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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의 밀실, 허락된 만찬 #2

Author: 1727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18 07:09:00

조향사로서 예민한 그의 감각은 혜연이 뿜어내는 슬픔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 

그것은 눅눅한 흙냄새와 비릿한 눈물 향이 뒤섞인, 절망의 향취였다.

"상수 씨, 저녁... 안 먹어도 돼요. 속이 너무 울렁거려서..."

"안 돼요. 한 입이라도 먹어야 해요. 혜연 씨가 쓰러지면 내가 버틸 수가 없어서 그래요. 제발, 나를 위해서라도 먹어줘요."

상수의 눈빛이 너무나 간절하여 혜연은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상수는 주방으로 향해 가스레인지를 켰다. 

파란 불꽃이 조용히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냉장고에서 마늘과 페페론치노, 신선한 파슬리를 꺼냈다. 

도마 위에서 칼이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작업실의 무거운 침묵을 조금씩 걷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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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친구의 남자였던, 그에게 향하다.   향기의 밀실, 허락된 만찬 #2

    조향사로서 예민한 그의 감각은 혜연이 뿜어내는 슬픔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그것은 눅눅한 흙냄새와 비릿한 눈물 향이 뒤섞인, 절망의 향취였다."상수 씨, 저녁... 안 먹어도 돼요. 속이 너무 울렁거려서...""안 돼요. 한 입이라도 먹어야 해요. 혜연 씨가 쓰러지면 내가 버틸 수가 없어서 그래요. 제발, 나를 위해서라도 먹어줘요."상수의 눈빛이 너무나 간절하여 혜연은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상수는 주방으로 향해 가스레인지를 켰다.파란 불꽃이 조용히 타오르기 시작했다.그는 냉장고에서 마늘과 페페론치노, 신선한 파슬리를 꺼냈다.도마 위에서 칼이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작업실의 무거운 침묵을 조금씩 걷어냈다.올리브유에 마늘이 볶아지며 고소하고 알싸한 향기가 퍼져 나갔다.혜연은 소파에 몸을 파묻은 채 그 뒷모습을 보았다.상수는 요리하는 중간중간 고개를 돌려 혜연을 살폈다.그녀가 혹시라도 사라질까 봐, 혹은 다시 울음을 터뜨릴까 봐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다 됐어요. 조금만 이쪽으로 와요."상수가 차려낸 식탁은 단출했지만 지극히 정갈했다.그는 혜연의 의자를 직접 빼주며 그녀를 앉혔고, 차갑게 칠링된 화이트 와인을 잔 가득 따랐다."와인 한 모금만 마셔요. 긴장 풀어주는 데 최고예요."혜연은 와인을 한 모금 머금었다.포도의 상큼한 산미와 차가운 기운이 혀끝을 자극하자 비로소

  • 내 친구의 남자였던, 그에게 향하다.   향기의 밀실, 허락된 만찬 #1

    본가 대문을 닫고 나오자마자, 혜연은 버티고 있던 무릎의 힘이 단번에 풀려버렸다.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의 손에는 엄마가 챙겨준 날달걀 두 알이 위태롭게 쥐어져 있었다."하아... 아..."비명조차 나오지 않는 신음이 터져 나왔다.20년 우정의 파멸, 엄마의 뺨 때리기, 그리고 아빠의 그 아픈 용서 그리고 손에 있는 날달걀까지.혜연은 자신이 등 뒤에 남겨두고 온 집안의 공기가 얼마나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자신을 난도질하고 있는지 실감했다. 고개를 숙이자 눈물이 바닥에 뚝뚝 떨어져 검은 얼룩을 만들었다.이제 돌아갈 곳은 없었다.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낙원을 불태우고 유배지로 걸어 나온 죄인이었다.그때였다.적막한 골목 끝에서 날카로운 타이어 마찰음이 고요한 밤의 정적을 찢었다.이어지는 차 문이 거칠게 닫히는 소리.그리고 곧바로 누군가 이곳을 향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벅, 벅, 벅—.그것은 단순히 걷는 소리가 아니었다.단단한 구둣발이 아스팔트 지면을 사정없이 차고 나가는, 거칠고도 절박한 파열음이었다.일정한 리듬을 잃어버린 채 급박하게 이어지는 그 발소리는 혜연의 심장 박동을 앞질러 달려오고 있었다.구두 굽이 지면에 닿을 때마다 울리는 둔탁한 진동이 혜연의 척추를 타고 전해졌다.혜연은 겁에 질려 어깨를 더욱 웅크렸다.혹시 소영의 가족이 다시 나타난 걸까, 아니면 이 비참한 꼴을 동네 사람 누군

