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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6화

작가: 십일
“뭐? 네 후배라고? 그럼 J시에서 왔겠구나? 어쩐지 표준어를 쓰더라니. 지금 너 같은 거지를 위해 나서는 거야? 쯧쯧쯧, 정말 믿을 수가 없구나...”

서지강은 미간을 찌푸렸다.

“지준아,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얼른 공격해!”

“알았어, 형!”

이때 남봉수도 절뚝거리며 안에서 나왔는데, 손에 식칼을 들고 있었다.

“이 아이들 건드리지 마!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 다 죽여버릴 거야!”

남봉수는 분노에 얼굴이 빨개졌고, 목에 핏줄까지 불끈 솟아 마치 궁지에 몰린 야수와 같았다.

그들처럼 가진 게 없는 사람이 또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참고 반항하지 않던 얌전한 사람이 갑자기 식칼을 들고 나오더니, 서씨 형제와 함께 죽을 기세를 보였다.

두 형제는 깜짝 놀랐다.

정신을 차리며 눈을 마주친 순간, 두 사람은 서로의 눈빛에서 두려움을 보아냈다.

서지강이 말했다.

“오, 오늘 일단 가만두겠어. 내일 난 계약서를 들고 다시 올 거야. 그때 가서 넌 사인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돼!”

말을 마치자, 그는 서지준을 데리고 고개를 돌려 가버렸다.

‘미친, 이 절름발이 정말 정신이 나갔구나!’

두 사람이 떠난 후.

쿵-

땡-

남봉수가 든 식칼과 진일이 든 삽은 앞뒤로 시멘트 바닥에 떨어져 맑은 소리를 냈다.

남봉수는 두 다리가 나른해졌고, 진일은 얼른 가서 그를 부축했다.

옆에 서 있던 서준은 진일의 이마에 땀이 맺힌 것을 발견했다. 지금 땀이 목을 따라 옷깃으로 떨어져 옷을 적셨다.

...

그날 저녁, 정은 일행은 진일의 집에서 밤을 보냈다.

남봉수는 음식을 다 차려 놓은 다음, 세 사람을 자리에 앉혔다.

밥은 즉석에서 쪄낸 것이고, 음식도 즉석에서 볶은 것이었다.

고기며 채소며 국까지.

“너희들 먹어, 사양하지 말고!”

“고마워요, 아저씨.”

민지는 정말 배가 고팠는데, 단숨에 밥 두 그릇을 해치웠다.

서준도 의외로 많이 먹었다.

정은은 남봉수와 진일이 고기를 거의 먹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아직 밥을 먹고 있을 때, 남봉수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아내에게 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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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일은 머뭇거렸다.“그런데... 그 아저씨 동의하실까요?”“정은이 그들은 우리 집 사람이 아니잖아. 이 일은 서지강과 서지준의 미움을 사지 않을 거야. 돈을 버는 일이니 유 씨도 뭐라 하지 않을 거고.”“네.”정은, 민지와 서준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아주머니, 저희는 갈 생각이 없어요.”“안돼!” 이번에 남종수가 입을 열었다.말을 마치고서야 자신의 목소리가 좀 컸다는 것을 깨닫고 어색하게 다시 앉았다.“꼭 돌아가야 해. 내일 서지강과 서지준이 또 올 거야. 그 두 형제는 미친놈이라서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단 말이지!”정은 그들은 꼭 가야 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날이 밝기도 전에 얼른 출발해야 했다.진일도 따라서 고개를 끄덕였다.“여기는 너무 위험하니까 너희들 빨리 J시로 돌아가. 재운이는 아직 병원에 누워 있어. 난 너희들까지 다치는 거 보고 싶지 않아...”말이 통하지 않자, 정은 그들도 더 이상 뭐라 하지 않았다.이현의 방에서.진일은 꼼꼼하게 청소를 했다.진영매는 궤짝에서 깨끗한 침대 시트와 이불 커버를 가져와 진일에게 바꾸라고 했다.“다 됐어. 얼른 자. 내일 아침 부를게.”정은과 민지는 침대에 누웠다.깊은 밤, 주위는 적막했다.어둠속에서 민지는 이미 몇 번이나 몸을 뒤척였는지 헤아릴 수 없었다.“정은 언니...” 마침내 그녀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응? 왜 그래?”“언니, 안 추워요?”정은은 사실대로 말했다.“조금.”민지는 이미 추워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봄이 다 되어 가는데, 어떻게 이렇게 추울 수가 있죠?”그녀는 심지어 어제 그 작은 호텔이 아주 좋다고 느꼈다.정은은 민지의 손을 잡고 비볐다.“금방 이불 속으로 들어와서 그래.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민지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이렇게 오래 지났는데도 따뜻하지 않잖아요...”정은이 입을 열려고 할 때, 문밖에서 은은하게 말소리가 들렸다.진영매였다.“이현이, 이리와... 이 이불 두 채를 방 안에 있는 언니들에게 줘.”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68화

