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타앙, 타앙, 타앙!
서귀포 공설운동장 메인 트랙 위로 거친 마찰음이 쉴 새 없이 메아리쳤다.
5월의 쨍한 햇살을 받아 붉은 우레탄 주로가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3레인 직선 주로를 질주하는 두 남자의 그림자가 맹렬한 기세로 트랙을 가르고 있었다.
오른쪽에는 형광 주황색 가이드 러너 조끼를 입은 한태준, 왼쪽에는 공인 암전 안대를 착용한 차도현.
두 사람이 손목에 건 테더의 고리는 단단히 고정돼 있었다. 전체 길이 30cm, 가운데 연결부는 10cm 이상. 늘어나지 않는 끈을 당기지 않도록 둘이 보폭을 맞췄다.
"도현아, 스텝 좋아! 50미터 가속 구간 들어간다! 팔 스윙 피치 유지해!"
태준의 굵직한 육성이 귓가를 때리는 맞바람을 뚫고 꽂혔다.<
제주 전지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서한체대. 경기를 하루 앞둔 6월 11일, 장비실 책상 위에는 세 가지 장비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첫 번째는 안대와 차광용 아이패치였다. 얼굴에 밀착했을 때 빛이 새지 않는지 확인하고, 경기 당일 소집실에서 다시 검사받을 장비였다.두 번째는 두 고리를 포함한 전체 길이가 30cm인 비탄성 테더였다. 고리와 스토퍼가 풀리지 않는지, 가운데 연결부가 10cm 이상인지 다시 확인했다.세 번째는 차도현의 레이싱 스파이크였다. 핀의 길이와 마모 상태를 확인하고, 경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신발인지 담당자에게 확인받아 준비해뒀다.도현은 손끝으로 고글의 가장자리와 테더 고리를 매만졌다. 직접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은 태준에게 물었다. 태준은 손가락이 닿은 순서대로 점검한 내용을 말해주었다."사전 점검 이상 무. 테더 상태 괜찮고, 고글도 빛 안 샌다. 내일 오전 9시에 현장 검사 한 번 더 받으면 돼."가이드 조끼의 벨크로를 정돈하던 한태준이 테이블을 톡 두드리며 씩 웃었다."차도현, 태블릿 켜 놨다. 협회 전산 등록 최종 확인해 봐."도현이 태블릿 화면에 손을 얹자, 시각장애인용 화면 낭독 프로그램(TTS)의 차분한 기계음이 검사실의 정적을 깨고 울려 퍼졌다.[대한장애인육상연맹 공인 선수 등록 정보. 소속: 서한체육대학교 육상부. 성명: 차도현. 장애 등급: T11. 세부 종목: 남자 100m 단거리. 공인 가이드 러너: 한태준.]도현의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가만히 멈춰 섰다.개인 최고 10초 23, 비장애인 국
"도현아, 멈춰! 서!"삐이이익!서민경 코치의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가 트랙의 정적을 사납게 찢었다.35미터 가속 구간. 태준보다 반 뼘 앞서 뛰쳐나갔던 도현의 오른발이 우레탄 지면을 헛디뎠다. 팽팽하게 당겨진 테더의 반작용으로 상체가 왼쪽으로 급격히 쏠렸다."큭……!"도현의 몸이 휘청거리며 주로 안쪽으로 곤두박질치기 직전이었다.옆에서 맹렬한 스피드로 따라붙은 한태준이 제 어깨를 던져 도현의 허리를 낚아챘다.쿠웅, 촤아악!두 사람의 스파이크가 붉은 우레탄을 긁으며 길게 미끄러졌다. 트랙 가장자리 잔디밭으로 굴러떨어지며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허억, 헉…… 도현아, 발목! 발목 괜찮아?!"태준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도현의 오른쪽 다리부터 다급하게 더듬었다.도현은 잔디밭에 대자로 드러누운 채 거친 숨을 헐떡였다. 암전 안대가 비뚤어져 눈부신 5월의 햇살이 그의 흐릿한 눈동자로 쏟아져 내렸다. 다행히 푹신한 잔디밭으로 구른 덕에 관절이 꺾이지는 않았지만, 오른쪽 허벅지 안쪽 내전근이 팽팽하게 조여 오고 있었다."……괜찮아. 발목 안 꺾였어.""이 자식이 진짜! 죽으려고 작정했어?!"태준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늘 능글맞게 웃던 태준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져 있었다."내가 출발할 때 뭐라 그랬어! 내
타앙, 타앙, 타앙!서귀포 공설운동장 메인 트랙 위로 거친 마찰음이 쉴 새 없이 메아리쳤다.5월의 쨍한 햇살을 받아 붉은 우레탄 주로가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3레인 직선 주로를 질주하는 두 남자의 그림자가 맹렬한 기세로 트랙을 가르고 있었다.오른쪽에는 형광 주황색 가이드 러너 조끼를 입은 한태준, 왼쪽에는 공인 암전 안대를 착용한 차도현.두 사람이 손목에 건 테더의 고리는 단단히 고정돼 있었다. 전체 길이 30cm, 가운데 연결부는 10cm 이상. 늘어나지 않는 끈을 당기지 않도록 둘이 보폭을 맞췄다."도현아, 스텝 좋아! 50미터 가속 구간 들어간다! 팔 스윙 피치 유지해!"태준의 굵직한 육성이 귓가를 때리는 맞바람을 뚫고 꽂혔다.태준은 100미터 10초 42를 뛰었던 전직 국가대표 스프린터였다. 도현을 앞질러 끌고 가지도, 뒤처져 발목을 잡지도 않으며, 오직 도현의 보폭과 근육의 팽창 주기에 맞춰 완벽한 미러링을 구사하고 있었다.타앙!결승선을 통과하며 두 사람이 천천히 감속했다.태준이 스톱워치를 누르며 숨을 헐떡였다."후우…… 11초 42. 어제보다 0.06초 당겼다. 출발 블록 반응 속도도 0.14초대로 완전히 자리 잡았어."그러나 암전 안대를 벗어 올린 도현의 표정은 어두웠다.땀에 흠뻑 젖은 흑발 사이로 드러난 턱선이 굳어 있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의 가슴팍이 요동쳤지만, 눈빛에는 짙은 초조함이 서려 있었
