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김단은 줄곧 임학이 자신을 꽤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원한을 잊지 않고 반드시 되돌려주는 성격이다.끔찍했던 3년의 시간은 그녀가 진산군 댁에 진 빚, 즉 15년간 양육의 은혜를 갚는 셈으로 여겼다. 그래서 그녀는 돌아온 후 모든 일에 대해 따지지도 않았고 그저 조모 곁에서 지내고 싶어 했다.하지만 그 15년은 그녀가 진산군 댁에 진 빚이지 명희에게 진 빚이 아니었다.고작 하녀 주제에 여러 차례 그녀를 모함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오늘 숙희까지 벌받게 만들었다.만약 이 일을 되갚아 주지 않는다면 그건 김단이 아니었다!밖에서 구경하는 하녀와 하인들은 점점 많아졌고, 심지어 별당에서까지 많은 사람들이 왔다.김단이 말하는 것을 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내 여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맞아요, 맞습니다! 그날 둘째 아가씨가 실수로 물에 빠지셨는데, 큰 아가씨께서 물불 가리지 않고 구해주셨어요. 그런데 뭍에 오르시자마자 명희로부터 모함을 받으셨습니다!” “명희가 지금까지 벌을 받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됩니까? 저는 분명 입술이 터지도록 맞고 쫓겨날 줄 알았습니다!” “쉿, 걔는 둘째 아가씨 하녀잖아. 둘째 아가씨가 봐주고 있다고!” “하지만 큰 아가씨께서 목숨을 걸고 둘째 아가씨를 구하셨는데, 둘째 아가씨께서 이러시면 이는 은혜를 잊은 행동이지 않습니까?”하인들이 작은 목소리로 떠드는 소리가 사당 안까지 들려왔다.진산군은 이미 표정이 굳어 있었다. 그는 싸늘한 눈빛으로 명희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 말이 사실이냐?”명희는 털썩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 “어르신, 소인이 잘못했습니다. 이미 부인과 도련님, 그리고 둘째 아가씨께 잘못을 빌었습니다!” “하!” 김단이 웃음을 터뜨렸다. “모든 사람에게 잘못을 빌어 놓고, 나에게만 빌지 않았구나.”명희는 어안이 벙벙해져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를 본 임원은 급히 김단 앞으로 달려가 두 손으로 김단의 팔을 잡으려 했지만, 김단의 소매에 묻은 핏자국을 보고는 자제하
숙희는 이미 형벌을 받고 있는데, 그가 어떻게 지금 명희를 위해 용서를 구하겠나?그런데 뜻밖에도 김단이 먼저 물러섰다. “주인과 하녀 사이에 정이 깊으니, 나도 너무 매정하게 굴고 싶지는 않소.”어차피 입을 찢고 내쫓는 것은 명희에게 너무 가벼운 처벌이었다.그 말과 함께 그녀는 손을 내밀어 임원을 부축하였다.옆에서 이 모습을 본 임씨 부인은 눈을 반짝였다.그녀는 설마 김단이 먼저 나서서 임원을 부축해 줄줄 생각지도 못했다.그 짧은 순간, 그녀는 훗날 김단과 임원이 자매처럼 정답게 지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임원은 흐느끼며 김단에게 감사를 표하려 했지만, 김단의 입가에 번진 미소를 보고는 왠지 모를 싸늘함을 느꼈다.이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러자 김단이 물었다. “하지만 내 하녀는 그저 낭자 한 번 물었을 뿐인데 삼십 대를 맞아야 했소. 내 상처를 보았을 때 명희는 어떤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시오?”붕대 위의 핏빛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임원은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그녀는 명희에게 어떤 벌을 주는 것이 적당할지는 안중에도 없었고, 그저 명희가 집에서 쫓겨나지 않고 영원히 자신 곁에 있어 주기만을 바랐다!이에 그녀는 흐느끼며 김단의 차가운 미소를 마주하고 한 글자 한 글자 말했다. “낭자께서 명희에게 살길만 열어 준다면, 훗날 낭자께서 명희를 어떻게 벌하든 내 결코 어떠한 불평도 하지 않겠소!”“좋소.” 김단은 즉시 대답했다. “그러면 낭자의 말대로, 훗날 내가 명희를 벌하고 싶을 때 내 별당으로 부르겠소. 오늘은… 우선 숙희와 마찬가지로 삼십 대를 치도록 하겠소!”그녀의 말투가 매우 부드러운 나머지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렸고, 다른 사람들은 듣고 나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하지만 임원은 어안이 벙벙했다.그녀는 오늘 벌하지 않고 나중에 김단이 명희를 어떻게 처벌해야 할지 결정했을 때 다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김단의 말 뜻은 훗날 언제든지 명희를 별당으로 불러들일 수 있
