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채가 인사하기도 전에 윤명숙이 다가와 손을 잡았다.“얼굴이 왜 이 모양이니? 어디 아픈 건 아니지?”은채는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선생님.”그러나 목소리가 생각처럼 나오지 않았다.윤명숙은 더 캐묻지 않고 그녀를 끌어안았다.“왔으면 됐다. 잘 왔어.”은채는 스승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그동안 자신을 기다려 준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흔들렸다. 남편의 집에서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묻는 사람이 없었다. 첼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연주하지 못하는 시간이 얼마나 괴로운지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다.윤명숙은 은채를 놓아주고 창가를 가리켰다.“네가 쓰던 의자, 아직 그대로 있다.”창가에는 오래된 연습용 의자가 놓여 있었다. 결혼 전 마지막으로 이곳을 찾았던 날, 은채는 스승에게 당분간 공연을 쉬겠다고 말했다.그때 윤명숙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다만 언젠가 돌아올 거라며 의자를 치우지 않겠다고 했다.은채는 의자 등받이를 쓰다듬었다.“정말 안 치우셨네요.”“주인이 돌아오지도 않았는데 왜 치우니.”은채는 웃으려다가 고개를 숙였다.윤명숙은 그녀의 손을 바라보았다.“연주해 보겠니?”은채는 첼로를 꺼내 무릎 사이에 세웠다.악기의 무게가 몸에 닿자 오래전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활을 현 위에 올리는 순간 손끝이 떨렸지만, 숨을 고르고 첫 음을 냈다.낮고 거친 소리가 연습실을 채웠다.은채는 잠시 멈췄다가 다시 활을 움직였다.처음에는 손가락이 원하는 자리를 정확히 찾지 못했다. 오래 쉬었던 탓에 왼손이 쉽게 굳었고, 활을 움직이는 오른팔도 예전처럼 부드럽지 않았다.그러나 곡이 이어질수록 몸이 기억을 되찾기 시작했다.은채는 악보에서 시선을 떼고 눈을 감았다.결혼 전 마지막 독주회가 떠올랐다.객석에서 숨을 죽이던 사람들, 무대 뒤에서 기다리던 스승, 연주가 끝났을 때 밀려오던 박수 소리까지 선명했다.그날 태경은 가장 큰 꽃다발을 들고 찾아왔다.'당신이 연주하는 모습을 평생 보고 싶어.'그 말을 믿었다.은채는 마지막 음을
Last Updated : 2026-10-24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