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에 오기 전에 김단은 자신이 곧 어떤 일을 마주하게 될지 알고 있었다.그렇기에 김단은 지금 이 순간 임씨 부인의 질책과 진산군의 노여움을 잠시 못 본 척하기로 했다.그녀는 그저 천천히 사당 밖으로 걸어 나가 바깥에 서 있는 하녀들과 하인들을 훑어보았고, 끝내 소한에게 시선이 멈추었다. 그의 깊고 어두운 눈과 마주치자 김단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서서히 느껴졌다. 그녀는 생각했다. 만약 가능하다면 지금 이 순간 누군가 나타나 그녀 앞에 서서 그녀를 대신해 임씨 가문 사람들의 질책을 막아 주고, 그녀를 위해 정의를 구현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소한은 결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이었다. 김단의 시선은 소한의 마음에 왠지 모를 아픔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사실 김단이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그는 그녀를 위해 변호해 줄 것이었고, 진산군 또한 그의 체면을 봐줄 것이었다.하지만 그녀는 그저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시선을 돌려 주위에 있는 하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숙희가 사람 무는 것을 직접 본 자가 있거든 나오거라.”이 말을 듣고 몇 명의 하녀와 하인들이 무리 사이에서 빠져나왔다.이 모습을 본 임원의 표정은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임학은 다소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김단 곁에 다가가 쌀쌀맞게 말했다. “이제 어쩔 것이오? 내 낭자의 하녀를 억울하게 벌한 것이 아니지 않소?”김단은 그를 상대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렇다면 아무나 말해 보거라. 숙희가 임 낭자를 물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나섰던 하인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볼 뿐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임학은 미간을 찌푸리며 방금 일어났던 일을 회상했다.숙희가 연이를 물기 전에… 연이가 김단의 팔을 잡았었다.순간 그는 무언가 떠오른 듯 고개를 숙여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그 위에는 아직 희미하게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혹시…주위는 침묵에 잠겼다.김단의 마음도
명희는 아직도 뻔뻔했다.그러자 김단이 갑자기 냉소를 지으며 돌아서서 임씨 부인을 바라보았다. “그래? 낭자가 내 상처를 몰랐다고? 부인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그녀는 숙희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그녀가 침상에 쓰러져 있던 며칠 동안 임원은 매일 임씨 부인과 함께 그녀를 보러 왔고, 심지어 그녀 대신 약을 갈아주기까지 했다.그녀 몸에 있는 끔찍한 상처들을 임원이 모를 리 없었다!임씨 부인은 깜짝 놀라 허둥지둥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네 상처는 의원을 불러 다시 치료해야 한다! 어서, 어서 단이를 데리고 돌아가 의원을 불러오너라!”그 순간 김단의 가슴이 차갑게 식었다.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띄운 채 싸늘한 표정으로 임씨 부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임씨 가문은 조상님들 앞에서까지 이렇게 권력으로 사람을 짓누르려는 겁니까?” “김단!” 진산군이 엄한 목소리로 호통 쳤다. “함부로 말하지 마라!”그는 김단이 임씨 가문 조상들을 모독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하지만 김단은 그저 싸늘한 표정으로 그를 한 번 쳐다볼 뿐, 이내 시선은 임학에게로 향했다. “도련님,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사람을 다치게 한 자가 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주인을 다치게 한 하녀가 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까?”이 순간부로 임학은 사람을 다치게 한 자가 벌을 받아야 한다는 말 따위는 할 수 없게 되었다.왜냐하면 그는 김단이 앙심을 품고 복수를 할 성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말을 입 밖에 내면 임원은 오늘 무조건 벌을 받을 것이다! 이내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진산군 댁의 노비로서 감히 주인을 해하려 했으니 당연히 벌을 받아야 마땅하오!” “그렇지요!”김단은 바로 이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녀는 임원이 임씨 가문 내 모든 사람이 금지옥엽 여기는 귀한 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반면 그녀는 그저 버려진 양녀일 뿐이었지만 지금은 아주 조금의 이용 가치가 있기 때문에 세탁국에서 데려온 것이었다.그런 그녀가 어떻게 임원을
