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는 예훈이가 그리웠던 모양이다. 아직 돌아오시기 전에 하루에도 수천 번씩 정겨울과 영상 통화를 하시며 예훈을 보려고 했다.정겨울은 귀찮다고 그냥 예훈을 산속으로 데려가서 키우라고 했다. 어차피 신의도 아이 키운 경험이 있으니까.정겨울도 신의의 손에서 자랐기 때문에 확실히 육아 경력이 있었다.하지만 예준일이 거절했다. 예훈이가 울보라 종종 그를 골치 아프게 하지만 누가 뭐래도 친아들이었기 때문에 예훈을 무척 아꼈다. 또한 신의가 사는 곳이 너무 추웠기에 어린 예훈이 견디기 힘들 거라면서 말이다.사실이었다. 신의가 생활하는 곳은 거의 세상과 단절되어 있었고 봄, 가을, 겨울 내내 줍고 여름에만 조금 따뜻했다. 지금도 눈이 펑펑 내리는 계절이라 신의는 매일 아침 눈을 치우며 용정에게 지식을 가르쳤다.추운 날씨에 무공 연습하는 이런 힘든 삶은 어린 예훈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려울 것이다.용정은 자신이 매일 운동량이 많아서 추위를 견딜 수 있지만 어린 예훈 동생이 견디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용정은 자신이 또래 중에서 제일 고생하는 아이라고 생각했다.우빈이가 얼마나 부러울까.우빈은 부모님이 헤어지셨지만 이모와 이모부의 사랑 속에서 행복하게 자라고 있다.용정도 양부모님 가족의 사랑을 받고 있고 신의 외 다른 할아버지들도 모두 아껴주셨지만 그의 친부모님은 하늘나라로 가셨다.나이는 어리지만 용정이가 자란 환경과 주변의 전설적인 고수분들 덕에 녀석은 많은 걸 배웠다.용정은 가족들을 전부 잃고 유모 아주머니가 데리고 도망치다가 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잃으셨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모연정이 용정을 주워 왔을 때 용정은 말도 제대로 못 했다.“나도 너의 스승님이 보고 싶어.”우빈은 예진 리조트에 가서 신의 할아버지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장난기 많은 할아버지에 대한 인상이 아주 좋았다.용정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스승님은 예훈 동생만 생각하시거든. 난 너도 생각하고 동생들도 생각하는데. 얼른 샤브샤브를 먹으러 가. 네가 오면 내
모연정이 웃으며 말했다.“그래, 내일 옷 사러 가면서 선물도 사자.”그녀는 용정 대신 선물값을 내주겠다는 말은 일부러 하지 않았다.용정은 이미 자신만의 작은 금고가 있어 돈이 부족하지 않았고 아이에게 작은 금고 관리를 맡긴 이상 스스로 돈을 내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우빈에게 줄 선물이니 당연히 그가 계산해야 했다.“우빈한테 뭘 선물하면 좋을까요?”용정은 모연정에게 묻는 듯 혼잣말하는 듯 중얼거렸다.모연정이 부드럽게 답했다.“우빈이 좋아하는 거로 골라야지.”용정은 고민에 빠진 표정으로 말했다.“우빈은 먹는 걸 제일 좋아해요. 장난감은 이미 너무 많아서 다 갖고 있는 것 같았어요.”“그럼 음식 선물을 준비하면 되겠네.”“우빈은 입에 들어가는 건 뭐든 잘 먹어요. 죽지만 않는 음식이면 다 좋아하는데. 그러면 선물을 엄청 많이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용정은 그의 가여운 표정으로 모연정을 올려다보았다.막상 말로는 “제가 낼게요”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모연정이 대신 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사공과 모연정, 그리고 예준성도 그에게 가르치기를 장차 대장부가 될 사람으로서 약속을 어기면 안 된다고 했다.‘아! 분명히 대장부가 되면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했지! 난 아직 어리니까 지금은 약속을 안 지켜도 되는 거 아닐까?’용정의 검은 눈동자가 말랑말랑 굴러갔다.하지만 모연정의 따뜻한 미소를 보자 결국 “돈 대신 내주세요”라는 말은 삼켰다. 그건 자신의 뒤통수를 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니까.그때 문득 생각이 났다. 신의와 함께 돌아오기 전에 평소 할아버지, 할머니라 부르던 사공의 친구들이 선물을 잔뜩 줬던 것이 떠올랐다.스케치북이나 받아쓰기 노트 등을 선물 받았는데 방학 동안 다 완성하고 새해에 돌아가면 검사할 거라고 했다. 완성하지 못하면 새해에 세뱃돈을 안 준다고...할아버지들이 주는 세뱃돈은 유난히 두둑했다.돈을 벌어야 한다!신의기 늘 말씀하시길 용정은 커서 돈이 많이 필요할 테니 벌 줄도 알아야 하고 번 돈으로
