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이 너무 낮아!"임학은 미간을 찌푸렸다.“일반 백성들에게 정암의 조건이면 괜찮겠지만 단이는 진산군댁의 큰 아씨이다. 어찌 종사관 따위에게 시집갈 수 있는가!”단이는 진산군댁의 큰 아씨이다.왠지 모르게 이 말을 들은 임원은 질투했다.그러나 그녀는 빨리 감정을 다잡고 임학을 향해 달콤하게 웃었다.“오라버니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요. 항상 저와 언니를 생각해 주시고...”그녀의 말은 임학 마음속의 분노를 조금씩 가라앉게 했다.임학은 그녀를 한 번 보고,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문질렀다.“단이도 너처럼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언니도 알게 될 것입니다.!” 임원은 여전히 달콤하게 웃었다.“언니가 지금 이해하지 못해도 앞으로 다 알게 될 것입니다!”임학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그랬으면 좋겠다!”임원은 머리를 임학의 어깨에 기대었다.“그러나 오라버니께서 이렇게 언니와 정암을 갈라놓으면 언니는 틀림없이 오라버니를 미워할 것입니다.”이 말을 듣고, 임학의 얼굴은 또 굳어졌다.“갈라놓는다고 할 수는 없지.”함께 있는 사람을 갈라놓는다고 하지, 지금은 그저 그들이 함께 있는 것을 대비하는 것이다.임원은 다소 이해하지 못했다.“어쨌든 명정대군이 세상 뜬 후 언니는 상심이 컸을 것입니다. 오라버니는 또 정암도 언니 옆에 못 가게 하고..., 오라버니께서 언니를 위해 선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게 어떤가요?”이 말을 듣고, 임학은 멍해졌다.“안 그래도 내가 단이를 위해 적합한 사람을 고르고 있다만, 단이가 마음에 들지 않을까 봐 두렵다.”어쨌든, 김단은 지금 자기를 싫어한다. 아마, 자기가 선택한 것이라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임원은 그 말을 듣고 입을 삐죽거리며 고개를 들어 임학을 바라보았다.“오라버니는 연석을 마련하여 적합한 사람을 모두 모아서, 언니가 스스로 선택하게 하면 되죠."임학의 눈빛이 반짝이었다.정말 좋은 생각이다!그가 먼저 신분으로 선별한 후에, 김단이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선택하게 하면 된
3일 후.안채의 시녀가 별당에 와서 김단에게 큰 마님께서 부르신다고 전했다. 그녀가 연금이 풀리는 날이 아직 안 됐는데, 큰 마님이 부르신다고 해서 정말 걱정됬다.그녀는 큰 마님의 몸에 이상이 있어, 이렇게 급하게 부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서 빨리 안채로 갔다.안채에 들어서자, 그녀는 방에 들어가기도 전에 황급히 불렀다.“조모!”심지어 울먹였다. 그러나, 집 안에 있는 사람을 본 후, 김단은 멍해졌다.큰 마님은 상석에 앉아, 편찮아 보였지만,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그리고 임학과 임원도 있었다.이게 무슨 상황이지?김단을 보자, 큰 마님은 바삐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단이야, 어서 오거라!”김단은 그제야 앞으로 다가가 큰 마님 곁에 앉았다. 그리고 경계하는 눈빛으로 임학을 보고 나서야 큰 마님을 향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조모께서 급하게 부르신 데는, 무슨 기쁜 일이라도 있으십니까?”“당연하지!”큰 마님은 다정하게 김단의 손을 두드렸다. “네 오라버니가 드디어 날 기쁘게 하는 일을 한 가지 했지. 뭐야!”이 말을 듣고, 김단은 임학을 힐끗 쳐다보고, 의심하며 물었다.“도련님이 무슨 일을 했길래, 조모가 이렇게 기뻐요?”“하하하, 자, 이것 좀 봐.”큰 마님은 말하면서 책상 위의 책자 한 권을 들고 김단에게 건네주었다.김단이 받아서 뒤져보니 모두 명단이었다.태부의 손자, 호조판서의 아들, 예조판서의 아들...이게 뭐지?김단이 물어보기도 전에 임원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언니, 이 책자의 명단은 이미 부모님도 보셨고, 방금 조모도 보셨는데, 모두 칭찬이 자자하오!”큰 마님도 웃음기가 가득했다.“네 오라버니가 너를 위해 주선해 주려고 연석을 마련한단다, 이것은 연석에 올 사람들의 명단이다. 마음에 들어?”김단이 마음에 들든 말든, 큰 마님은 틀림없이 마음에 들 것이다.이 명단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권력과 세력이 있는 집안인데, 큰 마님이 봤을 때 김단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그런데... 김단
임학은 웃으며 말했다.“원이는 항상 부드럽고, 착하고 철이 들었지.”임학과 큰 마님의 칭찬을 듣고 임원은 수줍어서 고개를 숙이고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폈다.그런데, 김단의 표정은 여전히 쌀쌀했다. 아마도 김단이 싫어한다는 것을 알아봤는지, 큰 마님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단이야, 그냥 가서 한 번 보는 거야.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으면 돌아오면 돼.”김단은 깊은숨을 들이쉬고 나서야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큰 마님을 향해 말했다.“조모께서는 이렇게 급하게 단이를 시집보내고 싶어요? 단이는 조모와 몇 년 더 같이 있고 싶어요!”김단의 말을 듣자, 큰 마님은 눈물이 글썽거렸다.큰 마님은 김단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상냥하게 바라보았다.“단이가 제일 착하지. 그러나 난 단이 곁에 얼마 오래 있지 못할 것 같구나...”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살아 있을 때 김단을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고 싶었다. 