    재석은 원래 정은에게 주려고 했다.그러나 오후에 돌아온 재석은 정은의 집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그는 외투를 옷걸이에 걸어놓은 다음,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벌써 10시가 되었다.‘이제 정은이도 돌아왔겠지?’재석은 자료를 들고 나가서 정은의 집을 향해 걸어갔다.“정은아? 집에 있어? 나야.”하지만 대답이 없었다.재석은 걱정이 되어 핸드폰으로 정은에게 전화하려고 했다.뜻밖에도 정은이 먼저 전화를 했다.“여보세요, 정은아?! 너 집에 있어?! 마침 너에게 줄 자료가 좀 있는데, 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어서.”[선배, 나 집에 없어요. 지금 Y시... 진일...]재석은 핸드폰을 꽉 쥐었다. 정은이 진일을 언급하자, 그는 다시 한 번 물었다.“지금 어디에 있다고?”그러나 통화가 끊겼다 이어졌다 하며 잡음까지 동반해 전혀 들리지 않았다.[상황이... 긴급해요... 내일...]“여보세요? Y시라고? 너 거기 신호가 안 좋은 거니? 여보세요? 정은아?!”재석은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전화가 이미 끊겼다.그는 갑자기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고, 즉시 다시 전화를 걸었다.“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재석은 전화를 끊고 다시 걸었다.여전히 연결이 되지 않았다.다른 한쪽에서, 이불 속에 있던 정은은 자동으로 끊긴 전화를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이곳은 왜 신호가 이렇게 나쁜 거지?”“내 핸드폰도 신호가 없어요. 오늘 뭐 좀 찍긴 했는데, 인터넷에 올리려 해도 신호가 안 좋아서...”민지는 엎드려 있었고, 두 손으로 베개를 안으며 머리는 팔꿈치에 기댔다.그녀는 방금 시험해 보았는데, 대문 밖의 공터로 나가면 신호가 좀 좋아졌고, 실내라면 전화를 할 수 있는 것조차 다행이었다.“정은 언니, 내가 밖에서 전화할까요?”“시간도 너무 늦었으니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민지는 나른하게 응답하더니, 너무 졸려서 눈조차 뜰 수 없었다.두 눈이 완전히 감길 무렵, 민지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정은 언니, 방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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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70화

    이와 동시, 재석의 핸드폰도 울리기 시작했다.학장이었는데, 진일의 구체적인 주소를 알아냈다는 것이다.두 사람은 동시에 전화를 끊고 동시에 상대방을 바라보았다.“알아냈어요!”재석은 계속 말했다.“방금 알아봤는데, Y시로 가는 가장 빠른 항공편은 오늘 새벽 1시예요. 고속열차는 내일 아침에 떠나는 것밖에 없고요.”“그럼 비행기를 타야죠! Y시 쪽에 내가 미리 사람을 배치하여 마을로 가는 차를 대기시킬게요. 그러나 남진일이 있는 하백 마을은 차가 들어갈 수 없으니, 도착한 후에 다른 교통방식으로 바꿀 수밖에 없어요.”“좋아요.”두 사람은 간단히 정리하고 바로 공항으로 향했다.사실 챙길 것도 없었다. 재석은 작은 여행가방을 멨고, 현빈은 더욱 간편하게 핸드폰 하나, 충전기 하나 그리고 몸에 지니고 있던 지갑을 챙겼다. 그 지갑에는 몇 장의 은행카드가 있었다.그걸로 충분했다.새벽 3시, 비행기가 Y시 공항에 착륙했다.현빈이 배치한 사람은 이미 차 열쇠를 들고 공항 밖에서 기다렸는데, 현빈은 열쇠를 받은 뒤 재석과 함께 차에 올라탔다.두 구간의 고속도로와 약 20킬로미터의 산길을 거친 후, 두 사람은 새벽 5시 40분에 대동리에 도착했다.이때 날이 아직 밝지 않았다.가로등은 이미 꺼졌다.조용한 마을에는 아직 불이 켜져 있는 집이 거의 없었다.재석은 조수석에 앉아 가방에서 빵 두 개를 꺼냈다. 하나는 자신에게, 다른 하나는 현빈에게 건네주었다.“배 좀 채워요.”현빈은 간단하게 맛보았다.“정말 맛없네요. 왜 이렇게 딱딱한 거죠?”비록 그렇게 말했지만 현빈은 결국 그 빵을 다 먹었다.바로 이때, 재석의 핸드폰에서 톡 제시음이 울렸다. 그는 바로 확인했다.“정은이에요!”현빈은 얼른 다가왔다.“뭐래요?”“지금 민지, 서준과 함께 진일의 집에 있다고 했어요. 핸드폰 신호가 아주 안 좋다네요...”“진일의 집에 문제가 생겼고, 어제 두 사람이 찾아와 하마터면 충돌이 일어날 뻔했다니. 오늘 또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도움이 필요하다네요..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71화

