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이 병원의 중환자실은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었다. 강지연이 도착했을 때 마침 안나가 면회를 마치고 나오는 순간이었다.안나는 그녀를 보자 눈을 크게 뜨고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였으나 곧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지연 씨, 여기 어떻게 온 거예요?”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시선은 슬쩍 진료실을 향했다. 강지연은 차분히 설명했다.“경호원들 문병하러 왔다가 온하준 상태도 담당 의사한테 좀 물어보려고요. 그리고...”말끝을 흐린 채 그녀는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중환자실 비용이 얼마나 비싼지 강지연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온하준은 이혼 당시 재산의 대부분을 그녀에게 넘겼고 이후 아버지의 유산을 받았지만 그마저도 거의 기부해 버린 상태였다.가게까지 문을 닫은 지금 보험은 제대로 들어 둔 건지, 이 비용을 감당할 수는 있을지 걱정이 이어졌다.강지연은 어떻게든 의료비를 보태야겠다고 마음먹었다.안나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그래서 의사는 만났어요?”“아직이요. 방금 가려던 참이었어요.”안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강지연과 홍순자를 데리고 유리 너머로 온하준이 있는 병실을 보여 주었다. 면회 시간이 지났기에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병상에 누운 온하준은 깊이 잠든 사람처럼 미동도 없었다.“상처가 매우 심각해서 중환자실에 있는 건데 의사 말로는 오늘 상태가 안정적이래요. 특별한 문제만 없으면 며칠 안에 일반 병실로 옮길 수도 있다고 했어요.”안나의 설명에도 강지연은 아무 말 없이 유리 너머를 바라봤다. 상처는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았다. 과거 자신이 다쳤을 때보다 훨씬 심각해 보였다.“안나 씨...”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그 말, 정말이에요?”“당연하죠. 저는 지금 온하준이 빨리 깨어나기만 바라요. 우리 아직 할 일이 많거든요.”안나는 유리창 너머를 바라봤다. 그 눈빛이 희망인지, 애써 참고 있는 눈물인지 강지연은 분간할 수 없었다.전 부인이라는 위치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여졌고 어떤 말도 어색할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하게 막혔
강시우는 말없이 강지연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 순간 둘 사이에는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고 애초에 답이 없는 질문만이 공기처럼 내려앉아 있었다.어쩌면 침묵이야말로 가장 정확한 대답이었을지도 몰랐다.온하준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안나에게 들은 바로는 내장 파열에 하반신 골절이라고 했다.강지연은 그의 다리가 경호원처럼 단순 골절이기를, 예전에 자신이 겪었던 것처럼 걷는 데까지 영향을 남기는 상처가 아니기를 속으로 거듭 빌었다.그녀 역시 병문안을 가고 싶었지만 중환자실이라 해도 정해진 면회 시간이 있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전 부인이라는 신분이 마음에 걸렸다.그날 제인과 에리크를 보러 병원에 가기 전, 한참을 망설이던 끝에 안나에게 전화를 걸었다.“안나 씨, 오후 면회 시간에 저도 같이 가서 온하준을 봐도 될까요?”잠시 침묵이 흐른 뒤 안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그건... 아닌 것 같아요.”순간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강지연은 담담한 척 답했다.“그래요, 알겠어요.”전 부인으로서 여자 친구까지 있는 그를 지나치게 신경 쓰는 건 옳지 않았다.“그냥 미안해서 그래요.”낮게 덧붙인 말에 안나가 한숨처럼 대답했다.“조금 더 상태가 안정되고 중환자실에서 나오면 그때 연락할게요.”“그래요.”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강지연은 한동안 휴대전화를 쥔 채 서 있었다. 언제 다가왔는지도 모르게 할머니가 곁에 서 있었다.“지연아.”홍순자의 부름에 그녀는 급히 표정을 가다듬었다.“할머니, 준비가 다 되셨어요? 그럼 가요.”오늘 홍순자는 함께 병원에 갈 생각이었다. 워낙 선한 사람이라 병실에 누워 있을 세 사람을 떠올리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며 뭐라도 챙겨 주고 싶어 이른 아침부터 음식을 준비했다.“뭘 먹을 수 있을지 몰라서 이것저것 했어. 일단 가져가 보자.”도시락통이 네다섯 개나 됐다. 강지연의 마음이 다시 무거워졌다. 제인과 에리크는 이제 거의 무엇이든 먹을 수 있지만 온하준은 그렇지 못했다.요즘은 외출도 쉽지 않았다. 세 대의 차량이 동시에 움직였고
