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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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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novel oleh 양순이

현혹

현혹

남편인 연호의 외도를 묵인하며 철저히 메말라가던 아내, 미호. 어느 날, 두 사람의 집으로 새파랗게 어린 조수 하윤이 들어왔다. "상관없어, 난 아무것도 못 느끼니까.” "느낄 수 있으면... 화가 날까요? 화가 나면 이혼 할래요?" 연호를 향한 아슬아슬한 도발. 그리고 연호의 눈을 피해 하윤의 뜨거운 손길이 미호의 닫힌 틈새를 사정 없이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가장 위험한 쌍방구원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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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화
사각, 사각. 적막한 화실 안, 캔버스 위로 나이프와 붓이 스치는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미호는 제 몫의 이젤 앞에 앉아 팔레트에 물감을 개다 말고, 고개를 돌려 하윤의 뒷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빠르고 거침없는 손놀림.‘왜 이렇게 낯이 익을까.’분명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가 붓을 쥐는 태도나 뒷목의 선 같은 자잘한 파편들이 기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켰다.‘내가 알 리가 없는데…….’미호의 시선이 하윤의 넓은 등을 타고 내려와, 그의 낡고 보풀이 인 맨투맨 소매에 머물렀다.‘그러고 보니… 신발도 꽤 낡았던데.’비싼 커피를 사 오면서 정작 제 신발은 낡아빠진 걸 신고 다니는 이질적인 모습. 미호의 속에서 아주 얕은 연민이 일었다.‘커피 살 돈 모아서 운동화나 새로 사지.’미호가 속으로 작게 혀를 차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그렇게 잘생겼어요?”캔버스에 시선을 고정한 하윤이 불쑥 입술만 달싹였다.순간 상념을 들킨 듯 화들짝 놀란 미호의 어깨가 크게 움찔했다.“……뭐가?”“제 얼굴요.”그제야 붓질을 멈춘 하윤이 고개를 돌려 미호를 바라보았다. 나른하게 휘어진 까만 눈동자가 미호를 곧장 꿰뚫었다.“너무 빤히 보시길래.”“…….”“저 꽤 잘생기지 않았어요?”당돌하다 못해 뻔뻔한 질문에 미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말문이 막혔다. 미호의 굳은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윤이 생긋 웃으며 덧붙였다.“아, 하긴. 차 작가님도 꽤 잘생기신 편이긴 하죠.”순간 하윤의 입에서 나온 남편의 호칭에 미호의 미간이 미세하게 굳었다. 그걸 놓칠 리 없는 하윤이 느릿하게 붓을 내려놓으며 결정타를 날렸다.“그래도, 키는 제가 더 커요.”“그,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빨리 하던 거나 마저 해.”하윤의 도발에 당황한 미호가 흠칫 물러서며 애써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하윤은 붓을 툭 내려놓으며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했다.“다 했는데요.” “……벌써?”미호의 눈이 커졌다. 캔버스 가까이 다가가 확인해 보니, 빈틈없이 깔끔하게 메워진 밑색이
Terakhir Diperbarui: 2026-10-16
Chapter: 10화
“아줌마.”“아줌마?”“네, 아줌마.”거대한 저택 거실 한가운데. 푹신한 소파에 깊숙이 파묻힌 하윤이 턱을 괸 채 나른한 목소리로 같은 단어를 수십 번째 굴려보고 있었다. 높낮이를 달리해가며 울리는 그 목소리에는 어딘가 달뜬 열기가 묻어났다.그 뒤에 선 사혁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두 눈을 질끈 감았다.‘하아, 씨발. 저놈의 아줌마 소리 때문에 고막에서 피 나겠네.’참다못한 사혁이 헛기침을 하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그, 글쎄요. 제 귀에는 다 비슷하게 들립니다만……. 그런데 아줌마는 왜 자꾸 찾으시는 겁니까?”“그냥.”하윤이 나른하게 휘어진 눈매로 허공을 응시하며 속삭였다.“나 아줌마가 좋아졌어.”사혁은 기가 찬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이 일을 시작할 때 회장이 은밀히 당부했던 말이 귓가를 스쳤다.[내 아들이 가끔 기행을 저지를 때가 있어.]‘하, 회장님이 말씀하신 그 기행이 미친 여자 취향을 말하는 거였나?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아줌마길래 저러지?’사혁이 혼란스러운 얼굴로 상념에 빠져있을 때였다.소파에 기대어 있던 하윤이 불쑥 몸을 일으키더니, 입고 있던 캐시미어 니트의 밑단을 잡아 단숨에 위로 벗어 던졌다.하윤의 앳된 얼굴과 대비되는, 탄탄하게 벌어진 어깨와 잔근육이 도드라진 상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사혁이 당황해 주춤거리는 사이, 반라 상태의 하윤이 성큼성큼 다가와 나직하게 명령했다.“벗어.”“……네?”사혁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요동치기 시작했다.‘허, 설마 남자도 취향인가?’사혁은 반사적으로 제 옷깃을 꽉 움켜쥐며 방어 태세를 취했다.“저, 저…… 아무리 돈을 많이 주셔도 몸은 안 팝니다! 한 걸음만 더 오시면 무력으로 제압할 수밖에 없…….”“미쳤어? 옷 바꿔 입자고.”하윤이 실소를 터트리며, 잔뜩 쫄아붙은 사혁의 옷깃을 매만졌다.“오늘 네 옷 마음에 들어.”그제야 사혁이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쥐고 있던 옷깃을 느슨하게 풀었다.“아…… 하하하. 다행이네요. 제가 또 은근히 패션
