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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Autor: 해월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11-06 00:07:46

그날 밤 은채는 윤명숙의 집에서 지냈다.

선생님은 손상된 첼로를 작업실 안쪽에 보관한 뒤 은채가 머물 방에 새 침구를 깔아 주었다. 오래된 목재 가구에서는 은은한 향이 났고, 창가에는 학생들이 선물한 작은 화분들이 놓여 있었다.

은채에게도 익숙한 방이었다.

결혼 전 독주회를 준비하던 시절에는 연습이 늦어질 때마다 이곳에서 잠을 잤다. 윤명숙은 밤늦도록 악보를 붙들고 있는 제자를 혼내면서도, 다음 날 아침이면 따뜻한 밥을 차려 주곤 했다.

그때 은채는 자신이 앞으로 어떤 무대에 서게 될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음악을 들려줄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런데 지금은 내일 아이를 빼앗기지 않을 수 있을지만 생각하고 있었다.

“은채야, 밥 먹자.”

윤명숙의 부름에 식탁으로 나갔지만, 따뜻한 죽을 앞에 두고도 좀처럼 숟가락을 들 수 없었다.

“못 먹겠어요, 선생님. 속이 자꾸 울렁거려요.”

“그럼 한 숟가락씩만 먹자. 빈속으로 버티면 네 몸이 더 힘들어져.”

은채는 겨우 숟가락을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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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이 묻은 여자가 돌아왔다   44화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은채야.”태경이었다.은채는 걸음을 멈췄다.남편은 현관에서 내려와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조금 전 응접실에서 보였던 날카로운 표정은 사라졌지만, 은채는 그가 가까워질수록 자신도 모르게 몸을 긴장시켰다.“몸도 안 좋은데 왜 혼자 걸어가?”“선생님이 데리러 오셔.”“그분한테 언제까지 신세 질 건데?”은채는 대답하지 않았다.태경은 그녀의 침묵을 답답해하는 듯 잠시 얼굴을 찌푸렸다.“집으로 돌아와. 당신 방은 그대로야.”“안 돌아가.”“그럼 어디서 지낼 건데?”“내가 알아서 할게.”태경은 무언가 더 말하려다가 은채의 얼굴을 살폈다.“오늘 어머니 말씀 때문에 화난 거 알아. 서류는 다시 검토하자고 할게.”은채는 그를 바라보았다.“없애 달라고 해.”태경의 표정이 굳어졌다.“은채야.”“그 서류를 다시 고치는 게 아니라 그런 요구를 하지 말라고 해.”태경은 대답하지 않았다.은채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역시 못 하겠구나.”그 말에 태경이 한 걸음 다가왔다.“내가 당신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은채는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그는 정말로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다.그 사실이 은채를 더 지치게 했다.“내가 말해도 당신은 듣지 않잖아.”은채는 더 이상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대문으로 향했다.뒤에서 태경이 이름을 불렀지만, 이번에는 돌아보지 않았다.***윤명숙의 차에 올라탄 뒤에야 은채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선생님은 그녀의 얼굴을 한 번 살펴보고는 곧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은채가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듯 라디오도 켜지 않았다.차가 본가에서 멀어질 무렵 은채는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선생님, 저 서명 안 했어요.”윤명숙이 잠깐 그녀를 돌아보았다.“잘했어.”“아이를 낳으면 그 집에 두고 가라는 서류였어요.”윤명숙의 손이 운전대 위에서 굳어졌다.“뭐라고?”은채는 응접실에서 읽었던 조항들을 기억나는 대로 설명했다. 아이의 거주지와 양육에

  • 당신이 묻은 여자가 돌아왔다   43화

    “네가 가진 것만으로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을지 생각해 봐라. 태경이 도움 없이 병원비부터 감당할 수 있겠니?”은채는 숨을 골랐다.시어머니가 내미는 서류보다 그 말이 더 비열하게 느껴졌다.아이를 위해 필요한 돈을 거론하면서, 그 돈을 받으려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제가 알아서 준비하겠습니다.”“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쉬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은채는 정혜숙을 똑바로 바라보았다.“그래도 제 아이를 두고 가는 것보다는 어려운 쪽을 선택할 거예요.”정혜숙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은채는 응접실 문으로 향했다.뒤에서 태경이 따라왔다.“서은채, 잠깐만.”은채는 걸음을 멈췄지만 돌아보지 않았다.“이렇게 나가면 뭐가 해결돼?”“내가 서명하지 않겠다는 건 분명히 말했어.”“어머니가 준비하신 서류가 마음에 안 들면 고치면 되잖아.”은채는 남편을 돌아보았다.“무엇을 고칠 건데?”“당신이 불편해하는 조항을 다시 얘기해 보면 되지.”“내가 아이를 데리고 살 수 없다는 전제부터 없앨 수 있어?”태경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은채는 그 망설임을 보았다.“그것도 대답 못 하면서 뭘 고치자는 거야.”태경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이 이혼하겠다는 생각만 접으면 이런 문제는 없어.”은채는 한동안 남편을 바라보았다.이제야 알 것 같았다.그 서류는 단순히 아이의 양육 문제를 정리하기 위한 문서가 아니었다.그녀가 이혼을 포기하게 만들기 위한 압박이기도 했다.“그러면 내가 무서워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어?”태경의 눈빛이 흔들렸다.“그런 뜻이 아니야.”“그럼 무슨 뜻인데?”태경은 대답하지 못했다.은채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았다.“태경아, 나 어제 당신한테 이혼하겠다고 했어.”“알아.”“오늘도 그 생각은 바뀌지 않았어.”태경의 얼굴이 굳어졌다.“나는 동의 못 해.”“당신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내 마음이 없어지는 건 아니야.”은채는 문손잡이를 잡았다.그 순간 태경이 다시 말했다.“당신

