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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3화

Author: 십일
이건 재석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런데 재석은 웃으며 말했다.

“내 여자 친구랑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서 그러지. 이것도 나름대로 시간 아끼는 거지. 그리고... 내 마음이야.”

그렇게 말하고는 기분 좋게 발걸음을 옮겼다.

실험실에는 정은이 이미 와 있었다.

조금 뒤에 서준과 민지가 들어왔다.

“정은 언니, 좋은 아침이에요!”

“응, 좋은 아침.”

민지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저 아침 가져왔어요! 한입 해볼래요?”

정은은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이미 먹었지만, 서준이 요리 솜씨는 한번 맛봐야지.”

민지는 눈이 동그래지며 물었다.

“서준이가 만든 건지 어떻게 알았어요?”

정은은 실험복을 입는 서준을 힐끔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냥 느낌!”

“느낌이라니요...?”

민지가 재차 물었다.

정은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너처럼 먹는 걸 사랑하는 애를 잡으려면, 서준이도 실력이 있어야지.”

‘헉, 부끄러워...’

민지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정은은 이미 관심을 돌려 음식 맛을 보기 시작했다.

“꽤 솜씨 있는데? 꽈배기도 아주 폭신하고 모양도 예뻐. 평소에도 연습 많이 한 것 같아.”

민지는 신나게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네, 저도 진짜 맛있다고 생각했어요...”

...

오후, 정은은 약속보다 일찍 자리를 정리하고 오미선 교수의 집으로 향했다.

“정은이 왔구나...”

“아주머니.”

정은은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애영은 얼른 정은의 손에 들린 쇼핑백을 받아서 들었다.

“또 뭘 이런 걸 사 오고 그래? 교수님 보면 또 잔소리하신다니까.”

정은은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아주머니한테 뭐라고는 하시겠지만, 과일 깎아서 옆에 내놓으면 결국 다 드실 거예요.”

“그건 그래.”

박애영은 피식 웃었다.

“정은이가 사 온 거라면, 입맛 없어도 몇 조각은 꼭 드시거든.”

정은은 신발을 갈아 신고 안으로 들어섰다.

“교수님은 어디 계세요?”

“서재에 계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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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006화

    “아이고!” 박애영이 소리치자, 재석과 정은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네 사람의 눈이 서로를 마주하고, 짧은 침묵이 거실을 가득 메웠다.가장 먼저 몸을 일으킨 건 정은이었다. “교수님...” 오미선이 놀람에서 겨우 정신을 차렸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고, 몇 초가 지나서야 겨우 목소리가 나왔다. “정은아, 너랑 재석이...?” 잠시 후, 재석이 자연스럽게 정은의 손을 잡았다. “교수님, 저희... 사귀고 있어요.” 오미선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재석을 바라보는 듯하면서도, 왠지 다른 누군가를 겹쳐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다 부드럽게 웃었다. “그래? 참 잘됐다. 언제부터야?”“얼마 전부터요. 이제야 확실해졌어요.” 재석이 담담하게 말했다.“어쩐지... 오늘 밤 갑자기 오겠다 하더니.” 오미선의 눈빛이 장난스럽게 번졌다. “나를 보러 온 게 아니었구나?”재석이 어색하게 헛기침했다. ‘으악, 뭔가 다 들킨 기분이다.' “자자, 다 앉아. 애영아, 그 호박죽 좀 재석이한테 줘.” “네!” 박애영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그릇을 집어 들었다. “진짜야? 재석이랑 정은이, 진짜로 사귀는 거야?”정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이제 교수님 댁에 올 때 둘이 같이 오는 거야?” “아마도요. 아주머니께서 한 사람 밥을 더 해주셔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정은이 웃으며 말했다.“그게 뭐 어렵니? 한 사람은커녕, 나중에 너희 둘 결혼해서 애까지 낳으면, 그 애도 데리고 오렴. 난 하나도 귀찮지 않아!” ‘크악... 이걸... 어떻게 받아쳐야 하지? 답이 없네.' 재석은 속으로 생각하며 조용히 그릇을 비웠다. 오미선이 물었다. “더 먹을래?” 재석은 손을 내저었다. “아니요, 충분히 먹었어요.” “그래, 그럼 나랑 서재 좀 다녀오자.” “네??” 재석이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정은도 괜히 궁금해져서 따라가려 했지만, 박애영이 잽싸게 그녀를 붙잡았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005화

