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회진을 마친 후 간호사가 와서 전태윤에게 링거를 꽂았다.하예정은 옆에서 전태윤을 살뜰히 챙겼고 동권배는 약을 지은 후 약국에 가져가 달여달라고 했다.전태윤은 링거를 빤히 올려다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어떻게 하면 한약을 먹지 않아도 되지?’“태윤 씨, 왜 그래요?”전태윤이 멍하니 눈도 깜빡이지 않고 링거를 올려다보자 하예정이 걱정스럽게 물었다.“어디 아파요?”“예정아.”전태윤이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불쌍한 척했다.“다시 양약으로 바꾸면 안 돼? 나 한약 싫어, 너무 써.”“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하잖아요. 게다가 양약의 부작용이 심하다고 한 건 태윤 씨예요. 그러니 한약으로 바꾸는 수밖에 없죠.”하예정은 그가 잡고 있던 손을 빼고 재미있다는 듯이 그의 볼을 꼬집었다.“태윤 씨도 무서워하는 게 있네요.”전태윤은 다시 그녀의 손을 잡고 그윽하게 쳐다보았다.“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네가 내 곁을 떠나는 거야.”“됐어요, 연기 그만 해요. 아무리 불쌍한 척하고 그윽하게 쳐다봐도 소용없어요. 한약으로 바꿔 달라고 의사 선생님한테 얘기한 건 우리니까 아무리 써도 마셔야 해요.”전태윤은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그냥 확 한 번 더 쓰러질까?’소정남이 그를 걱정한답시고 아플 때 하예정의 보살핌이라도 받으라고 여기까지 데려온 건 고맙지만 그만큼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소정남이 그의 마음을 알았더라면 분명 이렇게 얘기했을 것이다.‘챙겨주는 아내가 있는 걸 고맙게 생각해. 난 솔로라서 아내 말 듣고 싶어도 들을 아내가 없어.”그동안 두 사람의 애정행각을 참고 참아왔던 소정남이었다.“사과 먹을래요?”하예정이 물었다. 평소 사과를 좋아하지 않았던 전태윤이지만 하예정이 과일 바구니에서 사과 하나를 꺼낸 걸 보고는 재빨리 말을 바꾸었다.“그냥 한 조각만 줘.”하예정은 사과를 깨끗이 씻은 다음 네 조각으로 자른 후 전태윤에게 한 조각 건넸다. 전태윤이 사과를 받으며 말했다.“왜 사과 껍질 안 깎아?”“난 계속 껍질째
하예정은 그에게 컵을 건네며 눈웃음을 지었다.“그럼 스스로 마셔요. 30살이나 돼서 이 정도 쓴 것도 못 마셔요?”‘태윤 씨가 한약 마시는 걸 싫어하는구나.’앞으로 그녀를 화나게 했을 때 아프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그가 조금이라도 몸이 안 좋다면 한약을 잔뜩 지어다가 그가 무서워할 때까지 맨날 달여 먹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그가 뾰로통한 얼굴로 아무 말이 없자 하예정은 그의 귓가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태윤 씨, 이 약 마셔요. 이 약 마시고 빨리 나아야 함께 첫날밤이라도 보내죠. 내가 이 먼 곳까지 와서 보살펴준 보람이라도 있게.”전태윤의 검은 두 눈이 반짝이더니 그녀에게 물었다.“이젠 허락한 거야?”하예정이 자세를 고쳐 앉고 방긋 웃었다.“태윤 씨가 퇴원할 때쯤이면 비슷할 것 같아요. 어쩔 거예요? 마실 거예요 말 거예요?”전태윤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망설이더니 결국 손을 내밀어 한약을 받았다. 그러고는 큰 결심이라도 내린 듯 두 눈을 질끈 감고 한약을 마셨다.마시는 와중에 속으로 연신 되뇌었다.‘이건 꿀물이야. 이건 꿀물이야. 독감이 다 나으면 예정이가 큰 상을 내려줄 거야.’하예정과 한층 더 가까워지고 싶었던 건 사실이었다. 