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연에게 ‘향기’란 평온한 일상의 다른 이름이었다.공간 디자이너로서 그녀가 다루는 것은 물리적인 벽과 가구였지만, 그 공간의 끝에 머무는 미세한 잔향들이야말로 혜연이 추구하는 디자인의 완성이었다.그날 아침도 그랬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정갈한 햇살, 갓 내린 커피 향, 그리고 어젯밤 소영과 주고받은 다정한 통화 내용까지. 혜연의 세상은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하고 안정적이었다.소영은 혜연에게 단순한 친구 이상이었다.고등학교 시절, 소영의 집에서 지내며 겪었던 따뜻한 온기. 소영의 어머니가 차려주던 집밥과,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상수라는 한 남자만을 바라보며 울고 웃던 소영의 순애보를 곁에서 지켜본 혜연에게 소영은 지켜줘야 할 가족이자 분신과도 같았다.5년 전, 상수의 8년 연애가 비극적으로 끝났을 때, 소영을 붙잡고 함께 밤새워 울어주었던 것도 혜연이었다. 그 시절, 상수라는 남자는 혜연에게도 ‘지워버려야 할 나쁜 기억’ 그 자체였다.그런 혜연에게 이제 막 출근한 아침부터 그 기억이 다시 등장했다.“이번 ‘블루밍 프로젝트’ 파트너, 최종 결정됐어. 강상수 작가야.”팀장 김진우의 말은 맑게 개인 하늘에 떨어진 벼락이었다. 혜연은 마시던 커피를 컵 째로 떨어뜨릴 뻔했다. 강상수. 5년 반 전, 소영의 인생을 흔들어놓고 제 발로 떠나버린 그 무뚝뚝한 남자. 혜연은 헛것을 들었다고 믿으며 팀장을 바라봤다.“팀장님, 지금 뭐라고…?”“강상수 작가. 왜, 혹시 아는 사람이야? 성수동에선 이미 감각 좋기로 정평이 난 조향사거든. 이번 카페 컨셉이 ‘피어나는 기억’인데, 이 친구 향기가 아주 딱이야.”혜연의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했다. 아는 사람이라니. 세상에서 제일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혜연은 애써 당황한 기색을 지우려 펜을 만지작거렸다.“아, 그… 강상수요? 혹시 그 강상수 씨인가요?”“어? 강상수? 유명한 조향사인데, 혜연 씨 그 사람 알아?”팀장의 되물음에 혜연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망했
Last Updated : 2026-07-08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