Terakhir Diperbarui: 2026-10-16
Chapter: 9화
미호는, 한참 동안이나 초점 없는 눈으로 천장을 응시했다.‘하아…….’쓴웃음을 삼킨 그녀가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떨어진 얇은 속옷을 주워 입고, 뜯어진 셔츠를 주섬주섬 여미는 동작에는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묻어나지 않았다.‘……틀린 말도 아니지.’어차피 애도 못 가지는 몸.뼛속까지 후벼 파이는 폭언이었지만, 미호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잔인한 말이 연호의 손길을 멈춰주었으니까.상처받은 비참함보다, 그의 몸무게와 체온을 견디지 않아도 된다는 이 안도감이 미호를 더욱 처참하게 옭아맸다. 남편과 몸을 섞지 않았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여자라니.미호가 실밥이 터진 셔츠 깃을 움켜쥐며 헛숨을 삼켰다.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되어버렸을까.어디서부터 이 지옥이 시작된 걸까.우리를 감싸던 공기가 이토록 역겹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옷깃이, 아주 찰나의 손끝이 스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멎을 듯 뛰고 귓바퀴가 터질 듯 달아오르던 때가 분명 있었다.쏴아아―.집안의 정적 위로, 열린 창문 너머로 쏟아지던 매미 울음소리가 아스라이 겹쳐 들었다.복도를 울리는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음.낡은 선풍기가 삐걱이며 돌아가던 여름날의 냄새.옅은 물감 냄새.그리고, 텅 빈 미술실.“너, 이거 어디에도 내지 마.”캔버스에 시선을 박은 채 숨을 죽이고 있던 열여덟의 미호가 흠칫 어깨를 떨며 뒤를 돌아보았다.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미술실 뒷문.그곳에 차연호가 서 있었다.미호가 그리던 수행평가용 풍경화를 내려다보는 연호의 눈빛은 기묘했다.“어, 그게… 이상해? 지울까?”“이상한 건 아닌데, 좀 거칠고 특이하네. 너 따로 그림 배운 적 있어?”미호가 멍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연호의 입가에 아주 옅은, 그러나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수행 평가 제출용이면 내가 다시 그리는 거 도와줄게. 대신에…… 이 그림은 나한테 줄 수 있어?”“어? 난 상관없는데……. 왜?”의아하다는 듯 되묻는 미호에게, 연호가 눈을 맞추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Terakhir Diperbarui: 2026-10-15
Chapter: 8화
투둑, 툭.단추가 뜯겨 나갈 듯한 거친 손길에 미호의 얇은 실크 셔츠가 속절없이 벌어졌다.“하아…….”연호의 뜨겁고 탁한 숨결이 훤히 드러난 미호의 목덜미와 쇄골 위로 쏟아졌다. 등 뒤로 감겨든 그의 커다란 손이 브래지어 후크를 신경질적으로 비틀어 풀었다.스르륵, 얇은 속옷이 바닥으로 허무하게 떨어져 내렸다. 창백할 만큼 희고 풍만한 가슴이 공기 중으로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다.“읏, 당신… 잠깐……!”미호가 다급하게 연호의 어깨를 밀어냈지만, 이미 달아오른 남자의 힘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연호는 미호를 거실의 넓은 가죽 소파 위로 거칠게 밀어붙였다. 푹신한 소파 위로 상체가 무너지자마자, 연호가 그녀의 가슴에 입술을 파묻었다.츕, 츄읍.거실의 정적을 찢고 타액이 얽히는 질척하고 노골적인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그가 붉게 달아오른 유두를 혀로 집요하게 핥아 올리고, 날카로운 치열로 살짝 깨물며 자극했다. 다른 여자들이었다면 쾌락에 허덕이며 신음을 내뱉었을 짙고 농염한 애무였다.하지만 미호의 몸은 차가운 대리석처럼 굳어 있었다.“보통 이러면 좋아해야 하는 거 아냐? 어떻게 신음소리 하나가 없어.”미호의 무감한 반응에 연호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내 한쪽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렸다.“그래도 여전히 봐줄만 해.”그는 제 커다란 손을 미호의 바지 버클 사이로 밀어 넣었다.스윽.속옷 안쪽으로 파고든 연호의 손가락이 미호의 여린 살결을 갈라내며 깊숙한 곳을 꾹 눌렀다.“아……!”순간 미호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터졌다.바싹 메말라 있었다.연호의 농밀한 애무에도 불구하고, 미호의 내벽은 단 한 방울의 애액도 흘려보내지 않은 지독하게 건조했다.연호는 그 완강한 거부에 오기가 생겼는지, 손가락으로 작은 음핵을 짓이기듯 강하게 문지르기 시작했다.“아, 앗…! 아파……!”윤활유 하나 없는 메마른 살점 위로 가해지는 거친 마찰. 미호의 눈가에 고통으로 인한 생리적인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가 허리를 뒤틀며 연호의 팔뚝을 긁어내리듯 꽉 쥐었