특히 지난번 그녀에게 옷을 갈아입힌 후 잠도 제대로 자질 못 했다.아무런 표정 없이 억지로 한약을 벌컥벌컥 마시는 그를 보며 하예정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절반만 마시면 돼요. 나머지 절반은 저녁에 밥 먹고 마셔요.”그가 절반 정도 마신 걸 보고 하예정이 귀띔했다. 전태윤이 움직임을 멈추고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한꺼번에 다 마실게.”하루 한 번만 마시면 쓴 고통도 한 번이니 참을 수 있었다.말을 마친 전태윤은 계속하여 벌컥벌컥 마셨다.하예정은 말문이 막혀버렸다.‘하루 한 번만 마셔도 양이 충분하면 되겠지, 뭐.’그냥 한 번에 다 마시도록 내버려 두었다. 전태윤은 나머지 한약 찌꺼기는 도저히 못 마시겠다면서 찌푸린 얼굴로 하예정을 쳐다보았다.하예정은 그의 손에서 텀블
전태윤이 하예정을 먼저 사랑하게 되었고 사랑의 감정도 더 깊었다. 하지만 하예정은 고작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딘 상태라 언제든지 마음이 변할 수 있었다.전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와 하예정이 자주 싸우는 건 감정이 덜 깊은 것도 있겠지만 그의 성격과 습관 탓도 있었다.그는 하예정이 그를 위해 변하길 기대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그녀는 남자에게 완전히 기대는 여자가 아니었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절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법이 없었다. 어떤 일은 그에게 얘기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하여 그녀를 위해 변해야 하는 사람은 그였다.“왜 아무 말이 없어? 매번 할머니가 어떻게 예정이한테 잘해야 하고 감정을 키워나가는지 얘기할 때마다 입을 꾹 다물더라?”“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전태윤이 솔직하게 얘기하자 할머니가 말했다.“너 왜 이리 무뚝뚝해? 나머지 여덟 손자도 너처럼 이랬더라면 차라리 네 할아버지를 따라가려고 했을 거야. 따라가면 너희들 때문에 속 썩이지 않아도 되니까.”할머니의 아들과 며느리들도 사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손자들은 부모들이 무슨 얘기를 하든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흘릴 뿐 아예 귀담아들으려 하지도 않았다.하여 이 나이가 돼도 손자들의 혼사를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할머니는 자신이 전생에 중매쟁이일 거란 생각마저 들었다. 그것도 업무 능력이 별로인 그런 중매쟁이 말이다. 그러니 이번 생에 손자들의 혼사 때문에 속을 썩이지.“할머니, 제 일은 제가 알아서 잘할게요. 할머니는 증손녀 안기만 기다리세요.”“기다리다가 흰머리가 다 자라겠어.”“검은색으로 염색하면 되죠.”할머니는 어이가 없었다.“할머니 화를 돋우는 거 보니 괜찮은 모양이네. 이만 끊는다.”전태윤 때문에 화가 나서 남편을 만나러 저승에라도 갈까 두려웠다.할머니가 휴대 전화를 티테이블에 휙 던지자 휴대 전화가 미끄러지면서 바닥에 떨어지려 했다. 다행히 민첩한 전이진이 휴대 전화를 잡았다.“할머니, 새로 사신 휴대 전화잖아