  • 당신이 묻은 여자가 돌아왔다   42화

    그 소리를 들었을 때 은채는 울었다. 남편에게 상처받은 마음과 아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지만, 아이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런데 정혜숙은 그 아이를 낳고 나면 다른 사람에게 맡기라고 했다.은채는 자신이 아이를 품에 안는 순간을 상상했다.작은 손가락을 만져 보고, 아이가 울면 가슴에 안아 달래 주고, 잠든 얼굴을 오래 바라보는 순간.그런 평범한 행복조차 이 집에서는 허락받아야 하는 일이 될지도 몰랐다.“어머니.”은채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저는 서명하지 않겠습니다.”정혜숙의 눈썹이 올라갔다.“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하는 말이니?”“네. 이해했어요.”“그럼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지.”“충분히 생각했습니다.”은채는 마지막 장에 놓인 펜을 집어 들었다.정혜숙은 그녀가 마음을 바꾼 줄 알았는지 잠시 표정을 누그러뜨렸다.그러나 은채는 펜을 서류 위에 올려놓지 않고 뚜껑을 닫았다.딸깍.작은 소리가 응접실에 울렸다.“아이를 포기하겠다는 서류에는 서명하지 않아요.”정혜숙의 표정이 굳어졌다.“누가 포기하라고 했니? 양육 문제를 합의하자는 거잖아.”“저는 아이를 낳고 나서 어디에서 키울지 제 의사도 없이 정하는 데 동의하지 않아요. 아이를 만나려면 허락받아야 하는 내용에도 동의할 수 없고요.”“네가 법을 얼마나 안다고 그렇게 큰소리니?”“잘 모르니까 변호사와 상의하겠습니다.”정혜숙의 손이 멈췄다.“변호사?”“네.”“가족끼리 해결할 일을 남한테 가져가겠다는 거니?”“제 아이에 관한 일이니까요.”정혜숙은 서류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그럼 이건 줄 수 없겠구나.”은채는 시어머니의 손 아래로 들어가는 종이를 바라보았다.“사본을 주실 수 있나요?”“필요 없다.”“검토받아야 해요.”“네가 이 집안 사람이라는 걸 잊었니?”은채는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정혜숙은 자신이 가족이라는 말을 할 때마다 무언가를 포기하라고 요구했다.무대를 포기하라고 했고, 집안의 체면을 위해 참으라고

  • 당신이 묻은 여자가 돌아왔다   41화

    “네가 태경이와 살기 싫다면 억지로 붙잡지는 않겠다. 하지만 아이는 달라. 한씨 집안의 아이를 네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데리고 나가게 할 수는 없어.”은채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아이를 낳는 것은 자신이었다.임신으로 몸이 달라지고, 통증을 견디고, 밤마다 아이가 무사한지 걱정하며 잠들지 못하는 것도 자신이었다.그런데 시어머니는 그 모든 시간을 지나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를 두고 떠나라고 했다.은채는 태경을 돌아보았다.“당신도 이거 봤어?”태경은 서류를 내려다보았다.“어머니가 준비하신 거야.”“내용을 봤냐고 물었어.”잠시 침묵이 흘렀다.“대충.”은채는 남편을 바라보았다.“대충 봤는데 아무 말도 안 했어?”“은채야, 아직 결정된 건 아니잖아. 일단 어머니 말씀부터 들어.”은채의 입술이 떨렸다.그녀는 남편이 서류를 가져가기를 기다렸다. 이런 요구는 잘못됐다고 말해 주기를 기다렸고,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와 함께 있을 권리도 있다고, 은채가 아이를 포기할 이유는 없다고 말해 주기를 바랐다.하지만 태경은 움직이지 않았다.“당신은 내가 아이를 낳고 나면 이 집에 두고 가야 한다는 말에 동의해?”태경의 턱이 굳어졌다.“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야.”“나한테는 단순해.”은채는 서류를 들어 보였다.“내 아이를 낳고 나서 데려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니까.”정혜숙이 대화에 끼어들었다.“은채야, 네가 자꾸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니까 말이 어려워지는 거다.”“어머니께 묻는 게 아니에요.”은채는 태경을 바라보았다.“당신한테 묻고 있어.”태경은 미간을 눌렀다.“당신이 이혼을 안 하면 이런 문제로 다툴 필요도 없어.”은채는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그러니까…… 이혼하지 말라는 거야?”“아이까지 생각하라는 말이야.”“내가 아이를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말하지 마!”태경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은채야, 당신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아? 내가 책임지겠다고 하잖아.”“당신이 책임지는 방법이 나

