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이 돌아왔을 때는 김단, 소하 그리고 소 씨 부인이 대청에 모여있었다.그들은 소하의 다리 치료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임원의 등장에 김단과 소하는 서로를 바라보았다.그들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알아챘다.사내의 모습은 사라지고, 임원의 안색도 평소와 같았다.마치 잠시 외출을 하다가 돌아 온 모습이었다.허나, 그의 몸종은 한층 겁을 먹은 모습이다.김단과 한번도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몸종의 행동에 김단과 소하는 확신을 내렸다.임원은 구서를 만나기 위해 주점으로 들어간 것이었다.소 씨 부인은 임원을 보고 기뻐했다.그리고 손을 저어보였다.“원아, 어서 오거라!”임원은 그제야 그들에게 다가갔다.그녀는 소 씨 부인에게 예의를 차렸다.“어머님께서 무슨 일 있으시옵니까?”소 씨 부인은 임원의 손을 잡았다.그리고 김단을 가리키며 말했다.“네 처형이 말하기를, 명의 하나가 네 매형의 다리를 고쳐 주려 한다고 하더군. 네 생각은 어떠하느냐?”소 씨 부인은 임원이 그들을 말리기를 원했다.하지만 임원은 깜짝 놀랄 뿐 이었다.“명의 라니요?”그녀는 진산군 관저의 의원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그저 두통과 발열을 고쳐 주는 수준이라고 생각했다.조모의 치료에 정성을 다했지만, 결국 죽었지 않았는 가.그러니 임원은 의원이 높은 의술을 가질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허나, 김단이 이런 의견을 낼 줄은 몰랐다.소하의 질병은 내의원이 모여서도 해결할 수 없었다.의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김단이 어찌 치료를 할 수 있는가.임원은 김단을 위아래로 훑었다.어쩌면 며칠 전에 소 씨 부인 앞에서 총애를 잃고, 소하를 이용하여 이런 수를 쓰는 것일 지 모른다.임원은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그리고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누이..처형이 아시는 명의가 누구신지요? 이름이 무엇이고, 거처가 어찌 되십니까? 제가 서방님께 조사해보라, 하겠사옵니다. 그러하면 어머님도 안심하실 수 있겠나이다.”소 씨 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소 씨 부인에게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어머니께 사실대로 고하자면, 제가 서방님을 치료한 적이 있사옵니다.서방님께서는 어머니께서 염려하실 까 싶어, 이 자리를 마련하여 알려 드렸나이다.”김단은 말하면서 임원을 바라보았다.“제수가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속상하옵니다.”임원의 얼굴이 굳어졌다.혹여 소 씨 부인에게 자신의 속셈을 들킬 까 두려웠다.“저,저는 그런 뜻이 아니었사옵니다.”하지만 소 씨 부인은 임원을 보지도 않았다.그저 눈을 크게 뜨고 소하에게 물어보았다.“그것이 사실이냐?”소하의 차가운 눈빛에 다정함이 묻어났다.“혹여 어머니를 속상하게 만들었다면,부디 저를 꾸짖어 주시옵소서.”오 년 동안, 소하는 자신을 가두기 급급했다.대화는 물론이고, 어머니 또는 아버지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소하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소 씨 부인은 마음이 녹아내렸다.임원의 손을 놓고는 서둘러 소하의 앞으로 다가갔다.소하의 손을 잡자 눈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못난 놈. 너는 내 뱃속에서 나온 아이다. 어미가 어찌 네 뜻을 몰랐겠느냐.”방금 임원의 말은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새파랗게 질린 임원의 얼굴을 보자,김단은 웃음이 나오려했다.소하가 고개를 들어 소 씨 부인을 바라보았다.입가에는 은은한 미소를 지어보였다.“다행이옵니다.”소 씨 부인은 더 가까이 다가갔다.그녀는 소하의 얼굴을 어루만졌다.“보아하니, 네 얼굴이 훨씬 좋아졌구나.”다리를 치료했을 뿐이다.허나 발작에 느끼는 고통이 줄어들었기에, 수면과 식욕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동시에 안색도 며칠 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눈에 보일 만큼 혈색이 돌았다.소하가 대답했다.“다 단이 덕분이옵니다.”소 씨 부인은 소하가 김단을 위해 나섰다는 것을 알고 있다.허나 마음 한켠에는 걱정이 떨쳐 지지 않았다.“아니면 아버지께서 돌아오시고…”“어머니께서는 저를 믿으시지요?”소 씨 부인을 바라보는 소하의 눈이 반짝거렸다.소 씨 부인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어렸을 때부터 소하는 걱
