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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화

Autor: 양순이
last update Data de publicação: 2026-04-02 09:54:30

프리미엄 상영관 전용 라운지는 일반 관람객의 북적임과는 거리가 멀었다.

고급스러운 대리석 바닥과 은은한 조명, 라운지에 퍼지는 쌉싸름한 에스프레소 향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통제된 어른들의 공간 같았다.

문제는 그 공간의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전광판이었다.

해인이 웰컴 드링크를 고르는 사이, 전광판에서는 두 사람이 예매한 영화 <갈증>의 예고편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느릿하고 관능적인 첼로 선율을 배경으로, 화면 가득 얽혀드는 남녀의 적나라한 살색이 찰나의 순간 스쳐 지나갔다.

“컥.”

커피를 한 모금 삼키려던 도윤의 목구멍에서 기침 소리가 터져 나왔다.

놀란 해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돌아보자, 도윤은 재빨리 주먹으로 입가를 가리며 시선을 애먼 허공으로 돌렸다. 하얗던 그의 귀 끝이 불이라도 붙은 듯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미치겠군. 저런 걸 나란히 앉아서 보자고?’

뒷목이 뻣뻣하게 굳어가는 것을 느끼며, 도윤은 필사적으로 표정을 갈무리했다. 윤해인 앞에서 당황한 티를 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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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게 오는 남자들   70화

    회의실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가 한 장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펜을 돌리던 도윤의 손등에 굵은 힘줄이 돋아났다.아침 식탁에서 해인이 지어 보인 그 건조한 얼굴, 그리고 서우에게 고기를 얹어주며 짓던 그 낯선 미소가 환영처럼 떠올라 그를 괴롭혔다.“후…….”‘걸어 다니는 삼계탕이라.’도윤은 결국 서류를 덮고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비틀린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어처구니가 없었다.자신은 밤새 괴로웠는데, 그녀는 어쩜 그렇게 태연할 수 있단 말인가.아니, 애초에 그게 그녀의 진짜 얼굴이 맞기는 한 걸까?도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불과 어제 낮까지만 해도 제 아래서 무너지듯 울던 여자였다.그 맹목적인 감정이 하루아침에 그렇게 흔적도 없이 증발할 리 없었다. 만약 아침 식탁에서의 그 얄미운 여동생 행세가 자신을 밀어내기 위한 얄팍한 연기라면.‘착한 오빠 노릇은 나도 잠시 접어둬야겠군.’그녀가 쓴 그 완벽한 무관심의 가면을 제 손으로 기어이 벗겨내고 싶어졌다.진짜 네 모습이 뭔지,어디까지 그 쌀쌀맞은 얼굴을 유지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은 오만함이 고개를 쳐들었다.도윤의 시선이 책상 위에 놓인 휴대폰으로 향했다.그에게는 아직, 해인이 제 발로 걸어 들어와 던져준 완벽한 패가 하나 남아 있었다.6개월간의 가짜 연애.해인이 먼저 제안했던, 그래서 먼저 취소할 수 없는 명백한 계약.‘철저하게 남매로 지내시겠다? 네가 차민영 앞에서는 어떻게 연기할지 궁금하네.’도윤은 휴대폰을 집어 들고 망설임 없이 '차민영'의 번호를 눌렀다.두어 번의 신호음 끝에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머, 도윤 씨? 웬일이에요, 먼저 전화를 다 하고?][별일은 아니고. 조만간 시간 좀 괜찮습니까?][나야 도윤 씨 시간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죠. 무슨 일인데요?][우리 더블데이트나 한번 하죠. 민영 씨 파트너랑 같이.]전화기 너머로 차민영의 당황한 듯한, 그러나 이내 흥미롭다는 듯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도윤은 창밖을 응시하며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 내게 오는 남자들   69화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별채의 제 방으로 돌아와 문을 잠그자마자, 해인은 버티고 서 있던 다리에 힘을 풀고 침대 위로 털썩 누워버렸다.“하아…….”천장을 향해 길게 뿜어낸 한숨에 홧홧한 열기가 섞여 있었다.보란 듯이 계란말이를 뺏어 먹고, 혈관 기름 운운하며 샐러드 접시를 밀어주던 그 당돌한 여자는 온데간데없었다. 침대 시트를 꽉 거머쥔 해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눈을 감자 방금 전 다이닝룸에서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리플레이 됐다.자신이 뱉은 유치한 대사에 스스로 당황해 굳어버렸던 도윤의 눈동자.어른스러운 척 미소를 지으려 애썼지만, 결국 수치심을 숨기지 못하고 도망치듯 자리를 박차고 나가던 그의 뒷모습.‘……오빠가 그런 표정을 지을 줄도 알았나.’늘 고결하고 완벽했던 권도윤이었다.사사로운 감정 따위는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내려다보는 줄만 알았던 사람이, 고작 갈비찜 한 조각과 나이라는 유치한 공격에 무너질 줄은 몰랐다.해인은 팔을 들어 두 눈을 꾹 눌렀다.그가 상처받은 표정을 지을 때마다, 제 가슴 한구석도 같이 욱신거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같았다.하지만 입술을 꽉 깨물며 그 미련을 털어냈다.그가 괴로워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먼저 선을 그은 것도 그였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가두려 한 것도 그였다.지금 그가 느끼는 소외감과 수치심은, 그가 스스로 선택한 오빠라는 자리가 주는 당연한 대가였다.“잘했어, 윤해인. 울지 마. 넌 이제 그냥 동생이야.”해인은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듯 나직하게 중얼거렸다.충분히 아파했고, 충분히 구걸했다.이제 남은 에너지는 오직 나만을 위해서 쓸 것이다.똑똑.노크 소리와 동시에 문이 열렸다.“와, 우리 누나. 아까 식탁에서 보니까 장난 아니던데?”“……저기 이렇게 열고 들어오는 거면 노크를 하는 의미가 있을까?”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해인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문 앞에 선 서우를 쳐다보았다.“아, 그런가? 미안해. 마음이 급해서 하핫.”그