관성의 10월 날씨는 여전히 덥고 아침과 저녁에만 늦가을의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하예정은 아침 일찍 일어나 언니네 세 식구에게 아침 식사를 차려준 뒤 주민등록증을 챙겨 조용히 떠났다."오늘부터 우리 더치페이로 해, 생활비든, 주택 대출이든, 자동차 대출이든 모두 더치페이로 해! 여동생도 우리 집에 얹혀사니 절반쯤을 내놓으라고 해, 한 달에 30여만 원을 주면 뭐 해? 공짜로 먹고사는 거랑 뭐가 다른데? ”어젯밤 언니와 형부가 다퉜을 때 그녀가 형부에게 들은 말이다.언니 집에서 나가야 해!하지만 언니를 걱정시키지 않으려면 방법은 단 하나, 누군가에게 시집을 가는 것뿐....예정은 비록 남친도 하나 없지만, 단기간에 시집을 가기 위하여 우연히 구한 적이 있는 전씨 할머니의 부탁을 듣고 결혼이 어렵다는 큰 손자 전태윤에게 시집을 가기로 했다.20분 후, 그녀는 구청 입구에서 내렸다.”예정아.”차에서 내린 그녀은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는데 전씨 할머니셨다.”전 할머니.”빠른 걸음으로 다가간 예정은 전씨 할머니 옆에 서 있는 키가 크고 차가워 보이는 한 남자에게 눈길이 끌렸는데, 바로 그녀의 결혼 대상인 전태윤이 아닐까 싶다.가까이 다가간 그녀는 태윤의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전씨 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큰 손자인 태윤은 서른이 다 되도록 여자 친구 하나 없어 자신을 크게 걱정시킨다고 했었다. 예정은 아마도 매우 못생긴 남자이리라 추측했었다.들은데 의하면 어느 큰 그룹의 경영자로 수입도 아주 높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지금 직접 만나보고 나서야 자신이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차가워 보이는 성격으로, 전씨 할머니 옆에 서서 어두운 얼굴로 마치 낯선 사람 접근 금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시선을 살짝 돌려 보니, 멀지 않은 곳에 검은색 승용차가 한대 서 있었다. 다행히도 억대의 고급차는 아닌 보통 수준의 자가용이었다. 이를 본 예정은 그녀와 태윤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고 느껴졌
"약속하였으니 지킬게요."예정도 며칠을 고민한 끝에 결정을 내린 거라 다시 후회할 생각은 없었다.태윤은 이 말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주민등록증를 꺼내 앞에 내놓았다.예정도 마찬가지로 주민등록증을 꺼내 놓았다.두 사람은 10분도 채 되지 않는 사이에 재빠르게 결혼 절차를 밟았다.혼인 신고가 끝나자 태윤은 바지 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해둔 열쇠를 꺼내 예정에게 건넸다. "주택은 발렌시아 아파트구에 있는데 할머니한테서 관성 중학교 입구에 서점을 차렸다고 들었어, 그쪽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깐 버스로 십여 분이면 갈 수 있을 거야.""운전면허증은 있어? 운전면허가 있으면 차 한 대를 제공해 줄게, 계약금은 내가 내줄 테니 매달 차 대출금을 갚아, 차를 가지고 다니면 출퇴근이 편할 거야.""나는 일이 바빠 보통 아침 일찍 나가고 저녁 늦게 들어와, 그리고 때로는 출장을 가기도 하는데, 자기 절로 제 몸만 잘 챙기면 돼. 생활비는 매달 10일에 급여 받으면 넘겨줄게.""그리고 시끄럽지 않게 결혼한 사실은 잠시 비밀로 해줘."태윤은 회사에서 남을 부리는 게 습관이 됐는지 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연달아 분부하였다.예정이 초고속 결혼을 한 이유는 언니가 형부와 다투는 것을 원치 않아 하루빨리 결혼하여 언니 집에서 나와 언니를 안심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녀에게 이 결혼은 그저 계약 결혼에 지나지 않았다.태윤이 집 열쇠를 주자 예정은 사양치 않고 열쇠를 건너 받았다."운전면허증은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당분간은 차를 살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제가 평소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하고 다녔었는데 금방 새 오토바이로 바꿨어요."“저기...... 태윤씨, 우리도 생활비를 더치페이로 할까요 ?"언니와 형부는 좋은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형부가 더치페이란 말을 꺼내는 걸 보면...... 아마도 형부는 언니가 자신을 이용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것 같다.아이 하나 잘 돌보고, 장보고, 밥하고 거기에 집 청소까지 하는 데 시간이