Terakhir Diperbarui: 2026-10-15
Chapter: 7화
단독 저택의 높은 담벼락을 끼고 도는 길.조금 전까지 한껏 움츠러들었던 순진한 조수의 얼굴은 온데간데없었다. 하윤의 까만 눈동자에는 선명한 희열이 맺혀 있었다.‘여전하네. 그래서 더…… 좋아졌어.’기분 좋은 콧노래가 하윤의 입술 사이로 흘러 나왔다. 싸늘한 바람을 맞으며 걷는 그의 발걸음은 묘하게 경쾌했다.“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적막을 깨고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사혁.날카롭게 찢어진 눈매에, 투블럭으로 밀어 올린 뒷머리 위로 긴 머리칼을 살짝 묶어 내린 사내. 그는 하윤의 곁에 나란히 서는 대신, 그림자처럼 정확히 한 발짝 뒤로 거리를 둔 채 따라붙고 있었다.“응. 선생님이 나를 마음에 들어 하시더라고.”하윤이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여유롭게 말을 이어갔다.“칭찬도 받았어. 노력한 보람이 있네.”“……노, 노력이요? 누가요? 제가요?”사혁의 황당하다는 반문에, 하윤이 픽 비실거리는 웃음을 흘렸다.“응. 그런데 다음엔 조금 더 잘했으면 좋겠어. 하마터면 한 번에 들킬 뻔했잖아.”“…….”“아니다. 그건 내 선생님의 안목이 탁월해서일까.”사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바람을 켰다. 도련님의 그 빌어먹을 노력을 돕느라, 사혁의 손끝에는 아직도 뻑뻑한 젯소의 감촉이 들러붙어 있는 것만 같았다...“사혁, 빨리 그림을 좀 그려야겠어.”“네? 제 업무는 경호…….”“아니지. 네 진짜 업무는, 내가 숨만 쉬고 하는 짓거리들을 낱낱이 회장님께 보고하는 거잖아.”정곡을 찔린 그가 입을 다물자, 하윤이 나른하게 웃으며 덧붙였다.“아무 보고 없는 것도 이상하게 여기실 걸? 차라리 그림이나 그리고 자빠져 있다고 하면, 오히려 수긍하실 거야.”그럴듯한 논리였다. 고개를 끄덕인 것도 잠시, 이내 사혁은 난감한 얼굴로 제 크고 투박한 손을 내려다보았다.“그런데 제가 그림은 좀…….”“그러니까 시키는 거야. 내 재능이 워낙 출중해서 말이야. 그걸 좀 숨겨야겠거든.”‘저런 게 재벌들의 오만인가. 어린 새끼가 가끔 재수가 없단
Terakhir Diperbarui: 2026-10-15
Chapter: 6화
저벅, 저벅.거친 구둣발 소리와 함께 연호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아앗……!”다짜고짜 미호의 손목을 낚아챈 연호가 그녀를 제 품으로 난폭하게 끌어당겼다. 억센 손아귀가 붉게 달아오른 맥박 위를 부서져라 짓눌렀다.“당신, 갑자기…….”“읏, 읍!”미호의 벌어진 입술 사이로, 연호가 숨 쉴 틈조차 주지 않고 거칠게 입을 맞췄다. 키스라기보다는 마치 제 영역을 표시하는 듯한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탐닉이었다.미호를 우악스럽게 껴안은 연호의 오른손이 그녀의 얇은 목덜미를 감싸 쥐었다. 흉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손목 너머로, 그의 길고 억센 손가락이 미호의 목통을 틀어쥔 채 턱을 억지로 꺾어 올렸다.츕, 츄으읍―.조용한 화실 안으로 혀가 노골적으로 얽히고 타액이 질척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미호는 숨이 막혀 헐떡이면서도 눈을 감지 않았다. 두려움이나 쾌락 따위는 섞여 있지 않은, 그저 굳어버린 두 눈.그녀의 반사적인 시선이 연호의 어깨너머를 향했다.그리고, 그곳에 서 있는 하윤과 오롯이 시선이 얽혔다.‘보고 있어?’하윤이 불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우두커니 서서, 남편에게 목이 졸린 채 입술을 유린당하는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어찌할 바를 몰라 시선을 피해야 하는 건 외부인인 하윤 쪽이어야 했다. 그러나 하윤의 까만 눈동자에는 일말의 당혹감조차 없었다. 마치 유리관 너머의 전시를 관람하는 듯한 집요한 관찰자의 시선이었다.그 노골적인 시선 아래 완벽히 발가벗겨진 듯한 수치심을 느끼며, 미호는 파르르 몸을 떨었다.“하아…….”이내 연호가 끈적하게 얽혀있던 입술을 떼어냈다. 미호의 입술은 거친 마찰에 짓눌려 붉게 부어올랐다.숨을 몰아쉬는 미호의 젖은 입술을 엄지로 거칠게 문지르며, 연호가 하윤을 향해 고개만 비스듬히 돌렸다. 그의 눈빛은 승자의 여유로움과 오만함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마음에 안 들어.”연호가 미호의 목덜미를 쥔 손에 힘을 주며 싸늘하게 툭 내뱉었다.“새로 뽑아.”그의 일방적인 통보에, 미호가 억눌린 숨을
Terakhir Diperbarui: 2026-10-14
내게 오는 남자들

내게 오는 남자들