김단은 다소 의아했다. 임원은 이미 떠났는데, 그는 어째서 임원을 쫓아가지 않고 임씨 가문의 사당 밖에 서 있는 것일까?그녀를 기다린 것일까?무슨 할 말이 있는 것일까?하지만, 어쩌면 좋을까?그녀는 그와 한마디도 나누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김단은 인사도 하지 않고 그저 소한을 못 본 척하며 그대로 떠났다.하지만 소한 곁을 지나칠 때, 그의 싸늘한 목소리가 김단의 귀에 들려왔다. “김 낭자는 그렇게 명정빈이 되고 싶은 것이오?”서늘한 어조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김단은 발걸음을 잠시 멈췄지만, 그를 돌아보지 않은 채 담담하게 물었다. “소 장군께서는 제가 만약 명정비가 되어서도 오늘처럼 이렇게 힘든 수모를 겪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겨우 하녀 한 명을 상대하는 데도 그녀의 모든 기력을 쏟아야 했다.소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단도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홀로 떠났다.질문에 대한 답을 그들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녀가 명정비가 된다면 명희를 벌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이 진산군 댁 사람들을 전부 채찍질한다 해도 찍소리 하지 못할 것이다!김단이 하녀들의 부축을 받으며 별당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의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다.그녀는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버티기 힘든 상태였다. 사당에 있을 때는 그저 오기를 갖고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이윽고 별당으로 돌아온 그녀는 마치 바람 빠진 풍선과도 같아서, 하마터면 돌다리 위에서 쓰러질 뻔했다.그때 다행히도 의원이 찾아왔다.의원을 보자 김단은 화색을 띄웠으나, 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의원은 몇 차례 침을 놓았고, 그 때문에 그녀는 순간 눈앞이 아득해지며 완전히 정신을 잃었다.그 시각, 취향각.소한이 왔을 때 임학은 이미 술을 많이 마신 상태였다.그는 임학을 힐끗 쳐다보고는 앞으로 나아가 자리에 앉았다. 차갑고 냉담한 그의 목소리에서는 약간의 무관심이 느껴졌다. “할 말이라도 있소?”임학의 하인이 임학이 여기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임학과
하지만 임학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나는 상관 안 하오. 나는 그 아이가 명정 대군과 함께 탐라성으로 가는 것을 막을 것이오!”탐라성에 도착하면 명정 대군은 더욱 거리낄 것이 없지 않겠는가?아마 그때는 사람을 때려 죽여도 서너 달이 지나서야 소식을 듣게 될 것이다!그날 김단이 온몸에 상처를 입고 돌아온 것을 떠올리면 임학의 가슴은 몹시 아팠다.하지만 김단이 기어코 명정 대군에게 시집가려는 모습을 생각하면 그는 또 화가 치밀었다!그는 다시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나서야 마음속의 분노가 조금 가라앉았다.그때 소한이 물었다. “그 아이가 명정 대군에게 시집가지 않는다면, 누구에게 시집가야 하는 것이오?”임학은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자네가 상관할 바 아니오! 누구에게 시집가든 명정 대군에게 시집가는 것보다는 낫소! 차라리 첩으로 들어가는 것이 맞아 죽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겠소!”소한은 술을 따르던 손을 잠시 멈추었다.첩으로 들어가다니? “왜 멍하니 있는 것이오?” 임학은 짜증을 내며 소한의 손에 들린 술병을 빼앗았다. “자네는 어릴 때부터 나보다 생각이 많지 않았소? 어서 방법을 생각해 보시오!”소한은 그제야 심호흡을 하고 임학을 향해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김 낭자 쪽은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명정 대군을 설득해야 할 것이오.”임학은 이해가 가지 않아 물었다. “명정 대군을 설득하라니? 그 자는 단이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어 하지 않소! 지난번에 그가 뭐라 말했는지 벌써 잊었소?”그는 김단이 맞을 때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아무리 맞아도 죽지 않아 자신을 즐겁게 해 줄 수 있어 자신과 천생연분이라고 말했었다.매번 이 말을 떠올릴 때마다 임학은 역겨움에 치를 떨었다.그는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변태적일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분명 어렸을 때는 명정 대군은 이렇지 않았다!하지만 소한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명정 대군이 이렇게 변한 것은 그의 부상 때문이오.”이 말을 들은 임학은 깜짝 놀랐다
소한의 표정은 덤덤했다. 술잔을 들어 술을 마시는 동작에는 어떠한 머뭇거림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왠지 모를 섬뜩함이 느껴졌다. “그 일은 온 가문을 멸하는 큰 죄이니, 농담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오.”이 말을 들은 임학은 반신반의하며 소한을 훑어보았다.이전 그의 추측은 정말 너무나도 극단적이었다. 만약 소한이 정말로 명정 대군을 죽인다면, 그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소씨 가문 전체를 담보로 삼는 것과 같았다.하지만, 김단 한 명을 위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까?