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두 사람은 곧장 식당 건물 전용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태겸은 엘리베이터를 타서 식당층의 버튼을 누른 뒤에도 가만히 서 있질 못했다.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고, 손끝으로 무심한 척 제 아랫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시선은 계속 위쪽 층수를 향해 흔들리고 있었다.도하가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 툭 던지듯 말했다.
“아니,
누가 보면 위에 뭐 놓고 오신 줄 알겠어요.”“뭘.”
태겸이 짧게 받아쳤지만,
시선은 여전히 엘리베이터 문에 고정돼 있었다.띵.
문이 열리기 시작하자 태겸은 끝까지 열리기도 전에 좁은 틈 사이로 몸을 틀어 먼저 빠져나갔다.
“와,
진짜 빨라.”도하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입술을 꾹 겹친 채 미간을 찡긋 좁히고는, 성큼성큼 걸어가는 태겸의 뒤를 빠르게 따라붙었다.고급 일식당 특유의 잔잔한 조명과 은은한 나무 향이 복도를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태겸은 그런 분위기를 느낄 여유조차 없는 사람처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복도 안쪽 룸들을 빠르게 훑어보던 그는 급기야 까치발까지 살짝 들어 가며 안쪽을 확인했다.종업원이 태겸과 도하에게 자리 안내를 해주려고 다가왔다.
도하는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아,
저희 두 명—”“어,
아니.!”갑자기 태겸이 다급하게 말을 끊어버렸다.
종업원과 도하의 시선이 동시에 태겸에게 향했다.태겸은 순간 굳어졌다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이었다.“그… 일행이 있는데요.”
“…?….”
“방금 들어왔는데.
그… 여자가 네 분이고 남자가 두 분이고…….”점점 작아지는 목소리 끝에 정적이 흘렀다.
도하가 미묘하게 눈썹을 치켜올린 채 태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느낀 태겸이 큼큼, 헛기침을 삼켰다. 그러고는 슬쩍 도하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린 뒤, 괜히 턱을 살짝 치켜들며 뒷머리를 만지작거렸다.도하의 표정이 점점 더 기괴하게 구겨지려던 순간이었다.
복도 안쪽 화장실 방향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어? 이사님?”
박석민 팀장이었다.
태겸은 순간 반사적으로 표정을 갈무리했다.
조금 전까지 안절부절못하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시 차갑고 단정한 얼굴이 되었다.“아.
박 팀장님.”“안녕하십니까! 여기서 뵙네요.”
“모먼트 팀 오늘 식사 여기서 하시나 보네요.
저희도 여기…….”말끝이 살짝 흐려졌다.
태겸은 끝내 도하 쪽을 쳐다보지 못했다.그 순간,
도하가 자연스럽게 앞으로 한 발 나섰다.“팀장님,
오늘 모먼트 팀 브리핑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아,
감사합니다.”“안 그래도 식사를 한번 대접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만나네요.
저희는 두 명이라 테이블 자리라도 있을 줄 알고 일부러 룸 예약을 안 하고 왔더니 오늘은 자리가 없다더라고요. 혹시 괜찮으시면 오늘 점심 같이해도 될까요? 저희가 대접하겠습니다.”청산유수처럼 이어지는 도하의 말에 태겸이 '웅? 뭐지?' 싶은 얼굴로 슬쩍 도하를 바라봤다.
박석민은 잠시 눈을 굴렸다.
“아? 어…… 저희야 뭐 괜찮죠.
원래 사장님이랑 사모님도 오시기로 해서 큰 룸 예약한 거긴 한데…… 갑자기 못 오신다고 하셨기도 해서.”“…….”
“음…….”
잠깐 고민하는 듯한 박석민의 시선에 태겸의 손끝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말아 쥔 손 안쪽으로 긴장감이 서렸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서 있었지만, 시선만큼은 박석민의 입술에 고정되어 있었다.그리고 잠시 뒤.
