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대표는 주차 후, 하이힐로 갈아신고 가방을 챙겨 차에서 내렸다.“엄마!”아들은 달려와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애틋하게 말했다.“엄마, 너무 보고 싶었어요.”모자가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도 아침과 밤뿐이었다. 낮에는 장 대표가 바쁜 업무로 인해 집에 올 수 없었고, 아이는 시부모님과 보모가 보살폈다.아들은 속이 깊어 쉽게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에는 서운함이 남아 있었다. 아빠를 잃은 후, 엄마도 점점 멀어져 가는 것 같았다. 엄마는 항상 바빴고, 같이 놀러 간지도 이미 오래전이었다. 주말에 학교는 쉬었지만, 엄마는 고객을 접대하거나, 골프를 치고, 각종 연회에 참석하며 여전히 바쁜 일정 속에서 살고 있었다. 장 대표는 작고 가냘픈 아들을 끌어안으니 가슴이 아려왔다.아들은 아홉 살이 다 되었지만, 키는 여전히 일곱 살짜리 아이처럼 작았다. 장 대표는 자신이 사업에 매달리느라 아들에게 충분히 신경을 쓰지 못한 탓이라며 자책했다.장 대표는 하예진처럼 아들을 잘 돌봐줄 좋은 동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예진은 든든한 동생이 있었기에 안심하고 사업을 할 수 있었지만, 장 대표는 아니었다. 그녀의 친정 식구들은 오히려 도움이 되기는커녕, 그녀가 떠난 남편의 사업을 물려받자, 어떻게든 재산을 뜯어낼 생각밖에 없었다.비록, 장 대표의 친정도 부유한 편이었지만 그들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어떻게든 그녀를 이용하려 들었고, 그녀의 시댁마저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재벌가의 갈등이란, 결국 다 비슷한 법. 하지만 전씨 가문은 특별했다. 관성 명문 가문들 사이에서 전씨 가문만큼 깔끔하고 평온한 집안은 드물었다.그것은 모두 전씨 할머니 덕분이었다. 전씨 할머니는 집안을 엄하게 다스렸고, 자손 교육은 물론, 며느리와 손주며느리 전부 그녀의 안목이었으며, 고를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은 인품이었다.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철저히 할머니의 가르침을 따랐다. 덕분에 하늘도 그들을 축복했는지, 그들이 맞이한 아내들은 모두 현모양처에, 외모까지 훌륭했다.훌륭한 며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해외로 유학 보내줄게. 국내는 경쟁이 너무 치열하잖아.”장 대표는 아들이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도저히 아들과 떨어져 지낼 수 없었다. 비록, 그녀는 지금도 바쁜 업무로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볼 수 있었다.시부모님도 손자를 무척 아꼈다. 아들이 세상을 떠난 후, 손자는 그들에게 살아갈 이유이자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만약 손자가 없었다면 그들은 그 시간을 견뎌낼 수 없었을 것이었다.“엄마, 숙제 하고 나서 할아버지께 봐달라고 했어요. 2점짜리 문제 하나 틀리고 나머지는 다 맞았어요. 나 많이 늘었죠?”“앞으로 엄마가 실망하지 않도록 더 열심히 공부할게요.”아이도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엄마까지 자신에게 얼마나 큰 기대를 안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비록, 아이는 타고나지는 못했지만 스스로 학업에 의지를 가지고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노력했다. 덕분에 성적은 꾸준히 올라가고 있었다.“그래, 정말 많이 늘었네. 아주 잘했어. 할머니, 할아버지는 주무셔?”장 대표는 아들에게 시부모님의 안부를 물었다.“아니요. 엄마 올 때까지 기다리고 계셨어요.”장 대표는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시댁의 가업을 안정적으로 이끌며 시부모님의 마음속에 든든한 기둥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시부모님은 장 대표가 아직 젊으니 재혼을 권하기도 했다. 다만, 조건이 있었다. 시부모님은 그녀가 그 집에 친딸처럼 있으면서 사위를 집에 들이길 원했다. 그렇게 되면 집안에 건장한 남자가 있어 친척들도 함부로 그들의 재산을 넘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또한 재혼을 하더라도 부부재산계약을 체결해야 했고, 시댁의 재산은 남편이 될 사람이 절대 건드릴 수 없도록 서명을 받아야 했다.그리고, 시부모님은 남편이 될 사람에게 회사에 자리도 마련해 주고, 달마다 생활비도 지원해 줄 테니 회사의 지분과 그들의 재산은 절대 넘보지 말라고 했었다.그야말로 장 대표에게 배우자가 아닌 동반자를 찾으라는 뜻이었다.장 대표는 정중히 시부님의 제