김단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봐야 그녀는 안심하고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큰 마님의 말을 듣자, 김단의 마음도 따라서 떨렸다.그녀는 큰 마님의 살아 계시는 날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전에 같은 장소인 여기에 앉아서 자신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생기가 넘쳤지만, 지금은 그녀의 머리를 만지는 손이 심하게 떨고 있다.만약 그녀의 일이 아니었다면, 큰 마님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고 침대에 누워 휴양하고 있었을 것이다. .김단은 자신의 혼사가 조모의 유일한 걱정이라는 것을 알고, 더는 거절할 수 없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조모의 말씀을 따를게요.”“그럼, 제가 가서 준비하겠습니다!”임학은 바로 일어섰고, 표정이 매우 흥분되었다.아주 급한 것 같다.그는 김단에게 잘해줄 수 있다고, 김단의 행복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좋은 오라버니라는 것을 급히 증명하고 싶었다.큰 마님도 흐뭇하게 웃었다.“역시 단이가 제일 좋아!”말하는 사이에, 이미 피로가 드러났다.수 나인은 이 상황을 보고 바삐 앞으로 나가 부축하였다.“큰 마님, 피곤하신거
임학의 화 난 얼굴은 흉악해 보였다. 그러나 이 흉악한 얼굴이야말로 김단이 익숙한 것이다.조금 전에 부드러운 모습은 단지 지난날 오라버니의 가면을 쓴 사람 같았다, 정말 역겹다!김단은 차갑게 웃었다.“제가 조모와 약속한 이상 그렇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도련님도 큰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말을 마치자, 그녀는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그러자 임원이 황급히 다가와서 김단의 길을 막았다.“언니, 제가 할 말이 있는데, 해도 되겠소?” 이 위선적인 얼굴을 보고, 김단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임원의 말을 끊었다.“하지 마오.”임원이 잠시 멍했다. 김단이 이렇게 그녀의 체면을 깎을지 몰랐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말하려고 했다.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큰 억울을 당한 것처럼 눈물을 글썽였다.“언니가 듣기 싫어도 난 꼭 해야겠소. 언니가 오라버니와 저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소. 그러나 조모의 몸은 방금 보시다시피 좋지 않소. 조모의 유일한 소원이 언니가 시집가는 모습을 보는 것인데, 정말로 조모에게 아쉬움을 남겨야 하겠소?”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임원의 진실 어린 모습은 임학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그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원이는 조모를 모신 지 3년밖에 안 됐지만 벌써 효심이 가득하구나. 너는 조모의 사랑을 받으며 컸는데도 어찌 원이보다 못하느냐?”이 말을 듣고, 김단은 오히려 화가 나서 웃었다.“당신들은 지금 조모가 나의 유일한 약점이라는 것을 알고 조모의 건강은 안중에도 없고, 나를 여기로 부르지 않았습니까? 나는 이미 연석에 갈 것이라고 약속했는데, 왜 이렇게 사람을 못살게 구는 것입니까?”그녀는 눈썹을 찌푸리며 두 사람을 봤다.“설마, 당신들은 정말 나의 결혼 대사를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죠?”조롱하는 말투는 임학을 격노시켰다. 임학은 다가가 김단의 팔을 잡았다.“내가 왜 결정 못 하는데? 네 마음속에 정암 그 녀석밖에 없는 거야? 내가 진짜로...”김단은 임학의 손을 뿌리치
임학도 이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김단의 말을 듣고 마음이 약간 찔렸지만, 여전히 꿋꿋하게 말했다.“서화청은 이미 옛날과 많이 달라졌다. 그는 지금 그의 아버지를 따라 호조에서 일하고 있다. 얼굴도 그 정도면 괜찮은 셈이다.”‘팍!’김단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임학의 따귀를 때렸다.임학은 순식간에 두 눈을 부릅뜨고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고 김단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려 했지만, 김단 눈에 맺힌 눈물을 보더니, 주먹은 김단 눈앞에서 멈췄다.무언가에 가로막힌 듯이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김단은 그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눈에는 눈물 외에도 원망의 눈빛이 가득 담겨 있다.그녀는 8살 되던 해에 임학이 서화청이 자기를 익사할 뻔했다는 것을 알고 달려들어 서화청의 몸에 타고 때린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옆에 있던 네, 다섯명의 어른들도 끌어내지 못했다. 서화청은 임학에게 맞아서 이빨 두 개를 떨어뜨리고 용서를 빌었다.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임학의 주먹에도 상처가 생겼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고, 그저 그녀의 앞에 서서 서화청을 향해 악랄하게 위협했다.“다시 내 여동생 앞에 나타난다면, 나는 이 목숨을 걸어서도 너를 때려죽일 것이다!”그 후, 서화청은 다시는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멀리서 봤어도 바로 도망갔다.그러나 지금 서화청은 임학이 직접 쓴 책자에 나타나 그녀의 맞선 명단에 나타났다.김단은 자신을 아끼던 오라버니는 이미 3년 전에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사랑과 총애를 받은 15년은 정말 실제로 존재했다!그녀는 15년 동안의 수많은 따뜻한 추억으로 세답방의 3년을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임학은 그 15년 동안의 좋은 추억마저 물거품으로 만들고 있다!그녀를 위해 다른 사람과 필사적으로 싸우던 임학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두 사람은 계속 대치하고 있다.임학도 꽉 쥔 주먹을 놓지 않았고, 김단도 눈물을 흐르지 않았다.그녀는 절대로 이 나쁜 놈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이다!두 사람이 이렇게 대치하는 것을 보고
