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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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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bela ni 양순이

내게 오는 남자들

내게 오는 남자들

"지금 네 위에서 발정 난 새끼가, 오빠로 보여?" 6살과 11살. 부모의 재혼으로 묶였던 10년. 부모의 이혼과 함께 끊어진 인연, 그리고 다시 흐른 10년의 세월. 26살과 31살. 백화점의 점원과 VIP고객으로 재회 후, 다정했던 오빠는 온데간데없고 짐승 같은 눈을 한 남자만이 남았다. 그리고 그들의 사이를 파고드는 또 다른 그림자, 강서우. 도윤의 아버지가 새로 들인 여자의 아들이자, 현재 도윤의 동생인 그가 해인의 앞에 나타났다. “형이 아끼는 건 다 뺏어보고 싶거든. 그게 누나라도.” 형을 향한 열등감과 증오로 시작된 접근이었다. 하지만 서우의 장난질은 지독한 소유욕으로 변질되기 시작한다. “말해봐, 누나. 형이야, 나야?” 숨 막히는 위압감의 권도윤 vs 애틋하게 파고드는 강서우
Basahin
Chapter: 243 화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심장을 때리는 감각적인 비트.밀라노 패션위크의 메인 스테이지를 장식한 피날레 워킹이 끝난 직후, 백스테이지는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였다.“완벽했어요, 서우! 당신은 오늘 밀라노 전체를 완벽하게 압도했어!”수석 디자이너가 상기된 얼굴로 다가와 찬사를 쏟아냈다. 한국계 최초로 글로벌 하이엔드 브랜드의 메인 뮤즈 자리를 꿰찬 강서우. 그를 향해 쉴 새 없이 터지는 플래시와 외신들의 취재 열기는 이제 너무도 익숙한 일상이 되어 있었다.어머니인 한 여사의 그늘과 그룹의 후계 구도라는 족쇄를 벗어던진 서우는, 이
Huling Na-update: 2026-05-30
Chapter: 242 화
일부러 들으라는 듯 꽤나 노골적으로 뱉어낸 음성이었다.하지만 샴페인 잔을 들고 지나가던 해인의 걸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여유로운 미소를 띤 채 사모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로 우아하게 방향을 틀었다.“상도덕이라는 단어는, 지금 같은 상황에 쓰는 게 아니죠.”갑작스러운 해인의 등장에 사모들의 입이 헙, 하고 다물어졌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그들을 향해 해인이 맑은 샴페인 잔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서우 씨는 본인 커리어를 위해 더 넓은 세상으로 훌륭한 도약을 했고, 저는 제 가치를 완벽하게 알아봐 주는 최고
Huling Na-update: 2026-05-30
Chapter: 241 화
“권도윤…….”오빠라는 호칭조차 잊을 만큼, 날것의 감정이 섞인 젖은 이름이 새어 나왔다. 그 소리가 떨어지자마자, 도윤은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평소의 흐트러짐 없이 서늘했던 완벽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거칠게 풀어 헤쳐진 넥타이와 가쁘게 몰아쉬는 숨결이, 그가 얼마나 미친 듯이 이 먼 거리를 달려왔는지를 증명하고 있었다.“왜 말 안 했어.”해인이 원망 섞인 목소리로 그의 단단한 가슴을 퍽 쳤다.“바보같이 왜 혼자서 회장님을 상대한다고 지분을 다 매입해 놓고…… 왜 나한테 다 숨겼어!”툭. 마
Huling Na-update: 2026-05-30
Chapter: 240 화