장 대표가 집안에 들어서자,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시부모님은 소파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했다.시어머니는 따듯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월아, 잘 다녀왔니?”장 대표의 본명은 장월이었다.“네, 어머님. 잘 다녀왔어요.”장월은 아무리 피곤해도 집에 돌아와 시부모님과 아들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녀는 가족들이 건강하기만 하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버틸 수 있었다.“배고프지? 너 먹이려고 사골국 좀 끓였어. 지금 갖다줄 테니 따뜻할 때 얼른 먹어.”“요즘 많이 바쁘지? 매일 저녁 피곤에 찌든 얼굴로 들어오고, 살도 많이 빠진 것 같아 내가 다 안쓰러워. 네 남편이 일찍 떠난 탓에 네가 이렇게 고생이 많구나...”짧은 생을 마감한 외동아들 생각에 시어머니는 눈가가 붉어졌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세상을 떠난 지 7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졌다.장월도 외동아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였다. 그녀는 아들이 그저 가벼운 감기로 미열이라도 나면 가슴이 조마조마하고 숨이 막혀왔었다. 그녀는 차라리 자신이 아들을 대신해서 아프기를 바랐다.눈에 넣어도 안 아플 외동아들인데, 장월은 노년에 접어들자마자 아들을 잃는다는 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장월은 시부모님의 슬픔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네. 그럼 한 그릇만 부탁할게요.”장월은 시어머니의 정성을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금방 접대를 마치고 돌아와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래도 시어머니의 정성을 보아 국 한 그릇 정도는 더 먹을 수 있었다.장월은 시아버지께도 인사를 건넨 후 하녀에게 가방을 맡겼고, 하녀는 조심스레 가방을 정리해 놓았다.아들은 장월의 무릎 위에 앉았고, 장월도 자연스럽게 아들을 안아 올렸다.“아버님, 어머님. 앞으로 저 기다리지 마시고 일찍 쉬세요. 아들, 너도 엄마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야지.”“싫어요. 엄마 돌아오면 잘 거예요. 엄마는 낮에는 집에 없으니까, 제가 기다리지 않으면 볼 수 없잖아요.”장월은 아들의 투정 섞인 목소
장월은 사업으로 바쁘게 보내면서도 결코 돈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 비해 올케언니는 돈을 펑펑 쓰면서 여유롭고 편안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친정 부모는 아들과 며느리는 끔찍이 챙기면서 정작 힘겹게 고생하는 친딸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딸의 등골을 빼먹으며 아들 며느리에게 잘해주는 부모를 과연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아들은 몸을 돌려 장월을 꼭 껴안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엄마,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난 엄마가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힘들게 일하고 있는 거 다 알아요. 내가 더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될게요. 그리고 나중에 엄마가 힘들지 않도록 내가 엄마를 든든하게 지켜줄 거예요.”