하예진은 몸이 너무 뚱뚱한 탓에 드레스를 입지 않았다. 그녀에게 맞는 드레스가 없어 맞춤 제작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하지만 새 옷에 옅은 메이크업을 하고 이경혜가 선물한 액세서리까지 하고 나니 복스럽고 귀티가 줄줄 흘러넘쳤다.주우빈은 아동 양복을 입었다. 원래도 잘생긴 얼굴인데 양복까지 입으니 한층 더 멋져 보였다. 주우빈을 본 여자들은 저마다 한번 안아보려고 난리도 아니었다.주우빈은 처음에는 겁에 질린 듯하더니 곧장 잘 적응했고 두려움도 사라졌다. 사람들이 멋지다고 칭찬할 때마다 방긋 웃으며 고맙다고 했더니 오히려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말았다.“사모님, 노씨 가문 사모님과 넷째 도련님께서 오셨습니다.”한 도우미가 다가와 이경혜에게 말했다. 귀한 손님이 올 때마다 이경혜는 딸과 조카와 함께 직접 마중 나갔다.이경혜가 하예진의 손을 잡으며 환하게 웃었다.“예진아, 이모랑 노씨 사모님께 인사드리러 가자. 노씨 사모님은 노동명의 어머니셔. 노동명이 널 많이 도와줬었지?”이경혜가 간단하게 노씨 가문 사모님의 신분을 소개하자 하예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이경혜가 이번 파티를 여는 목적은 하예진네 두 자매를 소개하고 배후에 성씨 그룹이 있다고 관성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였다.이경혜는 딸과 조카와 함께 마중 나갔다가 마당 가운데서 별장으로 걸어오는 윤미라네 모자와 마주쳤다.“안녕하세요, 미라 씨. 안녕, 동명아.”“안녕하세요, 경혜 씨.”이경혜는 윤미라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반갑게 웃으며 맞이했다. 윤미라도 미소를 머금고 인사를 나누었다.평소였더라면 그들은 인사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노씨 가문과 전씨 가문의 사이가 가까우니까.오늘 밤 윤미라가 성씨 가문의 파티에 참석한 건 작은 아들도 참석하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내일의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윤미라는 호기심을 안고 성씨 가문 파티에 참석했다.그녀는 작은아들이 흔쾌히 동행하려는 원인을 알고 싶었다. 예전 같았으면 죽어도 어머니와 그 어떤 파티도 참석하지 않으려
주우빈은 또다시 엄마 뒤에 쏙 숨어버렸다. 하예진이 돌아서서 아들을 안으며 말했다.“우빈아, 이분은 동명 아저씨야. 전에 본 적이 있잖아.”주우빈은 노동명을 빤히 쳐다보았다. 평소 예의 바른 아이였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노동명을 절대 아저씨라고 부르지 않았다.“아이가 참 예쁘게 생겼네.”윤미라가 주우빈을 칭찬했다. 이경혜의 큰조카는 체구도 크고 뚱뚱하지만 아들은 참 잘생겼다고 생각했다.“동명아, 네가 무섭게 생긴 바람에 애가 놀라서 만지게 못 하는 거야.”윤미라가 작은아들을 디스했다.노동명이 사고로 얼굴을 다친 후 윤미라는 아들에게 성형수술을 하여 칼 흉터를 지우라고 권유했다. 그러면 예전의 잘생긴 얼굴로 다시 돌아오니까.하지만 노동명은 도통 말을 듣지 않았다. 그가 사고 났을 때 윤미라는 너무도 놀라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노동명은 그런 그녀의 마음도 모르고 성형수술을 아무리 권유해도 하지 않으려 했다.여러 해가 지났지만 칼 흉터는 여전히 선명했다.원래 잘생겼던 사람이 얼굴을 다치고 나서 35살, 아니, 곧 36살이 되는데도 여전히 싱글이다. 다른 집 아들은 이 나이에 벌써 애가 두셋이나 되는데 그녀의 아들은 장가갈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그런 노동명이 아이를 예뻐하는 모습을 본 윤미라는 이 기회를 놓칠세라 아들을 디스했다.노동명이 피식 웃었다.“우빈이가 절 자주 못 봐서 그래요. 앞으로 자주 보면 무서워하지 않을 거예요.”윤미라가 눈살을 찌푸렸다.“자주 본다고?”“예진 씨가 제 가게를 임대해서 토스트 가게를 오픈하려고 하거든요. 매일 아침 출근길에 그 길을 지나가는데 당연히 우빈이를 매일 보겠죠.”노동명이 설명했다.“사모님, 그럼 전 성 대표님한테 인사하러 가겠습니다.”성기현네 부부는 따로 다른 손님을 맞이하느라 어머니와 함께하지 않았다.이경혜가 다정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노동명은 성기현 쪽으로 걸어갔다.하예진을 힐끗거리던 윤미라의 두 눈에 언짢음이 섞여 있었지만 별다른 내색 하진 않고