"네, 할머니."비록 전씨 할머니가 평소 잘해주긴 하지만, 아무래도 태윤이는 친손자이고, 자기는 그저 손자며느리에 불과한데, 혹여 갈등이 발생하면 며느리 편을 들어주기나 할까?예정은 전혀 믿지 않았다.마치 언니의 시부모들처럼 말이다.결혼 전에 그들도 언니에게 친딸이 질투할 정도로 엄청나게 잘해주었지만.... 결혼 후엔 태도가 확 달라지더니 언니랑 형부가 갈등이 있을 때마다 시어머니는 언니에게만 아내노릇을 잘 하지 못한다고 비난했다.아들은 언제나 한집 식구이고, 며느리는 그냥 남인 것이다."이제 출근하러 가야겠네? 그럼 할머니는 그만 가 볼게. 그리고 저녁에 태윤이한테 데리러 가라 할게, 같이 밥이라도 먹자""할머니, 제가 가게 문을 늦게 닫아서 아마 식사는 어려울 것 같아요. 주말은 어떨까요?"주말에 학교가 쉬면 학교에 의존하여 먹고사는 서점들은 장사가 잘되지 않는다. 그래서 주말엔 문을 닫아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전씨 할머니는 그 말을 자상하게 받아주셨다."그럼 주말에 다시 보자, 먼저 일 보거라."그러고는 먼저 전화를 끊었다.예정은 바로 가게로 가지 않고, 먼저 절친인 심효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점심에 학생들이 학교에서 나오기 전에 가게로 돌아간다고 했다.인생의 큰일을 해결한 예정은 아무래도 돌아가서 언니에게 말하고 나서 언니의 집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십여 분 후,언니의 집에 도착했다.형부는 이미 출근하였고 언니는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고 있었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온 것을 본 언니는 걱정되는 듯 물었다."예정아, 왜 벌써 돌아왔어? 오늘 가게 안 열어?""점심때 다시 갈 거야, 점심때가 가장 바빠. 우빈인 아직 안 깼어?주우빈은 예정의 조카로 이제 막 두 살이 된 장난꾸러기이다."아직이야. 그 녀석이 깨어나면 집안이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어."예정은 언니를 도와 옷을 널면서 어젯밤에 일었던 일을 조심스레 물어봤다.“예정아, 형부가 널 쫓아내려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가 너무
"언니, 그건 태윤의 개인재산이야, 나는 한 푼도 내지 않았어, 공동소유라니 이건 말도 안 돼."혼인신고를 하지 마자 태윤은 집 열쇠를 주었고 이로하여 즉시 이사하여 더는 형부의 눈치를 보며 살지 않게 된 예정은 이걸로도 아주 만족하고 있다.그녀는 태윤에게 먼저 공동소유를 제안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만일 태윤이가 먼저 제안하면 거절할 생각도 없고 말이다. 이제 부부인 만큼 평생 함께 살기로 결심했다.예진도 그저 한번 말해보았을 뿐이다. 동생은 이런 것들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이렇게 묻고 답하면서 잠시 뒤에야 예정은 언니의 집에서 이사를 할 수가 있었다.언니는 발렌시아 아파트까지 데려다주려고 하였지만 그때 마침 조카 우빈이 깨어나 울면서 엄마를 찾았다."언니, 먼저 우빈이부터 챙겨, 물건이 그리 많지 않으니 혼자 갈 수 있어"예진은 아들에게 밥을 먹여줘야 하고, 그러고 나서 또 점심 식사도 준비해야 했다. 남편이 점심에 돌아올 때 식사가 차려져 있지 않으면 또 집에 있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나무랄 것이다."그럼 조심해서 가 알았지? 점심은 어떡할래? 네 남편 불러다 같이 먹을까?""언니, 나 점심엔 가게로 돌아가야 해, 태윤인 일이 바빠서....오후엔 출장 가야 한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시간이 좀 지나야 언니 만나러 올 수 있을 것 같아."예정은 거짓말을 했다.태윤에 대해 아직 잘 모르지만, 전 할머니의 말에 의하면 태윤은 일이 바빠 아침 일찍 나가 저녁 늦게 돌아온다고 한다, 때로는 출장을 가는데 한번 출장을 가면 열흘이나 보름이 지나서 돌아온다고 한다. 예정은 태윤이 언제 시간이 될지 몰라 언니랑 약속을 잡을 수 없었다."오늘 혼인신고 하자마자 출장을 가다니...."예정은 태윤이 동생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었다."우린 그냥 신고만 하였지 아직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잖아, 출장 가서 돈 많이 벌면 좋지 뭐....앞으로 돈 쓸데도 많아질 거야. 언니, 나 먼저 가