철이 든 아들의 말에 장월은 뭉클 해났다. 그녀는 가냘픈 아들을 꼭 껴안으며 말했다.“우리 아들 기특하네. 엄마는 네가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해. 공부는...이미 많이 나아졌는걸, 지금처럼만 해도 엄마는 아주 기쁘단다.”모두 알고 있듯, 모든 아이가 공부에 재능이 있는 건 아니었다. 어떤 아이는 머리가 똑똑하지만, 공부에는 뜻이 없어 공부 성적이 늘 하위권인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고 아이를 머리가 나쁘다거나 공부에 가망이 없다고 단정 지을 순 없었다. 그들은 단지 공부보다는 삶의 다른 부분에서 더 큰 재능을 보일 뿐이었다.장월은 아들이 가업을 지켜낼 능력만 있기를 바랄 뿐, 특별히 뛰어난 인재가 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았다.“엄마, 난 더 나아질 거예요.”“그래. 엄마는 아들을 믿어. 하지만 무엇보다 건강이 첫째야. 편식하지 말고, 알았지? 네 또래 친구들은 너보다 키도 크고 튼튼하잖아. 군것질을 줄이고 밥을 제대로 먹어야지. 사람은 밥심으로 자라는 거야. 그래야 키도 크고 튼튼해질 수 있어. ”사실, 아들은 입이 무척이나 까다로웠다.아들은 입을 삐죽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시어머니가 사골국을 내왔다.“고마워요, 어머님.”장월은 아들을 옆으로 내려놓고 조심스레 국을 받아 들었다. 국은 생각보다 뜨거웠고,
장월은 국을 다 마시고 휴지를 뽑아 입을 닦았다.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들에게 말했다.“아들, 이제 올라가서 쉬어야지. 내일 학교 가려면 일찍 일어나야 하잖아.”아들은 눈치가 빨랐고, 그는 엄마가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할 예정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족들에게 인사를 한 후 2층으로 올라갔다.장월은 아들이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아들이 계단에서 완전히 사라진 후 입을 열었다.“아버님, 어머님. 저도 알고 있어요. 두 분께서 저희를 위해 하시는 말씀이라는 걸요. 하지만 관성에 괜찮은 남자라고는 몇 안 되는 명문가 도련님들뿐이에요. 다들 저보다 한참 어리고, 게다가 미혼이에요.”장월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사실, 그들 말고, 저와 어울릴 만한 남자가 한 명 있긴 해요. 저보다 몇 살 많고, 아직 미혼이에요. 그 사람은 능력도 있고, 사람도 괜찮아요. 그런데 교통사고로 생긴 얼굴 흉터 때문에 처음 보면 인상이 좀 무서울 수도 있어요.”“하지만 그 사람은 자기 명의로 된 회사도 있고, 몸값도 수천억 원에 달해요. 저희 보다 돈도 많고 정직한 사람이니 저희 재산을 노리지는 않을 거예요.”시부모님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순간 눈빛을 주고받았다.그러더니 시어머니가 물었다.“그 사람이 누구니?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이야?”“두 분 다 잘 아시는 분이에요. 노씨 가문 넷째 도련님이자 노씨 그룹의 대표인 노동명 씨예요.”시부모님은 순간 얼굴이 굳어졌다.“노동명?”노동명의 이름을 듣자, 시어머니는 단호하게 반대했다.“안 된다. 노동명은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다쳤잖니. 재활 치료를 한다곤 해도 언제 정상으로 돌아올지 몰라. 그리고 그 얼굴의 흉터도, 네 아들이 보면 분명 무서워할 거야.”시아버지도 동참했다.“나도 같은 생각이다. 노동명이 조건도 좋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네 시어머니가 말한 것처럼 장애를 앓고 있고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하잖니. 우리가 바란 건 네가 기댈 수 있고