이런 눈빛은 김단이 3년 전, 소한이 임원의 앞을 가로막았을 때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그때도 지금처럼 한마디도 하지 않고,단지 눈빛 하나로 그녀가 반박하려는 모든 욕망을 끊었다.이렇게 생각하니, 김단의 마음은 또 아팠고, 3년 전의 자신이 가소롭기만 했다.그녀는 그때 도대체 소한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어떻게 그의 눈빛 하나에 그녀는 아무 말도 못 했을가?임학도 임원의 상처를 보고 놀라서 김단을 세게 밀었다.“너는 왜 항상 무고한 사람에게 화를 내는 거냐? 원이가 너를 위해 기성복 가게를 여러 날 돌아다녀 가장 좋은 옷을 골라 주었는데, 너는 이런 식으로 보답하는 것인가? 잘 들어, 원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절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임학은 이렇게 말하고 소한을 쫓아갔다.이렇게 큰 정원에 김단만 남았다.바람이 적적함을 불어오기도 하고 오래 참았던 눈물도 마르게 했다.모든 게, 변하지 않았다!3년 전, 그들은 모두 임원의 편에 섰고, 3년 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임원을 따라갔다. 버려진 사람은 오직 그녀뿐이었다.이렇게 생각하자, 김단은 또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의 감정을 억눌렀다.혼자면 뭐 어때?세답방에서도 3년 동안 혼자서 견뎌왔잖아?세답방에서도 견딜 수 있는데, 이 조그마한 진산군댁에서 견딜 수 없단 말인가?이렇게 생각하자, 김단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이때, 문밖에서 갑자기 작은 머리가 보였다.숙희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정원에 다른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뛰어 들어왔다.“아씨, 괜찮으십니까? 방금 소 장군이 둘째 아씨를 안고 가는 것을 보았고, 도련님도 화내면서 가셨는데, 그들이 또 아씨를 괴롭혔습니까?”김단은 왠지 코끝이 시큰거렸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웃었다.“아니, 이 세상에 아무도 나를 괴롭힐 수 없어!”“그렇죠!” 숙희는 격동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둘째 아씨는 상처를 입었고, 도련님 얼굴도 빨갛게 부었던데요, 아씨가 그랬습니까?”김단은 임학의 얼굴을 때린
임 씨 부인은 말하면서 김단에게 눈치를 주었다.김단은 금방 알아챘다.한 쪽은 선한 척 연기하고, 또 한 쪽은 악한 척 연기하는 중이다.하지만 김단은 이해가 가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제가 어찌 용서를 구해야 하옵니까?”“무엄하도다!”진산군이 고함을 쳤다.“네가 원이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정녕 모르는 것이냐!”김단은 눈썹을 살짝 치켜들었다.그리고 차가운 눈빛으로 임원을 바라보았다.“아씨께서 스스로 넘어 지셨습니다.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사옵니다.”“어찌 감히 거짓을 고하느냐! 소 장군이 네가 원이를 밀었다고 일러 두었다.”진산군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그리고 말을 계속 이어 갔다.“이 아비가 어렸을 때부터 네게 가르쳐 주지 않았느냐.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고, 인정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라고 말이다! 보아하니, 너는 다 잊었구나!”그의 말에 김단은 그저 헛웃음이 나왔다.“다 잊으신 분은 대감마님이 아니십니까?”3년 전, 임원이 유리그릇을 깼을 때 진산군은 직접 그녀를 혼내지 않았기 때문이다.진산군은 목에 들어간 것 마냥 말문이 막혔다.이때, 옆에 있던 임학이 입을 열었다.“걸핏하면 삼 년 전 일을 꺼내는 이유가 무엇이오? 원이는 삼 년 전에야 우리의 품으로 돌아왔소. 궐에 적응하지 못하여 유리그릇을 깨뜨린 것이 두려워 인정을 못한 것이 무엇이 문제요? 자네는 15년 동안 원이를 대신하여 살지 않았소, 잠시 원이의 죄를 덮어 주는 것이 무엇이 그리 잘못되었소? 낭자는 그저 이득만 취하려고 하는 것이오? 하지만 오늘은 그리하지 못할 것이오, 나와 소한이 직접 눈으로 보았소. 그런데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이오?”그의 한 마디, 한 글자가 김단의 가슴에 못처럼 박혔다.하지만 이러한 그의 태도는 이미 적응 한 지 오래다.그녀는 임학을 한번도 쳐다보지 않았다.냉정한 눈빛으로 침상 위에 있는 천막을 바라보았다.“먼저, 삼 년 전의 일은 소인이 아닌 도련님께서 먼저 말씀하신 것이옵니다. 그리고 소
