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너무 위험한 여자 / 31. 기억의 조작

Share

31. 기억의 조작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01 07:03:35

그날 오후, 언론은 ‘제보’라는 단어를 기사 제목에 쓰지 않았다.

대신 ‘루머’, ‘확인되지 않은 의혹’, ‘악의적인 음성 조작 가능성’이라 적었다.

누군가 익명의 제보로 보낸 통화 녹취가 뉴스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다.

내용은 명확했고, 목소리도 분명했지만 이름이 빠져 있었다.

“책임질 수 없는 고발은 진실을 가릴 뿐입니다.”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서인국이 직접 운영하는 ‘사회적 가치 포럼’이었다.

공식 입장문엔 사실 부정 대신 ‘진실을 왜곡한 악의적인 편집’이라는 표현이 반복됐다.

유리는 그날 뉴스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진실은 내 것이 아니다.

진실이 사회에 꺼내진 순간, 그건 모두의 해석에 맡겨졌고 그만큼 쉽게 조작될 수 있었다.

진짜보다 믿고 싶은 진실이 더 크게 퍼지는 것. 그게 세상이었다.

“당신은 조심해야 해요.”

그날 밤, 이우는 두 번째로 먼저 연락해왔다.

늘 신중한 그가 이번엔 말투마저 예민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벌써 움직였어요?”

“언론 말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Latest chapter

  • 너무 위험한 여자   38. 우리는 같은 진실을 다르게 기억한다

    법정에 서는 일은 누군가에게는 정의의 시작일 수도 있지만,누군가에게는 자신의 내장을 꺼내어 보는 일에 가까웠다.유리는 지금 그 가운데에 있었다.검찰청 지하 회의실. 형사6부 증인 면담실.유리는 수사관 앞에 앉아 유진이 남긴 유언, 녹음, 상담 기록,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정황을 진술하고 있었다.그녀의 목소리는 단 한 번도 떨리지 않았다.하지만 입을 다물고 나서는 순간마다, 손끝에 작은 경련이 일었다.“직접 증언대에 서시겠습니까?”김도환 부장의 물음에 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제가 말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제 언니의 말을 기억해주지 않을 것 같아서요.”그 말은 담담했지만, 그 속엔 아무도 대신 들어줄 수 없는 울음의 뒷면이 있었다.퇴근 시간 무렵, 로비를 지나 나오는데 낯익은 그림자가 시야에 들어왔다.검은 코트, 손에 들린 커피,그리고 아직도 끝내 다 담지 못한 듯한 눈빛. 이우였다.유리는 놀란 표정도, 반가움도 보이지 않았다.단지 멈춰 섰고, 이우는 말없이 커피 한 잔을 내밀었다.“오늘, 서 있는 걸로도 충분히 잘한 날 같아서요.”그 말에 유리는 작게 숨을 쉬었다.그리고 커피를 받아들었다.둘은 근처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말없이 커피를 마시고, 서로를 바라보지 않은 채 한참을 있었다.그러다 이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그날 이후, 당신이 무너지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무너졌죠.”유리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근데요, 무너졌다는 걸 인정하고 나니까 어떻게든 다시 서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혼자요?”“처음엔요. 근데 지금은…혼자이길 원하진 않아요.”이우는 그 말에 긴 숨을 내쉬었다.그건 안도도, 후회도 아닌 작은 확신처럼 들렸다.“그럼…옆에 있어도 되나요?”유리는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그 눈빛엔 용서도, 원망도 없었다.단지 한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려는, 작은 인간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있어요. 다만… 그때처럼 말없이 사라지진 말아요.”밤이

