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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고성하
심하온은 그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노골적인 불만이 가득했는데 그것은 분명 심하온이 강다인의 체면을 구긴다고 비난하는 눈빛이었다.

강선우도 그녀가 위가 안 좋은 걸 알고 있었다.

얼마 전, 심하온이 복통을 겪었을 때, 그는 사람을 시켜 위장약을 가져다주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강다인이 건넨 술을 무조건 마시라고 한다.

심하온이 불편할지 말지 신경조차 안 썼다. 그에게 심하온의 컨디션은 강다인의 체면에 비할 바가 못 됐으니까.

강선우가 안 마시면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자 심하온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강다인의 술잔을 받아 단숨에 마셨다.

“이제 됐어요, 대표님?”

심하온은 술잔을 강선우에게 향하며 안이 비어 있음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그녀의 눈을 마주치자 강선우는 입을 열었지만 딱히 말을 잇지 못했다.

오히려 강다인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입가에는 도발적이고 의기양양한 곡선이 그려졌다.

“체면 살려줘서 고마워요, 심 비서님.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게요.”

심하온은 그녀를 무시했다. 강다인도 개의치 않고 승리자가 된 듯 강선우의 곁으로 돌아가 앉았다.

‘심하온, 봤어? 오빠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오직 나야.’

그녀는 마음속으로 의기양양했지만 심하온이 더 이상 이딴 걸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

술 한 잔을 마신 후, 위가 서서히 아프기 시작했다.

심하온은 오늘 속이 쓰려서 술을 마실 생각이 전혀 없었다. 동료가 권한 술잔도 단지 앞에 놓아두고 만지지도 않았는데 강다인이 술을 권하러 올 줄이야.

그 술의 도수는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위병을 앓고 있는 심하온에게는 독이나 다름없었다.

심하온은 이를 악물고 가방 속에서 약을 꺼내려 했지만 약상자를 찾지 못했다. 문득 약을 회사에 두고 왔다는 게 생각났다.

위통은 점점 심해졌고 동료들은 죄다 강다인과 강선우에게 시선이 쏠려 있었다. 심하온은 입술을 앙다물고 자리에서 일어나 룸 밖을 나섰다. 근처 약국에 가서 약을 사 먹어야만 해결될 듯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떠나가려 하자 강선우가 본능적으로 따라 나오려 했다. 이때 강다인이 그를 말렸다.

“오빠, 어디 가요?”

그녀는 둘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애교를 부렸다.

“여기서 내가 제일 익숙한 사람은 오빠뿐이잖아요. 계속 내 곁에 있어 줘야죠.”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강선우는 마음이 약해져서 결국 다시 앉았다.

심하온은 분명 방금 일 때문에 기분이 상했을 것이다. 다만 이건 별일이 아니니 밤에 돌아가서 달래면 그뿐이다.

...

심하온은 복도를 비틀거리며 걸었다. 속이 너무 울렁거려서 차오르는 고통에 곧 죽을 것만 같았다.

심지어 눈앞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모퉁이를 돌려고 할 때, 갑자기 누군가와 부딪히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위에서 또다시 격렬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녀는 위를 움켜쥐고 거의 허리를 펴지 못할 지경이었다.

“괜찮아요?”

맑고 감미로운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심하온은 지금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녀는 애써 고개를 들고 재차 사과했다.

“죄송해요.”

너무 불편한 탓에 상대방이 자신의 얼굴을 보고 눈빛이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괜찮아요?”

남자는 그녀가 지금 몹시 불편해하고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자 정중하고 매너 있게 팔을 부축했다.

“제가...”

심하온은 줄곧 배를 움켜잡고 있었다. 이에 남자가 물었다.

“위가 아파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평소에 위장약 같은 거 먹어요?”

심하온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평소에 먹는 위장약 이름을 말했다. 남자는 두말없이 그녀를 근처의 빈방으로 부축했다.

“여기서 기다려요.”

그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심하온의 머릿속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멍했다. 저 남자는 누구일까? 어디로 가는 걸까?

하지만 직감이 말해주길 악의는 없었다.

게다가 왜 이렇게 눈에 익은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는 다시 돌아와 물 한 잔과 약 두 알을 건넸다.

“이거 먹으면 좀 나아질 거예요.”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어딘가 모르게 걱정이 담겨 있었다.

