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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Autor: 월이
다시 눈을 떴을 때, 서하영은 자신의 처소에 누워 있었다.

온몸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뼈마디가 모조리 부서진 듯했고, 숨을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을 찢어놓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녀는 한동안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살아 있다는 사실조차 실감 나지 않았다.

침상 곁에는 하윤성이 앉아 있었다.

며칠 밤을 꼬박 지새운 듯 그의 얼굴은 초췌했고, 눈가에는 핏발이 가득했다.

서하영이 깨어난 것을 본 순간, 하윤성의 눈빛에 기쁨이 번졌다.

그는 곧바로 몸을 숙였다.

“하영아, 정신이 드느냐? 몸은 좀 어떤가? 아직도 많이 아프더냐?”

예전 같았으면 그의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서하영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텅 빈 눈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하윤성의 얼굴에 떠올랐던 기쁨은 그대로 굳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표정은 죄책감으로 바뀌었다.

그는 그녀의 차가운 손을 잡고, 쉰 목소리로 설명했다.

“하영아, 미안하다. 그날 네가 신호를 보낸 뒤, 나는 곧바로 사람을 이끌고 너를 뒤쫓으려 했다. 허나... 예진이가 갑자기 심병으로 쓰러졌고, 위급한 상황이라 한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겨우 그녀를 안정시킨 뒤 다시 너를 찾아 나섰으나, 이미 늦은 뒤였더구나... 밤새도록 찾아 헤맨 끝에야 절벽 아래에서 너를 발견했다...”

하윤성의 말은 갈수록 두서없이 이어졌다.

그는 그날의 사정을 설명하고 싶었다. 그리고 서하영에게 용서를 받고 싶었다. 서하영은 천천히 하윤성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냈다.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차분했다.

“설명할 필요 없습니다.”

하윤성은 순간 굳어졌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습니다.”

서하영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에는 미움도 원망도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이 다 메말라 버린 듯한 공허함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차피... 저는 나리께 기대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순간 하윤성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한마디가 그의 가슴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기대한 적이 없다고? 나에게...’

“서하영, 너...”

하윤성이 말을 잇기도 전에 문밖에서 고예진 시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리! 준비되셨습니까? 둘째 마님께서 이미 마차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윤성은 미간을 깊이 찌푸린 채 침상 위의 서하영을 바라보았다.

몸은 쇠약하고 얼굴은 창백했지만, 그 눈빛만큼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때 문밖에서 다시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망설이던 하윤성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영아, 몸조리 잘하거라. 예진이가... 요사이 계속 편치 않아, 함께 광제사(廣濟寺)에 다녀오려 한다. 며칠 동안 절에 머물며 평안부도 하나 받아 오고, 그 아이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도를 올리면 조금 나아질 듯하구나. 그때… 너를 위한 평안부도 하나 받아 오겠다.”

서하영은 천천히 눈을 감고, 더 이상 하윤성을 바라보지 않았다.

“필요 없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이상하리만큼 또렷하게 그의 귀에 닿았다.

“그 부적은 그 아이에게 주십시오. 저는 이제 필요 없습니다.”

그 말에 하윤성은 순간 멈칫했다.

이윽고 그는 돌아서서 서하영을 바라보았다.

서하영은 눈을 꼭 감은 채 누워 있었다.

얼굴은 종잇장처럼 창백했고, 마치 언제라도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 순간 하윤성의 마음속 불안감이 다시 거세게 밀려왔다.

마치 눈앞의 사람이 여전히 곁에 있지만, 마음은 이미 자신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난 듯했다.

하지만 그는 끝내 발길을 돌렸다.

하윤성은 생각했다.

어차피 앞으로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 나중에 설명하면 되고 보상하면 된다고.

서하영은 언제나 그랬듯 그 자리에서 자신을 기다려 줄 것이니, 굳이 지금 그녀에게 마음을 쏟을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하윤성의 발소리가 멀어지고서야 서하영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해는 저물어 황혼이 내려앉고 있었다.

오늘은 월말이었다.

경조부로 가서 철정형을 받아야 하는 날이었다.

몸은 아직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아팠다.

몸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고,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서하영은 아픈 몸을 억지로 일으켜 천천히 침상에서 내려왔다.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상처가 욱신거렸고, 결국 이마와 등에 식은땀이 맺혔다.

그러나 서하영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지금 물러난다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몰랐다.

그녀는 움직이기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미리 준비해 둔 작은 보따리를 등에 멨다.

그리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용히 문을 열었다.

하인들의 눈을 피해 뒷문으로 빠져나오는 동안, 그녀는 몇 번이나 숨을 고르며 걸음을 옮겨야 했다.