임학은 당연히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고, 또한 소한이 그렇게 큰 위험을 무릅쓸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다만 소한의 현재 모습이 너무나 심오하고 그 속 뜻을 헤아릴 수 없었기에, 그로 하여금 여러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하지만 마찬가지로 그는 소한이 마음속에 정말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다고 해도, 소한이 자신에게 명확하게 말해주지 않는 이상 영원히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렇기에 그는 더 이상 그 생각에 매달리지 않고 그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호랑이를 산 밖으로 쫓아내는 것은 확실히 좋은 방법이오. 하지만 명정 대군과 단이 사이에는 임금의 뜻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임금의 뜻이 있는 한, 명정 대군이 한양을 떠난다 해도 누가 감히 항명의 죄를 무릅쓰고 김단에게 장가들겠는가?그럼에도 소한의 마음속에는 이미 정해 놓은 사람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는 술병을 들어 임학에게 한 잔 따라 주었다. 두 사람이 잔을 부딪쳐 술을 마신 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형님이 그럴 것이오.”임학의 입에 있던 술이 그대로 뿜어져 나왔고, 심지어 일부는 소한의 얼굴에까지 튀었다. “소한, 자네 미친 것이오?!” 임학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가득했고, 소한을 쏘아보며 말했다. “자, 자네 형님은 명정 대군보다도 못하지 않소!”소한은 집안의 적자이긴 했지만, 적장자는 아니었다.소씨 가문의 장자는 소하라고 하며, 소한보다 다섯 살 많고, 김
소한의 눈빛이 순간 어두워지며 임학을 싸늘하게 바라보았다.임학은 섬뜩함을 느꼈고, 그제야 어떤 일이 반드시 실제로 이루어져야만 진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다른 사람들이 진짜라고 생각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그는 속으로 흠칫 놀라 소한을 힐끗 쳐다보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전장에서 몇 년을 구르더니, 더욱 음험하고 교활해졌군!”소한은 이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였고 이내 입꼬리를 올려 차가운 미소를 보였다.반면 임학은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된다면 단이는 아마 평생 나를 죽도록 원망할 것이오!”그녀는 지금까지도 그를 오라버니라고 부르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만약 소하에게 시집가게 된다면, 아마 평생 그를 원수로 여길 것이다.소한은 고개를 숙이고 웃으며 말했다. “그 아이도 조만간 자네가 그 아이를 위해서 한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오.”이 말을 들은 임학은 냉담하게 코웃음을 쳤다. “그 계집은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자식일세. 알 리가 없을 것이오!”하지만, 알지 못한다 한들 어쩌겠는가?그의 오라버니로서, 그는 그녀가 명정 대군에게 맞아 죽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고, 그렇게 그녀가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그녀가 평생 그를 원망한다 할지라도 고작 1년도 살지 못하는 것보다는 나았다.마음을 굳게 먹은 임학은 다시 술을 벌컥 들이켰다. 그의 눈빛에는 매우 굳건한 결의가 담겨있었다.소한은 이 모든 것을 눈에 담았다. 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릴 뿐, 탁자 위에 놓인 술은 한 모금도 더 마시지 않았다.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한 달이 지났다.김단의 몸에 있던 상처는 거의 다 나았다. 그녀는 평소와 같이 큰 마님께 문안 인사를 드리러 갔다.큰 마님의 안채 앞에 도착하자 숙희가 말했다. “아가씨, 보세요. 둘째 아가씨예요.”숙희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쳐다보니, 정말로 임원이 서 있었다.그녀와 그녀의 하녀도 마침 큰 마님의 안채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 데려올 수 없을 것이다.임원이 그토록 명희를 감싸고 있고, 또 명희가 별당에 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뻔히 알고 있는데, 어찌 쉽게 그녀를 내주겠는가?그렇기에 김단이 큰 마님의 집에서 나와 숙희가 잔뜩 찡그린 얼굴로 서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이미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가씨…” 숙희가 입을 열어 자초지종을 얘기하려 하자, 김단이 그녀의 말을 막았다. “가자, 매화당으로.”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매화당 방향으로 걸어갔다.숙희는 곧장 뒤따라갔다. “아가씨 정말 매화당에 가시려고요? 만약 어르신과 부인께서 아시면…” “알라고 하지 뭐.” 김단은 턱을 살짝 치켜들고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임학도 알게 되면 참 좋겠구나.”이 말을 들은 숙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가씨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몰랐지만, 다른 하녀들에게 신호를 보내 아가씨가 매화당으로 간다는 소식을 전하게 했다.