  • 내게 오는 남자들   68화

    다음 날 아침, 본채 다이닝룸.권 회장이 아침 일찍 출근하고 난 뒤, 커다란 식탁에는 도윤과 서우, 그리고 해인 세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도윤은 입안이 까끌까끌했다.어젯밤 한숨도 자지 못한 탓에 피로가 짓눌렀지만, 별채에서 본채 식당으로 건너온 해인은 푸욱 잤다는 듯 혈색이 돌고 평온해 보였다.‘……진짜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밤새 잠을 설친 듯 까칠해진 도윤의 시선이 줄곧 향했음에도, 해인은 어떤 동요도 내비치지 않았다. 그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든 전혀 괘념치 않겠다는 듯 완벽하게 건조한 얼굴이었다. 해인은 허공에서 얽힐 뻔한 시선을 아무렇지 않게 거두며 야무지게 숟가락을 들었다.그 모습을 보며 도윤은 애써 시선을 거두고 젓가락을 들었다.식탁 중앙에 놓인, 명란이 도톰하게 박힌 계란말이.도윤이 무심코 제일 크고 노릇하게 구워진 가운데 조각을 향해 젓가락을 뻗으려는 찰나였다.탁―!어디선가 날아온 젓가락 하나가 도윤의 젓가락을 가차 없이 쳐냈다.도윤이 흠칫 놀라 손을 멈춘 사이, 해인의 젓가락이 그 도톰한 계란말이를 얄밉게 낚아채 제 밥그릇 위로 안착시켰다.“……윤해인. 너 지금.”“왜? 밥 먹는데.”해인은 도윤의 어이없는 시선 따위는 가볍게 무시한 채, 보란 듯이 계란말이를 크게 베어 물며 우물거렸다. 눈치를 보거나 수줍어하던 기색은 온데간데없는, 그야말로 반찬 하나에 혈안이 된 현실 여동생의 전투적인 태도였다.도윤은 기가 차서 헛웃음을 삼켰다.이질적이었다. 그녀가 자신 앞에서 이렇게 무방비하고 뻔뻔하게 구는 건 처음이었다.그때였다.해인이 이번에는 식탁 멀리 놓인 갈비찜으로 젓가락을 뻗었다. 뼈와 살이 부드럽게 분리된 제일 맛있는 살코기 조각.도윤은 내심 ‘저것도 제 입으로 쏙 들어가겠지’ 생각하며 물을 들이켰다.그런데 해인의 젓가락이 향한 곳은 그녀의 입이 아니라, 맞은편에 앉은 서우의 밥그릇 위였다.“서우야, 넌 아직 고기 많이 먹을 때야. 이거 먹어.”“어? 고마워, 누나.”서우가 씩 웃으며 고기를 받아먹자,