온하준이 중환자실로 옮겨졌다는 건 이제 당분간은 그를 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강시우가 몇 번이고 설득한 끝에 안나와 강지연은 결국 병원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강지연은 자신보다도 안나가 더 걱정되었다.안나는 병원에 도착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흐리멍덩한 표정이었고 아직 온하준의 현재 상태를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처럼 보였다.강지연의 머릿속에는 수없이 많은 말들이 맴돌았다.사과, 다짐, 약속...그러나 그 어떤 말도 끝내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병동을 벗어나자 안나는 곧장 병원 밖으로 걸어 나갔고 함께 온 차를 타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은 듯했다.“안나 씨.”강지연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안나는 느릿하게 뒤를 돌아보았다.그녀의 표정을 보는 순간 강지연은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우리 집에 와서 며칠이라도 함께 지내는 건 어때요?”강지연은 안나가 혼자서 이 상황을 버텨내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다.하지만 안나는 가볍게 웃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그 미소가 오히려 강지연의 가슴을 더 아프게 했다.“안나 씨.”강지연은 결국 눈물을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우리랑 같이 있어요. 서로 의지하면서... 필요한 게 있으면 우리가 도와줄 수도 있잖아요.”안나는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아요. 그냥 집으로 갈게요.”그녀가 끝내 마음을 바꾸지 않자 강지연은 그녀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럼 데려다줄게요.”안나는 또다시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지하철 타면 돼요.”그 말을 남기고 안나는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안나 씨!”강지연은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다시 불러 세웠다.“안나 씨, 제가 원망스럽죠?”온하준이 자신을 구하려다 다쳤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이 그의 전처라는 사실은 안나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지도 몰랐다.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분명 사실이었다.그러나 안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또다시 고개를 저었다.그러고는 손을 뻗어 강지연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다정하게 정리해 주며
강지연과 안나는 응급실 앞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시간을 견뎌냈다.날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나서야 그들은 차례로 응급실에서 실려 나왔다.가장 먼저 나온 사람은 총상을 입은 경호원 제인 이었다.어깨에는 두툼한 붕대가 감겨 있었지만 의식은 또렷했고 얼굴이 다소 창백해 보일 뿐 상태는 비교적 괜찮아 보였다.그는 강시우를 보더니 자신은 괜찮다고 짧게 말한 뒤 곧바로 병실로 옮겨졌다.그 뒤로 차량에 치였던 경호원이 한쪽 다리는 석고로 단단히 고정된 채 실려 나왔다.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보였다.강지연은 그 석고에 시선이 닿는 순간 갑자기 오래전 기억이 거센 파도처럼 밀려오며 가슴을 옥죄었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강시우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오빠, 저분... 나중에 장애가 되는 거 아니죠?”경호원도 사람이지 기계는 아니었다.위험한 일을 하는 직업을 선택했을 뿐인데 그 대가로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한다면 너무도 가혹 했다.과거 같은 경험을 했던 그녀에게 석고로 감긴 다리는 유독 더 아프게 다가왔다.강시우는 그녀의 손을 가볍게 두드린 뒤 직접 의사에게 상황을 확인하고 다시 돌아와 말했다.“의사 말로는 이론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대.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강지연은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다만 이번 사건에서 가장 위중한 사람이 온하준일 거라고는 그때까지 미처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상황을 들어보니 차량이 첫 번째 사람을 치고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오히려 액셀을 더 세게 밟았기에 온하준 씨가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게다가 차에 부딪혀 날아올랐다가 기둥에 다시 한번 부딪치며 큰 충격을 받았고 바닥에 떨어진 뒤에는... 차량이 그대로 깔고 지나갔다고 합니다.”의사의 말에 강지연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그녀는 그 순간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고 곧 보게 될 온하준의 모습이 어떤 상태일지 상상하는 것조차 두려웠다.예전에 자신이 그를 구해냈을 때처럼일지, 아니면 그보다 훨씬 더 처
