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남편의 불륜을 알게 된 날, 서은채는 뱃속의 아이마저 빼앗겼다. 시어머니는 그녀를 미친 여자로 몰았고, 남편은 끝내 아내를 믿지 않았다. 그렇게 재벌가의 며느리는 화재 속에서 죽었다. 4년 후, 서강그룹을 구할 거액의 투자금을 쥔 여자가 나타났다. 죽은 아내와 똑같은 얼굴이었다. “은채야…… 정말 너야?” 남편이 떨리는 손을 뻗었지만, 그녀는 낯선 사람을 보듯 웃었다. “제 남편은 오래전에 죽었습니다.” 그녀가 돌아온 이유는 사랑도, 용서도 아니었다.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재벌가를 무너뜨리고, 빼앗긴 아이를 되찾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이제 다른 남자가 있었다.
Voir plus결혼기념일 저녁, 서은채가 남편을 위해 준비한 식탁에 다른 여자가 앉았다.
그것도 남편이 직접 의자를 빼 준 자리였다.
그날 오후 여섯 시, 은채는 식당의 긴 테이블을 한 바퀴 돌며 식기를 살피고 있었다. 흰 식탁보 위에는 한태경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중앙의 작은 꽃병에서는 갓 자른 흰 장미 향기가 은은하게 퍼졌다.
결혼 3주년이었다.
서강그룹 후계자인 태경과 결혼한 뒤로 은채가 직접 저녁을 준비하는 일은 드물었다. 시어머니 정혜숙은 며느리가 부엌에 드나드는 것조차 못마땅해했지만, 오늘만큼은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자신의 손으로 차려 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태경에게 전해야 할 소식이 있었다.
은채는 앞치마 주머니에서 작은 봉투를 꺼내 조심스럽게 열었다. 오전에 병원에서 받아 온 초음파 사진이었다.
임신 6주.
아직 사진 속에는 또렷한 아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의사가 화면을 가리키며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다고 설명하던 순간을 떠올리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삼 년 동안 기다려 온 아이였다.
최근 들어 태경은 귀가가 늦어졌고, 같은 집에 살면서도 얼굴을 마주하기 어려웠다. 어렵게 식사 자리를 마련해도 전화 한 통에 일어나기 일쑤였으며, 은채가 말을 걸면 피곤하다는 이유로 대화를 끝냈다.
그래도 아이 소식을 들으면 달라질지 몰랐다.
은채는 사진을 봉투에 넣어 식탁 옆 서랍에 보관했다. 식사가 끝나고 케이크를 자를 때 꺼내 보여 줄 생각이었다.
“사모님, 회장님 댁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집사가 다가오자 은채는 서랍을 닫았다.
“어머님께서요?”
“오늘 저녁 준비가 어떻게 됐는지 물으셨습니다.”
혜숙은 아들의 결혼기념일에도 며느리가 무엇을 준비하는지 확인하는 사람이었다. 은채는 식탁을 한 번 더 살펴본 뒤 준비가 끝났다고 전해 달라고 했다.
집사가 물러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벽시계가 일곱 시를 가리켰다. 태경이 약속한 시간이었다.
은채가 앞치마를 벗어 의자에 걸어 두고 현관으로 향하는 사이, 정원 쪽에서 자동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대리석 바닥을 밟는 구두 소리가 울렸고, 현관문이 열리자 검은 정장을 입은 태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왔어요?”
반가운 마음에 다가서던 은채의 발걸음이 멈췄다.
태경이 아내를 지나쳐 뒤쪽으로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조심해. 계단 높아.”
차에서 내린 여자는 밝은 베이지색 원피스에 얇은 카디건을 걸치고 있었다. 태경의 손을 잡고 계단을 올라온 그녀는 은채와 눈이 마주치자 반갑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언니.”
백유림이었다.
태경의 회사 행사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는 여자였고, 최근에는 그가 특별히 아낀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었다.
은채는 그동안 남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를 믿고 싶지 않았다. 남편에게 직접 묻는 것조차 자신이 그를 의심한다는 뜻 같아서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런데 그 여자가 결혼기념일 저녁에 남편과 함께 나타났다.
“오늘 손님이 오시는 줄은 몰랐어요.”
은채가 태경을 바라보며 말했지만, 그는 재킷을 벗어 집사에게 건넬 뿐이었다.
“내가 데려왔어. 유림이 오래 서 있으면 안 되니까 식사부터 하자.”
태경은 유림의 허리에 손을 가볍게 대고 식당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은채는 한 박자 늦게 뒤따랐다.
남편은 자신이 왜 놀랐는지조차 궁금해하지 않았다.
식당에 들어선 유림은 정성스럽게 차려진 음식을 둘러보더니 감탄했다.