    정은이 철제 뚜껑을 열자, 상자 안에는 작은 박스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어떤 것들은 정성스럽게 포장까지 되어 있었다. 맨 위에 있던 건 분홍색 박스였다. 정은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검정 매직으로 휘갈겨 쓴 ‘세영’이라는 글자 때문이었다. ‘참, 기가 막히게도...’졸업사진 속에서도 정은은 단박에 세영을 알아봤다. 단지 예뻐서만은 아니었다. 찰칵- 셔터 소리와 함께, 모든 게 멈춰버린 순간. 남자애는 고개를 살짝 돌린 채, 옆에 서 있는 여자애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이 찍힐 때, 아마 세영은 막 고개를 돌리려던 찰나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미세한 움직임은 사진 속에서 크지 않았지만, 시선만큼은 확실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바로 재석을 향해 있었다. 오미선이 물었다. “오늘 차 가지고 왔지?” “네.” 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다. 이 상자 좀 재석이한테 전해줘. 그동안 내게 맡겨져 있었는데, 나도 거의 잊고 있었네.” “알겠어요.” 정은은 상자를 들고 차 트렁크에 실었다. 그리고 다시 거실로 돌아가, 오미선과 함께 TV를 봤다. 발을 따뜻한 물에 담그고 족욕을 끝낸 오미선을 확인한 후, 정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밖에서 박애영의 신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조금 거리가 있어서, 또 끊겨서 정확히 들리지는 않았다. “어? ...너잖아? 여기 웬일이야?” “빨리빨리, 어서 들어와!” 몇 초 지나지 않아, 박애영이 쿵쿵 뛰어 들어왔다.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소리쳤다. “교수님, 보세요! 누가 왔는지!” 오미선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바로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재석아! 어쩐 일이야?!” 재석은 담담하게 말했다. “교수님 뵈러 왔어요.” ‘거짓말도 적당히 하지.’‘밤늦게 빈손으로 찾아오는 사람치고, 진짜 어른을 뵈러 오는 경우는 없지.’ ‘핑계도 참 허술하다니까.’정은은 속으로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004화

    “아... 세영이 말하는구나.” 오미선이 바로 대답했다.“세영이요?”“응, 본명은 구세영이야. 재석이랑 동기였는데, 들은 얘기로는 그때 학교에서 제일 예뻤다더라.”정은은 사진을 한 번 더 들여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예쁘네요.”구세영은 화장기 없는 얼굴에, 옆으로 내린 앞머리, 높이 묶은 포니테일... 평범하기 그지없는 차림이었지만, 눈에 확 띄었다.그녀는 아무리 꾸밈없어도, 예쁜 건 숨길 수가 없었다.오미선이 웃으며 덧붙였다. “세영이랑 재석이, 한때 학교에서 사귄다는 소문도 있었지.”그러면서 옛일을 떠올리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근데 재석이는 다른 학과로 전과하고, 세영이는 유학 가버려서... 소문은 자연스럽게 사라졌어.”잠시 뜸을 들이던 오미선이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재석이 그 뒤로도 연애도 한 번 제대로 안 했거든. 혹시 아직도 옛날 생각하는 걸까 싶기도 하고... 근데 왜 갑자기 세영 얘기가 궁금했어?”정은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그냥요. 사진 보다가 궁금했거든요.”“애영이는 어디 갔지? 네가 온다고 해서, 내가 애영이한테 호박죽에 찹쌀떡 좀 끓여달라고 부탁했거든.”오미선이 말했다.“애영 아주머니는 장 보러 가셨어요. 괜찮아요, 제가 직접 덜어 먹을게요.”“그래? 그럼 나도 조금만 가져다줘. 반 공기만.”정은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오미선이 눈을 크게 떴다.“의사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당을 줄여야 한다고요.”정은이 다시 설명했다.오미선은 당황해서 손사래 쳤다. “아니, 호박죽에 들어간 약간의 찹쌀떡은 당도 아니야! 설탕도 아주 조금 넣었는데!”정은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안 돼요.”‘아, 완전 단호하다.’오미선은 겉으로 정은의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속으로는 제자의 마음을 이해했다. 정은은 다정하게 덧붙였다. “대신 제가 소고기 버섯 죽 끓여드릴게요.”“좋다, 좋아!”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오미선이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003화