"지금 네 위에서 발정 난 새끼가, 오빠로 보여?" 6살과 11살. 부모의 재혼으로 묶였던 10년. 부모의 이혼과 함께 끊어진 인연, 그리고 다시 흐른 10년의 세월. 26살과 31살. 백화점의 점원과 VIP고객으로 재회 후, 다정했던 오빠는 온데간데없고 짐승 같은 눈을 한 남자만이 남았다. 그리고 그들의 사이를 파고드는 또 다른 그림자, 강서우. 도윤의 아버지가 새로 들인 여자의 아들이자, 현재 도윤의 동생인 그가 해인의 앞에 나타났다. “형이 아끼는 건 다 뺏어보고 싶거든. 그게 누나라도.” 형을 향한 열등감과 증오로 시작된 접근이었다. 하지만 서우의 장난질은 지독한 소유욕으로 변질되기 시작한다. “말해봐, 누나. 형이야, 나야?” 숨 막히는 위압감의 권도윤 vs 애틋하게 파고드는 강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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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43 화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심장을 때리는 감각적인 비트.밀라노 패션위크의 메인 스테이지를 장식한 피날레 워킹이 끝난 직후, 백스테이지는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였다.“완벽했어요, 서우! 당신은 오늘 밀라노 전체를 완벽하게 압도했어!”수석 디자이너가 상기된 얼굴로 다가와 찬사를 쏟아냈다. 한국계 최초로 글로벌 하이엔드 브랜드의 메인 뮤즈 자리를 꿰찬 강서우. 그를 향해 쉴 새 없이 터지는 플래시와 외신들의 취재 열기는 이제 너무도 익숙한 일상이 되어 있었다.어머니인 한 여사의 그늘과 그룹의 후계 구도라는 족쇄를 벗어던진 서우는, 이
Terakhir Diperbarui: 2026-05-30
Chapter: 242 화
일부러 들으라는 듯 꽤나 노골적으로 뱉어낸 음성이었다.하지만 샴페인 잔을 들고 지나가던 해인의 걸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여유로운 미소를 띤 채 사모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로 우아하게 방향을 틀었다.“상도덕이라는 단어는, 지금 같은 상황에 쓰는 게 아니죠.”갑작스러운 해인의 등장에 사모들의 입이 헙, 하고 다물어졌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그들을 향해 해인이 맑은 샴페인 잔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서우 씨는 본인 커리어를 위해 더 넓은 세상으로 훌륭한 도약을 했고, 저는 제 가치를 완벽하게 알아봐 주는 최고
Terakhir Diperbarui: 2026-05-30
Chapter: 241 화
“권도윤…….”오빠라는 호칭조차 잊을 만큼, 날것의 감정이 섞인 젖은 이름이 새어 나왔다. 그 소리가 떨어지자마자, 도윤은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평소의 흐트러짐 없이 서늘했던 완벽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거칠게 풀어 헤쳐진 넥타이와 가쁘게 몰아쉬는 숨결이, 그가 얼마나 미친 듯이 이 먼 거리를 달려왔는지를 증명하고 있었다.“왜 말 안 했어.”해인이 원망 섞인 목소리로 그의 단단한 가슴을 퍽 쳤다.“바보같이 왜 혼자서 회장님을 상대한다고 지분을 다 매입해 놓고…… 왜 나한테 다 숨겼어!”툭. 마
Terakhir Diperbarui: 2026-05-30
Chapter: 240 화
눈물이 핑 돌 만큼 가슴이 벅차올랐다.하지만 해인은 애써 붉어지는 눈시울을 꾹 누르며, 끝까지 사장님과의 실무적인 대화를 갈무리했다.완성된 다기의 퀄리티는 완벽했고, 론칭 준비는 이견 없이 순조로웠다.“그럼, 다음 주 론칭 파티 때 뵙겠습니다, 사장님.”“예, 조심히 올라가세요, 디렉터님!”사장님의 배웅을 받으며 공방을 나선 해인은 곧장 자신의 차로 향했다.철컥, 하고 차 문이 닫히며 완벽하게 혼자만의 공간이 확보된 순간.“하아…….”억눌러왔던 뜨거운 숨이 단숨에 터져 나왔다. 해인은 핸들에 이마를 댄 채 한참 동안
Terakhir Diperbarui: 2026-05-29
Chapter: 239 화
시간은 누군가 빨리 감기 버튼을 누른 것처럼 정신없이 흘러갔다.“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 해인 씨. 민 여사님 브랜드라니, 우리 이그니스 출신이라는 게 다 자랑스럽네.”“다 팀장님께서 이끌어주신 덕분입니다. 저한테 첫 기회를 주신 곳이잖아요.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이그니스 사무실을 나서는 해인의 양손에는 가벼운 짐 상자가, 얼굴에는 홀가분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동료들의 진심 어린 축복 속에서 치른 아름다운 이별이었다.서우와의 인연을 끊어낸 그날 이후, 해인의 삶은 완전히 다른 궤도에 올라탔다.‘가장 먼저 한 일은 그
Terakhir Diperbarui: 2026-05-29
Chapter: 238 화
해인은 마른침을 삼켰다.[그래서, 다기는 잘 완성해서 바쳤어?][민 여사가 퍽이나 마음에 들어 했어?]제 작업물과 민 여사에게 얽힌 상황을 못마땅해하며 쏟아낼 가시 돋친 히스테리를 예상했다.하지만 서우의 쩍쩍 갈라진 입술을 비집고 나온 말은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우리 그만 만나. 헤어지자고.”“……뭐?”예상치 못한 이별 통보에 해인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서우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시선을 삐딱하게 내리깔았다. 창백하고 초췌한 얼굴이었지만, 입가에는 한껏 비틀린 조소가 걸려 있었다.“막상 내 옆에 둬 보니까…
Terakhir Diperbarui: 2026-05-29