사실 김단은 줄곧 임학이 자신을 꽤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원한을 잊지 않고 반드시 되돌려주는 성격이다.끔찍했던 3년의 시간은 그녀가 진산군 댁에 진 빚, 즉 15년간 양육의 은혜를 갚는 셈으로 여겼다. 그래서 그녀는 돌아온 후 모든 일에 대해 따지지도 않았고 그저 조모 곁에서 지내고 싶어 했다.하지만 그 15년은 그녀가 진산군 댁에 진 빚이지 명희에게 진 빚이 아니었다.고작 하녀 주제에 여러 차례 그녀를 모함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오늘 숙희까지 벌받게 만들었다.만약 이 일을 되갚아 주지 않는다면 그건 김단이 아니었다!밖에서 구경하는 하녀와 하인들은 점점 많아졌고, 심지어 별당에서까지 많은 사람들이 왔다.김단이 말하는 것을 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내 여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맞아요, 맞습니다! 그날 둘째 아가씨가 실수로 물에 빠지셨는데, 큰 아가씨께서 물불 가리지 않고 구해주셨어요. 그런데 뭍에 오르시자마자 명희로부터 모함을 받으셨습니다!” “명희가 지금까지 벌을 받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됩니까? 저는 분명 입술이 터지도록 맞고 쫓겨날 줄 알았습니다!” “쉿, 걔는 둘째 아가씨 하녀잖아. 둘째 아가씨가 봐주고 있다고!” “하지만 큰 아가씨께서 목숨을 걸고 둘째 아가씨를 구하셨는데, 둘째 아가씨께서 이러시면 이는 은혜를 잊은 행동이지 않습니까?”하인들이 작은 목소리로 떠드는 소리가 사당 안까지 들려왔다.진산군은 이미 표정이 굳어 있었다. 그는 싸늘한 눈빛으로 명희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 말이 사실이냐?”명희는 털썩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 “어르신, 소인이 잘못했습니다. 이미 부인과 도련님, 그리고 둘째 아가씨께 잘못을 빌었습니다!” “하!” 김단이 웃음을 터뜨렸다. “모든 사람에게 잘못을 빌어 놓고, 나에게만 빌지 않았구나.”명희는 어안이 벙벙해져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를 본 임원은 급히 김단 앞으로 달려가 두 손으로 김단의 팔을 잡으려 했지만, 김단의 소매에 묻은 핏자국을 보고는 자제하
숙희는 이미 형벌을 받고 있는데, 그가 어떻게 지금 명희를 위해 용서를 구하겠나?그런데 뜻밖에도 김단이 먼저 물러섰다. “주인과 하녀 사이에 정이 깊으니, 나도 너무 매정하게 굴고 싶지는 않소.”어차피 입을 찢고 내쫓는 것은 명희에게 너무 가벼운 처벌이었다.그 말과 함께 그녀는 손을 내밀어 임원을 부축하였다.옆에서 이 모습을 본 임씨 부인은 눈을 반짝였다.그녀는 설마 김단이 먼저 나서서 임원을 부축해 줄줄 생각지도 못했다.그 짧은 순간, 그녀는 훗날 김단과 임원이 자매처럼 정답게 지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임원은 흐느끼며 김단에게 감사를 표하려 했지만, 김단의 입가에 번진 미소를 보고는 왠지 모를 싸늘함을 느꼈다.이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러자 김단이 물었다. “하지만 내 하녀는 그저 낭자 한 번 물었을 뿐인데 삼십 대를 맞아야 했소. 내 상처를 보았을 때 명희는 어떤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시오?”붕대 위의 핏빛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임원은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그녀는 명희에게 어떤 벌을 주는 것이 적당할지는 안중에도 없었고, 그저 명희가 집에서 쫓겨나지 않고 영원히 자신 곁에 있어 주기만을 바랐다!이에 그녀는 흐느끼며 김단의 차가운 미소를 마주하고 한 글자 한 글자 말했다. “낭자께서 명희에게 살길만 열어 준다면, 훗날 낭자께서 명희를 어떻게 벌하든 내 결코 어떠한 불평도 하지 않겠소!”“좋소.” 김단은 즉시 대답했다. “그러면 낭자의 말대로, 훗날 내가 명희를 벌하고 싶을 때 내 별당으로 부르겠소. 오늘은… 우선 숙희와 마찬가지로 삼십 대를 치도록 하겠소!”그녀의 말투가 매우 부드러운 나머지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렸고, 다른 사람들은 듣고 나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하지만 임원은 어안이 벙벙했다.그녀는 오늘 벌하지 않고 나중에 김단이 명희를 어떻게 처벌해야 할지 결정했을 때 다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김단의 말 뜻은 훗날 언제든지 명희를 별당으로 불러들일 수 있
김단은 다소 의아했다. 임원은 이미 떠났는데, 그는 어째서 임원을 쫓아가지 않고 임씨 가문의 사당 밖에 서 있는 것일까?그녀를 기다린 것일까?무슨 할 말이 있는 것일까?하지만, 어쩌면 좋을까?그녀는 그와 한마디도 나누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김단은 인사도 하지 않고 그저 소한을 못 본 척하며 그대로 떠났다.하지만 소한 곁을 지나칠 때, 그의 싸늘한 목소리가 김단의 귀에 들려왔다. “김 낭자는 그렇게 명정빈이 되고 싶은 것이오?”서늘한 어조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김단은 발걸음을 잠시 멈췄지만, 그를 돌아보지 않은 채 담담하게 물었다. “소 장군께서는 제가 만약 명정비가 되어서도 오늘처럼 이렇게 힘든 수모를 겪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겨우 하녀 한 명을 상대하는 데도 그녀의 모든 기력을 쏟아야 했다.소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단도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홀로 떠났다.질문에 대한 답을 그들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녀가 명정비가 된다면 명희를 벌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이 진산군 댁 사람들을 전부 채찍질한다 해도 찍소리 하지 못할 것이다!김단이 하녀들의 부축을 받으며 별당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의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다.그녀는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버티기 힘든 상태였다. 사당에 있을 때는 그저 오기를 갖고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이윽고 별당으로 돌아온 그녀는 마치 바람 빠진 풍선과도 같아서, 하마터면 돌다리 위에서 쓰러질 뻔했다.그때 다행히도 의원이 찾아왔다.의원을 보자 김단은 화색을 띄웠으나, 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의원은 몇 차례 침을 놓았고, 그 때문에 그녀는 순간 눈앞이 아득해지며 완전히 정신을 잃었다.그 시각, 취향각.소한이 왔을 때 임학은 이미 술을 많이 마신 상태였다.그는 임학을 힐끗 쳐다보고는 앞으로 나아가 자리에 앉았다. 차갑고 냉담한 그의 목소리에서는 약간의 무관심이 느껴졌다. “할 말이라도 있소?”임학의 하인이 임학이 여기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임학과
