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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식어버린 후궁이 도망쳤다

마음이 식어버린 후궁이 도망쳤다

作者:  하늘已完成
語言: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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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章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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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事簡介

위장 죽음

응징

로얄

집착

나쁜 남자

신나정은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 끝에 겨우 황자를 출산했다. 간신히 눈을 뜨자, 곁을 지키던 월이가 울먹이며 말했다. “마마, 폐하께서 아기 황자님을 장춘궁(長春宮)으로 데려가셨사옵니다. 앞으로는 황후 마마께서 직접 키우신다고 하옵니다.” 신나정은 침상에 누운 채 미동도 없이 천장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알았다.” 월이와 궁인들은 하나같이 무릎을 꿇은 채 눈시울을 붉혔다. “마마께서 말씀만 하신다면, 저희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장춘궁에 가 아기 황자님을 되찾아 오겠사옵니다!” “됐네.” 신나정의 목소리는 얼어붙은 호수처럼 잔잔했다. “난 되찾을 생각이 없네.” 월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하오나 아기 황자님은 마마께서 열 달 동안 품으시고, 목숨까지 내놓다시피 하여 낳으신 아이이옵니다!” “폐하의 뜻을 누가 거스를 수 있겠느냐. 폐하께서 그 아이가 누구의 자식이라 하시면, 그 아이는 곧 그 사람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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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1 章

제1화

시녀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저마다의 눈에는 당혹감과 혼란이 역력했다.

'마마께서... 어찌 저토록 담담하실 수 있단 말인가? 평소의 마마답지 않은데.'

그때, 전각 밖에서 태감의 날카로운 통성이 울려 퍼졌다.

“폐하 납시오!”

이윽고 황금빛 곤룡포를 입은 이준이 내전으로 들어섰다.

훤칠한 기품이 돋보이는 그는 흠잡을 데 없이 준수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표정만은 무심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침상 곁에 멈춰 서서 신나정을 내려다보았다.

“깨어났구나.”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변명하려는 것 같기도 했고, 이미 정해진 사실을 통보하는 것 같기도 했다.

“김하연은 황후다. 중궁에 오래도록 후사가 없으면 조정 대신들은 물론이고 백성들까지 입에 올리게 될 터. 황자를 황후의 소생으로 두는 것이 국본을 바로 세우는 길이자 예법에도 가장 합당하다.”

“폐하께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신나정이 천천히 눈을 떴다. 한때는 이준을 향한 연모로 반짝이던 눈이었다. 늘 생기 있고 맑게 빛나던 그 눈동자는 이제 얼어붙은 깊은 호수처럼 싸늘히 가라앉아 있었다.

“신첩, 이해합니다. 신첩 또한 폐하의 뜻을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준이 준비해 두었던 말들은 모두 목구멍에 걸리고 말았다.

'짐이 보상해 주겠다. '

'언제든 아이를 보러 가도 좋다.'

'그 아이는 여전히 네 아이이기도 하다'

이런 말들은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이준은 무덤덤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신나정을 보며 왠지 모를 짜증이 치밀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그가 기억하는 신나정은 결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예전의 신나정이었다면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그를 붙잡아 애원했을 것이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그의 해명을 기다렸을 터였다.

설령 그가 건넨 말이 성의 없는 변명에 불과하더라도, 몇 마디만 달래 주면 금세 마음을 풀었을 터였다.

그만큼 그녀는 그를 연모했다.

뜨겁게, 또 비참할 만큼 절절하게.

그래서 이준은 그녀의 마음만큼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라 믿어 왔다.

지금의 신나정은 너무도 차분했다. 그녀는 자신은 이해한다고, 또한 그의 명을 기꺼이 따른다고 말했다.

이준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정녕 괜찮다는 것이냐? 아이가 앞으로 황후를 어미로 여기고, 황후를 어마마마라 불러도 괜찮다는 것이냐?”

“제 뜻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신나정은 옅게 웃어 보였다.

“폐하께서는 이미 아이를 장춘궁으로 보내셨잖습니까?”

이준은 왠지 모르게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애초에 이것이 그가 바라던 결과였다. 그런데 정작 신나정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굴자, 알 수 없는 짜증과 답답함이 다시금 가슴을 짓눌렀다.

그녀는 마치 아이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 같았다.