  • 당신이 묻은 여자가 돌아왔다   40화

    조항마다 번호가 붙어 있었고, 어려운 표현 사이사이에 원만한 협의와 안정적인 양육이라는 말이 반복되었다.그러나 내용을 읽어 내려갈수록 은채는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출산 후 아이의 주된 거주지는 부친 측이 지정하는 곳으로 한다.아이의 보호와 교육, 의료기관 선택 등 중요한 사항은 부친 측과 협의한다.은채가 별거하거나 이혼하는 경우, 출산 후 아이의 거주와 양육에 관한 부친 측의 요구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은채는 부친 측의 동의 없이 아이를 데리고 거주지를 옮기지 않는다.마지막 장에는 아이를 만나는 일정과 장소를 별도로 협의한다는 내용까지 있었다.은채는 같은 문장을 두 번 읽었다.자신이 아이를 낳는다.그런데 아이가 태어난 뒤에는 어디에서 살지 다른 사람이 정한다. 아이를 만나려면 그 집안과 상의해야 하고, 아이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려면 허락을 받아야 한다.“이게…… 뭐예요?”은채가 서류를 내려놓으며 묻자 정혜숙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말 그대로야. 아이가 태어난 뒤 혼란이 없도록 미리 정리하자는 거지.”“제가 아이를 낳으면 이 집에 두고 가라는 말씀이세요?”“네가 이혼하겠다고 했으니까.”은채는 시어머니를 바라보았다.정혜숙의 얼굴에는 미안함이 없었다. 오히려 은채가 당연한 절차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부부가 같이 살면 이런 걸 따로 정할 필요가 없지. 그런데 네가 집을 나가겠다고 하니 우리도 대비해야 하지 않겠니?”“어머니, 저는 이런 내용에 동의한 적 없어요.”“그러니까 오늘 동의를 받으려고 부른 거잖아.”정혜숙은 펜을 꺼내 서류 위에 놓았다.딸깍.금속성 소리가 유리 탁자에 부딪혔다.은채는 그 펜을 바라보았다.시어머니는 자신이 서명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 믿음이 너무 당연해서, 은채는 오히려 말을 잃었다.“어머니는 제가 아이를 키울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세요?”“그런 뜻이 아니야.”“그럼 왜 제가 아이와 함께 살면 안 된다는 거예요?”정혜숙의 표정이 굳어졌다.“네가 이혼하겠다고 했잖

  • 당신이 묻은 여자가 돌아왔다   39화

    “상대방이 작성한 문서만으로 출산 후 아이의 양육에 관한 모든 문제가 자동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지금은 산모의 안전이 우선입니다.”은채는 그 말을 수첩에 적었다.산모의 안전.누군가 자신을 그렇게 불러 준 것이 낯설었다.태경에게 그녀는 말을 듣지 않는 아내였고, 정혜숙에게는 집안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며느리였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환자였고, 변호사에게는 자신의 권리를 가진 당사자였다.통화를 마친 뒤 은채는 윤명숙에게 말했다.“선생님, 오늘 가 볼게요.”“내가 데려다줄게.”“집 안에는 혼자 들어갈게요. 대신 밖에서 기다려 주세요.”윤명숙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바로 나와. 무슨 말을 듣더라도 그 자리에서 결정하지 말고.”두 사람은 연락 시간을 정했다.은채가 집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문자를 보내고, 대화가 끝나면 바로 연락하기로 했다. 약속한 시간보다 오래 연락이 없으면 윤명숙이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은채는 가방에 휴대전화와 충전기, 병원 서류, 수첩을 넣었다.마지막으로 지갑을 열어 초음파 사진을 확인했다.작은 흑백 사진이었다.손가락으로 사진 가장자리를 가만히 쓸던 은채가 배 위에 손을 얹었다.“엄마가…… 지킬게.”목소리가 너무 작아 자신에게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은채는 그 말을 한 번 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한씨 집안의 본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높은 담장 안으로 잘 다듬어진 나무들이 보였고, 현관 앞 돌계단에는 낙엽 한 장 떨어져 있지 않았다.은채는 차에서 내리기 전 그 풍경을 오래 바라보았다.결혼 초기에 이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그녀는 태경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는 긴장한 은채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고, 자신이 옆에 있으니 아무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라고 약속했다.그 약속이 언제부터 사라졌는지 은채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다만 어느 순간부터 이 집에서 자신을 지켜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은채야.”윤명숙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싫으면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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