하지만 임학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나는 상관 안 하오. 나는 그 아이가 명정 대군과 함께 탐라성으로 가는 것을 막을 것이오!”탐라성에 도착하면 명정 대군은 더욱 거리낄 것이 없지 않겠는가?아마 그때는 사람을 때려 죽여도 서너 달이 지나서야 소식을 듣게 될 것이다!그날 김단이 온몸에 상처를 입고 돌아온 것을 떠올리면 임학의 가슴은 몹시 아팠다.하지만 김단이 기어코 명정 대군에게 시집가려는 모습을 생각하면 그는 또 화가 치밀었다!그는 다시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나서야 마음속의 분노가 조금 가라앉았다.그때 소한이 물었다. “그 아이가 명정 대군에게 시집가지 않는다면, 누구에게 시집가야 하는 것이오?”임학은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자네가 상관할 바 아니오! 누구에게 시집가든 명정 대군에게 시집가는 것보다는 낫소! 차라리 첩으로 들어가는 것이 맞아 죽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겠소!”소한은 술을 따르던 손을 잠시 멈추었다.첩으로 들어가다니? “왜 멍하니 있는 것이오?” 임학은 짜증을 내며 소한의 손에 들린 술병을 빼앗았다. “자네는 어릴 때부터 나보다 생각이 많지 않았소? 어서 방법을 생각해 보시오!”소한은 그제야 심호흡을 하고 임학을 향해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김 낭자 쪽은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명정 대군을 설득해야 할 것이오.”임학은 이해가 가지 않아 물었다. “명정 대군을 설득하라니? 그 자는 단이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어 하지 않소! 지난번에 그가 뭐라 말했는지 벌써 잊었소?”그는 김단이 맞을 때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아무리 맞아도 죽지 않아 자신을 즐겁게 해 줄 수 있어 자신과 천생연분이라고 말했었다.매번 이 말을 떠올릴 때마다 임학은 역겨움에 치를 떨었다.그는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변태적일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분명 어렸을 때는 명정 대군은 이렇지 않았다!하지만 소한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명정 대군이 이렇게 변한 것은 그의 부상 때문이오.”이 말을 들은 임학은 깜짝 놀랐다
소한의 표정은 덤덤했다. 술잔을 들어 술을 마시는 동작에는 어떠한 머뭇거림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왠지 모를 섬뜩함이 느껴졌다. “그 일은 온 가문을 멸하는 큰 죄이니, 농담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오.”이 말을 들은 임학은 반신반의하며 소한을 훑어보았다.이전 그의 추측은 정말 너무나도 극단적이었다. 만약 소한이 정말로 명정 대군을 죽인다면, 그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소씨 가문 전체를 담보로 삼는 것과 같았다.하지만, 김단 한 명을 위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까?임학은 당연히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고, 또한 소한이 그렇게 큰 위험을 무릅쓸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다만 소한의 현재 모습이 너무나 심오하고 그 속 뜻을 헤아릴 수 없었기에, 그로 하여금 여러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하지만 마찬가지로 그는 소한이 마음속에 정말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다고 해도, 소한이 자신에게 명확하게 말해주지 않는 이상 영원히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렇기에 그는 더 이상 그 생각에 매달리지 않고 그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호랑이를 산 밖으로 쫓아내는 것은 확실히 좋은 방법이오. 하지만 명정 대군과 단이 사이에는 임금의 뜻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임금의 뜻이 있는 한, 명정 대군이 한양을 떠난다 해도 누가 감히 항명의 죄를 무릅쓰고 김단에게 장가들겠는가?그럼에도 소한의 마음속에는 이미 정해 놓은 사람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는 술병을 들어 임학에게 한 잔 따라 주었다. 두 사람이 잔을 부딪쳐 술을 마신 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형님이 그럴 것이오.”임학의 입에 있던 술이 그대로 뿜어져 나왔고, 심지어 일부는 소한의 얼굴에까지 튀었다. “소한, 자네 미친 것이오?!” 임학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가득했고, 소한을 쏘아보며 말했다. “자, 자네 형님은 명정 대군보다도 못하지 않소!”소한은 집안의 적자이긴 했지만, 적장자는 아니었다.소씨 가문의 장자는 소하라고 하며, 소한보다 다섯 살 많고, 김