태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회의를 계속했다.태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앉은 사람은 그의 큰 동생이자 전씨 가문의 둘째 아들인 전혁진이다. “형, 나 할머니한테 말씀 들었어. 정말 그 뭐 예정이라는 여자랑 결혼한 거야?”태윤은 전혁진을 힐긋 보았다.혁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코를 쓰다듬더니 감히 다시 묻질 못했다.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큰형에게 많은 동정을 베풀었다.전씨 가문의 아들들은 이익을 위하여 혼인 관계를 맺을 필요는 없지만 형님과 형수님은 차이가 너무 났다. 단지 할머니가 그 예정이라는 여자를 좋아하셨기 때문에 형님과 결혼시켰을 뿐이다. ‘형님도 참 불쌍하지....’진혁진은 마음속으로 다시 큰형에게 동정을 베풀었다.‘다행히 맏손자가 아니라서....그렇지 않으면 할머니 은인이랑 결혼해야 할 사람은 나 일거야.’예정은 집 주소를 똑바로 물은 뒤 캐리어를 끌고 새집을 찾아갔다.문을 연 후, 집으로 들어갔는데 집은 언니 집보다 더 컸고 인테리어도 매우 화려했다.예정은 캐리어를 내려놓고 먼저 집을 한 번 쭉 둘러보았다. 앞으로는 이 집이 예정이 살아갈 곳이다.거실 두 개, 방 네 개, 주방 하나 그리고 베란다 두 개....모든 공간이 다 널찍하였다. 그녀는 이 집이 적어도 200평 이상이 될 거라 추측했다.그런데 가구는 거의 없었다. 로비에는 소파 하나, 티 테이블 하나, 그리고 수납장만 하나 달랑 있었고, 네 개의 방에서 두 개의 방에만 침대와 옷장이 있고 다른 두 개의 방은 텅 비어 있었다.안방은 침실과 작은 드레스룸, 그리고 작은 서재와 화장실로 나누어져 있었다. 비록 공간이 나누어져 있었지만, 면적은 매우 커서 거의 로비 면적이랑 비슷했다.이 방은 태윤의 방인 것 같다.예정은 베란다 옆에 있는 침대가 있는 다른 방을 선택했고, 햇살도 좋고 안방과 거리도 두어 개인 공간을 유지할 수 있었다.비록 혼인 신고를 했지만 예정은 태윤이 먼저 스킨십을 요구하지 않는 한 절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으리라 생각
예정은 웃으면서 말했다. "너 사촌 오빠 이미 여자친구 있잖아, 내가 왜 찾아? 이미 혼인신고 했으니 이제 후회해도 소용없어! 다만 언니가 슬퍼하지 않도록 비밀은 지켜줘....”"…..."’이 친구는 정말 용기가 대단한 것 같아.’"소설 속 여주인공들은 모두 억만장자와 결혼했는데, 너의 남편도 억만장자 아니야?""우리 가게 소설 너 혼자서 다 읽었지? 꿈꾸고 있네, 아무나 억만장자와 결혼할 수 있는 줄 알아?"효진은 친구가 하는 말이 맞는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물었다."네 남편 어디에 집을 샀어?" ”발렌시아 아파트.”"거기 좋네, 환경도 좋고 교통도 편리하고, 우리 가게에서도 그리 멀지 않아. 관성에서 발렌시아 아파트 같은 고급 동네에다 집을 살 수 있다니, 네 남편 어느 회사에 다니는데? 수입은 분명 높을 거야, 할부금은 얼마야? 너도 함께 주택 대출 갚아야 하는 거야?""예정아, 만약에 남편이 너에게 주택 대출금을 함께 갚아달라 그러면 집문서를 꼭 공동소유로 해야 해 알았지? 그렇지 않으면 정말 큰 손실을 입을 거야. 만약에 이혼이라도 하게 되면 그 집은 개인재산이라 너랑 큰 관계가 없단 말이야.”"너 언니와 비슷한 생각을 하네....그 집은 대출 없이 산 거라 대출금도 없고, 나도 돈 한 푼도 쓰지 않았어. 그래서 공동소유는 무리야." "뭐, 부부 사이가 좋으면야 이런 것들은 상관없다 이거야."예정은 갑자기 언니가 걱정 났다. 언니가 현재 살고 있는 집도 형부가 결혼 전에 산 거고, 주택 대출금도 형부가 갚고 있지만 인테리어 비용은 전부 언니가 지불했었다. 그런데도 형부는 아직 그 집을 언니와 공동소유로 하지 않았다. 게다가 요즘 형부가 자꾸 언니를 비난하는데....예정은 더욱 걱정되었다.나중에 기회가 되면 언니한테 주의하라 할 생각이었다.예정은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가게 문을 닫았다.효진의 집은 가게에서 매우 가깝고 저녁에 친척들이랑 약속이 있어 일단 먼저 보냈고, 서점 문을 닫은 예정은 바지
모연정이 웃으며 말했다.“그래, 내일 옷 사러 가면서 선물도 사자.”그녀는 용정 대신 선물값을 내주겠다는 말은 일부러 하지 않았다.용정은 이미 자신만의 작은 금고가 있어 돈이 부족하지 않았고 아이에게 작은 금고 관리를 맡긴 이상 스스로 돈을 내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우빈에게 줄 선물이니 당연히 그가 계산해야 했다.“우빈한테 뭘 선물하면 좋을까요?”용정은 모연정에게 묻는 듯 혼잣말하는 듯 중얼거렸다.모연정이 부드럽게 답했다.“우빈이 좋아하는 거로 골라야지.”용정은 고민에 빠진 표정으로 말했다.“우빈은 먹는 걸 제일 좋아해요. 장난감은 이미 너무 많아서 다 갖고 있는 것 같았어요.”“그럼 음식 선물을 준비하면 되겠네.”“우빈은 입에 들어가는 건 뭐든 잘 먹어요. 죽지만 않는 음식이면 다 좋아하는데. 그러면 선물을 엄청 많이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용정은 그의 가여운 표정으로 모연정을 올려다보았다.