    재석이 물었다.“어떻게 마을에 가려고요?”현빈이 대답했다.“이미 삼륜차 하나 찾아오라고 했어요. 마을에 들어가려면, 삼륜차밖에 탈 수 없거든요.”“얼마나 기다려야 하죠?”현빈은 손목 시계를 보았다.“아마도 30분 더 걸릴 거예요.”“좋아요.”...정은이 문자를 보낸 다음, 진일은 재촉을 하며 입을 열었다.“가자, 이미 차를 찾았는데, 마을 어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대.”유말태는 원래 동의하려 하지 않았다.그러나 오늘 아침 날이 밝기도 전에 갑자기 변덕을 부렸던 것이다. 큰 돈을 들여 대동리에 가서 두 사람을 데리고 오라는 부탁이었다. 그것도 즉시 출발하여 되도록 빨리 도착해야 했다.빈손으로 가는 것보다, 정은 그들을 데리고 가면 돈을 더 벌 수 있었다.“늦었으니까 빨리 가...”그러나 정은과 민지는 두 손을 주머니에 넣더니 제자리에 서 있었고, 출발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왜 그래?”정은이 대답했다. “저희는 가지 않을 거예요.”민지도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진일은 다급해졌다.“어젯밤에 약속했잖아?!”민지는 눈을 깜박였다.“저희가 언제요? 그건 선배와 아저씨의 결정이지, 저희는 동의하지 않았는데.”“내 말 좀 들어봐, 여기는 정말 위험해서 너희들 남으면 안 돼! 서지강과 서지준 그 두 사람은 완전히 미친놈이야! 이따 무슨 일 저지를지 모르니 너희들...”정은은 그의 말을 끊었다.“선배.”“어?”“우리 친구 아니었어요?”진일은 말을 하지 않았다.정은은 계속 물었다.“대답해요.”“친구이기 때문에, 너희들을 우리 집안 일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은 거야. 너희들 위험에 빠질 수도 있어!”재운은 아직도 깨어나지 않았으니 진일은 이런 일 더 생기게 하고 싶지 않았다.바닥에 널린 선혈, 재운의 부모님이 무릎을 꿇고 서씨 두 형제에게 용서를 빌던 장면, 지금 생각해도 진일은 가슴이 떨렸다.심지어 자다가도 눈물이 날 정도로 죄책감을 느꼈다.진일은 친구가 자신 때문에 다치는 것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72화

    이번에 진일이 더 이상 막지 않았다.그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핑 돌았지만, 오히려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정은은 방 앞까지 걸어가더니 갑자기 멈칫했다.민지도 따라서 멈추었다.“왜 그래요?”정은은 옆의 침실 문을 가리켰다.민지는 바로 알아차리며 살며시 문을 열었다.‘뭐야! 임서준 이 자식, 아직도 쿨쿨 자고 있다니.’심지어 일어나는 척조차 하기 싫었다.“정말 대단하네, 임서준.”정은이 말했다.“선배는 아마 서준이 정말 화장실에 간 줄 알았을 거야.”“어쩐지...”화장실에 가는 건 거짓말이었고, 이불 속에 들어가 계속 자는 것이 사실이었다.“그럼...”민지는 갑자기 멈칫했다.“그럼 우리만 손해를 본 게 아니에요? 일어나서 옷을 입고 문 앞까지 따라갔잖아요?”정은은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지.”...수탉이 울부짖자, 날이 밝았다.그러나 안개는 아직 걷히지 않았다.정문을 여니, 넓은 땅과 먼 곳의 산들이 눈에 들어왔다.민지가 말했다.“Y시는 또 산의 도시라고도 하잖아요. 정말 맞는 말이네요!”차를 타고 오면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산이었다.하늘에 붉은 색이 나타난 것을 보며 진일이 말했다.“오늘 햇빛이 나타날 거야.”민지가 감탄했다. “정말이죠?!”‘드디어 날씨가 따뜻해지는 거구나, 흑흑...’이때 남봉수와 진영매도 일어났다.마을의 한의사가 진영매는 계속 침대에 누워서는 안 되며 적당히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그래서 매일 아침, 남봉수는 그녀를 부축하여 문밖으로 가서 두 바퀴 거닐었다.부부는 정은 세 사람이 뜻밖에도 가지 않은 것을 보고 즉시 당황해졌다.“유 씨가 동의하지 않은 거야?! 여보, 빨리 가서 이 씨 찾아요, 옆집 아주머니의 손자를 찾아도 되고요...”민지가 대답했다.“아주머니, 당황하지 마세요. 저희가 가고 싶지 않은 거예요.”진영매는 놀라서 말을 더듬었다.“너, 너희들도 참! 왜, 왜 말을 안 들어?! 얼른 가야 해. 여기 있으면 안 돼... 진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73화