소한의 눈빛이 순간 어두워지며 임학을 싸늘하게 바라보았다.임학은 섬뜩함을 느꼈고, 그제야 어떤 일이 반드시 실제로 이루어져야만 진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다른 사람들이 진짜라고 생각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그는 속으로 흠칫 놀라 소한을 힐끗 쳐다보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전장에서 몇 년을 구르더니, 더욱 음험하고 교활해졌군!”소한은 이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였고 이내 입꼬리를 올려 차가운 미소를 보였다.반면 임학은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된다면 단이는 아마 평생 나를 죽도록 원망할 것이오!”그녀는 지금까지도 그를 오라버니라고 부르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만약 소하에게 시집가게 된다면, 아마 평생 그를 원수로 여길 것이다.소한은 고개를 숙이고 웃으며 말했다. “그 아이도 조만간 자네가 그 아이를 위해서 한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오.”이 말을 들은 임학은 냉담하게 코웃음을 쳤다. “그 계집은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자식일세. 알 리가 없을 것이오!”하지만, 알지 못한다 한들 어쩌겠는가?그의 오라버니로서, 그는 그녀가 명정 대군에게 맞아 죽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고, 그렇게 그녀가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그녀가 평생 그를 원망한다 할지라도 고작 1년도 살지 못하는 것보다는 나았다.마음을 굳게 먹은 임학은 다시 술을 벌컥 들이켰다. 그의 눈빛에는 매우 굳건한 결의가 담겨있었다.소한은 이 모든 것을 눈에 담았다. 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릴 뿐, 탁자 위에 놓인 술은 한 모금도 더 마시지 않았다.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한 달이 지났다.김단의 몸에 있던 상처는 거의 다 나았다. 그녀는 평소와 같이 큰 마님께 문안 인사를 드리러 갔다.큰 마님의 안채 앞에 도착하자 숙희가 말했다. “아가씨, 보세요. 둘째 아가씨예요.”숙희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쳐다보니, 정말로 임원이 서 있었다.그녀와 그녀의 하녀도 마침 큰 마님의 안채로 향하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 김단은 궁무를 맡지 않았기에 평양관저에 머물며 맹영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탓인지 맹영지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김단의 곁에 있을 때만큼은 그녀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조용한 정원, 김단은 맹영지와 함께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계수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숙희가 건네준 과자가 들려 있었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있었다. 맹영지는 고개를 들어 만개한 계화를 바라보며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소하가 평양관저를 찾아왔으나 그는 맹영지와의 만남을 최대한 피하려 애썼다. 아마도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이다.김단은 맹영지를 바라보며 과거 소하가 왜 그리도 그녀를 칭찬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때 소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여인답게 그녀는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가까웠던 두 사람이었는데 맹영지는 어쩌다 소하에게 독을 먹이려 했던 것일까?김단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맹영지의 몸과 마음이 회복되면 그때 자연스럽게 그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김단이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평양관저의 겸인이 급히 달려와 말했다.“아가씨, 맹가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이런 큰일이 발생했으니 맹씨 집안에서 그녀를 보러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단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겸인에게 말했다.“알겠소. 이리로 모셔오시오.”잠시 후, 맹씨 부인이 정원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김단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한 뒤 슬픈 눈으로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김 의원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의원님이 아니었다면 제 딸이 그 짐승 같은 자에게 학대받으며 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맹씨 부인의 눈동자가 붉어졌다.김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하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과찬이십니다, 맹씨 부인. 민태훈, 그 자의 말에 따르면 맹영지 아가씨의 병은 이미 4~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완전히 회