씩씩거리던 진산군은 김단의 말에 잠시 멈칫했다.마치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은 것 같은 반응이다.“무, 무슨 뜻이냐? 네가 정녕 임 씨 가문과 혈연을 끊고 싶은 것이냐?”그녀는 15년 동안 길러준 은혜를 이미 갚았다고 했다.하지만 무엇을 갚았는지 알 수 없다.머리가 자신의 주먹보다 더 작았던 아기 때부터 그녀를 길렀다.귀한 아씨가 될 때까지 그녀에게 쏟은 무수한 감정을 무슨 식으로 갚는 단 말인가.진산군은 분노에 차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반대로 김단의 표정은 평온했다.임 씨 부인은 김단이 혹독한 말을 할까 봐 서둘러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단이는 그러한 뜻이 아닙니다. 대감께서는 화를 푸세요. 단아, 지금 아버지께서 많이 화가 나신 상태다. 그만하거라.”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단이 다시 입을 열었다.“만약 조모가 나서지 않으셨다면, 저를 진산군 관저의 여식으로 삼으려는 생각은 하셨사옵니까?”세답방에서 모욕과 학대를 받으면서 그녀는 그들의 가족이 되기를 포기했다.김단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물처럼 고요했다.하지만 천 년을 얼린 얼음처럼 사람의 마음을 순식간에 얼어붙게 했다.옆에 있던 임학도 다급해졌다.“김단! 그게 무슨 말이야!”그는 낮은 목소리로 그녀를 꾸짖었다.그리고 진산군의 눈치를 한번 보고는 다시 김단에게 말했다.“잠시만이라도 져줄 수는 있지 않은가!”침상에 누워있던 임원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상체를 반쯤 일으키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아버님, 소녀가 스스로 넘어졌사옵나이다. 누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사오니, 누이와 다투지 마시옵소서..”임원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김단이 임원을 흘겨 보았다.눈빛에는 임원을 향한 증오가 가득했다.하필 지금 나서서 저런 말을 하는 의도가 무엇인가.그저 그녀의 '무정함' 을 발판 삼아 자신의 '선함' 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닌가.하지만 진산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김단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그는 김단이 모친의 설득을 이해하고, 형제의 암시를 이해하고, 동생의
이튿날 아침, 김단은 궁무를 맡지 않았기에 평양관저에 머물며 맹영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탓인지 맹영지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김단의 곁에 있을 때만큼은 그녀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조용한 정원, 김단은 맹영지와 함께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계수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숙희가 건네준 과자가 들려 있었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있었다. 맹영지는 고개를 들어 만개한 계화를 바라보며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소하가 평양관저를 찾아왔으나 그는 맹영지와의 만남을 최대한 피하려 애썼다. 아마도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이다.김단은 맹영지를 바라보며 과거 소하가 왜 그리도 그녀를 칭찬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때 소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여인답게 그녀는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가까웠던 두 사람이었는데 맹영지는 어쩌다 소하에게 독을 먹이려 했던 것일까?김단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맹영지의 몸과 마음이 회복되면 그때 자연스럽게 그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김단이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평양관저의 겸인이 급히 달려와 말했다.“아가씨, 맹가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이런 큰일이 발생했으니 맹씨 집안에서 그녀를 보러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단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겸인에게 말했다.“알겠소. 이리로 모셔오시오.”잠시 후, 맹씨 부인이 정원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김단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한 뒤 슬픈 눈으로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김 의원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의원님이 아니었다면 제 딸이 그 짐승 같은 자에게 학대받으며 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맹씨 부인의 눈동자가 붉어졌다.김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하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과찬이십니다, 맹씨 부인. 민태훈, 그 자의 말에 따르면 맹영지 아가씨의 병은 이미 4~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완전히 회