    말하면서 서지강은 계약서와 비슷한 물건을 꺼내 남봉수 앞에 던졌다.“이렇게 오래 끌었으니 아저씨도 잘 생각했을 거야. 쓸데없는 말 하지 마. 오늘 내가 이렇게 펜까지 다 가져왔잖아, 아저씨는 직접 여기에 사인만 하면 돼! 그럼 돈이 바로 입금될 거야.”남봉수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지강아, 나도 여전히 그 말이야, 난 이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 않을 거야. 그것은 우리 집의 산이고, 지금 앵두나무까지 심었으니 절대로 팔 수 없어.”“아저씨, 내가 지금 아직도 이렇게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도 다 같은 마을 주민이라서 그래. 우리 아버지와 나름 친분이 있잖아. 우리도 일을 벌이고 싶지 않아. 이웃이니 그래도 서로의 체면을 봐줘야 하지!”펑-서지준은 몽둥이를 휘두르며 탁자를 두드렸다.“형, 절름발이한테 왜 쓸데없는 말만 하는 거야? 오늘 본때를 보여주지 않으면 절대로 사인을 하지 않을 거야!”“지준아, 입 닥쳐! 왜 이렇게 버릇이 없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아저씨는 어른이니까 존중을 해야지.”“존중하긴 개뿔! 우리 말을 조금도 들으려 하지 않잖아, 제대로 맞아야 얌전해질 거야!”“조급해하지 말고 아저씨에게 기회를 줘.”서지강은 동생을 설득하더니 웃으며 옆에 있는 진일을 바라보았다.“아저씨가 사인하려 하지 않는 이상, 아들인 네가 대신 서명해. 지준아...”서지준은 바로 알아차리더니 진일의 멱살을 잡고 또 강제로 펜을 손에 쥐어 줬다.“넌 명문대에 다니고 있으니 얻어맞기 전에 빨리 사인해! 그래야 모두들한테 다 좋으니까.”서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서지준의 손을 뿌리쳤고, 또 진일을 끌고 뒤로 물러섰다.“입이 없는 거예요? 왜 손을 쓰는 거죠?!”서지준의 음흉한 눈빛은 서준에게 떨어졌다.“넌 또 어디서 온 자식이야? 어제 네가 튀어나오면서 내 일을 망쳤는데, 오늘 또 이러는 거야? 넌 죽는 게 두렵지도 않나 봐?”서준은 냉소를 지었다.“왜요? 내 목숨을 원하는 거예요? 그럴 엄두는 있고요?”“흥, 이 세상에 내가 하지 못할 일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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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고백하기 전까지, 혼자서 그렇게 많이 고민한 거예요?”“응.”“어쩐지...”정은이 아주 작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뭐라고?” 재석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자, 정은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이젠 다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가요...”둘은 손을 꼭 잡고 복도로 향했다. 조용한 밤, 서로의 온기가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걷던 중, 재석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정은도 따라 멈춰 서며 돌아봤다.“왜요?”“정은아, 우리 지금... 사귀는 거 맞지?”정은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두 사람이 꼭 잡은 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그렇게 생각 안 해요? 조금 전부터 내가 ‘재석 씨’라고 부른 거 못 느꼈어요?”“혹시 지금... 꿈꾸는 거 아니지?”정은은 눈을 가늘게 뜨며 미소 지었다.“흠, 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까... 평소에도 꿈에서 날 자주 본 모양이네요?”재석의 몸이 순간 굳더니, 양 볼이 순식간에 빨개졌다.‘진짜 자주 꿨나 보다?’재석은 눈을 못 마주친 채, 그저 두 사람이 맞잡은 손만 바라보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진짜 좋아.”‘정은이도, 나를 마음에 두고 있었구나.’‘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구나.’같은 계단, 같은 복도, 수없이 함께 걸어온 길. 그동안은 늘 친구라는 이름으로, 앞서거나 뒤따르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 왔지만, 오늘은 처음으로, 손을 잡고 나란히 오르는 계단.정은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근데, 왜 나랑 은혁 씨한테 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재석은 목소리를 낮추며, 살짝 눈을 피했다.“미안. 계산하러 나갔다가... 우연히 통화하는 거 들었거든.”정은의 눈이 살짝 커졌다.그리고 머릿속으로 자신이 통화 중 했던 말을 하나하나 되짚어봤다.‘공항에서 보자, 기대된다, Z시 출장... 뭐 이상한 말한 것도 없는데...?’그런데도 재석은 그걸 ‘여행 약속’으로 받아들였고, 그걸로 인해 혼자 삭이다가 결국 아래층에서 고백까지 해버린 거였다.“너희, Z시에 여행 간다고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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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은이 멍해 있는 사이, 재석이 한 걸음 다가섰다. 늘 부드럽고 점잖던 그가, 이 순간만큼은 전에 없던 강한 기운을 뿜어냈다. ‘이 남자... 이런 눈빛도 있었나?’정은은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등이 벽에 닿는 순간, 재석은 어느새 바로 눈앞에 와 있었다.정은이도 이제야 제대로 실감이 났다. 재석이 자신보다 훨씬 크다는 걸. 그리고 지금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내려다보면, 자신이 마치 남자의 품 안에 갇힌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도.재석이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이제 좀 알겠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그때 네가 학업이 먼저라고 했을 때, 난 받아들였어.”“그런데 장은혁한텐 기회를 줬지. 정은아...”그가 고개를 더 숙이자,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목선에 닿았다. 순간, 정은의 팔에 소름이 쫙 돋았다. “너, 나한테 너무 불공평해.”그 마지막 한 마디는 묘하게 서글픈 기운이 섞여 있었다.정은은 입술을 달싹이며 뭔가 말하려 했지만, 재석은 그녀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알아, 내가 지금 어떤 입장인지. 묻고 따질 자격도 없고, 네가 누구를 좋아하든, 그건 네 자유라는 것도 알아.”“이 말 꺼냈다가, 우리 사이가 끝날 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 근데... 계속 참다 보니까 알겠더라.”‘난... 그렇게까지 쿨한 사람이 아니었어.’“그래서 이제 참지 않기로 했어.”‘어떻게 되든, 그건 네가 정해.’그렇게 말한 재석은 고개를 숙인 채 멈췄다. 마치 판결을 기다리는 죄인처럼.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조용한 밤공기 속에서, 정은의 목소리가 아주 작게 울렸다.“이제, 제가 말해도 될까요?”“응...”“재석 씨.”정은은 처음으로 재석을 그렇게 불렀다.“고개 들어요. 나 좀 봐요.”재석의 어깨가 순간 굳어졌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그는 이미, 거절당할 각오까지 끝냈다.그런데 눈이 마주친 순간, 정은의 두 눈 속에서 재석이 본 건... 눈물이 아닌, 웃음이었다.억지로 짓는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56화

