말해서 소씨 가문 쪽에 연락할게. 거기서 사람을 보내 이씨 가문의 가주를 미행하게 하면 돼. 소씨 가문 쪽 사람들은 이런 일에 능숙하잖아. 귀신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니까, 우리 쪽 사람들보다 들키지 않고 더 능숙하게 잘 해낼 거야.”만약 이씨 가문의 가주가 정말로 전임 가주의 비서를 만나러 간다면 미행당하는 것을 경계할 것이다.일반 탐정이나 경호원이 뒤를 쫓으면 금방 들킬 게 뻔했다.그리고 만약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윤미가 행적을 누설했다고 의심할지도 모른다.이 일은 오직 친딸에게만 전해진 것이었다.“네, 그럼 큰이모, 빨리 전태윤 씨한테 말해줘요. 전 아무것도 모르는 척 사람 시켜 미행하거나 조사하지도 않을 거예요.”“그래, 섣불리 움직이지 말고 일단 모르는 척해야 해.”“이건 어쩌면 이씨 가문의 가주가 이윤미를 시험하는 걸 수도 있어. 친딸이라고 해도 100% 신뢰할 수는 없겠지.”이경혜는 이씨 가문의 가주가 이윤미를 시험하고 있을 가능성을 떠올렸다.이윤미가 친딸인 건 사실이지만 그의 곁에서 자란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그녀는 양심 있고 올곧은 사람이었다.그렇기에 이씨 가문의 가주는 친딸이 자신과 같은 길을 걷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만약 이윤미가 이씨 가문의 가주가 언니를 죽였다는 증거를 손에 넣는다면 높은 확률로 정의를 택하고 주저 없이 직접 아버지를 감옥으로 보낼 사람이었다.하예진은 그 생각까지 미처 닿지 못하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그럼 이윤미 씨 지금 위험한 거 아니에요?”“이윤미는 너 말고 다른 사람한테는 발설하지 않았어. 그러니 괜찮을 거야.”이경혜는 하예진을 안심시켰다.“호랑이도 제 새끼는 안 잡아먹는다고 하잖아. 이모에게는 딸이 이윤미 하나뿐인데 아무리 독하더라도 딸을 해치지는 않을 거야. 아마 후계자가 되는 걸 막으려 하겠지. 그러니까 일단 우린 아무것도 하지 말자.”이경혜가 단호하게 말했다.“우리
하예진은 핑계를 대며 전화를 끊었다.전화기를 귀에서 떼고 손에 쥔 채로 돌아서자 우빈이와 함께 놀고 있는 노동명이 시야에 들어왔다.주변 사람들은 모두 하예진과 노동명을 놀리길 좋아했다.그녀는 우빈이와 노동명 옆에 앉아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우빈아, 우리 올해 설날은 동명 아저씨랑 같이 보내는 게 어때?”그러자 우빈이는 태연하게 되물었다.“그럼 우리랑 안 보내고 누구랑 보내요?”하예진은 할 말을 잃었다.아들은 이미 노동명을 가족처럼 여기고 있었고 어느새 서로에게 너무도 익숙해져 있었다.하예진은 아이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노동명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말했다.“설 전, 구청에서 휴가 내기 전에 제가 관성으로 돌아갈 테니까 우리 먼저 혼인 신고하고 동명 씨 다리 괜찮아지면 그때 결혼식 올리는 거 어때요?”하지만 노동명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예진아, 나는 몰래 혼인 신고를 하고 싶지 않아. 정식으로 너에게 청혼하고 네가 그걸 받아들인 후에야 혼인 신고를 하고 결혼식을 올리고 싶어. 지금 몇 걸음 정도는 걸을 순 있지만 무릎을 꿇고 청혼하는 건 아직 어렵겠지. 조금만 더 시간이 필요해. 올해 안에는 힘들겠지만 내년 상반기에는 무조건 가능할 거야.”설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아무리 재활 치료를 열심히 해도 그때까지 자유롭게 움직이는 건 어려울 터였다.하예진을 조금 더 기다리게 할 수밖에 없었다.무엇보다 노동명은 그녀에게 조금의 서운함도 주고 싶지 않았다.남들이 가질 수 있는 건 그녀도 당연히 가질 것이고 그녀가 가진 것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하예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결국 이혼녀예요. 재혼인 만큼 많은 절차는 생략해도 괞찮아요.”“아니, 난 네가 몇 번 결혼했는지 신경 쓰지 않아. 네가 나와 결혼하면, 그 순간부터 넌 내게 평생 소중히 여기며 함께할 사람이 되는 거야. 난 네가 조금의 서운함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노동명은 하예진의 손을 꼭 잡고 간절하게 말했다.