소한은 코웃음을 치며 말없이 등을 돌렸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소하의 조용한 목소리가 방안의 침묵을 깨뜨렸다.“이번에는 정말 잘했어.”영의정 저택에서 벌어진 일은 소한이 형벌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소하의 귀에 들어갔다. 만약 소한이 과감하게 영의정 저택에 침입하지 않았다면 김단은 쉽게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비록 민씨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김단을 해치지 못한다고 해도 그녀가 겪었을 모욕과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소하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소한은 많이 당황한 듯했다.“제가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때로는 그 충동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소한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김단의 얼굴을 떠올렸다. 처음에 그녀도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듯했지만 곧 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였다. 김단은 마차에 오를 때까지 자신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과거의 그녀였다면 그가 나타나자마자 바로 그의 품에 안기며 그를 향해 미소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너무나도 차갑게 변해버렸다. 자신을 외면하는 그녀가 소한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그는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며 굳게 결심했다.그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이미 어떤 대가든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반 시진 후, 김단은 방 안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그러자 숙희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아가씨?”김단은 정신을 차리고 숙희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냐?”“두 도련님께서는 모두 돌아가셨습니다.”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전 발생한 일을 되새겨 보았다. 그녀는 소한이 오랫동안 계획해 온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에도 그는 소가를 위해, 전하를 위해 심지어 임원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그녀만은 제외였다.그녀는 소한이 자신의 어머니를 걱정하는 척하며 평양관저로 따라온 것도 단지 자신의 동정심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상처
김단은 아무 말 없이 소한을 부축하며 걸었다. 궐에서 나오는 길은 유난히 길고 고요했다. 그들의 발걸음은 무겁고 느렸으며 말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궐문에 도착했을 때 소한의 마차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는 아마도 말을 타고 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상태로 다시 말을 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된 김단은 곁에 있던 경씨에게 부탁했다.“도령님, 장군님을 먼저 집으로 모셔다 주실 수 있겠습니까?”그러자 소한이 놀란 듯 김단을 바라보며 물었다.“내게 약을 발라주지 않겠다는 것이오?”김단도 당황해하며 되물어 보았다.“소가에는 의원이 없습니까?”소한은 김단의 물음에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의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어머니께서 내가 또 다쳤다는 걸 아시면 얼마나 걱정하겠소? 그러니 그냥 근처에서 치료받을 것이오. 낭자는 신경 쓰지 말고 먼저 돌아가시오.”김단은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먼저 평양관저로 함께 가서 약을 바르시죠.”소한은 그녀의 제안에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불편하지 않겠소?”김단은 그를 바라보며 단호히 말했다.“괜찮습니다.”그렇게 소한은 김단과 함께 평양관저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김단의 몸종 숙희였다.소한을 발견한 그녀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그러자 김단이 숙희를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차분히 말했다.“숙희야, 장군님을 객실로 안내해 주거라. 나는 약을 준비하러 가야겠구나.”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김단의 지시를 따랐다.객실에 혼자 남은 소한은 조심스럽게 상의를 벗고 등을 드러냈다. 그의 등에는 형벌로 인한 상처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그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등을 바라보며 오늘의 형벌이 생각보다 가볍지 않았음을 깨달았다.하지만 그는 김단이 이 상처를 보면 마음 아파할 것이라 생각하며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잠시 후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약을 들고