경조부 관아 앞은 이미 구경 나온 백성들로 가득했다.

여인이 먼저 화리를 청하고, 스스로 철정형을 받겠다고 나선 일은 경성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렸다.

하지만 서하영은 창백한 얼굴로도 허리를 곧게 세운 채, 한 걸음씩 경조부 관아 앞으로 걸어갔다.

“소인 서하영, 스스로 철정형을 받겠사오니, 부디 화리서를 내려주시옵소서!”

그녀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 한마디는 관아 앞에 모인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전해졌다.

잠시 후, 아역(衙役)들이 피로 얼룩진 못판을 들고 나왔다.

피가 말라붙은 못판 위로 날카로운 쇠못들이 서늘한 빛을 뿜었다.

그 끔찍한 광경을 마주한 순간, 주변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서하영은 눈앞에 놓인 잔혹한 형구를 바라보았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그녀의 눈빛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녀는 겉옷을 벗고 속적삼 차림이 된 채,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천천히 못판 위에 몸을 눕혔다.

누군가는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고, 누군가는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냈으며, 누군가는 충격에 말을 잃었다.

서하영은 그런 시선들을 뒤로한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지막 힘을 다해 몸을 앞으로 굴렸다.

“푹!”

순간 쇠못이 얇은 옷을 뚫고 살 속으로 파고들었다.

수백, 수천 개의 달군 칼날이 동시에 몸을 베어내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전신을 휩쓸었다.

핏물이 순식간에 번져 못판과 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서하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입안에는 비릿한 피 맛이 퍼졌지만, 그녀는 끝내 비명조차 내지 않았다.

못판 위를 한 번 구른 것만으로도 그녀의 몸은 이미 피로 젖어 있었다.

“계속... 계속 하시겠습니까?”

형을 집행하던 아역의 얼굴에도 차마 보기 힘든 기색이 떠올랐다.

법도상 못판 위를 세 번 굴러야만, 비로소 형이 끝난 것으로 인정되었다.

온몸을 파고드는 고통에 서하영의 시야가 점차 흐려졌다.

몇 번이고 정신을 놓을 것만 같았지만, 그녀는 이를 악문 채 버티며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계속하겠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마침내 못판에서 굴러 떨어진 서하영은 더 이상 온전한 모습이 아니었다.

온몸은 이미 피로 흠뻑 젖어 있었고, 눈앞은 흐릿하게 가라앉았다. 가느다란 숨만이 겨우 그녀가 아직 버티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담당 관원은 눈앞에 펼쳐진 참혹한 모습을 바라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미리 마련해 둔 화리서에 관인(官印)을 찍고, 서하영 앞으로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서씨, 그대가 치러야 할 형은 모두 끝났소. 이것은 화리서이니 받아 가시오.”

서하영은 피투성이가 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가늘게 떨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힘을 모두 끌어모은 그녀는 피와 상처로 뒤덮인 손을 힘겹게 뻗어, 그 화리서를 받아 들었다.

가벼운 종이 한 장, 하지만 그녀에게 그것은 천 근보다 무거운 것이었다.

서하영은 화리서를 조심스럽게 접어 품 안 깊숙이 숨겼다.

마치 그것이 자신이 마지막으로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듯했다.

그녀는 바닥을 짚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휘청이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피 묻은 발자국이 하나씩 남았다.

그녀는 구경 나온 사람들 사이에서 인상이 순박한 노인 한 명 앞에 멈춰 섰다.

서하영은 보따리에서 남은 은전 몇 닢을 꺼내 그의 손에 쥐여 주었다.

“어르신...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승상 대인께서 돌아오시면... 이것을 직접 전해 주십시오.”

서하영은 목숨을 걸고 얻어낸 화리서를 노인에게 건넸다.

노인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온몸은 피로 물들어 있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서하영은 그에게 아주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곧바로 몸을 돌려 관아 밖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미리 준비해 둔 늙은 말 한 필이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은 장신구를 내어 마련한 말이었다.

서하영은 힘겹게 말 위에 올라탔다.

움직일 때마다 상처가 아려 왔지만, 그녀의 손은 끝내 고삐를 놓지 않았다.

“이랴!”

말은 거친 울음을 흘리며 서하영을 태운 채, 성문을 향해 휘청거리며 내달렸다.

해는 서서히 저물어 갔다.

석양빛 아래, 피로 물든 서하영의 모습이 길게 늘어졌다.

멀어지는 말발굽 소리는 점점 희미해졌고, 끝내 변방으로 향하는 관도 너머로 사라졌다.

그날 이후, 경성에는 더 이상 서하영이라는 여인이 없었다.

하윤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었으나, 끝내 그 마음을 본인 손으로 짓밟힌 승상 부인 또한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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