이은화의 표정이 살짝 풀리더니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그 아이는 어렸을 때 놀이공원에 가본 적이 없었을 거야. 이제야 처음 가보는 거지.”친딸이 그 집안에서 어떤 괴롭힘과 학대를 당했는지 떠올리며 이은화는 갑자기 이윤정이 미워졌다.613하지만 이윤정은 오히려 그들을 원망하고 있었다. 이윤정 부모님이 이윤미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모른단 말인가?이윤정은 어릴 때부터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살았다. 놀이공원은 물론이고 해외여행도 셀 수 없이 많이 다녔다.하지만 이윤미는 이제야 놀이공원에 갈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613비서는 조용히 말했다.“아가씨께서는 예전에 너무 고생하셨습니다.”그 말에는 이윤미를 향한 안타까움이 묻어 있었다.비서는 애초부터 이윤정을 좋아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그녀가 가짜 딸이라는 걸 몰랐기에 미래의 후계자로 여기며 억지로라도 예의를 차렸고 싫어하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했다.하지만 진짜와 가짜가 밝혀진 후에야 깨달았다. 이윤정이은화님의 친딸이 아니었기에 그녀를 싫어했던 것이라는 것을.613”그래, 그 아이는 참 힘들게 살아왔지. 하지만 그 덕에 강인한 성격을 갖게 됐어.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야. 이윤미는 이윤정보다 훨씬 낫다.”비서는 그저 가주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이윤미가 이씨 가문으로 돌아오기 전, 이미 사업을 성공시켜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역시 이씨 가문의 피는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였다.613그녀는 자신에게 불리한 환경에서도 스스로 일어섰다.비서는 가주가 먼저 묻지 않는 이상 굳이 밝힐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613”이윤정은 지금 어디에 있지?”“명지 빌리지에 있습니다. 큰 도련님께서 거기에 이윤정 씨를 위한 아파트를 구매하셨습니다.”이은화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613”아주 훌륭한 아들을 뒀어. 내가 한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군.”“큰 도련님께서 요 며칠 그곳에서 지냈습니다.”비서는 정장 재킷 안주머니에서 사진 한 뭉치를 꺼
사진 속 정일범과 이윤정은 다정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정일범의 두 동생도 종종 명지 빌리지를 찾았는데 올 때마다 크고 묵직한 짐을 들고 갔다.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윤정을 위해 사 온 물건들이었다.이은화는 화가 치밀어 가슴이 답답했다.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이윤정이 싫었다.이윤정과 정군호가 누군가의 계략에 빠진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그 모든 걸 알면서도 이은화는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수 없었다. 더 이상 이윤정이 저택 안에 머무르는 걸 견딜 수 없었다.그동안 이윤정에게 베푼 모든 것이 되려 돌아와 상처가 되었다.이윤정이 자신을 원망하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이윤정은 어디까지나 남이었다. 이씨 가문의 핏줄이 아니었다.사건이 터졌을 때, 만약 이윤정이 조용히 관성을 떠났다면 이은화는 비서를 통해 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돈을 보내 앞날을 보장해 줬을 것이다.하지만 이윤정은 그러지 않았고 오히려 복수를 꿈꾸며 날을 세웠다.이은화는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이윤정, 난 네게 살길을 열어주려고 했어. 하지만 네가 그걸 걷어차고 스스로 지옥으로 가려 한 거야, 날 무정하다고 탓하지 마.”이은화는 친자식도 가차 없이 내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하물며 이윤정 따위를 감당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이윤정을 제거하고도 자신에게 어떤 책임도 돌아오지 않게 만들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정일범, 너희 형제들 자꾸 여자 못 만나본 사람들처럼 굴 거야?”