  • 내게 오는 남자들   67화

    권 회장의 저택 본채 거실.도윤이 무거운 걸음으로 현관에 들어섰을 때, 창밖으로는 이제 막 붉은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넓은 거실 안은 짙어지는 노을빛과 함께 초저녁의 서늘한 적막에 잠겨 있었다.그의 한 손에는 해인이 버려두고 간 작은 핸드백과 얇은 코트가 들려 있었다.“어, 형. 이제 와?”거실 한가운데서 불쑥 들려온 목소리에 도윤의 발걸음이 멈췄다.주방에서 물을 마시고 나오던 서우였다.대충 털어 말린 머리에 편안한 차림의 서우는, 도윤의 손에 들린 해인의 가방과 코트를 슬쩍 곁눈질하곤 무심하게 툭 내뱉었다.“누나 조금 전에 들어와서, 별채에 있어.”그 짧은 한마디에 도윤의 턱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졌다.네가 데리고 들어온 거냐고.무슨 말을 들은 건 없는지,혹시 네 앞에서도 울었는지.묻고 싶은 말들이 혀끝까지 치밀어 올랐다.하지만 도윤은 끝내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아니, 사실은 묻고 싶지 않았다.누가 되었든 타인을 통해서 그녀에 관한 일을 듣기는 어쩐지 싫었다.도윤이 그 비겁한 침묵 뒤로 숨어 입을 굳게 다물고 있을 때였다.그를 스쳐 지나가 계단으로 향하던 서우가 불쑥 걸음을 멈췄다.“형은…… 너무 완벽하려는 게 꼭 ‘신(神)’ 같아.”“……뭐?”“병신.”도윤의 귓가에 꽂힌 모욕적인 단어에 주변 공기가 일순간 얼어붙었다.하지만 서우는 도윤의 반응을 기다리지 않고 미련 없이 2층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도윤은 당황스러움과 황당함에 입을 굳게 다문 채, 서우의 뒷모습에 대고 화조차 내지 못했다.안 그래도 해인에 대한 걱정과 지독한 자괴감으로 머릿속이 터질 것만 같던 와중이었다. 무방비한 상태로 치고 들어온 서우의 날 선 조소는 그를 그 자리에 꼼짝 못 하고 얼어붙게 만들기 충분했다.한참을 멍하니 굳어있던 도윤은 손에 들린 가방과 코트를 내려다보고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는 무거운 발걸음을 떼어 본채를 빠져나와 뜰을 가로질러 별채로 향했다.어두워진 정원을 걷는 내내 도윤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얽혀들었다. 막상 해