“하예진도 이혼녀에 아들까지 딸렸는데도 노동명 씨는 전혀 개의치 않았어요. 오히려 누가 봐도 진심으로 그녀의 아들을 친자식처럼 아껴주고 있었어요.”“노동명 씨는 의붓아들에게도 너그러운 사람인데 아내가 될 사람이 이혼했든 사별했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 저와 어울릴 만한 남자는 노동명 씨밖에 없어요.”“하예진도 결국 이혼녀잖아요. 능력이 그렇게 출중한 편도 아니고. 그런데도 전남편보다 백 배는 더 나은 남자를 만났어요. 전 하예진보다 훨씬 뛰어났고, 제가 노동명 씨를 바라보지 못할 이유가 없잖아요.”“그래요. 노동명씨와 하예진은 이미 연인 사이예요. 그런데 그게 뭐 큰 일이라도 돼요? 아직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잖아요. 아직 저에게도 기회는 있어요. 그리고 직접 의사한테 알아봤는데, 노동명 씨 다리도 꾸준히 재활 치료를 받는다면 내년쯤엔 정상으로 돌아온다고 했어요.”장월은 자신이 하예진보다 훨씬 뛰어났고, 노동명과 더 잘 어울리는 사람도 자신이라고 생각했다.그리고 만약 노동명과 결혼하게 된다면, 적어도 아들이 사랑받지 못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노동명은 하예진의 아들, 주우빈을 얼마나 아끼는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노동명이 주우빈의 친아빠인 줄 알 정도였다. 장월은 그런 모습을 보면 질투로 배가 아파났었다.‘저 사랑을 우리 아들이 받을 수 있다면...’그녀는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네 생각이 그럴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너를 불륜녀라고 손가락질할 거야. 네 아들까지도 욕먹을 수 있어. 월아,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봐.”시어머니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장월을 설득했다.“정말로 적당한 남자가 없다면, 그냥 이렇게 사는 게 더 나을지도 몰라. 네 아들이 크면 가업을 이어받게 하고, 넌 물러나서 편하게 노후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시어머니는 장월이 홀로 힘겹게 살아가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그렇다고 며느리가 불륜녀로 낙인이 찍힌 채 평생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으며 살아가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아버님, 어머님. 이건 하루이틀 안에 결론이 날 일이 아니에요. 저도 멋 모르는 열여덟 어린 소녀가 아니고요. 상황이 저한테 불리하게 돌아가면 바로 손 뗄게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가문의 명성에도, 제 아들에게도 해가 되는 일은 없을 거예요.”“벌써 늦었네요. 두 분 먼저 주무세요. 저는 방금 국 한 그릇 다 마셨더니 조금 더부룩하네요. 소화도 시킬 겸 잠깐 나가서 산책하고 올게요.”장월은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월아, 하루 종일 일하고 피곤할 텐데 너무 멀리 가지는 말거라. 일찍 들어와서 쉬어라. 내일 또 아침 일찍 나가야 하잖아.”시어머니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장월에게 당부햇다.매일 끝없는 회의와 처리해야 할 서류들...장월은 낮에는 일이 바빠서 전화 한 통 받을 여유도 없었다. 그녀의 아들이 전화를 걸었을 때도 바쁘다는 말 한마디 하고는 끊어버리기 일쑤였다.시부모님은 장월 혼자서 이렇게 큰 회사를 운영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알겠어요, 어머님. 아버님도 어서 주무세요.”장월은 집을 나섰고, 시부모님은 그녀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그들은 눈빛을 마주했고, 한숨을 내쉬며 방으로 들어갔다.깊은 밤, 장월은 인적 없이 조용한 정원을 걷고 있었다. 그녀가 유일하게 긴장을 풀고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남편이 살아있었을 때, 두 사람은 종종 손을 맞잡고 이 정원을 거닐곤 했었다.하지만 지금은...그녀 혼자였다.“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하자며...그런데 왜 약속도 안 지키고 날 혼자 남겨두고 갔어!”“ 이제 난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없어. 내 마음은 이미 당신 따라 죽어버렸어.”“나랑 우리 아들, 그리고 당신 부모님까지 모두 두고 떠나다니...당신, 너무 하잖아.”“나 이제 기댈 곳이 필요해. 노동명 씨라면 나와 우리 집안에 딱 맞는 사람이 될 거야. 만약 당신이 하늘에서 우리를 보고 있다면, 우리를 불쌍히 여겨서 노동명 씨가 나에게 오도록 도와줘.