  • 너무 위험한 여자   37. 감정의 주소

    비가 그친 뒤의 공기는 항상 무언가를 남기고 간다.젖은 아스팔트, 말라붙은 눈물처럼 끈적이는 하늘, 그리고 침묵.유리는 이현의 고백을 듣고도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가 텅 빈 방처럼 메워지지 않았다.‘그날, 나는 아무 말도 못 했어요.’그 말은 책임도 후회도 아니었다.그건 두려움의 기록이었다.그리고 그 두려움이 유진을 진짜로 외롭게 했다는 걸,이제서야 그녀는 이해할 수 있었다.밤이 깊어지고 유리는 언니의 다이어리 마지막 장을 다시 펼쳤다.그리고 그녀는 미처 보지 못했던, 희미하게 번진 연필 자국 하나를 발견했다.‘반포 6길… 11-2…’‘P.S. 여기서 처음 울었고, 마지막으로 웃었어.’그 문장은 주소도, 추억도, 유언도 아니었다.그건 그저 유진이라는 사람의 감정이 마지막으로 멈춘 장소였다.다음 날, 유리는 그곳으로 향했다.반포 6길. 지나가는 이들조차 발걸음을 줄이는 낡은 원룸 건물, 그리고 그 옆 좁은 골목.주소지의 ‘11-2’는 건물 지하 공간이었다.문은 잠겨 있지 않았고, 철문은 오래된 나무처럼 소리를 냈다.그리고 그 안, 한 켠에 작고 낡은 철제 사물함이 있었다.표면엔 ‘정서연’이라는 이름표.아무도 가져가지 않은 택배 상자가 하나 그 앞에 놓여 있었다.박스를 열었다. 그 안엔 봉투 두 장과 잘 접힌 흰색 블라우스,그리고 녹음기 하나.첫 번째 봉투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이건 혹시, 그 애가 와서 열게 된다면.”그 애 유리였다.녹음기를 틀었다.“이건 유리를 위한 거야. 그 애가 나를 정말로…끝까지 따라오게 된다면, 내가 말해주고 싶은 마지막이기도 해.”“난 이현을 원망하지 않아. 그 사람은 그냥… 나처럼 약했을 뿐이야.”“그 사람을 미워하지 마. 그 감정은 내가 이미 충분히… 끝냈어.”유리는 더 이상 듣지 못했다.녹음기는 계속 재생되고 있었지만 그녀는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그 안에 담긴 말들은 자기를 향한 분노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남겨진 사랑이었다.두 번째 봉투에는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 너무 위험한 여자   36. 그녀의 마지막 갈림길

    거기서 문장이 끊겨 있었다.뒤에 이어지는 문장은 상담사의 메모.‘말을 멈췄고, 긴 침묵이 이어졌다. 입술을 꼭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왜 말하지 않았을까요.”유리는 고개를 들었다.상담사의 눈빛은 고요했고, 묘하게 슬펐다.“그 말이 자신을 더 쉽게 죽게 만들 거라 생각했을 수도 있죠.어떤 이름은,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칼이 되니까요.”상담실을 나서며, 유리는 복도 끝 창문에 멈춰 섰다.햇빛이 찬란했지만 그 안엔 슬픔도, 분노도, 정리되지 않은 무언가가 가득했다.유진은 끝까지 ‘이름’을 말하지 못했다.하지만 그 침묵은 오히려 더 확실한 증언처럼 느껴졌다.말하지 못한 고백. 남기지 못한 단어.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지금의 유리를 만들고 있었다.사람이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누구를 만났는가.그 질문은 유리에게 단순한 수사 절차가 아니었다.그건 언니가 꺼내지 못한 이름을 대신 밝혀내는 일이었다.상담기록 마지막 줄.2024년 2월 7일 오후 3시.유진이 심리상담을 마친 직후, 기록엔 없지만 그녀가 ‘누군가와의 만남’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정황이 있었다.‘오늘… 그 사람을 다시 만나요.’직접적으로 지칭된 인물은 없었다.하지만 문장은 확실히 갈피를 남겼다.그리고 그날, 심리상담센터 인근에서이현의 차량 GPS 기록이 짧게 포착되어 있었다.이름은 없지만, 거리와 시간은 존재했다.유리는 택시에 올라탔다.목적지는 상담센터 뒷골목. 그날 유진이 상담 후 사라지기 전, 30분을 머물렀던 그 장소.“조용한 주차장이 하나 있습니다. 주변 CCTV는 모두 민간이라 공식 기록이 없죠.”정보는 이우에게서 왔다.여전히 그림자처럼 연락을 주고받던 그였지만,진실을 좇는 방향만큼은 분명히 같았다.낮은 언덕 아래, 벚나무 가지 사이로 빛이 비스듬히 드리우던 곳.유리는 그 주차장 한켠에서 중고차 정비소 직원 하나를 붙잡았다.“2월 7일이요? 그날이면…밤에 한 차가 멈춰 있었죠.외제차였는데… 번호는 기억 안 나도