심하온은 약을 힐긋 보았는데 정말 자신이 평소에 먹던 종류였다. 그녀는 재빨리 물과 함께 약을 삼켰다.

따뜻한 물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갈 때, 마치 그녀의 마음속에도 한 줄기 온기가 남는 듯했다.

이 약은 효과가 빨랐다.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심하온은 위통이 완화되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남자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고마워요. 정말 번거롭게 해드렸네요.”

그녀 앞에 선 남자는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를 지녔으며 온몸에서 상류층의 귀족적인 기운이 풍겼다.

“괜찮아요.”

그는 태연하게 말했다.

“심하온 씨.”

“저를 아세요?”

심하온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바로 그때, 이 남자가 누군지 떠오른 그녀.

이 남자는 바로 강운시 정씨 가문의 둘째 아들, 정윤재였다.

그는 백 년 만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사업 천재라고 알려져 있었다. 열여섯 살도 되기 전에 회사 업무를 접했고, 스무 살에 정씨 가문 어르신으로부터 차기 후계자로 지명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정진 그룹을 정식으로 인수하여 모두가 두려워하는 ‘정 대표님’으로 거듭났다.

6년 전, 심하온은 한 연회에서 그를 본 적이 있었다.

그녀는 늘 조용하게 지내는 편이라 그 연회가 유일하게 참석했던 자리였다.

또한 멀리서만 지켜본 터라 방금 정윤재를 곧장 알아보지 못했다.

오늘 자신을 도와준 사람이 정윤재라니.

“정 대표님.”

심하온은 약간 어색했지만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

“운정시는 어쩐 일이세요?”

정윤재는 그녀가 이제서야 자신을 기억해냈다는 사실을 개의치 않는 듯했다.

“사업 일정 때문에 왔어요.”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몸도 안 좋은데 왜 혼자 여기 있어요?”

아마도 ‘혼자’라는 두 글자가 심하온의 마음을 건드린 듯했다. 그녀는 갑자기 눈가가 시큰거렸다.

애초에 가족들의 반대도 무릅쓰고 졸업 후 강선우와 함께 이 도시에 남았다.

자신은 꼭 행복할 거라고 가족들에게 증명하고 싶었지만, 결국 그녀는 혼자였다.

잠시 후, 심하온이 정신을 차리고 말을 이었다.

“오늘 동료들과 회식 중에 속이 쓰려서 약 사러 나오려고 했는데 너무 아프다 보니 제대로 걷지도 못하겠더라고요. 대표님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났어요.”

정윤재는 손에 든 약상자를 그녀에게 건네며 덤덤하게 말했다.

“이 약은 효과는 빠르지만 근본적인 치료법은 아니에요. 위가 안 좋다면 제대로 관리해야 해요.”

순간, 심하온은 이 남자가 지금 날 걱정해주는 걸까 라는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둘은 친하지도 않고 정윤재의 말투도 아주 무심했다.

아마도 예의상 한 말일 듯싶었다.

“네.”

심하온은 약상자를 받아들고 휴대폰을 꺼냈다.

“약값은 계좌이체 해드릴게요.”

“됐어요.”

“약은 저를 위해 사주신 거잖아요. 돈 드려야죠.”

비록 정윤재에겐 하찮은 돈일지라도 심하온은 남에게 빚지는 것이 싫어서 제때 갚고 싶었다.

정윤재가 잠시 침묵하더니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몇 번 두드렸다.

심하온은 그가 계좌번호라도 주는 줄 알았는데 문득 카톡이 울렸다.

단 한 번도 대화한 적 없는 친구로부터 스마일 이모티콘을 받았고 그 순간 심하온은 바로 알아채며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이거 대표님 카톡이에요?”

“네.”

정윤재는 무표정하게 답했다.

이에 심하온은 몹시 혼란스러웠다. 언제 정윤재의 카톡을 추가했는지 자신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니 더 이상 묻지 않고 약값만 정윤재에게 이체했다.

“그럼... 저는 이만 동료들한테 돌아갈게요.”

심하온은 예의 바르게 웃으며 말했다.

“하온 씨.”

정윤재의 목소리에 차가운 기운이 스쳤다.

“회식이 본인 몸보다 더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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