임원은 침실로 돌아갔다.그녀는 영희가 방문을 닫자마자 가슴속에 참아왔던 분노를 터뜨렸다. “방금 그 여자 표정 봤느냐? 분명 고의로 그런 것이다!”영희도 임원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경멸하는 말투로 말했다. “큰 아씨께서 아무리 어릴 때부터 무술을 배우셨다 해도 겨우 겉핥기 수준일 텐데, 거기다 갑자기 큰 도련님을 치료하시겠다니요? 그 정도 실력으로 제대로 치료하실 수 있겠어요?”“일부러 시어머니 앞에서 착하고 사려 깊은 척하는 게지!” 임원은 말하면서 불안감이 엄습했다. “나와 안주인 자리를 놓고 경쟁하려는 것이다!”오랜 시간이 지나, 김단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그녀가 진산군 댁에 있을 때는 남이 듣기 좋은 말만 하며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했었다.하지만 소 씨 가문에 오자마자 소한을 빼앗고, 이제는 소 씨 가문의 안주인 자리까지 넘보려 한다!재수 없는 것!임원은 분노에 휩싸여 눈시울이 붉어졌다.영희는 그녀가 우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모시는 아씨가 수모를 겪는 걸 안타까워하며 미간을 찌푸린 채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아가씨, 구 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과는...”“입 다물 거라!” 임원은 영희를 제지하며 무의식적으로 문 쪽을 바라보았다.비록 지금 방문이 굳게 닫혀 있고 영희도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들을까 봐 두려웠다.영희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임원의 감정도 점차 진정되었고, 이내 탁자의 모서리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한편, 김단은 소씨 부인의 지지를 얻은 후 소씨 가문의 전담 어의인 유 대인을 찾아가 침술의 기본을 배우기 시작했다.유 대인은 매우 세심하게 가르쳤고 김단도 열심히 배웠다. 그녀는 단 이틀 만에 가장 기본적인 침 놓는 법과 염증 완화 기술을 익혔다.하지만 배우는 것과 숙달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유 대인은 김단에게 매일 주방에 큰 돼지고기 덩어리를 준비하도록 지시했고, 김단은 돼지고기에 침을 놓는 연
그녀가 그토록 열심히 연습했는데 어찌 실패할 수 있겠는가?김단의 두 눈은 열댓 개의 은침에 고정되어 있었고, 강렬한 성취감에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그녀는 기뻐하며 말했다. “유 대인에게 가봐야겠어요!”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황급히 방을 나섰다.당연하게도 그녀는 소하의 빛나는 눈동자가 온통 자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걸 보지 못했다.그녀의 노력의 결과는 당연하게도 유 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그렇게 침술 학습은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바로 사람에게 침을 놓아보는 것이었다.소씨 부인은 한 번에 은 열 냥이라는 높은 가격으로 하인들을 고용해 침을 놓아보게 했다.은 열 냥은 하인들의 일 년치 품삯과 같았다. 순식간에 지원자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었다.소하의 정원도 오랜만에 북적거리기 시작했다.소하는 이런 북적거림을 싫어했기에 방 안에서 이각과 바둑을 두었다.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비명 소리가 소씨 저택 전체에 울려 퍼졌다.소하는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황급히 문을 나섰고, 이내 다리를 절뚝거리며 밖으로 도망치는 하인 한 명을 보았다. 마치 붙잡혀 돌아갈까 봐 두려워 서둘러 도망치는 것 같았다.옆에 서서 기다리던 다른 하인들도 눈만 끔뻑거리며 두려움에 떨었다.용감한 하인 하나가 물었다. “큰 며늘 아씨, 바, 방금 제대로 놓으신 거 맞으신지요?”김단은 의서에 나온 혈자리를 비교해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정확하네.”그러면서 뒤에 줄 서 있는 하인들을 힐끗 보고 말했다. “부르기 전에 말하였 듯, 이번 침술은 큰 도련님의 다리를 치료하기 위한 것이네. 모든 침은 다리의 혈자리를 자극해야 하므로 통증이 남다를 것이야. 방금 보았듯이, 도저히 고통을 참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지금이라도 빨리 가시게.”의원이 준 의서에는 해당 침술이 매우 고통스럽다고 명백히 쓰여 있었다. 하물며 그녀는 지금 시험 삼아 침을 놓는 것이었고, 각 혈자리의 깊이와 침을 놓는 힘도 다르며, 어떻게 혈자리를 제대로 자극
그러나 잠시 뒤, 그가 참을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다섯 번째 침이 놓아 지기도 전에 이각은 아파서 기절했다.그러자 숙희마저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가씨, 이 침술이 정말 맞는 건가요?”김단 스스로도 자신이 없어지기 시작했고, 이에 황급히 이각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모두 회수하고 소하를 보며 미안한 듯 말했다. “죄송해요, 오라버니. 내일 다시 의원을 찾아가 여쭤보겠습니다!”그녀는 말을 마치고 황급히 방으로 들어갔다.방문이 닫혔고, 이내 엄청난 좌절감이 밀려왔다.김단은 탁자 앞 의자에 앉아 앞에 놓인 몇 개의 은침을 바라보며 우울한 기분에 빠졌다.빨리 침술만 배우면 일이 순조롭게 풀릴 줄 알았다.그런데 첫날 시험 삼아 침을 놓은 것이 이정도로 실패할 줄은 몰랐다.은침 네댓 개를 부러뜨렸을 뿐만 아니라 열댓 명의 하인 중 단 한 명조차 끝까지 버티지 못했다.이각조차 소하를 위해 참으려 애썼지만, 다섯 번째 침도 채 놓기 전에 고통스러워하며 기절했다.