그리고... 이제는 그조차도 더는 마음에 두지 않는 것만 같았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이준의 가슴이 이유 없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입술을 달싹였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지만, 정작 꺼낼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바로 그때 문밖에서 누군가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다. 이어 장춘궁 상궁 마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폐하... 황후 마마께서 심질(心疾)이 도지셨사옵니다. 줄곧 폐하를 찾고 계시옵니다...”

이 말을 듣자, 이준은 금세 제정신을 되찾았다.

눈가에 어리던 복잡한 기색도 순식간에 사라지고, 대신 걱정이 자리했다.

“몸 잘 추스르거라. 짐이... 다시 들르마.”

그 말을 남긴 채 그는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멀어져 가는 발소리가 점차 사라지자, 침전에는 다시 적막이 내려앉았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신나정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월아, 가서 폐하께서 그동안 내게 주셨던 물건들을 모두 가져오너라.”

월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영문은 알 수 없었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고 물건을 찾으러 갔다.

잠시 후, 바닥에는 크고 작은 비단함들이 수북이 쌓였다.

그중에는 이준이 즉위한 직후 하사했던 남해 진주 머리장식도 있었고, 남쪽 순행을 다녀오며 무심히 건네준 나자대(螺子黛)도 있었다.

그보다 더 오래전의 물건도 있었다.

동궁전 외진 별채에 머물던 시절, 기분이 좋았던 이준이 꺾어 주었던 매화 한 가지.

신나정은 그것을 정성껏 말려 향낭 속에 고이 간직해 두고 있었다.

그녀는 한동안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맨발로 침상에서 내려와 하나씩 집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그것들을 방 한구석에 놓인 화로 속으로 던져 넣었다.

“마마! 지금 무엇을 하시는 겁니까!”

월이가 깜짝 놀라 다급히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신나정이 먼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세게 잡은 것도 아니었건만, 월이는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있거라.”

신나정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것들은 모두 태워 없애야 한다. 진작 그랬어야 했거늘.”