눈물이 핑 돌 만큼 가슴이 벅차올랐다.하지만 해인은 애써 붉어지는 눈시울을 꾹 누르며, 끝까지 사장님과의 실무적인 대화를 갈무리했다.완성된 다기의 퀄리티는 완벽했고, 론칭 준비는 이견 없이 순조로웠다.“그럼, 다음 주 론칭 파티 때 뵙겠습니다, 사장님.”“예, 조심히 올라가세요, 디렉터님!”사장님의 배웅을 받으며 공방을 나선 해인은 곧장 자신의 차로 향했다.철컥, 하고 차 문이 닫히며 완벽하게 혼자만의 공간이 확보된 순간.“하아…….”억눌러왔던 뜨거운 숨이 단숨에 터져 나왔다. 해인은 핸들에 이마를 댄 채 한참 동안
Huling Na-update: 2026-05-29
Chapter: 239 화
시간은 누군가 빨리 감기 버튼을 누른 것처럼 정신없이 흘러갔다.“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 해인 씨. 민 여사님 브랜드라니, 우리 이그니스 출신이라는 게 다 자랑스럽네.”“다 팀장님께서 이끌어주신 덕분입니다. 저한테 첫 기회를 주신 곳이잖아요.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이그니스 사무실을 나서는 해인의 양손에는 가벼운 짐 상자가, 얼굴에는 홀가분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동료들의 진심 어린 축복 속에서 치른 아름다운 이별이었다.서우와의 인연을 끊어낸 그날 이후, 해인의 삶은 완전히 다른 궤도에 올라탔다.‘가장 먼저 한 일은 그
Huling Na-update: 2026-05-29
Chapter: 238 화
해인은 마른침을 삼켰다.[그래서, 다기는 잘 완성해서 바쳤어?][민 여사가 퍽이나 마음에 들어 했어?]제 작업물과 민 여사에게 얽힌 상황을 못마땅해하며 쏟아낼 가시 돋친 히스테리를 예상했다.하지만 서우의 쩍쩍 갈라진 입술을 비집고 나온 말은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우리 그만 만나. 헤어지자고.”“……뭐?”예상치 못한 이별 통보에 해인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서우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시선을 삐딱하게 내리깔았다. 창백하고 초췌한 얼굴이었지만, 입가에는 한껏 비틀린 조소가 걸려 있었다.“막상 내 옆에 둬 보니까…
Huling Na-update: 2026-05-29
남편은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남편은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이 아이의 아비가 드라켄의 심연이든 아르센의 화염이든 중요하지 않아. 어차피 이 제국을 물려받을 내 아이일 뿐이니까. 아비 노릇을 하고 싶다면, 내 발치에서 증명해 봐.“ 나를 적국에 팔아넘긴 짐승 같은 남편과 나를 전리품 취급하던 오만한 적국 황제. 내 체취와 기운 없이는 숨조차 쉬지 못하게 된 두 남자의 목줄을 쥐고, 가장 완벽하고 관능적인 복수를 시작한다.
Basahin
Chapter: 121화
거친 모래바람과 짙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드라켄 황성 외곽의 용병 투기장.“크아악-!”곰을 맨손으로 때려잡는다던 거구의 용병이 치켜든 철퇴가 허공을 가르기도 전이었다.잿빛 로브를 뒤집어쓴 사내의 검이 벼락처럼 쏘아져 나갔다. 화려한 검기도, 대단한 초식도 없는 그저 단순한 내려치기.하지만 그 한 번의 궤적을 따라 대기가 비명처럼 찢어지더니,콰앙-!!고막을 터뜨릴 듯한 폭음과 함께 거구의 용병이 모래 바닥으로 처박혔다.방패 역할을 하던 두꺼운 강철 갑옷이 종잇장처럼 우그러져 있었고, 사내가 내리친 검 끝을 중심으로 모래 바닥이 거대한 크레이터처럼 푹 파여 사방으로 쩍쩍 갈라져 있었다.투기장을 메우고 있던 수백 명의 용병들 사이로 찬 물을 끼얹은 듯한 서늘한 적막이 내려앉았다.