이런 식이면 그녀가 어떻게 숙달할 수 있겠나?소하의 다리에 직접 시험해 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소하가 통증이 없을 때는 다리에 감각이 없어서 아픔을 느끼지 못했고, 혈자리를 제대로 자극했는지 알기 위해선 시험자의 의견이 필요하다!지금 그녀에게 의견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은 아파서 기절하거나 도망친 사람들뿐이었다.도망갈 수 없었던 사람들마저도 아무런 의견을 줄 수 없었다.그녀는 마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 같았고, 물러서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하지만 그녀는 이렇게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소하의 다리가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이 눈앞에 보이는데, 이렇게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 김단은 자신 스스로를 격려했다.그녀는 내일 다시 의원을 찾아가 이런 식으로 침을 놓는 것이 정말로 사람을 기절시킬 정도로 아픈 것인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순간,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김단은 숙희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돌멩이는 날아가다 곧바로 땅에 떨어졌고, 오동나무 기둥에 닿지도 못했으며 안에 박히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했다.김단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속으로 '역시 안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그런데 그때 소하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앉으시오.”김단은 약간 놀랐지만 그래도 그의 말에 따라 앉았다. 이번에는 소하가 직접 김단의 손에 돌멩이를 쥐여주었다.그의 손가락 끝은 약간 차가웠고, 그녀의 자세를 바로잡아 주면서 나지막이 말했다. “어떤 무기든 순간적인 힘이 중요하오. 낭자는 처음 배우는 것이니 이 두 손가락에 집중하고, 조준은 생각하지 마시오. 일단 멀리 던지는 것을 먼저 배우고, 다른 것은 나중에 생각하시오.”그 말과 함께 소하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손등부터 손목, 팔꿈치, 그리고 어깨까지 조금씩 올리며 팔 전체의 자세를 바로잡은 후 천천히 말했다. “이제 다시 해보시오.”김단은 숨을 깊이 들이쉬고 소하의 말대로 두 손가락에 집중한 다음 돌멩이를 힘껏 던졌다.“탁!”희미한 소리와 함께 돌멩이가 나무 기둥에 부딪혔다가 떨어졌다.김단은 땅에 떨어진 작은 돌멩이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이번엔 성공한 건가요?”소하의 눈가에도 웃음이 번졌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성공이오.”김단은 매우 기뻐하며 소하의 손바닥에서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고 소하가 방금 잡아준 자세로 다시 던졌다.“탁.”“또 맞았어요!”김단은 깜짝 놀랐다.이전 것은 운이 좋았다고 쳐도, 두 번째 것도 맞았다면 그건 진짜 실력이지 않겠는가?그녀는 소하를 바라보며 반짝이는 눈으로 물었다. “저 재능 있는 건가요?”“당연하오.”소하는 옅은 미소를 지었지만, 눈동자에 가득 담긴 기쁨은 금방이라도 흘러넘칠 것 같았다.그는 손을 뻗어 김단의 손을 잡고 손바닥에 남은 돌멩이를 모두 김단의 손에 쏟아 넣은 다음 말했다. “내일부터 이각에게 백 개를 준비하도록 할 테니, 이 자리에서 백 개 모두 나무 기둥을 맞히게 되면 두 걸음 뒤
다음 날.소씨 부부는 사람을 보내 김단에게 대청마루로 오라고 전했다.김단은 어제 시험 삼아 침을 놓다가 실패한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일 줄은 몰랐다.소씨 부부 외에도 소한과 임원이 있었다.심지어 어제 시험 삼아 침을 놓았던 하인 몇 명도 있었다.앞뜰에 들어서기 전부터, 김단은 삼자대면 심문을 받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마음이 무거워졌다.앞에서 의자에 앉아 있던 소하는 그녀의 감정을 눈치챈 듯 살짝 고개를 돌려 그녀를 안심시켰다. “내가 알아서 하겠소.”그가 앞에서 그녀를 보호해주면 소씨 부부도 너무 심하게 몰아 세우지는 않을 것이다.김단은 가볍게 '네'라고 대답하고 소하의 의자를 밀며 앞뜰로 들어갔다.소한의 시선은 이미 김단에게 꽂혀 있었다.일부러 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김단과 소하가 나타나자마자 그의 눈에는 그녀가 들어왔다.방금 전 그들이 문밖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소한은 소하의 말 한마디에 어떻게 그녀가 바로 안심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언제부터 소하가 그녀에게 이렇게 중요한 존재가 된 것일까?그의 표정은 눈에 띄게 어두워졌고, 이내 그는 다른 사람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옆에 놓인 찻잔을 들어 차를 마셨다. 