이은화를 가장 분노하게 만든 건 세 아들의 행동이었다.그들은 이씨 가문을 이끌 재목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절대 박대하진 않았다. 여러 반대를 무릅쓰고 회사에서 자리를 마련해 주었고 회사에서 돈을 빼가는 것도 눈감아 주었다.게다가 그들에게 골라준 아내들은 정씨 가문과도 격이 맞았다. 오히려 정씨 가문보다 더 우위에 있는 가문이었다.그들도 정씨 가문의 핏줄이었으니 며느리를 맞이할 때도 정씨 가문과 어울리는 상대를 찾아야 했다.강성에서는 누구나 이씨 가문이 딸을 후계자로 삼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가장 어린 두 아이만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셋째의 자녀들이었는데 평소에는 외할머니 댁에서 지냈다. 셋째 며느리의 친정이 유치원과 가까웠기 때문에 아이들은 친정에서 머물며 유치원을 다니는 게 훨씬 수월했다.어린 두 손주는 친정에서 생활했고 이은화는 매달 빠짐없이 손주들의 생활비를 보냈다. “큰 며느리가 돌아오면 서재로 오라고 해.”“네, 가주님. 곧 식사 시간입니다.”집사가 조심스럽게 알렸고 이은화는 한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입맛이 없구나.”남편도, 자식들도 곁에 없는 밥상이었다. 혼자 먹는 밥이란 그저 목구멍으로 밥을 넘기는 일일 뿐이었다.게다가 마음도 편치 않았기에 애써 먹고 싶지도 않았다.“가주님, 점심도 거의 안 드셨습니다. 조금이라도 드세요.”“안 먹겠다니까.”딱 잘라 말하고 이은화는 내선 전화를 끊었다.그 모습에 집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이윤미가 집으로 돌아왔다.그녀를 데려다준 건 방윤림이었다.그녀는 한 손에는 커다란 솜사탕을, 다른 손에는 엿장수 엿 두 개를 들고 있었고 방윤림의 차는 이씨 가문의 저택 안으로 곧장 들어와 본채 앞에 멈춰 섰다.“아가씨, 도착했습니다.”운전석에 앉은 방윤림이 고개를 돌려 이윤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실내 놀이터에서 몇 시간 동안 실컷 놀고 난 이윤미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들뜬 표정이었다.어릴 적, 놀이공원은커녕 동물원에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양부모는 단 한 번도 이윤미를 데리고 나들이를 간 적이 없었고 늘 친아들만 데리고 다녔기에 이윤미는 그때 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야 하나씩 해 나가는 중이었다.아이들이 좋아하는 솜사탕도 사 먹고 엿장수 엿도 사서 손에 쥐었다.“들어와서 물이라도 한잔 마시고 갈래요? 아니면 저녁 먹고 가요.”이윤미가 물었다.방윤림은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고개를 저었다.“저는 들어가서 라면이나 끓여 먹으면 돼요. 괜찮습니다.”그가 시선을 돌리자, 마당 한쪽에 주차된 이은화의 전용 차량이 눈에 들어왔다.이은화가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
그러나 전창빈은 사업을 확장하거나 삶을 즐길 생각은 하지 않고 먼 길을 떠나 여기까지 와서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로 지원했다.선우민아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전창빈은 솔직하게 대답했다.“도전하려고 왔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요리를 좋아했고 스승을 모셔 요리 실력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여러 구역의 다양한 요리를 연구하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창업으로 작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산 밖에 산이 있고 사람 위에 사람이 있는 법이라고 여기기에 계속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손님들의 입맛이 바로 저를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이니까요.”전창빈은 자신의 요리가 손님들이 맛있다고 생각해야만 요리 실력이 검증된 것으로 생각했다.손님들이 그 요리에 대해 조언을 해주면 그것을 개선해 더 높은 수준의 요리 실력을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우민아처럼 까다로운 손님을 만났을 때 그녀의 평가는 전창빈을 더욱 발전하게 할 것이다.