마치... 그분을 향해 품어 온 7년간의 연모처럼.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 매달렸던 그 마음도 이제는 끝낼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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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章節
제1화
시녀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저마다의 눈에는 당혹감과 혼란이 역력했다.'마마께서... 어찌 저토록 담담하실 수 있단 말인가? 평소의 마마답지 않은데.'그때, 전각 밖에서 태감의 날카로운 통성이 울려 퍼졌다.“폐하 납시오!”이윽고 황금빛 곤룡포를 입은 이준이 내전으로 들어섰다.훤칠한 기품이 돋보이는 그는 흠잡을 데 없이 준수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표정만은 무심하기 그지없었다.그는 침상 곁에 멈춰 서서 신나정을 내려다보았다.“깨어났구나.”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변명하려는 것 같기도 했고, 이미 정해진 사실을 통보하는 것 같기도 했다.“김하연은 황후다. 중궁에 오래도록 후사가 없으면 조정 대신들은 물론이고 백성들까지 입에 올리게 될 터. 황자를 황후의 소생으로 두는 것이 국본을 바로 세우는 길이자 예법에도 가장 합당하다.”“폐하께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신나정이 천천히 눈을 떴다. 한때는 이준을 향한 연모로 반짝이던 눈이었다. 늘 생기 있고 맑게 빛나던 그 눈동자는 이제 얼어붙은 깊은 호수처럼 싸늘히 가라앉아 있었다.“신첩, 이해합니다. 신첩 또한 폐하의 뜻을 기꺼이 따르겠습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이준이 준비해 두었던 말들은 모두 목구멍에 걸리고 말았다.'짐이 보상해 주겠다. ''언제든 아이를 보러 가도 좋다.''그 아이는 여전히 네 아이이기도 하다'이런 말들은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이준은 무덤덤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신나정을 보며 왠지 모를 짜증이 치밀었다.무언가 잘못되었다.그가 기억하는 신나정은 결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예전의 신나정이었다면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그를 붙잡아 애원했을 것이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그의 해명을 기다렸을 터였다.설령 그가 건넨 말이 성의 없는 변명에 불과하더라도, 몇 마디만 달래 주면 금세 마음을 풀었을 터였다.그만큼 그녀는 그를 연모했다.뜨겁게, 또 비참할 만큼 절절하게.그래서 이준은 그녀의 마음만큼은 영원히 변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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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7년.꼬박 7년이었다.7년 전, 이준은 아직 태자였고, 신나정은 동궁전 서재 청소를 맡은 보잘것없는 궁녀에 불과했다.그러던 어느 날, 승상의 적녀 김하연과 가례를 올리기 바로 전날.이준은 선제(先帝)의 노여움을 사 태자 자리에서 폐위되었고, 냉궁 별채에 유폐되고 말았다.그는 차마 마음에 둔 김하연을 자신과 함께 고생길에 오르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곁에 있던 궁녀 신나정과 급히 혼례를 치렀고, 신나정은 허울뿐인 태자비가 되었다.냉궁 생활은 고단했지만, 신나정은 그마저도 좋았다. 오래전부터 이준을 연모하고 있었으니까.그래서 냉궁에서 보낸 3년은 그녀의 삶에서 가장 고된 시간이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만큼 달콤한 시간이었다.장대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그녀는 이준과 함께 후원 한쪽에 말라 죽은 나무 아래를 찾은 적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생전에 묻어 두었다던 술 항아리를 파내기 위해서였다.그녀는 이준과 함께 뼛속까지 시린 겨울도 견뎌 냈다. 남은 이불이라곤 하나뿐이었으나, 그녀는 그마저 이준의 몸에 둘러 주고 자신은 손발이 짓무를 만큼 추위에 떨어야 했다.심지어 그를 지키려다 옛 원수가 보낸 태감에게 떠밀려 돌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고, 다리가 부러져 하마터면 목숨까지 잃을 뻔했다...사람의 마음이란 본디 돌덩이가 아니다. 그토록 냉정하던 이준이라 해도 다르지 않았다.시간이 흐르자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도 조금씩 달라졌다. 처음의 냉담함과 경계심은 서서히 옅어지고, 늘 얼음장처럼 차갑던 눈동자에도 희미한 온기가 깃들기 시작했다.그는 그녀가 추위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을 때면, 말없이 손난로를 품에 안겨 주곤 했다. 그녀가 서툰 솜씨로 그의 옷을 꿰매다 손가락을 찔리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그만두어라” 하고 말했고, 악몽에 시달리다 잠에서 깬 밤이면 뜻밖에도 그녀를 품에 안은 채 재워 주기도 했다...그 후 이준은 이를 악문 채 오랜 세월을 견뎌 냈다. 