소한은 코웃음을 치며 말없이 등을 돌렸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소하의 조용한 목소리가 방안의 침묵을 깨뜨렸다.“이번에는 정말 잘했어.”영의정 저택에서 벌어진 일은 소한이 형벌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소하의 귀에 들어갔다. 만약 소한이 과감하게 영의정 저택에 침입하지 않았다면 김단은 쉽게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비록 민씨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김단을 해치지 못한다고 해도 그녀가 겪었을 모욕과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소하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소한은 많이 당황한 듯했다.“제가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때로는 그 충동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소한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김단의 얼굴을 떠올렸다. 처음에 그녀도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듯했지만 곧 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였다. 김단은 마차에 오를 때까지 자신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과거의 그녀였다면 그가 나타나자마자 바로 그의 품에 안기며 그를 향해 미소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너무나도 차갑게 변해버렸다. 자신을 외면하는 그녀가 소한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그는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며 굳게 결심했다.그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이미 어떤 대가든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반 시진 후, 김단은 방 안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그러자 숙희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아가씨?”김단은 정신을 차리고 숙희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냐?”“두 도련님께서는 모두 돌아가셨습니다.”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전 발생한 일을 되새겨 보았다. 그녀는 소한이 오랫동안 계획해 온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에도 그는 소가를 위해, 전하를 위해 심지어 임원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그녀만은 제외였다.그녀는 소한이 자신의 어머니를 걱정하는 척하며 평양관저로 따라온 것도 단지 자신의 동정심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상처
김단은 아무 말 없이 소한을 부축하며 걸었다. 궐에서 나오는 길은 유난히 길고 고요했다. 그들의 발걸음은 무겁고 느렸으며 말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궐문에 도착했을 때 소한의 마차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는 아마도 말을 타고 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상태로 다시 말을 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된 김단은 곁에 있던 경씨에게 부탁했다.“도령님, 장군님을 먼저 집으로 모셔다 주실 수 있겠습니까?”그러자 소한이 놀란 듯 김단을 바라보며 물었다.“내게 약을 발라주지 않겠다는 것이오?”김단도 당황해하며 되물어 보았다.“소가에는 의원이 없습니까?”소한은 김단의 물음에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의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어머니께서 내가 또 다쳤다는 걸 아시면 얼마나 걱정하겠소? 그러니 그냥 근처에서 치료받을 것이오. 낭자는 신경 쓰지 말고 먼저 돌아가시오.”김단은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먼저 평양관저로 함께 가서 약을 바르시죠.”소한은 그녀의 제안에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불편하지 않겠소?”김단은 그를 바라보며 단호히 말했다.“괜찮습니다.”그렇게 소한은 김단과 함께 평양관저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김단의 몸종 숙희였다.소한을 발견한 그녀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그러자 김단이 숙희를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차분히 말했다.“숙희야, 장군님을 객실로 안내해 주거라. 나는 약을 준비하러 가야겠구나.”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김단의 지시를 따랐다.객실에 혼자 남은 소한은 조심스럽게 상의를 벗고 등을 드러냈다. 그의 등에는 형벌로 인한 상처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그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등을 바라보며 오늘의 형벌이 생각보다 가볍지 않았음을 깨달았다.하지만 그는 김단이 이 상처를 보면 마음 아파할 것이라 생각하며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잠시 후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약을 들고