    “헤어졌다고요?”정은은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몰랐어?!”정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진욱은 눈을 반짝이며 의자째로 다가오더니, 목소리를 낮추고 본격적인 ‘TMI’를 털어놓기 시작했다.“M시 출장 갔다 오고 며칠 안 돼서, 재석이가 바로 짐 싸서 수아를 내보냈다니까?”정은은 그 말을 듣고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재석과 수아 사이에 어떤 감정선이 있었는지, 그동안 몇 번 스쳐 지나갔던 장면들이 퍼즐처럼 빠르게 떠올랐다. 그녀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눈빛 속엔 미묘한 기류가 스쳤다.“아마 진짜 많이 좋아했나 봐. 그러니까 정리할 때도 그만큼 아프고, 오래 걸리는 거겠지. 조금만 시간 지나면, 태민이도 정리될 거야.”진욱은 이어서 말했다.“네.”정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대답했다.그 이후론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남의 연애는, 들을 수는 있어도 깊게 얘기하지 말아야 해. 괜히 나서 봤자... 괜히 끼어든 꼴만 되니까.’...해가 지고, 붉은 노을이 건물 유리에 비치기 시작할 무렵. 정은은 마침내 작업을 끝냈다.진욱은 기다렸다는 듯 프로그램을 열고 기능 하나하나를 테스트했다.그리고 30초쯤 흐른 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어어!! 복구됐어! 됐다! 돌아왔어! 다시 쓸 수 있어!!”미진도 덩달아 벌떡 일어나 양손을 번쩍 들었다.“살았다, 진짜!! 여태 손으로 데이터 입력한 거 생각하면... 이건 거의 기적이야!”진욱은 시계를 힐끗 보더니, 정은을 향해 말했다.“지금 이 시간까지 남아서 도와준 우리 정은이, 완전 수고 많았어! 조 교수...”“응...?”갑작스레 이름이 불리자, 재석은 몇 초간 멈칫하다가 고개를 돌렸다.진욱은 능청스럽게 말했다.“아니, 정은이가 이렇게 큰일 해줬는데, 감사 표시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적어도 밥 한 끼는 사야지.”“맞아요, 맞아요. 조 교수님, 이건 진짜 밥으로도 모자라요.” 미진이 곧장 거들었다.재석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55화