“미, 미친…… 방금 저게 뭐야? 검기 같은 건 뿜어내지도 않았잖아!”“그냥 순수하게 완력으로 짓눌러 버렸다고? 저딴 괴물이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심사를 보던 황궁 수비대장조차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수십 년 검을 쥐어온 그의 눈에도 방금 전의 일격은 상식을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단순한 검술 훈련 따위로 만들어낼 수 있는 이치의 힘이 아니었다.흡사 거대한 비늘을 가진 마수나, 전설 속 용이 발톱을 휘두른 것만 같은 흉흉하고 이질적인 파괴력.“하, 합격! 대체 어디서 굴러먹다 온 기인인지는 몰라도 솜씨 하나는 기가 막히군. 네놈의 이름이 무엇이냐!”수비대장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외쳤다.사내는 무심한 손길로 검에 묻은 핏자국을 털어내며 투박한 가죽 가면 너머로 낮게 읊조렸다.“……카일.”수비대장이 합격패를 던져주며 호탕하게 웃었으나, 남자의 금빛 눈동자는 짙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아 있었다.합격패를 꽉 틀어쥔 카일, 아니 레온은 가면 너머로 드라켄의 거대한 황성을 쏘아보았다.카시안의 서쪽 별궁에 들어앉았다는 천박한 정부, 블랑 백작.국경의 술집에서 떠도는 소문은 퍽 기가 막혔다.출신도 모르는 창부 주제에 황제를 홀려 백작 작위
Huling Na-update: 2026-07-14
Chapter: 120화
드라켄 제국의 무력을 지탱하는 거대한 심장, 페온 공작저의 은밀한 지하 밀실.매캐한 쇳물 냄새와 눅눅한 습기가 뒤엉킨 공기 속에서, 아이린은 탁자 위에 놓인 조잡한 양피지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고작 이것뿐인가?”서늘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검은 후드를 깊게 눌러쓴 심복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서부 국경으로 빼돌린 철광석의 양이 지난달보다 턱없이 부족하잖아. 내가 일을 이따위로 처리하라고 널 살려두고 있는 줄 알아?”“공녀님. 송구하오나 최근 국경 수비대의 검문이 짐작보다 훨씬 삼엄해졌습니다. 상단의 짐마차 밑바닥을 이중으로 개조해 넘기고는 있으나, 한 번에 실어 나를 수 있는 양에 한계가…….”“핑계 대지 마!”아이린이 신경질적으로 양피지를 구겨 바닥에 내던졌다.“서연합의 미친개에게 뼈다귀를 넉넉히 던져주어야, 그놈들이 무기를 벼리고 날뛰며 카시안의 발목을 물어뜯을 것 아니야. 무기를 주조할 철이 부족하다며 벨모어 그 자가 또 불만을 표하면 네놈이 목을 내놓을 텐가?”그녀의 흉흉한 기세에 심복이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당장 다음 달부터 수송량을 두 배로 늘려.”“두 배 말씀이십니까? 발각이라도 되는 날엔 공작가의 목이……!”“닥치고 시키는 대로 해.”아이린은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밀실 안을 초조하게 거닐었다. 화려한 드레스 자락 아래로 감춰진 그녀의 속내는, 겉모습만큼이나 검고 탐욕스러웠다.처음엔 당연히 황후의 자리가 제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제국 제일의 권력과 부를 가진 페온 가문의 안주인 자리는 카시안의 옆자리여야 격이 맞으니까.하지만 카시안은 제 곁의 내밀한 자리를 내어주기는커녕, 출처도 모를 천박한 계집을 데려와 끼고 돌았다.그런 블랑을 밀어내기 위해서 타티아나를 동쪽 별궁에 슬쩍 밀어 넣어 판을 깔아준 것도 아이린 자신이었다.그런데 그 진흙탕 싸움을 구경하다 보니, 문득 불쾌한 역겨움이 치밀어 올랐다.‘천박한 계집들을 곁에 두고 이리저리 굴러먹은 사내를 굳이 내 반려로 취해야 할까?’아이린의 차