임원은 소한 옆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소한의 암울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김단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우스운 것은 소한은 분명 그녀의 남편임에도, 그의 마음이 다른 여자 때문에 흔들린다는 것이다!그녀의 두 손은 무의식적으로 손수건을 쥐어짰고, 입술을 살짝 깨물며 분해하였다.김단과 소하는 대청마루로 가서 함께 인사를 올렸다. “아버님, 어머님께 문안 인사드립니다.”“그래.”소 대감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위엄 있는 모습을 유지했고, 소씨 부인은 미간을 찌푸린 채 김단을 바라보며 불만을 표했다. "“어제 시험 삼아 침을 놓은 사람 중에 끝까지 버틴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 들었다.”김단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말을 들은 김단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그녀는 의원의 신분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그녀가 어떻게 둘러대야 할지 생각하고 있는 와중, 소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명의는 속세를 벗어나 살고 있던 와중, 우연히 단이와 인연이 닿아 저를 치료하게 된 것입니다. 유 대인이 간다고 해도 그 자의 얼굴조차 보지 못할 것입니다.”소 대감은 그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지금 단이를 가르쳐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냐? 침술을 연습할 사람이 없으면 너를 치료할 방법을 알아낼 수도 없을 것이고, 결국 헛수고만 하는 것 아니냐?”“그럼 치료하지 않겠습니다.”소하는 무표정한 얼굴로 앞을 바라볼 뿐, 그 누구도 쳐다보지 않았다. “저는 5년 전에 이미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런 중 단이가 희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지금 그 희망에 조금 어려움을 겪는다고 어찌 단이를 탓하겠습니까...”말을 마친 소하는 소 대감과 소씨 부인을 바라보았다. 그의 싸늘한 눈빛에 희미한 총기가 스쳤다. “저는 단이가 안쓰럽습니다.”마지막 말에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김단은 멍하니 소하를 바라보았다. 그가 그런 말을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소하도 소 대감과 소씨 부인을 상대하기 위해 그런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소 대감과 소씨 부부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들 역시 소하가 품은 그녀에 대한 '감정'에 놀라 벙쪄 있었다.김단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김단은 소하의 이 '감정'이 그녀의 방패막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김단의 입가에 번진 미소가 소한의 눈에는 행복한 수줍음으로 보였다.분노가 치밀어 오른 그는 손에 든 찻잔을 꽉 쥐었고, 당장이라도 깨뜨릴 듯했다.예전에 그가 청혼했을 때 그녀는 뭐라고 했는가?그녀는 정암이 세상을 떠난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자신과 혼인하려 하는 그를 보고 인간도 아니라고 하지 않았던가!그럼 그녀가 지금 어떠한가?지금 그녀와
김단은 맹영지를 소하가 있는 곳으로 보게 하였다.허나 맹영지는 반응이 느리고,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에 소하를 바라보지 않았다.“소하라고 하는 사내입니다. 기억하십니까?”김단은 여전히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허나 소하의 이름을 들어도, 맹영지는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았다.이러한 그녀의 모습에 소하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이리 상황이 좋지 않을 줄은 몰랐소.”김단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소하 오라버니께서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돼옵니다. 제가 최선을 다하여 낭자를 보살 피겠나이다.”곧이어 소하의 시선이 김단을 향했다.찌푸린 미간은 펴질 줄 몰랐다.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무슨 말을 해야 하는 것인가.사실 그는 맹영지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눈앞의 감회는 그저 오늘날과 이전의 다름에서 온 것이라 말할까,마음에는 김단의 안위만 생각하고 있으니, 다른 생각 하지 말라고 말할까.헌데 만일 그녀가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면, 할 말이 없지 않은가.소하는 여러 생각에 휘잡혔다.허나 생각했던 말은 내뱉지 않았다.“중전 마마께서 낭자와 맹 낭자를 처소로 들이시는 것은, 분명 다른 생각이 있으실 것이오. 그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소?”