아무리 큰 사업이라도 그녀는 배불리 먹은 후 가서 얘기하려고 했다.하예진은 웃으면서 말했다.“오늘 늦게 일어나서 아침 먹고 회사에 가려면 늦을 거 같아서 포장해 회사에 가서 먹을 거야. 아침을 먹고 나면 마침 회의도 있어. 그럼, 너 먼저 일 봐. 이번 주말 우빈이 보러 갈 거야.”하예정이 대답했다.“응, 알았어.”그녀는 언니가 메시지를 보내오지 않자 더 이상 방해하지 않았다.언니는 그녀보다 훨씬 바빴다. 그녀의 사업은 안정되었지만 언니의 사업은 이제 막 시작이었다.하예진은 아침에 먹을 음식을 포장해 회사로 돌아온 후 회의 시간이 되기 전 최대한 빠르게 아침 식사를 해결했다.그러고 나서 노동명에게 음성메시지를 보냈다.“어제저녁 꿈꾸었는데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여자가 저를 찾아왔어요. 저에게 동명 씨를 떠나라고 했어요.”재활 운동 중이던 노동명은 음성메시지를 바로 듣지 못했다.하예진은 음성메시지를 보낸 후에도 일부러 그의 답장을 기다리지 않았다. 비서가 그녀에게 회의를 시작할 시간이 되었다고 알려주었다.약 30분 후, 노동명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재활 운동을 멈추고 휠체어에 놓인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하예진에게서 메시지가 온 것을 본 그는 서둘러서 메시지를 확인했다.하예진의 음성메시지를 확인한 노동명은 침착할 수가 없었다.그는 바로 하예진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지만 그녀가 바쁠 것 같아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예진아, 바빠?”메시를 보낸 후 하예진은 줄곧 답장이 없었다. 노동명은 그녀가 바쁘다는 것을 알았다.노동명은 마음이 조급했으나 하예진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그는 재활 운동을 하지 않고 스스로 휠체어를 조종해 잔디밭을 떠나 방으로 돌아갔다.십여 분 후, 경호원은 안방에서 노동명을 밀고 나와 차로 이동했다.곧 경호원은 차를 운전해 노씨 가문 대저택을 떠났다.노동명은 줄곧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구든 그의 표정을 보면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노씨 그룹에 거의 도착할 때쯤 노동명이 말했다.“전씨 그룹
전씨 할머니는 한 손에 꽃다발을 안고 다른 한 손으로 갓 구운 생선을 집어 전이혁에게 건넸다.“이런 작은 생선은 막 구웠을 때 먹는 게 맛있어. 식으면 맛이 없으니 따뜻할 때 먹어.”“고마워요, 할머니.”전이혁은 할머니가 건넨 생선을 받아 주저 없이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는 먹던 중에 핸드폰을 꺼내 전우에게 사진을 한 장 찍어 보냈다.전이혁은 전우와 나이도 비슷하고, 어릴 때부턴 전우와 함께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형제 중에서 전우와 가장 친했다. 그러니 그는 자랑하고 싶을 때는 무조건 전우를 찾았다.전이혁의 사진을 보자마자 전우는 가족 단톡방에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할머니, 낚시 가셨어요? 직접 구워 드시기까지 하네요. 많이 잡으셨어요? 저도 먹을래요. 지금 당장 갈게요.”전이혁은 일부러 약 올리듯 답장했다.“이젠 없어. 할머니께서 나 주려고 특별히 남겨둔 거야. 그러니 네 몫은 없어. 그리고 너 진짜 생선 한 조각 먹으러 올 거야? 손해가 클 텐데?”“돈은 언제든 벌 수 있지만 할머니표 생선구이는 언제나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할머니는 워낙 자유로워서 오전엔 리조트에 있다가도 오후에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곤 했었으니, 큰 손자인 전태윤도 못 말릴 정도였다.부모 세대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은 수십 년간 할머니의 손에서 할머니의 기세에 눌려 살아왔기 때문에 할머니에게 잘 해드리는 것밖에 없을 뿐, 감히 할머니를 간섭할 수 없었다. 