긴장감이 맴도는 분위기 속에서 전하는 이해 안 되는 듯한 어투로 물었다,“조선의 장군인 네가, 수많은 전공을 세운 네가, 원하는 여인 하나 얻는 것이 그리 어렵단 말이냐? 어찌 김단 하나 때문에 수년간 공들여 쌓아온 모든 것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이야? 그 낭자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느냐?”전하의 말투는 엄중했지만 그 속에는 실망과 안타까움이 섞여 있었다.그러자 소한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그렇습니다.”전하는 눈썹을 찌푸리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김 의원, 들었소?”그 순간 소한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조용히 서있는 김단이 있었다. 그녀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소한은 그녀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가 이 모든 대화를 들었다는 사실에 당황했지만 그녀의 표정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소한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었다.“김단, 왜 이곳에 있는 것이오?”그녀는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와 무릎을 꿇고 전하에게 예를 올렸다.“소녀 김단, 전하를 뵙습니다.”전하는 손짓으로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일어나거라. 오늘 발생한 일에 대해 자세히 말해 보거라.”김단은 소한을 보지 않기 위해 시선을 정면에 고정한 채 차분하게 사건의 전말을 설명했다. “제가 직접 목격한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민대부를 제외하고는 영의정 댁 장남의 부인에게 감히 손을 댈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전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맹 낭자의 상처를 확인하기 위해 두 명의 궁녀를 보내겠다. 평양관저에서 확인해 보도록 하거라.”학대의 이유가 무엇이든 맹영지는 필시 중전의 친척이었다. 만약 폭력을 가한 사람이 민대부라고 할지라도 이는 중전의 가문을 모욕하는 행위와 다름없었기에 결코 그를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전하는 소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어쩌면 네 죄가 묻힐 수도 있겠구나.”민씨 가문의 잘못이 드러나게 된다면
소한은 곧바로 병사들과 함께 어서재에서 물러났다.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향 한 자루가 탈 정도의 시간이 흘러 있었다.소한이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본 전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냉랭하게 물었다.“영의정이 너를 더 때리라고 명하지 않았느냐?”소한은 조용히 전하 앞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고 허리를 곧게 세운 채 대답했다.“전하의 깊은 뜻을 아는 자입니다. 그러니 더 심한 처벌을 요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전하는 코웃음을 치며 다시 물었다.“그렇다면, 내 뜻이 무엇이더냐?”소한은 고개를 들어 전하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전하께서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대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겁니다. 그래서 영의정을 불러 제가 벌을 받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게 하셨죠. 그리고 동시에 제가 전하의 사람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셨습니다. 전하께서는 영의정이 이 사실을 눈치채기 바라신 것 아니었습니까?”전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던 붓을 책상에 내던지며 소리쳤다.“이 불경한 자식아! 내 너를 아낀다고 해서 이렇게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하느냐? 영의정 저택 외에 또 어디에 첩자를 심어두었느냐?”소한은 눈을 내리깔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3품 이상의 모든 관료의 집에 첩자를 두었습니다.”그 말을 들은 전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소한을 가리켰지만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였다.그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더니 한참 동안 방안을 서성이었다.잠시 후 그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다시 한번 소리쳤다.“네가 감히! 그렇게 많은 곳에 첩자를 심어두고 무슨 일을 꾸미려는 것이냐? 이렇게 행동하면 내가 소씨 집안을 멸문시켜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소한은 여전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조용히 말했다.“저도 위험한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다섯 해 전, 저희 소가는 거의 멸문 당할 뻔했습니다.”그 해 소하가 지닌 병권은 다른 집안의 탐욕스러운 먹잇감이 되었고 그로 인해 조정의 문