김단이 고개를 저었다.“사실 저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였나이다.어쩌면 맹 씨 집안 때문이 아니겠습니까?”“어찌 되었든 간에, 낭자가 중전의 처소로 들어갔으니 호랑이 굴에 들어간 것과 같소. 항상 조심해야 하오.”“소하 오라버니, 염려하지 마시옵소서.제게는 오라버니께서 가르쳐 주신 방도가 있지 않사옵니까.”그녀의 말에 소하가 고개를 숙이고 미소를 지었다.“돌을 은침으로 대신하여, 민대부를 반나절 동안 아우성치게 하지 않았소.”“반나절이라니요, 반 시진도 가지 못했나이다!”김단은 소문이란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소하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그래도 큰 인물이 되지 않았는 가.”“스승이 잘 가르쳐 준 덕분입니다.”김단은 서로 치켜세우는 상황에 웃음을 터트렸다.“중전 마마께서 기다리
해가 서쪽 하늘에 기울 무렵, 김단이 맹영지를 데리고 궁으로 들어갔다. 경씨가 옆에 서있었다.그의 얼굴에는 염려가 가득했다. 허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전하가 김단에게 맹영지와 함께 궁으로 들라는 명을 내리지 않았는 가.만일 대군께서 한양에 계셨다면 막을 수 있었을 터, 한낱 마부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궁궐은 워낙 넓고, 궐 안의 금군 중에는 무예가 뛰어난 자들이 넘쳐 난다.더하여 내각에는 임금을 지키는 호위들이 따로 존재한다.자신이 몰래 궁에 들어가 낭자를 지키려 든다면, 날이 밝기도 전에 역적이라 오해를 받아 온몸이 찢길지도 모른다.김단은 경씨의 표정을 보고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경씨 도령, 염려하지 마시 옵소서. 제 몸 하나는 제가 잘 챙길 수 있사옵니다.하물며 소하 오라버니는 금군의 총령이니, 만일 무슨 일이 생기게 되어도 도움을 청할 수 있나이다.”경씨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부디 조심하시오.”경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숙희가 붉은 눈가를 한 채로 입을 열었다.“아씨, 노비는 궁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옵니까?”숙희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그저 김단과 함께 궁으로 들어가고 싶었다.혹여 무슨 일이 생기면, 도움을 줄 수 없다 하여도 자신이 뒤집어쓸 수 있지 않은가.허나 김단은 만일 하나 일이 생겨도, 숙희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나는 그저 작은 의녀에 불과해.중궁전에 거처하면서 내 몸종까지 데려간다 하면, 중전의 사람을 꺼려 한다면서 입을 놀릴 것이야.”숙희는 어렴풋이 그저 둘러대는 것일 뿐이라 느껴졌다.허나 반박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궁 안의 규칙이 수도 없이 많은 탓에,진정 구설수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은 가.혹여 자신이 아씨를 해할 수도 있지 않은가.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숙희는 참을 수 밖에 없었다.뜬 눈으로 김단이 맹영지와 함께 궁궐 문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양쪽으로 큰 성벽이 둘러쌓여 있어,알 수 없는 압박감에 맹영지가 긴장을 했다.그녀의 두 손은 김단의 팔을 꼭
“황공하옵니다, 마마.”향 하나를 다 피우고 나서야, 김단은 중전의 처소를 떠났다.그리고 서아름을 살피기 위해, 복화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서아름은 처음 만났을 때 보다 많이 말라 있었다.안색도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허나 자신의 나인 앞에서는 이따금 지친 기색을 보였다.마치 나인에게 곧 죽을 사람처럼 행실 하곤 했다.다행히도 나인은 눈치가 없었다.하루 종일 놀기만 하고, 서아름을 살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그 덕에 서아름도 마음이 편했다.김단을 보자 서아름이 서둘러 그녀를 배웅했다.“의녀께서 오셨나이까! 어서, 안으로 들이시옵소서!”김단은 서아름에 끌려 방 안으로 들어갔다.그녀는 물을 따라 주었다.“다 의녀의 덕분이옵니다. 근래에 걸음걸이도 훨씬 가벼워졌나이다!”사람의 몸은 아프지 않아야, 건강하다는 것을 인지 할 수 있다.낮에는 정신이 또렷하고, 밤에는 편히 잘 수 있었다.허나, 김단의 안색이 그녀와 반대로 어두웠다.“오늘 날, 전하께서 중전 마마를 옆에 두시고 숙원 마마의 상태에 대해 여쭈셨나이다.소신은 전하께 마마의 몸이 연약하지만,아이는 무탈하다 아뢰었사옵니다.”서아름이 움찔했다.그녀는 덕빈을 오랜 시간 시중을 든 사람이다.어찌 김단의 뜻을 모를 수 있는 가.자신은 살지 못하지만, 아이는 살 수 있다는 뜻이다.서아름은 한참을 움직이지 않다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이만 무탈하면 돼옵니다. 소인은 그저 덕빈께 아이 하나만 남겨두는 것만으로 족합니다. 아이만 무탈하면, 제 미천한 목숨 하나가 중요하겠나이까.”김단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그녀는 서아름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아이와 그녀의 목숨은 똑같은 것이라고.사람의 목숨에는 신분이 없듯이, 미천한 목숨이라는 것은 없다.더하여 귀식환 제조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제조에 성공만 하면, 서아름을 궁에서 떠나 새로운 삶을 보낼 수 있었다.허나 김단은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귀식환 제조를 성공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실패로 돌아간다