막상 말로는 “제가 낼게요”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모연정이 대신 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사공과 모연정, 그리고 예준성도 그에게 가르치기를 장차 대장부가 될 사람으로서 약속을 어기면 안 된다고 했다.‘아! 분명히 대장부가 되면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했지! 난 아직 어리니까 지금은 약속을 안 지켜도 되는 거 아닐까?’용정의 검은 눈동자가 말랑말랑 굴러갔다.하지만 모연정의 따뜻한 미소를 보자 결국 “돈 대신 내주세요”라는 말은 삼켰다. 그건 자신의 뒤통수를 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니까.그때 문득 생각이 났다. 신의와 함께 돌아오기 전에 평소 할아버지, 할머니라 부르던 사공의 친구들이 선물을 잔뜩 줬던 것이 떠올랐다.스케치북이나 받아쓰기 노트 등을 선물 받았는데 방학 동안 다 완성하고 새해에 돌아가면 검사할 거라고 했다. 완성하지 못하면 새해에 세뱃돈을 안 준다고...할아버지들이 주는 세뱃돈은 유난히 두둑했다.돈을 벌어야 한다!신의기 늘 말씀하시길 용정은 커서 돈이 많이 필요할 테니 벌 줄도 알아야 하고 번 돈으로
신의는 예훈이가 그리웠던 모양이다. 아직 돌아오시기 전에 하루에도 수천 번씩 정겨울과 영상 통화를 하시며 예훈을 보려고 했다.정겨울은 귀찮다고 그냥 예훈을 산속으로 데려가서 키우라고 했다. 어차피 신의도 아이 키운 경험이 있으니까.정겨울도 신의의 손에서 자랐기 때문에 확실히 육아 경력이 있었다.하지만 예준일이 거절했다. 예훈이가 울보라 종종 그를 골치 아프게 하지만 누가 뭐래도 친아들이었기 때문에 예훈을 무척 아꼈다. 또한 신의가 사는 곳이 너무 추웠기에 어린 예훈이 견디기 힘들 거라면서 말이다.사실이었다. 신의가 생활하는 곳은 거의 세상과 단절되어 있었고 봄, 가을, 겨울 내내 줍고 여름에만 조금 따뜻했다. 지금도 눈이 펑펑 내리는 계절이라 신의는 매일 아침 눈을 치우며 용정에게 지식을 가르쳤다.추운 날씨에 무공 연습하는 이런 힘든 삶은 어린 예훈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려울 것이다.용정은 자신이 매일 운동량이 많아서 추위를 견딜 수 있지만 어린 예훈 동생이 견디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용정은 자신이 또래 중에서 제일 고생하는 아이라고 생각했다.우빈이가 얼마나 부러울까.우빈은 부모님이 헤어지셨지만 이모와 이모부의 사랑 속에서 행복하게 자라고 있다.용정도 양부모님 가족의 사랑을 받고 있고 신의 외 다른 할아버지들도 모두 아껴주셨지만 그의 친부모님은 하늘나라로 가셨다.나이는 어리지만 용정이가 자란 환경과 주변의 전설적인 고수분들 덕에 녀석은 많은 걸 배웠다.용정은 가족들을 전부 잃고 유모 아주머니가 데리고 도망치다가 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잃으셨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모연정이 용정을 주워 왔을 때 용정은 말도 제대로 못 했다.“나도 너의 스승님이 보고 싶어.”우빈은 예진 리조트에 가서 신의 할아버지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장난기 많은 할아버지에 대한 인상이 아주 좋았다.용정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스승님은 예훈 동생만 생각하시거든. 난 너도 생각하고 동생들도 생각하는데. 얼른 샤브샤브를 먹으러 가. 네가 오면 내
샤브샤브 가게로 가는 길에 하예정은 모연정이 걸어온 전화를 받았다.전화를 받자마자 예지호의 옹알이가 들려왔다.“연정 씨, 예지호는 뭐 하고 있어요?”하예정이 웃으며 물었다.모연정은 아들을 안고 전화를 들고 있었다.“제가 전화하는 걸 보고 핸드폰 뺏으려고 난리에요. 안 주니까 소리 지르면서 어찌나 보채는지...”하예정은 빙그레 웃으며 말을 건넸다.“소리 나는 장난감 핸드폰 사주면 좋을 텐데.”“있어요. 그런데도 진짜 핸드폰 보면 달려들어요. 아마 저의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나 봐요.”모연정이 물었다.“예정 씨는 밥 드셨어요?”그리고는 옆에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지호 좀 데리고 나가서 놀아줘요. 전화하기가 불편해요.”예지호는 울거나 소리 지르기 바쁜 울보였다. 예준일의 아들만큼이나 말이다.보모가 예지호를 데려갔고 별로 울지도 않는 예지연은 이미 다른 사람의 품에 안겨 있었다.순하고 얌전한 예지연은 특히 사랑받았다. 예씨 가문에서 드문 여자아이였기 때문이다.“우리는 지금 샤브샤브 먹으러 가는 길인데 연정 씨가 드물게 전화를 다 거네요. 제가 보고 싶었어요?”모연정이 웃으며 대답했다.“당연히 보고 싶죠. 근데 예정 씨가 안 오잖아요. 