이제 막 초봄이 되었고, 매화당의 매화는 이미 시들었다. 몇 송이만이 간신히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었다.보기에 별당보다 오히려 더 쓸쓸해 보였다.김단이 온 것을 본 매화당의 사람들은 마치 큰 적을 만난 듯 긴장하기 시작했다.하녀 한 명이 허둥지둥 앞으로 나와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큰, 큰 아가씨,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하녀는 영문을 모르는 듯하였다.김단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무엇 때문인 것 같으냐?”하녀는 다급히 말했다. “저, 저희 아가씨께서 병세를 보이셔서, 손님을 뵙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거짓말!” 숙희는 목소리를 높여 호통쳤다. “오늘 아침에 내가 너네 아가씨께서 큰 마님께 문안 인사드리러 가는 걸 똑똑히 봤어!”하녀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비록 조금 겁먹은 듯했지만 그래도 꿋꿋이 대답했다. “아가씨께서 방금 막 병세를 보이셔서, 갔다가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오신 것입니다…” “너!” 숙희는 하녀가 변명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를
“마님, 아가씨께서 갑자기 감기에 드셨습니다. 혹시라도 병을 옮으실까 염려되오니, 가까이 오시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가까이 오면 금방 들통날 수 있었다.이 말을 들은 임씨 부인은 발걸음을 멈추고 멀리서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멀쩡하던 애가 갑자기 아프단 말이냐?”명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있는 임원도 자는 척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오직 김단만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안심시켰다. “마님, 안심하십시오. 곧 의원이 올 것입니다.”의원이 온다는 말을 들은 명희는 긴장되기 시작했다.하지만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임학의 신경은 김단 쪽에 쏠려 있었다. “원이가 아픈 것에 어찌 그리 관심을 두는 것이오?”이는 너무나 의아한 일이었다.김단은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 “저는 임 낭자가 걱정되어 온 것이 아니라, 그날 사당에서 임 낭자와 약속하길 훗날 제가 명희를 벌하고 싶을 때 언제든 명희를 데려갈 수 있다고 하여 온 것입니다.”이 말을 들은 임학은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 “좋은 마음을 품고 있지 않을 줄 뻔히 알았소!”임학의 질책에 대해 김단은 이미 익숙했다.그녀는 입꼬리를 올려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이는 임씨 가문 사당에서 한 약속입니다. 어찌 임씨 가문 사람으로서 인정하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너!” 임학은 말문이 막혔다.임씨 가문의 사당 이 일곱 글자가 그의 머리를 짓누르는 듯했다.만약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는 곧 임씨 가문의 불효 자손이 되는 것이 아닌가?곁에 있던 임씨 부인조차 미간을 찌푸리며 난색을 표했으나, 그럼에도 입을 열어 말했다. “당초 정말로 원이가 직접 한 약속이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 명희야, 단이를 따라가거라.”그녀는 아직까지도 하녀 한 명 때문에 자매 사이가 나빠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임씨 부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침상에 누워있던 있던 임원이 입을 열었다.“명희… 명희야…”“소인이 여기 있사옵니다!” 명희는 황급히 침대
김단은 맹영지를 소하가 있는 곳으로 보게 하였다.허나 맹영지는 반응이 느리고,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에 소하를 바라보지 않았다.“소하라고 하는 사내입니다. 기억하십니까?”김단은 여전히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허나 소하의 이름을 들어도, 맹영지는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았다.이러한 그녀의 모습에 소하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이리 상황이 좋지 않을 줄은 몰랐소.”김단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소하 오라버니께서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돼옵니다. 제가 최선을 다하여 낭자를 보살 피겠나이다.”곧이어 소하의 시선이 김단을 향했다.찌푸린 미간은 펴질 줄 몰랐다.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무슨 말을 해야 하는 것인가.