남편은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남편은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이 아이의 아비가 드라켄의 심연이든 아르센의 화염이든 중요하지 않아. 어차피 이 제국을 물려받을 내 아이일 뿐이니까. 아비 노릇을 하고 싶다면, 내 발치에서 증명해 봐.“ 나를 적국에 팔아넘긴 짐승 같은 남편과 나를 전리품 취급하던 오만한 적국 황제. 내 체취와 기운 없이는 숨조차 쉬지 못하게 된 두 남자의 목줄을 쥐고, 가장 완벽하고 관능적인 복수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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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79화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지난 열 달간 두 사내의 피를 말렸던 ‘진짜 아버지’가 누구인지 만천하에 밝혀질 터였다.숨이 턱 막히는 정적 속에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마침내 굳게 닫혀 있던 침실 문 너머로, 세상을 깨우는 듯한 우렁차고 맑은 아기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응애-! 으아아앙-!”울음소리가 들리자마자 카시안과 레온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문을 박차고 침실 안으로 뛰어들었다.“로제!”“로제, 괜찮아? 정신이 들어?”두 사내는 약속이라도 한 듯 침대 머리맡으로 달려가, 땀에 젖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는 로제의 양손을 하나씩 거머쥐었다.창백해진 얼굴로 두 남자를 번갈아 바라본 로제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녀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한 두 황제의 시선이, 그제야 비단 강보에 싸인 아기를 안고 다가오는 에다에게로 동시에 꽂혔다.꿀꺽.대륙을 호령하는 두 절대자의 목울대가 동시에 무겁게 오르내렸다.“여왕 폐하를 쏙 빼닮은 건강한 공주님이십니다!”에다의 감격에 찬 목소리와 함께 강보가 살짝 젖혀졌다.‘검은색인가!’‘황금빛인가!’두 사내가 숨을 멈춘 채 강보 속을 들여다보았다.그러나 아기의 자그마한 얼굴을 확인한 순간, 카시안과 레온의 표정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돌처럼 굳어졌다.아기의 보송보송한 배냇머리는 카시안의 칠흑 같은 검은빛도, 레온의 찬란한 황금빛도 아니었다.설상가상으로 울음을 그친 아기가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을 들어 올리며 눈을 깜빡였는데, 그 맑은 눈동자마저 카시안의 핏빛 적안도, 레온의 날카로운 금안도 아니었다.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심지어 조그맣게 오므린 입술과 눈매의 모양까지 거울로 찍어낸 듯 오직 로제 한 사람만을 완벽하게 빼닮은 ‘로제의 축소판’이 그곳에 누워 있었다.“……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왜 내 금빛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거야? 아니, 카시안 네놈의 시커먼 색도 전혀 없잖아!”당혹감에 휩싸인 두 황제가 멍하니 아기와 로제를 번갈아 쳐다보았다.그런 두 사내의 황망한 표
Terakhir Diperbarui: 2026-09-30
Chapter: 178화
손바닥을 스치는 카시안의 뜨거운 입술 위로 시커먼 집착이 번뜩였다.당장이라도 침대 위로 기어 올라와 그녀를 집어삼킬 듯한 기세였으나, 로제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그의 턱을 손끝으로 가볍게 밀어냈다.“말은 바로 해야죠, 카시안. 내 침실을 차지하는 게 아니라, 내가 허락할 때만 이 방에 발을 들일 수 있는 거예요.”차갑고도 우아한 목소리가 카시안의 정수리로 내려앉았다.“먼저 그 역겨운 피비린내부터 씻고, 숲 밖의 드라켄 군대를 물리는 황제의 칙서부터 가져오세요. 만약 내 마음에 들지 않게 굴거나 아이를 놀라게 한다면…… 그땐 내 침실은커녕 평생 내 얼굴조차 보지 못하게 될 줄 알아요.”순간, 짐승처럼 끓어오르던 카시안의 욕망이 찬물을 끼얹은 듯 우뚝 멈추었다.이전의 그였다면 감히 자신을 밀어내는 여인을 힘으로 찍어 눌렀을 터였다.그러나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로제는, 까딱 잘못 건드렸다가는 뱃속의 아이와 함께 영원히 제 손아귀에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 절대적인 갑(甲)이었다.그날 밤, 카시안은 로제의 명대로 몸에 말라붙은 마수의 피를 깨끗이 씻어낸 뒤, 타르타스의 독립을 인정하고 독점 무역로를 개방하는 칙서를 작성해 그녀의 발치에 바쳤다.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대륙 최강의 제국을 굴복시킨 로제의 승리는 완벽했다.레녹은 드라켄과의 무역로를 통해 막대한 부를 쓸어 담았고, 과거 서연합의 포로수용소에서 구출된 아르센의 유민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대신 자신들의 유일한 구원자인 로제의 친위대가 되어 왕궁을 철통같이 호위했다.그리고 밤마다 로제의 침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은, 놀랍게도 제국의 폭군 카시안이었다.“……속이 또 메스꺼운 건가? 가만히 있어 봐.”깊은 밤, 카시안은 침대 위에조차 감히 올라가지 못한 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로제의 아랫배 위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었다.전장을 휩쓸던 파괴적인 흑기 대신, 행여나 태아에게 해가 될까 봐 수천 번을 정제해 낸 따뜻한 마력이 그녀의 자궁을 부드럽게 감싸며 입덧을 달래주었다.드라