    대략 1년 전, 정은은 한동안 재석의 실험실을 빌려 쓴 적이 있었다. 그 일을 계기로 전진욱, 조미진 등과 인연이 닿았다.처음엔 서로 어색하고 낯설었지만, 몇 달이 지나면서 조금씩 가까워졌고, 지금은 가볍게 농담도 주고받을 만큼 편해졌다.그러던 어느 날, 진욱은 우연히 정은이 실험 데이터를 처리하는 속도를 보고 깜짝 놀랐다. 너무 빠른 게 아닌가 싶어서 슬쩍 물어봤더니, 정은은 코딩도 할 줄 아는 공대 만능 캐릭터였다. 그녀는 직접 짠 프로그램으로 데이터를 자동 정리하고, 다차원 분류와 정렬까지 가능하다고 했다.“와, 뭐야... 완전 반칙인데?”진욱은 결국 정은에게 부탁해 실험실 맞춤형 프로그램 하나를 따로 제작해달라고 했고, 그 이후, 데이터 정리는 그야말로 신세계를 맞이했다. 진욱은 쓸 때마다 감탄하며 말했다.“진짜... 정은이 덕분이야. 이게 사람을 살리네.”하지만 어제 그 기특한 프로그램이 갑자기 먹통이 됐다. 손태민이 고쳐보겠다고 덤볐지만, 결과는... 풍비박산이었다. ‘이젠 누가 손댔다간 진짜 박살 나겠어...’ 결국 정은에게 SOS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재석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오늘 시간 돼? 안 되면, 며칠 뒤도 괜찮고...]진욱은 훨씬 급했다. 말 그대로 살려달라는 마음이었다.[야, 오늘 안 데려오면... 나 여기서 바로 싸버린다! 진짜라고, 어?!]그는 어제 약 먹고 좀 괜찮아진 줄 알았건만, 밤새 배가 또 난리였다. 오늘 아침부터 실험실 화장실은 진욱의 전용이 되었다. 오전에만 6회 방문.그 말은, 그냥 협박 아니었다. 진짜 실현 가능성이 있었으니 말이다.정은은 상황을 듣고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시간 돼요. 지금 바로 갈게요.”[그래. 그럼 내가 정문 앞으로 갈게.]‘굳이 마중까진 필요 없는데...’ 뚝-정은이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 전화는 이미 끊겨 있었다. ...10분 뒤, 정은은 학교 정문 앞에서 재석과 마주쳤다. 두 사람은 실험실로 걸어가며 프로그램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54화

    “언니, 이건 굳이 우리 의견 물을 필요도 없지 않아요? 언니가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가는 거죠. 저희한텐 뭐든 시키기만 하세요. 무조건 따라갈게요!”민지가 단호하게 말하자, 서준도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맞아요, 저흰 누나 믿고 가는 거예요. 결정은 누나가 해요.”정은은 그 말에 잠시 멍해졌다가, 결국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너희들... 나 그렇게 믿어도 돼? 나도 가끔 실수하거든?”민지는 마치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정은 언니가 실수했다면, 그건 100% 저랑 서준 오빠가 뭔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뜻이에요.”“그건 좀 과장이지만...”‘그래도... 이런 믿음을 받는다는 게 참 따뜻하네.’세 사람은 그렇게 식사를 마쳤다.계산은 서준이 맡았고, 정은과 민지는 먼저 주차장으로 향했다. “언니, 먼저 가요. 전 서준이 데리러 갈게요.”“응? 굳이?”“우리 집이랑 방향이 같잖아요. 서준이는 차도 없으니까, 그냥 태워다 주는 거죠, 헤헤.”“그래, 알겠어. 그럼 조심히 가. 운전 천천히 하고.”“네. 언니도 잘 들어가요!”...두 ‘파트너’와 방향을 맞춘 정은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준비에 들어갔다.자료 조사부터 시작해 ‘신소재 최적화 계획안’을 정리하고, 모든 내용이 빠짐없이 정리됐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확인했다.벌써 밤 10시. 정은은 핸드폰을 들고 조심스레 메시지를 보냈다.[장은혁 씨, 시간 돼요? 상의드릴 게 하나 있어요.]그 시각, 은혁은 거실 소파에 앉아 어머니인 황희숙 여사의 ‘진실 공방’에 시달리고 있었다.“너 외할아버지한테 전화 왔어. 오늘 도시락 들고 회사 갔다며? 근데 그냥 말도 없이 두고 사라졌다고 난리야. 게다가 누가 너랑 어떤 여자가 같이 있는 걸 병원 약국에서 봤다던데? 솔직히 말해봐. 너, 여자 친구 생겼지?”은혁은 억울함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아니 외할아버지는 왜 또 엄마한테 바로 전화해요? 진짜 너무하신다니까요...”“이 자식 봐라, 말버릇 좀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53화