  • 너무 위험한 여자   35. 기록의 파편

    숫자 421. 누군가에겐 무의미한 나열일지 몰라도,유리의 손끝에서 그것은 언니가 남긴 유일한 문장처럼 느껴졌다.그것은 열쇠였고, 지도였고, 마지막 숨소리 같았다.숨이, 어딘가 어긋나는 느낌.가슴 안 어딘가에서 묵직하게 뭉쳐 있던 것이이 숫자를 보는 순간부터 조용히 뻗어나오기 시작했다.유진이 살았던 오피스텔 앞,유리는 한참 동안 문 앞에 서 있었다.발걸음은 빠르지 않았다.그 문이 열리면, 언니의 시간과 죽음 사이에 걸려 있던 무언가가자신에게 밀려올 것 같아서였다.오래된 관리실 직원은 유리의 얼굴을 알아보았다.그 눈빛 속엔 묘한 연민과 당혹이 섞여 있었고, 그 말투는 조심스럽고 느렸다.“그 분… 생전 마지막 방에 못 연 짐이 하나 있었어요.”“뭐였죠?”“철제 박스 하나요. 열리지 않아서 그냥 그대로 두고 있었죠.”박스를 품에 안고 계단을 올라가는 순간, 심장이 아니라 손끝이 먼저 떨렸다.유리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계단을 한 칸씩 올라가며 머릿속으로 지난 기억들을 끄집어냈다.유진이 마지막으로 웃던 순간,그녀의 머리카락 끝에 남았던 달콤한 향.무언가를 애써 잊으려 애쓰던 눈빛.그리고 그 모든 걸 자신이 ‘몰랐다’는 죄책감.그 박스를 열어야만 그 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열쇠패드에 421을 눌렀다.‘삐’ 뚜껑이 열리는 소리.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소리는유리의 안쪽에서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였다.박스 안엔 다이어리 두 권, 녹음기 하나,그리고 하얀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봉투엔 언니의 필체가 흐릿하게 새겨져 있었다.“언젠가 네가 이걸 열게 된다면.”종이를 펼치는 손이 땀이 차도록 젖어들었다.종이는 말라 있었지만, 그 속에 적힌 글자들은마치 오래된 울음을 품은 듯 뻣뻣했다.“그 사람을 사랑했던 게 아니라, 그 사람을 믿고 싶었던 것뿐이었어.”믿고 싶었다. 사랑이 아니라.유리는 그 문장을 가만히 입속으로 되뇌었다.그리고 입술이 떨리는 걸 참을 수 없었다.사랑은 실패해도 다시 할 수 있지만