    이건 재석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런데 재석은 웃으며 말했다. “내 여자 친구랑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서 그러지. 이것도 나름대로 시간 아끼는 거지. 그리고... 내 마음이야.” 그렇게 말하고는 기분 좋게 발걸음을 옮겼다.실험실에는 정은이 이미 와 있었다. 조금 뒤에 서준과 민지가 들어왔다.“정은 언니, 좋은 아침이에요!” “응, 좋은 아침.” 민지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저 아침 가져왔어요! 한입 해볼래요?”정은은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이미 먹었지만, 서준이 요리 솜씨는 한번 맛봐야지.”민지는 눈이 동그래지며 물었다. “서준이가 만든 건지 어떻게 알았어요?”정은은 실험복을 입는 서준을 힐끔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냥 느낌!”“느낌이라니요...?” 민지가 재차 물었다.정은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너처럼 먹는 걸 사랑하는 애를 잡으려면, 서준이도 실력이 있어야지.”‘헉, 부끄러워...’ 민지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정은은 이미 관심을 돌려 음식 맛을 보기 시작했다.“꽤 솜씨 있는데? 꽈배기도 아주 폭신하고 모양도 예뻐. 평소에도 연습 많이 한 것 같아.”민지는 신나게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네, 저도 진짜 맛있다고 생각했어요...”...오후, 정은은 약속보다 일찍 자리를 정리하고 오미선 교수의 집으로 향했다. “정은이 왔구나...” “아주머니.” 정은은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박애영은 얼른 정은의 손에 들린 쇼핑백을 받아서 들었다. “또 뭘 이런 걸 사 오고 그래? 교수님 보면 또 잔소리하신다니까.”정은은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아주머니한테 뭐라고는 하시겠지만, 과일 깎아서 옆에 내놓으면 결국 다 드실 거예요.” “그건 그래.” 박애영은 피식 웃었다. “정은이가 사 온 거라면, 입맛 없어도 몇 조각은 꼭 드시거든.”정은은 신발을 갈아 신고 안으로 들어섰다. “교수님은 어디 계세요?”“서재에 계셔.”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002화

    저녁은 분위기 좋은 양식집에서 먹기로 했다.자리에 앉자마자 미진이 살짝 태민의 소매를 당겼다. 작게 속삭이며 물었다. “여기 꽤 비싼 데 아니야?”태민이 고개를 돌려 조용히 답했다. “누나, 1인당 15만 원이요.” 미진은 숨이 턱 막힌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전 교수... 진심 작정하고 조 교수를 지갑 털기로 했구나.” 태민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근데 말이죠, 조 교수님은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예요. 실험실 나올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웃고 계세요.”“그러고 보니 그렇네. 네가 말 안 했으면 몰랐겠다. 요즘 조 교수님 표정이 엄청나게 부드러워졌더라? 사람이 달라졌어. 친절하고 말도 예쁘게 하고.”태민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만 느낀 게 아니었군요. 근데... 뭔가 좋은 일 있으신 걸까요?”미진은 고개를 저었다. “딱히 생각나는 건 없는데...”‘근데 진짜 이상하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음식은 가격 값을 톡톡히 했다. 다들 만족스러운 얼굴로 식사를 이어갔다.정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푸아그라 괜찮네요.”바로 그 순간, 정은 접시에 푸아그라가 하나 더 놓였다. 재석이 포크를 슬쩍 치우며 말했다. “마음에 들면 더 먹어.”자기 몫을 그냥 내어준 것이다. 그 장면을 본 진욱이 바로 반응했다. “재석아, 나는 스테이크 맛있던데.”“응, 나도 좋더라.”‘뭐야, 진심 그게 다야?! 줘도 못 먹네...’진욱은 주변을 둘러봤다. 미진과 태민은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얼굴.‘아니, 지금 음식 나눠 먹고 있는데도 아무 반응 없어...?’‘둘이 원래 그렇게까지 친했나?!’그때 마침 정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다 먹었어요.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재석이 정은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더 시킬 거 있어?”다들 고개를 저었다. “아뇨, 배불러요.”“그럼 계산하고 올게.”말을 끝내자마자 재석도 일어섰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정은의 뒤를 따라 나갔다.진욱은 혀를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001화