사실 그는 맹영지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눈앞의 감회는 그저 오늘날과 이전의 다름에서 온 것이라 말할까,마음에는 김단의 안위만 생각하고 있으니, 다른 생각 하지 말라고 말할까.헌데 만일 그녀가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면, 할 말이 없지 않은가.소하는 여러 생각에 휘잡혔다.허나 생각했던 말은 내뱉지 않았다.“중전 마마께서 낭자와 맹 낭자를 처소로 들이시는 것은, 분명 다른 생각이 있으실 것이오. 그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소?”김단이 고개를 저었다.“사실 저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였나이다.어쩌면 맹 씨 집안 때문이 아니겠습니까?”“어찌 되었든 간에, 낭자가 중전의 처소로 들어갔으니 호랑이 굴에 들어간 것과 같소. 항상 조심해야 하오.”“소하 오라버니, 염려하지 마시옵소서.제게는 오라버니께서 가르쳐 주신 방도가 있지 않사옵니까.”그녀의 말에 소하가 고개를 숙이고 미소를 지었다.“돌을 은침으로 대신하여, 민대부를 반나절 동안 아우성치게 하지 않았소.”“반나절이라니요, 반 시진도 가지 못했나이다!”김단은 소문이란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소하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그래도 큰 인물이 되지 않았는 가.”“스승이 잘 가르쳐 준 덕분입니다.”김단은 서로 치켜세우는 상황에 웃음을 터트렸다.“중전 마마께서 기다리
해가 서쪽 하늘에 기울 무렵, 김단이 맹영지를 데리고 궁으로 들어갔다. 경씨가 옆에 서있었다.그의 얼굴에는 염려가 가득했다. 허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전하가 김단에게 맹영지와 함께 궁으로 들라는 명을 내리지 않았는 가.만일 대군께서 한양에 계셨다면 막을 수 있었을 터, 한낱 마부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궁궐은 워낙 넓고, 궐 안의 금군 중에는 무예가 뛰어난 자들이 넘쳐 난다.더하여 내각에는 임금을 지키는 호위들이 따로 존재한다.자신이 몰래 궁에 들어가 낭자를 지키려 든다면, 날이 밝기도 전에 역적이라 오해를 받아 온몸이 찢길지도 모른다.김단은 경씨의 표정을 보고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경씨 도령, 염려하지 마시 옵소서. 제 몸 하나는 제가 잘 챙길 수 있사옵니다.하물며 소하 오라버니는 금군의 총령이니, 만일 무슨 일이 생기게 되어도 도움을 청할 수 있나이다.”경씨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부디 조심하시오.”경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숙희가 붉은 눈가를 한 채로 입을 열었다.“아씨, 노비는 궁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옵니까?”숙희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그저 김단과 함께 궁으로 들어가고 싶었다.혹여 무슨 일이 생기면, 도움을 줄 수 없다 하여도 자신이 뒤집어쓸 수 있지 않은가.허나 김단은 만일 하나 일이 생겨도, 숙희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나는 그저 작은 의녀에 불과해.중궁전에 거처하면서 내 몸종까지 데려간다 하면, 중전의 사람을 꺼려 한다면서 입을 놀릴 것이야.”숙희는 어렴풋이 그저 둘러대는 것일 뿐이라 느껴졌다.허나 반박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궁 안의 규칙이 수도 없이 많은 탓에,진정 구설수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은 가.혹여 자신이 아씨를 해할 수도 있지 않은가.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숙희는 참을 수 밖에 없었다.뜬 눈으로 김단이 맹영지와 함께 궁궐 문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양쪽으로 큰 성벽이 둘러쌓여 있어,알 수 없는 압박감에 맹영지가 긴장을 했다.그녀의 두 손은 김단의 팔을 꼭
“황공하옵니다, 마마.”향 하나를 다 피우고 나서야, 김단은 중전의 처소를 떠났다.그리고 서아름을 살피기 위해, 복화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서아름은 처음 만났을 때 보다 많이 말라 있었다.안색도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허나 자신의 나인 앞에서는 이따금 지친 기색을 보였다.마치 나인에게 곧 죽을 사람처럼 행실 하곤 했다.다행히도 나인은 눈치가 없었다.하루 종일 놀기만 하고, 서아름을 살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그 덕에 서아름도 마음이 편했다.김단을 보자 서아름이 서둘러 그녀를 배웅했다.“의녀께서 오셨나이까! 어서, 안으로 들이시옵소서!”김단은 서아름에 끌려 방 안으로 들어갔다.그녀는 물을 따라 주었다.“다 의녀의 덕분이옵니다. 근래에 걸음걸이도 훨씬 가벼워졌나이다!”사람의 몸은 아프지 않아야, 건강하다는 것을 인지 할 수 있다.낮에는 정신이 또렷하고, 밤에는 편히 잘 수 있었다.허나, 김단의 안색이 그녀와 반대로 어두웠다.“오늘 날, 전하께서 중전 마마를 옆에 두시고 숙원 마마의 상태에 대해 여쭈셨나이다.소신은 전하께 마마의 몸이 연약하지만,아이는 무탈하다 아뢰었사옵니다.”서아름이 움찔했다.그녀는 덕빈을 오랜 시간 시중을 든 사람이다.어찌 김단의 뜻을 모를 수 있는 가.자신은 살지 못하지만, 아이는 살 수 있다는 뜻이다.