저도 가고 싶지만 이 두 꼬마를 데리고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단 말이에요.”예지연은 영리했다. 모연정이 외출하려 하면 쌍둥이 오빠 예지호를 쿡쿡 찔러 울게 했다.몇 달밖에 안 된 아기가 말은 못 해도 엄마를 부르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그런 일이 몇 번 있고 나니 모연정은 예지연이 울기만 하면 자기를 따라 나가고 싶어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여 외출할 때 두 아기를 함께 데리고 가게 되면 예지연은 한 번도 울지 않았다.모연정은 가능하면 두 아이를 모두 데리고 나갔고 보모까지 데리고 나가 아기들을 돌보게 했다. 하지만 혼자 나갈 때보다는 불편하고 자유롭지 못한 건 사실이었다.“우빈이 옆에 있어요?”“있죠. 우빈이 찾으려고요? 용정이도 돌아왔어요?”모연정은 보통 우빈을 특별히 찾지
아이들의 이야기가 나오니 도아영은 대화에 끼지 못했다. 결혼도 안 한 그녀에겐 너무 먼 이야기와도 같았다. 목표는 있지만 결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한참 수다를 떨던 중에 학생들이 학교 끝나면서 서점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우빈은 계산대 안쪽에서 놀고 세 어른은 바쁘게 일했다.해가 저물고 학생들이 야간자습을 위해 떠나자 하예정이 제안했다.“우리 같이 저녁 먹으러 갈까?”“나는 샤브샤브를 먹고 싶어.”심효진이 먼저 의견을 냈다.하예정이 눈살을 찌푸렸다.“또 샤브샤브? 요즘 너무 그거만 찾는 거 아니야?”“겨울엔 원래 샤브샤브가 제법이지.”도아영은 너그럽게 받아들였다.“저는 상관없어요. 언니들이 원하는 대로 따라갈게요.”“배가 큰 임산부 의견을 존중하자. 샤브샤브 먹으러 가는 거로.”하예정이 결정하자 심효진이 빙긋 웃었다.“너도 임산부잖아. 네 배 속의 아기가 나보다 한 달 정도 늦은 것뿐이거든.”“한 달이라도 늦으면 늦는 거야. 네 아기가 먼저 태어나도 내 아기는 아직 배 속에 있을 테니까.”하예정은 우빈의 가방을 챙기며 소리쳤다.“우빈아, 가자! 샤브샤브 먹으러 갑시다!”우빈은 기쁨에 들떠 있었다. 녀석은 사람들이 모여서 떠들며 먹는 것을 좋아했다.“이모, 이모부랑 정남 아저씨 그리고 동명 아저씨도 같이 가는 거죠?”계산대를 돌아 나오던 우빈은 본능적으로 하예정에게 안기려다 그녀의 배에 아기가 있다는 걸 떠올렸다. 그러더니 자기도 이제 커서 이모를 힘들게 해선 안 된다며 손을 내렸다. 그 순간 도아영이 우빈을 번쩍 들어 올렸다.“이모부네 바쁘대. 우리 넷만 가자.”우빈은 아쉬워했지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서점 문을 닫을 때 그녀들은 옆 가게 사장님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오랜 동네 상가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하예정과 심효진이 재벌가에 시집가는 걸 지켜본 증인들이었다.하예정 일행은 곧 차에 올라타고 떠나갔다.한 가게의 사모님이 감탄했다.“심효진 씨랑 하예정 씨는 정말 복도 많아요. 특히 하예정 씨는 정말 모두
하예정은 우빈을 유치원에서 데리고 나왔지만 바삐 돌아치고 있는 전태윤을 방해하지 않고 다시 서점으로 돌아왔다. 오늘 전태윤은 점심도 함께 못 먹을 정도로 정신없이 바쁜 날이었다.노동명 역시 바빴다.결국 하예정은 우빈을 데리고 다시 서점으로 향했다.도아영은 여전히 서점에 남아있었고 우빈이 들어오는 걸 보자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우빈아, 이리 와봐. 안아줄게.”우빈은 도아영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예정이 손을 놓자 녀석은 재빨리 도아영 앞으로 달려가 달콤한 목소리로 인사한 후 그녀의 품에 안겼다.우빈은 심효진에게도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우빈이가 키 큰 것 같은데?”심효진이 우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컸어. 몸무게도 좀 늘었고. 태윤 씨가 우빈에게 많이 먹어야 방학 때 친구들 싸움에서 지지 않는다고 알려주었거든.”하예정이 대답하자 심효진은 웃으며 덧붙였다.“그래, 많이 먹어야지. 키 크고 덩치 좋아야 상대방을 눌러버릴 수 있지.”“용정음 힘도 세요.”우빈이 진지하게 말했다.우빈은 용정이가 많은 면에서 자신보다 뛰어난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태윤이 말한 대로 모든 사람은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남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는 걸 배우고 있었다.“우빈아, 과일이랑 간식 있는데 먹을래?”도아영이 물었다.