김단은 그제야 잊고 있었던 민태훈을 떠올렸다.그녀는 맹영지를 몸종에게 맡기고 민태훈 곁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허벅지에 박힌 은침을 뽑아냈다.침이 빠져나가자마자 민태훈은 마치 고통에서 해방되기라도 한 듯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한 가닥의 은침이 이토록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큰 마님은 김단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그녀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고 말이다.그때 경씨가 마차를 몰고 도착했다. 김단과 몸종이 맹영지를 부축하며 걸어 나오자 경씨는 놀란 얼굴로 다가와 안부를 물었다.“낭자, 괜찮소?”방금 전 김단이 영의정 저택에서 곤란한 상황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소한은 급히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덕분에 한발 늦게 도착한 경씨는 자신이 더 일찍 김단을 챙기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말했다.“내가 미처 신경 쓰지 못했소.“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대답했다.“저는 괜찮습니다. 먼저 맹 아가씨를 평양관저로 모시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그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김단과 몸종이 맹영지를 부축하며 마차에 오르자 경씨는 바로 마차를 출발 시켰다.김단은 마차에 오르기 전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조용히 서 있는 소한에게로 향했다. 소한은 그녀를 바라보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김단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소한은 그런 김단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더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 후 소한은 곧장 궁으로 향했다.어서재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앉아 오늘 영의정 저택에서 있었던 일을 전하에게 보고했다.그의 말을 들은 전하는 노여움을 감추지 못하며 소한을 꾸짖었다.“네가 감히 허락도 없이 영의정 저택을 침입했단 말이냐? 정말 대담하구나! 내가 너를 벌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느냐?”그러나 소한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벌을 달게 받겠습니다.“전하는 그의 담담한 태도에 더 분노하며 외쳤다.“민가
김단은 민씨 부인의 말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 파악했다.보내서는 안 된다라...오늘 이 자리에서 맹영지뿐만 아니라 김단 자신도 민가를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김단은 민씨 부인이 자신의 아들을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릴 줄 몰랐다.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선택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김단의 눈빛이 서서히 날카롭게 변해갔다. 그녀의 내면에서는 분노와 실망이 교차했다.큰 마님은 민씨 부인의 표정을 보고 심각한 상황임을 직감했다.맹영지의 몸에는 증거가 남아있었고 그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게 된다면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것이다.하지만 지금 김단을 보내지 않는다면 그녀는 분명 궐로 들어가 이 일을 고발할 게 뻔했다.지금 김단을 적으로 돌린다면 그에 따른 후과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큰 마님은 사랑하는 손자를 바라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김단을 보내면 민태훈의 입지가 위험해질 것이고 보내지 않는다면 민가 전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그러기에 그녀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그때, 한 하인이 급히 달려와 외쳤다.“큰 마님! 소 장군님께서 오셨습니다!”소 장군? 소한을 말하는 것인가?그의 이름이 언급되자 큰 마님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소한이 이렇게 빨리 이곳에 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김단도 그가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녀가 생각에 잠긴 사이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큰 마님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뵙게 되어 송구합니다.”모두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당당하게 정원으로 걸어 들어오는 소한의 모습이었다.“소한, 주인의 허락도 없이 들어오다니! 대체 영의정 저택을 무엇으로 보시는 것이오? 이곳은 마음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는 곳이 아니오.”소한은 그 말을 한 사람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이런 무례를 범한 것은 제 잘못입니다. 곧 전하 앞에서 사죄드리지요.”그는 정원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더니 큰 마님에게 다가가 정중히 인사했다.