Huling Na-update: 2026-07-10
Chapter: 119화
카시안이 예고도 없이 서쪽 별궁의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을 때, 처소 안의 공기는 얼음장처럼 얼어붙어 있었다.“폐하? 갑자기 어쩐 일로…….”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던 블랑이 놀란 듯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카시안의 시선은 블랑이 아닌, 그녀의 발치에 꿇어앉아 차를 내리던 에다에게 곧장 꽂혔다.탐색전의 시작.카시안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블랑. 네 시녀가 백합관의 안주인에게 아주 단단히 눈도장을 찍은 모양이군.”“……예?”“그녀가 이 아이의 손길이 아니면 안 되겠다고 고집을 부려. 내 친히 이 아이를 동쪽 별궁으로 데려갈까 하는데.”순간, 블랑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카시안은 그 찰나의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고 블랑의 속내를 파헤치려 눈을 가늘게 떴다. 네가 일부러 에다를 보낸 것이 아니냐는, 소리 없는 압박이었다.그런데 그 순간, 카시안의 계산을 완벽하게 부숴버리는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폐, 폐하! 부디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찻잔을 내려놓은 에다가 다급하게 카시안의 발치로 기어가 납작 엎드린 것이다.“에다, 너 지금 무슨……!”“마님, 용서하십시오! 하지만 저도 살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에다는 블랑의 당황한 부름을 잔인하게 끊어내며, 카시안을 향해 필사적으로 호소했다.“폐하께서 동쪽 별궁의 마님을 얼마나 끔찍이 아끼시는지 똑똑히 보았습니다! 언제 버려질지 모르는 작위뿐인 백작의 곁에서 매일같이 불안에 떠느니, 차라리 진정한 태양의 그늘 아래서 뼈를 묻고 싶습니다! 부디 제 충성을 백합관에 바치게……!”짝-!!에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허공을 가른 블랑의 손이 자비 없이 에다의 뺨을 후려쳤다.“이, 이 천박하고 배은망덕한 것!”고개가 꺾인 에다의 입술이 터져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하지만 블랑은 멈추지 않았다.독기가 바짝 오른 눈동자, 수치심과 배신감에 사시나무처럼 떠는 두 손.영락없이 믿었던 수족에게 뒤통수를 맞고 이성을 잃은 얼굴이었다.“그렇게 가고 싶었으면 내게 청을 할 것이지, 감히 누구에게……!
Huling Na-update: 2026-07-09
Chapter: 118화
짙은 수증기가 맴도는 백합관의 욕실.따뜻한 물에 몸을 푹 담갔다 나왔음에도, 타티아나의 표정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아파. 살살 좀 닦아내지 못해?”“죄, 죄송합니다, 마님!”시녀가 사색이 되어 수건을 거두었지만, 타티아나의 신경질적인 짜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오늘따라 몸을 감싸는 고급스러운 백합 오일의 향기마저 겉도는 기분이었다.전혀 개운치 않았다. 어깨부터 허리까지 짓누르는 듯한 뻐근함과, 출산 이후로 묘하게 무거워진 몸의 피로가 전혀 가시질 않았다.문득 며칠 전, 제 수발을 들었던 낯선 시녀의 손길이 떠올랐다.이름조차 묻지 않았던 밑밑한 인상의 하녀였건만, 그 손끝의 압력만큼은 기가 막혔다.