한 걸음씩 세력을 넓히고 치밀하게 판을 짠 끝에, 마침내 정적들을 무너뜨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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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그 후 며칠 동안 신나정은 줄곧 방 밖으로 한 발짝도 나서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장춘궁의 상궁 마마가 건장한 태감들을 잔뜩 데리고 불쑥 들이닥쳤다.“혜비 마마, 마마께서 아이를 출산하신 지도 벌써 칠팔 일이 지났습니다. 궁중 법도에 따르면 산후 사흘이 지나면 황후 마마께 문안을 드렸어야지요. 헌데 여태 침상에서 내려오지 않으시다니, 몸이 그리도 귀하신 겁니까, 아니면... 황후 마마를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으시는 겁니까?”신나정은 침상에 누운 채 머리위 휘장만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 상궁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허면 혜비 마마께서도 인정하신다는 뜻이로군요. 여봐라! 혜비 마마를 침상에서 모셔 내리거라! 황후 마마의 명이시다! 궁중 법도를 업신여겼으니, 마땅히 곤장형을 내려 본보기로 삼으라 하셨다!”건장한 태감 두 명이 즉시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변명할 틈도 주지 않고 신나정을 침상에서 끌어내렸다.출산할 때 기력을 크게 소모한 탓에 본래 몸이 몹시 쇠약했다. 그런 몸으로 거칠게 끌려 나오자, 눈앞이 캄캄해지며 금세라도 쓰러질 듯 다리에 힘이 풀렸다.그녀는 알고 있었다.이는 김하연이 일부러 자신을 괴롭히려는 것이었다. 아이에 대한 권리를 과시하려는 것일 수도 있고, 그저 그녀를 괴롭히는 데서 즐거움을 얻으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하지만 이제 신나정은 이미 모든 것에 무감각해져 있었다.“마마, 잘못을 인정하십니까?”이 상궁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인정하네.”신나정은 눈을 감은 채 담담히 대답했다.이 상궁은 순간 멍해졌다. 신나정이 이렇게 선뜻 잘못을 인정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그녀가 너무도 순순히 죄를 인정하자, 이 상궁은 마치 힘껏 내지른 주먹이 솜에 박힌 듯 맥이 빠졌다. 그럴수록 속에서는 울화가 더욱 치밀어 올랐다.“쳐라! 사정없이 쳐라! 혜비 마마께서 오늘 일을 단단히 기억하시도록 해드리거라!”이 상궁은 날카롭게 소리쳤다.묵직한 나무 형장이 바람을 가르며 내리쳤다. 나무판이 살갗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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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건원전 밖은 수많은 등불로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신나정은 차가운 옥돌 계단 아래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외쳤다.“신첩 신나정, 폐하를 뵙기를 청하옵니다! 부디 약을 내려 주시어 제 시녀의 목숨을 구해 주시옵소서!”그러나 전각 안에서는 은은한 관현악 소리와 여인의 교태 어린 웃음소리만 희미하게 흘러나올 뿐이었다.그녀의 절규는 허공으로 흩어지고,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신나정은 포기하지 않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이마가 단단한 바닥에 부딪힐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마는 시퍼렇게 멍들고 부어올랐다.“신첩 신나정, 폐하를 뵙기를 청하옵니다! 부디 약을 내려 주시옵소서!”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침내 전각의 문이 열리고, 이준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그는 높은 계단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달빛과 궁등의 은은한 불빛이 그의 몸을 감싸, 본래도 서늘하고 고귀한 얼굴을 더욱 범접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마치 속세의 티끌 하나 묻지 않은 사람 같았다.계단 아래에는 맨발에 홑옷만 걸친 채 처참하게 흐트러진 신나정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이준의 눈썹이 서서히 찌푸려졌다.“혜비, 이번에는 또 무슨 소란이냐?”이준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짐이 듣자 하니, 오늘 네 시녀가 아이를 몰래 네 궁으로 데려갔다고 하더구나. 그 탓에 아이가 찬바람을 맞아 지금까지도 고열에 시달리고 있다. 너는 분명 아이를 황후에게 맡기겠다고 약조하지 않았더냐? 그런데 이제는 시녀를 시켜 이런 일까지 벌이다니. 대체 원하는 게 뭐야?”신나정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눈물과 핏자국이 뒤섞여 얼굴은 엉망이었지만, 그녀의 눈빛만큼은 한순간도 흔들리지 않은 채 곧게 그를 향하고 있었다. “폐하, 신첩은 아이를 보러 온 것이 아니옵니다.”이준은 순간 멍하니 굳어졌다.신나정은 말을 이었다.한 글자 한 글자, 마치 피를 토하듯 힘겹게 짜내는 목소리였다.