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한, 설!”시호는 이를 갈며 당장이라도 그를 찢어놓을 듯한 얼굴이었다....편의점을 나선 한설은 더 이상 슬아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아무 호텔 앱이나 켜서 근처의 5성급 호텔 하나를 골라 체크인했다.다음 날 아침, 슬아가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에 한설이 남긴 카톡 알림이 박혀 있었다.[일 들어와서 나갔어.]시간은 오늘 아침 7시 15분.슬아는 바로 영상통화를 눌렀지만,연결되지 않았다.점심쯤 돼서야 한설이 위치를 보냈다.지도가 뜨자, 표시된 곳은 이미 T국이었다.“진짜 빨리도 가네... 설날인데, 나랑 연휴 끝까지 보내고 가는 게 그렇게 힘들어...?”슬아는 길게 한숨을 내쉰다.하지만 이런 적이 이미 한두 번이 아니라, 슬아는 결국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그때, 밖에서 노크 소리가 났다.“누구야?”슬아가 문을 열었다.조지훈이 서 있었다. 그는 슬아 뒤쪽을 슬쩍 훑어본 뒤 말했다.“혹시... 함께 차 한잔할 수 있을까?”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들어와.”지훈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좌우를 살피며 천천히 둘러보았다.“너... 혼자야?”“응.”“너 선배는?”“갔어.”지훈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슬아는 갑자기 돌아서서 지훈을 똑바로 바라봤다.“너 왜 왔어? 무슨 일 있어?”“그게... 들어가서 말하지.”현관에 선 채로, 슬아는 비닐 신발 커버 두 개를 꺼내 지훈에게 내밀었다.“자.”지훈은 받지 않았다.“내가 예전에 신던 슬리퍼는? 그거 신을래. 그게 편하거든.”슬아는 담담하게 말했다.“버렸어.”지훈은 순간 입꼬리가 떨렸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신발장 문을 열어 새 슬리퍼 한 켤레를 꺼냈다.“그럼 새로 하나 더 꺼내면 되잖아?”슬아는 황당하다는 듯 눈을 반쯤 뜨며 말했다.“아니, 그건 내가 산 건데? 네가 신고 싶다고 네 맘대로 그냥 갖다 신는 거야?”‘게다가... 너 같은 건장한 남자가 내 핑크색 리나벨 슬리퍼를 신겠다고?’‘진짜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지
“슬아야, 질문이 너무 많아.”그 뒤로 슬아가 어떻게 캐물어도, 한설은 더 이상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밤이 깊어지자, 한설은 외투를 걸치고 슬아의 집을 나서려 했다.“선배, 이렇게 늦게 어디 가?”“볼 일이 있어.”말을 끝내고 한설이 그대로 밖으로 향했다. 그러다 문턱에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본다.“집에 얌전히 있어. 따라오지 말고.”막 발동하려던 슬아의 도둑 심보가 한순간에 싹둑 잘려 나갔다.한설은 근처 편의점을 향해 커피 두 잔을 사서, 높은 의자에 앉아 조용히 누군가를 기다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와 한설 옆자리의 빈 의자에 앉았다.한설은 그에게 커피 한 잔을 밀어두며 말했다.“마셔.”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모자챙 아래 드러난 얼굴은 놀라울 만큼 잘생겨 있었다.시호가 곧장 물었다.“왜 멋대로 몽염주술을 풀었어?”“네가 먼저 약속을 어겼잖아. 그래서 난 제때 손을 뗀 거고.”시호는 비웃듯 미소를 흘렸다.“약속을 어겼다고?”한설의 표정은 단단히 굳어 있었다.“네 부탁으로 사람한테 손대기 전에 말했지. 우리 일은 함부로 목숨 건드리면 안 된다고. 너도 알겠다고 했고. 그런데 정작 대상이 암 환자였다는 걸 숨겼어. 그게 약속 위반이 아니면 뭐냐?”“그냥 악몽 꾸게 한 거잖아. 내가 죽이랬어?”“그래? 암 환자한테 악몽은 죽음과 매우 가깝지.”시호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내려앉는다.“수술했어. 암 이미 완치됐다고.”“내가 알기론, 지금 전 세계 어디에도 완치라는 단어를 쉽게 쓰는 암은 없어. 말장난하지 마.”“네가 먼저 은혜 갚겠다고 했지! 이제 와서 말 뒤집는 건 또 뭐야?”이를 악물고 있는 시호의 눈에 분노가 번진다.한설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은혜? 너는 너 자신을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는 거 아냐? 백설기 한 조각이었지. 그래, 제때 먹을 걸 준 덕에 살긴 했어. 인정해. 근데 그 백설기, 내 손에서 네가 ‘뺏어간’ 거였지?”시호의 동공이 순간 수축했다.“너.
