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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라인 (No.5). (1)

Auteur: 연이수
last update Date de publication: 2026-10-10 13:06:39

정적을 깨고 도하가 먼저 입을 뗐다.

"식사나 하시죠? 아주 매운 걸 드셔야겠어요,

정신 똑바로 차리게!"

왠지 이를 앙다물고 도하가 말했다.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슬그머니 내린 태겸이 도하를 올려다보며 눈을 흘겼다.

"아,

진짜 좀……."

도하는 가볍게 그 시선을 무시하며 말을 받았다.

"삐진 애인처럼 째려보지 마시고 빨리 일어나세요,

배고픕니다."

도하는 상사이자 사촌 형인 태겸의 어깨를 주무르며 빨리 일어나길 재촉했다.

평소엔 귀신같은 감각을 자랑하는 총괄이사였지만,

지금만큼은 영락없이 풀 죽은 대형견 같았다.

지하 주차장.

태겸의 개인 차 운전석에 도하가 익숙하게 올라탔고,

태겸은 조용히 보조석 문을 열고 탑승했다.

시동이 걸리고 매끄러운 세단이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동안에도 태겸은 멍하니 창밖만 바라볼 뿐이었다.

"매운 거 뭐,

육개장이라도 드실래요?"

도하가 차도로 진입하며 툭 던진 질문에,

태겸의 시선이 돌연 창밖의 한 지점에 딱 멈춰 섰다.

'어……?'

지원의 팀이었다.

저 멀리 밸루아 빌딩 정문을 나서서 인도변을 따라 걷고 있는 모먼트 1팀의 무리가 태겸의 시야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태겸의 시선 끝에 서지원이 걸렸다.

지원은 무어라 열심히 이야기하는 박석민 팀장의 말에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팀원들이 주위에서 그녀를 보며 "차장님 최고!"를 외치는 듯한 생생한 분위기가,

두꺼운 차창 너머로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흑발 끝이 봄바람에 살랑이는 모습을,

태겸은 시선을 떼지 않고 바라보았다.

"아니,

이사님? 육개장 드실 거냐고요."

답답해진 도하가 목소리를 높이자,

태겸은 깜짝 놀라 시선을 거두며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어? 어…… 뭐,

네 마음대로 해."

"아,

그럼 그냥 가요 진짜.

육개장집으로 갑니다?"

도하가 확정 짓듯 말했지만,

태겸의 시선이 자석에 이끌리듯 다시 창밖으로 향했다.

마침 앞서가던 모먼트 팀이 횡단보도 앞에 무리 지어 멈춰 섰고,

태겸의 차도 신호에 걸려 딱 그들의 바로 앞에 서게 되었다.

태겸의 차는 밖에서는 안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썬팅이 아주 진하게 되어 있었다.

안 보일 것을 확신한 태겸은 대놓고 서지원 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회의실에서 보던 똑 부러진 모습과는 또 달랐다.

팀원들 사이에서 해맑게 웃는 얼굴을,

태겸은 시선을 떼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일단 서지원의 그 향이 밸루아 제품이 맞는데,

한 번만 확실히 알고 싶었다.

'혹시 섞어서 쓰는 건가?'

혼자 속으로 곱씹고 있었다.

옆자리에서 고개를 돌리고 창문에 붙어 있는 넓은 등짝을 보던 도하가 뭐 하냐는 듯 툭 한마디를 던졌다.

"밖에 뭐 있어요?"

태겸의 넓은 어깨에 가려 밖이 보이지 않았다.

"있긴 뭐가."

도하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하다가,

태겸이 흠칫 놀라며 큼큼,

헛기침을 해대며 애써 정면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눈에 띄게 이상한 태겸의 태도에 도하가 결국 참지 못하고 조근조근 쐐기를 박았다.

"아니,

오늘 왜 그래요 진짜? 회의 때부터 왜 그러냐고요.

막,

어? 뭐에 홀린 것마냥 마음의 소리를 밖으로 내뱉질 않나.

왜 그러시는 건데요?"

"아니,

내가 뭘 또 그렇게."

태겸이 억울하다는 듯 말대꾸를 하려던 찰나,

보행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었다.

동시에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한 모먼트 팀이 태겸의 차 앞을 스쳐 지나갔다.

도하가 태겸의 말을 뚝 끊으며 창밖을 가리켰다.

"어? 모먼트 팀이네? 식사하러 가나 보네요.

저 앞 일식집 들어가는 거 보니까 꽤 괜찮은 데 가네."

도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길을 건너 건물 안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쫓던 태겸의 눈이 번쩍 뜨였다.

다급해진 태겸이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나 매운탕!"

"네?"

"매운탕 먹고 싶어! 그,

매,

매운 거 먹으라며! 우리도 저기로 가자,

매운 거,

매운탕 먹으러.

어때?!"

도하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조수석으로 살짝 돌렸다.

그러고는 미간을 찡그리며 태겸의 얼굴을 위아래로 훑었다.

"갑자기? 매운탕이요? 저런 프라이빗하고 비싼 고급 일식집에 들어가서 이사님이랑 저랑 단둘이 매운탕'만' 달랑 시켜 먹고 나오시겠다는 거예요,

지금?!"

하지만 도하의 지극히 상식적인 팩트 폭행 따위는 이미 태겸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신경은 온통 지원이 들어간 그 일식집을 향해 있었고,

마음은 이미 그 집에 따라 들어가 있었다.

태겸은 다른 것보다 일단 식당이라는 편한 공간에서 사적인 자신의 궁금증을 풀고 싶었다.

그 향수가 밸루아 P라인이 맞는지,

넘버 몇 인지,

혹시 섞어 쓰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마침내 식당 문이 완전히 닫히자 태겸의 입술이 조급하게 벌어졌다.

"어..? 어! 아이! 빨리!!"

하…… 초조함을 삼키듯 입을 한번 꾹 다물고 눈을 한번 감았다 뜬 태겸이,

도하에게 억지로 싱긋 웃어 보이며 말했다.

"내가 사줄게,

너 제일 비싼 코스로 먹어! 그럼 됐지?! 빨리 가,

유턴 신호 끝나겠어~"

허둥지둥대며 빨리 차를 돌리라고 다그치는 건지 다정하게 말하는 건지 모를 태겸을 보며,

도하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미간을 사정없이 좁힌 표정을 숨기려 핸들을 잡은 팔 사이로 고개를 푹 숙였다.

'오늘 진짜 왜 저래,

미쳤나 봐 진짜……'

마음의 소리를 빠르게,

간신히 삼켜내고 고개를 든 도하가 거칠게 운전대를 꺾었다.

끼이익 소리와 함께,

태겸의 세단이 일식집을 향해 억지 유턴을 그리며 미끄러져 들어갔다.

엘리베이터가 지하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태겸이 가장 먼저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평소라면 흐트러짐 하나 없이 느긋하게 움직였을 남자였지만,

지금은 어딘가 미묘하게 급해 보였다.

도하는 그런 태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미간을 슬쩍 좁혔다.

‘오늘 진짜 왜 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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