아침 7시 30분, 제주 서귀포 전지훈련 선수단 식당.전지훈련에 참가한 각 대학 육상부와 실업팀 선수들로 식당 안은 이른 아침부터 왁자지껄했다. 배식대의 갓 구운 소고기 안심 스테이크와 계란 프라이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고, 그 옆에는 신선한 과일 샐러드가 놓여 있었다.식판을 들고 테이블 구석 자리에 앉은 채아는 젓가락으로 샐러드를 뒤적거리며 연신 헛기침을 삼켰다.맞은편에 앉은 차도현 때문이었다.도현은 언제나처럼 검은색 트레이닝복 차림에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주변 테이블의 다른 대학 선수들이 감히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역시 서한체대 차도현 선배 포스는 장난 아니다"라며 수군거릴 만큼 차갑고 서늘한 간판스타의 위압감 그대로였다.하지만 테이블 위의 실제 상황은 정반대였다.도현은 제 식판의 계란을 주겠다고 했다. 채아가 그릇을 가까이 가져오자 손끝으로 위치를 확인하고, 계란 프라이 하나를 조심스럽게 옮겨주었다.탁."선배……?"채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도현이 헛기침을 하며 덤덤하게 속삭였다."단백질 보충해라. 오늘 오전 훈련 인터벌 빡빡하다며.""나 이미 달걀 두 개 받았는데요?""그럼 배고프면 먹어. 더 먹으라고 억지로 주는 건 아니고…… 네가 좋아하는 반숙이길래."도현의 무심한 말투와 달리, 선글라스 너머 그의 귀 끝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심지어 손끝으로 사과의 껍질을 정
처마 끝을 타고 흘러내리던 굵은 물방울이 점차 가늘어지더니, 이내 뚝, 뚝 소리를 내며 멎어 들었다.서귀포의 여름 소나기는 요란했던 것만큼이나 빠르게 밤하늘 너머로 물러났다.빗줄기가 말끔히 씻어내린 밤공기 속에서 짙은 흙내음과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한층 선명하게 피어올랐다. 물기를 머금은 아스팔트 위로 목조 가로등 불빛이 길게 번져 나가고 있었다.처마 아래에 바짝 붙어 서 있던 두 사람의 숨결은 여전히 가빴다.도현의 엄지손가락은 여전히 채아의 이마 언저리에 머물러 있었다. 빗방울을 조심스럽게 닦아내던 손길이 귓가를 스쳐, 가느다란 턱선 쪽으로 아주 느리게 미끄러져 내렸다.스프린터 특유의 거친 굳은살이 박인 도현의 커다란 손바닥.그 손바닥이 살갗에 닿는 순간, 채아는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일어 숨을 깊게 들이켰다."비…… 완전히 그쳤네요."채아가 나직하게 속삭였다. 빗소리가 멎어버리자 자신의 가슴속에서 터져 나오는 요란한 심장 박동 소리가 고스란히 도현의 귀에 닿을 것만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도현이 손을 거두지 않은 채,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조금만…… 더 걷다 들어갈까.""네."두 사람은 처마 밑을 빠져나와 촉촉하게 젖은 해변 산책로로 걸어 나갔다.바다 위로 먹구름이 걷히며 은빛 달빛이 수평선 가득 부서져 내렸다. 파도가 밀려들 때마다 모래톱에 맺힌 빗방울들이 보석처럼 반짝였다.
밤 9시의 서귀포 해변 산책로는 한산했다.철썩, 철썩.검은 현무암 갯바위를 부드럽게 핥고 물러서는 밤바다의 파도 소리가 고요한 적막을 채우고 있었다. 짭조름한 바다 내음과 함께 불어오는 밤바람이 낮 동안 훈련으로 달아올랐던 대지를 서늘하게 식혀 주었다.숙소 방을 나서기 전, 룸메이트 이진희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채아의 후드 집업 옷깃을 털어주며 신신당부했었다."야, 윤채아. 도현 선배가 밤에 산책 가자고 불렀는데 너 설마 훈련용 삼선 슬리퍼 끌고 나가려는 건 아니지? 제발 예쁜 흰 운동화 신고 나가라. 둘이 오늘 분위기 장난 아닐 것 같으니까!""진희야, 그냥 산책이라니까.""그냥 산책은 무슨! 서한체대 최고 철벽남이 밤바다를 걷자는데 그게 그냥 산책이냐? 응원한다, 우리 챔피언!"진희의 장난기 가득한 배웅을 뒤로하고 나온 채아는, 산책로 입구의 목조 가로등 아래에서 바닥의 조개껍데기를 발끝으로 툭툭 굴리고 있었다.사촌 에이전트 차진우는 구속되었고, 마정호 감독도 더는 두 사람의 훈련을 좌우할 수 없었다. 남은 절차까지 끝난 건 아니었지만, 오늘 밤만큼은 그들의 연락을 기다리며 휴대폰을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오롯이 서로를 온전히 마주할 수 있게 된 첫 번째 밤이었다.탁, 탁.모래알이 섞인 보도블록을 짚는 단단한 지팡이 소리가 들려왔다.채아가 고개를 들었다.가로등 불빛 속으로 차도현이 걸어오고 있었다.훈련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