김한규가 땅을 바라보며 말했다.“없습니다. 그 사람은 아주 조심스러웠어요.”...결국 지언은 김한규를 정말로 끌고 가진 않았다.앞으로 김한규를 미끼로 삼아, 배후의 진짜 인물을 낚아야 했기 때문이다.재석이 말하자 지훈도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우린 드러나 있고, 상대는 보이지 않게 숨어 있지. 뒤에 또 뭐가 준비돼 있을지 모르겠어.”지언이 응답했다.“그래도 우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는 아니잖아. 미리 대비하면 덜 당하긴 하지.”지훈은 분위기가 가라앉는 걸 보고 양손을 털듯 힘주어 말했다.“야, 그렇게들 우울해할 거 없어. 제일 중요한 건 어머니가 건강하시다는 거잖아. 재발 아니라고. 내일이면 드디어 우리랑 같이 집 가서 설 지내실 수 있어.”그 짧은 몇십 분 동안 지훈의 감정은 롤러코스터보다 더 심하게 오르내렸다.‘아까는 심장이 진짜 터지는 줄... 이건 재판보다 더 스릴 있네.’정은도 맞장구쳤다.“맞아요. 이게 큰 소식이죠.”그때까지 침묵하던 조기봉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동안 네 엄마가 자꾸 악몽 꾸던 것도... 그놈이랑 관련 있는 건가?”재석이 답했다.“아마 그럴걸.”지훈이 인상을 찌푸렸다.“근데 왜? 보고서 조작도 그렇고 악몽 만드는 것도 그렇고... 둘 다 어머니한테 당장 생명 위협을 주는 건 아니잖아. 그 사람이 이렇게까지 공들여서 뭘 얻는 건데?”‘그냥 겁주고 싶어서?’그건 아니었다.말한 순간 모두 침묵에 잠겼다.정은이 입술을 눌러 물었다.“여러분...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들어요?상대가 하는 행동이 서로 충돌해요. 마치... 정말로 큰 해를 끼칠 마음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진짜로는 손대기 싫은 것처럼요.”그 말은 묘하게 가슴에 걸렸다.일관성 없는 행동.그리고... 마치 누군가를 해치려다, 막판에 마음이 흔들린 사람처럼.“싫어한다?”지언이 눈썹을 치켜올렸다.“그 말... 왜 떠올랐는데?”정은은 고개를 저었다.“글쎄요. 그냥... 직감?”상대가 한 모든 행동이 강서원만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여긴 병원이에요! 공공장소라고요! 감히 절 함부로 데려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왜 못 데려가?”지언의 눈엔 노골적인 경멸이 어렸다. 시선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말투는 한치의 동요도 없었다.“조씨 집안의 영향력, 그리고 내가 SP그룹 대표이사라는 걸 고려하면, 당신 같은 사람 하나 처리하는 건 개미 밟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지.”“공공장소면 뭐? 내가 오늘 병원 사람들 전부 보는 앞에서 당신을 끌고 나가도, 내일 이 병원 직원들이 한목소리로 말할걸. ‘그런 일 본 적 없습니다.’ ‘김한규 교수요? 그날 병원에 안 왔는데요?’”김한규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그는 두려워했고, 공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지언은 느긋하게 셔츠 소매를 다듬었다.“재벌이 왜 재벌인지 알아? 돈이 우리 목적을 뭐든 이뤄주니까. 만약 못 이룬다면? 돈이 부족해서겠지. 근데 우리한텐 그게 가장 넉넉하거든.”그 순간, 지언은 마치 생살여탈권을 쥐고 사람 목숨을 장난처럼 굴리는 최상위 포식자 같았다.목소리, 표정, 분위기... 전부 완벽히 맞물려 있었다.그 모습에 리아조차 눈을 동그랗게 떴다.‘얘, 조지언... 이런 얼굴도 있었네?’‘집 가면 연구 좀 해봐야겠다.’지언이 턱을 움직여 신호했다.“자, 밖으로 끌고 가.”“잠깐만요!”김한규의 얼굴이 몇 번이나 뒤틀렸다. 겁이 너무 나서 숨소리까지 떨렸다.“말할게요! 전부 말할 테니까... 제발 저를 때리지만 말아주세요!”지언이 피식 웃었다.“하... 죽기 직전까지 와서도 조건을 붙여? 좋아. 교수님이 뱉는 정보가 개 한 마리 살려둘 가치라도 있는지, 들어보고 판단하지.”김한규는 얼굴을 감싸 쥐고 거의 오열하듯 말했다.“저, 저도... 사람한테 해 끼치고 싶었던 건 아닙니다. 근데 제 아내가 아파요. 지금 큰돈이 필요해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재석이 물었다.“누가 시켰어?”“저도 몰라요. 어느 날 야간 근무할 때 갑자기 전화가 왔어요. 강 여사님 상
