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아. 다행이다.’
현신은 이것이면 되었다고 여겼다.
무휼이 무사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그녀의 극적인 안도감을 눈앞에서 지켜보던 효진은 신기하다는 듯 다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뭐야, 이게 뭐라고. 이상 없다니······ 그렇게 다행인 거야?”
“네. 정말 좋은 소식이네요. 감사해요, 효진 님.”현신이 고개를 깊게 끄덕이며 진심 어린 활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효진은 다시 특유의 생글생글한 미소를 띠고 현신의 귓가로 살짝 다가와 비밀스럽게 속삭였다.
“쉿. 더 있어. 잠깐, 이건 진짜 비밀 같아.&rd
헤르만은 지금 너무 황당하다 못해 기가 차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어떻게 이 앙큼한 것이 이제는 자신까지 제멋대로 휘두르려 하는지. 자신이 대역죄인이 된 것은 아는지, 현신은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소심하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를 냈다.“헤르만 선배, 저를 파트너로 해 주세요. 선배는 소셜 포지션도 대단하고, 또······ 애인도 없으시잖아요.”보자 보자 하니 자신이 요즘 너무 물렁해져서 현신이 제대로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았다. 결국 헤르만은 참지 못하고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그냥 엘에프 옆에 서! 해 준다잖아, 파트너!”현재 대한민국으로 함께 가겠다고 결정을 내린 엘에프의 명령도 기가 막힌 상황인데, 자신에게 현신의 파트너까지 맡으라니.왜 하필이면 이번 임무의 불똥이 자신에게 튀어 이토록 사정사정을 해대는지, 헤르만으로서는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었다.“엘에프 선배는 효진 님 파트너잖아요.”“어차피 둘이 결혼할 사이도 아니야! 너희 둘, 갈수록 묘하게 닮아가는 거 아냐?”헤르만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뻐근한 목을 이리저리 꺾으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현신의 처지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애초에 대한민국으로 발을 들이는 것 자체가, 일이 틀어지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는 위험한 도박이었다. 게다가 제 옆에 파트너를 두는 일 따위는 평생 해본 적도 없는 그였다.“사람 험하게 굴리는 것도 그렇고! 무모한 생각만 골라서 해대는 데다가! 본인이 위험해질지도 모르는 일에 그저 몸을 풍덩 던져버리는 것까지!”엘에프와 현
현신은 머리가 아찔했다.자신의 입으로 한국에 가겠다고 지르긴 했으나, 그곳에 안전하게 잠입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엘에프의 조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하지만 막상 그 화려한 엘에프의 곁에서 팔짱을 끼고 상류층 사람들 사이를 누벼야 한다니,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혔다.분명 수많은 취재진이 몰릴 것이고, 내로라하는 정·재계 인사들이 가득할 터였다. 심지어 누구보다 주효진의 아버지가 개최하는 행사이니 그녀 또한 반드시 참석하지 않겠는가.“그건 불가능해요.”현신의 단호한 거절에 옆에 있던 헤르만이 웬일로 고개를 끄덕였다. 늘 무심하게 방관만 하던 헤르만이 동조해 주자, 현신은 눈을 반짝이며 도와달라는 듯 그에게 구원의 시선을 보냈다.그러자 헤르만은 미간을 좁히더니 손가락으로 현신의 어깨를 콕 집어내며 또박또박 딱딱한 음성을 건넸다.“엘에프, 이 럭비공 같은 녀석을 파트너라고 데려가면 사람들이 비웃을 거다. 상류층 예법도 전혀 모른 채 쭈뼛거릴 게 뻔한데, 네 명성에 금만 가지 않겠어?”문제라는 게 그것을 두고 한 말이었나.현신은 황당함에 눈을 부릅떴다. 헤르만의 독설을 그대로 듣고만 있을 수가 없어 곧바로 반박을 뱉어냈다.“헤르만 선배, 말씀이 좀 심하시네요. 저 몸으로 하는 건 다 잘해요! 예법도 배우면 익힐 수 있다고요. 하지만······ 엘에프 선배랑 그렇게 가는 건 싫어요. 다른 방법으로 잠입할 거예요.”“하긴, 한국 최고 상류층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인간들 틈바구니에서 네가 어떻게 버티겠어. 차라리 웨이터로 위장하는 게 낫겠지.”“딱 그거예요. 전 거기 임시 고용