Terakhir Diperbarui: 2026-09-30
Chapter: 177화
부서진 문짝의 나무 파편이 바닥을 나뒹구는 침실 안으로 숨 막히는 정적이 내려앉았다.금방이라도 방 안의 모든 것을 갈기갈기 찢어발길 듯 날뛰던 카시안의 흑기가,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추어 갔다.“……아이?”카시안의 입술에서 낮게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피비린내를 뚝뚝 흘리며 서 있던 그의 시선이 로제의 새하얀 손끝이 감싸 쥔 아랫배에 못 박힌 채 떨어질 줄을 몰랐다.‘아이를 가졌다고? 지금 저 뱃속에……?’순간 카시안의 머릿속으로 지난 수 주간 드라켄의 황궁 침소에서 그녀와 얽혀 보냈던 수많은 밤들이 폭풍처럼 스쳐 지나갔다.그토록 집요하게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탐하고 제 흔적을 새겨 넣었던 밤들이었다. 시기상으로 따져보아도 제 씨앗이 뿌리를 내렸을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았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침대 곁을 지키고 선 레온의 존재가 시야에 걸리자 카시안의 눈동자가 다시금 사납게 일그러졌다.“……누구의 아이지?”카시안이 검자루를 으스러져라 고쳐 쥐며 한 걸음 다가섰다.“내 침소에서 잉태한 내 핏줄인가, 아니면…… 내가 없는 사이에 저놈과 뒹굴어 만든 씨앗인가!”다시금 꿈틀거리며 피어오르는 카시안의 살기에, 옆으로 물러서 있던 레온이 반사적으로 검자루에 손을 얹으며 앞을 가로막으려 했다.그러나 레온이 움직이기도 전에, 로제가 먼저 차갑게 입을 열었다.“그 검부터 당장 치워요, 카시안.”로제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카시안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방금 의원이 다녀갔어요. 태기가 막 자리 잡기 시작한 극초기라, 작은 충격에도 아이가 잘못될 수 있다고 하더군요.”“…….”“만약 당신이 이 방에서 날뛰다가 내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때는 어쩔 건가요? 당신의 손으로 직접 당신의 첫 후계자를 죽인 셈이 될지도 모르는데, 그 대가를 감당할 수 있겠어요?”‘당신의 첫 후계자’라는 단어가 떨어지는 순간, 카시안의 호흡이 컥 막혔다.단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자신의 아이일 수 있다면, 그 앞에서 칼을 휘두르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
Terakhir Diperbarui: 2026-09-29
Chapter: 176화
석양이 핏빛으로 물들어 가는 타르타스의 거대한 성문 앞.검은 안개 숲을 단신으로 뚫고 나온 카시안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수들의 피를 뒤집어쓴 그의 행색은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수라(修羅) 그 자체였다.성벽 위를 지키던 용병들이 그 살벌한 기세에 질려 일제히 창끝을 겨누었다. 카시안이 성문을 단숨에 박살 내기 위해 검에 시커먼 흑기를 끌어올리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끼이이익- 쿵!굳게 닫혀 있던 육중한 철제 성문이 누군가의 지시를 받은 듯 스스로 활짝 열렸다.성문 안쪽의 광장에는 수백 명의 무장한 용병들이 도열해 있었으나, 그 누구도 카시안에게 섣불리 달려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일제히 좌우로 물러서며, 도시 한복판에 우뚝 솟은 거대한 중앙 요새까지 곧게 뻗은 길을 터주었다.‘……레온, 그가 이미 이 도시 전체를 제 손아귀에 넣었다 이건가.’숲의 마수들을 굴복시켰던 그 거대한 드래곤의 위압감으로 이 무법지대의 패거리들을 찍어 누른 모양이었다.거친 숨을 고르며 걸음을 옮기던 카시안의 머릿속에, 그제야 의문 하나가 피어올랐다.‘아르센이 무너지던 날까지만 해도, 그놈은 곱상한 껍데기만 내세우던 온실 속의 나약한 황제에 불과했어. 대체 어떻게 그토록 흉포한 고대의 힘을 깨운 거지?’빼앗긴 여자를 되찾겠다는 지독한 집념이 그 유약하던 사내를 한계 너머로 밀어붙여 각성하게 만든 것일까.‘설마 블랑…… 너는 처음부터 그놈을 각성시키기 위해 이 모든 판을 짰던 건가?’자신의 침소에서 달콤하게 미소 지으며 순종하던 모든 순간마저 오직 옛 남편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한 기만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자, 카시안의 심장이 다시금 시커먼 배신감으로 뒤틀렸다.그러나 그가 살기를 삼키며 중앙 요새의 입구에 다다랐을 때, 계단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내의 얼굴을 본 순간 카시안의 미간이 사납게 좁혀졌다. 분명 드라켄의 수도에 있어야 할 자신의 신하, 레녹이었다.“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카시안 폐하.”“……레녹,
Terakhir Diperbarui: 2026-09-29
Chapter: 175화