긴장감이 맴도는 분위기 속에서 전하는 이해 안 되는 듯한 어투로 물었다,“조선의 장군인 네가, 수많은 전공을 세운 네가, 원하는 여인 하나 얻는 것이 그리 어렵단 말이냐? 어찌 김단 하나 때문에 수년간 공들여 쌓아온 모든 것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이야? 그 낭자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느냐?”전하의 말투는 엄중했지만 그 속에는 실망과 안타까움이 섞여 있었다.그러자 소한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그렇습니다.”전하는 눈썹을 찌푸리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김 의원, 들었소?”그 순간 소한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조용히 서있는 김단이 있었다. 그녀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소한은 그녀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가 이 모든 대화를 들었다는 사실에 당황했지만 그녀의 표정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소한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었다.“김단, 왜 이곳에 있는 것이오?”그녀는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와 무릎을 꿇고 전하에게 예를 올렸다.“소녀 김단, 전하를 뵙습니다.”전하는 손짓으로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일어나거라. 오늘 발생한 일에 대해 자세히 말해 보거라.”김단은 소한을 보지 않기 위해 시선을 정면에 고정한 채 차분하게 사건의 전말을 설명했다. “제가 직접 목격한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민대부를 제외하고는 영의정 댁 장남의 부인에게 감히 손을 댈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전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맹 낭자의 상처를 확인하기 위해 두 명의 궁녀를 보내겠다. 평양관저에서 확인해 보도록 하거라.”학대의 이유가 무엇이든 맹영지는 필시 중전의 친척이었다. 만약 폭력을 가한 사람이 민대부라고 할지라도 이는 중전의 가문을 모욕하는 행위와 다름없었기에 결코 그를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전하는 소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어쩌면 네 죄가 묻힐 수도 있겠구나.”민씨 가문의 잘못이 드러나게 된다면
소한은 곧바로 병사들과 함께 어서재에서 물러났다.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향 한 자루가 탈 정도의 시간이 흘러 있었다.소한이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본 전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냉랭하게 물었다.“영의정이 너를 더 때리라고 명하지 않았느냐?”소한은 조용히 전하 앞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고 허리를 곧게 세운 채 대답했다.“전하의 깊은 뜻을 아는 자입니다. 그러니 더 심한 처벌을 요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전하는 코웃음을 치며 다시 물었다.“그렇다면, 내 뜻이 무엇이더냐?”소한은 고개를 들어 전하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전하께서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대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겁니다. 그래서 영의정을 불러 제가 벌을 받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게 하셨죠. 그리고 동시에 제가 전하의 사람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셨습니다. 전하께서는 영의정이 이 사실을 눈치채기 바라신 것 아니었습니까?”전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던 붓을 책상에 내던지며 소리쳤다.“이 불경한 자식아! 내 너를 아낀다고 해서 이렇게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하느냐? 영의정 저택 외에 또 어디에 첩자를 심어두었느냐?”소한은 눈을 내리깔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3품 이상의 모든 관료의 집에 첩자를 두었습니다.”그 말을 들은 전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소한을 가리켰지만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였다.그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더니 한참 동안 방안을 서성이었다.잠시 후 그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다시 한번 소리쳤다.“네가 감히! 그렇게 많은 곳에 첩자를 심어두고 무슨 일을 꾸미려는 것이냐? 이렇게 행동하면 내가 소씨 집안을 멸문시켜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소한은 여전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조용히 말했다.“저도 위험한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다섯 해 전, 저희 소가는 거의 멸문 당할 뻔했습니다.”그 해 소하가 지닌 병권은 다른 집안의 탐욕스러운 먹잇감이 되었고 그로 인해 조정의 문