    정은은 용기 내서 입을 열었다. “아, 아뇨... 전 교수님, 그런 건 아니고요...”진욱은 뭔가 제대로 맞은 사람처럼 목소리가 확 작아졌다. “그럼, 네가... 네가 원해서 그런 거야?”“네...”진욱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통탄했다. “정은아, 넌 진짜 좋은 애잖아. 눈 낮출 이유도 없고, 너라면 멀쩡한 남자 충분히 만날 수 있는데... 하필 왜, 왜 재석이냐?!”재석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내가 뭐 어때서? 나 좋아하면 안 돼?”“닥쳐! 너한텐 안 물었어! 정은한테 말한 거거든?!”정은은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살짝 돌려 그를 바라봤다. “재석 씨, 좋은 사람이에요.”“뭐가 좋다는 건데?!”“다정하고, 배려심 있고, 성숙하고, 안정감 있고, 똑똑하고, 인내심 있고, 말도 예쁘게 하고, 매너도 좋고요...”재석은 말없이 미소를 지었고, 눈빛이 한층 더 부드러워졌다.‘봐, 이런 칭찬 들으면 사람이 미소 안 지을 수 있겠냐고.’진욱은 입 안에 단내가 확 돌았다. “그래, 알겠어. 뭐, 정은이가 오케이 했다면야 내가 할 말 없지...”그러나 잠시 후, 눈이 번쩍 뜨였다. “잠깐, 너희 언제부터야?”재석은 담담하게 말했다. “2주 전.”“와... 야, 너 진짜 너무한다! 내가 널 어떻게 생각했는데! 나한텐 말 한마디도 없이?!”“말했지. 네가 안 믿었을 뿐.”“언제?!”“어제. 너한테 문자 보냈잖아. ‘우리 함께 가기로 했다’고.”“아니 그건... 너네가 과제 같이 하기로 했다는 줄 알았지, 누가 그걸 연애로 이해하냐?!”전욱이 아주 어이가 없었다. 재석은 차분히 말했다. “과제를 핑계 삼아 밤 11시에 여자 집에 가는 사람, 본 적 있냐?”“뭐?!”진욱은 완전히 폭발했다. “야! 그럼 너 정은이네에 가서 과제 안 하고 뭐 했는데?!”순간, 재석은 할 말이 잃었다.‘이걸 굳이 설명해야 하나...? 아니, 굳이 말 안 해도 알겠지... 아니면 말든가.’...조미진은 오후의 여유를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000화

    쾅!휴게실 문이 세차게 열리는 순간, 진욱의 입에서 나오려던 말은 그대로 목에 걸려버렸다.그리고 그는, 마치 조각상처럼 문 입구에 얼어붙었다.진욱은 두 눈을 세차게 깜빡였지만, 눈앞에 펼쳐진 충격 실화는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여자의 가느다란 허리를 단단한 남자의 팔이 감싸 안고 있었다.정은은 고개를 살짝 들고 있었으며, 재석은 고개를 숙인 채 그 얼굴을 가까이 두고 있었다. 두 사람의 입술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고, 그 사이의 시선은 아직 끊어지지 않은 실처럼 이어져 있었다.‘이게 지금 뭐야? 드라마 찍냐고...?’실내에는 어쩐지 흐릿하고 달콤한 공기가 남아 있었다. 그건 진욱이 문을 열며 불어넣은 바람에도 흩어지지 않았다.정은과 재석 사이에서 피어난 ‘봄’은, 그야말로 진욱의 얼굴을 와락 껴안는 듯했다.입술이 파르르 떨던 진욱은 손끝을 겨우 제어했다.“너... 너너너... 너, 너희 둘...”그때, 멀리서 다가오는 조미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 교수, 정은이랑 조 교수님 찾았어?”‘헉... 안 돼, 이건 지금 들키면 안 돼!!’진욱은 본능적으로 문틈에 몸을 밀어 넣듯 들어갔고, 순식간에 문을 반대로 당겨 ‘쿵’ 소리 나게 닫았다.미진 도착 1초 전, 완벽한 타이밍.“응?” 미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 문 닫혔지? 맞지? 확실히 뭔가 있었는데...”그 순간, 손태민도 따라왔다. “미진 누나? 전 교수님 안에 계세요?”“아, 나도... 정확하진 않은데... 뭔가 있었던 것 같긴 해...”‘뭐지... 방금 그림자도 스쳤고, 문 닫히는 소리도 났는데...’‘근데 왜 전 교수가 문을... 혼자 들어갔나?’“전 교수님? 무슨 상황이에요? 안에 계세요?”태민이 다시 물었다.안에서 진욱은 등과 손바닥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지만, 간신히 목을 가다듬고 일부러 가볍게 웃어 보였다.“아, 어! 괜찮아! 조 교수랑 정은이랑 얘기 좀 나누고 있는데, 조금 이따 바로 갈게.”“응.” 미진은 문을 한 번 더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99화