“걱정하지 마, 노씨 사모님이 날 찾아오는 일이 없도록 할게. 너도 그만 진정해.”“언니는 너무 착해서 문제예요. 나 같았으면 그런 눈으로 날 쳐다봤다간 절대 가만 안 뒀어요.”하예진이 피식 웃었다.그녀와 성소현을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성소현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벌 집 딸이고 하예진은 일찍 부모를 여읜 외로운 딸인데.“아무튼 앞으로는 내가 언니를 지켜줄게요. 누가 언니한테 조금이라도 눈치를 주고 괴롭히면 당장 나한테 얘기해요. 내가 제대로 혼내줄 테니까.”“효진이 왔어.”심효진 남매를 본 하예진이 성소현에게 귀띔했다. 성소현은 그제야 하던 얘기를 멈췄다.심효진은 이번에도 남동생과 동행했다. 사실은 운전기사로 부려 먹을 생각이었다. 그러면 그녀는 파티에서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으니까.그런데 아쉽게도 하예정이 관성에 있지 않았다.“효진아.”하예진과 성소현이 그녀를 반갑게 맞이했다.“효진 씨, 왜 이제야 왔어요.”성소현이 가까이 다가가 심효진의 팔짱을 꼈다. 뭇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향하더니 심효진인 걸 알아보고는 수군거리기 시작했다.“김씨 사모님의 친정집 조카 아니에요? 오랜만에 보네요.”“성씨 사모님이 효진 씨가 만취해서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나 봐요. 그러니까 파티에 초대했겠죠. 지난번처럼 파티에서 드러누우면 어쩌려고.”“심효진 씨랑 성씨 사모님의 조카가 절친이래요. 초대하는 것도 당연하죠.”“우린 멀리 떨어져 있어요. 저런 사람과 가까이하면 오히려 우리가 놀림당해요.”심효진은 자신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많은 이의 이목을 끌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녀가 성소현에게 물었다.“내가 늦었어요? 초대장에 적힌 시간보다 일찍 온 것 같은데.”그러고는 하예진에게도 인사를 건넨 후 주우빈을 안으며 하예진을 칭찬했다.“예진 언니, 오늘 이렇게 입으니까 참 복스러워 보이네요.”“그냥 차라리 뚱뚱하다고 해도 괜찮아.”자신의 겉모습이 얼마나 뚱뚱한지 잘 알고 있었던 하예진은 다른 사람들의 경멸 어린 시선에 진작 익숙해졌고
하예진이 잔뜩 경계하기 시작하면서 싸늘하게 물었다.“누구한테서 들었어? 내가 결혼 후에 출근도 못 하고 아무런 수입도 없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많이 받아...”“네 시어머니가 그러더라. 예진아, 나 지금 사업이 잘 안 돼서 예전에 번 돈까지 전부 다 밑지는 바람에 자금이 부족하거든? 나한테 2억만 좀 빌려주라.”하예진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너털웃음을 지었다.인간의 얼굴이 아무리 두꺼워도 어떻게 이 정도로 두꺼울 수가 있지?그 집 식구들은 하예진네 자매에게 정말 지긋지긋하게도 달라붙는다.“지명 오빠, 오빠 얼굴이 얼마나 두꺼운지 거울 좀 봐봐. 우리 자매한테 뭘 잘해준 게 있다고 지금 뻔뻔스럽게 돈을 빌려달라고 해? 그래, 나한테 2억이 있어. 하지만 절대 안 빌려줘. 다른 사람한테 빌려줄지언정 오빠한테는 죽어도 못 빌려줘!”“이러지 마, 예진아. 아무리 그래도 난 네 사촌 오빠야. 