“뭐,
같이 드시죠. 이쪽입니다. 따라오세요.”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도하가 먼저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태겸은 마지막으로 천천히 뒤따라 걸었다.그리고 아무도 보지 못하게,
몸 옆으로 말아 쥔 주먹을 아주 작게 끌어당겼다.소리 없이.
‘나이스.’
입술을 꾹 다문 채,
윤태겸은 조용히 환호하고 있었다.박 팀장이 룸의 문을 열었다.
“자,
여기에요”그가 몸을 옆으로 비키는 순간,
화기애애한 웃음소리와 함께 룸 안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둥근 테이블을 둘러앉아 떠들고 있던 모먼트 팀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문 쪽으로 향했다.그리고 박 팀장 뒤로,
낯선 슈트핏 두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그중에서도 맨 뒤에 서 있는 남자는 워낙 체격이 커서 앞사람에게 가려지지도 않았다.
검은 슈트 위로 길게 떨어지는 곧은 어깨선과 압도적인 피지컬.서지원의 눈이 순간 크게 흔들렸다.
‘윤태겸 이사님……?’
팀원들도 동시에 놀란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 이사님?”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우르르 인사가 쏟아졌다.
박석민이 자연스럽게 웃으며 상황을 설명했다.
“아,
요 앞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예약을 못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어차피 저희 자리 넓게 잡혀 있었고, 또 오늘 밥 사주신다길래 같이 식사해도 되나 해서.”“아,
네! 당연하죠!”“어서 오세요!”
“같이 드세요!”
생각보다 훨씬 밝게 반겨주는 분위기에 태겸은 잠깐 굳어 있던 어깨의 힘을 아주 미세하게 풀었다.
“실례하겠습니다.”
낮고 단정한 목소리.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의 시선은 아주 잠깐, 정확하게 서지원에게 닿았다가 떨어졌다.추가로 코스 요리 2인분이 더 세팅되고,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태겸은 적당히 테이블 끝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주변을 훑었다.지원 옆자리.
비어 있었다.‘…….’
물끄러미 그 자리를 바라보던 태겸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물컵만 괜히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갑자기 물컵을 살짝 소리 나게 툭 내려놓으며 속으로 읊조렸다.'비어 있어서 뭐! 뭐 가서 앉게? 앉아서 향수 뭐 쓰냐고 물어보게? 참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생각이었다.
물컵을 놓는 소리가 조금 크게 나자 팀원들의 시선이 순간 태겸에게 향했고,
그 타이밍에 도하가 부드럽게 분위기를 정리했다.“오늘 브리핑 정말 좋았습니다.
다들 고생 많으셨어요.”박 팀장이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겸손하게 답했다.
“아유,
아닙니다. 저희야말로 매번 감사합니다.”태겸도 슬그머니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 신제품 기획안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특히 소비자 접근 방식이 굉장히 좋았어요.”“감사합니다,
이사님.”팀원들이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모두가 웃는 그 순간,
태겸의 눈길은 괜히 지원의 웃는 얼굴에 몇 초간 더 머물렀다.