무거운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낯선 천장의 화려한 문양이 흐릿한 시야에 들어오고, 곧이어 축 늘어진 손등 위로 뚝뚝 떨어지는 뜨거운 물기가 느껴졌다.로제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침대 맡에 두 무릎을 꿇고 앉아 자신의 손을 붙잡고 있는 레온의 황금빛 정수리가 보였다.“……아직도 안 떠나고 여기 있었네요.”갈라진 목소리로 내뱉은 차가운 한마디에, 레온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로제! 정신이 들어? 몸은…… 어디 아픈 데는 없어?”핏기 없이 창백해진 얼굴에 벌겋게 충혈된 금빛 눈동자가 물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로제는 대답 대신 그의 손아귀에서 자신의 손을 매정하게 빼냈다.“아르센의 황좌를 되찾으러 간다더니, 왜 아직도 남의 침실에서 이러고 있는 거죠?”“내가 잘못했어, 로제. 아까 내가 한 말은 진심이 아니었어…… 내가 질투에 눈이 멀어서 미쳤던 거야.”레온이 다급하게 침대 시트를 움켜쥐며 애원했다.“너한테 그런 모진 말을 하려던 게 아니었어. 제발 화 풀고 안정을 취해야 해. 지금 네 몸이…….”어쩔 줄 몰라 하며 말을 잇지 못하는 레온의 시선이 조심스럽게 로제의 아랫배로 향했다.그 시선을 따라가던 로제는, 정신을 잃기 직전 아랫배 깊은 곳을 훑고 지나갔던 낯설고도 묵직한 통증을 떠올렸다.로제가 자신의 배 위에 천천히 손을 얹었다.“나…… 왜 쓰러진 거죠? 의원이 다녀갔나요?”레온이 마른침을 삼키며 떨리는 입술을 달싹였다.“아이가…… 생겼대. 태기가 막 자리 잡기 시작한 극초기라고 했어.”순간, 로제의 손끝이 미세하게 움찔했다.그녀가 눈을 감고 내면에 집중하자, 몸 안을 흐르던 따뜻한 태양의 기운이 자궁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작은 생명을 부드럽게 감싸 안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그리고 그 여린 생명력의 중심에서 맥동하는 고유한 마력의 빛깔을 확인한 순간, 로제는 아이의 진짜 아버지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그렇군. 이 아이의 아버지는…….’심장이 기묘하게 뛰었으나, 로제는
Terakhir Diperbarui: 2026-09-29
Chapter: 174화
같은 시각, 타르타스의 국경을 가로막은 검은 안개 숲 초입.콰아아앙-! 크아아아악!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속에서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었다.“사, 살려줘! 괴물이다!”“대열을 유지해라! 창병대, 앞으로…… 크아악!”기세등등하게 숲으로 진격했던 드라켄의 선봉대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도륙 당하고 있었다. 안개 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그림자 늑대들이 병사들의 목덜미를 물어뜯었고, 집채만 한 갑피 괴수가 내뿜는 산성 독기에 중장갑 기사들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녹아내렸다.단순히 영역을 침범당해 날뛰는 야생 마수들이 아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지휘관의 통제를 받는 정예 군단처럼, 마수들은 드라켄 군의 퇴로를 차단하고 조직적으로 숨통을 조여 오고 있었다.서걱-! 푸화아악!그 아비규환의 한복판에서, 카시안이 시커먼 심연의 흑기를 휘감은 검으로 달려드는 키메라의 목을 단숨에 베어 넘겼다.시뻘건 마수의 피를 뒤집어쓴 카시안의 얼굴은 악귀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그는 마수들의 몸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낯익은 황금빛 마력의 잔재를 느끼고는 이를 갈았다.‘레온……! 감히 드래곤의 힘으로 숲의 마수들을 복속시켜 내 앞길을 막아?’눈앞의 괴물들이 움직이는 방식은 명백히 타르타스로 향하는 길을 봉쇄하기 위한 방어 진형이었다. 즉, 이 숲 너머에 로제와 레온이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도 했다.“폐, 폐하! 더 이상의 진격은 무리입니다!”피투성이가 된 부관이 말을 몰아 카시안의 곁으로 다가오며 절규했다.“안개 때문에 방향조차 잡을 수 없는데, 숲 전체의 마수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본대까지 전멸합니다! 일단 숲 밖으로 퇴각해 전열을 재정비하셔야……!”부관의 절규에 카시안의 붉게 충혈되었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그의 시선이 안개 속에서 마수들에게 처참하게 물어뜯기면서도, 황제의 명을 받들기 위해 끝까지 사투를 벌이는 병사들에게로 향했다. 수년간 전장에서 자신과 생사를 함께해 온 드라켄의
Terakhir Diperbarui: 2026-09-29
환관의 비

환관의 비

#동양풍 #피폐물 #고수위 #삼각관계 #황제공 #조련남 #계략남 #순진녀 #절륜녀 단 사흘. 황제의 발목을 잡으려던 그 짧은 시간은 제국의 역사를 뒤바꿀 지독한 집착의 시작이 된다. “내 씨를 받아내겠다던 그 당돌한 입술로, 이제는 목숨을 구걸해 보거라.” 피를 뿌려서라도 미옥을 제 곁에 묶어두려는 오만한 포식자, 황제 연호. “너를 빚은 것은 나다. 그러니 네 영혼의 마지막 조각까지 내 것이어야지.” 미옥을 황좌에 앉혀 제국을 손에 넣으려는 잔혹한 설계자, 주인 하륜. 두 남자가 감춰두었던 발톱을 드러내며 서로의 목을 겨누는 사이, 미옥의 뱃속에는 주인을 알 수 없는 핏줄이 자라나기 시작하는데……. 그 아이의 아비가 밝혀지는 순간, 제국은 가장 잔혹하고도 뜨거운 불길에 휩싸인다.