그땐 너희 두 자매가 하도 고집을 부려서 네 남편 집에서 예물 돈도 주지 않고 널 데려갔잖아. 그래서 그 집 식구들이 네가 귀한 줄 모르는 거야. 나중에 재혼하면 꼭 남자 측에 예물 돈을 할아버지한테 드리라고 해.”“많은 돈을 주고 며느리를 들여야 귀한 줄 알고 함부로 버리지 않아. 너 지금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쓸데도 없잖아. 나한테 먼저 2억 빌려줘. 자금이 원활하게 돌아갈 때 그때 돌려줄게. 그리고 내 사업이 이 지경이 된 게 다 너희 두 자매 때문이야. 너희 둘이 그런 글을 올려서 내 명성만 망가뜨리지 않았어도 내 사업이 휘청거리지 않았어. 너희 때문에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맨날 적자만 나.”하예진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한 푼도 못 빌려줘!”“예진아...”하예진이 전화를 끊자 하지명은 냅다 욕설을 퍼부었다.“뭐래?”그의 아버지가 걱정스럽게 물었다.“예진이가 돈 빌려주겠대?”“아빠, 굳이 머리로 생각하지 않아도 걔가 안 빌려줄 거라는 걸 알겠어요. 아무리 관계가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누가 흔쾌히 2억이나 빌려주겠어요?”하지명이 짜증 섞인
그리고 하지문이 아무리 물어도 성씨 그룹 말고 또 누가 그들에게 복수하려는지 절대 얘기하지 않았다.하지문은 하예정네 자매의 배후에 있는 조력자라고 확신했다. 처음에는 성소현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지금 보니 성소현 말고 더 엄청난 사람이 두 자매의 배후에 있는 것 같다.그 사람이 대체 누굴까?누구길래 그가 관성에서 일자리 하나도 못 찾게 만든 걸까?충격받은 하지문은 자신감이 밑바닥을 드러냈다. 일단 할머니가 퇴원하신 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본가로 모시고 간 다음 구정이 지나서 다시 생각해봐야겠다.“그럼 어떡해?”하순재가 근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예정네 자매 뒤에 대체 누가 있길래 이리 엄청난 거야? 일자리도 잃고 사업이 내리막길을 걷잖아. 네 사업이 그리 큰 사업이 아닌데도 엄청난 영향을 받았어. 지명아, 할머니가 퇴원하신 후에 우리 다시 얘기해보자. 예정이 요구대로 진심으로 사과한다면 화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그들이 두 자매를 어떻게 모함하고 명성을 어지럽혔으며 인터넷 악플 세례를 당하게 했으면 그대로 똑같이 당해야 한다고 하예정이 말했었다.하지명이 머뭇거렸다.“상황이 이 지경이 됐는데 인터넷에 공개 사과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 그래? 인터넷에 공개적으로 사과한 다음에 귀한 선물도 준비해서 예진네 자매한테 찾아가자. 이번에는 우리 전부 성질을 죽이고 진심으로 사과해야 해. 걔네 둘이 더는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하면 아무 일도 없게 되는 거야.”하지명이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예진이랑 예정이 참 독한 애들이에요. 우리가 먼저 잘못한 건 사실이지만 이 정도까진 아니잖아요? 고작 인터넷에 글을 올려 댓글 알바를 구해서 악플 좀 달았을 뿐인데, 그리고 걔네들도 반격했잖아요. 요 두 달 우리도 힘들었고 손해가 엄청나단 말이에요. 이젠 비긴 거나 마찬가지인데 아직도 물고 늘어지네요. 우리를 벼랑 끝까지 내몰 생각인가 봐요.”하지명이 분통을 터뜨리며 말을 이었다.“걔네 둘 우리를 아직도 원망하고 그때 일을 기억하고 있어요. 아빠, 아무래도 걔네 둘이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