김단은 중전의 뜻을 금방 알아챘다.중전이 서아름을 해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그녀 뱃속의 아이 때문이었다.만일 김단이 아이가 무탈하다 말했다가, 훗날 서아름이 아이와 함께 목숨을 잃게 되면, 임금이 그녀를 의심할 것이 뻔하다.중전은 김단에게 눈치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김단은 시선을 거두었다.고개를 숙인채, 자신의 발만 쳐다보며 말했다.“중전 마마께서 내려주신 귀한 보약 덕에, 숙원 마마의 태아는 무탈 하옵니다. 숙원 마마께서 끝까지 버텨내신다면, 태중의 용태는 무사히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옵니다!”김단의 말에도 중전의 살기 서린 눈빛은 여전했다.허나 임금은 만족한 듯, 미소가 짙어졌다.그는 뒤를 돌아 중전을 바라보았다.그녀의 손을 잡고는 다정하게 말했다.“다 중전 덕분이오.”중전은 살기 서린 눈빛은 온데간데 없고, 온화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임금의 칭찬에 그저 미소를 지어 보였다.“주상께서 후궁의 일을 신첩에게 맡기셨으니, 어찌 주상의 근심을 덜어드리지 않겠사옵니까.”“잘하셨소!”곧이어 임금은 몸을 뒤로 옮기더니, 중전의 귓가에 속삭거렸다.중전이 부끄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기다리고 있겠나이다.”“하하하, 알겠소.”임금은 그제야 손을 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짐은 아직 정사가 남았소, 자네는 중전 곁에서 말동무를 해주시오.”뒷부분은 김단을 향한 말이었다.김단은 예, 라 대답하며 임금을 배웅했다.임금이 자리를 떠나자마자, 중전이 김단을 바라보았다.쌀쌀한 말투로 그녀에게 말했다.“보아하니, 의녀는 주상의 총애를 받아 자신의 주관이 뚜렷 해지셨소.”중전의 말투에 김단의 심장이 철렁했다.김단은 서둘러 무릎을 꿇었다.“부디 중전 마마께서 노여움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소신은 마마를 위함이었나이다.”그녀의 말에 중전이 코웃음을 쳤다.그제야 천천히 물어보았다.“말해 보시오.”“부디 마마께서 깊이 헤아려 보시옵소서. 전하께서 후손을 이토록 중히 여기시거늘, 만일 소신이 숙원 마마의 태중이 위태롭다 아뢰
임금은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수고가 많았다.”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중전이 입을 열었다.“전하, 신첩 또한 의녀가 수고가 많다 생각하옵니다. 영지를 돌보시는 것도 벅차신데, 궁중의 후궁들까지 살펴야 하시니 말이옵니다. 차라리 영지를 신첩의 처소로 옮겨 이곳에서 돌보게 하는것이 어떠하옵니까? 의녀는 본디 평양 대군의 관저에 임시로 거처 중이시고, 그런 곳에 사람을 데려가는 것이, 체면상 온당치 않은듯하여 감히 아뢰옵니다.”평양 대군 관저에 김단은 손님에 불과하다.어찌 손님이 손님을 데려갈 수 있단 말인 가.하물며 맹 씨 집안의 자녀가 평양 대군 관저에 머무는 것에 대해 소문이 퍼질지도 모른다.임금도 같은 생각이다.맹영지를 중전의 처소에 머물게 하는 것이, 평양 대군의 관저에 머무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중전은 맹영지의 친 고모이며, 처소에서 병을 돌보는 것이 수월하지 않은가.허나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허나 맹 가의 계집은 이 자만 알아본다 하지 않았소? 만일 이곳으로 옮겨,소란을 피우게 된다면 중전의 병세를 더욱 악화 시킬지도 모르오.”임금은 중전을 걱정하고 있었다.다정한 말투에 중전의 뺨이 벌겋게 달아올랐다.“염려하지 마시 옵소서. 의녀도 처소로 옮겨와 머물면 되지 않겠나이까.”맹영지가 알아보는 사람이 김단 뿐 이라면, 김단을 중전의 처소에 머무르게 하면 되지 않는가.그녀의 말에 김단의 얼굴이 굳어졌다.중전의 자신의 제안이 마음에 들은 모양이다.“그리하면 의녀도 수고를 덜 하겠지 않나이까.”임금도 중전의 제안이 마음에 들었다.곧이어 김단을 향해 물었다.“자네는 어찌 생각하는 가?”김단은 내키지 않았다.궁중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허나 김단은 공주의 사람이다.공주와 중전이 같은 편이니, 중전의 제안을 감히 거스를 수는 없었다.곧이어 절을 하고 말했다.“중전마마의 각별한 보살핌에 몸둘바를 모르겠나이다.”그녀의 대답은 다른 자가 듣기에는,중전의 제안에 만족한 것처럼 보였다.옆에