“와, 언니가 직접 준비하셨어요? 태경 씨가 좋아하는 것들만 있네요.”
은채는 대답하지 못했다.
유림은 태경이 좋아하는 음식을 알고 있었고, 남편은 그런 사실을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
“여기 앉아.”
태경이 의자를 빼 주었다.
은채가 앉으려고 준비해 둔 자리였다. 결혼한 뒤 삼 년 동안 태경의 맞은편에 놓여 있던 의자이기도 했다.
유림은 잠시 망설이는 표정을 지으며 은채를 돌아보았다.
“어머, 여기 언니 자리 아니에요?”
“상관없어.”
태경이 의자를 조금 더 빼 주자 유림은 고맙다는 듯 웃으며 앉았다.
은채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침대 머리맡에는 결혼사진이 놓여 있었다.사진 속 태경은 은채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결혼식 날, 그는 수많은 하객 앞에서 아내를 평생 지키겠다고 말했다.은채는 사진을 들어 올렸다.유리 액자 안의 남편은 웃고 있었다. 오늘 식당에서 본 남편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은채는 액자를 엎어 놓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품에 넣어 둔 봉투를 꺼내자 종이가 손끝에 스쳤다. 은채는 초음파 사진을 펼쳐 작은 검은 점을 바라보았다.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였다.그 아이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기대해도 되는지, 이제는 자신할 수 없었다.은채는 사진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가 조심스럽게 떼었다.“미안해.”말을 꺼내고 나서야 눈물이 흘렀다.은채는 급히 손등으로 눈가를 닦았다. 태경이 돌아오면 울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잠시 뒤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태경이었다.그는 침실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침대에 앉아 있는 은채를 보았다. 손에는 휴대전화가 들려 있었다.“아직 여기 있었어?”은채는 초음파 사진을 반으로 접어 봉투에 넣었다.태경의 시선이 그녀의 손에 머물렀다.“뭐야, 그거?”은채는 봉투를 가슴 쪽으로 당겼다.“아무것도 아니에요.”태경은 더 묻지 않았다.대신 옷장 쪽으로 걸어가 문을 열고, 자기 옷 사이에 걸려 있던 은채의 옷들을 훑어보았다.“내일 아침까지 정리해.”은채는 남편의 등을 바라보았다.“오늘은 우리 결혼기념일이에요.”태경은 옷장 문을 닫았다.“알아.”그가 뒤돌아섰다.“그래서?”은채는 입술을 다물었다.태경은 잠시 기다리다가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화면에 뜬 이름을 보자 그의 표정이 누그러졌다.“유림아.”전화를 받은 남편은 은채가 보는 앞에서 목소리를 낮췄다.“응. 지금 갈게.”통화가 끝나자 태경은 침실 문 쪽으로 향했다.은채는 그를 붙잡지 않았다. 다만 남편이 문손잡이를 잡는 순간, 마지막으로 물었다.“당신은 제가 아이를 가져도 똑같이 할 거예요?”태경의 손이 멈췄
은채는 입술을 깨물었다.혜숙은 며느리의 표정을 살피지도 않은 채 말을 이었다.“유림이는 태경이 아이를 가졌어. 너는 그동안 뭘 했니? 남편 옆자리만 차지하고 있었잖아.”그 말에 은채는 아랫배를 감싸려던 손을 멈췄다.자신도 아이가 있었다.그러나 이 자리에서 그 사실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이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까지 모욕할까 두려웠다.“유림 씨가 다른 방을 쓰면 안 되나요?”은채가 어렵게 묻자 혜숙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아이가 생긴 사람을 손님방에 재우라고?”“저도 태경 씨 아내예요.”그 말을 들은 태경이 고개를 들었다.“은채야.”은채는 남편을 바라보았다.“당신이 말해 줘요.”태경은 잠시 침묵했다.은채는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결혼한 뒤 처음으로 남편에게 분명한 선택을 요구하는 순간이었다.태경은 유림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말했다.“어머니 말씀대로 해.”은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당신도 제가 나가야 한다는 거예요?”“유림이 안정될 때까지만.”태경은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쓸데없는 일로 더 시끄럽게 만들지 마.”그는 유림의 의자를 빼 주었다.유림이 일어나자 태경은 그녀의 허리를 받쳤고, 두 사람은 은채가 서 있는 식탁을 지나 문 쪽으로 향했다.은채는 남편이 한 번쯤 돌아볼 줄 알았지만, 태경은 집사에게 말했다.“유림이 짐은 내일 들여와. 안방은 오늘 안에 정리해 두고.”은채는 그제야 남편을 불렀다.“잠깐만요.”태경의 발걸음이 멈췄다.은채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당신은 제가 어디서 자든 상관없어요?”태경은 아내를 내려다보았다.잠시 침묵이 흘렀지만, 그의 표정에는 미안함이 없었다. 오히려 유림의 어깨에서 흘러내린 카디건을 바로잡아 주었다.“손님방도 충분히 좋아.”은채는 더 묻지 않았다.남편의 대답은 그것으로 충분했다.유림은 태경의 팔에 몸을 기대며 식당 밖으로 나가다가 은채 앞에서 잠시 멈췄다.“언니, 미안해요.”그녀는 태경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목소리를 낮췄다.“그런데 저도 이제 아이를