우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손가락으로 간식을 가리켰다.“먹을래요.”도아영이 간식을 주자 우빈은 조용히 그녀의 품에서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우빈은 정말 착하네요.”도아영은 아이를 내려다보며 하예정에게 말했다.“사실 저는 아이들을 별로 안 좋아해요. 시끄럽고 자꾸 울기만 하는 것 같아서. 근데 어제 우빈을 만나고 나니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우빈도 가끔 울긴 해. 하지만 금방 위로해주면 또 금세 그치긴 하지. 그리고 스스로 휴지를 가져와 눈물 닦는 걸 보면 너무 귀여운 거 있지. 우빈은 나를 닮아서 단 걸 좋아해. 지금은 좋아하는 간식 먹고 있으니 당연히 더 조용하고.”하예정이 말하자 도아영이 바로 웃으며 말을 이었
심효진의 배는 서서히 불러오고 있었다.하예정과 도아영이 펄펄 웃자 심효진은 잠시 당황하다가 그제야 상황을 이해하고는 하예정의 팔을 치며 말했다.“지금 날 놀리는 거지?”“어쨌든 아영이는 너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네. 쪼끔 살쪘대...”하예정은 포크로 과일을 찍어 친구 입에 넣어주며 빙긋 웃었다.심효진이 도아영을 힐끗 보며 농담을 던졌다.“나에게 잘 보일 필요 있어? 너 자신에게 잘 보이면 되잖아.”도아영은 전씨 가문의 넷째 사모님으로 될 사람이다. 전씨 가문 자체가 도아영의 든든한 후견인이 되는 셈이다.하예정이 눈치를 주자 심효진은 도아영과 전이혁 사이에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해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궁금한 점은 도아영이 간 후에 하예정에게 물어보기로 했다.오후 3시 50분, 하예정은 유치원에 우빈을 마중 나가야 했다.도아영은 따라가지 않고 서점에 남아 심효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소설을 좋아하는 심효진에게 책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하면서 말이다.심효진이 웃으며 물었다.“평소에 소설 볼 시간 있어?”심효진이 물었다.“잠들기 전에 잠깐씩 봐요. 책 읽으면 금방 졸려서 잠들기 좋더라고요.”“어떤 장르를 좋아해?”도아영은 잠시 망설이다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여자가 남자를 쫓는 내용의 소설도 있나요?”심효진은 눈썹을 치켜들며 전이혁과의 관계가 순탄치 않음을 짐작했다.“있기는 한데 대부분 작가가 여자가 쫓는 과정은 생략하고 얼렁뚱땅 넘어가더라고. 그러다가 남자 주인공의 첫사랑이 나타나면 바로 깨지고. 그리고 헤어지고 나서야 남자가 뒤늦게 사랑을 깨닫는 그런 내용은 있는데... 볼래?”도아영은 잠시 말없이 있더니 물었다.“처음부터 끝까지 여자가 적극적으로 쫓아서 결국 남자를 얻는 내용은 없나요?”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말했다.“아니면 그냥 여주인공 소설을 추천해주세요. 남자 없이 혼자 천하를 호령하는 진짜 강한 여자 이야기 말이에요. 겉으로만 강한 여자 이미지이지만 실제론 남자들이 다 해결해주는 가짜 소설은 싫어요.”심효진은 생각에
하예정은 과일을 들고 주방으로 들어가 씻기 시작했다.심효진은 도아영을 앉히며 물었다.“아영아, 차 마실래? 아니면 그냥 물?”도아영이 먼저 “효진 언니”라고 부르며 친근감을 보이자 심효진도 자연스럽게 이름을 불렀다.“따뜻한 물 한 잔만 주세요. 예정 언니의 사무실에서 커피 한 잔 마셨거든요. 밤에 잠 안 올까 봐 차는 마시고 싶지 않아요.”심효진은 그리운 듯 말했다.“나도 몇 달째 커피 못 마셨거든. 아침에 한 잔 마시고 하루를 버티던 때가 그립네. 나도 많이 마시면 잠 안 오더라. 그땐 가게에 나와서 한 잔 정도 마시면서 오후까지 버텼었는데. 그러면 저녁에 잘 때 영향받지도 않고.”심효진은 도아영에게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넸다.“관성에서 며칠쯤 놀다가 갈 계획이야?”심효진은 읽던 소설책의 펼쳐둔 페이지를 접어 표시한 후 덮었다.“이틀 후면 돌아갈 거예요. 회사 일도 바쁘고 해서요.”“연말이라 다들 바쁘긴 하지. 우리 서점은 다음 주면 잠시 문 닫고 방학 끝날 때까지 쉴 계획이야. 요즘은 겨울방학 문제집 사러 오는 학생들 때문에 좀 바쁘거든.”학교에서 숙제를 내주지만 학생들이 스스로 서점에서 직접 문제집을 사 가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학교는 통일로 구매해주기도 했다.“며칠 바쁘다가 학생들이 방학하면 같이 쉴 수 있어서 편하시겠어요.”도아영이 말했다.“해주시로 돌아가면 서점을 오픈할 만한 곳 찾아봐야겠어요. 나중에 은퇴하면 서점 가게나 차리면서 살까 봐요.”그녀 명의로 된 상가도 몇 군데나 있었다. 가장 큰 곳을 잘 장식해서 서점을 열어 작은 카페 공간도 마련하려 했다. 책 읽는 손님들이 커피 한 잔을 사서 마시면서 여유를 즐길 수 있게끔 말이다.도아영은 그런 삶이 정말 낭만적일 것 같았다.심효진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몇 살인데 벌써 은퇴 후 삶을 생각해?”도아영도 피식 웃었다. 심효진은 계속해서 말했다.“나도 게을러. 근데 소설도 좋아해서 예정이랑 함께 이 서점 열었어. 투자한 것도 있는데 지금은 배당금만 기다리는
