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퍼 좀 올려줄래요?”피팅룸의 문이 열리며 한 여자가 나왔다.“네, 손님.”해인은 반사적으로 대답하며 빠르게 다가갔다. 그녀가 걸친 원피스는 해인의 석 달 치 월급을 합쳐도 살 수 없는 고가의 신상이었다. 여자가 해인을 등지고 거울 앞에 섰다.순간, 해인의 손끝이 잘게 떨렸다. 거울 속 여자의 실루엣이, 그리고 살짝 돌아본 옆얼굴이 어쩐지 자신과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녀는 화려한 조명 아래서 빛나는 보석 같았고, 해인은 그 보석을 닦는 초라한 수건 같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예쁘다…….’그 찰나의 멍함이 독이 되었다.“아얏!”돌연 여자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해인의 팔을 거칠게 밀쳤다.“미쳤어요? 지금 뭐 하는 거야!”“죄, 죄송합니다!”당황한 해인은 급히 지퍼를 살폈다. 가늘고 긴 머리카락 몇 올이 지퍼 이빨 사이에 단단히 씹혀 있었다.“머리카락이 지퍼에 걸려서…….”“아, 진짜 짜증 나. 이거 오늘 관리받고 온 머리인데! 당신 눈 어디다 두고 일해?”“정말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제가 금방 해결해 드릴게요.”다급히 카운터에서 쪽가위를 가져왔다. 조심스럽게 엉킨 머리카락을 끊어내려던 찰나, 여자의 눈이 가자미처럼 찢어졌다.“지금 내 머리카락을 자르겠다고? 이 상황에서 가위질이야? 당신 미쳤어?”“하지만 고객님, 지퍼가 완전히 끼어서 이 방법밖에는…….”“관리자 불러, 당장! 내가, 네 머리카락도 모조리 잘라줄게.”매장 안이 채영의 고함으로 소란스러워진 그때, 묵직한 구두 소리와 함께 매장 입구의 공기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무슨 일이야.”낮고 위압적인 음성. 여자는 반색하며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여기 점원이 내 머리카락을 뜯어놓고는 이제 자르겠대. 말도 안 되지?”남자의 시선이 채영을 지나, 고개를 숙이고 있던 해인에게 멎었다. 얼음처럼 차갑던 남자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균열을 일으키며 흔들렸다.“……윤해인?”익숙하면서도 낯선 무게감에 해인이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맞닿는 순간, 해인의 손에 든 가
Last Updated : 2026-02-26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