김단은 그제야 잊고 있었던 민태훈을 떠올렸다.그녀는 맹영지를 몸종에게 맡기고 민태훈 곁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허벅지에 박힌 은침을 뽑아냈다.침이 빠져나가자마자 민태훈은 마치 고통에서 해방되기라도 한 듯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한 가닥의 은침이 이토록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큰 마님은 김단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그녀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고 말이다.그때 경씨가 마차를 몰고 도착했다. 김단과 몸종이 맹영지를 부축하며 걸어 나오자 경씨는 놀란 얼굴로 다가와 안부를 물었다.“낭자, 괜찮소?”방금 전 김단이 영의정 저택에서 곤란한 상황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소한은 급히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덕분에 한발 늦게 도착한 경씨는 자신이 더 일찍 김단을 챙기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말했다.“내가 미처 신경 쓰지 못했소.“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대답했다.“저는 괜찮습니다. 먼저 맹 아가씨를 평양관저로 모시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그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김단과 몸종이 맹영지를 부축하며 마차에 오르자 경씨는 바로 마차를 출발 시켰다.김단은 마차에 오르기 전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조용히 서 있는 소한에게로 향했다. 소한은 그녀를 바라보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김단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소한은 그런 김단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더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 후 소한은 곧장 궁으로 향했다.어서재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앉아 오늘 영의정 저택에서 있었던 일을 전하에게 보고했다.그의 말을 들은 전하는 노여움을 감추지 못하며 소한을 꾸짖었다.“네가 감히 허락도 없이 영의정 저택을 침입했단 말이냐? 정말 대담하구나! 내가 너를 벌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느냐?”그러나 소한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벌을 달게 받겠습니다.“전하는 그의 담담한 태도에 더 분노하며 외쳤다.“민가
김단은 민씨 부인의 말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 파악했다.보내서는 안 된다라...오늘 이 자리에서 맹영지뿐만 아니라 김단 자신도 민가를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김단은 민씨 부인이 자신의 아들을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릴 줄 몰랐다.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선택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김단의 눈빛이 서서히 날카롭게 변해갔다. 그녀의 내면에서는 분노와 실망이 교차했다.큰 마님은 민씨 부인의 표정을 보고 심각한 상황임을 직감했다.맹영지의 몸에는 증거가 남아있었고 그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게 된다면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것이다.하지만 지금 김단을 보내지 않는다면 그녀는 분명 궐로 들어가 이 일을 고발할 게 뻔했다.지금 김단을 적으로 돌린다면 그에 따른 후과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큰 마님은 사랑하는 손자를 바라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김단을 보내면 민태훈의 입지가 위험해질 것이고 보내지 않는다면 민가 전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그러기에 그녀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그때, 한 하인이 급히 달려와 외쳤다.“큰 마님! 소 장군님께서 오셨습니다!”소 장군? 소한을 말하는 것인가?그의 이름이 언급되자 큰 마님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소한이 이렇게 빨리 이곳에 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김단도 그가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녀가 생각에 잠긴 사이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큰 마님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뵙게 되어 송구합니다.”모두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당당하게 정원으로 걸어 들어오는 소한의 모습이었다.“소한, 주인의 허락도 없이 들어오다니! 대체 영의정 저택을 무엇으로 보시는 것이오? 이곳은 마음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는 곳이 아니오.”소한은 그 말을 한 사람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이런 무례를 범한 것은 제 잘못입니다. 곧 전하 앞에서 사죄드리지요.”그는 정원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더니 큰 마님에게 다가가 정중히 인사했다.