서아름은 한참을 움직이지 않다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이만 무탈하면 돼옵니다. 소인은 그저 덕빈께 아이 하나만 남겨두는 것만으로 족합니다. 아이만 무탈하면, 제 미천한 목숨 하나가 중요하겠나이까.”김단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그녀는 서아름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아이와 그녀의 목숨은 똑같은 것이라고.사람의 목숨에는 신분이 없듯이, 미천한 목숨이라는 것은 없다.더하여 귀식환 제조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제조에 성공만 하면, 서아름을 궁에서 떠나 새로운 삶을 보낼 수 있었다.허나 김단은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귀식환 제조를 성공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실패로 돌아간다
김단은 중전의 뜻을 금방 알아챘다.중전이 서아름을 해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그녀 뱃속의 아이 때문이었다.만일 김단이 아이가 무탈하다 말했다가, 훗날 서아름이 아이와 함께 목숨을 잃게 되면, 임금이 그녀를 의심할 것이 뻔하다.중전은 김단에게 눈치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김단은 시선을 거두었다.고개를 숙인채, 자신의 발만 쳐다보며 말했다.“중전 마마께서 내려주신 귀한 보약 덕에, 숙원 마마의 태아는 무탈 하옵니다. 숙원 마마께서 끝까지 버텨내신다면, 태중의 용태는 무사히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옵니다!”김단의 말에도 중전의 살기 서린 눈빛은 여전했다.허나 임금은 만족한 듯, 미소가 짙어졌다.그는 뒤를 돌아 중전을 바라보았다.그녀의 손을 잡고는 다정하게 말했다.“다 중전 덕분이오.”중전은 살기 서린 눈빛은 온데간데 없고, 온화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임금의 칭찬에 그저 미소를 지어 보였다.“주상께서 후궁의 일을 신첩에게 맡기셨으니, 어찌 주상의 근심을 덜어드리지 않겠사옵니까.”“잘하셨소!”곧이어 임금은 몸을 뒤로 옮기더니, 중전의 귓가에 속삭거렸다.중전이 부끄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기다리고 있겠나이다.”“하하하, 알겠소.”임금은 그제야 손을 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짐은 아직 정사가 남았소, 자네는 중전 곁에서 말동무를 해주시오.”뒷부분은 김단을 향한 말이었다.김단은 예, 라 대답하며 임금을 배웅했다.임금이 자리를 떠나자마자, 중전이 김단을 바라보았다.쌀쌀한 말투로 그녀에게 말했다.“보아하니, 의녀는 주상의 총애를 받아 자신의 주관이 뚜렷 해지셨소.”중전의 말투에 김단의 심장이 철렁했다.김단은 서둘러 무릎을 꿇었다.“부디 중전 마마께서 노여움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소신은 마마를 위함이었나이다.”그녀의 말에 중전이 코웃음을 쳤다.그제야 천천히 물어보았다.“말해 보시오.”“부디 마마께서 깊이 헤아려 보시옵소서. 전하께서 후손을 이토록 중히 여기시거늘, 만일 소신이 숙원 마마의 태중이 위태롭다 아뢰
임금은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수고가 많았다.”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중전이 입을 열었다.“전하, 신첩 또한 의녀가 수고가 많다 생각하옵니다. 영지를 돌보시는 것도 벅차신데, 궁중의 후궁들까지 살펴야 하시니 말이옵니다. 차라리 영지를 신첩의 처소로 옮겨 이곳에서 돌보게 하는것이 어떠하옵니까? 의녀는 본디 평양 대군의 관저에 임시로 거처 중이시고, 그런 곳에 사람을 데려가는 것이, 체면상 온당치 않은듯하여 감히 아뢰옵니다.”평양 대군 관저에 김단은 손님에 불과하다.어찌 손님이 손님을 데려갈 수 있단 말인 가.하물며 맹 씨 집안의 자녀가 평양 대군 관저에 머무는 것에 대해 소문이 퍼질지도 모른다.임금도 같은 생각이다.맹영지를 중전의 처소에 머물게 하는 것이, 평양 대군의 관저에 머무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중전은 맹영지의 친 고모이며, 처소에서 병을 돌보는 것이 수월하지 않은가.허나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허나 맹 가의 계집은 이 자만 알아본다 하지 않았소? 만일 이곳으로 옮겨,소란을 피우게 된다면 중전의 병세를 더욱 악화 시킬지도 모르오.”임금은 중전을 걱정하고 있었다.다정한 말투에 중전의 뺨이 벌겋게 달아올랐다.“염려하지 마시 옵소서. 의녀도 처소로 옮겨와 머물면 되지 않겠나이까.”맹영지가 알아보는 사람이 김단 뿐 이라면, 김단을 중전의 처소에 머무르게 하면 되지 않는가.그녀의 말에 김단의 얼굴이 굳어졌다.중전의 자신의 제안이 마음에 들은 모양이다.“그리하면 의녀도 수고를 덜 하겠지 않나이까.”임금도 중전의 제안이 마음에 들었다.곧이어 김단을 향해 물었다.“자네는 어찌 생각하는 가?”김단은 내키지 않았다.궁중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허나 김단은 공주의 사람이다.공주와 중전이 같은 편이니, 중전의 제안을 감히 거스를 수는 없었다.곧이어 절을 하고 말했다.“중전마마의 각별한 보살핌에 몸둘바를 모르겠나이다.”그녀의 대답은 다른 자가 듣기에는,중전의 제안에 만족한 것처럼 보였다.옆에