선우민아는 그가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 자리에 도전하고 싶어서 온 것임을 직감하고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자신이 갑이 되는 것과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에요. 전이혁 씨는 제대로 고려해보셨나요? 만약 우리 가문에서 요리사로 일한다면 우리 가문만의 가정 요리사가 되어 전국의 다양한 손님을 상대할 기회가 없어요. 아마 전이혁 씨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죠.”전창빈은 빙그레 웃으며 선우정아와 시선을 마주치며 대답했다.“아마 큰아가씨님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몇 명 없을 겁니다. 제가 여기서 일하면 전국의 손님을 상대할 수는 없겠지만 큰아가씨께서 싫증 내지 않을 정도로 1년 정도 일할 수 있다면 제 요리 실력도 크게 향상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력을 키워 앞으로 관성으로 돌아가면 제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도 손님이 떼구름처럼 몰려들겠죠.”전창빈은 자신의 요리사들을 이끌어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전국의 손님들이 고향의 전통 요리와 관성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노
강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 경험상으로 보면 전창빈 씨는 합격일 겁니다. 어서 큰아가씨를 뵈러 가세요. 긴장할 필요 없어요. 큰아가씨는 표정이 좀 진지하지만 사실은 매우 좋은 분이십니다.”“감사합니다. 지금 바로 가보겠습니다.”전창빈은 엄격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선우민아가 아무리 엄격해도 그의 큰형 전태윤보다는 못할 것이다.엄격한 전태윤의 얼굴에 익숙해진 전이혁은 이미 엄격한 사람들에게 면역력이 생겼다.전창빈은 강진을 따라 주방을 나섰다.강진은 전창빈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주방을 나선 후에도 전창빈은 여기저기 둘러보지 않았고 또 선우씨 가문 저택의 호화로움에 놀라지도 않았다.다른 지원자들은 늘 선우씨 저택의 사치스러움에 압도되어 주변을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과는 달랐다.강진은 전창빈이 분명 세상 물정을 다 겪어본 사람이거나 굉장한 침착성을 가진 사람일 거로 생각했다.어쨌든 강진은 눈앞의 이 젊은 요리사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 아마 내일이면 동료가 될 것 같았다.강진은 전창빈을 데리고 선우민아가 앉은 자리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멈추어 섰다. 그는 전창빈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낸 후 먼저 나아가 공손히 말했다.“큰아가씨, 전창빈 씨께서 오셨습니다.”선우씨 가족 중 전창빈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오직 선우정아뿐이었다.다른 사람들은 그때 집에 없어 전창빈을 직접 보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다들 그를 보더니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한경주가 남편 선우진혁에게 소곤거렸다.“정말 젊어 보이네요. 우리 민아랑 비슷한 나이 같아요.”선우진혁도 고개를 끄덕였다.“젊네. 보아하니 매우 침착해 보이고. 조금도 긴장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구먼.”“이 요리사분이 매우 잘생겼다는 생각 안 들어요?”선우씨 가문의 둘째 부인, 즉 선우정아의 어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시누이에게 말했다.한경주가 웃으며 대답했다.“정말 잘생겼네요.”선우정아도 말을 이었다.“제 말 이제 믿으시죠? 제가 오늘의 최종 면접자가 매우 젊고 잘