같은 시각, 대한민국.서울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한규련의 회사 사장실에는 오랜만에 기묘한 침묵과 함께 팽팽한 온기가 감돌았다.대주주 총회를 완벽하게 마무리 지은 뒤 사장실로 자리를 옮긴 가계영, 한규련, 그리고 김강무가 한자리에 모여 조용히 차를 마시는 중이었다.어느덧 밤이 깊어 창밖은 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아늑한 실내에는 따뜻한 공기가 감돌았으나, 유리창 너머로 흩날리는 하얀 눈발은 계절이 완연한 한겨울임을 실감 나게 해주었다.늦은 식사를 마친 직후였기에, 찻잔을 만지작거리는 세 사람의 손길에는 여유가 스쳤다.“이렇게 셋이서 조용히 모이니까, 왠지 옛날 생각이 좀 나네.”한규련이 먼저 부드럽게 운을 뗐다. 그 말에 가계영은 들고 있던 찻잔 속의 맑은 액체를 가만히 응시했다.지난여름, 그 지독했던 계절에 현신이 제 곁을 떠나버린 이후로 세상은 벌써 시린 겨울로 접어들어 있었다. 홍콩에 워낙 오랫동안 머물다 온 탓인지, 그에게는 대한민국의 시간만이 유독 그 자리에 멈춰 서 있는 것만 같았다.여전히 말문을 닫고 있는 가계영의 깊은 눈동자에 언뜻 새하얀 한기가 스쳤다. 감회가 새롭다 못해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시려 오는 시간이었다.“그러게 말이야. 이맘때쯤 되니까 우리 마성의 알바생 생각도 좀 나고.”김강무 역시 찻잔을 입술에 대며 넌지시 한마디를 얹었다.가계영은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경청할 뿐, 굳이 감정을 표출하지 않았다. 향긋한 차를 한 모금 머금으며, 그는 오직 내면의 깊은 심연 속으로만 타오르는 집착을 삼켜냈다.‘다시 여름이 돌아오면······.’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편안해진 상태의 현신을 제 품에 안고 마주할
엘에프의 입가에 걸린 잔혹한 미소는 서서히 지워지고 있었지만, 그의 깊은 눈동자에는 기묘하리만치 희미한 평온함이 깃들었다.“감히 내 명령을 어긴 못된 부하에게 이런 상을 주다니. 내가 참 대단한 보스군, 에스. 네가 그토록 좋아하는 넘버전을 하니까 그렇게나 좋아?”현신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셔츠 깃을 흠뻑 적시며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네.”엘에프는 헤르만의 옆을 느릿하게 지나쳐 앞으로 걸어오더니, 땀에 젖은 현신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올렸다.“선배······. 지금 제가 땀이 많이 나서 좀 지저분합니다.”“넌 특별하니 괜찮아.”금세 변덕스럽게 표정을 지워낸 엘에프는 소름 끼치도록 다정한 손길로 현신의 얼굴과 목덜미를 깊게 쓸어내렸다.묘하게 신경을 자극하는 기분에 더해 보는 눈까지 의식한 현신은 슬그머니 몸을 물렸다.그리고 새 수건을 가져와 엘에프의 손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하얗고 고운 얼굴과 달리, 그의 손에는 확실히 거친 굳은살이 박여 있었고 크고 작은 흉터들이 가득했다. 그가 지나온 험난한 세계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손이었다.“어라, 왜 이리 친절해?”“선배도 제게 특별하니까요.”현신의 덤덤한 대답에 엘에프는 표정을 싹 지운 채, 그녀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듯 기민한 눈빛으로 관찰하기 시작했다.“너, 또 뭐 부탁할 거 있지?”역시 뱀처럼 촉이 좋은 엘에프였다. 현신은 침을 삼키며 본론을 꺼냈다.&ldqu
‘······아. 다행이다.’현신은 이것이면 되었다고 여겼다.무휼이 무사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더 바랄 것이 없었다.그녀의 극적인 안도감을 눈앞에서 지켜보던 효진은 신기하다는 듯 다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뭐야, 이게 뭐라고. 이상 없다니······ 그렇게 다행인 거야?”“네. 정말 좋은 소식이네요. 감사해요, 효진 님.”현신이 고개를 깊게 끄덕이며 진심 어린 활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효진은 다시 특유의 생글생글한 미소를 띠고 현신의 귓가로 살짝 다가와 비밀스럽게 속삭였다.“쉿. 더 있어. 잠깐, 이건 진짜 비밀 같아.”효진은 메신저 화면을 스크롤해 문자 하나를 더 현신에게 보여주었다. 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현신은 의문을 품은 채 효진의 영리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JJ그룹 창립기념일, 자택에서 열리는 파티에 모든 사건의 열쇠 등장. ]화면 가득 박힌 문자를 현신은 보고 또 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설날 마지막 날에는 항상 우리 집 행사를 하거든. 그게 아빠 회사 창립기념 파티인데······. 난 이게 도통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더라.”모든 사건의 열쇠라니.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현재 사경을 헤매며 행방이 묘연한 무휼이 제 목숨과 맞바꿔 알아낸 정보가 분명했다.결코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중대한 단서였다.그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상하이까지 직접 찾아와 정보를 전해준 효진