“신첩은... 제 시녀 월이를 위해... 구전환혼단을 청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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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신나정은 직접 월이의 염을 해 주었다.늘 환하게 웃으며 눈웃음을 짓던 그 아이는, 이제 차가운 널판 위에 조용히 누운 채 다시는 눈을 뜨지 못했다.그날 이후 며칠 동안, 신나정은 자신을 소양전(昭陽殿)에 가둔 채 문밖으로 한 발짝도 나서지 않았다.바깥세상의 일은 더 이상 그녀와 아무 상관도 없는 듯했다.그녀는 그저 조용히 누워 있거나, 가만히 앉아 창밖의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눈빛은 텅 비어 있었고, 마치 영혼을 잃은 빈 껍데기 같았다.그러던 어느 날. 황후 김하연의 생신 연회가 열렸다.이런 자리에는 후궁인 신나정도 반드시 참석해야 했다.연회장에는 관현악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술잔이 오가며 흥이 한껏 무르익고 있었다.상석에는 이준과 김하연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김하연은 붉은 봉황과 모란이 수놓인 예복을 걸치고, 찬란한 봉황관을 쓴 채 곱게 치장하고 있었다. 정성껏 단장한 얼굴에는 눈부신 미소가 어려 있었다.이준은 여전히 차갑고 고귀한 기품을 잃지 않았지만, 김하연을 대할 때만큼은 달랐다.그의 눈빛에는 누구나 알아챌 수 있을 만큼의 다정함과 애정이 어려 있었다.그는 손수 그녀의 수라를 덜어 주었고, 귓가에 말을 건넬 때면 몸을 살짝 기울였다. 그녀가 애교 섞인 투정을 부리면 그는 난처한 듯 고개를 저었지만, 눈빛에는 짙은 다정함이 어려 있었다.궁인들이 축하 예물을 바칠 때에도 그는 먼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기쁜 기색을 보이면 그제야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연회장에 모인 후궁들과 명문가 부인들은 하나같이 부러운 눈길을 감추지 못했다.모두가 황제와 황후의 금실을 칭송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예전 같았으면 이런 광경 하나하나가 신나정의 가슴을 후벼 팠다. 숨조차 쉴 수 없을 만큼 아프고 또 아팠다.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그저 조용히 바라볼 뿐이었다.그 마음에는 이미 죽음 같은 적막만이 남아 있었다. 그 어떤 감정도, 작은 파문 하나조차 일으키지 못했다.연회가 절반쯤 무르익고, 가무가 한창이던 그때였다.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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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신나정이 소양전으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막 먼지 묻은 겉옷을 갈아입었을 무렵 장춘궁의 태감이 찾아와 거만한 태도로 황후의 교지를 전했다.황후 마마께서 연회에서 놀라 충격을 받아 화기가 치밀어 피를 토하고 혼절하셨으니, 폐하의 명으로 모든 후궁은 즉시 장춘궁으로 가 문안을 드리라는 것이었다.신나정은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고른 뒤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태감의 뒤를 따라 장춘궁으로 향했다.장춘궁 안.이준은 김하연의 침상 곁에 앉아 있었다. 미간은 깊게 찌푸려져 있었고, 얼굴빛 또한 좋지 않았다.신나정은 가장 끝자리에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고개를 숙인 채 움직임 하나 없이 앉아 있었다.곧 태의가 맥을 짚고 물러나 이준에게 아뢰었다.“폐하, 황후 마마께서는 놀라신 충격으로 화기가 치밀어 피를 토하고 혼절하신 것이옵니다. 다만 상태는 위중하지 않으며, 신이 이미 안정시키는 처방을 올렸사옵니다. 약을 드시고 휴식을 취하시면 곧 깨어나실 것이옵니다.”이준의 낯빛이 조금 풀렸지만, 눈빛 속 근심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정녕 아무 탈 없는 것이냐?”“폐하, 안심하셔도 됩니다. 황후 마마의 옥체는 다만 일시적으로 놀라신 것일 뿐, 천천히 조리하시면 곧 회복되실 것입니다.”이준은 고개를 끄덕인 뒤 태의를 물렸다. 그리고 바닥에 무릎 꿇고 있는 후궁들을 한 번 훑어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희는 모두 물러가라. 짐은 이곳에 남아 황후를 돌보겠다.”그때 태감 총관 이석호가 조심스럽게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폐하, 오늘 폐하께서도 부상을 입으셨사옵니다. 옥체가 무엇보다 중하오니 무리하지 마시옵소서. 내일 아침 조회도 있으시니 국사 또한 돌보셔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이곳은 궁인들에게 맡기시고, 먼저 돌아가 쉬시는 것이 어떠하시옵니까.”이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창백한 김하연의 얼굴에 머물러 있었다.“더는 말하지 마라. 짐에게는 황후보다 중요한 것이 없느니라.”그 말에 장춘궁 안은 금세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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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이 상궁은 이준이 잠시 흔들린 것을 예리하게 알아차렸다. 