그나마 큰 손자인 전태윤이 할머니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인데 그마저도 성공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할머니는 그야말로 나이 든 개구쟁이였다. 할머니는 지금은 리조트에 있지만 다섯째 손자인 전우가 도착할 즈음이면 이미 어디론가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할머니는 웃으며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오늘은 많이 잡지 못했어. 넷째한테 줄 몇 꼬치만 남겨 놓고, 나머지는 다 먹었어. 먹고 싶으면 설 연휴 때 와서 직접 낚시해서 구워 먹어. 그래야 더 맛있지.”전우는 아쉬움으로
잠시 후, 차 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아이는 고개만 돌려 살짝 보더니 다시 바비큐를 먹기 시작했다.“할머니, 저 왔어요.”멀리서 전이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이혁은 꽃다발을 안고 차에서 내린 후, 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가는 길에 풍겨오는 바비큐 냄새는 정말 좋았다.“와, 냄새 진짜 좋네요. 이런 날씨에는 바비큐가 최고죠.”관성의 겨울 날씨는 정말 변덕스러웠다. 어제는 몸이 움츠러들 정도로 추워서 할머니들은 밖에 나갈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오늘은 기온이 확 올라와 정오 무렵에는 햇빛까지 쨍쨍하게 비추더니 약간 더운 느낌마저 들었다.관성의 사람들은 겨울에 가끔 이렇게 바비큐를 해 먹긴 하지만 보통은 휴일이 되어야 준비해서 해먹을 여유가 있었다.하지만 할머니는 달랐다. 할머니는 생각만 나면 언제든 자유롭게 바비큐를 즐길 수 있었다.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전이혁은 자신이 나중에 결혼하고 아들이 성장하면 당장 사업을 넘겨주고, 자신은 조기 은퇴해 할머니처럼 여유로운 노후를 즐길 계획이었다. 그것은 신선놀음보다 더 행복한 삶이었다.“넷째 도련님.”양씨 아저씨가 미소를 지으며 전이혁에게 안부를 물었다.전씨 할머니와 함께 수다를 떨고 있던 여러 할머니도 전이혁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다.그들은 전씨 할머니가 무려 아홉 명의 손자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무척 부러워했다. 아직 사회에 나오지 않은 막내 두 명을 제외한 다른 일곱 명의 손자는 이미 뛰어나고 유능한 인물들로 소문나 있었다. 게다가 막내 두 명은 비록 사회에 나오지 않았지만, 그들은 성적이 우수했고 앞날도 창창했다. 그뿐만 아니라, 할머니에 대한 효심도 지극했었다.전씨 가문은 자손들이 하나같이 훌륭했고 가업도 재산도 어마어마했으니, 그야말로 할머니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그들은 가끔 함께 수다를 떨며 힘들었던 시절을 회상하곤 했었다. 하지만 전씨 할머니는 그 시절에도 그들보다 훨씬 잘 살았고, 그때부터 이미 가문에서 주름잡는 존재였다. 결국 훌륭한 어른이
여자아이의 말을 듣고 있던 전씨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그 여자아이를 불렀다.“소령이, 이리 와봐.”여자아이는 깡충깡충 뛰어갔다.“어르신, 닭 다리 다 구워졌어요?”여자아이는 전씨 할머니가 자신에게 닭 다리를 주려고 부른 줄 알았다.전씨 할머니는 여자아이를 안아 올리며 웃었다.“아직 다 안 구워졌어. 조금만 기다리면 먹을 수 있을 거야.”“그런데 왜 양씨 아저씨의 자리를 잇고 싶다고 했지?”전씨 할머니가 여자아이를 예뻐한다는 건 리조트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사실이었다. 전씨 가문은 몇 대째 아들만 태어났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딸을 가지길 원했었고, 그것이 안 되자 손녀를 기대해 보았지만, 매번 실망으로 마무리되었다.