김단의 미소를 보아도, 맹 씨 부인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맹 씨 집안의 안주인이 되어서, 어찌 김단의 속과 겉이 다르다는 것을 모를 수 있겠는 가.비록 미소를 짓는 모습이 온화하기 그지없지만, 자칫하면 그들을 물어 집안을 피바다로 만들 수 있었다.또한 김단의 뒤를 봐주는 자들은, 감히 그들이 거들떠도 보지 못하는 인물들이 아닌가.오늘 김단은 말리려고 하지도 않았다.오히려 맹 씨 집안의 체면을 고려하여, 그녀가 맹영지를 데려가지 않은 것이다.이러한 생각에 맹 씨 부인은 답답함을 느꼈다.허나 김단을 향해 미소를 짓고 나서야 자리를 떴다.맹 씨 부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김단의 미소가 점차 사라졌다.곧이어 숙희가 김단의 곁으로 다가갔다.목소리를 낮추고는 물었다.“맹 아씨의 친 모친이옵니다. 어찌 친 딸을 해하겠나이까, 혹여 아씨께서 너무 깊게 염려를 하신 것이 아니옵니까.”“내가 그 생생한 본보기가 아니더냐.조금만 생각하면 알게 되는 법이지.”김단은 말하면서 맹영지에게 시선을 돌렸다.맹영지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금색의 계화 꽃잎이 떨어지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고개를 숙여 자신의 치마를 바라보았다.만일 맹 씨 부인이 ‘맹영지의 상황이 이리 심각할 줄 몰랐다’ 라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김단이 직접 맹영지를 맹 씨 집안의 마차로 올려 보냈을 지도 모른다.자신의 피가 흐르는 친 자식을, 어찌 사, 오 년 동안 상황을 몰랐던 것일까.마치 그녀가 세답방에 버려지고, 삼 년 동안 어떠한 안부도 묻지 않는 그 자들과 같은 모습과 같았다.허나, 정승댁은 세답방이 아니다.맹영지는 노비가 아닌 그저 댁의 맏며느리가 되기 위해 정승댁으로 향한 것이다.어찌 친부모가 되어 아무것도 모를 수 있겠는 가.더하여 중전이 독이 맹 씨 집안의 소행이라 의심을 품고 있는 중이다.오히려 정승댁이 맹 씨 집안보다 더 안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겉으로는 물러선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한 수 앞을 보아 맹영지를 이곳에 머무르게 한
맹 부인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손을 거두고 두려운 표정으로 맹영지를 바라보았다.“어찌 이럴 수 있으십니까?”무언가 떠오른 것 마냥 김단을 향해 바라보았다.“의녀, 영지가..”김단은 그제야 미소를 지어 보였다.곧이어 맹영지의 곁으로 다가갔다.“다 나았나이다.”그녀의 한 마디에 맹영지는 천천히 진정을 되찾았다.두려운 눈빛이 점차 평온해졌다.맹 씨 부인은 이러한 모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곧이어 김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낭자께서는 소인만 알아볼 수 있으십니다. 다른 이들이 다가간다 하여도,밀쳐 내실 겁니다. 부인도 똑같이 밀쳐 내실 것이옵니다. 제 몸종도 낭자에게 긁혀 손에 상처를 입었나이다.”김단의 말이 끝나자마자, 숙희가 맹 씨 부인에게 손을 보여 주었다.어제 맹영지에게 긁혀 생긴 상처였다.다행히도 김단의 설득 아래,맹영지는 드디어 숙희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그제야 그녀의 시중을 들게 해 주었다.김단의 말에 맹 씨 부인의 얼굴이 굳어졌다.“오늘 데려 가지 못한다는 뜻이옵니까?”“아니옵니다.”김단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소인은 그저 맹 낭자께서 이곳에 계시는 게 나을 듯 하옵니다. 허나, 낭자께서는 맹 씨 집안의 자식이 아니 옵니까. 부인의 뜻을 따르겠나이다.”데려 가는 것이 결코 좋지 않다는 뜻이다.현재의 맹영지의 상황으로 보아, 억지로 데려 가는 수 밖에 없었다.부모가 되어 어찌 자식에게 좋지 않은 선택을 한단 말인 가.맹 씨 부인은 어찌 할 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대감이 맹영지를 데려오라고 신신당부했었다.허나 이 상황에 평양 대군 관저의 문을 나갈 수 있다 한들,맹영지가 소리치는 모습에 다른 이들이 소문을 퍼트릴 수 있다.잠시 생각하고는 입을 열었다.“의녀께서는 높은 의술을 가지고 계시라 믿나이다. 혹여 영지를 잠재울 수 있는 수가 있사옵니까?”‘잠’ 이라 했지만, 사실 기절을 시킬 수 있는지 물어본 것이다.그리해야 조용히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김단이 고개를 끄덕였다.“소인에게 약은
이튿날 아침, 김단은 궁무를 맡지 않았기에 평양관저에 머물며 맹영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탓인지 맹영지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김단의 곁에 있을 때만큼은 그녀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조용한 정원, 김단은 맹영지와 함께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계수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숙희가 건네준 과자가 들려 있었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있었다. 맹영지는 고개를 들어 만개한 계화를 바라보며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소하가 평양관저를 찾아왔으나 그는 맹영지와의 만남을 최대한 피하려 애썼다. 아마도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이다.김단은 맹영지를 바라보며 과거 소하가 왜 그리도 그녀를 칭찬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때 소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여인답게 그녀는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가까웠던 두 사람이었는데 맹영지는 어쩌다 소하에게 독을 먹이려 했던 것일까?