뭉친 근육의 결을 정확히 찾아내어 부드럽게 풀어주며, 뼛속까지 스며든 피로를 씻은 듯이 녹여내던 완벽한 마사지.그날 밤엔 징그럽게도 옥죄어 오던 압박감을 잊고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졌었는데.“너, 이리 와서 어깨 좀 주물러 봐.”“예? 예, 마님.”타티아나의 퉁명스러운 지시에 시녀가 긴장으로 굳은 손을 한 채 다가왔다. 고급스러운 백합 오일을 듬뿍 바른 손바닥이 타티아나의 매끄러운 어깨 위로 조심스레 안착했다.하지만 그뿐이었다. 피부 겉면만 미끄덩거리며 맴도는 손길은 그저 간지럽고 불쾌하기만 할 뿐, 잔뜩 뭉친 근육의 피로를 풀어주기엔 턱없이 부족했다.“장난해? 파리 쫓는 것도 아니고, 손에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가잖아! 제대로 안 주물러?”“아, 앗, 죄, 죄송합니다, 마님! 당장 다시……!”혼비백산한 시녀가 황급히 손끝에 잔뜩 체중을 실어 꾹 눌렀다. 그러나 근육의 결을 전혀 읽지 못한 채, 그저 딱딱하게 굳은 어깻죽지를 억센 악력으로 짓뭉개버린 꼴이었다.순간, 날카로운 통증이 타티아나의 뒷목을 타고 찌릿하게 뻗쳤다.“아악! 거기가 아니잖아, 이 멍청한 것아!”“히익! 소, 송구합니다……!”“무식하게 힘만 주고 누르면 다인 줄 알아? 살이 다 으스러지겠어! 어쩜 솜씨가 이다지도 조잡하고 형편없어!”결국 인내심이 바닥난 타티
Huling Na-update: 2026-07-07
Chapter: 117화
바닥에 엎드린 에다의 입술 사이로 기어코 그 이름이 흘러나온 순간.화장대를 쾅, 하고 내리쳤던 요란한 마찰음이 밀실의 공기 속으로 서서히 흩어졌다.숨 막히는 적막이 내려앉았다.에다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는 블랑의 눈동자에서, 일순간 흉흉하게 일렁이던 분노가 기조조차 없이 증발했다.천박하고 신경질적인 가짜 정부의 가면이 스르르 벗겨지고, 그 자리에 아르젠 제국 안주인의 얼굴이 내려앉았다.“……일어나.”낮고 기품 있는 음성이었다.아까 전 핏대를 세우며 악을 쓰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뼛속까지 고귀한 지배자의 억양.그 목소리에 에다가 흠칫 어깨를 떨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물범벅이 된 시선 끝에, 서늘하리만치 아름다운 호선을 그리며 웃고 있는 주군이 서 있었다.“아직 카시안의 눈을 속일 연기가 한참 남았건만. 기어코 내 가면을 벗겨내는구나, 에다.”“폐하……!”“쉿. 목소리 낮춰. 네가 방금 내 입으로 이곳의 룰을 말해주지 않았나. 내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블랑은 우아한 손길로 치맛자락을 털어내며 다시 소파에 깊숙이 기대어 앉았다. 카시안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던 불안한 여자는 온데간데없고, 판을 쥐고 흔들 포식자만이 남아 있었다.“동쪽 별궁의 문턱이 높다지? 네 얄팍한 핑계로는 두 번 다시 접근하기 어려울 터.”하지만 에다는 주눅 드는 대신, 눈물 자국이 남은 얼굴로 슬며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아르센 최고의 시녀이자, 다시는 실망 시키지않을 유능한 심복의 얼굴이었다.“아니요. 곧 그곳에서 먼저 저를 찾을 겁니다.”“먼저 널 찾는다고?”“예. 그럼 폐하, 아니, 마님께서는 그저 못 이기는 척 저를 그곳으로 보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에다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블랑이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까딱였다.“가져갔던 백합 오일로, 아주 공을 들여 마사지를 해두고 왔거든요.”“……마사지?”“감옥 같은 성역에 갇혀 몸도 마음도 잔뜩 굳어 있던 터라, 제 손길이 아주 달게 느껴졌을 겁니다. 성심성의껏 주물러 놓고 왔지요.”그