머뭇거리는 그들의 모습에 김단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마님, 만약 지금 이 자리에서 저를 막으신다면 저는 곧장 궐로 가 이 모든 일을 고할 것입니다.”그녀의 말은 칼날처럼 날카로웠고 그 안에는 확고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김단의 말이 끝나자 민가의 사람들은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큰 마님은 눈썹을 찌푸리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그녀는 김단이 단순한 의원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김단은 진산군 댁의 적녀이자 평양원군의 의남매이다. 그리고 그녀는 소가의 두 형제와도 깊은 인연이 있었다. 지금 그녀를 적대시하는 것은 곧 여러 권세 있는 가문을 적으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었다.큰 마님은 민태훈을 바라보았다. 그는 고통에 찬 얼굴로 땀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그녀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그러나 동시에 마음속에는 김단에 대한 의심도 피어올랐다. 만약 그녀의 말이 과장된 것이라면 민씨 가문은 부당한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한참을 고민하던 큰 마님은 굳게 결심한 듯 민씨 부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네가 직접 확인해 보거라. 만약 낭자의 말이 거짓이라면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민씨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단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김단은 조심스럽게 맹영지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녀의 팔 안쪽에는 선명한 멍 자국이 여러 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민씨 부인은 숨을 들이켰다.“이런 상처가… 정말로…”그녀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자 김단은 차분하게 말했다.“다리 쪽은 더 심각합니다. 보시겠습니까?”민씨 부인은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이 상처, 정말로 태훈이의 짓입니까?”김단은 잠시 침묵하더니 그녀의 말에 대답해 주었다.“제가 직접 본 것은 아닙니다.”그 말에 민씨 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태훈이는 절대 그럴 애가 아닙니다. 어릴 적부터 착하고 작은 생명도 소중히 여기던 사람이었단 말입니다.”김단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공주의 이름이 거론되자 민씨 일가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스쳤다. 그러나 큰 마님은 여전히 태연한 표정을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낭자가 공주의 명을 받고 우리 영의정 저택에 들어와 병자를 돌보는 것은 알겠소. 허나 공주의 허락 없이 사람을 해치는 것은 무엄한 일이오. 공주라 할지라도 국법을 지켜야 하지 않겠소? 그러니 함부로 공주의 이름을 빌어 협박하지 마시오.”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단은 박수를 치며 말했다.“참으로 옳은 말씀이십니다.”민가의 큰 마님은 김단이 드디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자신을 치켜세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단의 입가에는 더욱 짙은 미소가 떠올랐고 눈빛에는 경멸이 스쳤다.“공주님께서도 국법을 지키셔야 하는데 민가의 사람들은 더욱 그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민가의 사람들은 일제히 소리를 높이며 반박했다.“그게 무슨 뜻이오? 우리 민씨 일가는 예로부터 법을 준수하며 국법에 어긋나는 일을 한 적이 없소!”“김 의원께서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우리 민가에 누명을 씌우려는 것 아니오?” 김단은 그저 조용히 서서 그들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두려운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김단의 이런 차분한 태도가 큰 마님의 신경을 건드렸다.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김단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큰 며늘 아씨는 중전마마의 친조카이시며 공주자가의 사촌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의 치료를 맡게 되었지요. 원래는 상태가 호전되고 있었으나 오늘 갑자기 증상이 악화되었습니다. 이는 분명 누군가가 큰 며늘 아씨의 회복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의원으로서 제 환자가 이곳에서 고통받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으니 제가 데려가야겠습니다. 만약 제 앞을 가로막으신다면 다음번에는 민대부님의 다리에 은침을 꽂아 버릴 것입니다.”이에 큰 마님은 지팡이를 바닥에 세게 내리치며 외쳤다.“허튼소리 마시오! 낭자의 의술이 부족해서 생긴 일을 왜 우리한테 덮어씌우려는 것이오?”“맞소! 무슨 명의의 제자라더니... 다 헛소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