Baca
Chapter: 435 화
[특별 외전]두꺼운 벨벳 로프 앞, 검은 정장을 입은 가드들이 암호화된 프라이빗 인비테이션을 일일이 스캔하고 있었다. 초대가 없으면 입구의 대리석조차 밟을 수 없는 완벽한 통제였다.겹겹의 보안을 거쳐 묵직한 방음문이 열리자, 바깥의 소음과는 철저히 단절된 우아한 밀실이 펼쳐졌다. 발소리조차 먹어 치우는 짙은 카펫 위로, 대한민국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정재계 인사들이 샴페인 잔을 쥔 채 거대한 캔버스를 응시하고 있었다.대한민국 현대미술계의 거장, 차연호의 비공개 신작 전시였다."차 작가."굴지 재벌가의 최 전무가 태블릿
Terakhir Diperbarui: 2026-08-24
Chapter: 434 화
15년.그 지독한 고독의 시간을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맹세였다."그러니 먼저 가 있어. 내 핏빛 업보를 다 씻어내는 날, 가장 깨끗하고 온전한 남자가 되어 기어이 널 다시 찾아갈 테니까."하륜의 숭고하고도 시린 맹세를 뒤로한 채, 미옥은 마침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렸다...자욱한 안개가 깔린 삼도천의 나루터.일렁이는 검은 물결 위로, 이승의 기억을 지우고 다음 생으로 인도할 낡은 나룻배 한 척이 고요히 흔들리고 있었다.미옥이 뱃머리에 조심스레 발을 내딛으려던 찰나였다.안개 속에 가려져 있던 배의 안쪽에서 누군가
Terakhir Diperbarui: 2026-08-23
Chapter: 433 화
[에필로그 : 삼도천의 기다림]무겁게 내려앉은 잿빛 안개. 발목을 적시는 검푸른 강물. 그리고 강둑을 따라 핏빛으로 흐드러지게 피어난 피안화(彼岸花).망자들이 생의 기억과 업보를 씻어내는 강, 삼도천(三途川)이었다.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제국의 핏빛 역사를 종식시키고 가장 찬란한 태평성대를 이룩한 철혈의 여제 미옥은, 마침내 백발이 성성한 노구가 되어 고요히 숨을 거두었다.무거웠던 흑의(黑衣)도, 숨 막히는 황좌의 무게도 훌훌 벗어던진 채 영혼이 되어 다다른 강기슭.자욱한 안개 너머로 익숙한 실루엣이 꼿꼿하게 서 있었다
Terakhir Diperbarui: 2026-08-23
Chapter: 432 화
연호는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애써 꼿꼿하게 세우려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제 옆에 선 아름답고 거대한 여제를 향해, 마지막 애원을 뱉어냈다."그러니 다음 생에는……."마지막 숨을 쥐어짜 내는 그의 목소리가 지독하게 애달프고 다정했다."이리 무겁고 끔찍한 천하 따위는 쥐지 말고…… 피비린내 나는 황제와 비루한 노비가 아니라, 그저 온전하고 평범한 부부의 연(緣)으로 내게 오라."다음 생에서만큼은 너의 진짜 지아비가 되고 싶다는 서글픈 고백이었다."사랑하는 나의 비(妃)여. 이제 그만…… 이 지독한 의심의 지옥에서 나를
Terakhir Diperbarui: 2026-08-23
Chapter: 431 화
정전에서의 차가운 정무가 모두 끝난 늦은 밤.미옥은 머리를 짓누르는 거대한 가채와 칠흑 같은 관복을 벗지도 않은 채, 언제나처럼 연호가 갇혀 있는 서궁의 별전으로 향했다.자작나무 타는 냄새와 씁쓸하고 눅진한 탕약의 향기가 공기를 무겁게 짓누르는 고요한 침전.빛이 차단된 두꺼운 장막 너머로, 한때 제국을 호령하던 거대했던 그가 이제는 앙상한 몰골로 침상에 누워 있었다. 볕을 보지 못한 살갗은 밀랍처럼 창백했다.어의의 약기운에 취해 초점 없이 허공을 부유하는 두 눈동자만이, 그가 아직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알릴 뿐이었다.천하를
Terakhir Diperbarui: 2026-08-23
Chapter: 430 화
그 밤으로부터 어느덧 5년의 세월이 흘렀다."살, 살려주시옵소서, 태후 마마! 신이 바친 은자(銀子)가 수만 냥이온데, 어찌 이리 가혹하게……!"정전의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엎드린 탁지부 대신이 발악했다. 그러나 발(簾) 뒤에 앉은 여인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동요조차 없었다.그녀의 머리 위로 똬리를 튼 거대한 가채는 옥좌의 무게만큼이나 무겁고 위압적이었으며, 금실로 아홉 마리의 봉황을 수놓은 칠흑 같은 흑의(黑衣)는 궐 안의 모든 빛을 집어삼킬 듯 서늘했다.목숨을 부지하려 진흙탕에 납작 엎드렸던 노비의 비루함도, 궐 안에서 살
Terakhir Diperbarui: 202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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