Huling Na-update: 2026-07-03
Chapter: 116화
서쪽 별궁으로 돌아왔을 때, 블랑은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처소의 문을 밀고 들어섰지만, 으레 다가와 숄을 받아 들던 부산스러운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불 꺼진 난로와 차갑게 식은 찻주전자. 넓은 거실에는 사람의 온기라곤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에다?”어깨에 두른 케이프를 벗어 소파에 던졌지만, 황급히 다가와 옷가지를 챙기는 익숙한 손길은 없었다.침실과 드레스룸까지 슬쩍 훑어보았으나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하기만 했다. 아이린을 만나고 온 터라 예민해진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섰다.미간을 좁힌 블랑이 몸을 돌려 다시 복도로 나섰다.마침 종종걸음으로 지나가는 하급 시종 하나가 눈에 띄었다.“거기.”“예, 예? 부르셨습니까요, 마님!”“에다가 보이지 않군. 주인이 비운 처소를 내팽개치고 어딜 간 거지?”서릿발 같은 음성에 시종이 어깨를 잔뜩 움츠리며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그, 그것이……. 아까 별궁을 빠져나가 동쪽 별궁 부근을 기웃거리는 것을 보았습니다.”“동쪽 별궁?”시종의 입에서 흘러나온 대답은 블랑의 심기를 차갑게 얼어붙게 만들었다.“예, 예. 어찌나 발걸음이 바쁘던지……. 품에는 백합 오일이랑 고급 목욕 소품들을 바구니에 한가득 챙겨 들고서요.”블랑의 입매가 싸늘하게 굳었다.‘설마, 주인의 물건까지 바리바리 싸 들고 알랑거리러 간 것일까?’전생의 참혹한 운명에서 자결하려던 에다를 거두어, 어떻게든 살려보겠다고 드라켄의 포로로 위장시켜 빼돌려 주었다.그런데 또다시 제 욕망을 채우려고 그 동쪽 별궁의 여자에게 줄을 대러 갔다?‘두 발 달린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더니. 내 목숨을 빚지고도 또다시 그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겠다는 건가.’배신감과 서늘한 분노가 가라앉기도 전, 굳게 닫혀 있던 처소의 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에다가 주변을 기민하게 살피며 은밀히 스며들어왔다.소파에 기대어 앉은 블랑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어딜 쏘다니다 온 거지?”“마, 마님. 다녀오셨습니까.”“주인이 자리를 비운
Huling Na-update: 2026-06-27
환관의 비

환관의 비

#동양풍 #피폐물 #고수위 #삼각관계 #황제공 #조련남 #계략남 #순진녀 #절륜녀 단 사흘. 황제의 발목을 잡으려던 그 짧은 시간은 제국의 역사를 뒤바꿀 지독한 집착의 시작이 된다. “내 씨를 받아내겠다던 그 당돌한 입술로, 이제는 목숨을 구걸해 보거라.” 피를 뿌려서라도 미옥을 제 곁에 묶어두려는 오만한 포식자, 황제 연호. “너를 빚은 것은 나다. 그러니 네 영혼의 마지막 조각까지 내 것이어야지.” 미옥을 황좌에 앉혀 제국을 손에 넣으려는 잔혹한 설계자, 주인 하륜. 두 남자가 감춰두었던 발톱을 드러내며 서로의 목을 겨누는 사이, 미옥의 뱃속에는 주인을 알 수 없는 핏줄이 자라나기 시작하는데……. 그 아이의 아비가 밝혀지는 순간, 제국은 가장 잔혹하고도 뜨거운 불길에 휩싸인다.