할머니는 이제 증손녀를 기대해 보기로 생각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증손녀를 안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할머니는 종종 직원들에게 집에 여자아이가 있으면 관성으로 데려와 학교도 보내고 같이 생활하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리조트에 있는 놀이공원에 놀러 오라고도 했었다. 그것은 할머니가 여자아이들이 리조트에 놀러 오게 되면 손주며느리들이 그 모습을 보고 할머니한테 증손녀를 안겨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양씨 아저씨는 참 멋있는 사람이에요. 많은 사람들을 관리하고 돈도 많이 벌잖아요. 양씨 아저씨가 사는 집도 아주 예뻐요. 저도 양씨 아저씨처럼 되고 싶어요.”그 여자아이는 겨우 세 살밖에 안 됐지만 머리가 총명하고 말도 잘해서 가끔 그 여자아이가 하는 말을 들으면 어른들이 놀랄 정도였다. 게다가 여자아이는 부모도 가르친 적이 없는 말을 스스로 내뱉곤 했었다.우빈이도 가끔 서원 리조트에 올 때마다 리조트에서 내려와 그 여자아이와 함께 신나게 놀곤 했었다. 그렇지 않을 때는 여자아이가 리조트에 올라와 우빈이와 함께 놀기도 했었다.“아까 양씨 아저씨가 한 말 잘 들었지? 네가 컸을 때는 양씨 아저씨는 이미 은퇴하고 다른 사람이 저 자리에 있을 거야. 그 사람이 은퇴한 다음에야 네 차례가 오게 돼. 그보
할머니는 함께 있는 몇몇 친구들에게 말했다.“날씨가 좀 쌀쌀하네. 우리 따뜻하게 몸도 데울 겸 한 잔씩 할까?”“어르신.”전씨 할머니가 술을 마시자고 하자 양씨 아저씨는 바로 할머니를 제지했다.“어르신 술 마시면 안 됩니다. 큰 도련님께서 아시면 또 어르신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다며 저를 혼내실 거예요.”“양 집사가 말하지 않으면 누가 알겠어?”“태윤이는 점점 자기 할아버지를 닮아가는 것 같아. 온갖 걸 다 간섭하려 들어.”할머니는 손자인 전태윤이 자신을 간섭하려 든다며 투덜거렸다.그러자 함께 있는 몇몇 할머니들이 웃기 시작했다.“큰 도련님께서 어르신 건강이 걱정돼서 그러는 거죠. 저희 나이에는 술도 적게 마시는 게 좋잖아요.”“과일주는 괜찮아. 양 집사, 가서 과일주 두 병 가져와. 바비큐에는 술이 있어야 제맛이지.”양씨 아저씨는 더 이상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하고 리조트에 전화해서 과일주 몇 병을 가져오도록 했다.그들이 직접 잡은 생선 외에도 양씨 아저씨는 몇몇 어르신들이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바비큐용 식재료를 다양하게 준비했다. 어르신들 옆에는 아직 유치원에 들어가지 않은 어린아이들도 있었고, 양씨 아저씨는 그들을 위해 과일 주스를 준비해 두었다. 덕분에 그들은 기분 좋은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전씨 할머니는 이렇게 노인과 아이들이 함께 있는 따뜻한 분위기의 생활을 참 좋아했다. 게다가 내년엔 첫 증손주가 태어나니 할머니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졌다.할머니는 자신이 구운 소시지 한 꼬치를 여자아이에게 건네주고 그 아이의 높게 올려 묶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우리 소령이 갈수록 예뻐지네. 반짝이는 눈 좀 봐. 네 엄마가 너를 ‘소령이’라고 부르는 게 딱 맞아.”그 여자아이는 소시지를 건네받으며 귀엽게 인사했다.“감사합니다, 어르신.”전씨 할머니는 인자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또 뭐 먹고 싶어? 할머니가 구워줄게.”“닭 다리요.”여자아이는 전씨 할머니가 익숙한 듯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전씨 할머니에게 닭 다리를 구워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