12월 중순의 상하이는 제법 쌀쌀함을 품고 있었다.상하이의 뒷골목은 낮인데도 빛이 잘 들지 않아 깊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낡은 건물 사이로 흙바닥의 먼지가 부유하여 시야가 흐릿하게 번져갔다.현신은 평소라면 호텔 밖으로 마음대로 나설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발걸음은 상하이의 거친 거리 한복판으로 향하고 있었다.지역 토착 조직에 납치된 동료 넘버 두 명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조직의 규율을 어기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엘에프와 헤르만이 잠시 해외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벌어진 사태였다.다른 상위 넘버들은 이미 구출 작전을 포기한 상태였고, 결국 현신은 자신 이하 하위 넘버들을 대동해 푸동 외곽의 낡은 건물 사이로 숨어들었다.화려한 마천루가 일색인 와이탄 구역과 달리, 이곳은 음습하고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우리 넘버 두 명은 이제 데려가겠습니다!”이곳을 점거하고 있던 지역 세력 20여 명은 현신이 이끈 무리에 의해 순식간에 제압당했다. 그리고 이곳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는 현신이 예를 갖춰 직접 상대했다.‘운동을 제법 한 사람이네. 하지만 전문 꾼은 아니야.’상대가 먼저 단검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검격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현신은 반사적으로 왼쪽으로 몸을 틀며 오른발로 허공을 찼다. 발끝에 정확히 맞았는지 둔탁한 파찰음이 공중으로 거칠게 튀어 올랐다.뒤이어 명치에 꽂힌 뒤꿈치가 상대의 갈비뼈 사이를 매섭게 파고들었다. 거구의 남자가 앓는 소리를 내며 허물어지듯 무릎을 꿇었다.피비린내와 땀 냄새가 뒤섞인 거친 숨소리가 섞인 변명이 귓전을 파고들었다.“어린 분이··&
계영은 무겁게 가라앉은 눈을 떠 침대 옆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분명 꿈이 아니었건만, 온기가 남아 있어야 할 자리를 쓸어내리는 그의 손끝에는 오직 서늘한 한기만이 맴돌았다.‘현신이······ 가버렸군.’그는 가만히 어제의 기억들을 반추했다.마치 무언가에 쫓기듯 초조한 기색으로 제게 독한 위스키를 연거푸 권하던 모습, 옷을 챙겨 입고 먼저 자겠다며 유난히 다정하게
호텔 밖으로 들어서자, 깊어가는 가을밤의 청량한 바람이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흩날렸다.마 실장이 은밀하게 대기시킨 세단에 오르는 순간까지도, 두 사람의 시선은 서로에게서 단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다. 계영은 현신에게 더 눈부신 세상을 보여주고, 더 영원한 기억을 새겨주겠다는 듯 소리 없이 그녀의 손을 이끌었다.이윽고 도착한 곳은 마카오의 화려한 정경을 가장 높은 곳에서 조망할 수 있는 골든 릴(Golden Reel) 대관람차였다.거대한 건축물의 그림자가 밤하늘을
이틀 뒤, 호텔 최상층.현신은 엘에프가 점유하고 있는 펜트하우스 바로 옆 회의실에 소집되었다.사방이 방음벽으로 차단된 정적 속에서 상위 넘버 서른 명과 어제 늦은 밤 급하게 귀국한 엘에프, 그리고 헤르만이 마주 앉아 있었다.회의석 말단에 앉은 현신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운 좋게 마카오 상황을 정리하긴 했지만, 다쳐 나간 지하 넘버들을 목격한 잔상이 뇌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아 마음이 무거웠다.게다가 해외 일정을 마친 엘에프가 기어코
11월 2일, 동이 트지도 않은 이른 아침 7시.엘에프는 제 눈앞에 나타난 가계영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매끄럽게 올렸다. 도저히 멈추지 않는 흥미로운 미소였다.식사는커녕 겨우 해가 뜬 시각, 선약도 없이 이리 무례하기 짝이 없게 남의 성역에 발을 들이밀다니.‘이 사내, 정말 지루할 틈을 안 주는군.’엘에프는 새삼 현신이라는 존재의 가치를 다시금 절감했다. 이런 거물이 이성을 잃고 제 발로 오게 할 만큼 매혹적이라니. 그녀를 제 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