Basahin
Chapter: 346 화
같은 시각, 깊은 밤이 내려앉은 연화당.미옥은 거울 앞에 앉아 제 얼굴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거울 속 여인의 입술은 붉게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조금 전, 하륜이 집요하게 짓이기고 삼켜낸 지독한 흔적이었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혀끝이 아릿할 정도로 통증이 선명했다.미옥은 화장대 한구석에 놓인 작은 백자 합을 집어 들었다. 얼마 전, 하륜이 직접 옥안(玉顔)을 가꿀 때 쓰라며 쥐여주었던 연고였다.손가락 끝에 덜어낸 투명한 연고를 부르튼 입술 위에 얇게 펴 발랐다."……!"그 순간, 미옥의 두 눈이 기이함에 커졌다.상
Huling Na-update: 2026-07-17
Chapter: 345 화
물건이 도착하기도 전에 미리 싼값에 사들일 권리를 확보하고, 값이 오르자 그 권리 자체를 팔아 막대한 이문을 남겼다. 하륜도 혀를 내두를 만큼 기민하고 계산적인 수완이었다.“대단한데……. 값이 오를 거라는 것을 어떻게 미리 알았지?”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사혁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알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도박이었을 뿐입니다. 틀려도 본전은 하겠지 싶은.” “그렇다면 더욱 대단하군. 내가 없었으면 큰 상단의 주인이 되고도 남았겠어.”‘여기서 더 말리면 결국 말이 막힐 터.’사혁은 재빨리 말을 돌렸다."덕분에 사병들과
Huling Na-update: 2026-07-17
Chapter: 344 화
어스름한 저녁놀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하륜의 사가(私家).적막이 감도는 방 안, 사혁은 희미한 촛불에 의지해 탁상 위에 펼쳐진 장부를 넘기고 있었다. 사각거리는 붓끝이 종이 위를 스칠 때마다 막대한 액수의 은자가 수치화되어 기록되었다.[서역산 최상품 비단 오십 필. 은자 삼천 냥으로 환전 완료.]얼마 전, 미옥이 조운선에게 받은 것을 넘겨준 물건이었다. 사혁은 이 눈에 띄는 사치품을 도성에 점조직으로 깔아둔 유령 상단을 통해 완벽하게 은자로 세탁했다.서역에서 넘어온 귀한 밀무역품이라는 소문 하나에,
Huling Na-update: 2026-07-17
Chapter: 343 화
오후의 햇살이 비스듬히 떨어져 내리는 연화당.단정한 관복 차림의 하륜은 흠잡을 데 없는 상선의 얼굴로 미옥에게 고했다."이곳 연화당에 편전을 더하라는 황명(皇命)이 떨어졌습니다. 조만간 대대적인 공사가 진행될 터이니, 처소를 잠시 옮기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미옥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나른하게 휘어지는 눈웃음을 지었다. 오늘 아침 편전에서 자신이 꽂아 넣은 개가 대신들의 밥그릇을 완벽하게 박살 냈다는 소식을 익히 들은 참이었다.그저 요직에 앉혀주었을 뿐인데, 조운선이 제 기대 이상으로 아주 쓸만한 사냥개 노릇을 해주었다고 여겨
Huling Na-update: 2026-07-16
Chapter: 342 화
“폐하께서 옥체를 수고롭게 하시며 매일같이 연화당으로 행차하시니, 저들이 저리 귀비 마마를 물고 늘어지는 것 아닙니까!”조운선은 편전이 떠나가라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그러니 아예 정무를 보시는 편전을 귀비 마마께서 계신 연화당으로 옮기십시오! 마침 저 무능한 자들에게서 거둬들일 막대한 재물이 있지 않습니까! 그 재물로 연화당을 황국에서 가장 화려하게 보수하시어, 귀비 마마를 향한 폐하의 애정을 만천하에 과시하십시오!"조운선의 피를 토하는 듯한 뻔뻔한 주청이 끝나자, 편전에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기괴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Huling Na-update: 2026-07-16
Chapter: 341 화
높은 단상 위, 화려한 황좌에 깊숙이 몸을 기댄 연호가 말없이 단상 아래를 훑어내렸다. 고조되는 언성 속에서도, 그의 붉은 입술 사이로는 희미한 비웃음만이 새어 나올 뿐이었다.오늘 아침, 연호가 던진 한 장의 조서(詔書)가 편전을 발칵 뒤집어 놓은 참이었다.[실무 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고관대작들의 명예직 녹봉을 전면 삭감하고, 면세 혜택을 받던 세습 영지를 국고로 환수한다.]능력을 증명하지 못하는 자는 가문을 불문하고 밥줄을 끊어버리겠다는, 황국의 오랜 악습을 도려내는 날 선 칼날이었다."폐하! 재고(再考)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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