남편은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는 아내가 어떤 표정으로 서 있는지조차 살피지 않았다.“어머니, 저한테 지금 그 말을 하라는 거예요?”“그럼 누가 하니? 네가 이 집 며느리잖아.”혜숙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삼 년 동안 아이 하나 못 낳아서 내가 얼마나 속을 태웠는데. 이제라도 좋은 일이 생겼으니 감사할 줄 알아야지.”은채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삼 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던 일이 전부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말하는 시어머니 앞에서, 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유림은 고개를 숙인 채 물잔 가장자리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은채와 눈이 마주치자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 미소는 아주 짧았지만 은채는 분명히 보았다.유림은 자신이 어떤 모욕을 당하게 될지 알고 있었다. 어쩌면 바로 이 순간을 기다렸는지도 몰랐다.“은채야, 못 들었니?”혜숙이 다시 재촉했다.은채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들었어요.”“그럼 축하한다고 해.”은채는 입술을 다물었다가 겨우 말을 꺼냈다.“못 하겠어요.”혜숙의 얼굴이 굳었다.“뭐라고?”“못 하겠다고요.”은채는 더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제 남편의 아이를 가졌다는 여자한테 제가 어떻게 축하한다고 해요?”식당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유림은 기다렸다는 듯 눈가를 붉혔다.“언니, 제가 잘못했어요. 그냥 돌아갈게요.”그녀가 의자를 밀고 일어나려 하자 태경이 곧바로 팔을 붙잡았다.“앉아.”유림은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닦았다.“저 때문에 다들 불편해하시잖아요.”“네 잘못 아니야.”태경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은채를 바라보았다.“은채야, 사과해.”은채는 남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누구한테요?”“유림이한테.”“제가 왜요?”태경의 미간이 좁혀졌다.“애 가진 사람 앞에서 그렇게까지 해야겠어?”은채는 입을 다물었다.자신도 아이를 가졌다. 하지만 남편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고, 지금 눈앞에서 다른 여자를 감싸고 있었다.“당신은 저한테 미안하지 않아요?”
유림은 여전히 태경의 품에 기대어 있었다.“언니, 저는 정말 죄송해요. 그렇지만 아이한테는 아무 잘못이 없잖아요.”은채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자신의 아이 역시 아무 잘못이 없었다.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작은 생명이었다.은채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아랫배로 향하려는 순간, 식당 문이 열렸다.“다들 식사하고 있었구나.”정혜숙이었다.은채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어머니가 온다는 연락은 받지 못했지만, 혜숙은 며느리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듯 식탁으로 다가왔다.유림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혜숙은 서둘러 손을 내저었다.“앉아 있어. 몸도 무거운 애가 왜 자꾸 일어나니.”혜숙은 유림의 어깨를 다정하게 쓸어 주었다.은채는 그 손길을 바라보았다. 결혼한 뒤 삼 년 동안 시어머니가 자신에게 보여 준 적 없는 다정함이었다.“어머니, 유림 씨가…….”“안다.”혜숙은 은채의 말을 끊고 자리에 앉았다.“병원도 내가 데려갔는데 모를 리가 있니.”은채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남편뿐 아니라 시어머니도 알고 있었다. 자신만 모르고 있었다.혜숙은 집사에게 새 접시를 가져오라고 지시한 뒤 유림의 손을 잡았다.“입덧은 좀 괜찮니? 아침에도 제대로 못 먹었다면서.”“태경 씨가 챙겨 줘서 괜찮아요, 어머니.”유림이 자연스럽게 어머니라고 부르자 혜숙은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그래. 이제부터는 몸조심해야 한다. 우리 집 귀한 손주가 들어섰으니까.”은채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그녀도 아이를 가졌다. 자신의 배 속에도 태경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그 사실을 말하면 시어머니가 조금이라도 달라질까.그러나 혜숙은 은채의 얼굴을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왜 그렇게 서 있니? 좋은 날에 초상난 사람처럼.”은채는 아랫배로 향하던 손을 거두었다.“어머니, 오늘은 제 결혼기념일이에요.”“그래서?”혜숙은 식탁 위를 둘러보다가 케이크를 발견했다.“저건 뭐니?”“태경 씨랑 먹으려고 준비했어요.”케이크 위에는 초콜릿으로 짧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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