  • 내 친구의 남자였던, 그에게 향하다.   가장 아픈 낙인 #2

    혜연은 결국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미안해, 엄마. 정말 미안해…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근데 이제 나, 그 사람 없이는 안 돼. 그 사람이 내 무너지는 세계의 유일한 기둥이야. 나 그 사람 사랑해, 엄마.""아이고, 이 미친년아!"혜연 엄마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다 말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세상에 많고 많은 남자 중에 하필 그놈이냐! 네가 그렇게 선보고 만나라는 놈들은 다 마다하고, 하필 네 제일 친한 친구 가슴에 못을 박고 그놈이냐고! 네가 소영이 얼굴을 평생 어떻게 보려고 그래!"혜연은 식탁에 엎드려 폭풍처럼 오열했다."미안해, 엄마. 미안해..."라는 말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때, 묵묵히 자리를 지키던 혜연 부가 나직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당신도 그만해. 애 죽겠어."혜연 아빠의 시선이 바닥에 엎드린 딸에게 향했다.그의 눈에도 슬픔이 가득했지만, 혜연 엄마와 같은 서슬 퍼런 분노는 아니었다."너 잘못 아니야. 사람 마음이라는 게 자기 마음대로 되면 세상 참 쉽겠지. 그런데 그게 안 되니까 다들 아프고 힘든 거 아니겠어.""여보! 당신 지금 애를 두둔하는 거야?""두둔이 아니야. 사귀는 사이에 끼어들어서 뺏은 것도 아니고, 이미 헤어진 뒤에 만난 거라며. 그것도 오래전에 헤어진 거라며. 누군가한테는 도의적으로 비난 받을 일인 건 알지만, 우리까지 애한테 그러지 마. 혜연이가 지금 제일 힘들 거야. 자기 자신을 제일 증오하고 있는 건 혜연

  • 내 친구의 남자였던, 그에게 향하다.   가장 아픈 낙인 #1

    퇴근 직전 걸려 온 엄마의 전화는 단 한 마디였다."너 오늘 당장 집으로 와. 잔말 말고 와."평소의 다정한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느껴지는 정적은 마치 폭풍이 몰아치기 직전의 진공 상태처럼 혜연의 숨통을 조였다.혜연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가방을 챙겼다.사무실을 나서는 발걸음이 납덩이를 매단 듯 무거웠다.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길, 화려한 도심의 네온사인이 일렁거리며 혜연의 눈을 찔러댔다.'별일 아닐 거야. 그냥 소영이가 연락이 안 되니까 걱정돼서 부르시는 걸 거야.'스스로를 다독여보았지만, 가슴 한구석에서 피어오르는 불길한 연기는 점점 더 짙어졌다.개찰구를 지나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상수였다.[상수: 퇴근했어요? 목소리 듣고 싶어서.]상수의 다정한 문장을 보자 혜연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이 아수라장 같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온전한 인간으로 대접해 주는 사람.혜연은 잠시 멈춰 서서 답장을 적었다.손끝이 파들거려 오타가 났지만 수정할 겨를도 없었다.[혜연: 지금 본가로 가요. 엄마가 갑자기 오라고 하시네요. 별일 없겠죠? 가끔 이렇게 막무가내로 부르실 때가 있거든요. 너무 걱정 마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혜연은 알고 있었다.엄마의 그 서늘한 명령조는 단순한 투정이 아니라는 것을.상수는 즉시 답장을 보내왔다.[상수: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

  • 내 친구의 남자였던, 그에게 향하다.   부서진 거울 #2

    한 시간쯤 흘렀을까.소영 아빠가 다시 혜연의 집을 찾았다.거실은 여전히 깨진 유리 파편들과 혜연 부모님의 충격으로 엉망진창이었다.혜연 아빠는 창백한 낯빛으로 소파에 주저앉아 있었고, 혜연 엄마는 거실에 주저 앉아 넋이 나간 듯 바닥에 흩어진 유리 조각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소영 엄마는 좀 괜찮아?”혜연 아빠가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 물었다.소영 아빠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식탁 의자에 무겁게 앉았다.“그냥 뭐… 머리 싸매고 누웠죠. 제정신이 아니에요. 소영이가 전화해서 울고불고 난리를 치니 저 사람도 눈이 뒤집힌 거죠. 뭐 이미 다 지난 일이라지만, 저도 제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소영이가 죽고 싶다고 저러니 가슴이 찢어집니다.”“대체 무슨 일인지… 자세히 좀 말해봐요. 우리 혜연이가 정말 그랬다는 거야?”혜연 아빠가 묻자, 소영 아빠는 소영에게 들은 전말을 조심스럽게 설명하기 시작했다.혜연과 상수가 6개월 전부터 남몰래 만나왔다는 사실, 프로젝트를 핑계로 소영을 속여왔다는 점, 그리고 어젯밤 카페에서 소영이 두 사람의 불륜 현장을 직접 덮쳤다는 이야기까지.소영 아빠의 입에서 나오는 문장 하나하나가 혜연 부모님의 심장에 대못을 박았다.이야기를 듣는 내내 혜연 부는 입을 굳게 다물었고, 혜연 엄마는 초점을 잃은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20년 지기 친구 딸이 내 자식 같았고, 내 자식이 그 집 딸 같았는데. 그 믿음이 무너지는 소리가 거실의 정적보다 더 크게 들

  • 내 친구의 남자였던, 그에게 향하다.   부서진 거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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