: )
주문을 마친 뒤 태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잠시 실례하겠습니다.”“아, 네.”태겸이 화장실 쪽으로 향하고, 지원은 혼자 창가 자리에 남았다.창밖 풍경은 여전히 좋았다.흐린 하늘 아래로 펼쳐진 초여름의 녹음. 과하게 꾸미지 않았는데도 묘하게 기분이 편안해지는 풍경이었다.지원은 무심코 휴대폰을 꺼냈다.찰칵.창밖 풍경도 찍고.찰칵.정겨운 메뉴판도 찍었다.‘여기 진짜 괜찮다.’나중에 친구들이랑 한 번 더 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렇게 사진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마음에 듭니까?”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고개를 들자 어느새 태겸이 돌아와 있었다.“아, 네.”지원이 활짝 웃었다.“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좋아요.”태겸은 자리에 앉으며 손에 남은 물기를 가볍게 털었다.그 순간이었다.지원의 시선이 그의 소매 끝에 멈췄다.화사한 민트색 니트의 잔털 위로 작은 물방울 몇 개가 맺혀 있었다.“어?”지원이 무심코 말했다.태겸이 시선을 내렸다.“네?”지원은 별생각 없이 테이블 위의 냅킨을 한 장 뽑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이사님, 잠시만요.”“……”태겸이 반응하기도 전에 지원의 손이 그의 소매 끝으로 향했다.꾹. 꾹.냅킨이 니트 위의 물방울을 조심스럽게 흡수했다.“니트에 물 튀었어요.”지원은 너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이런 거 자국 남으면 은근히 신경 쓰이잖아요.”태겸은 순간 아주 미세하게 움찔했다.반사적으로 몸을 피하려던 오랜 습관이었다.누군가가 이렇게 거리낌 없이 자기 몸이나 옷에 손을 대는 일 자체가 그에게는 익숙하지 않았다.하지만 몸을 물리려던 움직임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지원에게는 아무런 의도도 없었다. 정말 순수하게, 그냥 물이 묻어 있으니 닦아준 것뿐이었다.태겸은 결국 그대로 굳은 채 움직임을 멈췄다.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물방울을 닦아주는 지원의 얼굴에 꽂혔다.잠시 후, 지원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됐네요.”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의자
검은 세단은 도심을 벗어나 조금 한적한 언덕길을 따라 올라갔다.지원은 창밖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생각했던 방향과 달랐다.솔직히 말하면 호텔 레스토랑이나 회원제 다이닝 같은 곳을 떠올렸었다. 그런데 차는 번화가를 지나 조금 더 조용한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다.잠시 후, 태겸의 차가 한 건물 앞에서 멈춰 섰다.지원은 창밖을 바라봤다.“…어?”예상과 전혀 달랐다.크지 않은 건물, 1층 전체를 사용하는 식당이었다.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내부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고, 나무와 돌이 적절히 섞인 인테리어가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무엇보다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이 좋았다. 과하게 꾸미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예쁘다…”지원의 솔직한 감탄에 태겸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마음에 듭니까?”“네.”지원은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생각했던 곳이랑 달라서 더 좋은 것 같아요.”태겸은 대답 대신 차 문을 열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시 지원의 팔꿈치 아래를 받쳤다.“조심.”“아, 네. 감사합니다.”두 사람은 나란히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문 위에 달린 작은 종이 맑게 울렸다.딸랑.카운터 쪽에서 누군가 고개를 들었다.순간 환하게 웃는 얼굴.“오랜만이네요, 이사님.”태겸이 피식 웃었다.“형. 또.”남자가 어깨를 으쓱했다.“이사님을 이사님이라 부르는데 뭐가.”“듣기 싫습니다.”“그럼 자주 와.”지원은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처음 보는 태겸의 표정이었다. 딱딱한 비즈니스 미소가 아니라 정말 편안한 얼굴.그 모습을 보며 지원도 괜히 따라 웃었다.그때 남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향했다.“안녕하세요.”지원이 먼저 꾸벅 인사했다.“서지원이라고 합니다.”남자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반갑습니다.”시원하게 잘생긴 얼굴이었다.서른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 부드러운 인상인데 이상하게 눈에 띄는 분위기가 있었다.“구자언입니다. 여기 주인입니다.”“아, 네 안녕하세요~.”지원은 순