선우민기는 입을 삐죽 내밀며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민기야, 오늘 저녁 요리 맛있었어?”선우민아가 동생에게 물었다.“맛있어요. 엄청 맛있었어요.”사촌 동생도 따라 말했다.“정말 정말 맛있었어요. 누나, 저 앞으로 매일 누나 집에 와서 밥 먹어도 돼요?”선우민아가 웃으며 대답했다.“오고 싶으면 오렴. 하지만 너랑 민기는 밥 잘 먹어야 해. 놀기만 하면 안 된다?”두 꼬마가 함께 모이면 말 그대로 손오공이 천궁을 뒤집어 놓는 수준이었다.가문의 후손에 남자아이가 둘뿐이라 모두가 그들을 귀여워했다. 선우씨 가문의 누나들이 집에 없을 때면 두 꼬마는 진짜로 지붕조차 뒤집을 기세였다.어르신들이 말릴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만약 두 꼬마가 지붕을 뜯으려 하면 오히려 사다리를 대줄 정도니까.“알았어요. 저희 꼭 말을 잘 들을게요.”“그래, 너희 둘 밖에 나갈 땐 외투 꼭 입고 나가야 해. 밖이 너무 추워.”두 꼬마는 기쁜 마음으로 손을 잡고 집에서 뛰쳐나갔다.동생들이 모두 놀러 나가자 선우민아가 집사에게 지시했다.“아저씨, 전창빈 씨를 만나게 해줘요.”강진이 공손하게 대답했다.“네. 바로 전창빈 씨를 불러오겠습니다.”선우민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자리를 떠났다. 그녀가 이동하자 가족들도 모두 따라 일어나 거실 소파에 앉았다.선우민아가 오늘의 최종 면접자를 만나고 싶다고 하자 선우씨 가족들은 바로 그 지원자가 채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직감했다.확실히 오늘의 저녁 식사는 온 가족을 만족시켰다.선우민아의 입맛이 까다로워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다. 그들은 선우민아 덕분에 항상 최고의 요리사가 준비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비록 그녀만큼 입맛이 까다롭지는 않았지만 요리의 품질을 가리는 안목은 그래도 꽤 좋은 편이다.강진이 미소를 머금으며 주방으로 들어갔고 전창빈이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자 그쪽으로 다가갔다.발소리를 들은 전창빈은 휴대전화에서 시선을 떼었고 고개를 들어
원림성 A시.전창빈은 모든 요리를 다 하고는 주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휴대전화를 꺼내 뉴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는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온종일을 바쁘게 보냈다.정확히 말하면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것이 전부 오늘 저녁 식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그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주인공이 돌아왔다.잠시 기다린 후, 전이진이 오후 내내 준비한 요리들이 하나둘씩 하인들에 의해 운반되어 나갔다. 물론 그는 나갈 필요가 없었다.선우민아가 그의 요리를 맛본 후 만족스럽다면 전창빈을 불러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통보도 없이 주방에 머물다가 선우씨 가족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떠나면 집으로 돌아야 한다.비록 전창빈은 자신의 요리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는데도 선우민아의 면담 요청이 없었다. 그는 겉으로는 여전히 뉴스를 보며 담담해 보였으나 속으로는 조금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그는 송일우처럼 세 번이나 도전하는 상황은 원치 않았다. 송일우는 몇 년이나 도전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 실패한 뒤로는 다시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나이도 점점 들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한편 선우씨 가족들이 이미 식사를 마치고 있었다.선우민아도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선우민아의 어머니 한경주가 관심 있게 물었다.“민아야, 이번 지원자가 만든 음식은 어때?”선우민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경주는 계속해서 말했다.“엄마 생각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채용하는 게 어때?”선우민아의 남동생 선우민기는 의자에 털썩 앉아 배를 만지며 말했다.“누나, 나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 이번 요리는 정말 맛있었어. 오랜만에 이렇게 배불리 먹었어.”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선우민기의 배를 가볍게 톡 치며 눈가에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너는 굶은 적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많이 먹었어? 이번만 먹고 다음 끼니는 못 먹을 거로 생각한 건 아니지? 좀 앉아 이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