김단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맹영지의 몸과 마음이 회복되면 그때 자연스럽게 그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김단이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평양관저의 겸인이 급히 달려와 말했다.“아가씨, 맹가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이런 큰일이 발생했으니 맹씨 집안에서 그녀를 보러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단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겸인에게 말했다.“알겠소. 이리로 모셔오시오.”잠시 후, 맹씨 부인이 정원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김단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한 뒤 슬픈 눈으로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김 의원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의원님이 아니었다면 제 딸이 그 짐승 같은 자에게 학대받으며 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맹씨 부인의 눈동자가 붉어졌다.김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하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과찬이십니다, 맹씨 부인. 민태훈, 그 자의 말에 따르면 맹영지 아가씨의 병은 이미 4~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완전히 회
소한은 코웃음을 치며 말없이 등을 돌렸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소하의 조용한 목소리가 방안의 침묵을 깨뜨렸다.“이번에는 정말 잘했어.”영의정 저택에서 벌어진 일은 소한이 형벌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소하의 귀에 들어갔다. 만약 소한이 과감하게 영의정 저택에 침입하지 않았다면 김단은 쉽게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비록 민씨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김단을 해치지 못한다고 해도 그녀가 겪었을 모욕과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소하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소한은 많이 당황한 듯했다.“제가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때로는 그 충동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소한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김단의 얼굴을 떠올렸다. 처음에 그녀도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듯했지만 곧 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였다. 김단은 마차에 오를 때까지 자신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과거의 그녀였다면 그가 나타나자마자 바로 그의 품에 안기며 그를 향해 미소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너무나도 차갑게 변해버렸다. 자신을 외면하는 그녀가 소한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그는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며 굳게 결심했다.그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이미 어떤 대가든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반 시진 후, 김단은 방 안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그러자 숙희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아가씨?”김단은 정신을 차리고 숙희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냐?”“두 도련님께서는 모두 돌아가셨습니다.”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전 발생한 일을 되새겨 보았다. 그녀는 소한이 오랫동안 계획해 온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에도 그는 소가를 위해, 전하를 위해 심지어 임원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그녀만은 제외였다.그녀는 소한이 자신의 어머니를 걱정하는 척하며 평양관저로 따라온 것도 단지 자신의 동정심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상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