김단의 미소를 보아도, 맹 씨 부인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맹 씨 집안의 안주인이 되어서, 어찌 김단의 속과 겉이 다르다는 것을 모를 수 있겠는 가.비록 미소를 짓는 모습이 온화하기 그지없지만, 자칫하면 그들을 물어 집안을 피바다로 만들 수 있었다.또한 김단의 뒤를 봐주는 자들은, 감히 그들이 거들떠도 보지 못하는 인물들이 아닌가.오늘 김단은 말리려고 하지도 않았다.오히려 맹 씨 집안의 체면을 고려하여, 그녀가 맹영지를 데려가지 않은 것이다.이러한 생각에 맹 씨 부인은 답답함을 느꼈다.허나 김단을 향해 미소를 짓고 나서야 자리를 떴다.맹 씨 부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김단의 미소가 점차 사라졌다.곧이어 숙희가 김단의 곁으로 다가갔다.목소리를 낮추고는 물었다.“맹 아씨의 친 모친이옵니다. 어찌 친 딸을 해하겠나이까, 혹여 아씨께서 너무 깊게 염려를 하신 것이 아니옵니까.”“내가 그 생생한 본보기가 아니더냐.조금만 생각하면 알게 되는 법이지.”김단은 말하면서 맹영지에게 시선을 돌렸다.맹영지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금색의 계화 꽃잎이 떨어지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고개를 숙여 자신의 치마를 바라보았다.만일 맹 씨 부인이 ‘맹영지의 상황이 이리 심각할 줄 몰랐다’ 라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김단이 직접 맹영지를 맹 씨 집안의 마차로 올려 보냈을 지도 모른다.자신의 피가 흐르는 친 자식을, 어찌 사, 오 년 동안 상황을 몰랐던 것일까.마치 그녀가 세답방에 버려지고, 삼 년 동안 어떠한 안부도 묻지 않는 그 자들과 같은 모습과 같았다.허나, 정승댁은 세답방이 아니다.맹영지는 노비가 아닌 그저 댁의 맏며느리가 되기 위해 정승댁으로 향한 것이다.어찌 친부모가 되어 아무것도 모를 수 있겠는 가.더하여 중전이 독이 맹 씨 집안의 소행이라 의심을 품고 있는 중이다.오히려 정승댁이 맹 씨 집안보다 더 안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겉으로는 물러선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한 수 앞을 보아 맹영지를 이곳에 머무르게 한
맹 부인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손을 거두고 두려운 표정으로 맹영지를 바라보았다.“어찌 이럴 수 있으십니까?”무언가 떠오른 것 마냥 김단을 향해 바라보았다.“의녀, 영지가..”김단은 그제야 미소를 지어 보였다.곧이어 맹영지의 곁으로 다가갔다.“다 나았나이다.”그녀의 한 마디에 맹영지는 천천히 진정을 되찾았다.두려운 눈빛이 점차 평온해졌다.맹 씨 부인은 이러한 모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곧이어 김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낭자께서는 소인만 알아볼 수 있으십니다. 다른 이들이 다가간다 하여도,밀쳐 내실 겁니다. 부인도 똑같이 밀쳐 내실 것이옵니다. 제 몸종도 낭자에게 긁혀 손에 상처를 입었나이다.”김단의 말이 끝나자마자, 숙희가 맹 씨 부인에게 손을 보여 주었다.어제 맹영지에게 긁혀 생긴 상처였다.다행히도 김단의 설득 아래,맹영지는 드디어 숙희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그제야 그녀의 시중을 들게 해 주었다.김단의 말에 맹 씨 부인의 얼굴이 굳어졌다.“오늘 데려 가지 못한다는 뜻이옵니까?”“아니옵니다.”김단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소인은 그저 맹 낭자께서 이곳에 계시는 게 나을 듯 하옵니다. 허나, 낭자께서는 맹 씨 집안의 자식이 아니 옵니까. 부인의 뜻을 따르겠나이다.”데려 가는 것이 결코 좋지 않다는 뜻이다.현재의 맹영지의 상황으로 보아, 억지로 데려 가는 수 밖에 없었다.부모가 되어 어찌 자식에게 좋지 않은 선택을 한단 말인 가.맹 씨 부인은 어찌 할 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대감이 맹영지를 데려오라고 신신당부했었다.허나 이 상황에 평양 대군 관저의 문을 나갈 수 있다 한들,맹영지가 소리치는 모습에 다른 이들이 소문을 퍼트릴 수 있다.잠시 생각하고는 입을 열었다.“의녀께서는 높은 의술을 가지고 계시라 믿나이다. 혹여 영지를 잠재울 수 있는 수가 있사옵니까?”‘잠’ 이라 했지만, 사실 기절을 시킬 수 있는지 물어본 것이다.그리해야 조용히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김단이 고개를 끄덕였다.“소인에게 약은
이튿날 아침, 김단은 궁무를 맡지 않았기에 평양관저에 머물며 맹영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탓인지 맹영지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김단의 곁에 있을 때만큼은 그녀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조용한 정원, 김단은 맹영지와 함께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계수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숙희가 건네준 과자가 들려 있었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있었다. 맹영지는 고개를 들어 만개한 계화를 바라보며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소하가 평양관저를 찾아왔으나 그는 맹영지와의 만남을 최대한 피하려 애썼다. 아마도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이다.