    진욱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렇게 마음이 있는 거면, 왜 정은이한테 솔직하게 말 안 해?”“겁나는 거지, 재석아? 말 꺼냈다가 거절이라도 당하면... 그땐 친구로도 남을 수 없을까 봐, 무서운 거잖아.”진욱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재석을 똑바로 바라봤다.“그건 너답지 않아. 내가 아는 재석이는, 망설이지 않고 결정하는 사람이었어. 결과가 불확실하다고 물러서는 사람 아니었잖아.”“정은이가 ‘지금은 연애 생각 없다’고 했지? 중요한 건 ‘지금은’이라는 거야. 사람 마음은 바뀌는 거고, 그때 거절했다고 지금도 똑같을 거란 보장은 없어. 알겠냐?”재석은 말없이 진욱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 말이 생각보다 깊게 박혔다. ‘지금도 똑같을까? 아니, 혹시... 지금은 조금 다를 수도 있는 걸까...’진욱은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야, 진심으로 말하는 건데, 너 계속 질질 끌면, 정은이 뺏긴다. 그리고 뺏기고 나서 울어봤자, 소용없을 거야.”“우리 정은이 인기 많은 거 너도 알잖아. 예전에도 정은이 두고 싸운 애들 있었잖아. 그리고 오늘 그 남자 봤지? 얼굴 잘생겼지, 젊지, 에너지 넘치지, 옷차림 보니까 집도 잘 사는 거 같던데?”재석은 이런 말을 아주 듣기 싫었다.“닥쳐.”진욱도 더 이상 말하기 싫었다. “칫. 드디어 위기감이 좀 드나?”‘그래, 긴장 좀 해라. 맨날 냉정한 척만 하지 말고... 이번엔 너도 좀 불안해져 봐야지.’...한편, 정은은 봉수진을 집에 바래다준 뒤, 약을 가정부에게 전달하며, 복용 방법까지 하나하나 직접 설명했다. 봉수진은 저녁까지 먹고 가라며 붙잡았지만, 정은은 이미 서준, 민지와의 약속이 있었다.“외할머니, 며칠 안에 다시 올게요. 오늘은 친구들이랑 약속이 있어서요.”“그래그래, 알았어. 젊을 땐 많이 만나고 다녀야지.”정은은 웃으며 고개를 숙였고, 곧 차에 올랐다.약속 장소인 레스토랑에 도착했을 땐, 서준과 민지가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테이블 위에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52화

    은혁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그러게요... 나야 뭐, 그랬으면 좋겠지만...”하지만 정은의 태도는 그리 확신을 줄 만큼의 호감은 아니었다.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분명히 좋아한다는 표시도 없는 애매한 선이 보이는 듯했다.‘그래서 더 미치겠어. 기대도 못 하고,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고... 이러니까 계속 마음이 붕 떠 있잖아...’그렇게 속으로 앓고 있었지만, 정은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봉수진의 약에 모든 관심을 쏟고 있었다.VIP 약국답게, 일 처리는 정말 빨랐다. 정성스럽게 달인 약이 곧바로 팩 단위로 나뉘어 밀봉되었고, 음용 방법까지 깔끔하게 안내되었다.냉장 보관 후, 따뜻한 물에 데워 마시면 된다는 안내였는데, 이 정도면 환자도 거부감 없이 약을 먹을 수 있을 것이었다. 약을 다 받은 후, 약 한 시간쯤 지나 두 사람은 병원을 나섰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은의 전화가 울렸다.“여보세요? 외할머니? 네, 약 다 받아놨어요.”“병원에서 달여줬어요. 네, 거기 계세요. 지금 바로 갈게요.”전화를 끊은 정은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은혁을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오늘 고마웠어요. 외할머니 모시러 가볼게요. 안녕히 계세요.”“아, 어... 그래요! 잘 가요!”은혁은 여자의 뒷모습이 멀어질 때까지 멍하니 서 있었다.심지어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후에도 한참을 그렇게 바라본 후에야 아쉬움 가득한 시선을 거두었다.그 순간, 핸드폰이 울렸고, 화면엔 ‘황기' 두 글자가 떴다.“여보세요?”[야 이놈아! 도시락 던져놓고 도망가듯 나가버리면 어떡해?! 말도 못 붙였잖아! 뭐가 그렇게 급해? 뭐가 외할아버지보다 중요한 거냐고?!]“죄송해요... 헤헤.”황기는 순간 당황했다. ‘얘 지금 뭐야? 미쳤어? 웃음은 왜 이렇게 정직하게 새어 나오는 건데...?’...한편, 정은은 봉수진을 태우고 병원을 나서는 중이었다. 바로 그때, 재석은 약을 수령하고 외래 진료실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51화