  • 내게 오는 남자들   66화

    “수고하셨습니다!”꽃샘추위 속 바닷가 촬영이 끝났다.대충 옷을 갈아입고 차 안으로 들어온 서우는, 채 마르지 않은 젖은 머리칼을 털어내며 핫팩으로 언 손을 녹이고 있었다.무심코 확인한 휴대폰 액정에 부재중 전화 한 통이 찍혀 있었다.[윤해인]서우의 입가에 사르르 호선이 그려졌다.‘웬일로 먼저 전화를 다 했을까.’가벼운 마음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어, 누나. 아까는 일하고 있어서…….”[……서우야.]단 세 음절.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해인의 젖은 목소리에, 장난기 가득했던 서우의 얼굴에서 일순간 웃음기가 싹 가셨다.“누나, 어디야. 무슨 일 있어?”[나…… 지금 어딘지 정확히는 모르겠어. 그냥 무작정 걸었는데, 앞에 무슨 큰 교회가 보이고…… 그런데 지갑이 없어서…….]코끝이 잔뜩 맹맹해진 목소리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주변에 보이는 거 아무거나 말해봐. 큰 건물이나 표지판 없어?”[잠깐만…… 응. 여기 전신주에 붙어 있어. 소월로 322…… 그리고 길 건너편에 큰 교회가 보여.]서우는 손에 쥐고 있던 핫팩을 조수석으로 던지듯 내려놓고 곧바로 시동 버튼을 눌렀다.곧이어 시끄러운 엔진음이 차 안을 채웠다.[거기 꼼짝 말고 있어. 아무 데도 가지 말고, 내가 지금 갈게.]**같은 시각.쏴아아- 쏟아지던 욕실의 물소리가 마침내 멎었다.도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물기 어린 얼굴을 쓸어내렸다. 세면대를 짚은 손끝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그런데 욕실 문 너머가 소름 끼치도록 고요했다. 조금 전까지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던 해인의 억눌린 흐느낌조차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설마.’불길한 예감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도윤은 젖은 손으로 다급하게 잠금 장치를 풀고 욕실 문을 열어젖혔다.“해인아.”갈라진 목소리가 텅 빈 스위트룸 안을 허망하게 맴돌았다.어두운 객실 한가운데, 해인이 서 있던 카펫 위에는 온기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소파 위에 덩그러니 놓인 그녀의 작은 핸드백만이 주인을 잃은 채 팽개쳐져 있을 뿐이

  • 내게 오는 남자들   65화

    해인은 도윤의 셔츠 자락을 꽉 움켜쥐었다.맞닿은 등을 타고 해인의 심장 박동이 고스란히 전해졌다.하지만 도윤의 머릿속에는 그 온기 대신, 지독하게 축축하고 아득했던 선상에서의 기억이 플래시백처럼 터져 나갔다.약에 취해 늘어져 있던 해인.그 아찔한 열기 앞에서 끝내 이성을 통제하지 못하고 짐승처럼 굴었던 자신.다시는, 두 번 다시는 이 아이에게 그런 파렴치한 짓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수백 번 뼈를 깎으며 다짐했는데.“……착각하지 마.”도윤은 굳은 얼굴로 제 허리를 감싼 해인의 손을 떼어냈다. 떨리는 손끝을 애써 감추며,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차갑게 선을 그었다.“넌 지금 차민영의 얄팍한 도발에 오기가 생긴 것뿐이야. 아니면 낯선 분위기에 휩쓸렸거나.”“오기 아니야! 휩쓸린 것도 아니라고!”해인이 도윤의 앞을 가로막으며 돌아섰다.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듯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나…… 오빠 좋아해. 가족으로서가 아니라…… 남자로 좋아한다고.”숨통을 끊어놓을 듯한 돌직구였다. 도윤의 호흡이 일순간 멈췄다.“그러니까 오빠도 솔직하게 대답해 줘. 오빠는 정말 단 한 번도, 나를 여자로 본 적 없어?”해인의 젖은 목소리가 객실 안을 울렸다.도윤은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핏방울이 맺힐 지경이었지만, 그는 애써 시선을 피하며 짓씹듯 거짓말을 뱉어냈다.“……어. 없어.”나 같은 새끼는, 너를 안을 자격이 없으니까.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처절한 진심을 삼키며 도윤이 등을 돌리려던 찰나였다.지이익-어두운 객실의 정적을 찢고, 날카로운 파열음이 울렸다.도윤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돌아갔다.“……윤해인, 너 지금 뭐 하는 거야!”도윤의 두 눈이 경악으로 크게 뜨였다.해인의 두 손이 등 뒤로 향해 있었다. 굳게 닫혀 있던 원피스의 지퍼가 허리춤까지 속절없이 길을 내어준 채였다.스르륵.얇은 천이 해인의 하얀 어깨선 아래로 아슬아슬하게 흘러내렸다.은은한 간접 조명 아래로, 단 한 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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