    “아팠어?” 재석의 숨소리는 여전히 가쁘고 뜨거웠다.정은은 그를 밀치며,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미쳤어요?! 여기가 어딘지 알아요? 실험실이란 말이에요!”“그래서?” 재석은 오히려 태연했다.“일하는 곳이에요! 집도 아니고... 지금 뭐 하는 거예요?!”‘진짜... 갑자기 키스는 또 뭐야... 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니야?’재석은 천천히 숨을 내쉬며, 조용히 말했다. “반은 맞았어.”“뭐가요?”“여긴 실험실이기도 하지만, 내 휴게실이기도 해. 걱정하지 마. 프라이빗한 공간이니까 아무도 안 와.”정은은 입을 꾹 다물었다. ‘문제는 프라이빗한 게 아니잖아. 그게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니까...’“쉬...”재석이 자기 코끝으로 정은의 코를 부드럽게 문질렀다. “말하지 마. 계속... 키스하고 싶으니까.”‘이 사람 진짜... 도대체 언제 이렇게 능숙해진 거야...’“호흡해. 숨 멈추지 말고.”정은은 할 말이 너무 많았지만... 말 대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조심스레 남자의 키스를 받아들였다.‘이거... 내가 가르쳐준 거였는데...’ ‘이젠 완전 능숙하잖아. 하... 남자는 이런 쪽에 참 빠르다니까.’“자기야, 집중해.” 남자의 낮고 깊은 목소리에, 정은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점점 더 가까워지는 두 사람의 숨결. 정은의 몸이 천천히 힘을 풀며 기대오자, 재석의 눈이 살짝 휘어지며 웃음을 머금었다. 남자의 입술은 점점 더 탐욕스러워졌고, 시간은 그렇게, 조용히 흘러갔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재석은 그제야 숨을 고르며 정은을 놓아주었다.정은은 마치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크게 숨을 들이켰다. 정신이 겨우 돌아오자, 반사적으로 유리 테이블 위의 생수병을 집어 들었다.한 모금 마시고 나서야 깨달았다. ‘잠깐... 아까 그 ‘목마를 테니까’... 그게 이런 뜻이었어?!’“조 교수님, 이렇게... 위험한 사람인 줄 몰랐네요!”재석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물었다. “왜? 자세히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98화

    다음 날, 정은은 실험실에 들어섰다. 서준과 민지는 이미 와 있었다.“정은 언니!” “아버님은 괜찮으셔? 일은 다 잘 마무리됐지?” 민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다 끝났어요! 서준이 덕분에...”정은은 두 사람을 천천히 스윽 훑어보고는, 잔잔히 웃었다. “하마터면 잊을 뻔했네. 축하해, 두 사람. 결국 사랑이 이루어지는구나.”민지의 두 뺨이 사르르 물들었다. 서준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누나, 같이 축하해요.”정은이 눈썹을 살짝 추켜세우자, 민지가 작게 외쳤다. “맞아요! 언니, 우리한텐 얘기도 안 하고, 조 교수님이랑 사귀게 된 거예요?”‘역시 눈치챘군.’“굳이 말 안 해도, 다 알고 있었잖아?” “그렇지만...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잖아요!”정은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데이트하러 간다고 했잖아, 그 정도면 눈치챘어야지.”민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게 그렇게 대놓고 말한 거였어? 나만 몰랐나...’오후, 정은은 학교에 들렀다가 재석에게 자료를 전해주려 연구실에 들렀다.“정은이다!” 진욱이 그녀를 보자마자 손에 쥐고 있던 걸 내려놓고,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교수님, 오랜만이에요. 요즘 잘 지내세요?”진욱은 피곤한 듯 웃으며 대답했다. “그럭저럭... 야근이 조금 심하긴 해...” 뒷말은 살짝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누가 들을까 조심스럽게.“그럼 조 교수님께 말씀드려야죠. 과제 좀 줄여달라고요. 밥도 천천히 먹어야 소화가 되잖아요?”진욱은 양손을 ‘탁’ 치며,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듯 말했다. “봐! 역시 정은이는 내 마음을 제일 잘 알아!”“작은 디저트 좀 사 왔어요. 생활 구역에 놔뒀는데, 교수님이 다른 분들께 말씀 좀 해주실래요? 요즘 날이 더워서 생크림 녹을까 봐요.”“와, 정은이 진짜 세심하다. 그냥 오면 되지, 무슨 디저트까지 챙겨오고 그래. 지금 당장 알려줄게!”“네.” 정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조 교수님은요?”“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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