    정은도 여기서 재석을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선배님, 병원엔 무슨 일로 오셨어요?”재석은 그제야 시선을 거둬들였다. 눈길이 정은에게 닿는 순간, 표정이 한층 부드러워졌다. “난...”“날 데려다주러 온 거야.” 그 순간, 전진욱이 배를 감싸 쥐며 천천히 다가왔고, 재석 대신 대답을 건넸다.정은은 진욱을 바라보다가 눈이 살짝 커졌다. “교수님, 어디 아프세요?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요.”“하... 뭘 잘못 먹었는지, 아침부터 배탈이 나서... 약도 안 듣고... 이 사람이 막 끌고 오더라니까... 검사라도 받아보라고.”정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하셨어요. 괜히 방치하다가 더 심해질 수도 있잖아요. 미리 체크하면 마음도 편하고요.”“어우, 너희 둘 미리 맞췄냐? 말이 어쩜 그렇게 똑같냐?” 진욱이 짐짓 장난스러운 말투로 투덜댔다.정은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재석을 바라봤다. “그랬어요?”재석은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눈빛 속 어딘가 알 수 없는 감정이 일렁였다. ‘저 말투, 저 표정... 나만 아는 게 아닐 텐데...’“정은 씨, 이제 가야죠.” 그때, 은혁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아, 네.” 정은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희 먼저 갈게요.”그렇게 말한 후, 은혁과 나란히 병원 복도를 걸어 나갔다.재석은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두 사람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눈빛 속 감정은 복잡하고도 묘했다. ‘뭔데, 저 둘은 저렇게 자연스러워...’“재석아? 야, 재석아!”진욱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재석은 고개를 돌렸지만, 눈빛 속 싸늘함은 여전했다. 진욱은 그 눈빛에 소름이 돋아 어깨를 움찔거렸다.“너... 왜 그래?”“방금 정은이가 ‘저희’라고 했어.”“어...?”진욱은 멍한 표정으로 재석을 바라봤다. 몇 초간 멍하던 그는 그제야 이해가 된 듯 말했다. “아... 그 ‘저희’? 그게 뭐 어때서? 같이 왔으니까 ‘저희’지. 그럼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50화

    얼마 지나지 않아 황 원장은 처방전을 프린트해서 정은에게 건넸다.“수고 많으셨습니다, 원장님.”정은이 공손히 인사하자 황 원장은 손을 휘저었다.“아이구, 무슨... 이 아가씨는 인사도 참 반듯하게 잘하네요. 말도 예쁘게 하고, 얼굴도 예쁘고. 이런 손녀가 있으면, 어디 내놔도 자랑이겠네요.”봉수진은 바로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그럼요. 우리 손녀는 어디 하나 빠지는 데가 없어요.”황 원장은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장난스럽게 물었다.“이렇게 예쁜 아가씨한테 남자 친구가 없을 리 없는데? 그렇죠?”봉수진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없어요! 보통 남자애들은 우리 정은이랑 안 어울려요.”“허허, 그래도 우리 손자 정도면 꽤 괜찮은데...?”황 원장이 살짝 떠보자 봉수진은 손사래를 쳤다.“아이구, 그 얘긴 그만해요. 정은이 아직은 시집 안 보낼 거예요. 지금이 제일 곁에 두기 좋을 때라니까요.”‘아이고, 또 시작이다...’정은은 속으로 헛웃음 치며 처방전을 가방에 쏙 넣고 눈치껏 자리에서 일어났다.“저, 약 지으러 먼저 다녀올게요!”...진료실 문을 나서는 순간, 정은은 누군가와 부딪혔다.“아, 죄송해요!”고개를 돌려 상대방을 본 순간 정은의 걸음이 멈췄다.“은혁 씨?”은혁은 보온 도시락 통을 들고 서 있었다.“정은 씨! 또 보네요. 우리 진짜 인연인가 봐요? 하하...”“여긴... 병원인데? 누가 입원하셨어요?”정은이 도시락을 보며 물었다.“아, 아니에요. 저 입원실 온 거 아니고요! 외할아버지가 이 병원 의사세요. 오늘 외래 당번이라 저희 어머니가 직접 도시락을 싸주셨는데, 제가 대신 가져다드리러 온 거예요.”“혹시 외할아버지 성함이 황 씨?”“네! 황기 원장님이세요. 한약재 이름에서 따오셨대요, 혹시... 아는 분이세요?”‘어머나, 진짜 인연인가?’정은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오늘 저희 외할머니 진료도 황 원장님한테 받은 거예요.”“정말요? 세상에... 진짜 대박. 어쩐지 자꾸 마주치네요.”은혁은 정은 손에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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