지원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어딘가 모르게 이상하게 말려드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그때, 태겸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갑시다.”“아…….”“배고픕니다.”그 덤덤하고도 인간적인 한마디에, 지원은 멍하던 표정을 갈무리했다.그리고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보였다.“아, 배고프셨구나.”“네.”“그럼 빨리 가야겠네요.”태겸은 별말 없이 지원의 보폭을 맞췄다.지원이 조금 느려지면 같이 속도를 줄였고, 지원의 발목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팔꿈치를 받쳐 준 손에 은근한 힘이 더해졌다.강하게 잡지도, 억지로 끌지도 않았다.그저 그녀가 절대 넘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든든하게.VIP룸 문을 열고 나오는 두 사람에게 멀찍이 대기하고 있던 지점장과 백화점 직원들이 서둘러 다가왔다.태겸은 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향해 담백하게 고개를 숙였다.“가보겠습니다. 오늘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저도 너무 감사했습니다.”지원이 옆에서 함께 허리를 숙여 인사하자, 지점장과 직원들이 일제히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다.“안녕히 가십시오, 이사님.”인사를 뒤로하고 두 사람은 일반 고객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VIP 전용 통로로 이동했다.두 사람만을 태운 전용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자, 사방이 고요해지며 다시금 밀도 높은 정적이 찾아왔다.태겸은 엘리베이터에 탄 후에도 여전히 지원의 팔을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었다.닿아 있는 곳에서부터 뭉근한 감각이 전해져 오자, 지원은 귓가가 조금 화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괜히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정작 태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전히 덤덤하고 고요한 얼굴로 엘리베이터 층수 표시판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두 사람의 숨소리만 작게 울리는 밀폐된 공간.그 안을 감도는 묘한 공기 속에서, 엘리베이터는 지하 주차장을 향해 부드럽게 내려가기 시작했다.엘리베이터가 지하 주차장에 도착하자, 두 사람은 태겸의 차량이 주차된 VIP 전용 구역으로 향했다.넓고 한적한 주차 공
태겸의 낮은 중얼거림이 VIP룸 안에 아주 짧게 떨어졌다.“환장하겠네.”“네?”“아, 아닙니다. 아무것도.”분명 ‘환장하겠다’고 하신 것 같은데……?바쁘실 텐데 나 때문에 괜히 시간을 뺏기고 계시는 건가 싶어, 지원은 혼자 생각하며 왠지 모르게 눈치가 보였다.그 순간, 타이밍 좋게 노크 소리가 들렸다.“똑똑. 이사님, 지점장입니다. 의무실에서 오셨습니다.”“들어오세요.”태겸의 대답과 함께 백화점 의료 스태프가 들어왔다.중년의 간호사가 지원 쪽으로 다가왔다.“어디 다치셨어요?”“아, 발목이 좀…… 접질린 것 같아요.”지원이 말하자, 간호사가 무릎 앞에 쪼그려 앉아 발목을 살폈다.“많이 붓진 않았네요. 다행히 심하진 않아요.”그 말에 지원이 팽팽하게 굳어 있던 어깨를 살짝 내렸다.“휴…… 다행이다.”그 순간이었다.지원의 발목이 살짝 들려 있는 상태에서, 태겸의 시선이 그쪽으로 굳건히 고정됐다.아까부터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은, 무거울 정도로 깊은 시선이었다.간호사가 발목을 가볍게 돌려보는 순간,“아.”지원이 짧게 숨을 들이켰다.“아프죠?”“아, 네…… 조금요.”태겸의 미간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그 변화는 거의 표정이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지만, 순간 방 안의 공기가 묵직하게 가라앉았다.간호사는 테이핑을 준비하며 말했다.“다행히 심한 염좌는 아닌데, 당분간 무리하면 안 돼요. 오래 걷지 마시고요.”“네네. 알겠습니다.”지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이 정도면 뭐…… 그냥 좀 불편한 정도지.’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사실 아까부터 태겸의 존재감이 너무 선명해서 온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태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가 뿜어내는 분위기 자체가 VIP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간호사가 테이핑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이제 일단 한번 걸어보실게요.”지원이 조심스럽게 발을 디뎠다.“……”한 발.테이핑이 단단하게 받쳐주니 아까보다 훨씬 나았다.욱신거리는 느낌은