하예정이 회사에 출근하면 그녀의 경호원들은 회사 주변을 맴돌며 지키고 있었고 하예정이 회사를 떠나는 순간 즉시 뒤따라 보호할 준비가 되어 있다.길에서 하예정은 심효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서점에 도착하자 심효진이 안에서 나와 하예정이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오늘은 안 오실 줄 알았는데... 우리 마님?”심효진은 차에서 내린 하예정의 팔을 친근하게 껴안으며 말했다.“바쁘긴... 진짜 바쁜 사람은 소현 언니지.”하예정이 웃으며 답하자 심효진은 미안한 표정을 드러냈다.“원래 우리 셋이 분담해야 할 일인데 지금은 대부분 소현 언니가 혼자 하고 있네.”도아영이 과일과 간식 봉지를 들고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심효진이 하예정에게 물었다.“예쁜 아가씨 한 분을 소개해 준다더니 사람은?”“저기, 지금 내리고 있어.”심효진은 도아영을 바라보았다.도아영은 당당하게 걸어와 자아 소개를 했다.“ 저는 해주시에서 온 도아영입니다. 갑작스럽게 찾아뵈어 죄송합니다.”심효진은 친구의 팔을 놓고 도아영과 악수를 한 뒤 그녀가 들고 있던 봉지를 건네받으며 말했다.“도아영 씨, 안녕하세요. 예정이가 저를 보러 온다고 아까 얘기해줬어요. 와주시기만 해도 고마운데 이렇게 많이 사 오시다니.”도아영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실은 제가 점심때 산 거예요. 예정 언니랑 같이 먹으려고 했는데 효진 언니를 보러 가자고 하면서 들고 오라고 하셨어요. 셋이 같이 먹으면 더 맛있을 것 같다면서요.”고아영은 당장에서 “효진 언니”라고 부르며 친근감을 표현했다.심효진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좋은 건 나누어 먹어야 제맛이지! 혼자 먹으면 살만 쪄.”심효진은 하예정과 눈길을 마주치며 도아영의 솔직한 성격에 호감을 느꼈고 그와 동시에 하예정이 부럽기만 했다. 시댁에 들어오는 동서마다 모두 좋은 사람들이라니...하예정의 동서들은 인품이 정말 훌륭했다.소정남의 형제들은 아직 결혼하지 않아 심효진은 앞으로의 동서 관계가 어떻게 될지 걱정되었다.다만 소지훈의 배우자가
“서점에 갈 거면 전부 가지고 가서 효진이랑 같이 먹자. 우리의 입맛이 서로 비슷하거든. 지금 효진은 나보다 더 잘 먹어. 배가 벌써 나왔으니까 아기가 영양분을 많이 필요로 하지. 하루에 몇 끼 더 먹는다니까.”도아영이 물었다.“그럼 살 많이 쪘어요? 우리 회사에서 임신하신 직원들을 보면 금방 살이 불어나시던데. 정말 많이 찌더라고요. 임신 초기엔 입덧으로 아무것도 못 먹다가 입덧이 끝나면 폭풍 흡입한다던데. 음식 조절 못 해서 살이 확 찐대요. 태아가 크면 엄마도 같이 살이 찐다고 하던데.”하예정이 급히 물었다.“나도 살쪄 보여?”하예정도 많이 먹는 편이었다.“아직 배가 많이 나오진 않으셔서 약간 통통해 보일 뿐이에요. 살쪘다고는 못하겠는데요.”하예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행히 일하고 있어서... 집에서 쉬었으면 진짜 돼지처럼 뚱뚱해졌을 거야.”하예정은 임신 중에도 일을 고집했다. 단순히 사업이 바쁜 것뿐만 아니라 집에서 먹고 자기만을 반복하다 보면 정말 돼지가 될 것 같아서였다. 그녀는 건강하고 무술 기본기까지 있어 일반 여성보다 상태가 좋은 편이라 8개월까지 일하다가 휴가를 계획하려고 했다.아이 낳고 나면 바로 운동 시작해서 원래 체중으로 돌아가야 한다.전태윤이 어떤 모습이 되든 영원히 사랑할 거라고 말했지만 하예정은 스스로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남자의 말은 가끔 듣기만 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과거 주형인도 하예진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하예진이 몸매 관리를 못 하자 바람까지 피웠다.“임신이 병도 아니고. 무거운 일만 안 하면 큰 문제 없어요. 우리 회사 여직원들도 대부분 8개월까지 일하시더라고요. 제가 아는 일 중독자 한 분은 9개월 넘게 일하다가 휴가를 내자마자 일주일 만에 아들 낳았대요. 아들이 석 달 되자마자 바로 출근했고요. 육아휴직을 반년까지 줬는데도 안 받더군요.”하예정이 말을 이었다.“안 받는 게 아니라 생활하기 위해서일 거야. 너무 오래 쉬면 자리를 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