강지연은 휴대전화를 손에 쥔 채 고개를 숙이고 안나에게 보낼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었다.하지만 화면 위의 글자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눈물이 한 방울씩 화면 위로 떨어지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의 시야가 이미 눈물로 완전히 흐려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강지연은 서둘러 눈물을 닦고 휴대전화 화면까지 닦아 낸 뒤에야 다시 안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사람들은 이미 병원으로 이송됐고 어느 병원인지는 아직 확인 중이에요.]그때 휴대전화 벨 소리가 다시 울렸다.장시연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이 시간에 장시연이 왜?’“언니, 지금 어디예요?”장시연의 목소리 역시 초조했다.“집이야.”강지연은 애써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아, 그럼 다행이네.”장시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언니, 요즘은 웬만하면 밖에 나가지 마세요. 꼭 나가야 하면 경호원도 많이 데리고 나가고요.”“너... 왜?”장시연 역시 무언가를 아는 듯했다.“언니, 누가 언니를 해치려고 해요. 성이 이 씨라는 사람이래요. 그러니까 진짜 조심해야 해요.”“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강지연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물었다.“그게... 제가...”장시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통화는 갑자기 끊겨 버렸다.강지연은 그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왜 갑자기 끊은 거지? 설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니겠지?’그녀는 곧바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이번에 전화를 받은 건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였다.“선배.”장시범이었다.“네가 왜 여기까지 왔어?”강지연이 당황해하며 물었다.“선배...”장시범은 예전과 다를 바 없는 말투로 말했다.“당연히 선배 때문에 온 거죠. 방금 시연이가 한 말 꼭 기억하고 있어요. 난 절대 선배한테 무슨 일 생기게 안 할 거니까.”“오빠... 일은 이미 생긴 것 같은데...”장시연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그리고 이내 통화는 또다시 끊겨 버렸다.지금 이 순간, 장시범이 왜
눈을 감으면 조금 전의 총성과 자동차의 요란한 엔진음이 다시 귓속을 파고들었고 눈앞에는 사람이 차량에 부딪혀 허공으로 날아오르던 장면과 총에 맞은 경호원이 쓰러진 바닥 위로 서서히 번져 가던 핏자국만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때 안나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안나의 목소리는 몹시 다급했다.“지연 씨, 지금 어디예요? 얼른 집으로 돌아가요. 누군가 해치려고 해요.”조금 전 안나가 전화를 걸어왔던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던 것이다.강지연은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모든 소리가 목구멍에서 막혀 버린 듯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그녀는 그저 안나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온하준이 지연 씨 찾으러 갔는데 못 봤어요? 아무 일 없죠? 괜찮아요?”안나는 몹시 초조해 보였고 진심으로 그녀를 걱정하고 있었다.물론 온하준의 행방 또한 걱정되었던 것이 분명했다.하지만 강지연은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몰라 그저 망설이기만 했다.“안나 씨...”그녀의 목소리는 이미 꽉 막혀 있었다.“온하준이... 미안해요. 온하준이... 차에 치였어요...”그 말을 내뱉는 순간 강지연은 간신히 붙잡고 있던 감정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미안해요, 안나 씨. 정말 미안해요...”그녀는 애써 울음을 참으려 했다.상황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듯 안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한참을 지나서야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온하준은 지금 어디 있어요? 어떻게 된 일이에요?”“저도 몰라요...”강지연은 입을 틀어막고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잠시 가라앉힌 뒤에야 다시 말을 이었다.“저도 방금 집에 도착했어요. 그때 가해자가 미친 듯이 달려들어 총을 쐈고 차로 온하준을...”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차에 치여 허공으로 날아오르던 온하준의 모습이 다시 눈앞에 선명하게 떠올랐던 것이다.전처일 뿐인 자신 때문에 온하준이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이 강지연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그녀는 과연 어떻게 안나를 마주해야 할지 몰랐다.“지금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어요. 상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