  • 너무 위험한 여자   34. 누군가는 다시 시작하고, 누군가는 끝을 정리한다

    어떤 복수는 끝나지 않는다.누군가를 무너뜨렸다고 해서 자신이 온전히 살아남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서인국의 이름은 기소됐고, 뉴스는 매일 그의 재산과 과거를 파헤쳤다.법정에 선 그는 여전히 넥타이의 매무새를 단정히 조였고,한 마디의 사과도 없이 오직 “사실 무근입니다”를 반복했다.그러나 이제,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없었다.유리는 잠잠해진 세상 속에서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출근하듯 앉아 조용히 기록을 정리했다.검사가 되기 위한 마지막 서류.그 안엔 누구의 이름도 쓰여 있지 않았지만,모든 문장마다 유진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그녀는 자신이 정의롭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단지, 스스로에게 물었다.“난 잘 살아남고 있는 걸까.”이우는 사라졌다. 검찰이 움직이기 시작한 그날 이후 그는 유리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남긴 건 짧은 메일 한 통.제목은 없었고, 본문은 단 세 줄이었다.“이제, 내 이름이 필요 없어졌네요.”“잘 살아남으세요.”“그것도, 복수의 한 방식이니까요.”유리는 아무 답도 쓰지 않았다.대신, 메일을 읽은 시각을 기억했다.밤 11시 46분.모든 감정이 조용히 가라앉는 시간.그리고 이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재판이 시작된 후 처음으로 유리 앞에 나타난 그는 오히려 누구보다 말이 없었다.“...왜 그랬어요?”유리가 조용히 물었다.이현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나는, 당신이 나를 죽이려는 줄 알았어요.”“아니에요.”“그럼?”“난 당신이 언니를 죽인 줄 알았어요.”그 말에, 이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단지 그 눈 속에, 처음 보는 무너짐이 있었다.2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누구도 이기지 않았고, 누구도 완전히 진실을 다 가진 것도 아니었다.다만, 이제부터는 그 무너진 자리 위에 각자의 진심이 남기 시작했다.6개월 후…“조유리 검사,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 임관을 명합니다.”그 순간, 유리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임관식장에 울려 퍼진 낯선 이름

  • 너무 위험한 여자   33. 죽음도 감수해야 한다면

    사람이 감수할 수 있는 건 상처가 아니었다.예상할 수 없는 공포. 그것이 진짜로 사람을 무너뜨렸다.그리고 유리는, 그 무너뜨림 앞에서 버티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혼자 다니지 마세요.”김도환 부장이 퇴실하며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그 말은 배려가 아니라 ‘그들이 곧 움직일 것’이라는 경고에 가까웠다.하지만 유리는 고개를 끄덕였을 뿐 어떤 감정도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이제 그녀에게 필요한 건 불안도, 두려움도 아닌 단 하나, 견디는 근육뿐이었다.집으로 돌아오자 현관문에 작은 표식이 붙어 있었다.테이프. 색도 냄새도 없는, 흔한 사무용 테이프. 하지만 유리는 알아봤다.그건 회장의 보안팀이 현장 점검에 썼던 암호였다.표식 하나로 감시의 시작을 알리고, 그 후 48시간 이내에 ‘접근’이 이뤄졌다.즉 그들이 오고 있었다. 곧, 아주 가까이.“당신, 지금 위험해요.”이우가 전화를 걸어온 건 한밤중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짧았고 숨이 가빴다.“당신 아파트 주변, 회장 쪽 사람들 움직임 있어요.”“이미 알고 있어요.”“문에 표식 있었죠.”“응.”이우는 짧게 침묵했다.“이젠 당신 이름도, 얼굴도 다 노출됐어요. 더 이상은 조용한 싸움이 아니에요.”“알아요.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은 혼자 싸우지 않을 거예요.”그녀는 침대 아래 보관 박스를 열어 USB 두 개를 꺼냈다.하나는 서인국의 지시를 담은 녹음. 하나는 회장의 비자금 자료, 그리고 내부 계약 문건.“언니가 죽고 남긴 것들이 이제는 나를 움직이는 이유가 됐어.”USB를 손에 쥔 채, 유리는 거울을 바라보았다.눈동자는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피곤에 물든 눈이 아니었다.그건, 칼을 들기 직전의 얼굴이었다.다음 날 아침. 서울중앙지검 정문 앞.기자 두 명이 이미 출입기록을 입수해 조유리라는 이름을 수첩에 적고 있었다.“그 이름, 확실해요?”“응. 조유진 동생. 이번에 언니 사건 재기 요청한 내부 고발자래.”이름이 돌고 있었다.그녀의 이름이, 이제 도움 청할 이름이 아니라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