그녀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폐하, 부디 노여움을 거두시옵소서. 혜비 마마께서는 이제 막 출산하신 몸이라 아직 기력이 돌아오지 않으셨사옵니다. 이런 상태로 또 벌을 내리시는 것은 무리가 있사옵니다. 허나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능멸하고 황후 마마를 모욕한 죄를 그냥 넘길 수는 없지 않사옵니까. 그리하면 궁중의 법도가 무너지고, 황후 마마의 위엄은 어디에 있겠사옵니까?”잠시 침묵한 그녀의 눈에 음산한 빛이 스쳤다.“하여 소인의 미천한 생각으로는, 혜비 마마께서 벌을 받기 어려운 몸이라면, 그 친족에게 대신 죄값을 치르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설령... 그것이 이미 죽은 자의 유골이라 해도 말이옵니다.”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이준과 신나정의 얼굴이 동시에 변했다.신나정이 홱 고개를 들었다.죽은 듯 텅 비어 있던 눈동자에 처음으로 두려움이 차올랐다. 그것은 믿을 수 없다는 경악과 뼛속까지 파고드는 공포였다.“아니 되옵니다!”그녀는 거의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로 외쳤다.이준 역시 미간을 깊이 찌푸렸다.이 상궁은 재빨리 바닥에 엎드렸다.“폐하,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소인은 그저 혜비 마마께서 제 가족의 시신을 직접 보시면 이번 일의 무게를 깨닫고, 다시는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실까 하여 아뢴 것이옵니다... 이는 모두 후궁의 평안을 위한 것이옵니다!”신나정은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극도의 공포에 목소리마저 갈라졌다.“폐하! 신첩이 잘못했사옵니다! 신첩이 벌을 받겠사옵니다! 어떤 형벌이든 달게 받겠사옵니다! 하오니 제발… 제발 제 가족들의 유해만은 건드리지 말아 주시옵소서! 그들은 이미 죽은 이들이옵니다. 폐하, 부디 죽은 이들만은 편히 쉬게 해 주시옵소서. 폐하—!”이준은 무너져 내린 채 애원하는 신나정을 바라보았다. 가슴속에 맺혀 있던 그 묘한 감정이 더욱 짙어졌다.그는 이유 모를 답답함에 미간을 찌푸리더니, 짜증스럽게 손을 내저었다.“그만하라! 네가 잘못을 알았다면, 죄를 지은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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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얼마가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짙고 쓴 약향이 입과 코를 가득 메웠고, 기이하게도 따뜻한 기운이 서서히 퍼져 신나정의 메마르고 차가운 사지백해로 스며들었다.그녀는 힘겹게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그러자 눈에 들어온 것은, 피로와 복잡한 감정이 가득 서린 이준의 얼굴이었다. “깨어났구나. 몸은 좀 어떠냐?”신나정은 입술을 달싹였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이준은 궁인에게 물을 가져오라 눈짓했다.미지근한 물이 목을 적시고 나서야 그녀는 겨우 몇 마디를 내뱉었다.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폐하...”이준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그녀를 바라보며 얼굴을 굳혔다.“태의가 이르기를, 너는 몸을 잘 보살피고 다시는 지나치게 마음을 쓰지 말라 하였다. 그 백 년 묵은 산삼은 짐이 이미 날마다 달여 먹게 하였다.”“또한… 지난 일은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다. 이후라도 몸에 탈이 생기거든 번거로운 절차는 생략하고 곧장 궁인을 보내 건원전으로 와 짐을 찾도록 하라.”이준은 말을 마치고 신나정을 바라보았다.그 눈빛에는 예전처럼 자신을 올려다보던 흠모와 감격의 기색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기를 바라는 듯한 뜻이 어려 있었다.그러나 신나정은 그저 조용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그 검고 깊은 눈동자에는 여전히 한 점 생기도 없이, 죽은 듯한 공허만이 자리하고 있었다.그녀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예를 갖추려 했다.“신첩... 폐하의 은혜에 감사드리옵니다.”그러나 몸을 움직이는 순간, 내장이 뒤틀리며 통증이 치밀어 올랐다.이내 그녀는 숨이 넘어갈 듯 거세게 기침을 터뜨렸다. 가슴이 찢어질 듯한 기침이었다.이준은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답답함과 짜증이 다시 치밀어 올랐다.화를 내고 싶었으나, 그 화를 어디로 돌려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결국 그는 벌떡 일어나 소매를 휘날리며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는 차갑게 내뱉었다.“스스로 처신을 잘하거라!”궁인들이 급히 달려와 그녀의 등을 쓸어 올리며 숨을 고르게 했다.“마마...폐하께서는...