머뭇거리는 그들의 모습에 김단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마님, 만약 지금 이 자리에서 저를 막으신다면 저는 곧장 궐로 가 이 모든 일을 고할 것입니다.”그녀의 말은 칼날처럼 날카로웠고 그 안에는 확고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김단의 말이 끝나자 민가의 사람들은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큰 마님은 눈썹을 찌푸리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그녀는 김단이 단순한 의원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김단은 진산군 댁의 적녀이자 평양원군의 의남매이다. 그리고 그녀는 소가의 두 형제와도 깊은 인연이 있었다. 지금 그녀를 적대시하는 것은 곧 여러 권세 있는 가문을 적으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었다.큰 마님은 민태훈을 바라보았다. 그는 고통에 찬 얼굴로 땀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그녀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그러나 동시에 마음속에는 김단에 대한 의심도 피어올랐다. 만약 그녀의 말이 과장된 것이라면 민씨 가문은 부당한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한참을 고민하던 큰 마님은 굳게 결심한 듯 민씨 부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네가 직접 확인해 보거라. 만약 낭자의 말이 거짓이라면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민씨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단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김단은 조심스럽게 맹영지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녀의 팔 안쪽에는 선명한 멍 자국이 여러 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민씨 부인은 숨을 들이켰다.“이런 상처가… 정말로…”그녀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자 김단은 차분하게 말했다.“다리 쪽은 더 심각합니다. 보시겠습니까?”민씨 부인은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이 상처, 정말로 태훈이의 짓입니까?”김단은 잠시 침묵하더니 그녀의 말에 대답해 주었다.“제가 직접 본 것은 아닙니다.”그 말에 민씨 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태훈이는 절대 그럴 애가 아닙니다. 어릴 적부터 착하고 작은 생명도 소중히 여기던 사람이었단 말입니다.”김단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공주의 이름이 거론되자 민씨 일가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스쳤다. 그러나 큰 마님은 여전히 태연한 표정을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낭자가 공주의 명을 받고 우리 영의정 저택에 들어와 병자를 돌보는 것은 알겠소. 허나 공주의 허락 없이 사람을 해치는 것은 무엄한 일이오. 공주라 할지라도 국법을 지켜야 하지 않겠소? 그러니 함부로 공주의 이름을 빌어 협박하지 마시오.”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단은 박수를 치며 말했다.“참으로 옳은 말씀이십니다.”민가의 큰 마님은 김단이 드디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자신을 치켜세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단의 입가에는 더욱 짙은 미소가 떠올랐고 눈빛에는 경멸이 스쳤다.“공주님께서도 국법을 지키셔야 하는데 민가의 사람들은 더욱 그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민가의 사람들은 일제히 소리를 높이며 반박했다.“그게 무슨 뜻이오? 우리 민씨 일가는 예로부터 법을 준수하며 국법에 어긋나는 일을 한 적이 없소!”“김 의원께서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우리 민가에 누명을 씌우려는 것 아니오?” 김단은 그저 조용히 서서 그들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두려운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김단의 이런 차분한 태도가 큰 마님의 신경을 건드렸다.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김단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큰 며늘 아씨는 중전마마의 친조카이시며 공주자가의 사촌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의 치료를 맡게 되었지요. 원래는 상태가 호전되고 있었으나 오늘 갑자기 증상이 악화되었습니다. 이는 분명 누군가가 큰 며늘 아씨의 회복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의원으로서 제 환자가 이곳에서 고통받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으니 제가 데려가야겠습니다. 만약 제 앞을 가로막으신다면 다음번에는 민대부님의 다리에 은침을 꽂아 버릴 것입니다.”이에 큰 마님은 지팡이를 바닥에 세게 내리치며 외쳤다.“허튼소리 마시오! 낭자의 의술이 부족해서 생긴 일을 왜 우리한테 덮어씌우려는 것이오?”“맞소! 무슨 명의의 제자라더니... 다 헛소리구