“네, 알겠습니다.”전화를 끊은 재석의 눈빛은 완전히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그 시선이 곧장 김한규에게로 향했다.김한규는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지훈과 지언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지금 둘 사이엔 말이 필요 없었다.형제 간의 묘한 합이 폭발하며, 두 사람은 동시에 움직였다.한 명은 문을 닫고, 다른 한 명은 창문에 달린 커튼을 잡아 내렸다.리아는 그걸 보자마자 앞으로 나와 김한규의 팔을 뒤로 꺾어 제압했다.정은과 조기봉도 상황을 뒤늦게 이해한 듯 움직였고, 곁에 있던 두 명의 간호사는 금세 통제됐다.모든 일이 너무 순식간에 벌어져, 그 누구도 반응할 틈조차 없었다.김한규가 자신이 붙잡혔다는 걸 인지했을 땐 이미 병실은 철통같이 봉쇄돼 있었다.그와 함께 있던 두 명의 비서도 완전히 무력화된 상태였다.“이... 이 사람들 뭐 하는 겁니까?”김한규가 분노와 당황이 뒤섞인 목소리로 고함쳤다.재석이 앞으로 걸어 나섰다.“그 말, 제가 해야겠네요. 검진 센터랑 짜고 검사 결과를 위조해서, 환자에게 암이 재발했다고 속여서 대체 뭘 하려는 겁니까?”“조 교수님, 지금...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김한규는 진짜 모른다는 얼굴이었다.“무슨 공모, 무슨 조작입니까? 전 하나도 모르겠는데요?”“그래요?”재석은 비웃음을 흘렸다.그리고 김한규가 가져왔던 검사 보고서를 번쩍 들어 올렸다.“같은 샘플로 검사했는데, 왜 제가 외지의 다른 세 군데에 보낸 검사 결과는 전부... 우리 어머니에게 암 전이 징후가 전혀 없다고 나왔을까요?”“조재석, 그게 진짜야?”지훈의 눈이 확 뜨였다.지언도, 조기봉도 동시에 재석에게 시선을 돌렸다.“야, 너 샘플 언제 보냈어? 우리한테는 말도 안 하고?”재석이 말했다.“나도 그냥 느낌이 좀 이상해서. 괜히 먼저 말해서 다들 헛된 희망 품게 하기 싫었고. 그래서 혹시 몰라 샘플 네 개 준비했어. 하나는 김한규 교수님을 통해 보내고, 나머지 셋은 내가 직접 외지의 검진센터로 보냈지.”결과는
지훈은 그제야 오늘이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그 결과로 강서원에게 정말로 암이 재발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치료를 해야 하는지가 판가름 난다.‘그러니까 다들 온 거구나...’지훈은 먼저 ‘퇴마부’ 얘기와 슬아, 한설의 정체를 모두 설명해 주었다.“그래서 지금 안에서는... 어, 법사 같은 거 하는 거야?”지언은 단어 하나하나 고르면서 조심스레 말했다.이건 지언의 지식 범위를 한참 넘어가는 일이었다.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이해해도 돼.”의외로 리아는 잠깐 놀란 눈을 하다가 금세 차분함을 되찾았다.지언이 물었다.“리아 씨는... 뭐야, 왜 이렇게 담담해?”“뭘?”“아니, 이게... 믿을 만한 일인가 해서.”“세상에 희한한 일 많아. 과학으로 설명 안 되는 영역도 분명히 있지.”지언은 말을 잃었다.리아가 눈썹을 살짝 올렸다.“왜? 내가 틀린 말 했어?”“아냐, 그냥... 민슬아 씨라는 이름이 어디서 좀 들어본 것 같아서.”“옛날 연인?”“무슨 소리야?”지언은 입꼬리를 씰룩였다.“설령 그랬다고 쳐도, 그건 지훈이 문제지, 나랑 상관없다고.”“...”재석은 가져온 탕국을 보온병째 들고 정은과 나란히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정은은 궁금한 듯 안쪽을 힐끗 봤지만, 문의 유리창에는 신문지가 덮여 있어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십여 분쯤 지났을까, 문이 열렸다.슬아와 한설이 나왔고, 지훈은 바로 달려가 물었다.“어때?”슬아가 대답했다.“다 끝났어. 앞으로 사흘 동안은 찹쌀이랑 차 마시는 거 피하고.”“알겠어.”“너 들어가 봐. 나랑 선배는 먼저 간다.”그 말을 남기고 슬아와 한설은 돌아섰다.지훈은 뭐라 하고 싶어 입을 열었다가,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두 사람의 뒷모습이 계단 모퉁이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기만 했다....병실 안.강서원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마치 그동안 못 잔 잠을 몽땅 보충하기라도 하는 듯 고르고 깊은 숨소리가 들렸다.그때, 문이 열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