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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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이준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곧이어 그의 눈에 분노와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차올랐다.“혜비! 아직도 황후를 모함하려 드느냐? 황후는 본디 마음이 온화하고 순한 사람인데, 어찌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이냐?!”그는 차갑게 몰아붙였다.“혹 네 아비와 오라비의 일 때문에 아직도 원한을 품고 있는 것이냐? 해서 사사건건 황후와 맞서려 드는 것이냐? 짐은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 네 오라비가 행실을 바르게 하지 못해 먼저 황후를 능멸하지 않았더라면, 너희 신씨 일가도 그런 결말을 맞지 않았을 것이다!”신나정은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을 찌르는 듯한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노골적인 편애 앞에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희미한 기대마저 완전히 꺼져 버렸다.“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신첩이... 경솔하였사옵니다.”이준은 그 말을 들으며, 순순히 물러선 듯하면서도 어딘가 비웃는 듯한 그녀의 태도에 울컥 화가 치밀었으나, 분출할 곳이 없었다.그는 몸을 일으켜 금군들에게 차갑게 명했다.“혜비 신씨는 언행이 경솔하고 거듭 중궁을 범하였음에도 반성할 기미가 없다. 즉시 정실(靜室)에 가두고 궁중 법도를 백 번 필사하게 하여 스스로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게 하라! 짐의 명이 있기 전까지는 절대로 내보내지 말라. 이번 기회에 제대로 교훈을 얻도록 하라!”신나정은 금군 들에게 끌려 일어섰다. 그녀는 조금도 저항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정실은 음습하고 차가웠다.높은 곳에 난 작은 창 하나만이 희미한 빛을 들여보내고 있었다.이내 붓과 먹, 종이와 벼루, 그리고 두꺼운 궁중 법도까지 함께 안으로 던져졌다.쾅!문이 굳게 잠겼다.신나정은 차가운 벽에 등을 기댄 채 바닥에 주저앉아, 한동안 아무 움직임도 없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정실 안에서 스스슥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신나정은 지친 듯 고개를 들었다. 희미한 빛 사이로 벽 모퉁이와 틈새, 통기구에서 형형색색의 독사들이 스멀스멀 기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신나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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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김하연은 달빛 아래 선 신나정의 가냘픈 모습을 훑어보더니, 득의에 찬 미소를 지었다.“왜 그러느냐?”“어찌 된 것이냐. 폐하와 본궁의 아이를 보고 마음이 상하여, 어디 가서 숨죽여 울기라도 하려는 것이냐?”신나정은 그녀와 얽히고 싶지 않았다.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었다.오늘 밤을 놓치면 다시 떠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소첩은 그저... 몸이 조금 좋지 않아 먼저 돌아가 쉬고 싶을 뿐이옵니다.”“몸이 좋지 않다?”김하연이 눈썹을 치켜올렸다.“몸이 아니라 마음이 불편한 것이겠지. 하기야, 제 아이 하나 지키지 못하고, 집안까지 몰락시킨 데다, 이제는 총애마저 잃은 후궁이니... 본궁과 폐하가 금슬 좋게 지내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편할 리가 없겠지.”그녀는 비웃음을 머금고 말을 이었다.“허나 후궁의 몸으로 멋대로 자리를 뜬 것은 불경죄다. 허니 벌을 내리겠다. 바로 여기서, 날이 밝을 때까지 꿇고 있어라.”날이 밝을 때까지?그러면 어떻게 궁을 빠져나간단 말인가?신나정의 마음이 다급해졌다.그녀는 고개를 들었다.“황후 마마, 소첩은...”“어찌, 감히 본궁의 뜻을 거역하려는 것이냐?”김하연이 냉소를 머금었다.“지난번 교훈이 너무 가벼웠던 모양이구나.”“소첩이 어찌 감히 그러하겠사옵니까.”신나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애써 침착함을 되찾았다.“다만 몸이 편치 않아 그러하오니… 내일로 미루어 벌을 받게 해주실 수는 없겠사옵니까?”“내일?”김하연이 차갑게 웃었다.“본궁이 말한 것은 지금이다!”두 사람은 팽팽히 맞섰다.두 사람의 기세가 맞부딪치며 공기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신나정은 속이 타들어 가는 듯했으나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었다.바로 그때.김하연은 멀리서 다가오는 황금빛 의장 행렬을 발견했다.그녀의 눈빛이 번뜩였다.다음 순간, 그녀는 갑자기 앞으로 비틀거리며 한 걸음을 내디뎠다.얼굴에는 순식간에 공포와 억울함이 떠올랐다.“혜비! 네가 어찌 나를 밀치는 것이냐—!”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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