1층 명품관, 밸루아 매장.유리로 된 매장 입구가 열리자, 안쪽 공기가 바깥과 확연히 달라졌다.조용하고 정돈된 공간.직원들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이사님!”순간 공기가 바뀌었다.그런데 바로 그 뒤, 직원들의 시선이 태겸의 옆으로 이동했다.지원이었다.한쪽 팔을 가볍게 받쳐 든 채 들어오는 낯선 여성.그 순간 직원들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었다.‘……누구지?’짧은 정적.한 직원이 당황한 듯 시선을 돌렸다.“이사님…… 이게 무슨 일이에요?”태겸은 멈추지 않고 바로 말했다.“VIP룸이요.”“네?”“안에 누구 있습니까.”질문은 단순했다.직원은 잠깐 망설였다.“지금은 비어 있습니다.”“그럼 씁니다.”즉시 결론이었다.지점장이 그제야 급히 앞장서 움직였다.매장 안쪽, 비공개 공간으로 이어지는 문이 열리고 태겸은 지원을 부축한 채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짧고 정확했다.설명은 없었다.VIP룸 안.조용하고 조도가 낮은 공간이었다.고급스러운 소파와 테이블이 자아내는 분위기.‘평생 내가 이런 곳에 들어올 일이 있을까’ 싶은 공간이었고, 밸루아답게 묵직한 고급스러움으로 실내가 갖춰져 있었다.태겸은 지원이 소파에 조심히 앉을 수 있도록 도왔다.그리고 바로 이어서 매장 바깥쪽으로 시선을 던졌다.“지점장님.”지점장이 빠르게 태겸 쪽으로 다가왔다.“네, 이사님.”태겸은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말했다.“의무실 직원 호출 부탁합니다.”“아, 네!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지점장이 급히 나가려는 순간, 태겸이 한 번 더 붙였다.“그리고.”잠깐 멈췄다가.“물 한 잔만요.”그 한마디는 너무 자연스러워서 부탁이라기보다 이미 정리된 절차 같았다.지점장이 고개를 깊게 숙였다.“네, 바로 가져오겠습니다.”문이 닫히고 지점장이 나가자, 방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지원은 그제야 조심스럽게 태겸을 올려다봤다.“……이사님, 저 진짜 여기까지 올 정도는 아닌데요.”태겸은 시선을 잠깐 내렸다.“
그제야 확신이 들었다.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알아봤다.사복을 입은 모습은 너무 낯설었다.아니, 정확히는, 너무 잘 어울렸다.수트를 입었을 때는 잡지 표지에 나올 것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달랐다.꾸민 티도 거의 없는데 이상하게 더 눈에 들어왔다.편안한 차림인데도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있었다.이런 게 꾸안꾸의 정석인가.왠지 더 어려 보이기도 하고, 조금 더 부드러워 보이기도 했다.같은 얼굴인데 느낌이 전혀 달랐다.마치 휴일 남친룩 화보를 그대로 걸어 나온 사람 같달까.지원은 자신도 모르게 몇 초 동안 멍하니 바라보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아.”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흩어지고 나서야, 백화점 중앙 홀에는 다시 조금씩 평소의 소음이 돌아오기 시작했다.지원은 정리된 물건들을 마지막으로 가방에 넣으며 고개를 들었다.“아, 감사합니다, 이사님.”어색하게 웃음이 먼저 나왔다.이런 상황에서 회사 사람을, 그것도 이사님을 만날 줄은 몰랐던 탓이었다.“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어요?”괜히 말끝이 흐려졌다.태겸은 잠깐 지원을 바라봤다.시선이 흔들리지도 않았다.그리고 짧게 말했다.“안 다쳤습니까?”대답은 그것뿐이었다.“아, 네. 뭐…… 다치진 않았어요.”지원은 손을 휘휘 저으며 웃었다.“아하하, 괜찮습니다. 진짜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괜히 민망해서 말이 길어졌다.“저는 그럼 이제 이만…… 하하.”지원은 급하게 상황을 정리하려는 듯 고개를 숙였다.“다음 회의 때 뵙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말을 끝내고는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괜찮다. 이 정도면 티 안 났다.’그렇게 생각하며 한 걸음, 두 걸음.그런데.“……읏.”작게 새어 나온 신음이었다.발목이 찌르듯 욱신거렸다.아까 넘어질 때 살짝 접질린 쪽이었다.무릎도 같이 묵직하게 올라오는 통증이 있었다.참을 수는 있었지만, 걸을 때마다 신경이 확실히 쓰였다.‘엇? 들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