김단은 맹영지를 바라보며 과거 소하가 왜 그리도 그녀를 칭찬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때 소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여인답게 그녀는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가까웠던 두 사람이었는데 맹영지는 어쩌다 소하에게 독을 먹이려 했던 것일까?김단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맹영지의 몸과 마음이 회복되면 그때 자연스럽게 그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김단이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평양관저의 겸인이 급히 달려와 말했다.“아가씨, 맹가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이런 큰일이 발생했으니 맹씨 집안에서 그녀를 보러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단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겸인에게 말했다.“알겠소. 이리로 모셔오시오.”잠시 후, 맹씨 부인이 정원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김단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한 뒤 슬픈 눈으로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김 의원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의원님이 아니었다면 제 딸이 그 짐승 같은 자에게 학대받으며 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맹씨 부인의 눈동자가 붉어졌다.김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하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과찬이십니다, 맹씨 부인. 민태훈, 그 자의 말에 따르면 맹영지 아가씨의 병은 이미 4~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완전히 회
소한은 코웃음을 치며 말없이 등을 돌렸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소하의 조용한 목소리가 방안의 침묵을 깨뜨렸다.“이번에는 정말 잘했어.”영의정 저택에서 벌어진 일은 소한이 형벌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소하의 귀에 들어갔다. 만약 소한이 과감하게 영의정 저택에 침입하지 않았다면 김단은 쉽게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비록 민씨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김단을 해치지 못한다고 해도 그녀가 겪었을 모욕과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소하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소한은 많이 당황한 듯했다.“제가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때로는 그 충동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소한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김단의 얼굴을 떠올렸다. 처음에 그녀도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듯했지만 곧 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였다. 김단은 마차에 오를 때까지 자신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과거의 그녀였다면 그가 나타나자마자 바로 그의 품에 안기며 그를 향해 미소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너무나도 차갑게 변해버렸다. 자신을 외면하는 그녀가 소한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그는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며 굳게 결심했다.그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이미 어떤 대가든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반 시진 후, 김단은 방 안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그러자 숙희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아가씨?”김단은 정신을 차리고 숙희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냐?”“두 도련님께서는 모두 돌아가셨습니다.”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전 발생한 일을 되새겨 보았다. 그녀는 소한이 오랫동안 계획해 온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에도 그는 소가를 위해, 전하를 위해 심지어 임원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그녀만은 제외였다.그녀는 소한이 자신의 어머니를 걱정하는 척하며 평양관저로 따라온 것도 단지 자신의 동정심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상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